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4] 제21장. 천하유람/ 4.숨어있는 어둠의 문(門)

작성일
2020-04-05 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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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24] 제21장. 천하유람(天下遊覽)


 

4. 숨어있는 어둠의 문(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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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락의 이야기에 취해서 까맣게 잊고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식당에서 봤던 장면이 이제야 떠오르는 것도 신기했다. 어느 사이에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 친밀감이 생겼는지 낮에 느꼈던 거리감과 경외심(敬畏心)도 많이 사라져서 이젠 어렵다는 생각보다는 궁금한 마음이 앞섰다. 자세를 고쳐앉아서 궁금한 것을 물었다.

“스승님께 여쭙고 싶은 것이 너무 많습니다. 어디부터 여쭤봐야 할지 모를 지경입니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두서없이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그러게. 궁금한 것도 많을 것이네.”

“오늘 보여주신 점은 간지점(干支占)이라고 하셨지요?”

“그렇다네.”

“이유는 간지로 점을 보기 때문이지요?”

“그렇다네.”

“원리를 생각해 보면, 사주명리학으로 보는 것이라고 해도 되겠지요?”

“그렇다네.”

“그 방법은 스승님께서 스스로 깨달으신 것입니까?”

“자의 반 타의 반이라네.”

“그렇다면 어느 고인께서 가르침을 주셨다는 말씀이신지요?”

“물론이네.”

“혹 어느 책에 그런 가르침이 있었는지 여쭤봐도 될런지요?”

“『옥정오결(玉井奧訣)』이라네.”

“이름으로 봐서 비결인가 봅니다.”

“그렇다네. 안동(安東)에서 살았던 두겸(杜謙)이라는 고인이 남긴 비결서(秘訣書)라네. 다만 언제 살았는지는 정확하지 않으므로 실제로 안동에서 살았었는지도 모를 일이지.”

“그 안에는 어떤 내용이 있습니까?”

“허진둔법(虛辰遁法), 유삼술지묘취(有三術之妙趣)라는 구절이 있다네.”

“참 어렵습니다. 무슨 뜻인지요?”

“그대는 기문둔갑(奇門遁甲)은 알고 있나?”

“아주 약간입니다. 그러고 보니 둔법은 둔갑법을 의미하는가 봅니다. 그렇습니까?”

“맞아. 빠진 글자는 둔갑법처럼 숨어있다는 것이라네. 갑(甲)이 어디에 숨어있는지를 알아내는 것이 기문둔갑의 기초이지 않은가.”

“맞습니다. 왜 없는 것을 만들어서 그것을 또 찾는 수고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이제보니 그것도 우창의 식견이 좁은 탓이었네요.”

“그러니까 이것이 아침에 말했던 명암(明暗)의 이치라네. 명의 이치가 있으면 암의 이치도 있고, 실진(實辰)이 있으면 허진도 있기 마련이 아니겠는가? 남자가 있으면 필연적으로 여자가 존재하는 것과 같은 이치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렇겠습니다. 다만 허진을 볼 줄 몰라서 장님 노릇을 했다는 것으로 이해를 해 봅니다. 그렇다면 그 허진은 사주의 끝에 적으셨던 정묘(丁卯)가 되는 것입니까?”

“이해력이 많은 것을 보니 참 총명하군.”

“정묘라는 허진은 어디에서 온 것입니까?”

“시각(時刻)에서 온 것이지.”

“예? 시각이라면 8각(刻)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그렇다네.”

“사주는 사주로 끝나는 것인 줄만 알았습니다.”

“그것이 명학(明學)이라네, 그것만으로도 훌륭하지.”

“암학(暗學)이 그렇게 가까이 있었다는 것이 신기하고 놀랍습니다.”

“원래 명은 암을 부르고 암은 다시 명을 부르는 이치라네. 음양을 배웠으니 그게 무슨 말인지는 알아듣지 싶은데?”

“이해는 됩니다. 그리고 뒤에 나오는 구절의 유삼술지묘취(有三術之妙趣)는 또 무슨 뜻인지요?”

“삼술(三術)은 기문(奇門), 육임(六壬), 태을(太乙)을 말하는 것이라네. 줄여서 기을임(奇乙壬)이라고도 하지.”

“제자도 들어 본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모든 역학(易學)과 명학(命學)을 통칭하는 말이기도 하지. 삼술이라고 한 것은 간지술(干支術)을 포함해서 사술(四術)이라고 해야 하겠지만 고래로 자평명리학(子平命理學)은 술법(術法)으로 통용되는 방법보다는 학리(學理)로 접근하고 사용하다가 보니까 여기에도 술법이 있다는 것은 대부분 모른다네.”

“그야 제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눈먼 제자가 오늘 개안(開眼)을 합니다.”

“그러니까 고인이 옥정오결에서 귀띔해 주신 것을 바탕으로 궁리하셔서 그 허진(虛辰)을 찾아내셨다는 말씀이지요? 정말 대단하십니다. 영감을 얻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을 골몰하셨을지 상상도 되지 않습니다.”

“낮에 만난 왕참정에게 풀이를 해 주면서 만약에 허진(虛辰)이 없었다면 그냥 조심하라고만 했을 것이네. 그런데 허진이 조짐을 드러내는 것을 보고서야 비로소 사태가 심각하게 돌아간다는 것을 직감적(直感的)으로 알 수가 있었지. 이것이야말로 어둠에서 길을 찾는 것이랄 밖에.”

“과연~! 놀랍습니다. 감탄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그리고 간지학을 공부한 결실을 오늘에서야 보게 되는가 싶은 생각에 벌써 가슴이 설렙니다. 그것은 어떻게 드러나는 것인지요? 이렇게 여쭙는 것이 무례하다면 용서를 구합니다. 그러나 여쭙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잘 물었네. 그 이치는 이미 그대에게는 식은 죽을 먹는 것만큼이나 쉬운 일이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네.”

“귀를 활짝 열고 가슴에 새기겠습니다.”

“태세(太歲)의 간지는 무엇인가?”

“연주(年柱)입니다.”

“월건(月建)의 간지는 무엇인가?”

“월주(月柱)입니다.”

“일진(日辰)의 간지는 무엇인가?”

“일주(日柱)입니다.”

“시진(時辰)의 간지는 무엇인가?”

“시주(時柱)입니다.”

“각진(刻辰)의 간지는 들어봤나?”

“옛? 그것은 금시초문(今始初聞)입니다. 한 시진(時辰)은 팔각(八刻)이지 않습니까? 지금 말씀하시는 각은 그것을 의미하는 것인지요?”

“그렇다네.”

“그런데 각(刻:1각은 15분)에도 간지가 있습니까?”

“없지.”

“그런데.....?”

“없어서 만들었지.”

“예? 그게.... 가능합니까?”

“왜 안 되겠는가. 만들면 된다네. 무엇이든 말이지. 그렇게 해서 진화되어 온 것이 문명(文明)이라네.”

“놀랍습니다. 팔각(八刻)은 천간(天干)으로 맞춰도 둘이 남고, 지지(地支)로 맞춰도 넷이 남으니 해결을 할 방법이 없어 보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대입한단 말입니까? 마치 뽕나무를 감나무에 접붙이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묘취(妙趣)라잖은가. ‘오묘(奧妙)한 재미’란 그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하~!”

“정말 놀랍습니다. 연결고리가 전혀 보이지 않는데 그 사이에서 답을 찾아내어 활용하시는 것을 보니 놀란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따름입니다.”

“그렇게 찾아가는 과정에서는 약간의 영감(靈感)도 협조를 하지 않을까? 세상을 유지하는데는 눈으로 보이지 않지만 항상 인류를 위해서 애쓰고 있는 선신(善神)의 가호(加護)가 있음을 생각하게 되는 부분이기도 하다만.”

“그렇습니까? 모든 것이 이성적(理性的)인 판단과 추론에 의해서 궁리하는 것 외에도 또 다른 무엇이 있다는 뜻입니까? 그것도 암흑(暗黑)의 세계에서 활동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될까요?”

“물론이네.”

“그래서 궁리하다가 막히면 기도를 하는 것인가요? 제갈량도 상황이 어려워지자 온갖 지략을 동원해도 답이 보이지 않음을 깨닫고는 칠성단을 모아서 기도했다는 이야기도 알고 있습니다.”

“맞아.”

“스승님도 그 세계를 인정하시는 것도 놀랍습니다. 차가운 머리로 판단하고 논리적으로 접근하시면서도 또 다른 세상에서 주어지는 신호에도 호응하는 것에 대해서 생각되는 바가 큽니다. 보이고 들리고 느끼는 것이 전부인 줄로만 생각하고 살았던 것은 우물안의 개구리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보통은 오감(五感)에 의지해서 살아가는 것이 맞지. 다만 오감이 미치지 못하는 한계에 부딪히게 되면 비로소 제육감(第六感)이 필요하게 되는 것이라네. 학자도 마찬가지로 처음엔 오감에 의해서 공부하다가 오감이 미치지 못하는 곳으로 접근하게 되면 학자를 벗어나서 수행자(修行者)의 길로 옮아가게 되는 것이니까. 우주에서 날아오는 정보를 거부하지 않는다면 수행에 많은 도움이 될 걸세.”

“한편 생각해 보면 정신력이 나약한 사람이 하는 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존감(自尊感)이 우뚝한 사람은 자신 외에는 아무런 도움도 필요치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은 어떻게 수정해야 할까요?”

“쉬운 일은 아니지. 그러한 것조차도 받아들인다면 비로소 자연과 하나가 되는 것이라네. 부처가 오도(悟道)를 할 적에 어떻게 했는지 알고 있나?”

“예? 부처는 6년의 고행 끝에 깨달음을 얻었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그가 깨닫는 순간은 어느날 새벽녘에 별이 반짝이는 것을 보고서 깨달았다고 하네. 견명성오도(見明星悟道)는 그래서 나온 말이지. 결국 석가모니도 별에서 영감을 얻어 자신의 수행을 마칠 수가 있었던 것이네.”

“오~ 놀랍습니다. 그것은 제자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부처의 깨달음에도 어딘가에서 주어진 영감의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면 수없이 많은 학자야 더 말을 할 나위도 없겠습니다.”

“서양 사람들이 섬기는 종교는 천주교(天主敎)라고 하는데, 천주교를 세운 이가 야소(耶蘇)라는 사람이라네. 그래서 천주교를 야소교(耶蘇敎)라고도 하는데, 그도 벽에 부딪칠 때마다 하늘에 기도를 해서 계시(啓示)를 얻었다고 하더군. 그래서 하는 말이 ‘항상 하늘에 기도하라’는 말이네. 이또한 깨달음의 끝에는 선신(善神)의 수호(守護)가 함께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밝은 영역에서의 공부만 생각하다가 어두운 부분의 이치를 배우고 보니 과연 학문은 학문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학문의 반대편에는 영감이나 선신의 수호가 있었다는 것을 알겠습니다. 그래야만 음양의 이치에 부합이 된다는 것으로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참으로 오묘합니다. 묘취(妙趣)가 맞습니다. 하하~!”

“문제는 공부를 하다가 벽을 만나서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데 애초에 처음부터 도움만 요청하는 사람도 있어서 참으로 안타깝기도 하지.”

“그런 사람도 있습니까?”

“좀전에 말하지 않았는가. 불립문자(不立文字)라고.”

“그야 사교입선(捨敎入禪)의 이치와 연계(連繫)되어서 이해하는 것으로 알아들었습니다만.....”

“그렇지. 그게 정상이지. 처음에는 교학(敎學)을 배우고 그 끝에서 다시 정신세계로 들어가는 입선(入禪)의 경지로 흐르는 것이 자연스러운데. 사람들의 교활한 잔꾀가 발동을 하면 이나저나 버릴 것을 뭐하러 배우느라고 고생하느냐는 생각이 미치게 되지.”

“아, 그럴 수도 있습니까?”

“사람은 많고 그만큼 생각도 다양하니까.”

“놀랍습니다. 그럴 수도 있군요.”

“흔히들 말하지. 혜능대사가 학교 다녀서 도를 깨달았느냐고.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공부하기 싫은 사람이라서 영원히 답에 도달할 수가 없다네. 흡사 모래를 쪄서 밥을 얻는 것과 같다고 하겠지.”

“아예 인연이 안 닿는 것입니까?”

“당연하지 않은가? 밥을 얻으려면 농사부터 지어야 하고, 아니면 무슨 일을 해서라도 다른 사람이 수고롭게 지은 농사로 얻은 쌀을 사야 하는데 밥만 얻겠다고 달려드니 그것이야말로 자연의 이치에서 크게 벗어나는 일이 아니겠는가?”

“듣고 보니 과연 그런 사람도 있을 법합니다. 그리고 더불어서 우창의 공부는 그나마 쌀농사를 지은 것과 같아서 다행스럽기도 합니다. 이렇게 되도록 이끌어 주셨던 스승님들께 새삼 고개가 숙여집니다.”

“어허! 그럴 것 없대두 또 그 이야기군. 옛날의 스승은 이미 없는 것이라잖았나. 그냥 오늘의 자신만 생각하면 되는 것이라네. 아마도 오랜 습관으로 인해서 얼른 벗어나지 못할 것같긴 하네만 생각은 최대한 단순하게 하는 것이 학문의 상달(上達)에 지름길이라네.”

“앗, 맞습니다. 마음 속에 깊이 박혀있었던 모양입니다. 순간순간 스승님들의 가르침이 떠오르고, 고마운 마음을 갖지 않으면 무례한 자신이 될 것 같은 것도 장애물이 된다는 것을 오늘에서야 깨달았습니다.”

“공부는 열정으로 하고 뒤는 냉정히 끊게. 그것만으로도 많은 기회를 얻을 수가 있다네. 왜냐하면 이미 지난 스승은 내게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는 까닭이라네. 그런데 스승이라고 하는 굴레를 씌워서 평생의 종으로 삼고자 하는 이도 있다는 것을 알면 최대한 빨리 벗어나는 것이 현명할 밖에.”

“과연 명쾌한 가르침에 십년 묵은 체증이 다 내려가는 것같습니다. 거리낌없는 가르침으로 거듭 태어나고 있습니다.”

“그래, 많이 좋아지고 있군. 그 말 뒤 끝에 ‘고맙습니다.’가 붙어나올까봐 조마조마했다네. 하하~!”

“스승의 은혜를 갚기 위해서는 평생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야 한다는 말은 왜 나왔을까요?”

“아마도 스승들이 만들었겠지. 자신들의 노후를 안심하기 위해서는 그 방법 외에는 답이 없었을테니까. 부모를 자식이 봉양하듯이 하라고 해서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는 족쇄를 만들어 뒀잖은가.”

“아, 군사부일체 말이군요. 임금과 부모와 스승은 같은 것이므로 부모 섬기듯이 하라는 말이네요. 이전에는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까 무척 답답하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요?”

“그 말의 속내를 들여다 봤기 때문이지. 부모와 임금이 어찌 같을 수가 있으며 스승과 부모의 대입도 가당키나 한 말인가? 생육(生育)을 시켜 준 부모와 같다면 그것이야말로 검은 속내가 있다고 봐야지. 하하~!”

“이제서야 명쾌하게 이해가 됩니다. 전해 받았듯이 전해주고 그 이상은 바라지 않으면 그것이야말로 자연이었군요.”

“물론이네. 여름이 폭염으로 만물을 길러주고는 소리없이 가을에게 넘겨주고 떠나는 것을 봐도 모르겠는가?”

“그렇습니다. 자연에서 답을 찾아서 이해하면 되네요. 자연에서 벗어난 것은 버리면 되는 것임을 이제사 제대로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스승님께서는 야소교라고 하셨습니까? 그러한 종교에 대해서는 또 어떻게 알게 되셨는지가 궁금합니다. 서역(西域)의 서쪽으로 가면 코가 큰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말은 들었습니다만, 그들의 종교까지는 듣지 못했습니다. 역시 넓게 보고 듣는 것만 한 것이 없다는 생각이 저절로 드네요.”

“그것도 또한 인연이려니 하면 되네. 실은 예전에 장안(長安)에서 머물 적에 서양인들을 만난 적이 있었는데 그들은 자신을 가리켜서 선교사(宣敎師)라고 하더군. 그러니까 천주교를 전하기 위해서 목숨을 걸로 여행길에 나선 사람들이었던 것이지.”

“선교사라면 자신의 교법을 전해주러 다니는가 봅니다. 매우 적극적이네요.”

“그렇다네. 단순하게 자신들의 교주만 믿으라고 하면 누가 믿겠는가? 그래서 발전된 문물도 함께 가져오기도 한다네. 아까 봤던 것도 그들에게 구입한 것이라네.”

그러면서 주머니에서 예의 그 물건을 꺼내보였다. 뚜껑을 열자, 막대기와 같은 그림이 그려져 있고, 침이 두 개 있었다.

“첨 보는 물건입니다. 이것은 뭐라고 하는 것입니까?”

“보통 회중시계(懷中時計)라고 한다는군. 시각을 알려주는 기계라네. 실로 다섯 번째의 각주(刻柱)를 찾아내는데 지대한 공을 세운 물건이기도 하지. 아까 팔각(八刻)에서 어떻게 간지를 찾아냈느냐고 했던가? 그것도 이 시계로 인해서 가능했다고 봐야지.”

“아, 그냥 이뤄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마치 풍수지리(風水地理)를 연구하는 사람이 사용하는 나경(羅經)과 같습니다. 크기만 작고, 침이 하나 더 있다는 것 말고는 크게 다르지 않네요. 글자가 좀 다르게 생기긴 했습니다. 24방위의 표시 대신에 서양의 글자가 새겨져 있네요.”

“그대가 호기심을 보이는 것도 무리가 아니지. 간지와 연관된 것이라면 무엇이라도 관심이 갈테니까. 하하~!”

“도대체 이 물건이 어떻게 각주(刻柱)를 보여주는지가 신기해서 눈을 떼지 못하겠습니다. 무엇보다도 그 동안 적천수를 읽으면서 간지에 대한 공부를 해 둔 것이 이렇게 대견해 보이는 것도 처음입니다. 이 회중시계를 사용해서 신비의 세계를 들여다 볼 수가 있다는 것을 알고 나니까 다시 가슴이 뜁니다.”

“좋은 일이네. 그렇지만 흥분일랑 하지 말게. 이성을 마비시킬 수도 있으니까 말이네. 뭐든 지나치면 어떻게 되지?”

“음양의 균형이 무너집니다. 잘 알겠습니다.”

“그대는 풍수공부는 어떻게 했는가?”

“약간의 인연이 있어서 형기풍수(形氣風水)와 이기풍수(理氣風水)에 대해서 맛만 봤습니다만, 또한 깊은 인연은 아닌 듯하여 내려놨습니다.”

“아니 왜? 이기법까지 했으면 제법 들어가 본 셈인데.”

“형기법(形氣法)에서는 겉모습만 보는 것 같아서 아쉬웠고, 그 모습을 읽는 것도 너무 인간적인 관점으로 보는 것이라서 자연의 이치와 많이 멀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속내를 들여다 보려면 이기법(理氣法)을 알아야 할 것 같아서 현공풍수(玄空風水)를 배웠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나경(羅經)을 믿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주는 하늘의 시간이 있어서 그대로 기준을 삼으면 되었지만 풍수는 오롯이 자침(磁針)의 방향에 따라서 길지(吉地)와 흉지(凶地)로 나눠지는데 나경이 저마다 다른 곳을 가리키고 있는 것을 알고 나서는 자칫하다가 큰 사고만 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접었습니다.”

“그런일이 있었군. 실은 예전에 풍수의 대가였던 사람으로 참회학인(懺悔學人)이라고 자신의 이름을 바꿨던 사람도 있었지.”

“아, 예전에 제자도 전해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형기법으로 조성한 분묘가 이기법으로 확인하니 모두 패망(敗亡)하고 절손(絶孫)이 될 자리였다는 것을 알고 그 후손들의 고통스러운 모습에 죄책감이 들었다는 이야기가 맞습니까?”

“그렇다네. 나경의 정확도에 따라서 길흉이 천양지차(天壤之差)로 나눠지니 그것만을 의지한다는 것은 참으로 위험하다고 해야겠지.”

“시계라고 하셨습니까? 각주(刻柱)를 찾는 방법이 무척이나 궁금합니다. 그리고 사주를 해석하는 방법과 점괘를 해석하는 방법에는 많인 차이가 있는 것인지도 궁금합니다. 주역을 그렇게 배우려고 해도 정이 가지 않았는데 이제야 포기했던 반쪽을 찾은 듯합니다.”

“그게 다 인연이라네. 어제 그 시간에 풍화객잔에 첫 발을 들여놓는 순간부터 이전에 예약이 된 인연의 고리가 발동하기 시작했던 것이지.”

“인연은 참으로 중요한가 싶습니다. 풍수가의 나경과 같은 회중시계를 어떻게 알아보셨습니까? 그것도 신기합니다.”

“궁즉통(窮卽通)이 아니겠는가? 필요한 것은 언젠가 눈에 띄기 마련이지. 생각하지 않으면 스쳐지나가도 모르지만,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면 글자 한 자, 말 한 마디에서도 그 연결고리를 찾아내는 것이니까. 그래서 널리 공부하는 자를 못당하는 법이기도 하다네.”

“아마도 구입하려면 비용도 상당히 지불했으리라고 짐작이 됩니다. 황금의 가치보다도 더 클테니 말입니다.”

“황금을 이 시계만큼 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우 만족스럽다네. 다만 고장이 난다면 그것이야말로 큰일이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품속에 넣고는 꼭 필요한 때가 아니면 절대로 꺼내지 않는다네.”

“과연 그렇기도 하겠습니다. 그 시계라는 물건을 솜씨 좋은 장인에게 보여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면 그와 똑같은 시계를 많이 만들어서 간지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비밀스러운 문으로 통하는 길을 활짝 열어 젖힐텐데 말입니다.”

“자신만 사용하면 될 것을 남들까지 걱정하는가?”

“안타깝지 않습니까? 제자도 이렇게 흥분되는데 얼마나 많은 학인들에게 기묘한 재미를 전해 줄 수가 있겠느냐는 생각이 들어서 상상만으로도 너무나 설렙니다. 이것도 병일까요?”

“아무렴. 병도 중병이라네. 하하~!”

“고치도록 하겠습니다. 아마도 고질병이 되어버린 모양인가 싶기도 합니다. 오지랖만 넓어서 제 앞가림도 못하는 주제가 가끔은 우습기도 합니다. 하하~!”

“저마다의 그릇이 그렇게 생긴 것을 어쩌겠는가. 자네는 많은 제자들을 거느려야 할 운명을 타고 났으니 한가롭게 살기는 어렵지 싶군. 여하튼 그날까지 열심히 오행의 이치를 궁구해서 후학으로 하여금 스승을 원망하지 않도록 해 보기 바라네.”

“고맙습니다. 제자의 꿈이 있다면 온 천하의 사람들이 간지의 이치를 알아서 자신의 탐욕을 다스리고 장점을 살려서 행복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주제넘기는 하지만 일부러 생각하지 않아도 자연 그렇게 되니 이것도 전생의 빚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렇겠지. 결과야 어떻든 결과에 맡기게. 그리고 지금은 이 회중시계를 응용해서 각주(刻柱)를 세우는 방법을 배워야 할 때가 아닌가?”

“맞습니다. 고대(苦待)하고 있습니다. 어서 그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우창은 자신도 모르게 입이 말라서 물을 한 모금 들이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