[399] 제34장. 인연처(因緣處)/ 15.혜암(慧岩)과 해후(邂逅)

작성일
2022-09-10 0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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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9] 제34장. 인연처(因緣處) 


15. 혜암(慧岩)과 해후(邂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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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관(茶館)에서는 마침 점원이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식탁을 치우는 것이 보였다. 경치가 좋아 보이는 자리를 얻기 위해서 일행이 잠시 기다렸다가 그 자리에 둘러앉았다. 점원이 다가오자 염재가 알아서 이것저것 먹고 마실만 한 것으로 주문하고는 눈길을 호수로 향했다. 호수 중간에는 몇 개의 작은 섬이 조각배처럼 떠 있는 것도 보였다. 우창이 바라보는 것을 지켜보던 점원이 다가와서 말했다.

“나리, 양산박의 호걸들이 웅지(雄志)를 키우면서 무예를 연마하든 곳이랍니다. 경치가 참 좋지 않습니까요?”

점원의 조용하지만 자부심이 느껴지는 말을 들으면서 지광이 우창에게 말했다.

“그러니까 여기가 양산박의 호걸들이 둥지를 틀고 천하를 누볐던 곳이란 말이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지광의 말을 들으면서 호수를 바라보는 우창도 동평호의 드넓어서 가슴이 탁 트이는 것 같은 기분이 좋았다. 항상 물을 바라보면 마음이 좋아지는 것은 무슨 까닭인지 모르겠으나 아마도 천성이려니 싶었다.

잠시 후 요리가 탁자에 차려졌다. 우창이 젓가락을 들면서 주변을 훑어보다가 한 곳에서 눈길이 멈췄다. 어딘가 낯이 익어 보이는 노인이 젊은 여인과 함께 요리를 먹고 있는 모습이었다. 잠시 생각하던 우창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곳에는 7년 전에 헤어졌던 스승님 혜암(慧岩)이 앉아있었기 때문이었다. 혹시 잘 못 봤나 싶어서 다시 살펴봤지만 틀림없는 혜암이었다. 우창이 지광에게 나직이 속삭였다.

“지금 저쪽에서 음식을 드시는 분은 우창의 처음 스승님이셨던 혜암도인이십니다. 가서 문안을 드려야 하겠으니 형님께서는 요리를 들고 계시지요. 혹 스승님과 이야기를 나눠보고 괜찮으면 합석하도록 하겠습니다.”

“아, 그래? 어서 가보시게.”

지광이 이렇게 말하면서 우창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창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혜암에게 다가갔으나, 혜암은 여인의 이야기를 듣느라고 여념이 없어 보였다. 그래서 잠시 옆에 서서 말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그러자 인기척을 느낀 여인이 우창을 흠칫 바라보자 혜암도 눈길을 줬다. 그제야 우창이 말했다.

“제자 우창이 스승님을 뵙습니다. 그간 평안하셨는지요?”

혜암이 우창을 바라보면서 반가워하자 우창이 삼배(三拜)하고서 옆에 서자 혜암이 우창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아니, 우창이 아니냐? 여기에서 우창을 만나게 되는구나. 허허허~!”

혜암도 반가움에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우창이 그 옆에 앉으면서 말했다.

“제자는 하루도 스승님의 가르침을 잊었던 적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항상 뵙고 싶었습니다. 제자도 여기에서 뵙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간에도 잘 지내셨는지 겉으로 뵙는 스승님의 모습은 여전하십니다. 하하하~!”

“아, 그렇게 보이느냐? 늙은이에게는 그렇게 말을 하는 것이 예의니라. 허허허~!”

“너무 반가워서 눈물이 다 납니다.”

“그래 너도 여전하구나. 그동안 공부가 잘되었군. 희색(喜色)이 만면(滿面)한 것을 보니까 말이다. 참, 이 여인은 근래에 맞이한 제자라네. 인사하게.”

혜암의 말에 우창도 여인을 살펴봤다. 나이는 대략 40세 전후쯤 되어 보이는데 세파(世波)가 거셌다는 흔적이 느껴졌다. 아마도 혜암이 어려운 환경에 처한 사람을 구하셨나보다 하고 생각하면서 인사했다.

“처음 뵙습니다. 진하경이라고 합니다.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우창이 인사를 하자. 여인도 일어나서 허리를 굽혔다.

“스승님께서 가끔 말씀하셨던 사형(師兄)을 이렇게 뵙게 되어 영광이에요. 사제는 이제 시작된 수행의 길이라서 배워야 할 것은 많지만 하루하루를 즐겁게 스승님을 따라서 공부하고 있답니다. 이름은 사영주(史寧珠)에요.”

“아, 사매(師妹)셨군요. 뵙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그러자 혜암이 한마디 거들었다.

“우창아, 내가 호를 현지(玄智)라고 지었으니 그리 부르면 되느니라.”

“아, 사매의 깨달음에 천지신명의 가호가 있으시기 바랍니다.”

우창이 일어나서 이렇게 말하면서 합장했다. 그러자 혜암이 또 한마디 했다.

“현지(玄智)의 의미는 천현광지(天玄廣智)라네.”

“참으로 멋진 호를 내리셨습니다. ‘끝없는 허공처럼 널리 지혜를 닦으라’는 의미로 보면 되겠지요?”

혜암은 우창의 뜻풀이에 흡족한 듯이 미소를 짓고는 다시 말했다.

“당연하지. 그런데 동행이 있었더냐? 같이 담소를 나눠도 좋지 않겠느냐?”

혜암이 먼저 말을 하자 우창도 반갑게 대답하고는 일행이 앉아있는 자리에서 혜암과 사매를 창가의 자리로 합석시키고는 다시 한바탕 소개하는 시간이 지난 다음에서야 우창이 말했다.

“수년 전에 스승님과 헤어지고 나서는 제자도 나름대로 게으르지 않으려고 노력은 했습니다만, 그래도 여전히 스승님의 혜안이 그리울 따름입니다. 스승님의 옆에서 알찬 공부를 하는 사매의 복이 부럽습니다.”

우창의 말에 혜암이 답했다.

“녀석아, 너도 나를 따라다닐 때는 그랬느니라. 그나저나 그사이에 놀지는 않았구나. 안광(眼光)이 더욱 깊어졌고 용모가 훤칠한 것이 적지 않은 내공을 얻은 것으로 봐서 내게 있을 때와는 다른 모습인걸. 기특하군. 허허허~!”

우창에게 하나도 묻지 않고 그대로 다 본 듯이 말하는 것을 듣자 다들 내심으로 혜암의 심후(深厚)한 공력(功力)에 감탄했다.

그때 밖에서 요리에 쓸 재료를 담은 대광주리가 들어오는 것을 보자, 문득 옛날 혜암과 다닐 적에 어느 고갯마루에서 오리의 숫자를 맞추라던 장면이 생각나서 미소를 지었다.

“스승님과 다니면서 공부했던 시절이 가장 행복했던 것같습니다. 지금도 그 시절이 가끔 떠올라서 스스로 그리워하곤 하는 것을 보면 말입니다. 하하~!”

“그랬나? 그러한 것이 쌓여서 오늘의 너를 만든 것이니까 당연히 그럴 만도 하겠지. 그래 최근에는 어떤 학문을 연마하고 있었더냐?”

“마침 어제는 후광(後光)을 볼 수 있는 능력자를 만나서 귀중한 가르침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래? 혹 그 사람은 포씨 성을 쓰는 노인이 아니었더냐?”

“예, 맞습니다. 포충이라는 함자를 쓰셨습니다. 스승님께서도 알고 계시는 분이셨군요. 놀랍습니다.”

“그 늙은 괴물이 아직도 이승 인연이 남아있었구나. 강호에서는 그를 의선(醫仙)이라고 불렀지. 별다른 능력은 없었으나 하나로 사람의 병환을 살피는 능력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不許)했으니까 그럴 만도 했지. 허허허~!”

“오호! 그 정도였습니까? 제자의 좁은 판단으로는 그냥 약간의 능력이 있는 시골의 의원이신가 싶었습니다. 그런 줄 알았으면 더 머물면서 배움을 얻는 것인데 아쉽게 되었습니다. 하하~!”

“그 영감은 아무에게나 가르쳐 주지도 않아. 그런데 네게 가르쳐 줬단 말이냐? 그렇다면 그 늙은이도 안목이 흐려졌구나. 허허허~!”

“그건 무슨 말씀이신지요?”

어느 사이에 우창은 7년 전으로 돌아간 듯했다. 혜암에게 떼도 쓰고 투정도 부렸던 그 시절의 추억은 시간을 초월해서 다시 이어지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혜암이 말을 이었다.

“너는 세상의 이치를 모두 논리(論理)로 여기는 녀석이라서 그런 이야기를 해 줘봐야 믿지도 않을 텐데 널 데리고 후광에 대한 말을 했다면 이미 총기가 흐려졌다고밖에 볼 수가 없는 까닭이니라.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말이다. 허허허~!”

혜암의 말에 우창은 물론이고, 지광도 깜짝 놀랐다. 이미 혜암은 우창의 천성을 다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창이 겨우 마음을 가다듬고 말했다.

“스승님의 말씀 그대로입니다. 이미 첫눈에 우창의 버릇을 알아보고는 아예 내어놓고 말씀하셨으니까요. 그런데 스승님께서도 그걸 알고 계셨습니까? 제자는 오히려 그것이 더 놀랍습니다.”

“그게 놀랍다면 내 법력이 서푼 어치도 안 된다고 생각했더냐?”

“아 아니, 그게 아니오라. 그런 말씀을 전혀 해 주지 않으셔서....”

“이놈아, 내가 널 태산(泰山)으로 보낸 이유를 아직도 모르고 있었더냐?”

혜암의 말에 잠시 생각하던 우창이 비로소 그 의미를 깨달았다.

“제자는 여태까지 그냥 공부하는 사람이 많은 곳에 가서 공부하라는 뜻으로만 알았는데 지금 하시는 말씀을 듣고서야 비로소 그 의미까지 있었던 줄을 알겠습니다. 역시 스승을 따라가기에는 머나먼 길임을 깨닫겠습니다.”

“이제라도 알았으니 다행이지. 허허허~!”

“아, 그래서 무극자(無極子)께서 데리고 다녀봐야 답답할 것이라고 말씀하셨군요. 역시 최고의 경지에 도달하시면 이러한 것은 저절로 알게 되는 것입니까? 아직도 그것을 모르겠습니다.”

“그야 알면 아는 대로 즐기고, 또 모르면 모르는 대로 그냥 살면 되느니라. 그렇게 살다가 보면 또 문득 알게 되기도 하니까 말이다. 허허허~!”

우창이 잠시 그 시절을 회상하느라고 조용히 앉아있자 혜암이 다시 물었다.

“봐하니 명학(命學)에 약간의 소득이 있었던가 보군.”

혜암의 말에 우창은 놀랍고도 뿌듯했다. 놀라운 것은 물어보지도 않고 그것을 알아준 것이고, 뿌듯한 것은 열심히 공부했다는 것을 인증(認證)받았기 때문이었다.

“스승님, 학문의 길은 참으로 멀고도 험난해서 조금 얻은 것이 있나 싶었다가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기를 반복하고 있으니 진전이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하하~!”

“녀석 수다를 떠는 것은 제법 늘었는걸? 그렇다면 현지의 팔자나 풀이해 보거라.”

이렇게 말하면서 현지를 지그시 바라봤다. 그러자 현지가 자신의 명식(命式)을 불렀다.

“임진년(壬辰年)생에 병오(丙午), 신유(辛酉), 정유(丁酉)로 알고 있어요.”

이렇게 말하자 재빠른 염재가 어느 사이에 지필을 준비해서는 옆에서 적어놓았다. 모두 염재가 써놓은 간지(干支)에 눈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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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사주를 들여다보던 우창이 현지를 보면서 물었다.

“혹 출생한 시진(時辰)은 어떻게 들으셨는지요? 유시(酉時)라고 한 이유가 궁금해서 여쭙습니다.”

우창이 조심스럽게 묻자 현지가 스스럼없이 웃으며 대답했다.

“어려서 들었는데, 어머니께서는 태어났을 적에 해가 넘어갔다고 하시고, 아버지께서는 해가 넘어가기 전이라고 해서 어머니가 무슨 정황이 있었겠나 싶어서 아버지의 말씀대로 유시라고 했어요.”

“아, 그렇다면 술시(戌時)가 될 수도 있었겠네요?”

“아마도 그렇겠지요?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문의해 보면, 어떤 사람은 술시로 보고 또 다른 사람은 유시로 놓고서도 풀이했어요. 오늘 사형을 만났으니 이것에 대해서도 해결을 봤으면 좋겠어요.”

우창과 현지의 대화를 듣고 있던 지광이 의아해서 물었다.

“아니, 사주를 본다는 것은 알려준 연월일시를 놓고 풀이를 할 따름이지 않은가? 그런데 왜 시에 대해서는 물어보나?”

지광이 이렇게 묻는 말을 듣고 있던 혜암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우창이 혜암에게 물었다.

“스승님, 아무래도 술시(戌時)가 맞지 않겠습니까?”

“기특하군. 허허허~!”

혜암이 이렇게 말하자 지광은 더욱 알 수가 없는 생각이 들어서 다시 우창에게 물었다. 그 사이에 염재는 얼른 시주(時柱)를 무술(戊戌)로 바꿔 적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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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광은 염재가 적어놓은 사주를 들여다봐도 이해가 되지 않아서 갑갑하다는 듯이 또 물었다.

“아니, 내가 모르는 뭔가 있는 모양인데 명학의 지식이 얕아서 알아듣지 못하겠으니 간단하게나마 이유를 알려주고 가면 어떻겠나?”

그러자 우창이 지광을 보면서 말했다.

“형님, 이유는 간단합니다. 유시(酉時)가 되면 스승의 인연이 아예 없고, 술시(戌時)가 되면 스승 복이 태산과도 같은데 지금 사매가 스승님을 만난 것을 어찌 스승복이 없다고 하겠느냐는 생각이 들어서 물어봤던 것입니다. 하하~!”

“아니, 그런 것도 알 수가 있단 말인가?”

“그렇습니다. 형님. 자세한 것은 아직 공부가 부족해서 깊이 알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대충은 짐작할 수가 있다고 하겠지요. 하하~!”

“아니, 그게 어떻게 대충이란 말인가? 참으로 명학의 깊이는 측량(測量)할 수가 없을 정도로 깊고도 광대하다는 것을 알겠네.”

지광의 말에 미소로 답한 우창이 현지를 보면서 말했다.

“사매님, 이렇게 명식을 놓고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에 대해서 혹 마음이 불편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우창은 지금 회초리를 들고 앉아계시는 스승님 앞에서 시험을 치르고 있는 것이랍니다. 하물며 형님이나 염재도 어떻게 풀이하는지 감시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러니까 있는 그대로 말씀해 주시면 스승님께서 판단해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떨리긴 합니다만, 그동안 공부한 것을 그대로 소상하게 스승님께 보여드린다는 마음으로 허심탄회하게 풀이하겠습니다. 혹 무례한 말씀을 여쭙더라도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우창이 사주를 앞에 놓고서 이렇게 정중히 말하자 현지도 미소를 지으면서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잘 알았어요. 무엇이든 물어주시면 있는 그대로 답을 드릴게요. 모쪼록 올바른 답을 얻고자 하는 마음뿐이니까요.”

이렇게 주변을 둘러보면서 담담하게 말하는 현지를 보면서 풀이를 시작했다.

“사매는 이미 전생부터 수행하기로 원을 세우고 태어나셨습니다.”

우창의 풀이에 지광이 다시 궁금한 것이 생겼는지 감탄하면서 물었다.

“아니, 그건 또 어디에서 나온 말인가? 그간 명학에 대해서 아무래도 내가 과소평가했나 싶군. 도대체 무슨 말이 나올지 그것이 궁금하니까 말이네.”

지광이 일찍이 우창에게서 들어보지 못한 말이 나오자 의아해서 다시 물었다. 그 말에 우창도 미소를 짓고서 말했다.

“아니, 형님께서는 이미 다 알고 계시면서 뭘 물으십니까? 전생에 수행하기로 원을 세우지 않았다면 이렇게 기구한 운명을 갖고 태어났겠습니까? 그러니 당연히 수행하려고 태어난 것이 틀림없지 않겠습니까?”

우창이 무슨 말을 하나 싶어서 곰곰 생각하던 지광이 비로소 그 의미를 깨닫고서 파안대소(破顔大笑)했다.

“아니, 이제 보니까 팔자가 기구(崎嶇)하다는 말을 그렇게 멋지게 꾸며냈단 말인가? 과연 놀랍군, 진심으로 놀라워~! 하하하하~!”

“형님도 참, 꾸며낸 것이 아니라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에 전생에 수행의 원을 세우지 않았다면 스승님을 만날 인연이 아니라 하녀나 기방(妓房)으로 가서 있어야 할 운명인데 이렇게 스승님과 동행하고 있으니 이것은 당연한 해석이지 않겠습니까?”

지광은 그제야 우창의 설명에 조금도 문제가 없음을 알고서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오호~! 과연 듣고 보니 아우님의 말이 매우 타당하네.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고 하더니만, 자신의 마음이 이끌리는 곳이 전생의 인연처라는 말이 떠오르는군. 잘 알았네. 어서 풀이를 계속하시게. 하하~!”

“그럼 계속 풀이하겠습니다. 사매께서는 전생에 수행을 쌓으려고 태어났으니 초년에는 온갖 고초를 겪게 됩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어려운 시련이 닥쳐도 꿋꿋하게 견딜 수가 있는 내공은 신유(辛酉)일에 태어난 까닭입니다.”

우창의 말에 귀를 기울이던 현지도 이렇게 말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직 이해가 부족한 듯이 물었다.

“사형님 처음 들어보는 말씀인데 신기하네요. 그건 무슨 이유인지 설명을 더 들어보고 싶어요.”

“일간(日干)의 신(辛)은 무공으로 논한다면 차력흡공술(借力吸功術)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맞을수록 강해진다’는 의미입니다. 신금(辛金)은 시련을 겪게 되면 그러한 고통을 맞으면서 그렇게 때리는 힘을 고스란히 흡수(吸收)하여 내공(內功)으로 저장하게 됩니다. 흡기(吸氣)는 신(辛)이 하고, 축기(縮氣)는 유(酉)가 하게 되지요. 그래서 흡기(吸氣)와 축기(縮氣)가 저절로 이뤄지는 형태가 되기 때문에 60갑자에서 유일하게 맞으면서 성장하는 간지(干支)인 까닭이기도 합니다.”

우창의 설명을 듣자 염재가 들은 바가 있다는 듯이 말했다.

“스승님의 말씀에 생각나는 장면이 있습니다. 예전에 싸우는 장면을 본 적이 있었습니다. 한쪽은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고강(高强)한 무예를 발휘하고 있었고 이에 비해서 상대방은 누가 봐도 많이 차이가 크게 나는 부족한 실력이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거듭할수록 고수는 점점 지쳐가고 하수는 생기가 넘쳐나는 모습을 보면서 기이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그 하수는 바로 차력흡공술을 연마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육갑에도 그러한 작용을 하는 간지가 있다는 것이 참으로 놀랍고도 재미있습니다.”

“역시 염재의 안목이 넓네. 맞으면 맞을수록 강해지는 신유(辛酉)로 태어난 사매이기 때문에 아무리 힘든 시련을 만나더라도 굴하지 않게 되어서 더욱 강해지는 자아(自我)를 만나게 되는 것이지.”

우창이 설명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던 혜암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녀석, 놀지 않았을 줄은 알았지만 그런 경지까지도 터득했을 줄은 몰랐군. 과연 어디에서 누군가 ‘네 스승이 누구냐?’고 묻거든 혜암이라고 하거라. 허허허~!”

“스승님께 배운 기초적인 공부는 평생의 보물이라는 것을 어찌 잊을 수가 있겠습니까? 날마다 그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하하~!”

“알았으니 어서 계속하거라.”

그러자 현지도 재촉했다.

“사형의 풀이에 온통 정신을 빼앗겼어요. 어서 계속 말씀해 주세요.”

현지가 이야기에 몰입하고 있다는 것을 안 우창이 다시 차근차근 설명을 이어갔다.

“더구나 고서(古書)에 이르기를 ‘금백련불변어색(金百鍊不變於色)’이라고 했습니다. 사주를 보면 월주(月柱)의 병오(丙午)가 계속해서 신유(辛酉)를 담금질하고 있는 형상입니다. 이렇게 거친 세파를 견디고 여기까지 왔으니 생사(生死)의 강을 넷은 건넜으리라고 짐작이 됩니다.”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현지가 갑자기 고개를 떨궜다. 눈물이 핑~ 돌아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모두 알았으나 모른체했다. 그러자 진명이 손수건을 꺼내어서 눈물을 닦아주면서 말했다.

“언니가 살아오면서 겪었을 것들을 상상하면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저는 입도 열지 못하겠어요. 정말 존경해요. 잘 견뎌내셨네요.”

현지는 바로 눈물을 훔치고는 고개를 들어서 웃는 얼굴로 자신보다 나이가 낮아 보이는 진명을 향해서 말했다.

“고마워. 그래서 고인의 말에도 아무리 힘들어도 죽지만 말라고 했나 싶었어. 이러한 날이 오리라는 것을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말이야. 호호호~!”

우창도 잠시 뜸을 들였다. 현지의 마음이 진정되기를 기다려 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현지가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었다는 듯이 우창을 바라봤다.

“그렇게 악전고투(惡戰苦鬪)의 수련을 다 마치고 올해가 되어서야 비로소 귀인(貴人)을 상봉하게 될 천운(天運)이 도래(到來)한 것입니다.”

“아니 그건 또 무슨 의미인가?”

이번에는 지광이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꿰어맞추느냐는 듯이 의심하는 마음으로 물었다. 올해는 신미년(辛未年)이다. 그런데 무슨 근거로 귀인을 만난다고 얼버무리는지 설명해 보라는 듯이 채근(採根)하자 우창이 지광을 보고 미소를 짓고는 이어서 설명했다.

“올해의 신미년에서 신(辛)은 비견(比肩)으로 마음의 중심이 잡히는 암시가 됩니다. 금(金)이 금을 돕는 까닭이지요.”

“그리고?”

지광이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약하지 않느냐는 듯이 다시 물었다.

“미(未)는 정신적인 스승을 의미하는 편인(偏印)이 됩니다. 비로소 스승을 만나게 될 운수(運數)가 도래했던 것이지요. 이제 사매께 물어야 하겠습니다. 스승님을 어떻게 만나셨는지요?”

우창이 이렇게 묻자 현지는 잠시 생각하더니 길게 한숨을 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