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9] 제31장. 생존력(生存力)/ 12.밥 만들기

작성일
2022-02-20 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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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9] 제31장. 생존력(生存力) 


12. 밥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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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매의 정성어린 음식으로 배를 채우고 나자 우창은 나른했다. 오전에 열정을 쏟은 만큼의 피로가 느껴졌던 모양이다. 그래서 잠시 침실에서 쉬기로 했다. 그 사이에도 대청마루에서는 저마다 삼삼오오(三三五五)로 모여앉아서 깨달은 점에 대해서 즐거운 담소(談笑)들을 나누느라고 시끌벅적했다. 그야말로 공부터의 모습이었다. 미시(未時)가 되자 모두 세수하고는 저마다의 자리에서 조용히 오전에 공부한 것을 복습하면서 우창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스승님....”

우창이 퍼뜩 정신을 차려보니까 춘매가 옆에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깊은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얼른 일어나면서 말했다.

“아, 춘매였어? 내가 깊은 잠이 들었구나. 깨우기 전에 일어났어야 하는데 고단했던가 보다.”

“당연하죠. 그렇게 열정적으로 가르치셨으니 힘도 들겠어요. 저녁에는 고깃국을 준비할게요. 덕분에 춘매도 오늘 많은 공부를 했으니까요. 호호호~!”

춘매가 유쾌하게 웃는 것은 오랜만에 봤다는 생각이 들어서 신선했다. 춘매의 말에 우창도 비로소 잠을 빠져나왔다.

“그랬어? 다행이다. 하하~!”

“정말이지 수경의 예리함과 열정에는 춘매도 감탄했다니까요. 이렇게 총명한 제자들과 함께 학문락(學問樂)을 누리시는 스승님의 복은 석숭(石崇)보다 못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호호~!”

“맞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누이가 옆에서 챙겨주니 더 바랄 것이 없지. 그럼 슬슬 일어나 볼까.”

춘매는 모처럼 우창의 입에서 ‘누이’라는 말이 나오자 듣기에 좋아서 구태여 말리지 않고 가만히 듣고 있었다. 왠지 지난겨울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해서 마음이 오붓했기 때문이었다. 우창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서야 정신이 퍼뜩 들어서 말했다.

“그래요. 다들 스승님의 발걸음 소리를 듣고 성장하니까요. 호호호~!”

“엉? 그건 또 무슨 말이지? 첨 들어보는 말이네?”

“아, 곡식은 농부의 발걸음 소리에 자란다잖아요. 그러니까 오빠는 농부이고 제자들은 곡식이란 말이에요. 호호~!”

“아, 난 또~! 무슨 말인가 했지. 하하하~!”

우창도 오랜만에 춘매가 오빠라고 해주는 것이 듣기 좋았다. 가끔은 이렇게 옛날의 기분으로 돌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하면서 제자들 앞으로 나가서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진작부터 질문거리를 챙겨놓은 채운이 반겨 맞으면서 물었다.

“스승님께서 편히 쉬셨으니 저희는 또 가르침을 내려달라고 떼를 써야 하겠어요. 오전에는 임계(壬癸)가 갑을(甲乙)을 본 이치를 배웠으니 오후에는 갑을이 병정(丙丁)을 만나는 이치를 설명해 주세요.”

우창이 대중을 훑어보니 모두가 오전의 열기를 그대로 간직한 듯이 반짝이는 눈빛이 초롱초롱했다. 제자들을 보면서 학문을 배운다는 것이 이렇게도 정신을 맑게 하는 것임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잠시 감동되는 마음을 진정시키고는 말했다.

“여러분의 열정에 감동했습니다. 모쪼록 자연의 이치와 하나가 되시기를 바랄 따름입니다.”

채운은 우창이 감격하면서 말하는 것을 보면서 가슴이 뭉클했다. 제자들은 스승의 가르침으로 새롭게 깨어나는데 스승은 제자들의 열정으로 부활하는 것같아서 스승에게 얻어 배우는 것이 아니라 상호 간에 교류하는 것이기도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승님의 말씀을 들으니 참으로 행복해요. 저희가 스승님께 배우기만 하고 무엇을 드릴 수가 있을까 싶은 생각을 했는데 오늘 다시 뵈니까 우리가 드리지 않더라도 스승님께서도 저희를 가르치면서 마음의 기쁨을 얻으시는 것으로 보여서 행복해요. 호호호~!”

“아무렴~! 어디 갑을이 병정을 바라보는 소식을 들려 달라고 했던가?”

“그렇습니다. 스승님께서 말씀하시기 전에 저희도 생각을 좀 해보자고 머리를 맞대고 궁리를 해 봤으나 도무지 접근할 방법을 찾지 못하겠어요. 이것이 한계라는 것인가 싶기도 하고요. 그래서 일단 생각을 그만두고 말씀을 청하는 것이 낫겠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지요. 호호호~!”

채운의 말에 우창도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아, 그게 중요한 것이라네. 무엇인가 답을 찾아보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우연히 답을 얻는 것보다 더욱 큰 의미가 있는 법이니까 말이지. 주는 것만 받아먹는 것은 축생(畜生)이고 주기 전에 생각하고 받아먹는 것은 학생(學生)이라네. 하하하~!”

“아니, 축생과 학생의 차이가 단지 생각하는 것에 있었나요? 참으로 놀라운 비유에 그럴싸한 말씀이네요. 그런데 뒤집어서 생각하면, 생각하지 않으면 축생이란 말씀이시니 참으로 혹독하십니다. 호호~!”

“의미는 간단하다네. 이 몸으로 지식창고를 만들거나 측간(廁間)을 만들거나 둘 중 하나가 될 테니까 말이네.”

“예? 지식창고라는 의미는 알겠으나 측간이라니 무슨 뜻인지요?”

“밥을 먹고 똥만 싸면 그게 뭐겠나? 측간 창고일 따름이니 그것이야말로 똥 만드는 창고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 몸으로 똥오줌을 만드는 측간으로 삼을 수도 있단 말이지. 반면에 밥을 먹고 지식을 쌓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축생을 면하고 학생이 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하하하~!”

“과연, 한 치의 빈틈도 없는 스승님이십니다. 오로지 공부하지 않으면 밥도 먹지 말라는 말씀으로 들리니 말이에요. 호호호~!”

“오호~! 눈치를 챘구나. 그래서 지혜를 찾는 학생은 어제보다 오늘이 더 즐겁고 밝은 법이라네. 지금 배워야 할 것도 바로 그 대목이고 말이지. 한 사람은 내일은 무엇을 먹어서 행복할 것인지를 생각하고, 또 한 사람은 내일은 무슨 공부로 가슴을 벌렁거리게 할 것인지를 생각한다네.”

우창의 말을 들으며 채운은 느끼는 바가 있었다.

“잘 알겠어요. 지혜를 찾는 것은 채운의 꿈이고 희망이죠. 그렇지만 지금 배워야 할 것이 그것이라는 말씀은 어디에 떨어지는 소식인지요?”

“갑병(甲丙).”

“아, 갑(甲)이 병(丙)을 바라본 식신(食神)에 대해서 말씀하시려고 그렇게 말씀 하신 거군요? 그런 줄은 생각지도 못하고 어쩌면 저렇게 모진 말씀을 하시는가 싶었잖아요. 호호호~!”

“옛사람은 공부하다가 하루 해가 서산마루에 걸리면 다리를 뻗고 울었다는데 그만큼은 아니라도 최소한 흘러가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은 해야 학인이라지 않겠느냔 말이네. 하하~!”

“맞아요. 요즘같이 하루해가 지는 것을 보면서 가슴이 뿌듯함으로 채워졌던 날이 있었나 싶으니까요. 호호호~!”

우창이 채운의 말에 미소를 짓고는 물었다.

“그래 도반들과 토론을 한 결과가 궁금하군. 갑(甲)이 식신을 본 소식은 어떻던가?”

우창이 이렇게 묻자 비로소 웃음기를 띤 채운이 기가 막히다는 듯이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에휴~ 말도 마세요. 임(壬)이 갑(甲)을 본 소식이 무지개를 타고 하늘을 나는 듯한 느낌이었다면, 갑병(甲丙)의 소식은 아무리 궁리를 해봐도 자갈밭에 웅크리고 눈물만 흘리는 꼴이지 뭐에요. 그래도 스승님께서 물으시니 말씀은 드려 볼게요.”

“그래 어디 들어보세.”

“갑(甲)은 동물(動物)이라는 것으로 시작을 했죠. 그리고 병(丙)은 광선(光線)이라고 하는 것도 이미 말씀을 들었으니까 당연하리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동물이 어떻게 빛을 만들어 내느냐는 것에서 한 걸음도 움직일 수가 없어요. 뭐가 잘못된 것인지 모르겠어요. 주제(主題)는 벗어나지 않았는데 연결이 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채운의 진지한 말을 듣고서 우창은 웃지도 못하고 기가 막혔다. 그렇게 접근해서는 백날을 궁리해도 답이 없는 것은 당연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웃을 수만도 없었다. 제자들의 표정을 봐하니 웃을 상황이 아니었다.

“오호~! 정말 멋진 토론을 하셨구나. 바위 속에서 어떻게 관음보살이 출현한 것인지를 토론하는 것과 같기는 했지만 그래도 생각을 해본다는 것이 어디냔 말이지. 하하하하~!”

우창이 이렇게 말을 하다가 참았던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그렇지만 유쾌한 웃음이었다. 그러자 채운도 답답하던 가슴이 잠시나마 후련해졌다. 우창의 호탕한 소리에 ‘그래도 스승님을 웃게는 하지 않았느냐’는 알량한 위로도 포함되어서 들렸기 때문이었다. 대중을 둘러본 우창이 채운을 향해서 말을 꺼냈다.

“채운이 생각하기에 빛이란 무엇일까?”

“빛은 태양이 아닐까요?”

“태양이 빛일까? 태양에서 나오는 것이 빛일까?”

“아, 태양에서 나오는 것이 빛이라고 해야 하겠네요. 이렇게 되면 주체가 달라지네요. 이러한 것을 뒤섞어 놓으면 다음으로 진행하는데 장애가 생길 수도 있겠어요.”

“그렇다네. 그래서 항상 학문을 추구(追求)하는 학자라면 용어(用語)에도 살얼음을 밟듯이 그렇게 조심스럽게 사용해야 하지.”

“알겠어요. 그러니까 빛은 태양이 아니라 태양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해야 한다는 말씀이죠? 무슨 뜻인지 바로 알았어요. 지월견지(指月見指)라는 말씀이잖아요. 그렇죠?”

“옳지! 잘 이해하셨네. 빛을 물었는데 태양을 가리키면 빛은 볼 수가 없으니까 말이지. 하하~!”

“정말이네요. 이렇게 사소한 곳에서도 스승님과 둔한 제자의 차이가 확연히 드러나네요. 배워야 할 것은 오묘한 학문의 이치 만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았어요. 그러니까 일상의 모든 현상에 대해서도 바라보는 관점과 생각하는 방법이 다르다는 것이잖아요? 호호~!”

“그런데 보통 사람들은 결과(結果)만 바라보지. 빛을 묻는데 태양을 보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잖아? 과정(過程)을 소홀이 생각하는 사람이 어찌 결과를 얻을 수가 있을까?”

“맞아요. 장안(長安)을 가려고 하면 마음이 장안에 있어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잖아요. 지금의 이 자리인 곡부(曲阜)부터 한 걸음을 옮겨야 하는데 마음은 이미 장안에 가 있으니 길은 멀고 힘들고 지루할 수밖에요. 정말 오늘 스승님의 가르침으로 사유(思惟)하는 방법까지도 새롭게 깨닫게 되었어요.”

채운이 뭔가 하나를 얻었다는 마음을 표현하자 우창도 흐뭇했다. 돈오돈수(頓悟頓修)는 몰라도 돈오점수(頓悟漸修)는 확실히 수행자의 길임에 틀림이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단박에 깨닫고 단박에 닦아 마친다’는 돈오돈수(頓悟頓修)의 이야기는 그야말로 최상승(最上乘)의 근기(根機)에서나 해당하는 말일 것이다.

보통의 수행자들은 이렇게 한 번을 깨닫고 다시 그것을 익히는 과정이 무한(無限)으로 반복(反復)하는 돈오점수(頓悟漸修)의 과정일 것이다. 비록 깨달음은 순식간에 일어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묵은 업습(業習)까지도 단박에 해결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도 아승지겁(阿僧祗劫)을 닦은 이에게서나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도 해 봤다. 지금 이들은 그러한 차원이 아니고 우창도 그러한 경지에 대해서는 알 도리가 없었다. 그냥 오늘 소소한 가운데에서 하나를 깨닫고 그것을 나누면서 기뻐하면서 즐거울 따름인 까닭이다. 잠시 이러한 생각을 하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채운은 어떻게 생각하나? 빛의 의미가 오직 태양에서 나오는 것만 해당한다고 보는 건가?”

“그러게요. 생각해 보니까 채운이 너무 단순하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빛은 밝음이라면 명(明)이 들어간 것은 모두 빛과 같다고 해도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그러니까 갑(甲)에서 병(丙)의 식신(食神)을 연결하려면 우선 병(丙)에 해당하는 대상의 개념(槪念)부터 정리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옳지, 이제 첫걸음은 제대로 장안을 향해서 디딘 것으로 봐도 되겠군. 하하~!”

“어머! 정말요? 다행이에요. 첫걸음을 장안으로 간다고 하면서 엉뚱하게도 남해로 향해서 딛게 된다면 이미 십만팔천리로 벗어난 것이잖아요? 호호호~!”

“그렇지. 다시 생각해 볼까? 갑(甲)의 동물이 어떻게 하면 병(丙)을 창조한다고 이해할 수가 있을까? 그 실마리를 찾아보게.”

“일단 스승님의 가르침으로 인해서 병(丙)은 빛으로 방향을 잡았어요. 그런데 갑(甲)은 동물로 보는 것에 문제가 없을까요? 동물이라고 하면 우선 떠오르는 것이 소나 말과 같은 대상인데 어떻게 빛을 만들어 낼 것인지에 대해서 연결을 시키려면 이것도 다시 생각해 봐야지 않을까요?”

“어떻게 생각해 보려나? 사유에는 장애가 없는 법이니 마음대로 궁리해 보면 되겠지?”

“실은 동물에 인간도 포함하면 어떨까 싶어요. 그런데 인간은 이미 경(庚)에서 주체(主體)로 결정이 되었잖아요? 그래서 다시 인간을 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생각되는데 이것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지 길을 찾지 못하겠어요.”

“아하~! 그것이 문제였나? 그렇다면 그냥 갑(甲)을 인간으로 놓고 궁리해 보면 되지 않을까? 아마도 경(庚)을 몸으로 생각해서 그런 모양이로군. 경(庚)은 정신(精神)이라고는 했어도 몸이라고 한 적은 없었을 텐데 말이지.”

우창의 말에 채운은 머리를 한 대 맞은 듯이 화들짝 놀랐다.

“아참, 맞아요. 또 착각했나 봐요. 정신과 신체는 분명히 다른 것인데도 자꾸만 동일시(同一視)를 하게 되네요. 습관의 무서움이겠죠? 호호~!”

“이렇게 정리하고서 그다음에 또 주체의 문제는 다음에 논해도 된단 말이네. 한꺼번에 엉켜버리면 풀지 못하는 실타래도 일단 한 가닥을 끊어놓고 시작하면 차차로 풀리게 되기도 하니까 말이네.”

“만약에 그래도 된다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인간이 몸으로, 더 정확히는 손으로 문명(文明)을 창조한 것이라고 하고 싶어요. 이렇게 대입할 수가 있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錦上添花)인데 말이에요. 호호~!”

채운은 자신이 말을 하고서도 스스로 대견한지 기쁨에 잠긴 목소리로 말하면서 웃었다. 약간의 계면쩍은 느낌도 들었던 모양이다. 그러한 것을 지켜보는 우창도 흥이 났다. 제자들과 이러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보다 더한 즐거움이 또 있으려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채운이 오늘 제대로 영감이 발휘되는가 보군. 과연 정확하게 핵심을 짚었으니 말이네. 그렇게 보면 되지 무엇이 문제이겠는가? 하하하~!”

채운은 우창이 만족스럽다는 듯이 말하면서 웃자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 것을 꺼냈는데 그것이 핵심이라고 해주니 더 바랄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스승님께서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까 정말 다행이에요. 그러면 다시 문제로 돌아가서 경(庚)과 갑(甲)의 사이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해결해야 하겠는데 이것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무엇이 어려운가? 물질계(物質界)와 정신계(精神界)로 정리하면 간단히 해결될 텐데.”

“예? 정신계와 물질계로 정리를 하란 말씀이신가요? 그렇다면 경은 정신계가 되고 갑은 물질계가 되겠네요? 정신계에서의 식신은 임(壬)이 되어서 자유로운 사색으로 이어진다면, 물질계의 식신은 병(丙)이 되어서 문명을 창조하는 것인가요?”

“왜 아니겠나. 하하하~!”

우창의 말이 얼떨떨한지 채운이 잠시 생각에 잠기다가 비로소 그 의미를 깨닫고는 손뼉을 치며 말했다.

“와~ 정말~!! 놀랐어요.”

그 모습을 미소를 띠면서 바라보던 우창이 말했다.

“이제야 비로소 이해되었나?”

“정말 스승님의 가르침은 참으로 오묘하네요. 어쩌면 이렇게 명쾌하게 해답을 주실 수가 있을까요? 채운은 백 년을 생각해도 답을 찾지 못할 거에요. 그래서 감탄하고 또 놀라울 따름이에요.”

“그렇다면 축하할 일이지. 그렇다면 아직도 이해되지 않은 대중을 위해서 설명을 해보려나?”

우창의 말에 잠시 생각을 정리한 채운이 말했다.

“경임(庚壬)은 정신적인 창조입니다. 그러므로 생각으로 창조한 것이지 그것을 구체적으로 드러내어서 사용할 수는 없는 단계죠. 그런데 임갑(壬甲)을 거치면서 정신계에 머물러 있던 일념(一念)이 물질계의 씨앗을 생산하게 되었어요. 출산(出産)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러자 그 씨앗인 갑(甲)이 발아해서는 구체적으로 물질계에 해당하는 것을 창조하게 되었으니 이것이 문명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스승님, 말이 되나요?”

채운은 자신이 말을 하면서도 확실한지 신뢰감이 들지 않아서 다시 우창에게 확인을 청했다. 우창이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자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경임(庚壬)은 정신적인 창조가 되고, 임갑(壬甲)은 정신과 물질을 이어주는 다리가 되었고, 다시 물질인 갑은 갑병(甲丙)이 되어서 비로소 문명(文明)과 문화(文化)를 창조하게 된 것이에요. 그야말로 정신의 창조와 물질의 창조가 그 역할을 뚜렷하게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겠어요. 과연 이렇게 놓고 보니까 식신의 세계가 일목요연(一目瞭然)하게 정리가 되는 것 같네요. 스승님의 가르침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이렇게 멋진 생각을 상상이나 했겠나 싶어요. 스승님 깊은 가르침으로 채운의 생각도 날개를 달았습니다.”

우창이 채운의 설명을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채운이 다시 말을 이었다.

“처음에 동물이 어떻게 빛을 창조하는 것이 가능하겠느냐는 생각을 했을 적에만 하더라도 참으로 막막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물질계라는 말이 하나 툭 던져졌을 따름인데 그것을 첫걸음으로 삼아서 장안에 도달하게 되었네요. 역시 첫걸음이 중요하고, 첫 말씀이 중요하고 첫 가르침이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되었어요.”

채운이 이렇게 말을 하고 나서야 비로소 우창이 입을 열었다.

“과연, 청출어람(靑出於藍)이라더니 채운의 통찰력과 순발력은 우창이 따르지 못할 지경이네. 인간은 결국 정신(精神)이 잠시 동물인 육체(肉體)에 깃들어 살다가 또 때가 되면 떠나는 존재가 아니겠는가? 그렇게 놓고 본다면 당연히 정신적인 주체(主體)와 신체적인 자신(自身)이 나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네. 이제 경임(庚壬)과 갑병(甲丙)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게 되었으니 무엇이 문제겠느냔 말이지. 그러니 축하할 밖에. 하하하~!”

우창의 말에 채운이 감동하면서 말했다.

“스승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까 과연 원래부터 문제는 없었어요. 다만 길을 몰라서 잠시 방황했을 따름이었죠. 이제 스승님의 안내를 받아서 길을 찾고 보니까 정신의 길과 육체의 길이 다르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으니 이것이야말로 망외소득(望外所得)이라고 해도 되겠어요.”

“축하하네, 하하~!”

“이제야 또 하나의 의문이 정리되었어요. 기문둔갑(奇門遁甲)에서는 갑(甲)을 주체로 삼잖아요? 그런데 스승님의 명학(命學)에서는 경(庚)을 주체로 삼으니 여기에는 무슨 곡절(曲折)이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었어요. 다만 기문(奇門)에서는 갑(甲)을 존중하고 경(庚)을 두려워하는데, 스승님의 가르침에서는 경(庚)을 존중하고 병(丙)을 두려워한다는 것만 알고서 언젠가 이 문제를 한 번 여쭤봐야 하겠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그 문제까지도 말끔하게 해결되었어요.”

“그것참 다행이군. 어디 그 소식도 좀 들어볼까?”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채운이 신명이 나서 말했다.

“그러니까 경(庚)은 정신적인 주체이기 때문에 자아(自我)라고 할 수가 있고, 본성(本性)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이러한 주체는 정신적인 시련(試鍊)에 해당하는 병(丙)을 만나게 되면 고통스럽게 받아들이지만, 갑(甲)은 물질적인 신체(身體)이기에 심리적으로 고통을 주는 자아(自我)를 거부할 수가 없으니 가장 두려운 존재가 되는 것이고, 이 몸인 갑(甲)을 통제(統制)하는 것은 주인인 경(庚)이 되는 것으로 인해서라는 것을 비로소 정리하게 되었어요.”

“그래? 경(庚)에게 병(丙)이 시련이라는 말은 십성(十星)으로 대입해서 편관(偏官)이기 때문이라고 하는 것이겠지? 그런데 문명(文明)이라고 해 놓으면 어떻게 해석이 될까?”

우창이 방향을 전환해 보라는 말을 하자 다시 생각한 채운이 말을 바꿔서 설명했다.

“아, 맞아요. 편관(偏官)의 선입견(先入見)에 압도되었어요. 그러니까 문명을 경(庚)이 두려워할 이유가 있어야 하겠네요. 음.....”

채운이 생각에 잠긴 사이에 우창은 차를 마시면서 잠시 기다렸다.

“스승님, 그 문제는 이렇게 생각하면 어떨까요? 그러니까 문명은 물질문명이에요. 그리고 사람들은 물질문명에 빠져들어서 즐기느라고 정신세계에 대해서는 생각을 할 겨를이 없죠. 경(庚)도 그러한 것에 빠져들까 봐 두려운 거예요. 물론 철학자(哲學者)만 그래요. 보통 사람들은 문명을 즐기는데 철학자는 문명을 두려움이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죠. 사람들이 물질적인 풍요만 꿈꾸며 재물에만 탐닉(耽溺)하게 되는 것을 염려하면서 말이죠. 그런데 말씀을 드리다 생각해 보니까 지금의 현실도 이와 같은걸요? 사람들은 공부하고 수행하는 것에는 게을리하고 향락(享樂)과 물욕(物慾)에 사로잡혀 있잖아요?”

“그렇게 정리하면 되지. 그래서 경(庚)은 병(丙)을 두려워하게 되는군.”

“어딘가에는 답이 있었네요. 갑은 신체지만 정신인 경의 명령을 받아서 사물(事物)을 통제해요. 그렇게 해서 나온 것이 문자(文字)이고, 도화(圖畵)이고, 의학(醫學)이며 지도(地圖)가 되는 것이지요. 이러한 것은 정신만으로는 만들어 낼 수가 없는데 갑의 신체로 인해서 비로소 만들어지게 되었으니 이로부터 문명의 꽃을 피우게 되는 것으로 보면 되겠지요?”

우창이 다시 고개를 끄덕이면서 동의하자 채운이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문명은 경(庚)의 소산(所産)이 아니라 갑(甲)의 작품(作品)이라는 것도 새삼스럽게 깨달았어요. 보여주지 못하면 남는 것도 없으니 전할 것도 없고, 심지어는 철학(哲學)조차도 기록하지 않으면 어떻게 후학에게 전할 수가 있었겠어요? 그러니까 시작은 정신이지만 결과는 신체이니 동물의 의미도 결코 과소평가(過小評價)하면 안 되겠다는 것도 깨달았어요. 아울러서 심신일여(心身一如)라는 생각도 들어요. 몸과 마음이 하나같이 움직이는 것이 맞네요.”

“과연~!”

우창은 더 긴 말이 필요 없었다. 채운의 말에 동의만 해도 모두는 즐겁고 만족했기 때문이었다.

“단지 식신(食神)에 대해서 공부했을 따름인데 이렇게도 많은 덤을 얻게 되고 보니까 공부는 날이 갈수록 흥미롭고 신기하고 오묘하다는 생각이 자꾸만 커지네요. 가다가 보면 상관(傷官)이나 재성(財星)이나 관살(官殺)도 하나씩 연구하면 정말 삶의 실체가 일목요연(一目瞭然)하게 드러나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네요. 그렇겠죠?”

“당연하지. 십성(十星)의 이치에 모든 것이 다 들어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니까 항상 눈만 뜨면 생각나는 것도 그 안에 있는 것이지.”

“맞아요. 공부하기 전에는 이러한 말이 무슨 뜻인지 도무지 가늠할 수조차 없었는데 이제 약간의 이치를 알아가면서 고인의 말씀이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는 것도 알게 되었어요.”

“이제 채운도 학자라고 할 만하겠네. 하하하~!”

“아, 그렇게 되는가요? 북방(北方)의 만리장성(萬里長城)도 갑(甲)이 만든 것이고, 유구(悠久)한 역사를 기록한 역서(歷書)와 방대한 학술서(學術書)도 모두 육체가 있어서 창조된 것이네요. 육체가 있어서 기록한 것들과 만든 것이 모두 전해져서 다시 경(庚)에게 새로운 영감(靈感)을 불어넣게 되는 것이라면 십성(十星)은 순환(循環)하고 자연의 이치도 순환하는 것이 맞네요.”

“맞아. 춘하추동(春夏秋冬)이나 성주괴공(成住壞空)이 모두 그렇게 쉼 없이 이어지는 자연의 이치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지. 처음에는 문제를 하나 접하게 되면 이것을 어디에서부터 어떤 논리를 적용해서 풀어가야 할 것인지를 고심하게 되지만, 일단 방향을 잡고 나면 그것을 바탕으로 해서 일사천리(一瀉千里)로 풀려나가는 희열(喜悅)을 맛보게 되는 것이야말로 순전히 학자의 열락(悅樂)일 따름이고 공부하지 않은 사람은 죽었다가 깨어나도 알 방법이 없지.”

“그런데, 이렇게 광범위(廣範圍)한 자연의 모습이 단지 열 개의 천간(天干)에 모두 녹아있는 것이 참으로 경이(驚異)롭기조차 해요.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까 이 천간(天干)조차도 어느 학자의 손끝에서 기록이 되었을 것이잖아요. 육체를 가벼이 여기고 정신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도 편중(偏重)된 것임을 새삼스럽게 깨달았어요. 그러니까 경(庚)이 갑(甲)을 보면 편재(偏財)에 해당하여 마음대로 조종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은 상호보완(相互補完)을 통해서 완성된 깨달음으로 나아가야 하는 도반(道伴)이라는 것도 알겠어요. 그래서 몸이 더욱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호호호~!”

우창은 채운의 깨달음이 기뻤다. 아울러서 오늘 이 자리에서 함께 이야기를 들은 제자들의 마음속에서도 또한 그와 같은 깨달음의 소식이 전해졌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아도 되었다. 이야기에 매료되어서 집중하는 모습에서 충분히 그것을 느끼고도 남음이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