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6] 제34장. 인연처(因緣處)/ 12.객잔(客棧)의 노인
작성일
2022-08-25 0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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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6] 제34장. 인연처(因緣處)
12. 객잔(客棧)의 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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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우총(蚩尤塚)을 보러 갔던 길은 멀게 느껴졌는데 다시 동평(東平)으로 돌아오는 길은 오히려 가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얼른 돌아왔다. 서로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마차에서 흔들리다 보니 어느 사이에 드넓은 동평호(東平湖)가 나타났다. 주변을 둘러보니 몇몇 사람들이 소풍객으로 보이는 복장으로 서성이고 있는 한가로운 풍경이 여유로워 보였다. 염재가 마차를 길기에 세우면서 채찍을 내려놓고는 우창을 돌아보며 말했다.
“스승님 시간이 오시(午時)입니다. 서두를 일도 없으니 이쯤에서 풍경도 좋은 호반을 산책하며 쉬었다가 점심을 먹어도 좋겠습니다. 염재가 주변을 둘러보고 요기할 만한 곳으로 모셔도 되겠습니까?”
“아, 맘대로 하시게. 시간이 벌써 한낮이로구나. 모두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군.”
우창이 그렇게 하라고 말하자,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멋스럽게 지어놓은 정자가 있는 객잔 앞에 마차를 세우고 일행을 내리도록 한 다음에는 지친 말에게도 풀을 뜯도록 묶었던 재갈도 풀어 주고는 객잔으로 올라갔다. 내부에서는 요리를 먹거나 술을 마시는 사람들이 몇몇 보였을 뿐 조용한 분위기였다. 그 한쪽의 창가에서는 두 노인이 한가롭게 바둑을 두고 있는 풍경이 여유로웠다. 객청을 둘러본 염재가 점원을 불러서 전망이 좋은 창가에 자리를 마련해 달라고 하자 점원이 서둘러서 새로운 탁자를 깨끗하게 정리했다.
잠시의 시간이 흐른 후에 염재의 안내에 따라서 시원스러운 바람이 통하는 자리에 앉자 드넓은 호수의 전망을 보며 기분도 상쾌해진 일행은 비로소 배가 고프다는 것을 느꼈다. 이번에도 염재가 주인을 불러서 말했다.
“주인장, 가격은 고하간(高下間)에 이 식당에서 자랑할 만한 것으로 마련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문하는 것을 들은 주인은 저절로 웃음을 지으며 시원스럽게 대답하고는 얼른 음식을 만들러 갔다. 염재가 하는 대로 맡긴 진명은 잠시 의자에 기대서 며칠 사이에 있었던 변화를 되새기면서 생각에 잠겼다. 항상 무엇엔가 쫓기는 듯이 숨어다니면서 귀신과 싸우면서 영원히 헤어지지 못할 것 같았던 나날들에서 이렇게 도반이며 스승과 동행하면서 귀한 가르침을 듣는다는 것이 꿈을 꾸고 있는 것만 같기도 했다. 그 표정을 보면서 항상 언니처럼 여기며 진명의 옆에 붙어있던 소연이 침묵을 깨고 말했다.
“언니, 뭘 그렇게 깊이 생각하세요? 많이 힘드시죠?”
“아, 아니야. 힘들긴 오히려 스승님들과 동행하면서 공부하느라고 힘들지. 소연은 힘들지 않아?”
“저도요. 영기(靈氣)의 감옥에서 빼내어 주신 스승님들 덕분에 심신이 상쾌해서 조금도 힘들지 않아요. 오히려 이러한 평화로움이 깨어질까 봐서 두렵기조차 한걸요. 호호~!”
“그렇다면 다행이구나. 아직은 소연이가 어리니까 스승님께서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될 거야.”
“맞아요. 뭔가 맡은 일을 해야 하는데 그냥 따라다니면서 밥만 축내나 싶어서 마음이 편치는 않아요. 언니는 괜찮아요?”
“마음이 편치 않을 이유가 없잖아? 그리고 소연 부친께서 소연을 함께 보내면서 경비도 넉넉하게 마련해 주셨으니까 전혀 신경 쓰지 않아도 돼. 호호~!”
“언니가 계셔서 좋아요. 엄마처럼 챙겨주시잖아요. 앞으로도 무엇이든 의논을 할 일이 있으면 여쭐게요. 잘 살펴주세요.”
“여부가 있어? 아무런 걱정도 하지 말고 스승님들의 가르침대로만 하면 앞으로 발전할 테니까 잘 해봐.”
“알았어요. 그럴게요.”
이렇게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국수와 구운 돼지고기가 나왔다. 모두 시장하던 차에 든든하게 먹고 우창과 지광은 반주로 마련해 준 고량주도 한 잔 곁들여서 갈증을 풀었다. 아까부터 바둑을 두던 노인이 이들의 모습에 관심을 보이더니 어느 정도 음식을 먹었다고 생각되었는지 식탁으로 다가왔다.
“실례하겠소이다~! 낯설어 보이는데 봐하니 동평호에 여행을 온 것이오?”
우창은 노인이 이렇게 묻는데 딱히 경계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일행을 대표해서 답했다.
“노인장께 안부 여쭙습니다. 우리는 지나는 나그네들입니다. 주변의 풍광이 좋아서 잠시 쉬어가려고 들어왔습니다.”
이렇게 인사치레하고 공수하여 예를 표하자 대략 봐서 70은 넘어 보이는 노인이 권하지도 않았는데 빈 의자를 끌어다가 털썩 앉는다. 우창은 가끔은 무례한 불청객도 만나기 마련이라고 생각하고 어떻게 하는지 보자는 생각으로 술을 한 잔 권했다.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괜찮으시면 술 한 잔 올리겠습니다.”
“아, 좋지~! 젊은 사람이 예의가 밝군. 그럼 어디 가득 따라보시구려~!”
노인이 술을 한잔 들이키자 지광이 어느 사이에 옆에 앉아서 안주를 권하면서 말했다.
“찾아뵙고 인사를 드려야 옳은데 이렇게 찾아주셔서 영광입니다. 어떤 가르침을 주시려고 왕림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지광이 반기면서 말하자 노인은 의외라는 듯이 지광을 보고 말했다.
“내가 뭘 했다고? 그냥 목이 말라서 술이나 한잔 얻어먹으려던 것뿐인데 뭘 그리 생색을 내시나? 오늘 홍고량은 유난히 향이 좋군. 헐헐헐~!”
노인은 치아가 다 빠져서 웃음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왔다. 그러한 모습에서 진명은 문득 옛날 고향의 할아버지가 생각났다. 모진 팔자를 어기지 못하고 절간으로 떠도느라고 잊고 있었던 열하(熱河)의 고향 집이 문득 떠올라서 눈물이 한 방울 핑그르르 돌았다.
“할아버지께서 목이 마르셨군요. 여기 한 잔 더 올릴게요. 뵙게 되어서 반가워요.”
진명이 갑자기 나서자 우창도 의아했으나 가만히 있었다. 어차피 바쁜 일도 없고 갑자기 노인의 등장으로 인해서 혹시 재미있는 일이 생기지나 않을까 싶은 생각도 슬며시 들어서이다. 여행길이 즐거운 것은 항상 예측하지 못한 일들이 일어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여태도 그렇게 지나왔는데 오늘은 또 무슨 일이 있으려나 싶은 마음에 잠시 진명과 노인을 지켜보기로 했다.
“어허~! 낭자가 따라주는 술맛이 최고지~! 좋고 말고~! 헐헐헐~!”
이렇게 말하면서 진명이 따라주는 술을 벌컥벌컥 세잔이나 마셨다. 나이에 비해서 건강해 보이는 노인이었다. 그 모습을 기다리고 있던 지광이 말했다.
“귀하신 가르침을 주시고자 하는데 대접이 소홀합니다. 조금만 기다리시면 좀 드실 만한 것으로 가져오도록 하겠습니다.”
지광이 이렇게 말하자, 오히려 일행들이 의아했다. 노인이 다소 무례해 보임에도 불구하고 깎듯이 존대하는 지광의 태도가 신기했고, 그렇지 않아도 치우의 능에서 지광의 능력을 본 다른 일행도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었다. 물론 그중에서도 우창과 염재가 가장 궁금했다.
“헐헐헐~! 늙은이를 알아봐 주는 사람이 있으니 헛나이를 먹은 것만은 아니로군. 뭐든 내와 봐~!”
이제 대놓고 요리를 가져오라고 하자, 염재가 상황을 재빨리 파악하고는 주인에게 먹을 만한 것으로 푸짐하게 시켰다. 이어서 구수한 향과 함께 구운 오리가 큰 접시에 통째로 올려져서 나왔다. 이번에는 노인과 같이 바둑을 두던 영감도 오라고 손짓해서 합석하고는 눈치를 볼 것도 없이 손이 가는 대로 열심히 먹더니 배가 부른지 비로소 젓가락을 내려놓고는 지광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모처럼 포식했구려. 고맙소~! 헐헐헐~!”
“대접이 변변치 않았음에도 잘 받아주셔서 고마울 따름입니다. 술을 따라 올리겠습니다.”
지광이 술병을 들자 노인도 술잔을 들어서 가득 받아서 들이키고는 지광에게 말했다.
“그대는 노부가 왜 아는 체를 했는지 알겠는가?”
“가르쳐 주십시오. 아둔하여 모르고 있어서 답답할 따름입니다.”
그러자 노인은 말없이 소연을 가리켰다. 모두 노인의 손끝을 따라서 소연을 바라보자 소연이 자신도 모르게 움찔했다. 그것을 본 노인이 이어서 말했다.
“이렇게 천하에 둘도 없는 보물을 데리고 천하를 유람하고 있으니 그것을 알아본 그대의 안목이 감탄스러워서였다네. 이제 알겠는가? 헐헐헐~!”
우창은 지금 노인이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가늠할 수가 없었다. 소연을 봤지만 무슨 의미인지 이해가 되지 않아서 지광과 노인의 표정만 번갈아 가며 바라볼 따름이었다. 그러자 지광이 노인에게 공손히 말했다.
“가르쳐 주십시오. 우둔하여 어르신의 말씀이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인연이 닿아서 동행하게 되었을 따름입니다. 그런데 천하에 둘도 없는 보물이라고 하시니 듣기에는 좋으나 의미를 알았으면 더 좋겠습니다.”
노인도 처음에는 지광이 겸손하게 말하는가 싶었다가 정색을 하자 참으로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는 혀를 차면서 말했다.
“쯧쯧~ 인연이란 참으로 좋은 것이로군. 보물을 몰라봐도 복이 있으면 저절로 얻으니 말이네. 이 아이는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약왕보살(藥王菩薩)이고, 의가(醫家)에서 말하는 화타(華佗)의 환생(還生)이라네. 이런 보물을 얻고서도 그 진가를 모르니 참 기가 막힐 일이로군. 헐헐헐~!”
노인은 그제야 눈을 커다랗게 뜨는 지광을 보면서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참으로 재미있다는 듯이 웃다가 문 앞을 바라보고는 손짓했다. 마침 문 앞에는 다리를 절름거리며 걸식하던 남자가 깨어진 바가지를 들고 서 있다가 노인이 손짓하자 먹다 남긴 것이라도 얻어먹으려나 싶어서 절룩거리면서 바삐 다가왔다. 그러자 노인이 의자에 앉으라고 하자 이번에는 걸인이 의아했다. 그냥 고기든 밥이든 한 덩어리 던져주면 그것으로 만족일 텐데 난데없이 앉으라니까 이것은 또 무슨 뜻인가 싶어서였다.
“잠시 앉아보게. 늙은이 말을 들어서 해로울 일이야 있으려고~!”
노인이 이렇게 말하자 의아하던 걸인은 비로소 자리에 앉으면서 말했다.
“해로운 일이라니요. 헤헤~ 이 몰골에 더 해로울 일이 또 있겠습니까요? 다만 의아한 생각이 들었을 따름입죠. 헤헤~!”
“자, 이것을 먹게.”
노인이 자기 앞에 놓인 요리접시를 앞으로 밀어주자 배가 얼마나 고팠는지 고맙다는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하면서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이 씹을 사이도 없이 단숨에 삼켰다. 일행은 잠시 먹던 것을 멈추고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 호기심도 발동했다. 노인은 이들의 관심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소연에게 말했다.
“아가야, 네가 보기에 이 아저씨는 어디가 불편해 보이느냐?”
소연은 노인의 말을 듣자, 잠시 주저하더니 눈을 지그시 감고는 남자의 무릎과 위아래를 훑었다. 모두 숨을 죽이고 그 장면을 지켜보고 있을 따름이었다. 잠시 후에 눈을 뜬 소연이 말했다.
“할아버지의 말씀을 듣고서 살펴보니까 마차에 다리를 치었네요. 그런데 제대로 치료받지 못했어요. 행색이 이와 같아서였을 거에요.”
소연의 말에 정작 놀란 사람은 우창과 지광이었다. 노인은 당연하다는 듯이 다시 물었다.
“얼마나 걸리겠느냐?”
“뼈가 조금 상하긴 했으나 소녀가 돌봐 드리면 반시진(半時辰:60분)이면 회복이 될 수 있겠어요. 그래도 오래되지 않아서 다행이에요. 아직 100일이 안 되셨지요?”
소연의 말에 놀란 사람은 우창뿐만이 아니었다. 걸인도 놀라서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그리고는 이게 무슨 일인가 싶을 정도로 놀라서 입에 들어가던 음식이 다시 튀어나올 지경이었다. 말을 잊지 못하다가 정신을 차리고는 노인에게 경위를 설명했다.
“딱 3개월 전이었습니다. 길가에서 앉아 졸고 있는데 미친 말이 날뛰는 바람에 지나가는 마차에 다리를 치었습니다. 마차를 몰던 사람이 소인의 행색을 보더니 그냥 무시하고 가버렸습니다. 그래서 치료도 받지 못하고 이렇게 불구가 되어가는구나 싶어 서글플 따름이지요.”
이렇게 말하고는 다시 소연을 보면서 말했다.
“아니, 네가 내 다리를 반시진에 고쳐줄 수가 있단 말이냐? 그렇게만 된다면 내가 어떻게든 은혜를 갚겠지만 그게 가능한 일이겠느냐?”
참으로 그러한 일이 일어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득 담고서 하는 남자의 말에 소연이 노인을 바라봤다. 노인이 그 뜻을 알고는 주인에게 평상을 부탁하고는 남자에게 가서 누우라고 하고는 소연을 보고 눈짓했다. 그러자 소연이 남자에게 말했다.
“아저씨는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여기에 편히 누워서 한숨 주무세요. 잠을 깨고 나면 다리가 나아 있을 테니까요.”
남자는 얼떨떨한 마음이었지만 나쁜 일은 아닌 것으로 생각되어서 시키는 대로 평상에 눕자마자 이내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소연이 그 하얗고 작은 손으로 남자의 무릎에 올려놓고는 천천히 문질렀다. 모두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자, 우리는 나머지 일은 저 아기에게 맡기면 되니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네. 그나저나 저런 보물을 어디에서 구했는지 말이나 들어볼까?”
노인이 이렇게 말하면서 지광을 바라보자 비로소 정신이 돌아온 지광이 노인에게 그간의 내막을 설명하고는 다시 물었다.
“우연히 지나다가 신굿을 하게 된 것을 보면서 운명이 기구하겠다는 생각도 했었는데 어르신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고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합니다.”
“그야 누구를 만나느냐에 달렸지. 그대를 따라다닌다면 보석을 흙 속에 묻어두는 꼴이 되고 말테니까. 헐헐헐~!”
지광은 노인의 말에 더욱 충격을 받았다. 자신이 얼마나 우둔한 것인지를 호되게 꾸짖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심으로 무심했던 자신을 탓하면서 다시 물었다.
“가르쳐 주십시오. 소연은 어떤 능력을 타고났기에 그렇게도 어린 나이에 영혼으로 인한 시련을 겪게 된 것입니까?”
“겉으로 보기에는 영혼의 시련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실은 영계와 소통하는 과정이었다고 봐야 할 것이네. 아니, 내가 보기에 그대도 눈이 열렸는데 왜 그것을 보지 못했단 말인가?”
“아직도 멀었습니다. 혜안의 어르신을 뵙지 못했다면 어린아이에게 큰 죄를 지을 뻔했으니 말입니다.”
“그대는 후광(後光)을 보는 눈이 아직 열리지 않았나?”
“후광이 다 무엇입니까? 겨우 지안(地眼)만 조금 얻었을 뿐입니다. 가르쳐 주십시오.”
“그랬군. 땅만 보고 다니니 그렇지 않은가. 가끔은 하늘도 좀 살피면서 살아가야 한단 말이네. 헐헐헐~!”
“아무래도 그런가 봅니다. 그런데 후광이란 무엇입니까? 그에 대한 말은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귀중한 가르침을 부탁드립니다.”
“아니, 절간에 있는 불화(佛畵)에서 보지 않았나?”
“아, 그것은 봤습니다. 다만 실제로 그런 것이 아니라 상징적으로 묘사를 한 것이라고만 여겼을 따름이지요.”
“대부분은 그렇게 생각하지. 그것을 볼 수가 있는 사람에게는 그 오묘하고도 기분이 좋아지는 황금의 찬란한 빛이 은은하게 풍겨 나오는 것을 보게 되면 저절로 마음이 행복해지고 경외(敬畏)하는 마음이 내면에서 샘물처럼 솟아나는 것이라네. 다만 그러한 것까지는 모르는 보통의 사람들 조차도 느낌으로 경건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 보통이기도 하네만.”
“어르신의 말씀을 듣고 생각해 보니 상상은 되지 않으나 과연 실제로 그렇다면 어떤 느낌인지 짐작은 할 수가 있지 싶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인물의 그림을 보면 그 화공(畫工)이 어떤 능력으로 인물을 그렸는지 알 수가 있다네.”
“말씀을 듣고 보니 과연 그럴 만도 하겠습니다. 그것은 어떻게 해서 습득하게 되는 것입니까? 아니, 그렇게 해서 얻을 수가 있는 것이기나 한 것입니까?”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다는 그 표정은 과연 이해되지 않아서인가? 아니면 여기 거느린 제자들로하여금 귀한 가르침을 듣게 하려는 마음으로 짐짓 모른체하는 것인가? 그야 아무래도 좋겠지. 그대가 땅을 보면 빛이 보이지 않나? 그것과 무엇이 다르겠나? 다만 땅은 워낙 빛이 강해서 그대가 볼 수가 있는 반면에 사람의 빛은 매우 미약(微弱)해서 보는 방법을 모르면 그냥 스쳐 지나갈 따름이라네.”
“아하~! 그렇게 되는 것이었습니까? 오늘 새로운 말씀에 눈이 열리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후광에는 어떤 형태가 있습니까? 짐작하건대 모두가 다 똑같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어떻습니까? 땅의 기운을 살펴보게 되면 저마다 다른 빛으로 광채를 내뿜는 것으로 생각해봐서 그렇게 짐작이 됩니다.”
“옳지~! 얼른 말귀를 알아듣는 것을 보니 내 판단이 크게 빗나가지는 않았군. 당연하지. 그래서 그 빛을 통해서 어느 방면에 발휘할 능력인지를 알아보는 것이라네. 저 아기는 연분홍(軟粉紅)의 빛이 발산되고 있어서 의신(醫神)이 강림했다는 것을 알아본 것이니까 말이네.”
이렇게 말한 노인은 목이 컬컬했던지 술잔을 만지작거렸다. 그러자 염재가 얼른 일어나서 다시 술잔을 가득 채웠다. 노인은 단숨에 다 들이키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그대의 후광은 황금빛이 나는 것으로 봐서 지기(地氣)를 감응하는 능력은 얻었다고 생각했으나 여태 후광조차도 모를 줄은 미처 생각지 못했다네. 그러니 나도 아직 가야 할 길이 멀기만 하군. 헐헐헐~!”
이렇게 말을 듣던 지광이 우창을 바라보고는 다시 노인에게 물었다.
“이 사람은 어떤 후광입니까?”
“이 서생(書生)은 옅은 청색(靑色)과 같은 청천(靑天)의 빛이네. 이로 미뤄서 생각해 보면, 아마도 학문을 연구하여 상당한 경지에 도달했다는 것으로 짐작해 보네. 어쩌면 지금 내가 하는 말도 학문적으로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을 것이네. 헐헐헐~!”
이렇게 말한 노인이 다시 크게 웃자. 우창도 깜짝 놀랐다. 내심 그의 말에 대해서 저울질하고 있다가 속내를 들켰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러나 노인은 개의치 않고 염재를 보면서 계속 말을 이었다.
“이 젊은이는 녹청색(綠靑色)의 빛이 감돌고 있는데 아직은 미약한 것으로 봐서 공부하는 과정인 것으로 보이는군. 아마도 완성되면 관청에서 멋진 능력을 발휘하게 될 것이고, 아마도 후광을 볼 수도 있을 것이니까 열심히 정진하라고 권해도 되지 싶네. 스승의 복이 많아서 가장 적은 노력으로 큰 성과를 거두게 될 것으로 봐야 하겠네.”
노인이 이렇게 말하자 비로소 우창이 궁금한 것을 물었다.
“어르신께 여쭙고자 합니다. 그러니까 누구라도 기본적인 후광이 빛이 있는 것입니까? 그런데 수행의 깊이에 따라서 후광의 빛도 달라지는 것으로 이해하면 되겠습니까?”
“옳지~! 내가 그럴 줄 알았지. 아쉽게도 그대는 영안(靈眼)을 얻을 인연은 없겠네. 그것도 그대의 발원(發願)에 의한 것이니 아무도 탓할 마음이 없을 것이네. 안 그런가?”
노인이 우창에게 묻자, 우창은 순간적으로 움찔했다. 이러한 것을 눈으로 직접 본다면 좋겠다는 생각은 들었으나 그것을 얻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황을 마치 손바닥을 본 것처럼 말하는 것이 오히려 놀라울 지경이었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소생이 왜 그런 원을 세웠습니까? 아무래도 어리석은 원이었나 싶기도 합니다. 참으로 모든 것들을 환하게 꿰뚫어 볼 수가 있었으면 좋겠는데 말입니다.”
“그야 그대는 목인(木人)이기 때문이라네. 나뭇가지처럼 사방으로 얽혀진 것을 일목요연하게 연구하는 것은 좋아하지만 금인(金人)처럼 뭉쳐서 내공만 쌓는 것에는 관심이 없는 까닭이지. 헐헐헐~!”
다시 노인의 웃음소리가 울렸다. 그런데 우창이 노인의 말을 듣고 보니 목인과 금인의 이야기는 이미 지광과도 나눴던 이야기였는데 노인에게서 그 말을 듣게 될 줄은 몰랐다. 그리고 이에 대한 현상도 스스로 원을 세워서 그렇게 된 것이라는 말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지만 이해는 되었다. 다만 왜 그러한 원을 세우게 되었는지 알고 싶었다.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왜 그런 원을 세웠던 것입니까?”
“그야 간단하지. 그대의 의식은 밖으로 확장하는 학자의 길을 선택했기 때문이라네. 그래서 입을 열면 장광설(長廣舌)을 펼치게 되는 것이라네. 눈으로 보거나 생각한 것을 생생하게 남에게 전해 줄 수가 있는 것은 그러한 인연으로 인해서 주어진 것이라고 하겠지.”
“아니, 그렇다면 영안도 열려서 빛을 보면서 연구하면 더욱 크게 발전할 것이 아닙니까?”
우창의 말에 노인이 다시 큰 소리로 웃었다.
“헐헐헐~! 그게 바로 인연법이라는 것이 아니겠나?”
“어르신의 말씀이 언뜻 이해되지 않습니다. 후학을 위해서 조금만 쉽게 설명해 주셨으면 합니다.”
우창이 이렇게 간청하자 노인이 이번에는 물을 한 잔 마시고는 입맛을 다시고는 말을 이었다.
“인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은 자기(磁氣)와 흡사하다네. 빛을 보는 것은 좋으나 세상의 모든 음양 이치가 모두 그렇듯이 막상 빛을 보게 되면, 이제는 빛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들도 같이 보이는 것이 문제라네. 마치 자철(磁鐵)과 같아서 그 흡입력이 강하면 강할수록 잡철(雜鐵)이 어디에서나 사정없이 엉겨 붙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아, 무슨 말씀이신지 이해가 됩니다.”
“그런가? 마찬가지로 나무는 자성(磁性)이 없어서 주변의 환경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어디든 뻗어가거나 바람에 날려갈 수도 있지. 그래서 바람처럼 자유롭게 자신의 의식을 따라서 천하를 유람하는 것과 같다네.”
노인의 유창한 말에 우창이 감탄하면서 말했다.
“그렇게 깊은 뜻이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과연 욕심으로 그 둘을 이루고자 하게 된다면 참으로 혼란이 크게 발생하겠습니다. 그래서 금석(金石)은 초목(草木)과는 섞일 수가 없는 것이라고 하는 이치가 존재한 것이었네요. 그러니까 내 안에 있는 능력을 남에게 베풀고 내가 없는 것은 그러한 능력이 되는 사람에게 빌리면 되는 것이라고 하면 되겠습니까?”
“당연하고말고. 헐헐헐~!”
비로소 노인은 우창이 이해한 것을 보면서 다시 술을 한잔 마셨다. 바로 그때였다.
“아니, 내게 무슨 일을 한 것인가?”
갑자기 소리치는 말에 처음에는 다들 그 소리에 깜짝 놀랐다. 소연이 혹시 무슨 실수라도 했나 싶어서였다. 그러나 잠시 그 광경을 보니 바로 이해되었다. 그 말은 걸인이 일어나면서 외친 말이었다. 그는 어느 사이에 절룩이던 다리를 곧게 펴고서 가볍게 걸으면서 스스로 놀라서 한 말이었다. 그러고 보니까 모두 이야기에 취해서 시간이 흘러가는 줄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