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7] 제34장. 인연처(因緣處)/ 13.인체(人體)의 후광(後光)
작성일
2022-08-30 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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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7] 제34장. 인연처(因緣處)
13. 인체(人體)의 후광(後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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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창은 노인과의 이야기를 좇느라고 잊고 있었던 소연을 바라봤다. 소연은 평온한 자세로 앉아서 휴식에 잠겨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에 다시 일어나서는 자리로 돌아와서 노인에게 말했다.
“할아버지 말씀대로 해드렸어요. 쾌유하셔서 다행이에요. 호호~!”
소연의 천진한 표정에 모두 감동했다. 마치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평온했기 때문이었고, 기적 같은 일을 하고서도 남의 일인 것처럼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것이 놀라워서였다.
“아가야 이리로 오너라.”
노인이 소연을 옆으로 오게 한 다음에 손을 정수리 위 세 치가량 되는 곳에 두고서 잠시 소연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자 약간 창백했던 소연의 안색이 다시 예의 발그레한 빛으로 되돌아오는 것이 생생하게 보였다. 사람들이 무슨 일인가 싶어서 보고 있자 노인이 설명했다.
“어린 아기가 약간 버거운 상대를 만나서 기력의 소모가 약간 있었네. 걱정할 정도는 아니나 늙은이가 벌인 일이니 그에 대해서 보상해 줬을 따름이네. 어떠냐 이제 몸이 가뿐해졌느냐?”
노인의 물음에 소연이 명랑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예, 할아버지~! 지금 완전히 좋아졌어요. 호호~!”
걸인은 스스로 계속해서 넓은 내부를 오락가락하다가 소연과 눈이 마주치자 머리를 깊이 숙여서 고마운 마음을 표시하자 소연도 인사를 그렇게 마주 받았다. 그러자 노인이 걸인에게 말했다.
“앞으로는 몸을 잘 관리하게. 가진 것이라고는 몸이 전 재산인 사람이 아무 곳에서나 굴리다가 더 크게 망가지면 어쩔뻔했냔 말이네. 알겠는가?”
“예예~! 오늘 베풀어 주신 은혜는 백골난망(白骨難忘)입니다요. 그럼 소인은 이만 물러겠습니다. 부디 건강장수하시고 무량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모두에게 고맙다는 표시를 하고는 홀연히 사라졌다. 그가 누웠던 침상은 점원이 물걸레를 들고 와서 깨끗하게 치웠다. 그래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은 것은 노인이 워낙 이 주루의 큰 손님이기도 했고, 신기한 장면을 보고자 하여 가만히 두었던 까닭이었다. 그러자 노인이 일어나면서 말했다.
“자, 이제 우리 집으로 가세.”
노인은 답을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이 휘적휘적 걸어가자 일행도 아무런 말이 없이 최면에 걸린 듯이 노인의 뒤를 따라갔다. 염재가 재빨리 먹고 마신 비용을 치르고는 뒤따라 나왔다. 노인의 집은 그리 멀지 않아서 마차를 타고 갈 정도는 아니었다. 차 한 잔이 식을 정도의 시간을 노인의 걸음을 뒤따라서 걷자 어느 장원(莊園)에 다다랐고, 대문의 위에는 편액이 하나 붙어 있었다.
「백수만덕(白壽萬德)」
편액을 본 거산이 염재에게 물었다.
“이게 무슨 뜻이지?”
그러자 염재가 조용히 속삭였다.
“아, 백수는 무량한 수명을 말하고, 만덕은 덕을 많이 쌓으라는 의미로 보이네. 그러니까 건강장수하라는 뜻으로 봐도 되겠는데 그리고 눈길을 끄는 것은 끝에 있는 덕(德)이로군. 그냥 나이만 축내지 말고 공덕을 쌓으라는 의미일 테니 말이네. 이해되었어?”
“그랬구나. 형의 설명을 듣고 보니 그런 깊은 뜻이 있었군. 나도 어서 공부해야겠어.”
“따로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보고 들으면서 배우는 것이 공부인 거야. 별도로 책상에 앉아야만 공부인 것은 아니니까 말이지.”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객청(客廳)에 다다랐다. 노인이 기침을 한 번 하자. 소연이 또래의 똘똘해 보이는 동자가 나와서 문을 열고는 손님들이 안으로 들도록 안내했다.
모두 자리에 앉자 동자가 차를 내어 와서 일일이 따라줬다. 쌍화차(雙和茶)였다. 향기로운 약재의 향이 방안에 가득 채워졌다. 차를 마신 노인이 말했다.
“쌍화차는 음양의 치우친 기운을 바로잡아주는 효과가 있으니 많이 마셔도 좋다네. 떠날 적에 일러놓을 테니까 갖고 다니다가 수시로 끓여 마시면 장도(長途)의 여독(旅毒)에도 좋은 효력이 있을 것이네.”
“예, 감사합니다. 이 쌍화차의 약재가 최상품인가 봅니다. 향이 매우 그윽합니다.”
주객의 인사가 한차례 지나가자 노인이 말했다.
“내가 오늘 아침부터 주루에서 그대들을 기다렸다네. 실은 이 아기를 기다린 것이지만 말이네. 어젯밤 꿈에 금봉(金鳳)이 한 마리 날아와서 마당의 오동나무에 둥지를 트는 꿈을 꾸고서 귀인이 지나간다는 것을 알았다네. 그래서 그대들을 만나게 되었고 그 후로는 그대들도 알고 있는 그대로네. 헐헐헐~!”
노인의 말에 우창이 조금은 난감했다. 물론 이것은 지광도 같은 마음이었다. 소연이 부모와 잘 가르쳐서 훌륭하게 키우겠다는 약속을 하고 동행 길에 올랐는데 갑자기 일정이 변화하게 생겼으니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 것인지를 판단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우창이 갑작스러운 일에 대해서 어떻게 할지 몰라서 난감해하자 연장자인 지광이 대표로 말했다.
“어르신께서 그리 말씀해 주시니 소생은 감읍(感泣)했습니다. 그러나 소연의 부모와 약조를 한 것이 있어서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난감할 따름입니다. 우리의 바람을 말한다면 소연이 자신의 길을 잘 갈 수가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지광의 말을 듣고서 노인이 말했다.
“내 이름은 포충(鮑忠)이라고 하네. 보잘것없는 의술로 호구지책(糊口之策)을 삼고 있을 따름이지만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을 정도의 자연 이치는 알고 있지. 이 아이가 싫다고 하면 그만이지만 여기에 머물면서 내 의술을 배우고자 한다면 나도 마지막 제자로 생각하고 심혈을 기울여서 큰 그릇을 만들고자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렇게 말하면서 소연을 바라봤다. 소연도 마음으로 이미 허락한 듯이 생각을 할 것도 없이 말했다.
“네, 좋아요. 부모님께는 여기에서 공부하고 있다고 나중에 소식을 전하면 되겠지요? 언니나 스승님들과 함께 가지 못하는 것은 아쉽지만 그 대신 좋은 의술을 배워서 나중에 아프기라도 해서 찾아오시면 힘써 고쳐드릴게요.”
이렇게 당당하게 말하는 것을 듣자 우창도 무거웠던 책임감을 내려놓을 수가 있었다. 이미 자신의 길을 결정할 정도로 성장을 했으므로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아도 되었고, 더구나 포충의 인품을 봐서 함부로 대할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아도 되지 싶었기 때문이었다.
“동자야~!”
포충이 부르자 예의 그 동자가 뛰어왔다. 그러자 동자에게 말했다.
“이 아이를 데리고 가서 맛있는 과자를 나눠 먹거라.”
이렇게 말하자 동자는 소연을 보고는 손을 덥석 잡으면서 말했다.
“와! 나도 이제 예쁜 동무가 생겼네~!”
소연이 제대로 인사를 할 겨를도 없이 동자의 손목에 잡혀서 안채로 끌려가고 말았다. 그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지광이 말했다.
“인연의 고리란 참으로 오묘하고 예측불허인가 봅니다. 부디 잘 보살펴 주시기만 바랄 따름입니다. 그럼 저희 들은 이만 가던 길을 재촉하겠습니다.”
이렇게 작별을 고하자 포충이 말했다.
“어허~! 그렇게 마음대로 떠날 수가 없다네. 오늘은 푹 쉬고 내일 가도 바쁜 일도 없을 텐데 무얼 그러나? 혹 부담스럽다면 행여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아도 되네. 나도 말벗이 있으면 무료하지 않아서 좋지 않겠나? 헐헐헐~!”
그렇게 말하면서 이번에는 집사를 불러서 편히 쉴 숙소를 마련해 주도록 말하고는 잠시 쉬었다가 저녁에 보자고 하는 말을 남기고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러자 우창도 그야말로 꼭 가야만 할 일도 아닌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들어서 지광에게 말했다.
“형님 오늘은 또 여기에서 일숙(一宿)을 하는 것이 운명인가 싶습니다. 어디 또 어떤 가르침을 얻게 될지 기대해 보겠습니다. 하하하~!”
“실은 나도 후광의 이치에 대해서 궁금한 생각이 아직도 떠나질 않고 있다네. 여기에 대해서 알아보고 싶은 마음도 있으니 기다려 봐도 좋겠네. 하하~!”
석양이 비칠 무렵에 밥을 먹자는 말을 듣고서 식당으로 안내되어 갔다. 음식은 모두 정갈했다. 그야말로 혀를 위한 음식이 아니라 몸을 위한 보약(補藥)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어느 것을 먹어도 몸에 좋을 것만 같은 음식이었다. 모두 적당히 맛있게 먹고 나자 차를 내어 와서 다시 모두 둘러앉았다. 그사이에 소연은 동자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이미 이 집의 사람이 되어버렸기 때문이기도 했으나 나름대로 어린아이가 어른들과 다니다가 또래를 만났으니 얼마나 재미있겠느냐는 생각을 하고서 애써 찾으려고 하지 않았다.
자리에 앉으라고 한 포충은 좌중을 둘러보면서 말했다.
“지금부터 인광(人光)을 보는 방법을 알려주겠네. 앞으로 틈이 나는대로 열심히 연마하면 유용하게 쓰일 때가 있을 것이니까 잘 듣고 이해하게. 두 번 말하지 않겠네.”
포충이 이렇게 말하자 지광이 얼른 대답했다.
“우둔한 지광(地光)이 최대한으로 이목(耳目)을 집중해서 가르침을 받겠습니다. 부디 아낌없이 베풀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자 포충은 우창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그대는 아무래도 가장 늦게나 깨닫게 될 테니까 서두르지 말게. 왜냐면 의심이 많고 무엇이든 논리적으로 설명이 되지 않으면 수용하지 않으려는 버릇으로 인해서 시간이 가장 많이 걸릴 것이기 때문이라네. 헐헐헐~!”
“선생님 우창이라고 불러주십시오. 잘 알겠습니다. 서두르지 않고 분별하지 않는 경지에서 귀하신 가르침을 체득(體得)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포충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진명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그대는 천부적으로 타고난 능력이 있어서 어쩌면 지광보다 더 빠를 수도 있을 것이네. 타고난 재능은 썩히는 것도 죄를 짓는 것이니까 잘 연마해서 유용하게 쓰도록 하게.”
그러자 진명도 합장으로 감사의 예를 표했다.
“자, 잘 듣게. 처음에는 회광(灰光)을 먼저 익히게 되는데, 이것이 처음에는 얼굴에 그늘이 진 것과도 같은 느낌이기도 하기에 자세히 살피지 않으면 모르고 지나갈 수도 있지만 눈여겨보는 연습이 쌓이게 되면 자연히 쉽사리 구분될 것이네.”
“잘 알겠습니다. 다른 것은 찾지 말고 회색의 빛을 먼저 찾아서 익혀야 하는 것이란 말씀이지요?”
“그렇다네. 왜냐면 사람이 보통 빛이 있으면 그림자를 볼 수가 있잖은가? 그림자를 볼 줄 알기 때문에 그와 가장 유사한 회색의 빛을 먼저 살피게 된다네. 이러한 것으로 훈련이 되지 않으면 홍광(紅光)이나, 황광(黃光)은 물론이고, 청광(靑光)이나, 녹광(綠光)도 구분할 수가 없으니까 절대로 서두르면 안 된다는 것도 명심하게.”
이렇게 말하자 우창이 궁금한 것을 물었다.
“그렇다면 선생님께서 구분하는 후광의 종류는 대략 몇 가지나 되는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그렇지, 그런 것을 묻는 것이 그대의 역할이라네. 당연히 사람마다 색이 같지 않아서 부지기수(不知其數)라고 해야 하겠네. 그렇지만 지금은 이러한 것에 대해서는 몰라도 되니까 크게 봐서 칠색(七色)만 알아두도록 하게. 그것만 잘 분별이 되면 그 나머지는 있는 그대로 다 분별할 수가 있을 것이니까 전혀 어려울 일이 없지.”
“아,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그렇다면 우선 회색의 빛이 보이는 사람은 어떤 상태라고 이해하면 되겠습니까?”
“그 사람을 봤을 적에 얼굴의 주변에 보이는 빛이 회색이라고 한다면 그의 영적인 경계는 모든 것이 닫혀있는 상태라고 알아두면 되네. 그러니까 약을 써도 약효가 없는 사람일 것이니 아무리 정성을 들여서 기도해도 정성이 들어가지 않아서 천지신명의 감응이 나타나기도 어렵다네. 이런 사람은 자칫해서 잘못 건드렸다가는 덤터기를 쓸 수도 있다는 것부터 명심하고 경계해야 한다네. 그래서 행여라도 후환(後患)이 될 수가 있는 원인부터 미리 알려 주는 것이네. 잘 알겠는가?”
포충의 말에 우창도 명쾌하게 이해가 되어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 그러니까 치료하는 관점에서 해 주시는 말씀이군요. 건강한 사람도 그러한 빛을 갖고 있을 수가 있습니까?”
“당연하지, 비록 아픈 곳은 없다고 하더라도 마음에 병이 있거나 악귀에 빙의되어 있어도 그러한 현상이 나타난다네. 그러니까 감당을 할 수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면 호랑이를 만난 듯이 하고 얼른 회피하는 것이 최선이라네.”
“그렇다면 그러한 빛을 어떻게 해야 알아볼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한 것을 살피는 것이 익숙하기 전에는 정면으로 얼굴을 보면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네. 그런데 옆모습을 보게 되면 뭐랄까.... 파도가 심하게 치면 포말(泡沫)이 일어날 적에 보이는 거품의 색과도 같은 흑갈색의 기운이 살짝 올라온다네. 이것을 말로만 하기는 어렵지만 내가 해준 말을 잘 떠올리면서 관찰하면 그것을 구분할 수가 있다네. 내일 주루에 나가서 실험해보도록 하세. 백문이불여일견(百聞而不如一見)일테니 말이지. 그러면 오히려 쉽게 이해를 할 수가 있을 것이네.”
“예, 그렇게 하면 더욱 빠르게 이해가 되겠습니다.”
우창이 이렇게 말하면서 반가워하자 포충이 다시 말했다.
“이렇게 밤에는 등불을 어둡게 켜고서 사람의 얼굴을 바라보게 되면 흐릿하게 얼굴에 끼는 빛이 보이기도 한다네. 수심이 깊은 사람의 얼굴을 보면 왠지 칙칙하고 어두운 듯한 느낌이 드는 것도 그러한 빛으로 인해서인데 이런 것은 웬만한 사람도 느낄 수가 있을 걸세.”
포충이 이렇게 말하면서 거산을 가리켰다.
“그대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 빛이 있었을 것이네. 그런데 지광을 만나서 그것이 제거되어서 지금은 거의 보이지 않게 되었다네. 이렇게 같은 회색이라도 사라지는 빛과 돋아나는 빛을 구분할 수도 있다네. 이러한 것을 일일이 말로 설명하기는 쉽지 않지만, 바닷가에서 살아본 사람은 같은 물결이라도 밀물 때의 물결과 썰물 때의 물결이 다르다는 것을 느끼듯이 구분이 쉽게 된다네. 그래서 떠나가는 회색빛은 전혀 염려할 것이 없는데 그것을 잘못 보고서 괜한 망언(妄言)을 할 수도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네.”
이렇게 말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우창이 말했다.
“아, 찰색(察色)도 쉽지 않은 것이었네요. 놀랍습니다.”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포충이 물었다.
“아니, 우창은 면상(面相)을 공부하셨나? 찰색이란 말은 알고 있으니 말이네.”
“그냥 흘려들었던 이야기라서 의미는 모릅니다. 말씀을 듣고 보니까 그런 느낌이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들어서 불쑥 나온 말입니다. 하하하~!”
“맞아, 찰색의 방법을 응용한 것이라고 보면 된다네. 굳이 구분하자면, 찰색은 피부(皮膚)를 살피는 것이고, 찰광(察光)은 피부 밖으로 풍겨 나오는 빛을 보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이네.”
“대략 의미하는 바를 이해하겠습니다.”
“그렇다면 다음으로는 청광(靑光)을 찾아보는 연습을 하게. 청광은 우창을 보면서 익히면 될 것이네. 청광에도 담청(淡靑)과 중청(中靑)과 농청(濃靑)이 있다네. 이것은 빛의 농도를 말하는 것인데 무엇이든 그렇지만 담색(淡色)이 가장 좋은 것이라네. 보일 듯 보이지 않는 것을 말하는데 이것이 짙게 보인다면 몸에 질병이 깊은 것으로 봐야 하거나 혹한(酷寒)으로 동사(凍死)할 지경이라는 것을 의미한다네.”
“아, 그래서 추위에 떠는 사람은 얼굴빛이 파랗게 되는 것입니까?”
“그렇다네. 덜덜 떨리기 시작하면 이미 짙은 청색이 되었다가 점점 회색으로 변해가기도 한다네.”
포충의 이야기에 모두 빠져들었다. 귀로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머리로는 그러한 장면을 상상하느라고 여념이 없었다. 다들 생각하느라고 숨소리만 들리는 중에 포충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청광을 보게 되는 능력을 얻게 되면 녹광(綠光)은 비교적 쉽게 볼 수가 있다네. 녹광은 주로 10세 이전의 아이들에게서 많이 발견되는데, 성장하는 기운이 뭉쳐서 초목(草木)의 빛을 띠는 것으로 이해해도 될 것이네.”
포충의 말을 듣고서 우창이 확인하기 위해서 다시 물었다.
“혹 질병이 몸에 생겨도 그러한 빛을 나타낼 수가 있지 않을까요?”
“당연하다네. 그 정도 문제는 항상 기억해 두게. 담중농(淡中濃)의 세 가지만으로 구분하면 되네. 담은 매우 건강한 상태이고, 농은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면 된다네. 이것을 볼 텐가?”
이렇게 말하면서 쌓아놓은 꾸러미에서 뭔가를 꺼내어서 펼쳤다. 불화(佛畵)였다.
“자, 이 불화를 보게. 담록빛의 후광이 보이지 않는가? 이러한 빛은 매우 이성적(理性的)이고 청아(淸雅)한 빛이라네. 마치 연한 옥빛과도 같은 느낌이어서 고귀한 빛으로 느껴지기도 한다네.”
그림을 보던 진명이 말했다.
“신기해요~! 과연 후광이 이와 같다면 그가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있더라도 그의 내면은 고귀한 정신력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볼 수도 있겠어요.”
“그렇지. 만약에 빛을 볼 수가 있을 때에 이러한 후광을 가진 사람을 만난다면 무조건 그를 따라서 배우고자 한다면 소득이 적지 않을 것이네.”
포충의 말에 우창도 한마디 했다.
“이제 보니 자신의 수행을 위해서도 이러한 능력을 갖추고 있으면 무척 유용하겠습니다. 말을 나누기 전에 미리 간파할 수가 있을 테니 말입니다. 아무리 장광설(長廣舌)”로 미사여구(美辭麗句)를 멋지게 말하더라도 그 후광의 빛이 칙칙하고 어둡다면 얼른 본색을 파악할 수가 있을 테니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 ‘실체를 본다’는 의미도 본색(本色)이라고 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겠습니다.“
“그렇다네. 다음으로 드러나는 빛은 홍광(紅光)이네. 홍광을 갖는 사람의 심성은 밝고 직선적이며 감추거나 음흉한 것이 없다고 보면 되네. 이러한 사람은 항상 진실을 느끼고 생각한 대로 말하는 성향이 강하다고 보면 되네. 매우 열정적이기 때문에 무슨 일이든 시작하면 몰입하는 성향도 있다네.”
이렇게 말하면서 염재를 가리켰다. 그러자 염재가 얼른 이름을 말했다.
“예, 염재입니다.”
“그래 염재에게서 보이는 빛이라네. 녹광이 풍기는 중에도 옅은 홍광이 섞여 있음은 그러한 의미를 나타내고 있다네. 내가 공직의 길을 가거나 가야 할 것으로 말한 이유이기도 하다네. 염재는 공직에서 일하게 되고, 그의 지휘를 받는 부하나 백성들은 모두 공명정대(公明正大)한 처사를 존경하게 된다네.”
그러자 우창이 다시 말했다.
“혹 송대(宋代)의 명판관이었던 포증(包拯)의 얼굴빛이 붉었다고 하는데 그것도 관련이 있겠습니까?”
“포증뿐인가? 관운장도 얼굴이 잘 익은 대춧빛이라고 하지 않은가? 이러한 인물들은 의협지사가 많아서 잘 되면 충신이지만 못되면 역적이 되기도 하므로 지나치게 붉은 것은 조심해야 한다는 것도 알아두면 좋을 것이네.”
“그렇다면 붉은빛을 띠는 후광이라면 선비의 성향이 아니라 무인(武人)의 길로 가는 사람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참으로 신기합니다.”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이번에는 지광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지광은 황광(黃光)의 후광을 갖고 있다네. 그래서 온화하면서도 중심이 강한 느낌을 전해주게 되네. 특히 땅의 빛을 보는 능력을 타고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우창은 청광(靑光)이기 때문에 황광(黃光)과는 서로 근원이 다르다고 할 수가 있을 것이네.”
“혹 어르신께서는 포증의 후손이 아니신지요?”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포충이 웃으며 대답했다.
“아, 맞아, 증(拯) 할아버지는 12대 조부라네. 말은 하지 않아도 내심으로는 멋진 조상을 두게 된 것에 대해 매우 강한 자부심이 있는데 마침 우창이 그렇게 물어주니 고맙군. 헐헐헐~!”
“정말 신기합니다. 소연에게서는 연분홍의 빛이 보인다고 말씀하셨는데 그것은 홍광과는 또 다른 빛이겠습니다. 의학에 재능을 타고 난 경우에는 그렇게 보인다는 말씀이시지요?”
우창이 거듭 확인하고자 낮에 소연에게 말한 것을 떠올리면서 물었다.
“그렇다네. 그러한 것을 바라볼 줄 아는 환자는 거의 없지. 다만 느낌으로 온화한 마음을 전해 받게 되어서 자기도 모르게 신뢰하고 의지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네. 생각해 보게. 의원을 만나게 되면 자기도 모르게 모든 것을 의지하고 전적으로 그 가르침대로 따르려는 마음이 생기지 않느냔 말이네.”
포충의 말을 듣고서 우창도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과연 그 말이 틀림없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몸이 아픈 사람이나 마음이 성치 못한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것을 치유(治癒)해 줄 사람을 만났을 적에 저절로 마음에 도움을 받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게 될 것이 당연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무슨 말씀인지 잘 알아듣겠습니다. 예전에 어느 여인을 만났던 적이 있었는데 그 느낌은 오묘해서 흡사 연한 자줏빛으로 느껴졌는데 이것은 어떤 이유로 느끼게 된 것인지 궁금합니다.”
우창은 문득 상인화(尙印和)의 표정이 떠올라서 아련한 마음이 들면서 명이 짧았던 것이 안타까워서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러자 포충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러한 빛을 보게 되면 애잔한 느낌이 들어서 저절로 지켜주고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되지. 그것은 이미 그 육신에 깊은 병이 들어서 치료가 불가한 것을 암시한다네. 물론 불보살의 기호가 있다면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그만큼 쉽지 않은 상황임을 의미한다네. 그런데 그건 왜 묻나? 그렇게 느껴졌던 사람이 있단 말인가? 실로 그러한 것을 느꼈다면 이승에 남은 수명은 아마도 3년을 더하기 어려웠을 것이네.”
우창은 내심 포충의 예리한 판단이 놀라웠다.
“맞습니다. 어르신의 말씀대로 그분은 장수하지 못하고 귀천(歸天)하셨습니다. 문득 그 모습이 떠올라서 여쭤봤는데 그렇다면 그때에 우창이 느꼈던 빛이 실제로 그랬다는 의미였던가 봅니다. 참 신기합니다.”
모두는 포충의 이야기에 매료되었다. 들으면 들을수록 그 깊이를 알 수가 없는 이야기가 끝없이 전개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