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처 - 正財

작성일
2007-09-11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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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남자에게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과연 어머니일까? 아니면 아내일까? 어머니가 소중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은 내가 선택을 한 것은 아니다. 그냥 주어졌을 뿐이다. 그리고 생존을 위해서 절대로 필요했던 존재인 것은 분명하지만, 생존이 해결된다면 또 어떻게 될것인가?

아마도 생존이라고 하는 절대명제만 해결이 된다면 가장 중요한 것은 아내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내는 내가 선택을 하게 되는 존재이다. 원래가 남이 준것보다는 내가 선택을 한 것이 더욱 소중한 법이다. 그렇다면 어느것이 더욱 소중하냐는 말은 하나마나 한 이야기가 되어버린다. 물어볼 것도 없이 아내가 더욱 소중한 것이다.




이렇게 말씀을 드리면 충효사상을 강조하는 입장에서는 낭월이를 비난하실런지도 모르겠다. 불효막심한 놈이라고 하실것도 같다. 그러나 자연과 도덕은 다른 것이다. 도덕적으로는 어버이를 공경하고 효도를 해야 하는 것이 올바른 사람의 행동이겠지만, 자연은 그렇지 않다. 원래가 도덕은 지극히 인위적인 것이다. 충성이라고 하는 것은 개인적인 행복을 짓밟아버린다. 충성을 위해서 사랑하는 가정을 떠나서 국방의무를 완수하러 갔다가 시체가 되어서 돌아온 사람이 얼마나 많겠는가? 그러니까 누구라도 그 일을 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래서 도덕이라고 하는 규범을 만들어서 최면을 거는 것이다.

국회의원이나 재벌들의 자제들이 국방의무를 수행하지 않은 문제로 한동안 세인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그로 인해서 대통령에 출마한 아버지를 위해서 나환자촌으로 봉사활동을 떠난 아들도 있다. 그 중에서도 병역의 의무를 완수한 사람은 당당하게 큰소리를 치겠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상당히 떳떳하지 못하다. 이것은 여론이 그렇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장 인간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누구라도 군대에서 3년간 사람잡는 훈련을 받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즉 충성이라고 하는 것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도덕이라는 이야기이다. 명리학은 그러한 도덕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를 하지않는다. 단지 운명적으로 타고난 흐름에 대해서만 생각을 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적에 아내라고 하는 존재는 누구보다도 중요한 자신의 선택이라는 점에서 효도라고 하는 것보다 우선할 것으로 생각된다. 내가 다스릴 수 있는 것이고, 내 몸과 같이 소중한 것이다. 이것을 正財라고 이름한다.




★ 만약에 말이야...




시대가 바뀌던지 무슨 구테타가 일어나던지 간에 하여튼 대단히 큰 변화가 생겨서 모든 여성들이 밖에서 생활비를 벌어오고 남자들은 집안에서 세탁이나 음식을 전담하는 시대가 될 수도 있다는 가정을 한번 해봤으면 한다. 그리고 실제적으로 이 시대에서도 그러한 가정이 없다고만은 못할 것 같다. 요즘 간간히 들려오는 가정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면 옛적에 남자가 해야 할 일을 여성이 하고 있고, 또 여자가 해야 할 일은 남자가 맡아서 서로 아무런 탈이 없이 잘 살아가고 있는 경우도 간혹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서이다.

그리고 가정에서 여성의 힘이 절대적인 파워를 갖게 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아마도 다시 모계중심의 사회로 환원되지 말라는 보장이 없지않을까? 그래서 아기를 낳으면 아내의 성씨를 따서 이름이 등록되고 남편은 단지 애들에게 우유를 먹이고 똥기저귀를 갈아주는 그러한 상황이 전개된다고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남자들이야 그러한 생각을 하고싶지 않겠지만, 실은 요즘 명퇴바람이나 조퇴바람27)이 불어대는 현실을 감안해 본다면 상당수의 남성들은 차라리 집안에서 살림이나 살고 있는 아내들이 부러울런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우리 명리가의 교과서에는 이렇게 적혀야 할 것 같다.




... 아득한 옛날에는 남성들이 만든 사회여서 사주를 볼때에는 正財를 아내로 보고 남편에게 부림을 당한다고 봤었다고 한다. 그러나 세월이 바뀌니까 易學의 본질답게 십성의 통변도 바뀌게 되어서, 현재에는 남편은 正財가 되고, 아내는 정관이 된다. 사주에 정관이 강하면 아내에게 매맞는 남편이 되는 것이다....




라고 적히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미래의 사회가 어떻게 전개될런지는 살아봐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친구와 애인과 세컨드




흔히 이성간에는 친구가 될 수 없다는 말을 한다. 그리고 또 친구가 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 두가지의 경우는 모두 해당하는 말이다. 그러니까 두리뭉실하게 이야기를 한다면 친구가 될 수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는 이야기가 되는 셈이다. 이렇게 어정쩡하게 말하는 것은 원래가 남녀의 관계는 그렇게 미묘하게 엮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친구가 되었다가 어느날 육체관계가 시작되고 그래서 그때부터는 애인이라고 부르게 된다. 그러다가 결국은 살림을 차려놓고서, 퇴근하면 집에 가기전에 들리는 단골집이 되면서부터 둘째라고 하는 이름으로 바뀌게된다. 이것이 아마도 가장 유력한 발생상황이 될 것이다. 그래서 친구가 되기는 쉽지만 이 관계를 그대로 유지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이다.

이미 연인의 사이가 되면 벌써부터 갈등이 발생하기 시작하다가 마침내 살림을 차리고 나면 이때부터는 여러 가지로 부자연스러운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사실 두집살림을 한다는 것이 남의일처럼 생각할적에 화려하게 느껴지는 그러한 달콤함이 아니다. 행복은 간곳이 없고 고통과 갈등이 계속 발생하는 관계에 불과하기 때문에 가정생활조차도 흔들거리기 일쑤이다. 이렇게 되면 후회를 해보지만, 이미 늦었다. 없었던 일로 하기에는 너무 늦어버린 것이다.

그렇거나 말거나 명리학을 연구하는 학자의 입장에서는 친구와 연인과 둘째부인의 관계를 어떻게 규정지을 것인가가 문제이다. 우선 친구라고 하면 劫財로 본다. 겁재는 내 돈을 빼앗아 가는 존재인데, 여자친구는 항상 돈이 들어가게 되어있다. 선물이나 저녁값이나, 맥주값이나, 돈들어가는 일은 많아도 생기는 일은 드문 법이다.

그러다가 연인이 되어서 여관 나들이를 하게되면 이때는 偏財가 된다. 이렇게 되면 이전의 친구보다도 훨씬 부담이 커진다. 다만 달라진 것이라고는 서로 육체를 섞었다는 것 뿐인데, 그 정신적인 부담감은 이미 판이하게 달라지는 것이다. 그리고 어찌보면 존중을 해야 하는 친구보다는 맘대로 하려고 하는 마음도 발생하게 된다. “오늘은 꼼짝도 말고 집에 앉아 았으라구 알았지?” 라고 하는 말은 친구에게는 소용없는 말이지만, 둘째 여자에게는 할 수 있는 말이다. 그래서 편재라고 볼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친구는 영원하지만 애인은 영원하지 않은 상태이어서 여성의 입장에서도 매우 부담이 되는 관계인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이 관계에서 상당수가 결별을 선언한다. 어떻게 보면 볼장 다본 상태이기 때문에 헤어지는 것만 남아있다고 봐도 좋을 듯 하다. 아무때라도 버리게 되면 버린다. 친구는 버릴 것도 없지만, 연인은 적당한 기회가 오면 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즉 너무 귀찮게 되면 버릴 연구를 하는 것이고, 이것은 집에 있는 아내와는 상당히 다르다.




그러다가 아에 독차지를 하겠다고 마음먹으면 이제 살림을 차려준다. 그렇게 되면 돈은 더욱 많이 들어간다. 집안으로 들어가야할 월급봉투가 둘째댁으로 흘러갈 가능성도 높아진다. 이때는 서로를 감시하게 된다. 자유가 속박되어버리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비극이 움트게 된다. 이때는 집안에 있는 부인과 완전히 동격이다. 즉 正財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수시로 번화를 거쳐서 발전하는 것이 남녀의 관계라고 본다.

그러니까 만약에 결혼을 하지않은 사람에게는 결혼으로 전개되어 갈 것이다. 그러나 가정이 있는 사람에게는 처를 두고 하는 결혼은 비공식이 되는 것이고 아직까지 사회적으로는 과히 당당하지 않은 대우를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혹시라도 본처가 상담을 하러와서 남편의 외도에 대해서 의논을 한다면 그 단계가 어디까지 왔는지를 관찰해서 결론을 내려줘야 하지 않을까 싶다. 겁재의 단계라면 가만둬도 될것이고, 편재가 되면 겁을 줘야한다. 그러다가 둘째처가 되어있는 상황이라면 자신과 처와 동격이므로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