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6] 제22장. 연승점술관/ 15.정(定)해진 것과 정해질 것

작성일
2020-07-25 0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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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0

[0246] 제22장. 연승점술관(燕蠅占術館)


 

15. 정(定)해진 것과 정해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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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창은 며칠을 두고 자꾸 떠오르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일전에 함께 만나서 밥을 먹었던 손헌(巽軒)의 이야기가 귓가를 맴돌아서이다. 특히 그중에서도 ‘만약 자네가 그릇 안의 내용물을 정확하게 맞췄더라면 나는 전혀 자네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을 것이네. 그런 도사들은 장강의 모래알만큼 많으니까’라고 한 말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 말의 속에 숨이었는 함의(含意)가 무엇인지 이해가 되지 않아서 자꾸만 생각이 났다. 장강의 모래알만큼의 도사들은 무엇이며, 그렇게 유리알을 들여다보듯 맞추는 것에 대해서는 관심조차도 두지 않는다는 것은 또 무슨 뜻인지 생각을 하면 할수록 더욱 궁금증만 커져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춘매가 오후에 찾아온 안마손님을 보내고 우창의 방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리에 비로소 정신이 돌아왔다.

“아니 오빠, 차도 드시지 않고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하고 있어? 난 지금쯤 향기로운 차를 마시고 있을 오빠겠거니 하고 왔는데 말이야.”

“아, 잘 왔다. 그렇지 않아도 누이의 손님이 가고 나면 어디 좀 가보자고 할 참이었는데 말이야.”

“어딜?”

“손헌 선생님을 한 번 뵈러 갔으면 해서.”

“아, 공 할아버지? 한번 놀러 오라고 하셨잖아? 마침 오늘은 날도 포근한데 명륜당이나 놀러 갈까? 선물은 뭘 준비하지?”

“선물을 준비해야 하는구나. 글쎄 뭘....?”

“명륜당에는 워낙 없는 것이 있어야지. 오늘은 이걸 선물해야겠다. 호호~!”

그러면서 춘매는 두 손을 치켜들었다. 우창이 무슨 말인지 몰라서 멀뚱하게 춘매를 바라봤다.

“빈손을 선물한다니 좀 뻔뻔해 보이긴 한다.”

“오빤 빈손으로 보여? 내가 보기엔 오랜 시간 단련한 안마사의 약손으로 보이는데?”

“아, 약손이었구나. 내가 장 이렇네. 하하하~! 아마 어르신께서도 반가워하실 선물이네. 그렇다면 얼른 가보자.”

그렇게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손헌이 있는 명륜당(明倫堂)을 찾아갔다. 명륜당은 우창의 집에서 제법 떨어져 있었다. 공자묘의 반대편에 있어서 반시진(半時辰:60분)은 걸어서야 도착할 수가 있었다. 문 앞에는 오래된 매화나무에서 청향(淸香)이 풍겨서 마음을 맑게 해 주는 것 같았다. 춘매는 이미 익숙한 길인지 스스럼없이 앞으로 가서는 문을 두드렸다. 잠시 후에 안에서 문을 여는 소리가 들리더니 중년의 영감이 내다 보더니 춘매가 온 것을 알아보고서 반겨했다.

“어이쿠, 누구가 오셨나 했더니 춘매가 왔구나. 안 그래도 춘매가 놀러 오거든 안으로 들이라고 대감께서 일러두셨다네.”

“아저씨, 잘 지내셨어요? 오랜만에 왔죠? 하나도 안 변하셨어요. 호호~!”

“어서 안으로 들어가보게.”

우창도 가볍게 목례를 하고는 춘매의 뒤를 따라서 안채로 들어갔다. 길의 좌우에는 학인들이 머무는 공간으로 보이는 집이 늘어서 있고, 안에서는 글을 읽는 소리가 기분 좋게 흘러나왔다. 그 분위기는 옛날 귀곡자의 문하에서 공부하던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오빠, 글 읽는 소리가 참 좋지?”

“그렇군. 다들 열심히 공부하는가 보다.”

“공 할아버지의 제자들이야. 많을 때는 30~40명도 되고, 적을 때는 십여 명이 되기도 해. 아마도 공부하러 왔다가 다른 곳으로 가기도 하고 그러는 것 같아.”

춘매의 설명을 들으면서 서너 채의 건물을 지나서 맨 안쪽에 있는 집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손헌재(巽軒齋)」

자신의 호를 따서 붙인 것이라고 짐작을 하고 있는데 춘매가 소리를 질렀다.

“공 할아버지 춘매가 왔어요~!”

얼마 지나지 않아서 집안에서 사람이 나왔다. 젊은 낭자였다.

“와~! 춘매 언니 오랜만이네. 어서와~!”

“동생은 더 예뻐졌네? 반가워~!”

“처음 뵈어요. 우창 선생님이시지요? 잘 오셨어요.”

낭자는 우창에게도 밝게 인사를 하고는 안으로 들어가라는 듯이 손짓을 했다. 춘매가 앞장을 서니까 우창도 움직이는 것이 편했다. 그대로 따르기만 하면 되었기 때문이다.

방으로 들어가자 묵향(墨香)이 가득한 중에 손헌이 일어나면서 우창과 춘매를 맞이해 주었다.

“어서 오시게. 먼 걸음에 수고가 많으셨지?”

“그간에도 편안하셨습니까? 한번 놀러 오라는 말씀이 자꾸만 귓가를 맴돌아서 이렇게 불쑥 찾아뵈었습니다. 쉬시는데 귀찮게 해 드린 것이나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하하~!”

“그럴 리가 있는가. 마침 심심하던 차에 말벗이 찾아왔으니 이보다 반가울 일이 또 있는가. 그야말로 유붕자원방래라네. 허허허~!”

“환영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귀한 가르침을 듣고 싶어서 진작에 찾아뵙고 싶었습니다.”

“아무렴. 한 번은 찾아오겠거니 했다네. 잘 왔네.”

이렇게 환영하는 말을 한 손헌은 낭자에게 말했다.

“화진아, 귀한 손님이 오셨으니 특별히 귀한 차를 내어 오거라. 그리고 안채에 연락해서 저녁도 준비하도록 하고.”

“네 스승님~!”

화진이라 불린 낭자는 주화진(周和珍)으로 5년 전부터 명륜당에서 손헌의 제자가 되어서 수학(修學)하면서 곁에서 시중을 들고 있었다. 낭자가 밖으로 나가고 우창과 춘매는 권하는 대로 손헌의 맞은 자리에 앉았다. 춘매가 두 손을 치켜들었다.

“할아버지 여기 춘매가 선물을 가져 왔어요. 호호호~!”

“어이쿠~! 그렇지 않아도 오늘 허리가 뻐근했는데 귀한 선물을 갖고 오셨구나. 사양하지 않을 테니 이따가 좀 부탁하네. 허허허~!”

“옙! 저녁 드시고 좀 만져 드릴게요. 호호~!”

“그래, 지내셨지? 그런데 춘매의 얼굴에 광택이 흐르는 것은 무슨 의미이지? 춘매 낭자? 아무래도 소원을 이룬 모양인데?”

“어허, 그것이 보이셨어요? 할아버지~! 복 받으실거에요.”

춘매가 콧소리를 내면서 웃음으로 받자 손헌도 빙그레 웃었다.

“그래 그 문제는 다음에 토론하기로 하고, 우창의 이야기나 좀 들어볼까? 아무래도 뭔가 궁금한 것이 좀 있었던가 본데?”

“궁금한 것이야 항상 있습니다. 그런데 그날 뵈었을 적에 말씀하신 중에서 유독 한가지가 마음에 걸려서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를 좀 여쭤야 하겠다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장강의 모래알 같은 도사들에 대한 말씀이었습니다. 미래의 조짐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아야 하는 것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그 말씀은 오래도록 여운(餘韻)을 남겨서 꼭 여쭤보고 싶었습니다. 좁은 소견으로 이해하기로는 결과(結果)보다는 과정(課程)이 중요하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은 생각은 들었습니다만, 귀한 가르침이 꼭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이렇게 찾아뵈었습니다.”

“그럴 줄 알았네. 실은 꼭 한번 찾아오라고 미끼를 던진 셈이기도 하니 실은 오늘의 나들이는 내가 청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네. 허허허~!”

“그렇게 말씀을 해 주시니 고맙습니다. 그렇다면 선생님께서는 운명(運命)이나 미래예측(未來豫測)에 대해서 어떤 고견을 갖고 계시는지 여쭙겠습니다. 이에 대해서 반드시 고견(高見)이 있으실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우창은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그것은 앞으로 정해질 것에 대해서, 어떤 조심을 통해서 읽어내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어떤 조짐이라니 그게 뭔가?”

“가령, 역경(易經)을 연구하는 자에게는 점괘가 될 것이고, 어느 점술을 연구하더라도 저마다 사용하는 득괘법(得卦法)이 모두 있으니까 그것을 통해서 조짐을 얻을 수가 있겠습니다.”

“과연, 우창은 학자가 틀림없군. 그렇다면 남들도 그렇게 생각할까?”

“그것은 잘 모르겠습니다. 귀한 가르침에 귀를 활짝 열겠습니다.”

“우창은 양극단(兩極端)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는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그렇다네. 그것을 흑백논리(黑白論理)라고도 하지. 검으냐 희냐를 놓고서 왈가왈부(曰可曰否)하는 것으로 일을 삼는다는 뜻이네.”

“말씀하시는 뜻은, 얼마나 정확하게 미래를 예측하느냐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를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맞아. 수많은 사람을 만나봤고, 그중에는 정말 미래를 직접 가서 그 상황을 보고 온 듯이 말하는 사람도 부지기수(不知其數)였다네. 그러니 미래를 맞추는 것에 대해서도 신기할 일이 하나도 없다는 생각조차도 하게 될 지경이 되었다는 이야기라네.”

손헌의 말에 춘매가 눈이 휘둥그레서 말했다.

“정말요? 우와~! 그렇게 대단한 사람들을 저는 왜 한 번도 만나지 못했을까요? 과연 세상이 넓네요. 신기해요. 더구나 그런 것들에 대해서 이렇게 잘 알고 계신 줄은 정말 몰랐어요.”

“그야 말이 오가는 것도 인연에 따르는 까닭이라네. 허허허~!”

“그럼 지금은 그런 이야기를 나눌 인연이 되었다는 말씀이세요?”

“당연하지 않은가? 춘매가 사람의 몸에 흐르는 기운만을 공부하면서 안마(按摩)와 추나(推拿)를 활용하고 있다가 우창을 만나서 간지학(干支學)에 입문했으니 이제야 이런 말을 나누게 되는 것이고 또 그에 대한 말을 들으면 그 내용이 귀에 들어가는 것이니까 말이네.”

“정말이에요. 이미 이전부터도 관심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죠. 그런데 실제로는 그것조차도 제대로 인연이 되어야만 이뤄진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예전에도 오행의 이치에 관심을 가졌지만 이렇게 공부에 대해서 열망이 생긴 적은 없었거든요. 다들 스스로는 잘 아는 도사라고 하지만 막상 공부하려고 시작해 보면 흥미가 사라지고 불편한 마음만 생겼으니까요.”

“맞아, 그래서 인연에도 헛된 인연이 있고, 진실한 인연이 있는 것이라네. 그리고 춘매는 진실한 인연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지. 어떤 사람은 일평생 그 인연이 찾아오지 않기도 하지만, 춘매는 참으로 운이 좋았던 거라고 봐야지. 이제 진리의 맛을 봤으니 누가 뭐라고 해도 벗어나지 않을 진리의 소용돌이에 합류(合流)한 것이라고 봐도 되는 거라네. 허허허~!”

“맞아요~! 그래서 매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도 모를 지경이에요. 호호~!”

손헌은 춘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 말의 뜻을 잘 이해한다는 듯이 동조했다. 때마침 주 낭자가 차를 들고 들어와서 우창과 춘매에게도 따라 준다.

“스승님, 오늘은 귀한 손님이 오셨다고 해서 복건(福建)의 지상(智相) 사형이 보내 준 금준미(金骏眉)를 우렸습니다. 차는 좋은데 솜씨가 부족한 것이 항상 아쉬울 따름이네요.”

손헌이 찻잔을 들면서 우창에게도 권했다.

“자, 차가 마련되었으니 식기 전에 마시면서~!”

황금빛으로 우러난 차의 향긋함이 방안을 감돌았다. 우창도 춘매도 처음 맛보는 차였다. 물론 차의 이름도 처음 들었다. 그렇게 차를 한 잔 마시고는 다시 우창의 질문이 이어졌다.

“술객(術客)들은 미래를 정확하게 맞추는 것을 목표로 삼는 것이 일상이라고 알고 있습니다만, 오늘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그것만이 능사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동안 어떤 경험을 하셨는지 듣고자 합니다.”

“우창에게 묻겠네. ‘장차 정해질 것’을 판단하는 것과  이미 ‘정해진 것’을 판단하는 것이 무슨 차이인지는 이해하는가?”

“우창이 그 말씀을 이해하기로는 그러니까 예를 들어서 개가 내일 새끼를 낳는다고 했을 적에 몇 마리의 새끼를 낳게 될 것인지는 이미 정해졌고 그것을 어떤 방법으로 미리 알 수가 있다면 이것은 정해진 것을 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것을 알아내는 일이 쉬운 것이겠는가?”

“어렵고도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그러한 것을 알아보려고 시도하지만 뜻을 이룬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미 결과(結果)가 정(定)해진 것을 미리 알고자 하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그건..... 미쳐 생각해 보지 못했습니다. 가르침을 주시기 바랍니다.”

“단순한 호기심(好奇心)이네. 남들보다 먼저 알았다는 자랑을 하고 싶은 마음이 만들어 낸 부질없는 장난일 따름이지.”

“왜 그렇게도 많은 사람이 그것을 알고자 하는지 궁금했습니다만, 결국은 호기심이 만들어 낸 것이었습니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네. 가령 ‘내일 너희 집 개가 새끼를 여섯 마리 낳을 텐데 그중에 네 마리는 암컷이고 두 마리는 수컷이다.’라고 했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면 이것은 대단한 일인가?”

“예, 그렇습니다. 참으로 놀라울 정도로 대단한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그를 일러서 ‘무불통지(無不通知)한 도사’라고 칭하기를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아마도 그렇겠지?”

그러자 이야기를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듣고 있던 춘매도 한마디 거들었다.

“정말 그런 도사가 있다면 저도 꼭 가서 저의 미래를 물어보고 싶을 거예요.”

춘매가 동의를 하자 이번엔 손헌이 춘매에게 물었다.

“그런가? 왜?”

“왜라니요. 내일 일어날 일을 오늘 훤하게 알 수가 있는 사람이라면 내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도 그렇게 알고 있을 거잖아요. 그런 사람이 있으면 꼭 물어보고 싶죠.”

그러자, 이번에는 옆에서 열띤 이야기에 조용히 미소를 머금고서 귀를 기울이던 주 낭자를 바라보고 물었다.

“화진아, 네 생각은 어떠하냐? 지금 춘매가 하는 말대로 너도 찾아가서 자신의 미래를 물어보고 싶으냐?”

손헌의 물음에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맑고 청아한 음성으로 말했다. 우창은 그녀가 말하는 모습이 참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다. 더구나 말하는 내용에 대해서는 존경심마저 생길 지경이었다.

“제자에게 물으시면 귀를 막고 꽃놀이나 나가겠어요.”

“아니, 그건 또 왜?”

“그런 말을 하면서 자신이 우쭐대는 것은 어린아이의 생각에 불과한데 그것을 듣고서 또 찾아가서 만나려고 한다면 같은 류(流)에 불과할 따름이지 않을까 싶어서죠.”

그러자 춘매가 놀라서 물었다.

“아니, 동생이 지금 진심으로 말하는 거야?”

주 낭자는 의연하게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언니는 아직도 호기심이 왕성하네. 그게 항상 부러워. 호호~!”

“어서 그 이유나 설명해 줘봐. 내가 바보가 된 것 같잖아.”

“언니, 만약에 개의 뱃속을 들여다보는 기계가 있다고 한다면, 그 기계로 들여다보고서 강아지가 여섯 마리라고 한다면 그래도 신기할까?”

“그건 전혀 신기할 일이 아니지. 눈으로 보고서 맞추는 거야 누군들 못하겠어? 문제는 보지 않고서 알 수가 있다는 것이잖아?”

“그게 혼란술(昏亂術)이야. 사람을 미혹(迷惑)하게 만들어서 자신의 이득을 취하는 것이니까.”

“아니.... 그게.... 왜 난 이해가 잘 안 되지? 뭔가 대단한 것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아직도 가시질 않아. 더 쉽게 설명해 줘봐.”

“언니는 투시술(透視術)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있어?”

“들어 본 것도 같은데 자세히는 모르겠어. 그게 뭐야?”

“눈을 감고서 앞에 놓은 그릇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를 맞추는 것과 같아. 그것은 다른 방법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그냥 투시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야. 다만 그냥 보인다고 하면 사람들이 우습게 생각하니까 점괘를 뽑는 척도 하고, 하늘의 별을 보거나 손가락의 마디를 보면서 궁리하는 척을 하는 것이야.”

“그....래....도....”

“언니, 야바위꾼에 대해서 들어 봤어?”

“들어보기만 했겠어? 매일 공자묘 부근에서 사람들을 불러모으고는 ‘돈을 놓고 돈을 가져가라~!’는 소리를 귀가 따갑게 들었는데 뭘.”

“잘 아는구나. 그들이 하는 일은 자연의 이치에 부합이 될까?”

“도박이 무슨 자연의 이치겠어? 사람을 현혹(眩惑)시켜서 주머니의 돈을 빼앗는 사술(邪術)이라면 또 몰라도.”

“말하자면 그들보다 조금 더 수준이 높은 사술이라고 보면 되는 거야.”

“아무리 그래도 뭔가 석연치 않은걸. 왜 산뜻하게 이해가 되지 않지?”

“오늘 내가 언니를 이해시킬 수가 있으려나 모르겠네. 아무래도 역부족인가봐. 스승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낫겠다. 호호~!”

더 이야기를 해 봐야 답이 없을 것으로 생각한 주 낭자는 슬쩍 손헌에게 떠넘기고는 입을 다물었다. 춘매도 주 낭자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신이 답답했는지 손헌의 말을 기다린다는 듯이 시선을 돌렸다. 두 여인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손헌이 말을 꺼냈다.

“허허~! 화진이 강적을 만났구나. 춘매를 감당하지 못하고 내게 떠넘기는 것을 보니 말이다. 허허허~!”

“할아버지께서 설명해주셔야 하겠어요. 왜 남의 대단한 기술을 하찮은 것이라고 말하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아요.”

“춘매의 열정이 곱구나. 그럼 물어보자. 이미 정해진 것은 바뀔 가능성이 1할이라도 있을까?”

“이미 정해진 것이 바뀔 가능성은 전혀 없어요. 가령, ‘저녁에 해가 서산으로 넘어갈 것’이라고 예언을 했다면 바뀌는 것은 1할은 그만두고 1푼도 바뀔 수가 없는 것과 같잖아요?”

“개가 여섯 마리의 새끼를 낳을 것이라는 상황은 바뀔 수가 있을까?”

“그것도 바뀔 수가 없죠. 이미 그렇게 되도록 결정이 난 것이니까요.”

“이미 결정된 것에 대해서 마치 스스로 결정을 했다는 듯이 말하는 것으로 자신이 뛰어나다는 것을 자랑하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일까?”

“예? 그건..... 와~! 이건 자칫하면 할아버지의 말씀에 정신을 빼앗기고 말겠어요. 묻지 말고 답만 알려 주세요. 머리가 지끈거리려고 해요.”

“그것은 흡사 ‘남의 떡으로 제사를 지내는 격’이라는 말이네. 이미 결정이 된 것을 마치 자신이 뭔가를 해서 그렇게 된 것처럼 수작을 부리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지. 가령 옛날의 왕이나 제사장은 한 시진(時辰:120분) 후에 천지가 개벽이 된다고 주장을 하지. 그러면 설마 그런 일이 있으랴.... 하고 있는 백성들이 하늘이 점차로 어두워지는 기이한 장면을 접하게 되고, 그제야 왕의 말이 맞았다는 것을 알고는 놀라움과 두려움으로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왕에게 묻게 되지. 그러면 왕이 말하는 거라네. ‘백성들은 조금도 걱정하지 말라, 내가 다시 원상태로 되돌려 놓을 것이니라.’라고 하면서 주문을 외우는 거지. 그렇게 다시 반 시진이 지나고 나면 세상이 밝아지게 되고, 이것을 사람들은 그 왕의 초능력이라고 믿고는 더욱 열심히 통제를 따르는 것과 같다고 할 수가 있지.”

“아니, 그건 일식(日蝕)으로 인해서 생기는 것이잖아요?”

“오~! 그런가? 그건 어찌 아는가?”

“그야 배웠으니까 알죠. 전혀 신기할 일이 아닌데요?”

“지금 화진과 춘매의 대화가 바로 그와 같은 거라네. 허허허~!”

“예? 그럼 제가 몽매(蒙昧)한 백성? 에구~! 할아버지 너무 편파적이신데요? 어떻게 그런 말씀을 하실 수가 있어요? 호호~!”

“그래 웃자고 한 말이네. 다만 중요한 것은 이미 정해진 것을 남보다 미리 안다고 해서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말이네. 그런 말을 하는 이유는 민심(民心)을 현혹해서 자신의 이득을 취하려는 목적이 아니고서는 전혀 말을 할 필요가 없는 일이거든.”

“그래도 신기하잖아요?”

“신기하지. 그 신기함에 인생을 걸어야 할까? 인생뿐이겠는가? 어쩌면 많은 재물을 걸어야 할 수도 있지. 그러한 것을 배우려는 사람을 두고 말하는 것이라네. 그것을 알아서 무엇에 쓰려고 그렇게도 안달을 하는 것인지를 생각해 보게나.”

이야기를 흥미롭게 가만히 듣고 있던 우창이 말했다.

“선생님의 말씀으로는 허망한 것에 인생을 허비하고서 얻은 것은 고작 신기함이라는 뜻인가 싶습니다. 우창이 바로 이해를 한 것입니까?”

“맞아, 잘 이해하셨네. 이제 전에 식당에서 내가 한 말이 이해가 되는가?”

“그때 하신 말씀은 정말로 그릇 안에 있는 것을 맞췄다면 그것은 가치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이 항상 기억에 남아서 의문이었는데 오늘에서야 그 의미를 깨달았습니다. 노력하는 것은 가치가 있지만 이미 알고 있는 것은 놀이에 불과하다는 뜻으로 이해하면 되겠습니까?”

“물론이네.”

“다시 의문이 생겼습니다. 그렇다면, 미래를 예측(豫測)한다는 것은 전혀 의미가 없다는 말씀입니까?”

“원, 그럴 리가 있나. ‘정해진 것’이야 알거나 말거나 달라질 것이 전혀 없으니까 제외하더라도, ‘정해질 것’에 대해서는 그래도 변화의 여지가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그런 이치를 찾아서 노력하는 것에는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봐도 되겠지.”

“예? 정해질 것이 말입니까? 그것은 또 어떤 것을 말씀하시는 건지요?”

“아, 기정(旣定)과 미정(未定)을 말하는 것이라네. 허허허~!”

손헌은 이렇게 말하고서 주 낭자를 바라봤다. 그 점에 대해서는 네가 설명해 보라는 뜻이었다. 그러자 주 낭자가 다시 뜨거운 물을 가져와서 차를 넣고 우리는 사이에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