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8] 제31장. 생존력(生存力)/ 11.합이불화(合而不化)

작성일
2022-02-15 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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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8] 제31장. 생존력(生存力) 


11. 합이불화(合而不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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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채운에게 물어볼까? 합(合)과 화(化)의 뜻에 대해서 말이야.”

갑자기 자신에게 묻는 우창의 말을 듣고는 얼른 염두(念頭)를 굴렸다. 그것은 그리 어려운 질문이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합(合)은 서로 함께 하는 것이에요. 화(化)는 함께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가 되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겠네요.”

“합은 함께 한다면 또 상황에 따라서는 나뉠 수도 있을까?”

“당연하죠. 이렇게 함께 모여서 공부하는 것은 집합(集合)이지만 저녁에 제각기 자신의 처소로 돌아가면 분리(分離)가 되는 것이니까요.”

“그렇다면 화(化)는?”

“화는 변화(變化)를 의미하는 것이잖아요? 이미 다른 것으로 변화했다면 다시 본래대로 돌아갈 수가 있을까요?”

“문화(文化)는 어떨까?”

“아, 문화도 화(化)네요. 문화가 발달하면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죠. 화(化)의 의미가 그렇게도 보는 줄은 미처 생각도 하지 못했어요.”

“진화(進化)는?”

“와~! 그것도 화(化)네요. 그런데 공통점이 있어요. 무엇이 되었던 간에 화(化)가 되면 되돌아갈 수가 없어요. 합(合)은 분리될 수 있으나 화(化)는 분리하는 것이 불가능하네요. 스승님께서 가르침을 주시려는 것도 이것인가요?”

“진화(進化)도 있지만, 퇴화(退化)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나?”

“화(化)는 앞으로만 가는 것인 줄로 알았는데 퇴화는 뒤로 가는 것이잖아요? 참으로 신기해요.”

“그렇다네. 합(合)이 되면 당연히 화(化)가 되려니 싶은 생각은 오류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그러니까 합화(合化)가 되는 것도 있고, 안 되는 것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지.”

“정말 신기해요~! 그렇다면 어떤 것은 합화(合化)가 되지만 어떤 것은 합이불화(合而不化)인지 설명해 주세요. 궁금해요.”

“가령 부부(夫婦)는 합화(合化)일까? 합이불화(合而不化)일까?”

“원래 부부는 일심동체(一心同體)라고 하잖아요? 그렇다면 합화(合化)네요.”

“과연 그럴까?”

“그렇잖고요.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남남이 서로 만나서 일평생을 같이 살아갈 수가 있겠어요.”

“그렇다면 두 사람은 서로 나뉠 수가 없겠네?”

“당연하잖아요?”

“그런데 왜 살다가 이혼(離婚)도 하게 되는 걸까?”

“이혼한다면 그것이 잘못된 거죠. 부부는 해로(偕老)를 해야 하고 함께 늙어가야 부부니까요.”

“어허~! 아직도 화(化)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나 보군. 하하하~!”

우창이 재미있다는 듯이 웃자, 채운도 뭔가 석연치 않은 느낌이 들었는지 다시 곰곰 생각하고는 말했다.

“아, 스승님의 말씀으로는 부부는 합은 되어도 합화(合化)는 아니라는 말씀이었잖아요? 다시 생각해 보니까 부부가 일생을 함께한다고 하더라도 이런저런 이유로 헤어지게 되는 경우는 무수히 많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생이별(生離別)도 있고 사별(死別)도 있으니 말이에요. 그렇다면 부부는 화(化)가 되기도 하고 안 되기도 한다는 말인가요?”

“그것도 틀렸지. 합이불화라면 또 몰라도 말이네. 하하~!”

“그렇다면 부부는 아예 화(化)는 불가능하다는 의미잖아요?”

“가령 처음에는 서로 뜻이 맞아서 결혼했다고 하더라도, 살아가면서 한쪽은 진화(進化)하고 한 쪽은 퇴화(退化)한다면 그 둘은 날이 갈수록 생각의 격차(隔差)가 커지게 될 것이고 그렇다면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 지경(地境)에 도달하게 된다면 함께 살아갈 수가 있을까?”

“아마도 힘들겠네요.”

“그렇게 되면 합이 깨어지게 되고, 헤어지거나 같이 살아도 몸만 같이 있을 뿐이고 마음은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게 될 것이니 이러한 것을 성격(性格)의 차이(差異)라고 한다네.”

“와우~! 스승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까 과연 조금도 틀림이 없어요. 부부가 서로 같은 곳을 바라보고 살면 좋지만 그렇지 않으면 평생을 같이 살아도 마음은 따로이니 그야말로 합이불화가 맞네요. 호호호~!”

“그러니까 어떤 것은 합화(合化)이고 어떤 것은 합이불화라는 것을 알았지?”

“당연하죠. 진화(進化)는 새로운 지식과 결합(結合)하여 생기는 현상이니까 이것도 합화라고 할 수가 있겠네요?”

“맞아.”

“오늘 저희 제자들은 스승님의 가르침을 입어서 진화(進化)하고 있는 것이 맞죠? 그래서 이러한 이치를 알고 난 이상은 모르던 상태로 되돌아가지 못하는 것이니 이것이야말로 화(化)라고 하겠고, 이것은 변화(變化)이기도 하네요.”

“그렇게 봐도 되겠지. 그렇다면 화(化)의 의미를 뜯어보는 것은 어떨까?”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채운이 글자를 써놓고서 들여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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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들여다보면 뭐가 보일까? 하하~!”

“왼쪽은 사람 인(人)이잖아요? 그리고 오른쪽은 비수 비(匕)가 맞죠?”

“맞아. 비수(匕首), 숟가락, 화살촉도 의미하지.”

“그러니까 작은 칼이라고 보면 되겠네요. 조각칼일 수도 있겠어요. 나무를 앞에 놓고서 불상을 조각하거나 꽃을 조각할 수도 있겠어요. 그러면 세상에 없는 단 하나의 작품이 탄생하게 되고 이것은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가 없어요. 이것은 예술(藝術)이라고 하고 문화(文化)라고 할 수가 있겠네요.”

“알고 보면 어려울 것이 하나도 없지 않은가?”

“맞아요. 이제야 분명하게 이해했어요. 그러니까 무계합(戊癸合)은 되지만 합이불화(合而不化)하므로 무계합화(戊癸合火)라는 말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라는 말인 거죠?”

“옳지, 어찌 무계가 합을 한다고 해서 화화(化火)가 되겠느냔 말이잖은가. 이제 실상(實相)과 허상(虛象)을 가려냈다고 할 수 있겠네. 하하~!”

“그렇다면 간합(干合)은 합화(合化)도 되고, 불화(不化)도 되는 것인가요?”

“아니지.”

“아니라면, 간합의 경우에 합(合)은 하지만 불화(不化)한다는 것으로 알고 있어야 한다는 말씀인가요? 어떤 경우라도 마찬가지인가요?”

“당연하지. 간지(干支)를 모두 포함해서 합하는 것은 간합(干合)이지만 화(化)하는 이치는 없다고 생각하면 된다네.”

“아하! 알았어요. 그러니까 계(癸)는 언제나 계이고 무(戊)도 또한 언제나 무일 뿐이고 이 둘이 합한다고 해서 화화(化火)가 되는 이치는 없는 것이죠?”

채운이 다시 확인하려는 듯이 되물었다. 종전에 알고 있었던 것에 의해서 혼란이 발생하는 것을 정리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렇게 이해하면 된다네.”

“잘 알았어요. 그러니까 계(癸)가 정(丁)을 타고 허공으로 올라가는 것은 알겠는데 무계합(戊癸合)은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어요. 아니, 여태까지 잘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던 것이 와르르~ 무너졌나 봐요. 왜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을까요? 스승님의 도움이 필요해요. 호호~!”

“잘하고 있는데 뭘, 계속 말해 봐.”

우창은 가능하면 채운이 스스로 그 이치를 깨닫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다시 궁리하기를 권했다. 그러자 채운이 다시 물었다.

“스승님, 그런데 왜 계(癸)에는 천(天)이 들어있죠? 이것이 혹 액체인 계수(癸水)가 수증기(水蒸氣)로 변해서 하늘로 올라가는 것과 무슨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닐까요?”

“옳지, 잘 찾아내는구나. 맞아.”

“와우~! 그냥 무심코 계(癸)를 보다가 하늘이 보여서 생각해 본 것인데 그것조차도 이치에 부합이 되는 것일 줄은 몰랐어요. 참으로 신기해요. 호호~!”

“그렇게 스스로 깨닫는 재미는 세상의 무엇과도 비유할 수가 없지. 하하~!”

“정말 신기해요. 이미 계수는 땅을 타고 흐르기도 하고 정화(丁火)를 만나서는 하늘로 오르기도 하는데 그렇게 하는 것이야말로 계(癸)라고 하는 것을 글자 속에 이미 담아 두었다는 것이 너무도 신기해요.”

“그렇다면, 계(癸)는 이미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 운명이었나 봐요. 그렇다면 하늘과 합하는 것일까요?”

“무(戊)는 무엇을 상징한다고 했지?”

“하늘이잖아요. 건(乾)이기도 하니까요.”

“맞아, 계가 정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게 되면 정(丁)이 사라지게 되지. 열(熱)이 하늘 끝까지 올라갈 수는 없으니까 말이야.”

“원래 열은 위로 올라가는 것이잖아요?”

“맞아.”

“그렇다면 어디까지라도 계(癸)의 액체를 싣고 올라가게 되는 것이 아닌가요?”

“채운의 말대로라면 하늘 높은 곳은 열기가 많다는 의미인가?”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방바닥에 불을 때면 천장이 더워지는 것과 같은 이치니까요.”

“지붕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그럼..... 하늘로 흩어지겠네요. 그래도 그 열기는 계속해서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 아닐까요?”

“음.... 이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스승님의 표정을 봐하니 아무래도 채운이 잘못 이해하고 있었다는 것은 알겠어요. 어서 설명해 주세요. 궁금해요.”

“혹 만년설(萬年雪)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있어?”

“만년설이라고 하면 설산(雪山)이잖아요? 사시사철 항상 눈에 덮여있는 산을 말하는 것이죠?”

“맞아, 설산은 높은가?”

“물론이죠. 높아도 매우 높아요.”

“높으면 열기를 받아서 눈도 녹아내리겠네?”

“그렇죠. 어? 뭔가 이상한걸요. 열기가 위로 올라가다가 더 높은 곳으로 오르지 못하고 흩어지거나 열기가 식는다는 의미일까요?”

역시 채운은 하나를 알려주면 둘을 깨닫는 명석함이 있었다.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되어서 우창도 즐거웠다.

“잘 이해했네. 하하~!”

“아하~! 이제 알겠어요. 그러니까 겨울에 차가운 눈이 하늘에서 내려올 수가 있었던 것이네요. 그렇지 않았다면 눈도 열기에 의해서 모두 녹아버리고 말 테니까 말이죠. 이렇게 우둔해서 스승님을 괴롭히네요. 호호호~!”

“염려 말아, 그로 인해서 우창의 존재감도 있는 것이니까 말이네. 하하하~!”

“정말 깜짝 놀랐어요. 만약에 아직도 무토(戊土)를 높은 산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더라면 이런 생각을 꿈엔들 해 봤겠느냐는 생각이 들어서 소름이 돋았죠. 정말 스승님께 가르침을 받는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새삼스럽게 깨달았어요.”

채운의 말을 듣고 우창이 말없이 미소만 지었다. 잘 이해하면서 깨달아 가고 있으니 달리 뭐라고 할 말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채운이 다시 말했다.

“그렇다면 정(丁)은 하늘까지 계(癸)를 태우고 올라가네요. 얼마간 올라가서 계가 구름이 되면 다시 내려오나 봐요. 이로 인해서 계(癸)는 정(丁)을 도구로 삼는다는 말이 되고, 이것이 편재(偏財)에 해당한다는 것도 이치에 부합하네요. 맞죠?”

“옳지~! 이제야 채운의 생각이 탄력(彈力)을 받는구나. 하하하~!”

“그렇다면.... 계가 지면(地面)에서 정을 타고 허공으로 출발을 할 때는 무(戊)를 만나지 않은 것일까요?”

“그럴 리가 있나? 땅에서 한 치, 한 푼만 떨어져도 이미 그곳은 무토의 영역인 줄을 안다면 말이야. 계가 수증기(水蒸氣)가 되어서 허공으로 솟아오르는 순간부터 이미 무계합(戊癸合)이 이뤄진 것으로 봐야겠지.”

“그렇다면 어떻게 합을 하는 것일까요?”

“합은 이미 하는 것이라네. 다만 무토(戊土)는 정화의 수고로움을 받아서 계수를 받아들이는 것이니 그렇게 받아들였다가 때가 되면 또 내려놓겠지. 실은 무토(戊土)가 하늘이라는 것은 이미 모든 만물에 고루 작용하고 있는 것이라네.”

“어머~! 무토가 만물에 모두 적용하는데 유독 계와 합한다는 것은 조금 어색하지 않아요? 가령 동물도 무토와 합을 한단 말씀이잖아요?”

“합이 아니라 관계를 갖는 것이겠지. 모든 생명체가 숨을 쉬어야 한다면 그 순간에 즉시로 하늘과 관계가 이뤄진 것이고, 숨을 쉬다가 멈춘다면 하늘과의 관계도 끊어진 것이니까. 다만 무계는 허공에 수증기가 되어서 섞이는 것이라고 보면 되겠지.”

“그런데 계수는 하늘로 올라가니까 무계합이라고 볼 수가 있다는 말씀이로군요. 정말 질서가 있으면서도 다소 복잡해요.”

“정화(丁火)는 무토(戊土)의 어머니가 되지 않는가?”

“그렇죠. 정인(正印)이니까요.”

“정화는 그렇게 위로 올라가다가 어머니의 힘이 쇠락해져서 계수를 떠나게 되면 비로소 무토가 계수를 장악하게 되는 것이라네.”

“어떻게요?”

“더 올라가지 못하게 잡아두는 것이지.”

“예? 잡아두다니요? 허공이 어떻게 계수를 잡는다는 거죠?”

“무토에게는 엄청난 힘이 있으니 그것을 중력(重力)이라고 한다네. 그 힘에 눌려서 허공으로 올라간 계수는 꼼짝도 하지 못하고 점점 뭉치게 되는 것이지. 그렇게 무토와 합을 해서 허공에 머물러 있다가 적당한 무리를 이루게 되면 비로소 균형이 무너져서 함은 깨어지게 되지.”

“합이 깨지다니요? 그건 또 무슨 말씀이죠?”

“실은 합이 깨어지지 않는다면 하늘로 올라간 액체는 영원히 하늘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더 있겠어? 그렇게 된다면 그것이 자연의 뜻일까?”

“듣고 보니까 참 이상하네요. 그럴 수는 없죠. 그러니까 무계합(戊癸合)은 구름이 되는 것이고, 무계합이 무너진다는 말씀은은 우로(雨露)가 되나요? 만약에 합이 깨지지 않으면 계속 허공에 머물러 있겠네요?”

“맞아. 그래서 계수는 하늘과 땅을 끊임없이 순환(循環)하게 되면서 만물을 적셔주니 여기에는 정(丁)의 숨은 노력을 잊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네. 하하~!”

“정말 생각하지 못한 자연의 이치가 이렇게도 소상(昭詳)하게 드러나네요. 스승님의 가르침은 참으로 놀람의 연속이네요. 호호호~!”

“그게 아니라 자연의 이치란 참으로 오묘(奧妙)하지, 그래서 신비(神秘)롭기만 한 존재라네. 처음에는 가볍게 연구하다가 결국은 그 변화(變化)에 매료(魅了)되어서 다른 것은 생각할 겨를이 없다네. 하하하~!”

“정말 멋져요. 언제까지라도 이렇게 생각하면서 살았으면 좋겠어요.”

“이미 그렇게 살고 있잖은가?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렇게 살면 된다네.”

“정말이네요. 이렇게 살아가면 되는 것이었어요. 호호호~!”

“이제 무계합(戊癸合)의 이치는 명료하게 깨달았겠지?”

“그럼요. 깨닫고 말고요. 그런데 문득 다른 합도 같은 이치로 궁리하면 될 것인지가 궁금해졌어요. 임수(壬水)는 정화(丁火)와 합을 하잖아요? 여기에 대해서도 어떤 설명을 할 수가 있을 것으로 생각이 되는데 이것은 언제 설명해 주실 건가요? 정말 하나를 알면 또 모르는 것이 하나 생기네요.”

“그래서 학문(學問)이라고 하지 않은가? 배우면 물을 것이 생긴다는 말이잖은가? 모르면 궁금한 것도 없지만 알게 되면 또 모르는 것이 하나 추가하는 것도 참으로 오묘할 따름이라네. 하하~!”

“정말이에요. 문학(問學)이라는 말은 없으니까요. 역시 배워야 묻게 되고, 물어야 알게 되고 알아야 진화하게 되고 진화해야 깨달음을 얻게 되고 깨달음을 얻게 되면 비로소 자유로워지게 되는 것일까요?”

“맞아~!”

“그렇다면 또 여쭐게요. 임(壬)은 왜 정(丁)이 필요해서 정임합(丁壬合)이 되는 것일까요?”

“임은 기체(氣體)잖은가?”

“맞아요. 기체라고 하셨어요. 계(癸)는 하늘로 오르기 위해서 정(丁)이 필요하다지만 그것도 편재로 자신의 마음대로 이용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임에게는 정재(正財)가 되는 정화(丁火)의 의미는 어떻게 작용하는 것일까요?”

“그것이 바로 정편재(正偏財)의 차이점이기도 하다네. 편재(偏財)는 아무 때라도 내가 필요하면 사용하는 것이지만 정재(正財)는 항상 필요한 존재이니까 말이지. 가령 계수가 하늘에서 내려올 적에는 정(丁)의 열기는 오히려 장애가 될 뿐이잖은가?”

“아, 그것도 그렇겠네요. 스승님의 촘촘한 그물망을 벗어날 이치는 없을 거예요. 그렇게도 연결을 시켜놓으셨으니까요. 호호~!”

“여기에는 또 하나의 이치가 들어있지. 가령 계수(癸水)가 액체(液體)라면 정화가 아무리 열기를 준다고 해도 허공으로 올라갈 수가 있을까?”

“그건 불가능하죠.”

“그래서 음수(陰水)인 계수(癸水)가 하늘로 오르기 이해서는 양수(陽水)인 임수(壬水)로 둔갑을 하게 되는 것이라네. 그렇게 되어야 비로소 정화(丁火)와 합을 하게 될 테니까 말이지.”

“그 말씀은 처음 들어봤어요. 참 신기하네요. 그러니까 계가 정의 도움을 받는 것도 그냥 받는 것이 아니었네요.”

“그렇지, 임(壬)은 기체이기 때문에 정(丁)이 없으면 한 걸음도 움직일 수가 없다네. 그러니까 항상 정을 의지해서 움직일 따름이니 이것을 대류(對流)라고 한다네. 추운 겨울에 방의 한 가운데 난로(煖爐)를 피워놓으면 그 열을 기체가 옮겨주게 되니 이것이야말로 정임합(丁壬合)이 아니고 무엇이겠느냔 말이네.”

“아, 알겠어요. 계(癸)는 정(丁)을 필요할 때만 사용하고 필요치 않으면 내팽개쳐버린다고 하면 임(壬)은 정(丁)이 항상 수족(手足)처럼 필요하기에 따로 떼어놓고 생각을 할 수가 없는 것이란 말씀이죠?”

“그렇다네. 음양(陰陽)은 불가분리(不可分離)라서 계가 하늘로 오르기 위해서는 임(壬)의 형태로 변화하고 그렇게 해서 정(定)과 합을 해서 적당한 곳까지 올라간 다음에는 다시 계로 돌아와서 빗물로 변하고 눈으로 변하는 것이라네.”

“정말 놀랍네요. 여태까지 양간(陽干)은 음간(陰干)과 합하고, 음간(陰干)은 양간(陽干)과 합한다는 생각만 했을 뿐, 임계(壬癸)의 입장에 따라서 계(癸)는 왜 무(戊)와 합하고, 임(壬)은 왜 정(丁)과 합하는지를 전혀 생각할 줄도 몰랐고, 그렇게 깊은 이치가 그 안에 있을 줄은 꿈에서도 생각지 못한 일이에요. 정말 감탄했어요.”

이렇게 말하면서 채운은 자신도 모르게 우창에게 합장(合掌)했다. 마치 불보살을 마주한 듯이 경건한 마음이 그 안에 감돌고 있었다. 우창도 가만히 미소만 지었다. 그러자 조용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수경이 말했다.

“스승님의 가르침으로 또 미망(迷妄)에서 빠져나오게 되었어요. 그렇다면 스승님께 또 부탁을 드리고 싶어요. 임계(壬癸)의 입장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시(詩)로 적어 주시면 기억하기에 더 좋을 것 같아요. 부탁드립니다.”

수경이 이렇게 말하자 우창도 사양하지 않고 미소를 짓고는 붓을 들었다. 그리고 잠시 생각하더니 글자를 단숨에 썼다.

358-1

우창의 붓놀림을 지켜보던 수경이 큰 소리로 읽고 풀이했다.

계용정승(癸用丁乘)이요 임합정등(壬合丁騰)이라.
계수는 정화를 이용해서 타고 올라가야 하니,
임수로 변화해서 정화랑 합하여 하늘로 오른다

“이렇게 해석하면 될까요? 정말 단 여덟 개의 글자로 길게 설명하신 내용을 모두 요약(要約)해 주셨네요. 이것만 기억하면 되겠어요. 결론은 무계합보다도 정임합의 작용이 더 필요하다는 것도 알았어요. 고맙습니다. 스승님.”

수경도 우창에게 고마운 마음을 담아서 공수하자 우창이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수경이 다시 부탁했다.

“임계수(壬癸水)가 정화(丁火)를 필요로 하는 이치를 알고 나니까 합(合)과 합화(合化)의 이치는 물론이고 합이불화(合而不化)까지도 깨닫게 되었어요. 이번에는 임계(壬癸)가 갑을(甲乙)을 만나서 일어나게 되는 이치도 시로 적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아, 그것도 필요한가? 수경의 공부에 도움이 된다면 그게 무슨 어려운 일이겠는가. 어디 이렇게 적어 볼까?”

이렇게 말하고는 우창이 붓을 들어서 다시 열 개의 글자를 썼다. 모두 숨을 죽이고 무슨 글자인지를 살펴보느라고 조용했다. 우창이 글귀를 다 쓰고 붓을 놓자 수경이 살펴보고는 읽고 풀이했다.

358-2

“이번에는 동물(動物)과 식물(植物)로 대비(對比)해서 설명해 주셨네요.”

임생갑동(壬生甲動)하고, 계생을식(癸생乙植)이라.
임수(壬水)가 갑목(甲木)을 식신(食神)으로 삼는 이치는
동물(動物)에게 생명(生命)을 부여하는 것이라면,
계수(癸水)가 을목(乙木)을 식신으로 삼는 이치는
식물(植物)을 성장(成長)코자 함이니라

“이렇게 이해하라는 뜻인 거지요?”

“맞아, 잘 이해했네.”

“그러니까 임갑(壬甲)은 기(氣)에 해당하니 정신적(精神的)인 관점(觀點)에서 봐도 될까요? 이것이 가능하다면 계을(癸乙)은 물질적(物質的)인 관점에서 살펴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연하지.”

“그렇다면 수경의 생각이 맞았네요. 임은 기체(氣體)와 같아서 정신적으로 자유롭게 사유(思惟)하고 궁리(窮理)하는 것이니 동물에 비유할 수가 있다면 계는 물체(物體)와 같아서 사물을 창조할 수는 없지만 이미 생성이 된 존재라면 물을 줘서 키우는 것처럼 자라게 할 수가 있다는 의미이므로 식물과 같이 봐도 되겠네요?”

“잘 정리하셨네. 이것이야말로 임갑식신(壬甲食神)과 계을식신(癸乙食神)의 특성을 잘 판단해서 이해한 것으로 봐도 되겠네.”

“그런데 문득 드는 생각으로는 식신은 창조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계을(癸乙)의 경우에는 완전한 창조라고 하기에는 좀 어렵지 않을까 싶어요. 이것은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요?”

“오호~! 참 좋은 질문을 했네. 그것은 마치 임갑(壬甲)은 여인이 아기를 낳는 것과 같다면 계을(癸乙)은 낳은 아기를 잘 키우는 것과 같다고 할 수가 있겠지. 낳는 것도 창조이지만 먹여 살려서 키우려고 해도 많이 궁리해야만 것이니 말이네. 가령, 공부로 논한다면, 임의 궁리를 갑에게 전달하게 되면 갑은 머리에 기억하고는 그것을 반복해서 익혀야 한단 말이지. 말하자면 임갑(壬甲)은 학(學)이요 계을(癸乙)은 습(習)이라고나 할까? 하하하~!”

“아하~! 그러한 이치도 있었네요. 역시 수경의 생각이 짧았어요. 과연 그렇게 이해하니까 완전무결(完全無缺)합니다. 그러니까 태어난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서 궁리하는 것도 식신의 영역이고, 그야말로 밥을 만드는 기술에 해당하므로 음양의 차이가 음질양기(陰質陽氣)로 나눈다는 이치에도 완전히 부합되네요. 스승님의 가르침에 감탄했어요.”

“이해가 잘 되셨다니 다행이네. 하하하~!”

우창도 유쾌했다. 제자들이 궁금해서 묻는 것에 대해서 답을 할 수가 있어서 다행이었고, 그 답을 듣고서 또 그 안에 숨겨진 은밀한 뜻까지도 깨닫는 것을 보는 즐거움이 더해졌기 때문이다. 그때 춘매의 외침이 들렸다.

“공부는 잠시 쉬시고 이제 점심을 먹을 준비를 해 주세요~!!”

춘매의 말에 우창도 갑자기 시장함이 느껴졌다. 공부에 빠져서 밥을 먹을 때가 된 것도 까맣게 잊고 있었다.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 상을 차리고 음식을 나누면서 잠시 한바탕 소란이 일어났다. 그렇게 시끌벅적하게 한 끼의 식사를 나누는 즐거움도 공부방에서 빠트릴 수가 없는 중요한 재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