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물질적인 관점

작성일
2007-09-10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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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절적으로 을목에 대한 설명은 갑목이 양목이라고 한 것에 반해서 을목은 음목(陰木)이라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음목의 형태가 물질로 나타난 경우는 주로 일년생 초목(草木)들이 이에 해당한다고 보면 큰 차이가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니까 벼, 보리, 콩, 당근, 옥수수, 감자, 인삼, 배추 등등 우리 주변에서 언제나 접할 수 있는 채소류가 모두 을목에 속한다고 이해를 하면 되겠다. 이러한 종류의 음목들은 위로만 자라나는  갑목과 비교해서 선명하게 차이가 나는 것이 있다. 바로 결실을 중요시 한다는 점이다. 갑목은 봄이나 겨울이나 틈만 나면 성장을 하는게 주목적이겠지만, 을목은 다르다. 일단 계절에 적응을 해서 결실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점이다. 소위 말하는 ‘실속위주’인 셈이다. 을목은 비록 갑목에 비해서 키는 작지만 그러한 갑목을 결코 부러워하지 않는다.

“키빼기만 커가지고 무슨 이익이 있는감? 갑목은 참으로 실속이 없다구!”

하면서 오히려 싱거운 녀석이라고 할 참이다. 작은 고추가 맵다는 말에 힘을 주는 경우도 을목이다. 외부적으로 보이는 것 보다는 실속이 중요하다는 것이 을목의 관점이라고 이해를 해본다. 실제로 콩을 보고 있으면 한창 열기가 후끈후끈한 늦여름철에 이미 자신의 실속을 챙기고 있다. 콩꼬투리가 상당히 많이 매달린 것을 볼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인간은 이러한 을목을 먹어야만 살아갈 수가 있는 것이므로 음목의 실속은 인간을 구제한다는 말을 해도 되겠다.

그렇잖아도 채식(菜食)이 건강에 좋다는 이야기들이 심심찮게 나온다. 육식을 하면 건강이 나빠질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인데, 이러한 이야기가 나올정도면 아마도 이미 음식균형이 깨어진 모양이다. 한때는 육식이 부(富)의 상징처럼 보였고, 도시락 반찬으로도 인기가 좋았던 적이 있는데, 어느사이에 비만은 공포(恐怖)의 대명사처럼 되어버렸고 그러한 기류(氣流)를 타고서 장사하는 사람들도, 이제는 당근즙이라느니 섬유소라느니 하면서 식물성의 사업쪽으로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모양이다.

이러한 것들도 역시 고기만 먹고는 살 수가 없다는 인식을 하면서 다시 을목의 위대성이 되돌아 오는 모양이다. 사실 고기를 먹고 나서의 포만감 보다는 야채를 먹고 나서의 산뜻한 기분이 훨씬 즐거운 것으로 느껴진다. 그래서 을목의 향기로움에 감사를 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갑목은 과일을 제공해준다. 그 과일도 야채 못지않게 맛있지만, 그보다는 을목에서 생산된 곡식이 더욱 중요하고 맛이 좋은 것이니까 인간과 을목은 뗄레야 뗄수가 없는 셈이다.




또 한가지의 을목이 있다. 이른바 ‘넝쿨식물’이 그것이다. 칡, 등(藤), 머루, 다래 등을 이르는 것인데, 이것이 일반적으로 을목과 다른 점은 다년생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갑목으로 쳐주면 될 것이 아니냐고 하겠는데, 갑목으로 치기에는 또 힘아리가 없다. 어떤 연유에서인지 이 넝쿨식물도 을목으로 분류를 하게 되었는데, 실제로 갑목을 못살게 칭칭 감고 올라가는 것을 보면서 과연 을목이라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게 된다. 그래서 고인의 이러한 관찰력은 이치에 합당하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그렇게 보고 있다.

이 넝쿨식물들은 결실을 중시한다고 보기도 그렇다. 단지 생기기를 맥없이 생격서 바닥으로 기고 있는 것을 보면서 을목이라고 분류하는 셈이다. 그리고 을목은 하늘로 올라가는 성분이 부족하고 바닥에 있기 때문에 넝쿨도 유사한 점이 있다고 하겠다. 또한 넝쿨로 다년초에 해당하는 것으로는 더덕(藥名=沙蔘), 마(藥名=山藥)와 같은 근채류가 있다. 이러한 것을 별도로 생각해보는 것은 매년  식물의 줄기가 말라죽고는 다시 새로운 싹이 나와서 자라기 때문에 일년초와 닮았기 떄문인데, 칡이나 등은 그 줄기에서 그대로 다음해에 잎이 나오기 때문에 약간 다르다는 생각을 해본 것이다.




이외에도 또 하나의 별종(別種)이라고 생각되는 을목이 있다. 즉 대나무를 말한다. 어느날인가 이 대나무의 성질을 놓고서 과연 갑목인지 을목인지를 확실하게 분류하기가 어려웠다. 벗님은 이 문제에 대해서 혹 심사숙고 해보지 않았다면 한번 이러 기회에 어째서 대나무가 을목인지를 규명해보시기 바란다. 아마도 성질 급한 벗님이라면 그런 분류가 사주를 보는데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고 호통을 치실런지도 모르겠으나, 실은 이렇게 주위에 있는 사물들을 관찰하면서 잘 이해를 하는 것이 사실은 사람의 사주를 보면서 이해를 하는데에서도 뭔가 분명한 도움이 되는 것으로 생각이 되는데, 한마디로 설명을 할 수는 없지만, 사유방식에 상당한 유익함이 있다고 느껴지는 까닭이다.

그러면 그 연유를 생각해보자. 우선 대나무의 특징 중에서 하나는 수명에 있다. 대나무의 수명이 얼마라고 생각하시는가? 아마도 대충 따져서 10년에서 15년 정도 사는 모양이다. 얼마전에 13년만에 대밭에 꽃이 피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이와 같은 수명을 추리해 보는 것이다. 여기에서 한가지 깨달을 수가 있는 것은 ‘대나무는 꽃이 피면 죽는다’는 점이다. 꽃이 피면 죽는 것으로는 또 어떤 것이 있는지 생각해봐야 재미가 있다. 그러한 종류 중에는 선인장(仙人掌)류가 있다. 선인장도 꽃이 피면 죽는 것으로 되어있다. 그렇다면 선인장도 을목으로 간주를 하자. 갑목은 꽃이 핀다고 해서 죽는 것이 없기 때문에 일단 을목의 영역으로 보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추리를 하면 되는 것이다. 식물학적으로 학자님들이야 어떻게 평가를 내리던지 간에 우리 명리학자는 이정도로 대나무의 특성을 고려해서 분류하면 될것으로 생각한다.

또하나의 특징으로는 속이 마디를 만들면서 비어있다는 점이다. 갑목은 속이 빈것(마디를 만들면서)이 없는 것으로 안다. 오로지 을목에서 그 유형을 찾을 수가 있는데, 줄기와 잎을 관찰해 볼적에 갈대가 가장 대나무와 유사하다. 갈대는 뿌리조차도 대나무의 뿌리를 닮아있었다. 일부러 캐봤던 기억이난다. 그리고 갈대는 누가 보더라도 을목이라고 하겠다. 또 유사한 것으로는 억새도 갈대와 많이 닮았고, 밀이나 보리 또는 벼의 줄기도 대나무와 닮은 점이 많다고 하겠다. 이들도 모두 마디가 있고 줄기의 속이 비어있다. 이렇게 유사성을 찾아보면 대체로 그 모습이 어디에 속해 있는지를 느낌으로 감잡을 수 있다고 본다.




대단히 죄송하지만 을목에 속하는 또다른 별종이 있으니 이야기를 안드릴 수가 없겠는데, 무엇이 또 있는지 한번 궁리를 해보시는 것도 좋겠다. 그러나 잠시 생각을 해보고서도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는다면 생머리 고생시키지 말고 다음을 읽어보자.

을목의 또다른 형태로 말씀을 드릴 것은 바로 해조류(海藻類)이다. 즉 미역, 다시마, 김, 파래, 청각, 바닷말, 나문재(안면도 갯펄에 자람), 진질이(사리때15) 뿌리를 캐서 씹으면 달콤한 물이 나옴), 우뭇가사리 등등의 많은 바닷식물들이 이에 해당하겠다. 이들은 성질도 특이해서 그 짜디짠 바닷물 속에서 잘도 살고 있다. 하긴 원래 식물의 고향이 바다라고 했으니 어쩌면 고향을 지키고 있는 충신들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보통 식물은 물에 담가 놓으면 죽어버리게 되는 것이 일반인데, 이렇게 물에서만 살아갸야 하는 종류는 또 어떻게 된 것인지 물에서 꺼내 놓으면 말라죽어 버리게 되어있으니까 乙木의 영역은 참으로 다양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렇게 해조류까지 들고 나와서 설명을 드리는 이유는 그렇게 다양한 관찰을 통해서 十干의 형태를 이해해 보라는 점도 있고, 또 남들과 논쟁을 할적에 혹 을목은 물이 많으면 죽어버린다고 떼를 쓰시지 말라는 점도 포함이 된다. 그렇게 떼를 쓰다가 상대방이 해조류를 들고 나와서 따지면 얼마나 할말이 궁하겠는가를 생각해보라.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생각이 깊지않으면 이러한 봉변(?)을 당하는 일도 전혀 없다고 장담을 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어쨌던 많이 생각하고 깊이 생각한 학자는 좀더 새로운 것을 발견하게 된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면 이렇게 다양한 을목의 형태에서 우리는 무엇을 느낄 수가 있을까? 그냥 종류만 나열하고 끝을 맺어서는 실속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리도 다양한 이유는 무엇인가를 필히 궁리해봐야 하는데, 그 첫째의 이유는 ‘실속’이라는 점으로 생각된다. 실속이 중요하기 때문에 어떻한 환경이 되더라도 살아남을 수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산이면 산, 들이면 들, 물이면 물 어디던지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을목이다. 그리고 이것을 확대해석하면 둘째로 왕성한 생명력이 떠오른다. 생명력은 환경적응력으로도 해석이 가능할 것이다. 어디에 내놔도 죽지않고 살아남을 수 있는  성질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람도 을목의 특성을 받은 경우에는 이렇게 끈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할 수가 있다는 점이 바로 우리가 다양하게 을목의 형태를 살피고서 얻게되는 이익이라고 생각되는 것이다.

실제로 농사를 짓던 논밭이 2~3년 묵게 되면 즉시에 을목들이 차지를 해버린다. 그 왕성한 잡초들의 생명력은 참으로 질려버릴 지경이다. 또 산꼭대기에는 갑목들이 자랄 수 없는 환경이 되기도 한다. 그렇게 되면 그곳에 살아남을 식물은 당연히 을목이다. 높은 고원에서는 숲이 형성되기 어려운 이유가 갑목의 생명력은 을목만큼 끈질기지 못하다는 점이다. 그뿐인가? 웅덩이를 만들어 놓으면 즉시로 이끼들이 점령을 하고서 파릇파릇하게 성장을 한다. 어디던지 틈만 보이면 즉시로 파고들어서 뿌리를 내리는 을목... 참으로 대단한 생명력이다. 이정도의 설명이라면 아마도 을목의 물질적인 형태는 충분히 이해가 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