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5] 제22장. 연승점술관/ 14. 천간(天干)의 변화(變化)

작성일
2020-07-20 0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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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45] 제22장. 연승점술관(燕蠅占術館)


14. 천간(天干)의 변화(變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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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마셔~!”

우창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춘매가 철관음(鐵觀音)을 가득 따라준다. 구수한 차의 향이 방안을 감돌아서 마음도 느긋해졌다. 차를 마시는데 춘매가 또 모아 뒀던 궁금한 것들을 퍼부었다.

“합이 재미있어서 좀 생각해 봤어. 그러니까 정임합(丁壬合)은 애정지합(愛情之合)이고, 병신합(丙辛合)은 사제지합(師弟之合)이고, 무계합(戊癸合)은 관민지합(官民之合)이면 갑기합(甲己合)은 무슨 합이라고 해야 하는지를 생각해 봤는데 전혀 모르겠네. 이건 어떻게 설명해 줄지 기대하고 있었어.”

“누이는 갑기합(甲己合)의 별명이 뭔지는 알지?”

“그건 알아. 중정지합(中正之合)이잖아. 그런데, 중정(中正)이 뭐야? 중심(中心)이 바르다는 뜻인가? 오빠가 해석하는 식으로 풀이를 해보려고 자꾸 시도하는 거야. 흉내라도 내고 싶어서 말이야. 호호~!”

“잘 하고 있는 거야. 원래 공부를 한다는 것은 어린아이 말 배우는 것 같은 거야. 자꾸 흉내를 내면서 옹알거리다가 보면 어느 사이에 말을 배워서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게 되는 거지.”

“아, 그렇구나. 근데 중정지합의 진짜 뜻이 뭐야?”

“거래지합(去來之合).”

“거래? 오고 가는 것? 그게 뭐지? 그게 왜 중정이지?”

“말하자면 상거래(商去來)이고 물물교환(物物交換)이지. 주고받는 것으로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갑기합에 포함되어 있다고 보면 되는 거야.”

“그래? 설명을 들어도 이해가 되지 않네.”

“원래는 농부(農夫)의 합이라고 할 수 있지. 점차로 세상이 복잡해 지면서 상거래로 전환되는 거야. 농부가 콩을 열 가마니 수확하면 그것을 다 쌓아놓고 먹나?”

“먹을 만큼만 두고서 팔아야 쌀과 바꿀 수가 있는 거잖아?”

“그렇지? 그래서 거래하는데 올바르게 해야지 편중(偏重)된다면 거래가 이뤄질까?”

“분쟁이 생기겠네.”

“분쟁이 생기지 않게 하는 합의서(合意書)가 되는 거야. 내 콩을 한 가마니 줄 테니까 당신은 쌀도 한 가마니를 달라는 합의인 셈이지. 그런데 피차에 조금이라도 덜 주고 더 받고 싶은 마음이라서 종종 분쟁이 생기게 되는 거야. 그래서 마침내 관청(官廳)에서 중재(仲裁)하는 상거래법을 만들게 되었던 것이지 이것이 합의서야 그러니까 이것이 합이 아니고 뭐겠어?”

“아하~! 그 합이 이 합과 같은 것이었구나.”

“이렇게 합의서를 만드는데 사랑은 개입되었을까?”

“거래하는데 무슨 사랑이 개입되겠어? 오히려 사랑이 개입되면 거래가 공정(公正)하게 이뤄지겠어? 그래서 중정(中正)으로 공정하게 하라는 거야. 하하~!”

“애정지합을 생각했지. 그래서 다른 합도 사랑이 포함되어 있나 싶어서 물어 본 거야. 호호호~!”

“합은 사랑이 아니고 반드시 두 사람의 필요에 의한 계약(契約)이 되는 것으로 알아 두라는 말을 하는 거야. 하하~!”

“그렇다면, 상거래를 하는데 누가 갑(甲)이고 누가 기(己)야?”

“당연히 돈을 가진 쪽이 갑이지. 값을 정하는 쪽이 갑이니까. 농부는 값을 정할 줄을 몰라. 그냥 준다는 만큼에서 합의하고, 정이나 억울하면 조금 더 달라고 할 수는 있지만 돈 가진 자를 이길 수는 없는 거야.”

“혹시 그것이 거북이 껍질과는 무관한 걸까? 공 할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눴던 것처럼 갑(甲)이 있으니까, 난 혹시 그와 연관해서 어떤 해석이 나오는 것은 아닐까 싶었는데 그 이야기는 안 하네?”

“아, 거북이. 낙서(洛書)의 이야기가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었던가 보구나. 하하~!”

“너무 재미있었거든. 그러니까 거북이와 연결해서 설명할 수가 있으면 그것도 좋겠다고 생각했지.”

“보자..... 갑이 거북이라면 거북의 껍질에 돈의 가치를 기록해서 통용되었을 수도 있겠네. 그것을 바탕으로 물건을 주고받는다면 절대로 안 된다는 생각을 하진 않아도 되겠다.”

“아, 그렇게 대입하면 이해를 할 수도 있겠구나. 여하튼 돈과 물건의 합이라고 보면 된다는 거지? 하긴, 돈을 가진 자는 물건이 필요하고, 물건을 가진 자는 돈이 필요하니까 합이 되는 것은 틀림없네. 정말 재미있네. 갑기합은 거래지합인 걸로 보면 정리가 되네. 그리고 거래가 성사되면 합의가 된 것이고, 그것이 바로 합인 것이니까 서로가 만족하거나 혹은 양보하는 합의를 하게 되니까, 그것에 맞게 하면 비로소 제대로 합이 된 것이었구나. 하긴, 내가 손님의 몸을 안마해 주고 대가로 받는 비용도 결국은 갑기합인가?”

“옳지. 바로 그거야. 어디에서나 간합의 이치를 찾아내서 적용하면 그게 바로 깨달은 것이지. 그리고 누이가 받고 싶은 만큼 받으면 합이 흡족한 것이고, 원하는 것보다 부족하면 아쉬운 합이 되는 것이라고 하면 되겠네.”

“와우~! 간합이라는 것이 여섯 번째와 무조건 합이라고 하니까 이론적으로만 만들어진 것 같아서 이런 것을 일없이 외워서 어디에 써먹겠느냐는 생각도 했었거든. 오빠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이런 것을 어떻게 생각이나 할 수 있었겠어? 정말 고맙기가 이루 한량이 없어.”

“그렇다면 누이와 내 관계에서도 간합의 이치가 보이는지 찾아볼래?”

“그야 가장 먼저 병신합이잖아. 멋진 스승과 열성적인 제자이니 정작용의 합인 것도 알겠다. 맞지? 호호~!”

“맞고 말고, 또?”

“어? 또 있었나? 그 나머지는 모르겠는데?”

“갑기합도 찾아봐야지?”

“거래지합도 있었나? 그건 모르겠네.”

“누이는 내게 밥을 해주고, 나는 누이에게 공부를 가르쳐 주니까 이것도 갑기합이 되는 거야.”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그것도 따지고 보면 거래가 맞기는 하네. 그래도 그렇게 따지고 싶진 않아. 그냥 성의라고 생각하면 안 돼? 너무 인정머리가 없어 보이잖아?”

“이론적으로는 그렇게 대입할 줄도 알아야지. 물론 정성으로 받는 것은 또 받는 것이고.”

“아, 알았어. 오래도록 거래지합이 유지되었으면 좋겠어.”

“그리고, 우리 사이에 무계합도 찾을 수가 있을까?”

“그건 분명히 알겠어. 무계합의 작용은 없어. 권력자와 순종하는 사이는 아니니까 말이야. 딱 잘라서 말할 수 있겠어.”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누가 누구를 지배하고 다스리는 이치를 적용할 수는 없는 것으로 봐서 없다고 봐야 하겠구나.”

“근데, 이제 하나가 남았잖아? 을경합(乙庚合) 말이야. 그것도 마저 설명해 줘. 기대된다. 을경합이 왜 풍월지합(風月之合)인지는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단 말이야.”

“그건 나도 모르겠네. 어디 생각을 좀 해 볼까?”

“뭐야? 내일 아침에 해가 서쪽에서 뜬다는 말은 믿어도 오빠가 모른다는 말은 안 믿지. 어서 말을 해 줘.”

“아무래도 누이가 보는 나는 과대포장이 되어있는 듯하다만, 어쨌든 궁리를 좀 해보자. 풍월(風月)이 무슨 뜻이지?”

“풍월은 시나 노래를 읊고 노는 것을 말하는 건가? 그건 해보지 않아서 나도 잘 모르겠네.”

“원래의 뜻은 음풍농월(吟風弄月)이라는 뜻이야. 바람을 노래하고, 달을 희롱하는 것이지.”

“바람을 노래하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여기에서 바람은 풍속(風俗)이나 유행(流行)하는 것을 말하는 거야. 왕이나 벼슬아치들을 대상으로 희롱을 하거나, 밤에 주루(酒樓)에서 여인들을 희롱하는 것을 말하는 거지.”

“그렇구나. 그런데 왜 그게 을경합인 거야?”

“을(乙)은 유상(類象)이 뭐라고 했지?”

“갑(甲)은 동물(動物)이고 을은 식물(植物)이잖아.”

“식물에서 답을 찾아보려고 하는 거야.”

“오빠도 정말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이 맞구나, 그럼 내가 오빠의 지혜 주머니를 채워주는 공덕을 쌓는 것이 맞지?”

“맞아. 나도 처음 생각해 보는 거야. 그러니까 모른다고 하지. 하하~!”

“오빠도 모르는 것이 있다는게 신기할 뿐이야. 그런데 식물이 을목이라고 한다면 경은 주체(主體)인데 어떻게 대입하는 것이 맞지? 그것이 참 어렵긴 하구나. 오빠도 이 연결점을 찾지 못했던 건가?”

“누이도 어렵지? 이것을 어떻게 풀어야 할 것인지 방법이 묘연(渺然)하네. 주체와 식물이라....”

“근데, 식물이라고 생각하면 막연하나 꽃으로 보면 뭔가 답이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 꽃을 풍월과 연결하면 화류계(花柳界)가 떠오르고, 화류계는 여인들이 모여있는 주루(酒樓)와 연결이 되잖아? 여기에서 혹 뭔가 찾아낼 고리가 있을지 생각을 해봐.”

춘매가 준 암시에서 뭔가 을경합의 실마리를 찾을 수가 있을 것인지를 생각했다.

“화류계라고? 그건 기발(奇拔)한 생각인걸. 뭔가 연결고리가 나올 것도 같다. 화류계의 어여쁜 여인들과 만나서 합을 이룰 사람을 찾으면 되겠잖아?  그런 사람은 당연히 한량(閑良)이지 풍류객(風流客)이라고도 하고.”

우창이 말하는 소리를 듣고는 춘매가 손뼉을 치면서 말했다.

“아항~! 이렇게 궁리하는 거였어? 오빠는 항상 이런 맛을 보면서 연구하고 있었던 거야? 더 깊은 이치를 설명해 줘봐.”

“이제 답은 나온 것이나 마찬가지야. 경(庚)은 주체이니 아무런 책임감도 없고, 부담감도 없는 자유로운 영혼(靈魂)이라고 볼 수가 있어. 이것은 적천수에서 말하는 「강건위최(剛健爲最)」라고 한 것도 같은 의미이지. 그 말은 아무런 눈치도 보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한다는 뜻이라고 보면 되겠네.”

“그야말로 본능의 마음이 하고 싶은대로 할 수가 있는 거네?”

“맞아, 풍류객은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이지. 그래서 멋을 부릴 수가 있는 거야. 관원(官員)이나 부모(父母)는 그렇게 살아갈 수가 없으니까.”

“아하~! 그렇게 정리가 되는구나. 그러니까 자유롭게 살아가는 사람이기에 흥이 나면 주루에 찾아가서 기녀(妓女)들과 수작(酬酌)을 하면서 풍류를 즐기게 되니 이것이 바로 풍월지합(風月之合)이란 말이지?”

“오호~! 제대로 이해했구나, 멋지다~!”

“멋지긴, 오빠가 다 풀어놓은 것에 숟가락만 얹은 건데 뭘. 그렇긴 해도 오빠랑 같이 뭔가를 했다는 것이 이렇게 즐거운 것이구나. 호호~!”

“누이가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덩달아 행복하군. 앞으로도 그러한 맛을 볼 기회는 무수히 많을 거야. 미리 축하해도 되겠네. 하하~!”

“고마워. 나도 항상 오빠의 칭찬을 받고 싶어. 칭찬을 받으면 오늘을 잘 살아가고 있는 것 같으니깐. 이렇게라도 을경합에 대해서는 우리가 같이 연구했다고 생각하고 싶으니까 말이야. 그런데 이것의 정작용과 반작용은 어떻게 이해를 하면 될까?”

“그야 어려울 일이 없지. 학문을 열심히 연마(鍊磨)해도 긴장감이 쌓이기 마련이고, 관리가 국정(國政)을 열심히 살피더라도 긴장감은 쌓이기 마련이지. 그러한 경우에 잠만 잔다고 해서 모두가 해소되지는 않아. 그러니까 여흥(餘興)과 오락(娛樂)을 즐기면서 다 털어버리고는 다시 새로운 기운으로 충전(充電)하는 것이 필요하지. 그리고 기본적인 의미로는 주루에서 기녀들과 술과 노래로 즐기는 것이지만 변화를 생각해 보면 우리가 닭고기 튀긴 것과 고량주를 사이에 놓고 담소하면서 먹은 것도 또한 풍월(風月)합인 거야.”

“와, 의외로 가까운 곳에서도 적용이 되는구나.”

“그렇지.”

“그런데, 반작용(反作用)은 뭘까?”

“좋게 끝내면 반작용이 없지. 항상 무리(無理)하게 되면 반작용으로 이어지는 것이니 정작용과 반작용은 손바닥의 앞뒤와 같은 것이지.”

“그렇다면 반작용은 술독에 빠져서 헤어나지 못하거나 기생에 정신을 빼앗겨서 가산(家産)을 탕진(蕩盡)하는 것이겠구나. 맞아?”

“옳지~!”

“그렇게 주루에서 흥을 즐기다가 남녀 간에 마음이 맞으면 어떻게 되는 거야? 그렇게 헤어지고 마는 거야?”

“마음이 맞으면 다음 단계는 정임합으로 이어지겠지?”

“와우~! 이제 뭔가 서로 한 줄에 꿰어지는 것도 같아. 가만있자.... 그렇게 정임합이 되면 다음 단계는 어떻게 되지? 무계합?”

“그건 또 왜?”

“여인에게 빠진 남정네는 남에게 나눠주기가 싫어서 혼인하거나 이미 본처(本妻)가 있으면 첩(妾)으로 삼잖아? 그렇게 되면 주종(主從)의 관계가 되니까 그것을 무계합이라고 하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문득 들었지 뭐야.”

“첩으로 삼았으면 존귀하게 받들지 않고?”

“그게 바로 갈 때 마음과 올 때 마음이 다르다는 거잖아? 일단 자기가 마음대로 할 수가 있으면 문밖에는 나가지도 못하게 할 테니까 그것이야말로 무계합의 부작용일 수도 있겠네.”

“그런 것도 잘 아는구나. 당연히 말이 된다고 봐야지.”

“또, 첩으로 삼진 않더라도 언제나 자신에게 우선권을 부여받는 것이 기둥서방이잖아? 이것은 무슨 관계에 해당이 될까?”

“갑기합.”

“아, 웃음을 주고 돈을 받는구나. 그건 꼭 우선권이 아니라도 거래가 되는 거네? 어차피 술을 마시러 가면 화대(花代)를 반드시 내는 것이니까 말이야.”

“이제 간합의 공부는 졸업해도 되겠다. 누이의 궁리가 허공을 나는 제비처럼 자유자재(自由自在)로군.”

“그럼 간합(干合)에 대해서는 잘 이해를 한 거지?”

“간지합(干支合)까지 다 이해를 했으니 여기에 더 보탤 것은 없겠군.”

“맞다. 간지합도 정리를 해봐야지. 그러니까 간지합은 정해(丁亥), 무자(戊子), 신사(辛巳), 임오(壬午)의 네 가지인 거지? 그런데 병술(丙戌)은 병신합(丙辛合)이 안 되나?”

“물론 그것도 간지합이긴 하지. 다만 작용이 미미하여 거론할 수가 없는 것으로 보면 될 거야. 만약에 그러한 것을 모두 논한다면, 병술(丙戌)은 병신합(丙辛合), 무진(戊辰)은 무계합(戊癸合), 경진(庚辰)은 을경합(乙庚合), 을사(乙巳)의 을경합(乙庚合)도 합으로 볼 수는 있으나 지장간(支藏干)의 비중이 5할[50%]이 되지 못하니까 논외(論外)로 하는 거야. 물론 나중에 그러한 간지의 작용을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을 거야.”

“오빠의 말을 듣고 보니까 비록 비율의 차이로 인해서 영향력은 다르겠지만 그런 것까지 고려한다면 간지합은 꽤 많구나. 그럼 모두 몇 가지인 거지? 을사, 병술, 무진, 기해, 경진의 다섯 간지는 비중은 적지만 간지합의 의미는 있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면 되는 거지?”

“그래 맞아, 나중에 심심할 적에 그 부분에 대해서도 궁리해 보자꾸나.”

“간합의 이치가 이렇게 가까이에 있을 줄은 생각지 못했잖아. 정말 알고 보니까 인생사의 전반에서 간합이 작용하고 있었네. 특히 관계가 생기면 그것은 어떤 형식으로든 합의 관계와 연결이 된다는 것을 알고 보니까 참 신기하고 재미있어. 호호~!”

“나도 천간(天干)을 궁리할 때마다 어느 고인이 합을 찾아냈는지 참으로 놀랍다는 생각을 하곤 했어. 하하~!”

“어? 오빠 배고프겠다. 공부에 빠져서 끼니때가 되었다는 것도 몰랐네. 얼른 점심을 준비할게. 뭐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말해봐.”

“잔치국수~!”

“아, 국수? 좋지. 조금만 기다려 얼른 준비할 테니까 반시진(半時辰:60분) 후에 건너와. 돼지고기를 튀겨서 국수를 만들어 먹자.”

“배고프지 않으니까 천천히 해도 돼.”

춘매가 점심을 챙기러 건너가고 나자 우창은 간합의 이치를 정리했다. 기본형의 의미 옆에다가 오늘 정리한 내용을 첨가(添加)했다.

甲己合: 중정지합(中正之合) --- 거래지합(去來之合)
乙庚合: 풍월지합(風月之合) --- 유흥지합(遊興之合)
丙辛合: 위제지합(威制之合) --- 사제지합(師弟之合)
丁壬合: 음란지합(淫亂之合) --- 애정지합(愛情之合)
戊癸合: 무정지합(無情之合) --- 관민지합(官民之合)

이렇게 매일매일 춘매와 더불어 학문을 토론하고 궁리하면서 나누는 순간들이 노산에서는 맛보지 못한 새로움을 안겨 주었다. 그래서 인연의 복에 감사하는 마음이 가득 흘러넘치는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적어놓고 보니까 간합의 이치가 소상하게 느껴졌다. 이 이론의 머리에다가는 대인관계에 대한 간합이므로 「대인간합론(對人干合論)」이라고 이름을 붙이는 것이 적당해 보였다.

춘매가 점심을 마련하는 사이에 혼자서 꽃잎이 흐드러지게 핀 숲길을 천천히 걸으면서 봄의 풍경을 맘껏 즐겼다. 자신에게 올해의 운이 어떻게 작용하기에 이렇게도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도 잠시 자신의 팔자를 생각해 봤다.

245-1


올해의 태세(太歲)는 신미(辛未)이다. 금수(金水)가 필요한 팔자에서 신미(辛未)는 8할은 도움이 되는 해라고 봐도 되겠다. 비록 재성(財星)인 수(水)는 보이지 않더라도, 상관(傷官)인 신금(辛金)이 들어온 것만으로도 즐거울 수밖에 없는 호운(好運)이었다. 그렇다면 춘매가 상관의 역할을 하는 셈인가 싶기도 했다. 자신을 따르고 열심히 공부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함께하는 것도 우연이 아니라고 봐야 하겠다.

‘과연 팔자 도둑질은 못한다고 하더니....’

물론 재물복이 없는 것이야 이미 자신의 팔자에서도 그렇게 드러나고 있으므로 공부를 한 후로는 애초에 부유한 삶은 기대도 하지 않았다. 그냥 오늘 하루가 즐거우면 그것만으로도 만족이었는데, 하물며 팔자에서 재성(財星)이 연간(年干)에 무력하게 있을 뿐이고, 일지(日支)의 진중계수(辰中癸水)나 시지(時支)의 신중임수(申中壬水)는 모두가 지장간을 지키고 있으니 주머니에 넣고 다닐 재물은 없을지라도 언제나 굶지 않을 정도의 복을 타고난 것에 대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여기까지 궁리를 하다가 문득 춘매의 사주도 대입해 봤다.

245-2


신미년이 춘매에게는 아무래도 부담스러운 해라고 봐야 할 모양이다. 수목(水木)으로 방향을 잡는 팔자에서 본다면, 토금(土金)이 들어오는 해의 운은 기껏해야 3할이 된다고 보기도 어려운 흉운(凶運)인 셈이다. 그래서 사업적인 면에서 본다면 수익이 발생하기 어렵고 오히려 지출만 늘어나는 금극목(金剋木)의 현상을 염려해야 할 조짐이기도 하다. 그러나 춘매가 돈을 모으려고 하는 마음이 없고, 오히려 공부하려는 마음이기 때문에 이러한 흉작용은 크게 드러나기 어려울 것으로 봐도 될 것이다. 재물을 탐하면 비겁(比劫)이 나타나서 겁재(劫財)의 현상이 될 수도 있겠지만 공부를 하는 것에서는 오히려 그 문제는 그리 큰 의미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공부에 빠져들 때는 손님이 찾아오는 것도 거부하고 있는 것만을 봐서도 재물의 운이 안 좋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미중을목(未中乙木)이 있다는 것이다. 비록 왕성한 힘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의식(衣食)의 공급에는 큰 지장이 없을 것으로 봐서 눈칫밥을 먹는 것은 면할 수가 있지 싶어서 혼자 미소를 지었다. 따사로운 햇살을 받은 벚꽃이 반짝이는 하늘로 기러기들이 북으로 날아가고 있는 것이 한가로워 보였다. 철새들도 생존하기 위해서 바뀐 환경에 적응하느라고 분주하겠지만 우창은 아직 제비 둥지를 떠날 때가 덜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춘매의 지극한 봉사를 받으면서 오행을 가르치는 즐거움은 지금 포기할 때가 아니라는 생각과 함께, 춘매도 이제 한창 공부에 불이 붙었으니 아직은 더 챙겨줘야 하겠다는 생각을하면서 연승점술관으로 들어서려는데 춘매의 외침이 들려왔다.

“오빠~!”

점심이 준비되었다는 신호이겠거니 싶어서 얼른 건너갔다. 춘매가 있는 정성을 다 기울여서 푸짐한 점심을 마련했다.

“어서 먹자. 오빠가 고량진미(膏粱珍味)를 찾지 않고 소찬(素饌)이라도 항상 고맙게 먹어줘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네. 많이 먹어.”

“음식은 무엇을 위한 것인지를 생각해 보면 알지. 고량진미는 혀를 위한 것이고, 정갈한 음식은 몸을 위한 것인 줄만 안다면 괜히 쓸데없이 혀끝의 미각이나 탐할 일이 아니란 것은 자명(自明)한 일이잖아?”

“에구~! 또 설법(說法)하시는구나. 호호호~!”

“국숫값을 해야잖아. 이렇게 돼지고기를 넣은 국수라니 과분하고 말고지. 하하하~!”

“그렇게 생각해주니 고마울 따름이야. 어서 들어 국수가 붇겠네. 호호호~!”

“어떤 마음으로 먹었느냐에 따라서 약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하는 것이니까 말이야.”

“에구~! 그게 무슨 말이야? 당연히 고기를 먹으면 힘이 넘치고 시래기죽을 먹으면 힘이 빠지는 거잖아?”

“일리는 있으나 꼭 그렇지만도 않은 거야. 채식(菜食)만 하는 코끼리는 동물 중에서 가장 힘이 세잖아?”

“뭐야? 호호호~!”

“그러니까 즐거운 마음으로 거친 죽을 한 그릇 먹어도 그것이 바로 산해진미인 줄을 알고 달게 먹으면 몸에는 양약(良藥)이 되는 거야.”

“에구~ 알았어요. 샌님~! 어서 들어. 호호호~!”

따끈한 국물이 훈훈하게 몸을 데웠다. 더 바랄 것 없는 우창이었다. 이대로 행복한 나날이 이어짐에 대해서 천지신명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절로 들었다. 그러한 표정을 바라보는 춘매의 얼굴에도 흐뭇한 미소가 피어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