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인간적인 관점

작성일
2007-09-10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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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물질적인 을목을 통해서 상당히 많은 을목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그러한 에너지를 사람이 이어받았다고 한다면 과연 어떻한 성분이 있을 것인가를 생각해보는 것은 과히 어렵지 않다고 하겠다. 무엇보다도 을목으로 태어난 사람은 현실적인 안목이 탁월하다고 해야 할 참이다. 그리고 이러한 이야기는 이미 왕초보사주학의 입문편에서도 상당부분 힌트를 드렸었다. 당시에 글을 쓰면서 을목의 현실적인 면에 대해서 부각을 시키려고 하다 보니까 다소 수전노(守錢奴)적인 느낌을 갖게 했다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그러한 내용으로 인해서 신경쓰였던 벗님들께는 글이라고 하는 것의 단점이라고 생각을 해서 이해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내용으로 인해서 상당히 많은 비난의 화살이 날아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다행히도 대다수의 벗님들은 그 속뜻을 잘 이해를 하셨던지 아니면 별 수 없는 헛소리라고 하고 넘어갔던지 어쨌던 상당히 타당성이 있다는 반응을 보여주셨다. 특히 해외에서 걸려온 전화는 역시 사물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면 남들도 공감을 한다는 간단한 진리를 확인하게 되는 계기도 되었다. 주요 내용은 이렇다.

“안녕하세요 낭월스님, 여기는 호주인데요, 저는 을목으로 태어났거든요. 한국에서 을목에 대한 설명을 들을적에는 연약한 풀이라던가, 곡식이라는 정도, 또는 화초 등등으로 부드럽고 연약한 풀로써 설명을 들었거든요. 그런데 낭월스님의 왕초보사주학에서는 ‘현실적인 실리에 밝고 강인한 을목’이라고 글을 쓰셨는데, 실제로 저도 돈에 대해서 많은 비중을 두고 있답니다. 심지어는 남자가 접근을 해도 돈이 많은 남자에게는 사랑을 느끼고 돈이 없는 남자는 아무리 잘생겨도 매력을 못느낀답니다. 이것이 저만의 특징이고 다른 을목일주(乙木日主)16)에게는 해당이 없을 런지도 모르겠지만, 저에게는 확실히 적중하는 이야기였습니다. 낭월스님의 관찰력이 보통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전화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이하 줄임)17)

이러한 전화를 받으면서 과연 식물들의 다양한 형태를 보면서 관찰한 것이 실제로 적용이 잘 되었다고  생각되었던 기억이난다. 그렇지만 모든 을목이 그냥 받아들이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간혹 반대의견이 있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수긍을 하는 입장이었던 것 같다. 너무 감정적인 관점으로 바라다 보지만 않는다면 무엇을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인지는 짐작을 할 수 있지않을까 싶기도 하다. 통신에서도 느끼는 점이지만, 글을 통한다는 것은 만나서 말로 하는 것에 비해서 상당히 많은 부분에서 오해의 소지가 있다는 것을 느끼고 언제나 주의를 하는 편이지만, 그리 간단하지 않은 것 같다. 기왕에 오해를 할 사람은 어느 구석이던지 잡고 늘어져서는 시비를 걸게 되어있으니까 말이다.




다시 본론으로 들어와서 을목의 형태를 사람에 대입해서 설명하도록 하겠다. 이런 스타일은 미래지향적(木) 이면서도 실리적(乙)인 형태를 띠게 될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형태라면 돈을 벌어서 부자가 되고 싶지만 투기나 도박을 해서 벌려고는 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한 것은 너무나 위험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실 놀음해서 돈벌었다는 사람이 없다는 말에서도 그 결과가 짐작이 된다. 결국 놀음판에 나온 돈은 자리를 제공해준 사람에게로 다 들어가게 되어있다고 한다. 을목이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돈을 빼앗길 리는 만무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또 을목의 성향을 띠는 사람은 언제나 실속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 보통 사람들은 모양새를 중시하는 경우도 많은데, 을목은 모양에는 크게 비중을 두지않고 오히려 실질적인 이해관계를 중시하기 때문에 이 일을 추진했을 경우에 그 마지막으로 돌아오는 결과는 어떻겠느냐는 점에 많은 생각을 한다. 이점이 같은 나무이면서도 갑목과의 두드러지는 차이점이라고 보겠다.

을목도 나무인 것은 분명하다. 정확히는 나무라고 말하기 보다는 木이라고 해야 하겠는데, 목은 일반적으로 희망이라고 하는 성분이 깔려있는 것이다. 이러한 영향은 을목도 희망적인 방향으로 진행하는 성분이라는 점을 알 수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볼적에 가정적으로는 막내딸이 가장 어울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막내딸은 항상 자신의 이로운 것에 대해서 생각이 많음을 본다. 실제로 여러명의 형제가 있는 가정에서 자녀들의 특성을 파악해보면 각기 독특한 위치적인 영향이 있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다. 가령 장녀라면 우리 속담에서도 ‘살림밑천’이라는 부제를 달아두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가 있는 것이다.

갑목의 가장과도 가장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 막내딸인데, 갑목이 을목을 좋아하는 것은 미래지향적이면서도 실속에 대해서 챙기는 것이 귀여워서일 것이다. 용돈을 타내려고 애교를 부리는 것은 필시 막내딸이다. 어떻게하면 아버지의 주머니에서 지폐가 나온다는 것을 이미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필요한 만큼의 용돈을 울궈내기 위해서는 과연 어떻게 봉사를 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 이미 통달을 했다고 본다. 갑목은 귀찮지만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최선의 봉사를 하는 막내딸이 귀여워서 차마 찡거리지 못하고 또 돈이 나가는 것이다.

이렇게 비유를 해봤는데 실제로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야기 속의 막내딸이 취하는 행동을 보면서 을목의 특성을 이해한다면 충분하리라고 본다.




그러면 이번에는 국가적인 관점으로 살펴보자. 앞에서 갑목이 대통령과 비교해서 설명을 하였는데, 이번 을목은 재무부장관으로 비유를 해볼까 싶다. 온 국민은 대통령의 통치력에 의지를 하면서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중에 하나는 경제의 안정성이다. 그래서 보다 편안하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경제가 흔들려서 국민들은 매우 불안해 진다면 보나마나 경제장관은 문책을 당할 것이다. 을목은 희망을 갖게 되면서 그 희망은 구체적으로 경제적인 풍요를 암시하기 때문이다. 가정도 마찬가지겠지만, 돈이 잘 들어올적에는 모든 사람들이 희망을 가지고 적어도 여름여행을 제주도나 하와이 정도로 설계할 꿈이라고 꾸는 것이다.

그런데 경제가 어렵고 벌어놓은 월급도 제때에 나온다는 보장이 없이 지체되고 수금도 잘 되지않으면 희망은 삽시간에 사라져버린다. 그리고는 암울한 기분이 들어서 깡소주나 마시면서 세상을 비난하면서 살맛이 나지 않는다고 넉두리를 하게된다. 이것이 바로 을목이 손상을 당한 상태이다. 사람이 살면서 이러한 경제적인 부유함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아무래도 나라는 혼란에 빠질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하겠다. 얼마전엔가 아르헨티나에서는 극심한 실업율로 인해서 연일 폭동이 일어났다고 했던 적이 있다. 나라에서는 외국에서 끌어다 쓴 빚 때문에 존립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라면 세금만 추가로 걷어들이려고 할것이고, 그렇잖아도 힘든 상황에서 이러한 국가적인 조세부담은 점점 살아야 할 의욕을 갉아먹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니까, 아무래도 자신이 태어난 나라를 벗어나서 다른 나라로 이민이라도 가고 싶을런지도 모른다.

사람의 희망이라는 것이 이렇게도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그 희망도 그냥 단순히 구름을 잡는 분위기의 갑목영역에 있던 선거유세적 희망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분명한 희망에 더욱 비중을 많이 두는 것도 당연한 것이다. 가장 확실하면서도 희망을 갖어볼만한 국가적 기관은 그래서 경제력이 탄탄하게 지속되고 있는 경제담당의 장관이 담당할 영역인 것이다. 물론 그 산하에 있는 모든 금융관계의 기관들도 포함된다고 하겠다. 역시 무엇이 이로운지 해로운지를 경제적으로 가장 명확하게 판단하고 담보를 잡고 돈을 빌려주는 은행도 을목이라고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돈을 빌려주면서 희망도 주지만 만약에 갚지 못하게 되면 은행은 도산되고 말 것이다. 그러한 경우를 대비해서 담보를 잡아놓는다. 물론 잡을 적에는 형식적이라는 말을 적당히 섞어 넣기도 하겠지만 돈을 빌리는 사람은 안다. 만약에 갚지 못하면 그 담보물은 빼앗기게 될거라는 것을...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빼앗기는 것은 아니다. 돈대신 받아가는 셈이니까 말이다.

이러한 영역에서 을목은 국가적으로 금융을 담당한다고 보는 것이다. 이외에서 여러 가지의 의미가 있겠지만, 대충 이정도로써 인간적인 관계에서의 을목을 이해해보면 될것으로 여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