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인간적인 관점

작성일
2007-09-10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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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가정적인 관점에서 병화의 역할에 대해서 생각을 해본다. 가정에서 가장 밝고 명랑한 위치에 있는 사람은 막내아들이 아닐까 싶다. 언제나 부모님은 내편이고, 형과 누나들도 모두 내 말 한마디면 꼼짝도 못한다는 장점을 한몸에 가지고 있는 상태이다. 그래서 천방지축으로 날뛰기도 하고 또한 철이 없기도 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병화를 이해해 보고자 한다.

병화는 그래서 가장 눈에 띄기도 하는 성분이다. 언제나 자기 위에 어른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갖고 싶은 것은 다 갖어야 속이 시원하고, 하고 싶은 것은 모두 다 해야 되는 것이 병화라고 생각해 볼적에 아무래도 막내아들이 아니고서는 이러한 특권(?)이 주어질 것 같지가 않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막내들이 이렇게 특권을 받고 있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비교적 보호(甲乙木의..)를 받으면서 자기 마음대로 할 수가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러한 성분은 상당히 산만한 형태로 나타날 것이다. 병화는 빛이라고 전제를 할적에 가장 분산력이 좋은 특징이 있는 성분이다.

막내는 산만하다. 해야 할것도 많고 보고 싶은 것도 많다. 다른 형제들이라고 해서 그렇지 않았겠느냐만 유난히 막내에게 이렇게 평가를 해보는 것은 다른 사람들은 이미 다 자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들이 어려서 그랬다는 것에는 까맣게 잊어버리고서 막내둥이의 부산함만 탓하게 될 것이다. 원래가 개구리는 올챙이를 기억하지 못한다고 하는 말이 있는 바에야 아마도 사람의 마음도 어린 시절의 산만함에 대해서는 이미 잊어버린지 오래일 것으로 여겨진다.




사회적으로 관찰을 해본다면 병화를 닮았다고 생각되는 사람은 아마도 초등학교 학생 들이 아닐까 싶다. 초등학교에 해당하려면 대략 일곱 살에서 열 세 살 정도가 된다. 이 시기에 해당하는 학생들이 아마도 가장 산만한 집단일 것이다. 그래서 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으려면 산만한 것에 대해서 다스리는 방법을 깨달아서 나름대로 통제를 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교실에서 혼자서 울고 싶을런지도 모른다. 참으로 어디로 튈는지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시기라고 본다.

학교에서야 그렇다고 치고 일단 집으로 돌아와서는 어머니와 또 전쟁을 벌이게 된다. 어머니로써도 참으로 처치하기 곤란한 녀석이 막내아들이다. 웬만하면 원하는 것을 다 들어주고 싶기도 한데, 이녀석이 길옆 맥도날드 가게앞에 서있는 할아버지(인형)를 사달라고 떼를 쓴다면 참으로 난처하게 될 것은 뻔한 일이다. 그래서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해 보지만 참으로 뾰족한 해결법이 나오지 않는 것이 또한 난처하게 만드는 것이다. 초등학생이나 막내아들이나 이러한 의미에서는 완전히 동격이라고 하겠는데, 그래서 자신이 원하는 것이 이뤄지지 않아서 떼를 쓰면 으레히 듣는 말이 있다.

“넌 막동이처럼 떼만 쓰고 있으면 다 된다고 생각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