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3] 제21장. 천하유람/ 3.도락 선생의 점술법(占術法)

작성일
2020-03-30 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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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3] 제21장. 천하유람(天下遊覽)


 

3. 도락 선생의 점술법(占術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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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자 위에는 여러 요리가 저마다 자태를 뽐내고 있었으나 우창은 마음대로 먹을 수가 없었다. 자리가 어렵기도 했지만, 마음이 떨려서 음식이 어디로 들어가는지 맛이 어떤지도 느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두 어른이 주변의 담소를 즐기면서 음식을 먹고 있는 사이에도 오행의 이면(裏面)을 어떻게 찾아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골몰했다. 말로만 봐서는 이미 쌓은 공부만으로도 약간만 요령을 얻는다면 손바닥을 뒤집듯이 뭔가를 깨달을 수도 있겠다는 희망이 보이면서 가슴은 더욱 두근거렸다.

모두 맛있는 점심을 해결하고 느긋하게 차를 마시면서 일상의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중년의 남자가 다가와서는 도락에게 아는 체를 했다.

“고 선생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간도 잘 지내셨습니까?”

“여, 왕참정 아니신가. 어떻게? 아, 점심식사 하러 오셨나?”

“실은 아까 들어오실 적에 먼발치서 뵙고는 여쭐 말씀이 있어서 기다렸습니다. 댁으로 찾아뵈어도 되는데 급한 마음에 이렇게 인사를 여쭙습니다.”

“아, 그런가? 나야 뭐 늘 잘 지내지. 근데 급한 일이란게 뭔가?”

“먼저번에는 귀한 가르침을 주셔서 금광에 투자해서 큰 재미를 봤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새로운 광산이 있다는 말을 듣고 다시 확대해서 투자를 해볼까 하고 생각하다가 아무래도 고 선생님께 여쭤봐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초기에 들어가는 비용이 크다 보니까 조심스러워서 말이지요.”

이렇게 말하면서 품에서 은자를 꺼내어서 도락에게 슬쩍 넣어줬다. 말하자면 명쾌한 답을 청한다는 의미로 복채를 미리 지불하는 셈인가 싶었다. 그리고 도락도 사양하지 않고 그냥 가만 내버려 뒀다. 빈 자리에 앉으라고 눈짓을 하고는 곰곰 생각하는 듯했다. 순간 침묵이 흘렀다.

“왕참정의 생각으로는 광산에 투자를 하면 수익은 언제쯤으로 기대하시는고?”

“그야 빠를수록 좋습죠. 늦어도 6개월 이내에는 결과가 나왔으면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동안 모아놓은 돈도 모두 다 들어가고 빈털터리가 될 수밖에 없기때문에 여간 조심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은 관료였던 모양이다. 참정(參政)이면 상당한 지위인데 관리(官吏)가 사업에도 손을 대고 있었던 모양이다. 우창은 그쪽 분야는 모르는 것이 많아서 두 사람의 대화에만 귀를 집중했다.

“백성이나 잘 다스릴 일이지 무슨 욕심을 부리는가?”

“그렇긴 합니다만 이 자리도 언제 날아갈지 모르는 판국인지라 기회가 왔을 적에 안전한 사업을 해놔야 하지 않겠습니까요? 헤헤~!”

“그래서 광산사업이 꼭 하고 싶으셨나?”

“예, 그렇습니다요. 어떻게 될지 앞을 알 수가 없어서 망설이고 있던 차에 선생님을 뵙게 되어서 이것도 하늘의 뜻인가 싶어서 기다렸잖습니까. 헤헤~!”

잠시 생각하던 도락은 품에서 필묵을 꺼냈다. 그것을 본 남자는 점원에게 부탁해서 글씨를 쓸 종이를 얻어왔다. 도락은 글자를 적었다. 일동의 눈길은 도락의 붓끝을 따라서 동행했다.

甲辛辛庚
午未巳午


글자를 본 순간 우창은 무척이나 반가웠다. 사주를 적어놓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리나케 풀이에 들어갔다.

‘음, 경오(庚午), 신사(辛巳), 신미(辛未), 갑오(甲午)이니 사월신금(巳月辛金)이군, 온통 관살(官殺)이 태왕(太旺)하니 도움을 받을 인성(印星)이 절실한데 천만다행으로 일지(日支)에서 미토(未土)를 얻었으니 그나마 밥은 있을 팔자라고 봐야 하겠군... 일약용인격(日弱用印格)으로 토(土)가 용신이고, 금(金)은 희신이 되는 것으로 봐야 할 구조로 보이는군.

아마도 왕참정의 사주인가보다 했다. 그리고 이러한 사주라면 사업을 하기 보다는 관리의 역할을 하는 것이 더 낫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도락의 입만 바라보면서 무슨 말을 하는지 집중했다. 그런데 잠시 생각하던 도락은 주머니를 뒤지더니 동글납작한 물건을 꺼내어 뚜껑을 열어서 들여다본다. 우창은 처음 보는 물건이었는데 이것은 오인걸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엇, 그건 또 뭔가? 어디에 쓰는 물건이지?”

“아 이것 말인가? 회표(懷表)라네.”

“회표라니? 그게 뭐지?”

“말하자면 사연이 길어지니 차차로 설명해 줌세.”

말을 마친 도락은 손가락으로 육갑을 짚고서는 다시 예의 사주 왼쪽에다가 간지를 추가했다. 무엇인가 살펴보니...





정묘(丁卯)였다. 그러니까 사주의 여덟 글자에다가 추가로 또 하나의 간지를 적어놓은 것이었다.

丁 甲辛辛庚

卯 午未巳午

유창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묻고 싶어서 안달이 났지만 차차로 설명을 듣기로 하고 해석에 대해서 귀를 기울였다. 잠시 생각을 하던 도락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말아야겠군.”

“예? 광산사업을 하지 말라는 뜻인가요?”

“큰일 나겠어. 광산의 기역도 생각지 말게나.”

“왜 그렇습니까요?”

“그야 난들 아는가, 조짐이 그러하니 말해 줄 밖에.”

“왜 그런 조짐이 나왔을지 속 시원하게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점괘가 어떻게 나왔습니까?”

“아마도 그 광산에 눈독을 들이는 사람이 왕참정만이 아닌 모양이군. 그리고 그 사람도 아직 때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참정이 달려들면 아마도 그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고 나설 것이네. 그런데 그 사람의 뒤에는 상당한 실세가 있어서 자칫하면 삭탈관직(削奪官職)은 물론이고, 가족까지도 이 자리에서 온전하지 못할 암시로 해석이 되네. 이것은 소탐대실(小貪大失)이 아니라 물탐망족(物貪亡族)이라고 할 수 있겠네. 그러니 그 자리는 바라다 보지도 말고 직무수행(職務遂行)에만 최선을 다 하시게. 그렇게만 하면 큰 재앙(災殃)은 만나지 않을 것이네.”

“그렇게나 흉합니까요? 사실은 왕실의 먼 친척이 되는 사람이 그 자리를 탐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선수를 쳐서 일을 벌여보려고 했던 것인데 고 어르신의 말씀을 듣고 보니까 그 불안한 마음이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를 명확하게 깨닫겠습니다. 오늘 뵙기를 정말 잘했습니다. 아마도 조상님이 도운 것으로 생각되네요. 절대로 위험한 일에 연루되지 않도록 잘 처신하겠습니다. 거듭 감사드립니다. 그럼 이만 물러갑니다. 다음에 또 찾아뵙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는 일행에게도 눈인사를 하고는 총총히 사라졌다. 그가 사라지고 나자마자 궁금해서 못 견디겠다는 듯이 오인걸이 물었다.

“이보시게. 이것은 그 사람의 사주를 적어놓은 것인가? 생일도 묻지 않고 적은 것으로 봐서 매우 친밀한 사이였던가 보군.”

“아니라네. 그 사람의 사주가 아니라 점신(占神)이 보여준 조짐이라고 해야 할까 보군. 오늘의 사주라고 하면 알아들으시려나?”

“아, 오늘 일진이 신미(辛未)였군. 그건 도대체 무슨 점인가?”

“간지점(干支占)이라고나 할까? 하하~!”

“그런 점도 있었던가? 처음 듣는 말인걸. 그런 잔재주는 또 어디서 배워왔는가? 그런 것이 있으면 내게도 소개를 해 주셨어야지 혼자만 즐기셨단 말인가? 이거 서운하군. 허허~!”

우창은 도락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흥미가 동했다. 간지로 점괘를 얻어서 해석할 수가 있다니 과연 이러한 것도 가능하단 말인가? 그렇다면 그동안 적천수를 열심히 공부한 것이 좋은 재료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흥분이 되기조차 했다. 그래도 차마 끼어들어서 궁금한 것을 묻지는 못하고 귀만 열심히 기울였다. 그러한 모습을 힐끗 본 도락이 우창에게 물었다.

“호가 뭐라고 했지?”

“예, 우창입니다.”

“아, 그래 우창. 적천수 공부를 했다니까 내가 그에게 해 준 이야기의 절반은 이해가 되었을 것으로 보이는데 어떤가?”

“예, 졸견(拙見)을 말씀드린다면, 사업을 벌이기에는 사주가 너무 조열(燥熱)합니다. 그리고 재물은 편관(偏官)에 앉아 있으니 자칫 돈을 탐하다가 낭패(狼狽)를 당할 수도 있겠다는 것까지는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정묘(丁卯) 말인가? 그것은 조짐의 끝을 보여주는 것이라네. 어떻게 해석을 할 수가 있겠는가?”

“만약에 그것이 사주의 연장으로 해석을 한다면 그야말로 화염지옥(火焰地獄)에 떨어지는 것과 같다고 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스승님께서 진심으로 조언하시는 말씀의 뜻을 절반은 이해했습니다. 편관의 불이 재물에서 이글대고 타오르는 모습을 그 사람이 알았다면 모골(毛骨)이 송연(悚然)했을 것으로 짐작이 됩니다. 제자의 좁은 소견으로 말씀은 드립니다만 맞게 본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잘 봤네. 그대의 공부는 하루아침에 쌓인 것이 아니란 점을 알겠군. 젊은 사람이 제대로 공부의 인연을 만났던 게야. 하하~!”

도락은 흡족한 듯이 만면에 미소를 띄면서 이야기를 듣다가는 호탕하게 웃었다. 그 소리를 듣자 우창은 비로소 안심되었다. 그래도 황당무계(荒唐無稽)한 해석은 아니라고 봐주셨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둘이 나누는 이야기를 듣고 있던 오인걸이 자리를 일어나면서 말했다.

“점성술은 어둠의 학문이라 밝은 낮에는 별로 쓸모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네. 나는 가서 좀 쉬었다가 밤에 별이나 보려네. 두 사람은 이만 집으로 들어가시게. 그리고 우창은 귀한 인연을 만났다는 것은 이미 알았을 것이고, 부디 그 학문이 멋지게 마무리되시기를 비네. 허허허~!”

“잘 가시게. 종종 놀러 오고~!”

“살펴 가십시오. 또 찾아뵙겠습니다.”

우창도 허리를 굽혀서 작별하고는 다시 도락을 따라서 집으로 돌아갔다. 앞만 쳐다보고 바삐 걷는 도락에게 무슨 말을 건넬 수도 없어서 묵묵히 뒤만 따랐다. 그러면서도 신기함과 궁금함이 뒤엉켜서 무엇이 어떻게 되어가는 것인지 잠시 혼란스럽기도 했다.

“들어가세.”

생각하다가 보니 어느 사이에 도락당이다. 궁금한 것은 참지 못하는 우창인지라 자리에 앉으면 어디에서 무엇부터 물어야 할 것인지를 생각하느라고 또 머릿속이 복잡하게 돌아갔다. 우물에서 시원한 물을 길어서 사발에 따르고는 들고 들어가는 도락의 뒤를 따랐다. 특별히 뭘 도와야 할지도 몰라서 그렇게 엉거주춤한 채로 조용히 따를 뿐이었다. 방으로 들어간 도락은 큰 잔에다 물을 나눠 담고는 우창에게 권했다.

“자, 시원한 물부터 마시게. 궁금한 것이 많겠지만 차차로 해결하도록 하면 될 일이니 너무 서두를 필요가 없다네.”

“이미 보고 들은 것만으로도 머릿속이 가득 채워진 느낌입니다. 우창이 노산을 떠난 이후로 오늘같이 소름이 돋았던 날이 없었습니다. 스승님을 뵙게 된 것은 하늘이 도왔다는 것을 알겠습니다. 물론 그 인연의 사다리를 놓아주신 두남 선생님의 인연에도 감사를 드려야 하겠지요.”

“너무 많은 생각을 할 필요가 없네. 두남의 일은 어제의 일이고, 오늘은 또 오늘의 일에 몰입하면 되니까 말이네. 살아가면서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감사하다가는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할 날은 영원히 오지 않을 것이네. 그러니 지난 일은 잊고 지금에 집중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말이지.”

“그렇게 말씀을 해 주시니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과거의 많은 스승님들에 대한 감사는 발 아래에 묻어버리고 오늘에 집중하도록 하겠습니다. 그것이 배은망덕(背恩忘德)은 아니겠지요? 하하~!”

“배은망덕은 스승을 이용해서 탐욕을 채우는 것이라네. 그것만 아니라면 어찌 은혜를 저버렸다고 하겠나? 부모님은 물론이고, 훈장님, 첫 번째 스승님, 두 번째 스승님, 그리고 세 번째, 네 번째... 백 번째의 스승님까지 모두 머리에 이고 다닌다면 그 스승들이 원하는 것일까?”

“듣고 보니 과연 그렇겠습니다. 오늘은 과거의 인연들에 대해서 정리하는 법부터 배워야 하겠습니다. 그런 말씀을 해 주신 인연은 아직 없었습니다. 과연 명쾌하십니다. 하하~!”

“도인의 삶은 어떻다고 생각하는고?”

“도인은 항상 자유롭고 먼 미래를 손바닥처럼 들여다보면서 오늘을 살아가는 상통천문(上通天文)하고 하달지리(下達地理)하는 분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하하하~!”

우창의 말을 듣고는 앙천대소(仰天大笑)하는 도락이었다. 아무래도 우창이 뭔가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했던 것이 분명하지 싶었다.

“예? 그것이 아닙니까?”

“그렇게 복잡하게 산다면 그것을 도인이라고 하겠는가? 도인은 어린아이처럼 졸리면 자고 주리면 먹을 뿐 그 나머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생각이 없다네. 그런 사람을 일러서 ‘무위진인(無位眞人)’이라고 하지 않겠는가? 상통천문도 유위(有爲)이고 하달지리도 유위(有爲)의 한 조각일 따름이라네. 어찌 그런 것에 먼지 만큼인들 생각을 두겠는가 말이네. 하하~!”

그 말을 듣자 우창은 슬며시 의문이 생겼다. 도락의 말대로라면 바보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 밖에 또 있겠느냐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렇지만 차마 입에 내지는 못하고 머뭇거렸을 따름인데 그것을 또 간파했는지 도락이 말을 이었다.

“왜? 바보가 될까 봐 걱정이라도 생겼나?”

“아니, 그게 아니라.... 실은 혼란스러워서입니다. 말씀하신 대로라면 땅을 파고 고기를 잡는 삶과 무엇이 다르겠냐는 생각이 들어서 글을 읽고 학문을 하는 것은 모두가 유위(有爲)일 뿐이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좀전에 스승님께서 조짐을 봐준 왕참정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뭔가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러면서 무위(無爲)를 말씀하신다는 것이 뭔가 제자가 이해를 잘못한 것이 아닌가 싶어서 어리둥절합니다.”

“자 이걸 보게.”

그렇게 말하고는 책상 옆에 있던 그릇에서 해바라기 씨앗 하나를 꺼내어 물그릇에 던졌다. 그러자 ‘퐁’하고는 물결이 잠시 생겼다가 이내 잠잠해졌다. 그렇지만 우창은 갑작스러운 도락의 행동에서도 의문만 쌓일 따름이었다. 그것조차도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저히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도락과 물그릇을 번갈아 바라봤다.

“원래 물잔은 고요했는가?”

“예, 그렇습니다.”

“씨앗이 던져지니 어떤가?”

“물결이 일었습니다.”

“그다음엔?”

“잠시 후에는 다시 고요해졌습니다.”

“그 씨앗은 두남이고, 우창이고, 왕참정이라네. 그리고 도락은 잔 속의 물이라네. 이제 이해가 되는가?”

“그러니까, 도인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인연에 따라서 반응하지만 내심에는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는다는 것입니까? 그러니까 유위는 그다음에도 계속해서 물결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라는 말씀입니까?”

“옳지, 이제 이해가 된 게로군. 그게 도인과 범부(凡夫)의 차이라네.”

“스승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까 과연 우창은 여태까지 범부의 기준으로 생각해왔던 것이 분명합니다. 갑자기 머릿속에 서늘한 냉풍이 한 바퀴 돌고 지나가는 것 같은 상쾌함이 느껴집니다. 왜 여태까지 이것을 몰랐을까 싶습니다. 알고 보니 무위도 별것이 아니잖습니까?”

“그런 것이라네. 알면 세수하다가 코를 만지는 것이고, 모르면 깊고 깊은 천 길의 나락으로 언제까지나 빠져들고 있을 따름이지.”

“이렇게 간단한 것이 무위였습니까?”

“왜?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가? 그것을 믿으면 그대의 수준이 무위에 도달한 것이고, 의혹이 남으면 아직은 깨달음에 도달하지 못하고 유위에 머무르고 있다고 보면 되는 것이라네. 하하~!”

“깨달았습니다. 다만 이렇게 쉽게 깨달아도 되는 것인가 싶은 생각에서 믿기지 않을 따름입니다. 스승님의 말씀에 대한 뜻은 확연(確然)히 알았으면서도 마치 묵은 보따리를 소중하게 지니고 다니다가 갑자기 그것이 필요 없음을 알고는 버렸지만, 왠지 허전한 느낌과 같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것을 업습(業習)이라고 한다네. 오랜 시간을 함께했던 해묵은 병이 치료되어서 완전히 사라지고 났음에도 아프지 않은 것이 오히려 이상하게 느껴지는 것과 같은 것으로 볼 수 있겠네.”

“이제야 확실하게 알겠습니다. 도인은 밥을 먹고 싶은 생각도 안 생기고, 잠을 자고 싶은 생각조차도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었던 것이 오류였습니다. 물잔의 비유에서 바로 느낌이 오면서 소름이 쫙~ 돋았지만 쉽게 설명할 수가 없었는데 이제 스승님의 친절한 풀이를 듣고 나서야 이렇게 설명할 수가 있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실은 ‘감사한다’는 생각도 군더더기라네. 말을 해야만 안다고 생각하는 것도 기억의 파편에서 남은 잔상(殘像)이니까 말이지.”

“아하~ 그런 것이었습니다. 비로소 자유로움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겠습니다. 스승님들이 왜 그렇게도 무정해 보이는지를 이해하지 못했는데 실은 무정한 것이 아니라 스승님들이 자유로웠던 것임을 비로소 알겠습니다. 그러한 소식을 몰랐기에 내심 서운한 마음도 있었는데 그것이 저의 우둔(愚鈍)함에서 비롯했다는 것을 알겠습니다. 하하~!”

“홀아비 마음은 과부가 모르고, 도인의 생각을 중생이 알 수가 없는 것이라네. 다만 짐작만 할 뿐이니 그 짐작은 오롯이 스스로 자신의 기준으로 지어낸 망념(妄念)에 불과한 것인데, 그로 인해서 오해가 쌓이고 원한까지 품게 될 수도 있으니 또한 어쩔 수가 없는 일이긴 하지. 하하~!”

“과연 말씀을 듣고 보니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소견이 좁으면 원한이 쌓이지만, 소견이 트이면 기쁨이 쌓인다는 이치를 비로소 알겠습니다. 우창의 삶은 오늘 이전과 오늘 이후로 나눠질 것입니다. 큰 깨달음을 이렇게 아낌없이 나눠주시니 감사.... 아니, 참 좋습니다. 하하~!”

“마음은 깨닫는 즉시로 변화가 되지만 몸에 밴 습관은 쉽사리 고쳐지지 않으니까 천천히 변화하는 것을 지켜봐도 될 것이네. 마치 몸은 곽암화상의 십우도(十牛圖)와 같지. 곧바로 말을 듣지 않지만 잊어버리고 천천히 기다리다가 보면 어느 사이에 마음의 길을 따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네. 그러니 조바심만 내지 않으면 되네. 중요한 것은 깨닫고 사느냐는 것일 뿐이지.”

“어차피 몸의 주인은 마음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주인이 바뀌는 것이 중요할 뿐 몸은 주인을 따를 뿐이라는 말씀이지요? 이제 뭔가 자유를 향한 첫걸음을 내디딘 것 같은 기쁨이 느껴져 옵니다. 이런 것이 진정한 자유라고 하는 것임을 알겠네요. 그동안의 자유란 자기를 속인 것이라고 해도 되지 싶습니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자유는 아니었던 것입니다.”

“이제부터 우창은 자유인이구나. 앞으로의 공부는 더욱 순일(純一)하게 나아갈 것이네. 더구나 하고많은 스승들을 만났음에도 오직 간지학에 뜻을 두고 한길로 매진(邁進)했던 것은 참으로 잘한 것으로 봐도 되겠군.”

“그렇습니까? 제자는 항상 그점이 두려웠습니다. 주역(周易), 자미두수(紫微斗數), 철판신수(鐵板神數), 그리고 또 기문둔갑(奇門遁甲)까지도 있는 줄을 알면서도 막상 그러한 학문에 접근하면 뭔가 모를 장벽을 느껴서 시간이 흐를수록 답답하기만 했는데 간지학은 공부를 할수록 자유로워지는 것으로 느껴져서 아무래도 제자의 그릇이 이것밖에 안 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지금 스승님의 말씀이 큰 위안이 되는 이유를 아실 겁니다.”

“누구나 그런 과정을 거쳐서 자신의 경지를 열어가는 것이라네. 그렇지만 결국 정상에 도달해서 보면 특별히 잘난 학문도 없고, 그렇다고 또 못난 학문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네. 두남(斗南)은 천문학(天文學)을 하고, 나는 간지학(干支學)을 하지만 서로 자신의 세계에서 존중하면서 잘 지내고 있는 것도 이러한 이치와 다르지 않은 것이라네.”

“이전까지는 학문에도 등급이 있는 것인 줄로 알았습니다. 그래서 주역(周易)의 팔괘(八卦)를 자유롭게 운용하는 학자를 만나면 내심으로 부러운 마음이 있는 것도 사실이거든요. 왜 이런 생각이 들었을까요?”

“그건 공자(孔子)의 영향이라고 보면 될 거네. 글을 읽는 사람은 싫든 좋든 사서삼경(四書三經)을 읽어야 하는데 그 최고의 정점(頂點)에 있는 것이 역경(易經)이다 보니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권위(權威)를 갖게 된 것이라고 봐야지. 그러나 진리는 권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님을 알고 나면 전혀 개의치 않아도 된다네. 어쩌면 오히려 그러한 귄위에 의해서 스스로 갖히게 되어서 자신에게 맞지도 않는 것을 잡고 씨름하면서 일생을 헛보낼 수도 있으니 또한 잘 살펴서 인연에 따름만 못할 것이네.”

“스승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심연(深淵)에 있었던 안개가 말끔히 사라지는 것을 느끼겠습니다. ‘도는 어디에나 있다’는 고인의 가르침이 무슨 뜻인지 비로고 명료(明瞭)해 짐을 확연히 깨달았습니다. 막연히 갖고 있었던 것은 아마도 열등감(劣等感)이었던가 싶습니다. 스스로 마음에 있는 상처였다는 것을 이제야 알겠습니다. 실은 정통적인 학당에서 정식으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삶에서 겪어가면서 스스로 깨달아가다 보니까 이렇게 공부하는 것이 아무래도 정통적인 명륜당(明倫堂)에서 공부하는 것에 비할 바가 못된다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이거든요. 이제 그러한 생각으로부터 말끔히 벗어날 수가 있겠습니다. 아니, 지금 이 순간에 다 벗어나 버렸습니다. 하하~!”

“그런 것이라네. 왕가에서 태어난 사람도 자신의 삶을 살다 떠나고, 빈가에서 종의 신분으로 태어난 사람도 또한 자신의 공부에 따라서 깨달음의 자유를 누리다가 떠나는 것이 어쩌면 참으로 공평한 것이지. 그래서 자유는 몸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기도 하다네. 부처가 말한 ‘해탈(解脫)’은 여기에 있는 것이라고 보면 되지.”

“아, 해탈이 그것이었군요. 불립문자(不立文字)를 해야만 얻는 것으로만 알았는데 문자 속에서도 해탈을 얻을 수가 있다는 것이 신기합니다. 그런데 왜 문자를 떠나야 한다고 했을까요?”

“그야 문자에 갇혀서 대단한 것이라도 얻은양하는 샌님들에게 하는 말이지 자네처럼 열린 마음으로 수행하는 사람에게는 문자(文字)의 유무(有無)가 무슨 장애(障碍)가 된단 말인가? 가장 큰 영향은 육조대사(六曹大師) 혜능(慧能)으로 인해서 생겨난 일종의 미신이라고 할 수가 있겠네. 그 대사는 문자를 배운 적이 없었지만, 오히려 오도(悟道)를 했다고 해서 나온 말이기도 하니까 말이지. 그렇지만 과연 글을 배우지 않았는지는 나도 반신반의(半信半疑)라네. 그렇지만 해탈과 문자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은 확실하다네.”

“아, 그런 말도 있습니까? 처음 듣습니다.”

“물론 크게 틀린 말은 아니지. 사교입선(捨敎入禪)이란 문자에 매이지 말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을 테니 말이네. 다만 하지 말라는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것을 더 하고 싶고 벗어나기 어렵게 되는 것을 생각해 보면 오로지 깨달음의 자유를 어떻게 하면 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 궁리한 선현들의 심혈(心血)어린 결과물이므로 그 안에서 스스로 자유로워지기만 하면 된다네. ‘지금부터 원숭이를 생각하지 마시오.’라고 하는 팻말을 보게 된다면 아마도 그것을 읽은 사람은 한동안 그 글자가 기억을 장악하게 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지. 그런 의미에서는 문자를 버리는 것이 옳다고 하겠지. 하하~!”

도락이 그렇게 말을 하고는 호탕하게 웃었다. 과연 그 안에는 어떤 세계가 열려 있는지가 궁금했다. 다만 놀라운 것은 지금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연령이나 처음 만났다는 느낌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오랜 시간을 함께 살아왔던 것처럼 편안한 마음이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도락의 수준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은 느낄 수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