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4] 제22장. 연승점술관/ 13.간합(干合)의 실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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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15 0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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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44] 제22장. 연승점술관(燕蠅占術館)
13. 간합(干合)의 실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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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우창과 춘매는 공자묘를 한 바퀴 둘러보고는 돌아오는 길에 기름에 튀긴 닭을 한 마리 사가지고 돌아와서 점심으로 간단히 해결하고 우창은 점술관으로 돌아왔다. 잠시 후 춘매도 점심먹은 것을 대충 치우고는 뒤따라 왔다.
“오빠, 차 마시러 왔어~!. 오늘은 오룡차(烏龍茶)~!”
“그래 물이 곧 끓을 테니까 잠시만 기다려. 그러지 않아도 기름진 점심을 먹어서 입안이 상쾌한 오룡차가 마시고 싶었지.”
차를 마주하고 앉은 두 사람은 말없이 미소를 주고받았다. 그렇게 차를 한 잔씩 마시고 나자 춘매가 입을 열었다.
“어제 합(合)에 대해서 말해 줬잖아.”
“그래.”
“합의 뜻을 좀 상세하게 알고 싶어서 말야.”
“옳지. 잘 물었네. 어떤 말을 해 줄까?”
“합은 관계라고 했는데 그건 이해가 되거든. 그런데 간합(干合)은 오합(五合)이잖아? 다섯 가지의 관계가 세상을 살아가는데 전부 다일까? 갑(甲)이 기(己)를 만나서 합을 한다는데 글자의 순서로 본다면 여섯 번째의 글자끼리 만났다는 것에 불과하잖아? 너무 공식적인 것 같아서 마음에 와닿지는 않는단 말이야.”
“그래?”
“합을 한다는 것은 서로 사랑한다는 건가? 가령 갑(甲)은 기(己)를 사랑하고, 기는 또 갑을 사랑하는 것을 나타낸 것을 말하는 거야? 그게 어쨌다는 건지를 모르겠어.”
“참 소박(素朴)하기는. 하하하~!”
“왜? 내가 바보같은 질문을 한 거야?”
“누가 바보래? 소박하다고 했지. 동물들은 다른 합이 필요 없다고 봐도 되겠지. 삶이 단순하니까 오직 짝을 짓고 새끼를 낳는 것으로 삶의 전부를 보내게 되는 것이니까.”
“와, 그렇게 봐야 하는구나. 그렇다면 동물들의 자손 번식은 무슨 합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면 좋을까?”
우창의 말에 춘매가 얼굴이 살짝 홍조(紅潮)를 띄면서 말했다.
“음란지합(淫亂之合)이잖아? 정임합(丁壬合)은 음란지합이라고 한댔어. 옛날 그 도사 양반이.”
“그래, 잘 배웠군.”
“그 도사는 그렇게 알려줬어. 음란지합(淫亂之合)이라는 이름까지도 알아. 그때 공부를 가르쳐 준다고 하면서 늘 남녀의 성애(性愛)에 관한 이야기만 해서 공부를 포기하고 마음을 접었던 인연이기도 했잖아. 호호~!”
춘매가 과거를 회상하면서 말하자 우창이 다시 물었다.
“그런데 이름이 왜 음란지합일까?”
“아마도 그건 남녀의 성욕이 서로 만나서 정을 통하니까 그런 것이 아닐까? 나도 이름만 외웠지 어째서 그렇다는 것까지는 배우지 못했잖아.”
“이름에서 의미하는 뜻은 충분히 알겠어. 그런데 하필이면 좋은 뜻이 아니라 부정적인 느낌이 드는 음란(淫亂)을 이름으로 삼았겠느냐는 생각은 안 해 봤지?”
“그야 선생이 가르쳐 주니까 그런가보다 했지. 그러데 오빠의 말을 듣고 보니까 그렇기도 하네. 왜 그런 이름이 붙은 거지?”
“음란하다는 말을 하는 사람의 마음은 음탕한 사람일까? 아니면, 짐승처럼 성욕이나 채우려고 하는 하천(下賤)한 인간들이 탐닉(耽溺)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일까?”
“음.... 아마도 스스로 군자(君子)라고 생각하는 점잖은 사람이 붙인 이름이겠네.”
“비록 느낌은 안 좋아도 의미는 충분히 전달되니까 그대로 전해진 것으로 봐도 되지 않을까 싶군.”
“그럼 오빠라면 뭐라고 이름을 붙이고 싶은데?”
“글세, 내가 이름을 붙인다면 애정지합(愛情之合)이라고나 할까?”
“아하~! 훨씬 좋은걸. 긍정적인 느낌도 있고, 그러면서도 전할 것은 모두 담고 있잖아? 애정(愛情)과 음란(淫亂)의 차이는 엄청나네. 호호~!”
“어떤 현상에 대해서 이름을 붙인 것도 살펴볼 수 있으면 어떤 관점으로 그러한 이름이 명명(命名)되었는지 파악하는데에도 도움이 되지.”
“잘 알았어. 음란지합 이야기만 많이 했던 옛날 도사를 빨리 벗어난 것은 정말 잘한 거지?”
“그건 참 잘했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잠깐만 들어봐도 ‘이건 아니다’ 싶으면 얼른 방향을 전환하면 현명한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우창의 말에 춘매가 말했다.
“맞아, 바로 그런 느낌이었어.”
“만약에, 10년을 열정적으로 공부의 인연이 되었더라도 한순간에 뭔가 다른 모습을 봤다면 즉시로 정리하는 것도 잘하는 일이라고 해야겠지.”
우창의 말에 춘매도 느낀 바가 있었던지 얼른 맞장구를 쳤다.
“그러니까 말이야. 선생의 감언이설(甘言利說)에 속아서 질질 끌려다니다가 모든 것을 잃었던 사람도 내가 알고 있어. 그런데 끌려다니는 사람도 알고 보면 자기중심이 없어서 그런 게 아닌가 싶어. 남들은 다 알고 있는데 헤어나지 못하는 것을 보면 말이야.”
“그게 바로 합이라는 거야. 합이 되면 헤어나지 못하고 끌려다니는 것도 항상 볼 수 있는 일이거든.”
그러자 춘매가 다시 물었다.
“남녀의 사랑에도 부작용이 있을까? 서로 사랑하면 행복한 거잖아? 그 외에 또 무엇이 있겠어?”
“선남선녀가 만나서 사랑하고 자식을 키우면서 행복하다면 이것은 어떤 작용일까?”
“그걸 말로 해야 하나? 당연히 아름답고도 바람직한 현상이잖아.”
“그럼 사랑해서 결혼했는데 남자는 노름과 방탕으로 집에도 들어오지 않고 가족을 고통스럽게 한다면?”
“아하~! 그게 사랑의 부작용이구나. 사랑한다고 하는 말에 속아 결혼한 여인네가 한평생 눈물로 살아가는 것이 그 소식이었네. 맞지?”
“그런 사람이 어디 한둘이겠어?”
“천지삐까리지뭐.”
“뭐라고? 그건 무슨 말이야?”
“엄청나게 많다고. 호호호~!”
“그렇다면 누이도 이제 비로소 정임합을 이해했다고 해도 되겠네.”
“아직 하나도 모르겠는데? 사랑의 부작용이 정임합이란 말이야? 사주에 정임합이 있는데 그것이 흉작용을 한다면 남녀의 관계에서도 흉한 결과가 나타난다고 보면 되는 건가?”
“아니.”
“그럼 어떻게 봐야 하는 건데?”
“단정적으로 말을 할 것이 아니라 ‘그렇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봐야지.”
“아, 가능성~!! ‘그렇게 된다.’고 하면 안 되는 거네?”
“그런 때는 눈치가 잘 돌아가는군. 맞아.”
“하긴, 뭐든 단정하여 말하면 그것이 오류(誤謬)인 거지?”
“말인둥~!”
“그럼 사주에 정임합이 없으면 사랑도 못하는 건가?”
“세상에 그런 이치가 있겠어? 다만 정임합으로 논하지 않을 뿐이지.”
“정임합은 애정지합이라면서? 애정합이 없는데 그것으로 남녀의 인연을 논하지 않으면 무엇으로 논하지?”
“그냥 말하지 않는 거야. 합이 사주에 있거나 없거나 누구라도 사랑하고 고통받고 또 그렇게 치유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라고 봐야지.”
“사주에 매이지 말고 인생의 전반적인 것에서 살펴봐야 하는 거네?”
“옳지~! 모처럼 맞는 말을 하는구나. 하하~!”
“잘 알았어. 그런 거였구나.”
“그래서 ‘합유의불의(合有宜不宜)’라고 하는 거야.”
“그런 멋진 말은 어디에서 배웠어?”
“적천수(滴天髓).”
“그 책이 참으로 대단하네, 나도 좀 가르쳐 줘봐. 유식한 소리도 좀 해보고 하게 말이야.”
“그러렴. 마음만 먹으면 배우는 것이야 뭐가 어렵겠어. 하하~!”
“스승을 잘못 만나서 끌려다니면서 인생을 허비하는 것도 합으로 설명할 수가 있는 거였단 말이지?”
“아무렴. 그것이 바로 병신합(丙辛合)이지.”
“뭐라고? 왜 그게 병신합이야?”
“뭘 좀 안다고 생각되는 사람에게 엮이면 꼼짝하지 못하고 끌려다니는 것이니까.”
“그럴 수밖에 없기도 하겠네. 근데, 왜 헤어나지 못하는 걸까?”
“신(辛)은 어리석음이고 어리석은 사람은 오로지 빛이라고 생각되는 대상에게 맹목적으로 헌신하는 것이니까. 이상한 종교나 사람에 빠져서 가산(家産)을 탕진하고, 인생도 망치는 경우도 모두 병신합의 반작용(反作用)이라고 봐야지.”
“와우~! 오빠 멋지다~!”
“내가 누이에게 바른 이치를 알려줬다면 이것도 병신합이고, 다만 정작용(正作用)인 점이 다르겠군.”
“반작용은 알겠는데 정작용은 또 뭐야?”
“길흉이라고 한다면 길작용이라고 하겠지만 이것은 길흉으로 볼 수가 없으니 스승을 따라서 공부하는 것은 모두가 병신합이라고 전제(前提)하고 그중에 제대로 된 방향으로 공부를 해서 자신의 내면을 숙성(熟成)시켜 간다면 올바른 작용이니까 정작용이라고 하겠고, 그렇지 못하면 공부를 한다고 노력은 했는데 결과는 심신(心身)에 상처만 받고 말았다면 그것은 반작용이라고 하면 되지 않을까 싶군. 이해가 되나?”
“아, 그런 뜻이었구나. 자상하게 설명을 해 주니까 비로소 이해가 쏙쏙 되네. 그러니까 이렇게 공부가 잘될 적에는 정작용으로 가다가, 오빠가 어느 순간에 본성을 상실한 것이 보이면 얼른 떠나면 되는 거란 말이잖아?”
“옳지, 제대로 잘 이해했다. 하하~!”
“설마 농담을 진담으로 듣는 건 아니겠지? 호호~!”
“농담이 아니라 올바른 말이야. 항상 등하불명(燈下不明)이니까, 조심해야지. 어제는 어제일 뿐 오늘이라고 해서 어제를 따라가면 안 된단 말이야.”
“너무 정색하진 말아. 그렇게 하면 무섭단 말이야. 호호호~!”
“그게 스승의 몫이야. 항상 제자가 올바른 길에서 벗어나고 있는지를 걱정하게 되니까 말이지. 하하~!”
우창이 정색을 하고 말하자 춘매도 다시 장난기를 지우고 말했다.
“아, 그렇구나. 그런 생각까진 못했네. 행여 농담이라도 그런 말은 안 할게. 그런데 병신합(丙辛合)은 왜 위제지합(威制之合)이라고 할까?”
“위제를 풀이해 보면 위엄(威嚴)과 통제(統制)를 의미한다고 보면 되겠지.”
“그래, 뜻은 알겠어. 그런데 병신합이 위엄과 통제를 의미하느냔 말이지. 스승과 제자의 인연에 그런 의미가 있는 걸까?”
“스승의 위상(位相)이 어느 정도인지를 생각해 보렴.”
“오빠의 말을 들으면서 생각해 보니까 옛날부터 원래 스승의 그림자도 밟으면 안 된다는 말이 떠오르네? 이것을 두고 말하는 것일까?”
“맞아, 그 정도라면 위엄과 통제의 의미로 충분하겠는걸. 하하~!”
“간단하게 해석이 되는 거였네? 호호호~!”
“그러니까 누군가로부터 배워야 한다는 절대적인 가치를 위해서 존재하는 스승을 만난다는 것은 병신합의 의미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면 되었네.”
“그래서 스승 복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구나. 복이 있으면 인품이 고상하고, 적극적으로 바른길을 알려주려고 노력하는 스승을 만나게 되겠지만, 스승의 인연이 흉하다면 가르치는 것은 스승이 자신의 사욕(私慾)을 채우기 위해서 던져주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겠고, 그것을 빌미로 또 자유를 속박하고 갈취할 수도 있을 테니 말이야.”
“옳지~! 말을 잘했어. 그것이 무슨 이치일까?”
“뭐가?”
“이런 사제(師弟)도 있고, 저런 사제도 있는 것 말이야?”
“글세.....? 음양의 이치?”
“맞아, 그렇게만 내공을 쌓아가면 머지않아서 자신의 길을 찾아서 잘 가겠군. 거기까지가 스승이 할 일이지.”
“고마워~! 병신합에 그러한 뜻이 있는 줄은 몰랐네.”
춘매는 우창의 긴 설명을 들으면서도 전혀 지루하지 않게 느껴졌다. 스승과 제자의 인연이 병신합이라는 말이 귀에 쏙쏙 들어왔기 때문이다. 우창도 춘매의 열정이 가득한 눈빛에서 신명이 났다. 이번엔 간지합에 대해서도 정리를 해 줘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을 이었다.
“병신합이 간지로 만나면 뭐가 되지?”
“간지로 만나면? 그건 혹시 신사(辛巳)를 말하나?”
“맞아, 신사(辛巳)는 어떻게 이해하면 될까?”
“좌우(左右)로 병신합(丙辛合)이나 상하로 신사(辛巳)합이나 모두 같은 것으로 보이는데 서로 달라?”
“겉으로는 신(辛)이니까 욕심을 부리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내심은 밝은 병(丙)의 마음을 갖고 있으니까 그렇게 말을 할 수가 있지 않을까?”
“그건 합이 아니잖아? 한 사람의 표리(表裏)일 따름이지. 안 그래?”
“원래 간지합(干支合)은 한 몸의 합이기도 하니까.”
“아, 그건 일리가 있네.”
“말이 나온 김에 다른 간합도 궁금하네. 무계합(戊癸合)은 어떤 의미로 대입할 수가 있을까? 왜 이름이 무정지합(無情之合)인지도 이해가 안 된단 말이야. 합을 했는데 무정하다는 것이 도대체 말이 되느냐고.”
“옛날에 배웠던 것들이 하나씩 생각나는가 보군. 그래서 한 번 배워 놓은 것은 언젠가 그 값을 하는 거야. 모쪼록 많이 배워 놓는 것이 최선이라고 보면 되는 이유이기도 하지. 하하~!”
“정말이네. 처음에 배울 적에는 도대체 왜 그걸 알아야 하는지, 왜 그렇게 되는지는 설명도 안 해 주고 무조건 외우라고만 하는지 불만도 많았는데 그렇게 한 것도 이렇게 명석(明晳)한 오빠를 만나게 되니까 모두 생명력을 불어넣어서 되살아나는 것 같잖아. 너무 신기하네.”
“나도 항상 그래. 이러한 이치를 알고 나면 단견(短見)으로 서둘러서 판단하지 않고, 뭔가 내가 지금은 이해하지 못하고 설명도 할 수가 없지만 언젠가 지력(智力)이 상승(上昇)하면 그러한 것에서도 찾아낼 이치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하면서 공부하다가 보면 어느 순간에 엉킨 실타래 같던 의문이 술술 풀리기도 하는 희열(喜悅)을 맛보게 되지.”
“난 이제야 그 맛을 보고서도 이렇게 짜릿한데, 오빠는 얼마나 많은 진리에서 깨달음의 환희(歡喜)를 누렸을까 생각하니까 부럽기도 하네.”
“자, 언젠가는 누이도 그 맛을 보게 될테니까 그것은 그만하고, 무계합이 왜 무정지합인지나 궁리해 볼까?”
“정말이야. 합이면 합이고 아니면 아닌 거지 무슨 내막이 있길래 그런 이름이 붙은 것인가 싶었어. 아마도 글자가 잘못된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까지도 해 봤다니까.”
“그렇게 생각했다는 것이야말로 누이가 철학자의 자질을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셈이기도 한 거야. 하하~!”
“그런 거야? 다른 사람이 그렇게 말하면 덕담(德談)이려니 하겠는데 오빠가 말해주니까 사실인 것처럼 착각하게 되잖아. 그래도 듣기는 좋아. 호호~!”
“무토(戊土)가 계수(癸水)와 합하는 것은 관부(官府)와 백성(百姓)의 관계라고 보면 해결의 실마리는 다 풀린 것이나 마찬가지야.”
“엉? 그것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네. 정말 오빠의 탐구(探究)하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난 그것도 신기해.”
“궁리하다가 보면, 어딘가에서 그 흔적을 찾아낼 수도 있거든. 왜냐면 ‘괜히 그런 말이 붙은 것은 아닐 것’이라는 믿음으로 접근하다가 보면 많은 의문이 풀리기도 하니까.”
“우선은 긍정적(肯定的)으로 접근을 하는 것이 중요하단 말이지?”
“물론이지. 부정적으로 접근한다면 궁리 자체가 되지를 않으니까 답을 구하기는 더욱 멀어질 따름이야.”
“알았어. 나도 앞으로는 웬만한 것은 다 긍정적인 생각으로 받아 들일께. 그런데 무토(戊土)가 관청(官廳)인 이유는 뭐야?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말을 들어서 생각이 멈춰버린 것 같아. 여기에 대한 의문(疑問)을 빨리 풀어줘야겠어.”
“무토가 관청을 의미할 수가 있겠다고 유추(類推)를 할 수가 있었던 것은 『적천수(滴天髓)』의 「무토」편에서야.”
“책에서는 뭐라고 했는데? 그 내용부터 알려 줘.”
“오호~! 드디어 누이의 학구열(學究熱)이 폭발되었구나. 축하해. 하하~!”
“이제나마 알아줘서 고마우니까 됐고, 어서 그 내용부터 알려 줘.”
춘매가 내용을 듣고 싶어하자 우창이 무토(戊土)편에 대한 원문을 외웠다.
戊土固重(무토고중)하고
旣中且正(기중차정)하며,
靜翕動闢(정흡동벽)하니
萬物司命(만물사명)이니라.”
우창이 이렇게 외웠지만 춘매는 하나도 알아듣지 못할 말이었다.
“역시 원문은 너무 어려워. 무슨 뜻이야?”
“고중(固重)의 뜻을 생각해 보면 견고(堅固)하다는 의미와 중요(重要)하다는 뜻을 묶어놓은 것이기도 해.”
“아니, 그 두 글자에서 그런 관찰이 가능한거야?”
“물론이지. 긍정적으로 보면 보이니까. 하하~!”
“일단 어디에 뜻을 둔 것인지는 몰라도 틀렸다고 할 정도는 아니네. 그래서 다음은?”
“그것은 중화(中和)되어야 하고, 또 정의(定義)로워야 한다는 뜻이지.”
“이야기를 들어봐서는 그 내용이 대단하게 느껴지네?”
“이것이 바로 왕후(王侯)가 백성을 다스리는 정도(正道)를 말하고 있는 거야. 견고하게 성을 쌓고, 중후(重厚)한 국법(國法)을 집행함에 형평성(衡平性)을 잃지 않은 상황에서 올바르게 해야 한다는 의미가 그 안에 포함된 것이지. 잘 생각해 봐 이렇게 해석하는데 무슨 문제가 있어?”
“정말 미끈하게 풀이가 되는 거네. 역시 많이 배워야 해. 나는 언제나 그렇게 시원시원하게 풀이를 할 수가 있을까.....”
“이렇게 열심히 공부하면 3년이 지나지 않아서 간지학에 관해서는 대부분의 이치를 깨닫게 될 거니까 조바심만 버리면 되는 거야.”
“그랬으면 좋겠어. 듣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네.”
“정흡동벽(靜翕動闢)을 생각해 보면, 나라에 별일이 없이 태평할 적에는 가만히 있으면 되고, 문제가 생겨서 백성이 동요한다면 국법을 발휘해서 그 문제를 해결한다는 뜻도 되지.”
“와~! 멋지다~!”
“더욱 의미심장한 것은 만물사명(萬物司命)에 있지. 여기에서 만물은 백성뿐만이 아니라 가축(家畜)과 초목(草木)까지도 포함한다는 뜻이지. 이러한 존재들의 생명(生命)을 사령(司令)한다는 뜻이 되니까.”
“좀 어렵기는 하지만, 이제야 오빠가 무계합의 무토가 국가의 관청을 의미한다는 뜻이 대략적이나마 느껴지네. 무토가 관청이라면 계수(癸水)는 백성이 된다는 말이네?”
“당연하지. 계수(癸水)는 액체(液體)와 같아서 같은 부류끼리 서로 모여서 마을을 이루고 살아가는 것은 백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어.”
“조금더 자세히 설명을 해 줬으면 좋겠어. 기왕에 가르침을 주는 김이니 계수(癸水)의 의미도 좀 설명해 주면 안 될까?”
“내 그럴 줄 알았다. 대충 얼버무리고 넘어가려고 했더니 그걸 또 콕 집어서 설명을 해 달라는구나. 예쁘구로 하하~!”
“설마하니 오빠가 말로는 ‘예쁘다’고 하면서 속으로는 ‘지겹다’고 해석해야 하는 건 아닌 거지? 호호~!”
“그럴 리가 있나. 예쁜 것을 예쁘다고 하지.”
“하긴, 오빠가 거짓말을 하면 얼굴에 보이기는 해. 그대로 믿을 테니까 어서 계수의 내용을 설명해 줘봐.”
우창은 내친 김에 적천수의 계수(癸水)편에 대해서도 외웠다. 비록 기억은 못하더라도 그 분위기를 전해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癸水至弱(계수지약)이나
達於天津(달어천진)하고,
得龍而潤(득룡이윤)하면
功化斯神(공화사진)이니라.”
“정말 원문만 봐서는 무슨 뜻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풀이를 부탁해~!”
“잘 생각해 봐, 세상에서 지극(至極)히 허약(虛弱)한 것은 백성이야. 그래서 어질지 못한 관리를 만나게 되면 잡초처럼 짓밟히게 되는 것이지.”
“엄머나~! 정말이네. 그것은 무계합의 반작용이겠구나. 그치?”
“맞아. 비록 그렇게 허약한 백성이지만 그들의 마음은 천상(天上)의 나루터에 도달하게 된다는 말이니까 이것이야말로 백성을 함부로 대하지 말라는 현인(賢人)의 가르침이 분명하지?”
“맞네. 민심(民心)은 천심(天心)이라는 말을 어렵게 한 것이구나. 맞지?”
“맞아. 누이의 눈치는 이미 입신(入神)의 경지에 도달했군.”
“오빠가 그렇게 말을 해 주니까 자꾸 기분이 좋아져. 이래도 되는 거야?”
“아무렴. 되고말고. 누이는 내 탐구심(探究心)의 욕구를 자꾸만 자극하니까.”
“뭐든 물어도 된단 말이네? 그건 내가 잘할 수 있어. 호호~!”
“이제 왜 무정지합인지에 대해서 누이가 설명해봐도 되지 싶은데?”
“맞아, 관청에서 시행하는 관리(官吏)는 백성을 대함에 있어서 친소(親疎)를 두면 안 돼. 그래서 무정하다고 할 정도로 냉혹(冷酷)하게 다스리지 않으면 차별이 생기게 되고 그러한 것을 당하면서 누구는 만족하고 또 누구는 불만스럽게 여길 수가 있겠네. 그렇다면 무정한 것이 아니라, 무정해야만 하는 것이었네. 그러니까 정부(政府)와 백성은 무정한 합이 되어야만 나라가 잘 다스려진다는 뜻이지?”
“옳지, 잘 이해했다. 그리고 무계(戊癸)의 간지합(干支合)도 있을 텐데?”
“간지합? 아, 무자(戊子)를 말하는 거지? 관청은 백성의 위에서 통제하고 보호하는 역할을 하고, 백성은 그 울타리 아래에서 안전하게 보호를 받으면서 그에 대한 세금을 내면서 살아가는 것이 무자였네? 와우~! 이건 생각하지도 못했는데 덤으로 주운 것 같아.”
“완벽(完璧)하군. 그만하면 무계합에 대해서는 졸업했다고 봐도 되겠네. 이제 이해가 잘 되었으리라고 봐도 되겠지?”
“오빠, 정작용과 반작용에 대해서도 알 수 있을 것 같아. 관리가 백성을 위해서 올바른 정치를 베풀게 되면 정작용이 되는 것이지만, 탐관오리(貪官汚吏)가 되어서 백성을 쥐어짜고 세금이나 마구 뜯어간다면 그것은 반작용이 되는 것이겠지?”
“이제 누이에게 더 가르칠 것이 없네. 하하~!”
우창은 춘매의 지칠 줄 모르는 열정에 감동하면서 나머지의 합에 대해서도 정리를 해 줘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말을 해 주지 않는다고 해도 춘매의 열정으로 찾아낼 것이 당연하겠지만.
“나는 잠시 바람을 쐬고 올참인데 같이 갈래?”
“아니, 난 생각을 더 해야 하겠어. 오빠 혼자 다녀와. 대신 차를 끓여 놓을께 반시진(半時辰:60분) 후에 들어와.”
우창은 상쾌한 바깥바람을 쏘이면서 잠시 머리를 비우고 아이들이 노는 모습도 보면서 한 바퀴 돌고는 다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