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9] 제25장. 합리적 의문(疑問)/ 4.만들어진 사주(四柱)
작성일
2020-11-20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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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69] 제25장. 합리적 의문(疑問)
4. 만들어진 사주(四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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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재의 말에 우창이 진지한 표정으로 앞에 놓인 오주괘를 보면서 말했다.
“당연하겠지만 나도 예전에는 염재가 가지고 있는 의문을 똑같이 생각했었다네. 그래서 묻는 마음을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지.”
우창의 말에 염재도 관심이 가득한 눈빛을 반짝이면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가 말했다.
“예, 스승님께서 제자의 마음을 헤아려 주시니 고맙습니다.”
“당연히 해야 할 질문을 제대로 했으니 내가 고맙네. 하하~!”
“변변치 못한 호기심에 불과할 수도 있는 것을 탓하지 않으시고 잘 받아주셔서 또한 감사할 따름입니다.”
“자, 그럼 생각해 보세. 만약에 이 사주가 홍련 낭자의 삶에 부합이 된다면 간지의 이치는 그대로 현존(現存)하는 자연의 이치와 부합하는 것으로 보면 되겠고, 그렇게 되면 언제부터 갑자(甲子)였는지는 더이상 논의하지 않아도 될 것이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인 이치에 타당할까?”
“물론입니다. 제자도 지금 그 문제를 확인하고 싶어서 안달이 났습니다. 어서 확인해 주시기만을 앙망(仰望)합니다.”
우창이 염재가 어떻게 이 상황을 수용하는 것이 좋은지 방향을 잡아 주기 위해서 언질(言質)을 준 다음에 눈길을 홍련에게 향하고 말했다.
“그럼 낭자에게 물어볼 테니 있는 그대로 보태거나 덜어내지 말고 말을 해주면 되겠네. 미리 말을 해 둘 것은, 혹 내가 틀린 말을 한다고 해서 체면을 세워주느라고 사실과 다른 것을 그렇다고 동의하면 안 된다는 것이네. 잘 이해했는가?”
“잘 알았어요. 그러지 않아도 사실과 다른 말씀을 하시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잠시 고민했는데 아무런 고민도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따를게요.”
이렇게 홍련에게조차도 다짐을 받은 다음에서야 비로소 풀이를 시작했다.
“우선, 낭자는 천성(天性)이 혼자서는 살지 못할 것이네. 누군가의 시선이 필요하다는 말이지. 아무도 알아주지 않으면 외로움에 사로잡혀서 삶의 맛을 느끼지 못할 것으로 보이는데 어떤가?”
우창의 첫마디에서 벌써 홍련은 경탄(驚歎)하는 표정을 지었다.
“어쩜~! 더 드릴 말씀이 없어요. 말씀하신 대로에요.”
일단 시작이 순조롭게 풀리자 우창도 긴장되었던 생각이 약간 풀렸다.
“아, 그런가? 그렇다면 이어서 풀이해 보겠네. 또 하나는 자신이 노력한 것에 대해서는 반드시 결실이 돌아와야만 한다는 생각도 하고 있네. 물론 누구나 그렇게 생각을 하지만, 가끔은 손해를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마음이라고 할 수도 있을 텐데 그렇게 하는 것이 인생의 허비라고 생각하는데 안 그렇다면 아니라고 말을 해 줘야. 염재가 고마워할 것이네.”
“부끄럽지만 실제로 제가 갖고있는 품성에 대해서 틀림없는 풀이네요. 달리 변명을 할 틈도 안 주시지만, 가려운 곳을 긁어주시는 것처럼 시원한 것은 또 무슨 까닭인지 모르겠어요. 호호~!”
“그러면서도 손에 잡히지 않는 곳에 누군가가 자신을 이끌어 줄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네. 이러한 것은 서로 모순(矛盾)이 되는 것처럼 생각이 될 수도 있겠지만 원래 인생은 그렇게 모순을 갖고서도 잘 살아가는 것이니까 아무런 문제가 될 것이 없다네. 어떤가? 관음보살님께 열심히 업장을 소멸해 달라고 기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물질적으로 풍요롭기를 바라는 자신의 모습을 느껴 봤는가?”
“맞아요. 기도하면서도 항상 돈이 많은 사람을 만나서 고통을 벗어나고 자유로움을 누리고자 하는 열망이 있었어요. 마음만 편하면 된다는 사람들의 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할 수가 없었죠. 왜냐면 돈이 있어야 마음도 편할 텐데 속마음은 다르면서 위선적으로 말하는 것으로 생각을 했으니까요.”
우창은 홍련이 자신의 치부(恥部)를 드러내는 것처럼 어려운 답변조차도 솔직하게 말하는 것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부친과의 인연을 설명하겠네. 부친은 홍련 낭자에게는 매우 어려운 존재여서 기침만 해도 가슴이 조여드는 느낌일 것이고, 그래서 빚을 갚으라고 해도 반발하지 않고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네. 물론 어머니는 실로 아무런 힘이 없어서 부친의 말에만 따르는 그야말로 여필종부(女必從夫)의 마음이었기 때문에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는 것은 생각도 할 수가 없었을 것이네. 어떤가?”
우창의 설명을 들으면서 홍련은 마치 자신이 살아온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진저리를 치면서 말했다.
“맞아요. 정말 어려서부터 항상 아버지 뵙는 것이 호랑이를 보는 것보다 두려웠죠. 그래서 오히려 돈을 벌러 청루로 가야 한다는 것이 나쁘지 않았을 정도이기도 했어요. 저의 어린 시절의 풍경이 그대로 나오네요.”
“그리고 형제자매도 내가 돌봐야 할 상황이라고 생각했겠는걸. 아무리 도와줘도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과 같았겠지만 그래도 어떻게 하느냐고 체념(諦念)했을 것으로 보이네. 그러다가 근래에 와서는 이러한 짓이 과연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어떻게 하느냐는 생각은 변함이 없을 것이네.”
“그래서 팔자인가보다 하고 살았어요. 그런데 작년부터 이러한 생각에 변화가 왔다는 것은 또 어떻게 아셨어요? 올해는 점점 그것이 더 심해지면서 이러다가 내가 죽으면 다 소용없는 일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왕언니로부터 자꾸 주의를 받곤 하지만 저절로 그렇게 생각이 되는 것은 저도 어쩔 수가 없었거든요. 예전엔 안 그랬는데 이렇게 변화가 생기는 것도 팔자의 영향일까요?”
춘매와 염재의 표정은 우창의 이야기 속으로 완전히 빠져들어 가는 듯했다. 설명의 한마디마다 점괘의 간지와 조합하느라고 바쁜 춘매와. 아직 사주에 대해서 풀이할 줄은 모르지만, 이렇게 만들어진 사주를 놓고 설명하는데 홍련의 표정은 억지로 꾸며서는 나오기 어려운 진솔함에 대해서 빠져들고 있었다. 우창의 말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문제는 말이네.”
우창이 잠시 뜸을 들이자. 홍련이 얼른 받았다.
“무슨 말씀이든 다 들을 준비가 되어 있어요. 편안하게 말씀해 주세요.”
“낭자의 허영심(虛榮心)이네.”
우창은 이렇게 말을 하고는 잠시 기다렸다. 홍련이 이것을 받아들이면 마음을 열었다고 보겠지만 이것에 대해서 부정한다면 아무래도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봐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우창의 말에 잠시 머뭇거리던 홍련이 입을 열었다.
“정말 오늘 저의 속속들이 부끄러운 부분도 모두 다 드러내네요. 맞아요. 저도 그게 싫지만, 시골구석에서 빈한(貧寒)하게 묻혀서 살고 싶은 생각은 없거든요. 그래서 먼저 앵화루에서 도사님께 ‘시골로 돌아가서 주막이라도 하는 것이 좋겠다’는 말씀하셨을 적에 머리는 수긍(首肯)하면서도 마음으로는 그렇게 살아갈 마음이 없다는 모순에 빠졌지 뭐에요. 어쩜 좋을까요. 호호호~!”
자기의 속내를 이야기하면서도 남의 말을 하듯이 하는 소탈함은 맘에 들었다. 그렇지만 점괘의 조짐이 너무나 고초(苦楚)를 겪어 왔으니 당연히 그럴 만도 하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한편으로는 측은한 마음도 생겼다.
“낭자는 만개(滿開)한 벚꽃 나무와 같다고 하겠네. 그러니까 사람들이 찾아와서 찬탄과 감동을 하는 것을 접하게 되면 존재감이 살아나지만, 아무도 찾지 않는 비가 오는 날은 우울해서 창밖을 보면서 멍하게 앉아있기가 일쑤라네. 이런 마음으로 시골에서 동네 남정네들과 시시껄렁한 농담이나 주고받으면서 일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가 없는 일이네.”
“맞아요! 바로 맞히셨어요~! 그래서 오늘 답을 얻고 싶었던 거에요. 어쩜~!”
홍련은 진심으로 감동하고 있었다. 우창의 설명 속으로 푹 빠져들어 가고 있는 모습이었다.
“다만, 내면 깊숙한 곳에는 태생적으로 도도한 것도 있어서 비록 청루(靑樓)의 기녀(妓女)는 할망정, 홍루(紅樓)에서 창녀(娼女)는 할 수가 없었던 것은 천성이 남들로부터 멸시(蔑視)를 받으면서 살아갈 수는 없었던 성품이기 때문이라네. 그러다 보니까 아무리 재물로 유혹을 해도 자신의 육체나 탐하는 한량들에게는 몸을 의탁하고 싶지 않아서 걱정하면서도 막상 그렇게라도 삶을 안락하게 하는 동료들을 보면 아쉬움이 생기기도 했지만, 막상 누군가 그러한 제안을 하면서 첩실(妾室)로 들어앉는 것은 어떻겠냐고 하면 즉시로 반발을 하게 되는 것은 바로 우아한 목단(牧丹)과 같은 꽃이기 때문이라네.”
“맞아요. 그런 제안도 많이 받았으나 그것은 내키지 않았는데 그것이 팔자에 나온다는 것도 참 신기하네요. 제 마음을 사랑해주는 것을 바라면서도 제 몸을 탐하는 사람을 만나면 소름이 먼저 돋거든요. 그러니 어떻게 첩실로 들어가서 살 생각을 할 수가 있겠느냔 말이죠. 그렇다고 해서 정실(正室)을 원하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으니 아직도 요모양인가 봐요. 호호호~!”
여기까지 설명을 하던 우창은 문득 염재를 바라봤다. 지금까지의 설명을 듣고서 염재는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염재가 자신의 의견을 듣고자 하는 우창의 표정을 보고서 느낀 바를 말했다.
“스승님, 오늘 참으로 새로운 세상을 경험했습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습니까? 제자는 놀라움으로 입을 다물 수도 없을 지경입니다.”
“그런가? 이것은 어떻게 합리적인 방법으로 설명을 할 수가 있겠는가?”
“제자도 이러한 현상을 설명할 방법이 있는지를 생각해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은 적당한 설명을 할 수가 있는 법을 모르겠습니다. 세상의 모든 이치는 논리적(論理的)으로 타당해야 하고, 이치적(理致的)으로 합당(合當)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원인과 결과를 놓고 유추하면 그 안에 답이 있다고 생각을 했고, 그것을 꼭 믿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그러한 것이 무용지물(無用之物)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제자가 세상을 너무 좁게 바라본 것이 분명합니다.”
“이로 미뤄서 보건대 어떤가? 과연 아득한 옛날 어느 지혜로운 종사(宗師)께서 사갑자(四甲子)의 순간을 포착(捕捉)했다고 한다면 그것을 모순이라고 하겠는가?”
“아닙니다. 절대로 그럴 수가 없겠습니다. 논리적인 것이 항상 옳다고 할 수도 없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는 이치를 듣고 싶습니다. 어떤 자연의 조화(造化)라고 해야 하겠습니까?”
“실로 간단하다네. 실법(實法)과 공법(空法)의 이치가 어우러져서 돌아가는 세상의 이치라고밖에 설명할 길이 없을 따름이네.”
“스승님의 말씀은 세상에는 실법도 있으나 공법도 있다는 뜻입니까? 그렇다면 제자가 생각하고 믿었던 것은 실법이었습니까? 항상 실제적인 증거(證據)에 의해서 관부(官府)의 일을 처리하다 보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몸에 밴 것인가 싶기도 합니다.”
“그런가? 나도 그랬다네. 손헌 선생님을 뵙기 전에는 말이네.”
“예? 손헌 선생님은 또 어느 고인이십니까?”
“그런 분이 있다네. 다음에 기회가 되면 함께 만나러 갈 수도 있을 것이네. 중요한 것은, 이 둘이 음양(陰陽)의 양극(陽極)에서 세상의 이치를 조절하는 것이라네.”
“참으로 놀랍습니다. 그렇다면 홍련 낭자의 운명은 태어날 적에 부여받은 사주팔자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이 오늘 얻은 사주로 봐도 된다는 뜻이네요? 만약에 실제로 사주와 비교를 한다면 또 어떻게 다를까요?”
“글자가 같지는 않겠지만 해석은 비슷하지 않겠나?”
“그럴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자가 이치는 모르지만 설명하시는 내용과 낭자의 솔직한 답변을 접해 보면서 생각해 보건대 세상에는 분명히 한가지 이치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히 알겠습니다. 그것도 음양일까요?”
“맞아, 그렇다면 어느 것이 음이고 또 어느 것이 양이 되는지도 설명을 할 수가 있겠는가?”
“예전에 어느 책에선가 본 기억이 납니다. 음허양실(陰虛陽實)이라는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말하자면 허실론(虛實論)인데 공실론(空實論)이라고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지 싶습니다. 그러니까 공법은 음이 되고, 실법은 양이 되어서 두 축이 서로를 견제하면서 균형을 이뤄가는 것일까요?”
“참 잘 이해했네. 염재는 전생부터 공을 쌓았던 것이 분명하네. 하하하~!”
그러자 춘매가 생각이 나는 것이 있었던지 말했다.
“오빠, 몸을 다루는 나도 허실(虛實)은 알아. 허실이 모두 병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지. 안마할 적에도 이것을 찾아서 풀어 주면 뭉쳤던 곳은 풀어지고 약했던 곳은 강해져서 저절로 몸이 좋아지니까.”
춘매의 말에 세 사람은 귀를 기울였다. 몸에 대해서도 허실이 존재한다면 그것도 참으로 신기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다만 홍련은 예전에 이러한 말을 들으면서 무슨 말인지 잘 몰라도 들어두면 이로울 것이라는 생각으로 귀를 기울였을 따름이었다. 뜻밖에도 춘매의 말에 관심을 보이자 신명이 나서 말을 이었다.
“병증(病症)이란 것이 있어. 증(症)이 깊어지면 병(病)이 되는 것인데, 처음에는 증세(症勢)가 나타났다가 계속해서 방치(放置)하게 되면 발병(發病)하게 되는 것이야.”
“오호~! 그것참 재미있는 말이네. 그러니까 허실의 증세가 있다는 말이잖아? 궁금하니 어서 설명해 봐.”
“여기에 대한 간단한 구결(口訣)이 있어. 「정기허(正氣虛), 사기실(邪氣實)」이라고 하는 거야.”
“오호~! 그러니까, 올바른 기운은 허하면 병이 되고, 사악한 기운은 실하면 병이 된다는 뜻인가? 분위기는 그런 것으로 보이는데?”
“역시~! 오빠의 추론은 정확하고도 빠르네. 호호호~!”
“그렇다면 정기가 허하면 어떤 증세가 나타난다는 말이지? 그게 중요하다는 말이잖아?”
“가령, 말을 하는 것은 정기(精氣)야. 그런데 말이 불분명하거나 말을 하는 자신도 정확하게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를 때가 있어. 어쩌면 몽롱(朦朧)하다고 해야 할 수도 있겠네. 이런 상태가 바로 정기허(正氣虛)에 속하는 거야. 너무 진력(盡力)하고 나면 지치게 되고 그러한 상황에서 말을 하게 되면 이와 같은 현상이 생기지. 마치 고단해서 졸음이 쏟아질 때의 상황과 비슷하다고 생각해도 크게 다르지 않아.”
“아하~! 그런 때는 휴식(休息)이 필요하구나. 그런 것을 병이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 허증(虛症)이라고 한단 말이지?”
“아니, 오빠도 의술(醫術)에 대해서 상당한 지식이 있었어?”
“뭐 그 정도야 상식이잖아. 하하하~!”
“문제는 오빠의 상식은 일반인의 수준을 넘는 곳에 있다는 것이지. 그래서 깜짝깜짝 놀라잖아. 호호호~!”
춘매가 그렇게 말하면서 염재를 바라봤다. 염재에게도 할 말이 있으면 기회를 준다는 뜻이었다. 그러자 염재도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정말 사저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까 허실이 학문에서도 살아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닫습니다. 건강(健康)과 장부론(臟腑論)에 대해서야 기본적인 이치를 알고 있었으나 학문(學問)에서도 그러한 것이 존재하리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거든요. 그런데 지금 사저님이 비유를 들어서 인체에 대해서 말씀을 해주시니까 이해가 잘 됩니다. 어서 계속해 주십시오.”
“그러니까 정상적인 상태에서 약간 비정상적인 반응이 보인다면 그것이야말로 허증이라고 할 수가 있어. 그래서 휴식이 필요하고 음식이 필요하고, 대화가 필요한 것인데 이러한 것이 채워지지 않으면 허증이 변해서 실증이 되는 거야.”
이번에는 홍련이 생각났는지 한마디 했다.
“그러니까 병이 한순간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잖아요?”
“물론이에요. 무엇이든 미리부터 몇 차례의 조짐을 보여주죠. 그래도 해결이 되지 않으면 결과가 나타나는 것으로 보면 되죠.”
홍련이 이해한 듯이 고개를 끄덕이자 계속해서 설명을 이어갔다.
“실증은 대체로 통증을 유발(誘發)해. 경고(警告)라고 보면 되지. 이때만 해도 아직은 적절하게 관리를 하면 해결이 되니까 심각한 상태는 아니야. 이때가 바로 양생안마소를 찾아올 때인 거지. 스스로 어딘가 불편함을 느끼게 되면 그것을 해소하려고 하는 노력을 하거든. 물론 혼자서 잘되지 않으면 남에게서 그 해결책을 얻으려고 하고, 그래서 의원이나 안마소를 찾게 되는 거니까.”
우창이 춘매의 말을 듣고는 감탄을 했다.
“이야~! 참 기가 막히게 끌어다 붙이는구나. 신기하네. 하하하~!”
“이게 다 오빠에게서 배운 거야. 같이 있다가 보니까 말도 배우게 되네. 호호호~!”
그러자 염재가 말했다.
“사저님, 그것이 바로 어제 대사님이 말씀하신 ‘선인선과(善因善果)’네요. 좋은 일은 연달아서 생긴다더니 그 말이 맞나 봅니다. 축하합니다.”
“그런가? 호호호~!”
춘매가 기분이 좋아서 크게 웃고는 말을 이었다.
“실증(實證)이 나타났는데도 치유하지 않으면 이제는 발병(發病)이 되는 거야. 그렇게 되면 그냥 만지기만 해서는 해결이 되지 않아. 이때는 의원을 찾아서 약을 먹거나 침을 맞고 뜸을 떠야 해결이 되지. 그러니까 증이 커져서 병이 되면 몸도 고통을 받고 돈도 더 많이 들어야 정상으로 돌아가는 거야. 참 오빠 이러한 현상은 뭐라고 하면 적당할까?”
“음극즉양생(陰極卽陽生)이라고 할까?”
“아, 맞다. 음이 극에 달하면 양이 생기듯이....? 어 좀 이상한데? 그건 아닌 것 같아. 다른 말은 없어?”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것인가?”
“아, 그 말이네. 이렇게 해서 사람의 몸에서도 허실(虛實)이 있다는 것을 설명하려고 했는데 어떻게 말이 되었나 모르겠네.”
춘매가 적당한 선에서 이야기를 마치자 우창이 그 말을 받았다.
“물론이지. 참으로 적절한 곳에서 누이의 설명이 보태지니까 제대로 그림이 되네. 이해를 잘했어.”
그러자 염재도 공감을 표시했다.
“정말이지 이제 염재의 소견이 두 배로 증가했음을 느꼈습니다. 앞으로는 관부에서 사건이 발생하더라도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면서 일을 처리할 수가 있겠습니다. 예전에는 확실한 증거만 인정했거든요. 이제부터는 심증(心證)에 대해서도 비중을 갖고서 살펴봐야 한다는 것을 크게 깨달았습니다. 오행의 이치를 배우니 관부의 일조차도 잘할 수가 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발견입니다.”
그러자 춘매가 다시 우창을 바라봤다. 이런 때는 뭐라고 하면 좋겠느냐는 뜻이었다. 그러자 우창이 말했다.
“그야말로 일석삼조(一石三鳥)로군. 축하할 일이네. 하하하~!”
“아, 맞다~! 일석삼조, 그러니까 ‘돌 하나를 던져서 새를 세 마리 잡는다’는 말이잖아? 그 말이 생각나지 않았어. 호호호~!”
그러자 함께 웃으면서도 마음에 그늘이 보이는 홍련의 얼굴이 보였다. 춘매가 그 점에 대해서 말했다.
“자, 우리의 이야기는 이쯤에서 줄이고 이제 홍련 낭자의 문제로 다시 돌아가야 하겠네. 오빠가 결론을 내려주겠지?”
그러자 모두 우창을 바라봤다.
“홍련 낭자도 나름대로 방향이 나왔을 것으로 생각이 되는데 느낌을 말해보게.”
“실로 스스로 타고 난 악연(惡緣)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생각하고 있었어요. 허영심 말이죠. 이것만 해결할 수가 있다면 남들처럼 평범하게 잘 살아갈 수가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자꾸만 부추기는 이 허영심 때문에 제가 어떻게 해야 할지를 판단하지 못하겠어요. 어떻게 해야 이것을 끊어 낼 수가 있을까요?”
“그래? 쉽진 않겠지만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지.”
“방법이 있어요? 그렇다면 알려주세요. 꼭 그렇게 하고 싶어요.”
“원래 세상의 만물은 저마다 생긴 대로 살아가게 되어 있지. 다만 인간만 생긴 것을 고칠 기회를 부여받는다고 하겠는데, 그것도 쉽지가 않아서 스스로 그렇게 하고 싶다고 해도 계속해서 흔들리게 되는 것은 피하기가 어렵다네. 그래서 나온 말이 작심삼일(作心三日)일세.”
“아, 맞아요. 잠깐은 저도 이 허영심 때문에 인생을 망치게 될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고치려고 마음을 먹었다가도 이내 그 마음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다시 자존심(自尊心)이 자극을 받으면 순식간에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곤 하거든요. 어떻게 해야 작심삼일을 고칠 수가 있을까요?”
“물론 해결할 비책(祕策)은 있지. 3일에 한 번씩 작심하면 된다네. 하하하~!”
그 말에 춘매가 재미있다고 웃었다.
“오호호호~! 그게 무슨 해결책이야~! 참 오빠도 기가 막힌 답을 내놓는 것을 보니 어지간히 궁색(窮塞)했나 보네. 오호호~!”
춘매가 그렇게 말하면서 웃자, 이번에는 염재가 한마디 했다.
“그런데, 사저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생각해 보니까 스승님의 말씀도 일리가 있겠네요. 왜냐면, 공자님께서도 일일삼성(一日三省)을 하셨다고 하거든요. 대성이신 공자님께서도 하루에 세 번을 돌이켜보라고 하셨다면 보통 사람이 삼 일에 한 번 돌이켜 보는 것이라도 못할 것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 그렇겠네. 염재의 말을 듣고 보니까 그것도 가능하겠구나. 그렇다면 홍련 낭자의 미래도 빛이 보이네. 어디 속는셈치고 해봐요. 호호호~!”
그러자 홍련이 만면에 기쁜 빛을 띠면서 말했다.
“오늘의 가르침으로 저는 다시 태어났어요. 이제 사치하고 화려한 것만 꿈꾸던 마음을 고치겠어요. 삼일마다 결심하는 일로 인해서 이러한 위험에서 벗어날 수가 있다면 기꺼이 해야지요. 그리고 노력을 하면 나쁜 버릇도 고칠 수가 있듯이 팔자에서 나쁜 암시나 성격에서 결함이 있는 것도 개선(改善)이 된다는 말씀에 희망의 빛을 봤어요. 정말 감사드려요.”
그러자 우창도 마음이 가벼워졌다. 다음에는 홍련의 거취(去取)에 대해서 어떻게라도 도움을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곰곰 생각하다가 염재에게 물었다.
“염재에게 물어볼 말이 있네.”
“예, 스승님 말씀하십시오.”
“곡부현에서는 홍련과 같은 미녀에게 맡길 만한 일이 없을까?”
“예? 무슨 뜻입니까?”
“아니, 생각해 보게나, 화용월태(花容月態)의 고운 자태에 나이도 젊어서 무슨 일이든 잘 처리할 수가 있겠고, 그동안 세파에 시달리면서 사람의 속내를 파악하는 능력도 쌓았으니 이러한 사람이 관부에서 할 만한 일이 없겠느냔 말이네. 내가 관청의 속사정을 잘 몰라서 묻는 말이네.”
“아, 그 뜻이었습니까? 그야 물론 할만한 일이 있을 것입니다. 관기(官妓)가 된다면 오히려 존중을 받으면서 예인(藝人)으로 멋진 삶을 살아갈 수도 있을 것입니다. 혹 스승님의 점괘에서 그러한 조짐을 읽으신 것은 아닙니까? 그렇지 않고서야 그렇게 콕 찍어서 제자에게 말씀하실 리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역시 염재의 예지력은 상당하군. 그러지 않아도 점괘에서 관부가 보였다네. 그래서 이것이 무슨 조짐인가 싶었지. 이 조짐의 해석은 두 가지로 가능하다네. 하나는 낭군을 만나서 가정을 꾸미는 것인데 지금 홍련의 심사(心思)로 봐서 그럴 생각은 전혀 없어 보이니 그건 아닌 것 같고, 그렇다면 관부에서 자신의 보금자리를 찾을 수가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해본 것이었네. 만약에 관기가 된다면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 그 일을 할 수가 있는 것인가?”
“그야 당연합니다. 원래 젊은 여인들을 관리하려면 반드시 나이가 든 여인이 필요하거든요. 그래서 저마다 경력에 따라서 직급이 있고 그에 따라서 예우도 다릅니다.”
“아마도 그럴 것으로 생각했네. 다행히 홍련의 운명에서 가장 치명적인 문제인 허영심이 마음에 걸렸는데 그것은 스스로 깨닫고 고치겠다고 한다면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봐서 이제는 그 방법에 대해서 의논해 봐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네.”
우창의 말에 홍련이 고개를 숙였다. 감정이 복받쳐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기 때문이었다. 춘매가 얼른 수건을 가져다주자. 눈물을 훔치고는 우창에게 허리를 굽혔다. 감사의 표현이었다.
“진도사님의 하해같은 배려심에 감동했습니다. 그리고 친절하고 쾌활하신....”
홍련이 춘매를 보면서 뭐라고 불러야 할지를 망설이자 춘매가 얼른 받았다.
“언니라고 불러도 돼요.”
“예, 친절하고 쾌활하신 언니와 명석하신 통판나리의 인연에 모두 감사드려요. 관기가 된다면 최상의 선택이라고 할 수가 있죠. 막무가내의 사내들을 만날 일도 없고, 보호를 받으면서 품격있는 재능을 발휘하고 안정된 삶을 살아갈 수가 있으니까요. 다만 누구나 희망한다고 해도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거든요. 아무리 줄을 잡으려고 해도 관부 나리들의 사심이 발동해서인지 관기가 아니라 첩으로만 들어 앉히려고 해서 마음대로 안 되는데, 오늘 진도사님의 말씀만으로도 이미 제 삶은 빛이 환하게 밝아지네요. 물론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도 결코 원망은 하지 않을 거예요. 그 배려만으로도 이미 감동인걸요.”
그러자 염재가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실은 현령(縣令)께서 결정하셔야 하는 일입니다. 다행인 것은 마침 관기 한 사람이 몸이 안 좋다고 그만두기를 희망한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이지 싶습니다. 이 문제는 돌아가서 말씀드리고 알려드리는 것으로 해야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확인하고 알려 주게나. 내일도 아침에 올텐가?”
“예. 내일 아침에 결과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은 이만 물러가야 하겠습니다. 많은 것을 배웠고, 그래서 행복했습니다. 사저님도 편히 계십시오. 홍련 낭자도 내일 뵙겠습니다.”
이렇게 일일이 작별인사를 하고는 돌아갔다. 이제 우창도 쉬고 싶었다. 그것을 얼른 눈치챈 춘매는 홍련과 건너가면서 말했다.
“오빠도 쉬세요. 제자들의 등쌀에 허증(虛症)이 생기면 어떡해요. 호호호~!”
우창이 빙그레 미소로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