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8] 제34장. 인연처(因緣處)/ 14.과거(科擧)의 조짐(兆朕)

작성일
2022-09-05 0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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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8] 제34장. 인연처(因緣處) 


14. 과거(科擧)의 조짐(兆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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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충이 다시 말을 이었다.

“처음에 노력하다가 황광(黃光)을 보는 것에 익숙해지면 다음으로는 어떤 색의 광채라도 알아볼 수가 있는 것이라네. 소연의 경우처럼 의술에 대한 능력을 타고나게 되면 연분홍(軟粉紅)의 빛을 띠게 되고, 마음을 통제하는 독심술(讀心術)을 발휘할 수가 있는 사람은 연자색(軟紫色)의 빛을 띠게 되는데 이러한 것까지 볼 정도가 되면 구태여 일일이 기억하지 않아도 느낌으로 대략 어느 분야의 능력자인지를 파악할 수가 있으니 지금부터 외우려고 고생하지 않아도 된다네.”

이렇게 상세한 인체의 후광(後光)에 대한 설명을 마치자 모두 이야기를 정리하느라고 조용한 침묵이 흘렀다. 잠시 후에 우창이 말했다.

“오늘 말씀해 주신 귀한 가르침은 잊지 않도록 가슴에 새기겠습니다. 그렇다면 내일 밝은 날에 주루에서 오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연습할 수가 있겠네요? 물론 우창은 잘되지 않겠지만 형님이나 진명이 그러한 조짐을 어느 정도라도 맛봤으면 좋겠습니다.”

우창의 말에 포충이 답했다.

“아마도 진명은 대략 3할은 느껴 볼 수가 있을 것이네. 그리고 지광은 5할은 될지도 모르겠군. 여하튼 한 사람이라도 보이기만 하면 그다음에는 그러한 방법으로 꾸준하게 연마하면 되는 것이라네. 무엇이든 알아야 보이고, 보여야 진보하는 법이니까 말이네. 헐헐헐~!”

이렇게 말을 마치자 모두 작자의 침소에서 이야기를 정리하고는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에 일찍 일어난 우창은 가볍게 산책하면서 어제 포충에게 들었던 말들을 되새기고 있는데 운동하러 나온 사람들이 앞을 스쳐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그러자 되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후광이 보이려나 싶어서 괜히 눈을 가늘게 뜨고서 살펴봐지는 것을 자기도 모르게 느끼면서 혼자 웃었다. 물론 아무것도 보이지 않은 것은 당연했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아침을 먹고는 다시 포충을 따라서 주루로 갔다. 어제는 휴식이 필요해서 갔다면 오늘은 인광(人光)을 학습하기 위해서였다. 주인과는 이미 구면이 되어서 반갑게 인사하는 말을 받으면서 창가 쪽에 앉아서 오가는 사람들의 안색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우창은 아무리 보려고 해도 특별한 것이 보이지는 않았다. 그래서 지광과 진명의 사이에 앉아서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로 했다.

서너 사람이 지나쳐가고 한 여인이 노파와 함께 식당으로 들어와서 한쪽에 앉는 것이 보였다. 그러자 포충이 잘 살펴보라는 암시를 줬다.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모두 일제히 눈길을 그쪽으로 보냈다. 그렇게 잠시 지켜보던 진명이 가볍게 우창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것을 본 우창이 진명의 입에 귀를 가까이 댔다. 그러자 조용히 속삭였다.

“저 할머니는 후광이 짙은 회색(灰色)이에요. 아마도 할머니의 건강이 매우 안 좋은가 봐요. 신기하게도 마음을 두고서 보니까 얼굴에서 한 치 정도의 넓이로 잿빛의 은은한 빛이 보여요. 참 신기하네요.”

그들과의 거리는 20여 보(步)가 되어서 조용히 하는 말이 전해지지는 않을 거리였다. 더구나 다른 손님들도 있어서 시끌벅적했기 때문에 크게 신경을 쓸 필요도 없었다. 그러자 포충이 말했다.

“오호~! 진명이 빠르구나. 맞게 봤네. 아마도 수명이 오래 남지 않았겠군. 길어야 백일 정도라고 봐야겠군. 이제 이해가 되었나?”

포충의 말에 진명이 신이 나서 말했다.

“정말로 보였어요. 와우~! 이렇게 신기할 수가~!”

다시 조용히 사람들을 살펴보느라고 다들 분주했다. 그러다가 잠시 후에 중년의 남자 두 사람이 장검을 등에 메고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이번에는 또 어떤 빛을 보게 될 것인지 우창은 궁금했지만 보이지 않으므로 진명의 표정에 시선을 보내는 것이 고작이었다.

진명이 잠시 그들을 바라보다가 다시 나직하게 말했다.

“이번에 들어온 두 사람 중에 왼쪽에 앉은 사람은 빛이 보이지 않아요. 그런데 오른쪽에 앉은 사람에게서는 담홍(淡紅)의 빛이 보이는 것 같은데 이것이 참으로 빛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어요.”

진명이 반신반의하자 포충이 말했다.

“그래 진명이 잘 봤네, 내가 생각하기로는 지광이 빠르지 않을까 싶었는데 오히려 의외로 진명이 빠르군. 오른쪽의 남자는 혼인할 여인을 만나러 가는 길이고, 왼쪽은 그 동생이거나 지인인데 동행하는 걸세. 어디 가서 물어볼 테니까 잘 들어보게.”

포충이 이렇게 말하자 우창은 직접 확인해보고 싶었다. 그냥 보기에 평범한 검객들로 보이는데 혼인이야기는 과연 사실인지 궁금한 마음이 생겨서였다. 나이로 봐서 염재가 비슷해 보이자 조용히 말을 걸어보라고 시켰다. 염재는 무슨 뜻인지 바로 이해하고는 술병과 잔을 들고 다가갔다. 일행은 숨을 죽이고 무슨 말을 하는지 귀를 기울였다. 염재가 다가가서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선생은 곧 혼사(婚事)가 있으시군요. 행복한 배필을 만나셨으니 미리 축하주를 올리겠습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술을 한잔 따랐다. 그러자 그 사람은 눈이 커지면서 얼떨결에 술잔을 받으며 말했다.

“아니, 그걸 어떻게?”

더욱 놀란 사람은 동행한 남자였다. 정확하게 자신에게 말하지 않고 그 사람에게 말을 걸었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눈으로 보지 않고서는 쉽게 말을 할 수가 있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얼른 일어나서 염재의 손을 잡아서 앉히면서 말했다.

“아니, 강호가 넓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젊은 도사가 계실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이리 앉아서 귀한 가르침을 부탁드립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염재가 따라준 술잔을 급하게 비우고서는 잔을 염재에게 내밀었다. 그래서 염재도 어쩔 수 없이 술잔을 받아서 따라주는 술을 마실 수밖에 없었다. 독한 백주(白酒)가 목을 타고 흘러갔고, 염재의 마음도 조여들었다. 그러나 아무리 긴장해도 이미 엎질러진 술잔이었다. 태연하게 잔을 내려놓고는 그 남자에게 말했다.

“노형께서는 무슨 고민이라도 계십니까? 아직 혼사를 하실 기미는 보이지 않는데 말입니다.”

“실은 혼사를 알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추위(秋闈:8월의 무과시험)를 보려고 막바지 훈련을 열심히 하고는 있는데 이번에는 합격이 될 것인지가 궁금해서 조바심이 나는 까닭입니다. 이렇게 고명하신 귀인을 만났으니 무례를 범했으니 양해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아, 노형께서 무과(武科)에 응시하려는 계획을 갖고 계셨군요. 어쩐지 검을 메고 계시는 자태가 예사롭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시험일도 멀지 않았을 텐데 오늘은 연습하지 않으시고 동행하시는 것이군요.”

“그렇습니다. 연습이야 어디에서나 하는 것입니다만, 친구가 혼인할 사람을 좀 같이 만나자고 하여 동행하는 것이지요. 그것은 지금 형씨의 말을 들어보니 잘 될 것으로 생각이 되어 안심입니다만, 실은 소생의 당면사(當面事)가 코앞이라서 마음이 안정되지 못합니다. 이번이 벌써 세 번째거든요.”

이렇게 말하면서 염재에게 애절한 눈빛으로 호소했다. 그러자 염재가 난감해졌다. 질문의 내용으로 봐서 후광으로 해결할 일은 아닌 것으로 보이는데, 자신의 부족한 능력으로 답을 구할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우창이 회중시계를 보고 오주괘를 생각했다. 지금 정황에서 필묵을 찾을 겨를이 없어서 점괘를 암기해야 할 수밖에 없었다. 3일 전에 소연의 점괘를 뽑았을 적에 일진(日辰)이 계미(癸未)였으니까 오늘은 병술(丙戌)이었다. 그렇다면.... 아, 그 사이에 입추(立秋)가 지났구나. 그러고 보니 어제가 입추였군. 자칫했으면 틀린 점괘를 볼 수도 있었는데 다행히 기억이 났다. 그렇게 해서 기억한 점괘를 암산(暗算)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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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나름대로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서 애는 썼으나 내공이 증진되지 못해서 아무래도 이번에는 기쁜 소식을 접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이는구나....’

우창은 생각을 대략 정리하고는 염재에게 다가가면서 말했다.

“염제는 밥이나 먹을 일이지 왜 무사님들 일에 끼어드느냐.”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그 남자는 다시 우창을 보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빈 자리를 내어 주면서 앉으라는 말에 우창이 자연스럽게 합석하게 되었다. 그제야 염재도 난감했던 마음이 놓였다.

“아, 스승님 죄송합니다. 남의 일에 함부로 나서지 말라고 하셨는데 기쁜 빛을 보고서 그만 말씀을 어겼습니다. 기왕 이것도 인연인듯싶으니 이 검객의 이번 무과에 대해서 조언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염재가 이렇게 떠넘기자 우창은 짐짓 왼손을 들고서 육갑(六甲)을 짚는 시늉을 하면서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표정으로 봐서 어렵겠다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아니, 이번에도 급제(及第)가 어렵겠습니까?”

“가능은 하겠는데.....”

우창이 말꼬리를 흐렸다. 실로 점괘를 풀이하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일점(一點)의 인성은 진술충(辰戌沖)으로 무너져내리고 있으며 일간(日干)은 겨우 고근(庫根)에 의지하고 있는 모습은 벼슬길을 예고하는 것과는 너무나 먼 점괘였기 때문이다. 우창의 말에 남자는 더욱 애가 달았다.

“어떻게든 이번에는 급제해야 합니다. 무슨 방법이 없겠습니까?”

“다행히 방법이 있는데 그대로 하실 수가 있을지.....”

우창이 방법이 있다는 어투로 말을 하자 검객은 반겨하면서 말했다.

“그야 하다뿐이겠습니까? 어떻게 하면 되는지 알려만 주시면 조금도 어김이 없이 그대로 시행하겠습니다.”

이렇게 다시 다짐받고서야 방법을 알려줬다.

“그대의 마을에 토지공(土地公)이 있는데 왜 오가면서 정성을 들이지 않으셨소? 아마도 무시하는 마음이 들어서였지 싶은데 어떻소?”

“예? 아니, 그것을 어떻게 아십니까? 세상에 귀신은 없다고 생각하고 괜히 마음이 허한 마을 사람들을 위로하느라고 만들어 놓은 것이라고 여겼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것이 잘못되었습니까?”

남자의 말에 우창이 내심으로 고소(苦笑)했다. 얼마 전까지 자기 생각도 그와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겉으로는 짐짓 위엄을 부리면서 말했다.

“그야 맘대로 하시오. 자신의 힘으로 과거도 급제하고 벼슬도 한다면 또한 좋은 일일 테니 말이오. 하하하~!”

“아닙니다.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미처 몰랐습니다. 이제 도사님께서 가르침을 주시니 반드시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됩니까? 토지신께 기도하라면 하겠습니다.”

“하루에 세 번 기도하시오. 인시(寅時)ㆍ오시(午時)ㆍ술시(戌時)에 한 시진씩 기도하시오. 무예는 그만하면 되었으니 실력이 줄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토지신께서 호응해 준다면 반드시 좋은 일이 있을 것이오.”

이러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염재는 점괘가 궁금했지만 적어놓지를 않았으니 짐작조차 할 수가 없었다. 남자는 연신 고개를 숙이면서 잘 알겠다고 했다.

“그리고 과장(科場)에서 승마 시험을 치를 적에 말이 실족할 수도 있소이다. 이것을 지신께 기도하면 방지해 줄 것이니 기도하고 말고는 알아서 하시오.”

“정말 고맙습니다. 이번 동행을 마치고 귀가하면 반드시 그렇게 하겠습니다. 귀한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약간의 복채로 사례를 하고자 하니 받아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품에서 약간의 엽전(葉錢)을 꺼내어서 염재에게 쥐어줬다. 물론 우창은 사양했지만 염재는 그냥 받았다. 그렇게 이야기를 끝내고는 다시 연극을 했다.

“제자야 그만 가자.”

“예, 스승님 가시지요. 그럼 원하시는 대로 좋은 결과가 있으시기 바랍니다.”

염재의 말에 그 무사도 매우 공손한 자세로 말했다.

“오늘 귀한 가르침을 주신 것이 참으로 고맙습니다. 보중(保重)하십시오.”

두 사내의 환송을 받으면서 주루를 나가서는 한적한 곳에 앉아서 그들이 떠나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자 아까부터 궁금한 점괘를 우창에게 물었다.

“점괘가 어떻게 나왔기에 잘 된다는 풀이를 못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염재가 궁금해서 묻자 우창이 웃으며 답했다.

“오늘은 일진이 병술(丙戌)이니, 일간(日干) 병화(丙火)가 화고(火庫)에서 게으름을 부리고 있는 형국이라서 가볍게 채찍질을 좀 했다네. 하하하~!”

“아, 그러셨습니까? 그런데 낙마(落馬)의 조짐은 어디에서 읽으신 것입니까? 실제로도 승마 시험을 치르면서 종종 있는 일이거든요. 마치 스승님께서 무과시험을 치러보셨나 싶을 정도로 생생한 말씀을 하셔서 내심 깜짝 놀랐습니다.”

“그 정도야 상식이지 않은가? 그보다도 지금 시간이 진시(辰時)이니 진술충을 어떻게 하겠느냔 말이지.”

“아하~! 그러니까 진술충은 충돌인데, 무과시험이라고 하니까 무과에서 지지에 충이 났다면 말에서 떨어질 가능성도 있겠다는 뜻이었군요. 역시 점괘만 알아서 될 일이 아니라 그 상황을 눈으로 본듯시 그려서 앞에 놓고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당연하지 않은가?”

잠시 생각하던 염재가 다시 물었다.

“스승님, 또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불사(佛寺)나 도관(道觀)에서 기도하라고 하지 않고 토지신께 기도하라고 한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했습니다.”

“술(戌)이 무엇인가?”

“그야 양토(陽土)입니다.”

“그것만 보이나?”

“예? 설마 개를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웬 개를? 하하하~!”

“또 무엇을 봐야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가르쳐 주십시오.”

“술은 땅이 아닌가? 그것도 불을 머금은 땅이란 말이네. 불을 먹음은 땅은 무엇이겠나?”

“혹시, 화맥(火脈)을 말씀하시는 것은 아니겠지요?”

“왜 아니겠나. 하하하~!”

“아니, 스승님, 화맥은 불과 며칠 전에 배웠는데 어떻게 점괘에서 그것을 활용할 생각을 하셨습니까?”

“오늘 배운 것은 오늘 쓰면 안 되는가?”

“원 그럴 리가 있습니까? 스승님의 순발력과 응용력의 탁월함에 감탄해서입니다. 그러니까 점괘에서 인성(印星)이 있었더라면 조상님께 기도하라고 했을 텐데, 점괘에 목은 없고, 오직 술중정화(戌中丁火)밖에는 의지할 것이 없어서 토지공에게 기도하라고 하셨군요. 필시 토지공의 사당이 있는 곳이라면 화맥일 가능성도 크겠습니다.”

“오, 이제 이해가 되셨나? 하하하~!”

“그런데 왜 인시(寅時)ㆍ오시(午時)ㆍ술시(戌時)에 하라고 한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도 한 시진씩이나 하려면 하루에 많은 시간을 기도해야 하는데 그 일은 보통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게 무슨 뜻이겠나?”

“설마.... 혹시 안 된다는 뜻입니까?”

“그만큼 어렵다는 말을 에둘러서 해 준 것이라네. 아직도 그것을 몰랐단 말인가? 참으로 염재의 갈 길이 멀기만 하군. 하하하~!”

“알겠습니다. 그래서 더욱 열심히 정진하고자 합니다. 그런데 또 궁금한 것이 남았습니다.”

“뭔가? 말하게.”

“그가 토지공에 기도하지 않고 무시했을 것이라는 판단은 어디에서 찾으신 것인지요? 그러한 말씀을 하실 때면 제자는 깜짝깜짝 놀랍니다. 어쩌면 실제로 그것을 보신 듯이 담담하게 말씀하시는 것을 보면 과연 스승님께서는 그러한 장면을 실제로 보고서 말씀하시는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드니까요.”

“그런가? 많이 보고 깊게 생각하다가 보면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는 것이니 그것을 배워야 할 일은 없지 싶네. 그보다도 점괘만 본다고 생각하면 어떡하나?”

“예? 스승님께서 보신 것은 오주괘가 아니었습니까?”

“그야 물론 당연하지만, 점괘는 천의(天意)라고 한다면 눈앞에 보이는 그 모습은 인의(人意)가 아니겠나? 어디 그의 용모(容貌)는 보지 않았나? 남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게 생겼던가?”

“아하~! 그렇습니다. 우직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무과에 어울리겠다는 생각은 했습니다만, 토지공조차도 무시할 것이라는 생각에는 미치지 못했습니다.”

“더구나 점괘의 일간이 병화(丙火)가 아닌가? 병화라면 자신이 신(神)인데 세상의 누구에게 굴복하겠느냔 말이네. 그래서 그것부터 꺾어주기 위해서 하루에 세 번을 기도하라고 한 것이네. 물론 마음대로 되지 않아도 내 탓은 아니겠지?”

“예? 그것은 또 무슨 뜻인지......”

“아니, 나중에라도 나를 원망할 싹을 없애는 것이라네. 이것은 교활(狡猾)한 수법(手法)이라고 할 수도 있지. 하하하~!”

“아, 그러니까 자기 탓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까지 포함한 것이었습니까? 과연 놀랍습니다. 스승님을 따라서 10년을 배워도 제자는 불가능한 영역이지 싶습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두 남자가 말을 타고 떠나는 것이 보였다. 그제야 우창과 염재가 주루로 돌아갔다. 주루에서는 한참 우창의 점괘를 놓고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우창이 자리에 앉기를 기다려서 포충이 말했다.

“역시 신(神)은 공평하다는 것을 오늘 새삼스럽게 확인했네. 나는 빛이 보이지 않으면 가늠할 길이 없는데, 우창은 보이지 않는 것을 문자로 찾아서 읽어내니 그보다 놀라운 신기(神技)가 또 있겠느냔 말이네. 그러니 여기에 영안까지 얻게 된다면 아마도 명대로 살지 못할 것이라는 신의 배려라고 봐야 하겠네. 헐헐헐~!”

“과찬이십니다. 약간의 재주에 불과한 것입니다. 하하하~!”

“아닐세, 그렇게 자신의 길을 간다는 것이 자연의 모습이라네.”

우창이 화제를 얼른 돌리려고 지광에게 말했다.

“그보다도 후광의 공부는 잘하셨는지요?”

“물론이네. 앞으로 이에 대해서는 진명에게 물으면 될 것으로 보이네. 역시 신은 공평하셔서 나는 땅이나 잘 보라는 뜻인가 싶기도 하네. 하하하~!”

그러자 우창이 포충에게 말했다.

“참으로 깊은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더구나 소연이 타고난 능력을 발휘할 길을 열어주신 것에 대해서는 뭐라고 드릴 말씀이 없을 정도로 고맙습니다. 이제 우리는 소연의 일은 잊어버리고 다시 길을 가고자 합니다. 부디 보중하셔서 즐거운 나날이시기를 바랍니다.”

우창이 작별을 고하자, 포충도 만류하지 않았다. 만날 때가 되어서 만나고 떠날 때가 되어서 떠나는 것에 대해서는 통달을 한 듯이 보였다.

“아마도 한 3년 후쯤이면 소연도 자기 밥값을 할 테니까 혹 지나는 길에 생각이 나면 찾아주게. 그럼 다들 천지신명(天地神明)의 보우하심을 비네~!”

일행은 포충과 작별하고는 다시 길을 떠났다. 다들 즐거웠으나 그중에서도 진명은 더욱 흥이 났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자신에게 숨겨진 재능을 포충이 찾아줬고 그것을 증명했기 때문이었다. 우창이 진명에게 말했다.

“진명에게 탁월한 능력이 있다는 것을 자칫 진흙에 묻혀서 알아보지 못할 것을 포충 어르신이 찾아주셨으니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참으로 축하할 일이네. 하하하~!”

그러자 진명도 뭔가 말을 하고 싶은데 가려운 곳을 우창이 긁어주자 시원하게 말했다.

“사실 요 며칠 사이에 참 많은 경험을 하게 되었고, 또 생각도 많이 하게 되었어요. 그중에서도 인연의 이치를 또 생각했어요. 누구를 만나더라도 될 것은 되고, 되지 않을 것은 아무리 노력을 해도 되지 않는다는 것도 깨달았어요. 그래서 과거에는 원망했던 제 몸이었는데 오늘은 또 감사하게 생각하게 되는 것을 보면 참 신기하다는 생각도 들어요. 호호~!”

“인연법이란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모양이네. 그래서 어딘가에서 만나고 또 어딘가에서는 헤어지겠으나 그것을 모두 알 수가 없으니 그냥 흐름에 따른다고 하는가 싶기도 하네.”

“맞아요. 참으로 신기해요. 소연만 해도 그렇잖아요? 이렇게 인연이 연결될 줄을 어찌 생각이나 했겠어요? 호호~!”

마차가 동평호(東平湖)의 옆을 끼고서 시원스럽게 달렸다. 우창은 말발굽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몸이 흔들리는 것에 맡기자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는 편안함이 느껴졌다. 광활한 수면(水面)에 일렁이는 물거품을 보면서 인연의 생멸(生滅)을 생각했다. 모두 저마다의 생각에 잠겼는지 한동안 말이 없었다. 해를 봐서는 미말신초(未末申初:15시경)쯤 되었을 것으로 짐작되었다. 절기는 입추로 들어갔으나 아직도 한낮의 열기는 대단했다. 두어 시진을 달리자 말이 쉬어야 할 시간이라고 생각한 염재가 뒤를 돌아보면서 말했다.

“마침 풍광도 좋은 곳에 객잔이 있습니다. 좀 쉬어가는 것도 좋겠는데 어떻게 할까요?”

이미 염재가 마음을 정했으니 달리 이견을 붙일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 지광이 그러자고 했다. 마차를 대고 말에게 먹이를 주라고 부탁한 다음에 모두 객청(客廳)으로 올라갔다. 이미 적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서 저마다 주식(酒食)으과 대화로 즐겁게 담소하는 풍경이 여유로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