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0] 제31장. 생존력(生存力)/ 13.문명(文明)의 발상(發想)

작성일
2022-02-25 0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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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0] 제31장. 생존력(生存力) 


13. 문명(文明)의 발상(發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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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님, 그렇다면 이제 을목(乙木)이 창조한다는 식신은 어떻게 이해하면 될 것인지도 생각해 봐야 하겠어요.”

“당연하지~!”

우창이 그렇게 연구하라고 해 놓고는 뒤로 물러나서 토론하는 것을 지켜보기로 했다. 토론하는 도중에 잠시 소란도 일었지만 이미 갑병(甲丙)에 대한 이치를 정리하고 난 다음이라서인지 큰 혼란이 없이 이야기가 정리되어갔다. 그렇게 정리되자 채운이 대중의 대표가 되어서 이해가 된 것과 아직은 다소 미진(未盡)한 것에 대해서 우창과 대화를 시작했다.

“스승님께 여쭙겠어요. 을(乙)은 식물(植物)이니까 신(辛)으로부터 근원(根源)을 훑어서 살펴봐야 하겠어요. 신은 욕망(慾望)이라고 했으니 생존(生存)의 힘이잖아요?”

“그렇지.”

우창이 채운의 말에 동의하자 이야기는 다시 이어졌다.

“생존의 힘이 만든 것은 액체가 되고 물이 되어서 흘러서 모이는 것으로 논하게 되면 다음으로는 그 물이 식물을 기르는 것으로 이어지는 것은, 임(壬)의 씨앗과 계(癸)의 성장(成長)인 연결고리에서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것으로 봐도 될까요?”

채운은 이미 확인이 된 내용이지만 그래도 혹시나 잘못된 점이 있으면 바로잡고자 하는 마음에서 중간에 확인하는 절차를 거쳤다. 우창이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자 다시 채운의 말이 이어졌다.

“갑을(甲乙)을 놓고서 생각해 본다면, 을(乙)은 갑의 도구(道具)가 되기도 하겠어요. 식물이란 나무, 바위, 흙도 모두 포함이 될 수가 있으니까요. 움직이지 않는 것은 형태가 고정되었기 때문에 갑이 만든 문명의 기록을 할 대상이 을이기도 한 까닭이에요.”

“오 멋지군~!”

우창이 감탄하자 채운이 더욱 흥이 나서 목소리도 조금 높아졌다.

“그러니까, 비유하자면 갑(甲)이 손에 망치와 정을 들고 돌을 다듬는다면 을(乙)은 석판(石板)이 되어서 갑(甲)이 의도하는 대로 결과물을 겉에 드러내 주는 것이라고 하겠어요. 불상이나 경전(經典)이거나 바위에 새겨서 천만년을 보관할 수가 있으니까요. 어쩌면 더 옛날에는 손에 칼을 들고 나무판에 글자를 새겼을 수도 있겠네요. 이것도 갑이 을을 만나게 되는 인연이네요. 그러니까 갑을은 서로 떨어질 수가 없는 것이라는 점을 다시 생각하게 되기도 해요.”

“잘 궁리했네. 그렇게만 연구한다면 깨닫지 못할 까닭이 없겠어.”

우창이 추임새를 한 번 넣어줬다. 이야기의 흐름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러자 다시 채운의 말이 이어졌다.

“식신(食神)은 손이 되고, 도구가 되는 것도 맞네요. 손도 따지고 보면 도구이기도 하니까요.”

“왜 아니겠나. 맞는 말이지.”

“그런데, 문제는 갑(甲)이 만드는 문명과 문화는 잘 이해가 되었는데 을이 만드는 것은 또 무엇일까요? 여기에서 일단 막히네요. 호호호~!”

채원이 궁리하다가 길을 잃고 헤매는 모습도 우창의 눈에는 귀여웠다. 그렇게 찾아가면서 방황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여정(旅程)의 한 부분이기 때문에 전혀 문제가 없이 잘 진행되고 있다는 것만 말하고 다시 기다렸다. 채운이 우창의 모습을 보고서는 계속하라는 의미를 알고는 다시 궁리하면서 말했다.

“따지고 보면 아득한 옛날에 선사시대(先史時代)의 사람들도 모두 주먹도끼를 사용해서 도구를 다듬고 만들어서 썼으니까 또한 동물과 무관하지 않네요. 이렇게 자꾸만 생각이 갑을(甲乙)에 머무르고 을정(乙丁)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것은 아직도 길을 찾지 못한 까닭이겠지요?”

“괜찮네. 그렇게 궁리하는 것이 순리라고 하겠으니까 말이지. 하하~!”

채운은 간단하게 말을 해 주지 않고 기다리는 우창이 약간은 서운하기도 했지만 이렇게 스스로 찾을 수가 있는 것은 끝까지 찾아보라는 의미로 이해하고는 다시 생각에 골몰(汨沒)하다가 잠시 후에 말을 이었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그러니까 정(丁)을 열기(熱氣)라고 한다면 어떻게 되나요? 을(乙)이 목판(木板)이든 석판(石板)이든 아니면 토판(土版)이라고 하더라도 여기에서 어떻게 열기가 만들어진단 말일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연결할 방법이 안 떠오르네요. 그렇다면 빛을 생각하다가 태양을 잘못 연결하게 된 것처럼 정을 열(熱)로만 생각해서 답을 찾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요? 그렇다면 무엇으로 생각해야 할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우창은 채운이 생각에 잠겨있는 모습을 보면서 잠시 기다렸다. 그러면서 아무래도 너무 오랜 시간을 끌면 오히려 혼란스럽게 될 수도 있겠다는 것에 생각이 미치자 한 잔의 차가 먹기 좋을 정도로 식을 만큼만 기다렸다가 입을 열었다.

“채운, 잘 생각했군. 그만하면 되었네. 충분히 생각할 수가 있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을 했다고 봐도 되겠어. 다만, 아직도 답이 보이지 않는 것은 더 기다려도 답을 찾기 어려운 것으로 봐야 하겠지?”

우창이 입을 열자 채운은 비로소 얼굴을 펴고 미소가 되살아났다. 이제 우창이 설명을 해 주려고 하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스승님, 아무리 생각해도 한계는 있네요. 도저히 진전이 안 되니 아무래도 이것이 채운의 한계라고 하겠어요. 스승님께서 자비를 베푸셔서 명쾌하게 답을 가르쳐 주시기만 바랄게요.”

채운의 말을 듣고 우창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실로 매우 간단한 것이지만 생각에 갇히게 되면 옆에 있는 답도 보이지 않는 법이라네. 그러나 답을 얻지 못하더라도 궁리를 하는 과정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렇게 고심(苦心)을 한 다음에 답을 얻는 것이야말로 그냥 얻는 것에 비해서 엄청난 차이가 있기 때문이지.”

“맞아요. 그건 옳으신 말씀이죠. 그래도 스승님께 멋진 답을 찾아서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그것이 마음대로 되지 않아서 상처를 받았어요.”

“그래? 상처를 받다가 보면 견고해지는 법이니 상처조차도 사랑하게나. 그것이 모두 학문의 연료(燃料)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될 테니까 말이네. 한 번 부러진 뼈가 잘 붙고 나면 다른 곳보다 더욱 견고해지는 것처럼 말이지. 하하~!”

“잘 알았어요. 이제 어서 을정(乙丁)의 관계를 설명해주세요. 그것이 궁금해서 숨이 턱에 닿을 지경이잖아요. 호호~!”

“그럴까? 우선 문명(文明)은 구체적인가? 아니면 생각 속에 있는 것인가?”

“예? 당연히 구체적이지 않나요?”

“그렇다면 문화는 또 어떨까? 문화도 구체적인가? 아니면 개념 속에서만 자리를 잡고 있는 현상일까?”

“예.... 당연히 문명과 문화는 구체적이고 물질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스승님의 말씀을 듣고 생각해 보니 아무래도 추상적(抽象的)이고 개념적(槪念的)이라고 해야 할까 봐요. 문화라는 물체는 없으니까요. 이것은 또 무슨 까닭일까요? 채운이 뭔가를 모르고 있었던 것인가요?”

“우리가 무엇인가를 생각을 하면 그것이 실체인 것처럼 인식하는 것에서 비롯된 것일 따름이라네. 가령 신기루를 떠올리면 신기루가 실제로 어딘가에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처럼 말이지.”

“맞아요. 스승님께서 신기루를 말씀하시는 순간 아지랑이처럼 멀리에서 무엇인가 보이는 듯한 생각이 들었어요. 이것을 말씀하신 것인가요?”

“맞아. 바로 그 이야기야. 그러니까 손에 잡히지 않는 문화와 손에 잡히는 문명을 생각한다면 이제 을정(乙丁)의 이치의 절반(折半)은 얻은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할 수가 있을 것이네. 다시 생각해 보려나?”

“이제야 또 하나를 깨달았어요. 음양(陰陽)을 불가불리(不可不離)라고 하니 당연히 오행(五行)의 음양도 분리(分離)가 되는 것이 불가능(不可能)하다는 것을 알겠어요. 그렇기에 경신(庚辛)이 같은 뿌리에서 존재하는 심리(心理)가 되듯이 임계(壬癸)도 또한 체용(體用)만 다를 뿐 같은 존재임을 이해하니까 비로소 갑을(甲乙)에 대해서도 같은 목(木)의 음양이라는 것이 명료(明瞭)하네요. 이렇게 대입을 해 나가면 당연히 병정(丙丁)도 같은 화(火)의 체용으로 생각하면 되겠어요. 그렇죠?”

채운이 스스로 생각한 것에 대해서 타당한 것인지를 다시 우창에게 물어서 확인하고자 했다. 우창도 얼른 대답했다.

“옳지, 틀림없는 이야기네. 어서 계속하시게.”

우창이 채운의 생각에 동조하자 채운도 마음 놓고 계속해서 설명해 나갔다.

“그러니까 이미 답은 얻었다고 봐도 되겠어요. 병(丙)이 관념 속에 존재하는 문화(文化)라면 정(丁)은 기록(記錄)된 문명(文明)이니까 문화는 기(氣)에 속하고 문명은 질(質)에 속한다는 것을 알겠어요. 그러니까 갑(甲)이 을을 시켜서 기록하게 했고, 을이 기록한 결과물은 정(丁)이며, 정에 해당하는 문서(文書)와 예술품(藝術品)을 보면서 문화(文化)를 알고 문명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라고 하겠으니 이들을 모두 떼어놓고 생각한다면 한 걸음도 접근할 수가 없겠어요. 이렇게 엮어놓으니까 저마다 자신의 자리에서 훌륭하게 업무(業務)를 수행(隨行)하고 있다는 것을 알겠네요. 이렇게 정리하면 될까요?”

“물론이지. 잘 정리했네. 그러니까 문화(文化)가 문화로 남기 위해서는 예술품과 작품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야말로 작가(作家)의 열정이고 역사가의 노력이라고 할 수가 있겠네. 고인(古人)은 문화를 문명으로 나타냈고, 후인(後人)은 문명을 통해서 옛사람의 문화를 유추(類推)하게 되는 것이겠지?”

우창이 이렇게 정리하면서 말하자 채운이 다시 이해되었다는 듯이 말했다.

“정말 또 새로운 것을 알았어요. 문명이라고 하려면 반드시 문명을 전할 도구가 있어야만 하는 것이기에 왕궁(王宮)이나 전적(典籍)이나 장성(長成)과 같은 구조물(構造物)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았어요. 문명조차 사라지고 나면 문화를 추적할 고리를 잃은 것과 마찬가지라고 하겠어요. 그래서 하대(夏代)의 문명이 거의 사라져서 그 당시의 문화를 짐작조차도 하기 어려운 것처럼 말이에요.”

“아니지. 하대는 청동기(靑銅器)의 문명이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비춰서 그 당시의 야장(冶匠)이 어떻게 합금해서 도구를 만들었는지를 짐작할 수가 있으니 말이지.”

“아, 역시 채운은 아직도 알아야 할 것이 너무 많아요. 오래전의 일이라서 아무것도 없을 줄로 생각했잖아요. 호호~!”

“그만하면 식신(食神)에 대해서 이해를 잘했다고 하겠네. 하하하~!”

“그런데, 청동기에 대한 말씀을 듣고 다시 생각해 보니까 정(丁)은 뜨거운 불길이라고만 생각했던 것을 바꿔써 그릇을 만들기 위해서 녹인 쇳물이라는 것도 알아야 하겠어요. 그리고 열정(熱情)도 정화(丁火)의 영역이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이해했어요. 종이에 글자 하나를 쓰더라도 열정이 있어야만 가능하니까요. 생각만으로는 글자 하나는 고사하고 점 하나조차도 찍지 못하니 말이죠.”

“그렇다네. 그래서 빛과 열의 의미가 점점 구체적으로 정리가 되는 것이라네. 그렇게만 궁리한다면 이제 식신의 의미가 단순히 밥을 만들어 먹는 것만이 아니라는 것도 알았겠군.”

“맞아요~! 창조물(創造物)이 모두 식신으로 인해서 생기게 되었다는 것을 이제야 겨우 이해하게 되었어요. 이렇게 놓고 보니까 건곤(乾坤)으로 시작된 무기토(戊己土)가 마지막으로는 문화(文化)로 이어지는 병정화(丙丁火)에서 끝을 보게 되네요. 그리고 화(火)는 모든 것을 변화시키는 열정이라는 것도 깨달았어요. 그러니까 화(火)가 없으면 화(化)도 없다는 이치가 그 안에서 숨을 쉬고 있어요.”

“맞아, 수(水)는 모든 것을 응결시키고 화(火)는 모든 것을 변화시키지. 이것이 수화(水火)의 영원한 순환이라고 하겠군. 하늘과 땅에서 시작한 것이 문화유산(文化遺産)으로 마침표를 찍게 되는 것이라네. 그리고 다시 끝없는 반복을 통해서 점점 진화(進化)하고 발전(發展)하면서 인류(人類)의 역사(役事)를 이어가는 것이라네.”

“아, 그런 것이었군요. 정말 오늘도 오행의 이치가 얼마나 변화무쌍한지를 새삼스럽게 깨달았어요.”

채원이 이렇게 말하는데 대중 가운데 한 사람이 손을 들었다. 우창이 보니 있는 듯 보이지 않던 오광(五廣)이었다.

“아, 누군가 했더니 오광이 할 말이 있었구나! 말해 보게.”

“이곳에 온 후로 하루하루를 공부하는데 빠져들어서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채운 누님과 수경 누님의 자상한 설명과 가려운 곳을 시원스럽게 긁어주는 질문으로 인해서 여쭐 일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공부만 하면 되었는데 오늘은 제자가 궁금한 점을 여쭙고자 합니다.”

“그랬군. 뭐든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물어야지. 어디 궁금한 것이 무엇인지 편안하게 말해도 되네. 하하~!”

우창도 오랜만에 오광의 질문을 받게 되어서 기분이 좋았다. 더구나 열심히 공부하느라고 재미가 있었다고 하니 더욱 고마울 따름이었다.

“스승님과 누님들의 이야기를 듣다가 문득 해소가 되지 않는 점이 있습니다. 이점에 대해서 스승님의 가르침을 듣고자 합니다.”

“그래 무엇인지 말해 보게.”

“다름이 아니라, 식신(食神)의 세상이 얼마나 광범위한지를 깨닫고 감탄을 금치 못하였습니다. 물론 누님들은 이미 관련 공부가 깊으셨기 때문에 더 잘 알아들으시는 것이 부럽기도 합니다. 그런데 제자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이러한 대입과 설명이 너무 인위적(人爲的)인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연의 오행으로 인위적인 상황을 대입해서 설명하는 것이라면 혹시라도 중요한 것을 놓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는데 이것을 여쭤보는 것이 잘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궁금하여 말씀을 드려 봅니다. 명쾌하신 가르침을 청합니다.”

오광의 말에 채운과 수경이 서로 마주 보고서 움찔했다. 이야기에 빠져서 그러한 생각을 전혀 해 본 적이 없었는데 오광이 예리하게 질문을 하는 바람에 마치 한 대 맞은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지금은 우선 이에 대한 우창의 답변이 궁금했다. 그러한 의문은 얼마든지 들 수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어떻게 답을 할지도 궁금했다.

“오호~! 역시 오광은 생기 넘치는 활발함이 넘치는구나.”

“고맙습니다. 모두가 스승님의 가르침 덕분입니다.”

“인위적이라고 해서 거부할 필요가 있을까? 가령 사람이 태어나는 것은 자연적일까, 아니면 인위적일까?”

“사람이 태어나는 것은 자연적이라고 생각됩니다. 음양이 만나서 결합하여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는 것이니까 말입니다.”

“그렇다면 남녀가 서로 사랑하는 것은 어떨까? 살아가기 위해서 집을 짓고 농사를 짓는 것은 인위적일까?”

“아, 남녀가 서로 사랑하는 것은 인위적이라고 해야 하겠습니다. 사람의 의지(意志)가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먹고살기 위해서 곡식을 가꾸는 것이나, 곡식을 구하기 위해서 행업(行業)을 하는 것도 자연적이라고만 할 수는 없겠습니다.”

“옳지, 역시 오광은 여전히 총명하구나. 말을 잘 알아들으니까 말이지. 하하~!”

“그렇다면 인위적인 것과 자연적인 것은 구분할 수가 없는 것입니까? 구분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씀일까요?”

“당연하지. 우리가 오행의 이치를 공부하여 간지(干支)를 찾아서 적는 것은 자연적일까? 아니면 인위적일까? 어디에서부터 자연적이고 또 어디에서부터는 인위적인지를 두부를 자르듯이 명료하게 나눌 수가 있을까?”

우창은 오광이 알아듣도록 차근차근 설명했다. 그리고 오광도 열심히 귀를 기울이면서 자기의 생각과 부합하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를 살폈다.

“스승님, 처음에는 오행의 생극(生剋)은 자연의 이치라고 여겼습니다. 즉 인위적인 상황을 빌려서 설명하지 않아도 해석할 방법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식신에 대한 가르침을 받으면서 너무 지나치게 인위적인 행위(行爲)로만 해답을 찾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을 했습니다.”

“당연하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학문도 깊어지는 것이라네. 하하~!”

“그런데 문화(文化)에 대한 말씀을 들으면서 문자(文字)가 과연 자연적인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문명(文明)은 모두 인위적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스승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까 삶이란 자연적인 것과 인위적인 것이 뒤엉켜서 구분할 수도 없고 또 그럴 필요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자가 괜히 엉뚱한 망상을 하게 된 것인가 싶기도 합니다.”

“오, 그런가? 내가 생각하기에는 절대로 괜한 생각이 아닌데?”

“예? 그건....?”

“아니, 학문(學問)이 뭔가?”

“그야, 배우고 또 묻는 것이 아닙니까?”

“당연하지. 그런데 배우기만 하고 물어야 할 의심이 생겼는데도 스승의 권위나 혹은 게을러서 묻지 않는다면 그것이 올바른 학문이라고 할 수가 있으려나 모르겠군.”

“아, 그렇습니다. 말이 되는 것도 묻고 말이 안 되는 것도 물어야 한다는 말씀이지요?”

“물론이네. 그리고 몰라서 묻는데 그것이 잘된 물음인지 혹은 헛된 물음인지를 어찌 안단 말인가? 만약에 그것을 알면서도 묻는다면 그야말로 스승을 욕보이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해 봤나?”

우창이 이렇게 말하는 것은 괜한 것을 물어서 자신의 말로 인해서 면학(勉學)의 분위기를 망쳤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하고 있을까 봐서 그러지 말라는 의미로 답을 하는 것도 있었다.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오광도 마음이 편해졌다. 그래서 우창의 자상한 마음 씀씀이에 대해서도 가슴이 뭉클해졌다.

“고맙습니다. 스승님의 가르침에 항상 감동하고 있습니다. 식신의 세상에 대해서 깊숙이 들어간 느낌입니다. 열심히 경청하면서 궁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잘하고 있으니까 머지않아서 큰 깨달음을 이루게 될 것이네.”

우창은 오광의 등장으로 인해서 신선한 분위기가 생겨난 것도 좋았다. 이렇게 사제지간(師弟之間)의 훈훈한 분위기는 참으로 소중하다고 생각되기도 했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적에 이야기를 듣고 있던 채운이 말했다.

“스승님, 오광의 질문을 듣고 깜짝 놀랐어요. 여태 이야기에 대해서만 궁리하느라고 그 근원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지 못했는데 놀랍게도 오광은 그 이야기의 뿌리를 찾고 있었다는 이야기에 얼마나 놀랐던지 정신이 퍼뜩 들었지 뭐예요. 그러니까 자칫하면 최면술(催眠術)에 걸린 사람이나 몽유병(夢遊病)의 환자처럼 스승님의 말씀만 받아적으면서 주체도 없이 끌려다닌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조차 들었잖아요. 호호호~!”

“그래서 공부는 함께 하는 것이 좋다고 하는 것이 아니겠느냔 말이지. 혼자서 스승의 가르침을 배우게 되면 반론(反論)이 생각나지도 않을뿐더러 설령 생각이 났다고 하더라도 감히 물어볼 용기가 나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하하~!”

“맞아요. 그래서 오광의 질문이 참으로 신선했어요. 호호~!”

“앞으로도 항상 깨어있는 관찰을 하고 있을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오직 연구에만 몰두해도 될 것이네. 하하하~!”

“잘 알겠어요. 그런데 병무(丙戊)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지 않아도 되는지는 또 하나의 궁금증이에요. 무기(戊己)에서 시작했으니까 병정(丙丁)에서 마무리하는 것이 옳은지, 아니면 다시 한 바퀴를 돌아가는 것이 순리인지 판단하지 못하겠는데 스승님께서는 어떤 생각이신지 궁금해요.”

“그야 춘하추동(春夏秋冬)의 이치를 생각해 보면 알 일이지 않을까? 순환하게 되면 또 새로운 것도 있고, 반복적인 것도 있겠지. 그렇지만 다시 병무(丙戊)로 돌아간다고 해도 처음 출발지였던 천지(天地)의 건곤(乾坤)으로 가지는 않을 테니까 어디 계속해서 궁리를 이어가 보는 것은 어떨까? 진리는 순환처럼 보이지만 실은 나선(螺旋)으로 돌아갈 따름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 같은 여름을 두번 만날 수가 없는 이치가 그 안에 있단 말이지. 그러니까 다시 무기(戊己)로 간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천지(天地)의 무기가 아니란 말이네.”

“와~! 정말이에요~! 실은 그렇게 궁리하고 싶었는데 그럴 필요가 있는지에 대해서 약간 망설였거든요. 스승님께서 가려운 곳을 긁어주시니 더 망설이지 않고 답을 청해도 되겠네요. 호호호~!”

“원, 별 소릴 다 듣겠군. 당연한 것을 말이지. 하하하~!”

그러자 수경이 우창에게 말했다.

“아니, 아직 갑병(甲丙)과 을정(乙丁)이 끝나지 않았는데요?”

“그런가? 그럼 마무리를 지어야지. 어디 수경의 이야기를 들어봐야지.”

“진리에 대한 말씀이 끝났으니까 이것을 정리해서 시구(詩句)로 말씀해 주셔야 마무리가 되잖아요. 그래서 드린 말씀이었습니다.”

“아, 난 또 무슨 말씀인가 했군. 하하~!”

“수경은 사소한 것에 대해서도 정리가 되지 않으면 일을 마친 것처럼 생각이 되지 않으니 이것도 병이라면 병인가 봐요. 호호~!”

“아닐세. 그게 어떻게 병이란 말인가. 열열한 진리의 탐구자(探究者)지.”

“그럼 어서 말씀해주세요. 적을 준비는 진작에 다 마쳤어요.”

우창은 흐뭇했다. 이렇게 하나하나를 매듭지으면서 공부를 해 나가는 수경의 모습도 참으로 아름답게 느껴졌다. 사람이 매력적일 경우는 내면의 세계에 공감할 수가 있을 때가 아니겠느냐는 생각을 하면서 시를 생각해 봤다. 잠시 후에 붓을 들었다. 그리고는 여덟 개의 글자에 이치를 담았다.

360--1

우창이 휘적휘적 쓴 글을 보면서 수경이 읽고 풀이했다.

갑병문명(甲丙文化)하고
을정문명(乙丁文明)이로다 

갑목(甲木)이 병화(丙火)를 생하니
세상(世上)에 문화가 탄생하고
을목(乙木)이 정화(丁火)를 생하여
역사에 기록하여 문명이 되었네

수경이 이렇게 풀이하자 채운이 감탄하면서 말했다.

“와~! 일목요연하네요. 지금 이렇게 스승님께서 시를 남기는 것조차도 을정(乙丁)이라는 것을 생각하니까 더욱 재미있어요. 호호호~!”

그러자 우창도 채운의 말에 웃으면서 답했다.

“그런가? 하하~! 실로 인문(人文)이라는 것이 모두가 식신소작(食神所作)이라고 해야겠지. 학문을 발전시키고 창조하면서 유구(悠久)한 세월을 이어온 것이니까 말이네. 여기에서 다시 의학(醫學)으로도 파생하고 철학(哲學)으로도 전개하여 문화의 꽃을 피우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싶군.”

“맞아요.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에서 항상 새로운 이치를 찾아가는 것이 학문(學問)이라는 것을 오늘 새삼스럽게 깨달았어요. 정말이지 이 길은 끝이 없지만 포기할 수가 없는 매력적인 영역(領域)인 것은 분명해요. 그래서 어느 가닥을 잡고 들어가도 그 속에서 무한(無限)의 세상을 만나게 되니 말이에요.”

“그런가? 그렇다면 축하하네~!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