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0] 제25장. 합리적 의문(疑問)/ 5.천연(天然)과 인위(人爲)의 사이
작성일
2020-11-25 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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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0] 제25장. 합리적 의문(疑問)
5. 천연(天然)과 인위(人爲)의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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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지나고 다시 날이 밝았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일찍 잠이 깬 우창이 아침의 산책길에서 돌아오면서 보니 어느 사이에 염재가 도착해서 말을 매고 있었다. 얼굴의 표정으로 봐서 홍련의 일이 잘 풀린 것으로 짐작이 되었다. 우창이 미소를 짓고 다가오는 것을 본 염재가 먼저 인사를 했다.
“스승님 편히 쉬셨습니까? 염재가 문안 여쭙습니다.”
“그래 잘 쉬었네. 어서 오시게. 들어가지.”
“예, 스승님.”
염재의 말굽 소리를 듣고 춘매도 홍련과 함께 우창의 점술관으로 건너왔다. 모두 궁금한 마음에 염재의 말만 기다렸다. 주변의 사람들이 자기의 입만 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말을 꺼냈다.
“다행히 현령(縣令)께서 흔쾌히 승낙하셨습니다. 더구나 특별히 배려해 주신 말씀도 계셨습니다.”
마음이 급한 춘매가 얼른 물었다.
“어? 그게 뭐지?”
“현령께서 말씀하시기를 ‘앵화루에서 더 종사해야 하는 기간은 염재가 알아서 처리하라’는 말씀까지 하셨습니다. 이제 다시는 앵화루에 돌아가지 않으셔도 됩니다. 바로 소지품을 챙겨서 관아(官衙)로 보내면 관원들이 챙겨 줄 것입니다. 그리고 관청에서도 험한 일은 하지 않도록 특별히 현령께 청을 올렸더니 잘 알았다고 하셨습니다.”
염재가 전달해 주는 이야기에 홍련은 눈물이 가득 고인 눈으로 모두에게 일일이 머리를 숙여서 고맙다는 마음을 전하고는 염재를 따라서 관아로 향했다. 염재도 잠시 다녀오마고 하고는 말의 뒤에 태우고 바로 떠났다. 그러자 갑자기 오붓하게 둘만 남게 되었다. 춘매가 희색이 만면해서 말했다.
“오빠, 뭔가 좋은 일을 한 것 같지?”
춘매가 웃으면서 말하자 우창은 그래도 마음이 안 놓인다는 표정으로 답했다.
“그렇긴 하지만, 잘 적응해야 보람이 있는 거야. 아마도 한동안은 본성을 다스리려면 마음고생도 좀 할 거네.”
“그야 본인의 노력에 맡기는 수밖에 없잖아. 그래도 잘 될 거야. 스스로 노력하면 변화도 가능하다고 했잖아?”
“맞아. 업력(業力)의 소용돌이를 벗어나는 일이 쉽지 않겠지만 그나마도 노력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그러한 기회조차도 오지 않는 것이니까 아마도 잘 될 거야.”
그렇게 두 사람이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벌써 홍련을 데리고 갔던 염재가 바삐 돌아왔다. 말이 있으니 일을 처리하는 속도가 무척이나 빨랐던 모양이다. 그 모습을 보면서 춘매가 말했다.
“어때? 맘에 들어하던가? 그랬으면 좋을텐데 말이야.”
“염려하지 않으셔도 되지 싶습니다. 마치 오래전에 그래왔던 것처럼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것으로 보여서 마음이 놓였습니다. 거듭 고맙다는 말씀을 전해달라고 했습니다.”
“와~! 그렇다면 참으로 다행이네. 호호호~!”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점심을 먹을 시간이 되자 춘매가 빚어서 삶은 만두를 준비했다. 무엇을 하든 맛이 좋은 것도 타고난 솜씨가 있어서인 모양이다. 그렇게 점심을 해결하고서야 차를 마시면서 셋이서 마주하고 앉았다. 염재는 묻고 싶은 것이 많았던지 적어 온 것을 꺼내어서 앞에 내려놓았다. 우창은 염재의 질문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스승님께서 어제 풀이하신 조작사주(造作四柱)에 대해서 감탄을 했습니다. 그로 인해서 제자의 우둔한 머리는 마치 번개에 얻어맞은 듯이 불꽃이 튀었던 것과 같았습니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 보니까 또 새로운 궁금증이 생겨서 이렇게 정리를 좀 해 봤습니다. 좀 여쭙겠습니다.”
“그러시게.”
“예전에 배웠던 것도 함께 생각해 봤으니 두서가 없더라도 참작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선, ‘정해질 것’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으므로 얼마든지 변화할 수 있다고 이해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제의 말씀으로 봐서는 이미 정해진 것조차도 바뀔 수가 있다는 뜻으로 이해를 했습니다. 이것은 잘 이해한 것입니까?”
“물론이네.”
“그것은 또 어떤 이치입니까?”
“미래(未來)인 까닭이라네.”
“그러니까 스승님의 말씀으로는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의 일은 변화가 가능하다’는 것입니까?”
“노력만 한다면 말이네.”
“그렇습니까? 왠지 운명을 바꾼다는 것이 너무 쉽다는 생각도 듭니다.”
“부처가 말하기로는 ‘중생을 부처로 만든다’고 하지 않았는가? 스스로 변화하고자 노력한다면 그 정도의 변수(變數)는 얼마든지 존재하는 것이라네. 그로 인해서 명리학이 존재할 이유도 찾게 되는 것이지.”
“명리학이 존재할 이유라고 하심은....?”
“명리학은 숙명론(宿命論)이 아니던가?”
“제자도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숙명론이란 과거인가 미래인가?”
“물론 과거입니다.”
“과거에 이미 만들어졌던 것을 들여다보는 것이 숙명론이라고 하면 되겠나?”
“맞습니다.”
“그렇다면 다시 묻겠네. 이미 과거에 만들어진 것을 왜 들여다보는 것일까?”
“그야 궁금해서가 아니겠습니까?”
“맞아. 그렇다면 그것을 봤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자신의 팔자가 좋으면 기뻐하고 나쁘면 슬퍼하게 되지 않겠습니까?”
“만약에 그것이 자평명리학(子平命理學)의 전부라고 한다면 세상에 존재할 가치가 얼마나 되겠는가?”
“예? 가치라면.... 무슨 뜻인지요? 스승님의 말씀이 이해가 잘되지 않습니다. 우둔한 제자를 위해서 설명해 주십시오.”
염재가 무슨 뜻인지를 몰라서 어리둥절하고 있는 모습을 본 우창이 차를 한 모금 마시고서 말을 이었다.
“사내들이 골방에 모여앉아서 시시껄렁한 음담패설(淫談悖說)로 수다를 떠는 것과 다른 것이 학문이라면 말이네. 학문의 존재가 호기심을 충족(充足)하는 것으로 다 한다면 누가 그것에 평생을 바쳐서 연구하고 궁리하겠느냔 말이네. 그럴 필요가 있을까?”
“듣고 보니 스승님의 말씀이 일리가 있습니다. 그럴 가치가 없다고 해야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명리학의 가치는 무엇입니까?”
“두 가지의 가치가 있네. 그 하나는 자신의 업력(業力)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이고, 그 둘은 보다 나은 삶으로 개선(改善)하는 것이라네. 물론 하나는 누구나 다 스스로 알거나 남에게 물어서 알 수가 있으니 쉬운 일이라고 한다면, 둘째는 스스로 결심(決心)을 해야만 가능한 것이므로 쉽지 않다는 것이 다를 뿐이라네.”
“잘 알겠습니다. 스승님께서 말씀하시는 뜻은 ‘마음을 먹고 노력하기에 따라서 숙명은 개선이 가능한 것’으로 이해하면 되겠습니까?”
“물론이지.”
“그렇다면 다시 여쭙겠습니다. 태어날 적에 주어진 사주팔자는 천명(天命)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이것은 충분히 이해가 되는데, 어제 만들어진 사주를 통해서 예측한 홍련 낭자의 경우에도 천명에 부합이 된다고 할 수가 있는 것입니까?”
“왜?”
“아무래도 인위적(人爲的)으로 만들어진 것이잖습니까?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그 사람의 숙명이 된다면 구태여 태어난 날짜와 시간을 알아보려고 애를 쓸 필요가 있겠느냐는 생각도 해 봤습니다.”
우창은 염재가 아직도 궁금한 점이 풀리지 않았음을 생각하고는 다시 질문을 던졌다.
“그렇다면 물어보세. 천명이란 무엇인가?”
“천명은 태어날 적에 타고 난 것으로 하늘의 뜻에 따라서 주어진 것이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런가? 그렇다면 하늘이란 무엇일까?”
“하늘은..... 자연(自然)일까요?”
“옳지~! 하늘은 자연이라고 했나?”
“아무래도 옥황상제(玉皇上帝)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을까 싶어서 해 본 생각입니다. 옥황상제가 있어서 모든 생명을 관장한다고는 생각이 되지 않아서입니다.”
“나도 그에 대해서는 동감이네. 그렇다면 자연이 천명이란 말은 공감이 된다는 뜻인가?”
“맞습니다. 그래서 인위적(人爲的)인 것과 천연적(天然的)인 것으로 구분을 할 수가 있지 싶습니다.”
염재의 대답을 듣자 우창이 종이에다 글을 썼다.
염재가 우창의 글을 보면서 말했다.
“천명즉자연(天命卽自然)이라고 쓰셨네요. 그러니까 천명과 자연은 서로 같다는 뜻이네요. 스승님께서 이렇게 문자(文字)로 써 놓으시니까 더욱 깊이 각인(刻印)이 되는 것 같습니다.”
“맞는 말이네, 그렇다면 다시 어제의 상황을 생각해 보세. 무엇이 인위적이었단 말인가?”
“홍련 낭자가 자신의 사주를 모른다고 하자, 스승님께서 그 말을 한 시간으로 간지를 만든 것이 인위적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염재는 ‘일심만년(一心萬年)’이라는 말을 들어 봤는가?”
“그것은 한 번 먹은 마음이 오랜 시간이 흘러가도 변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까?”
“다른 말로는 ‘한순간(瞬間)이 만년과 같다’고도 한다네. 마치 일념즉시무량겁(一念卽時無量劫)과도 같은 말이지.”
“그 말씀의 뜻은 한 생각과 한량없는 시간은 서로 같은 것이라는 뜻입니까? 너무 어려워서 깊은 뜻을 헤아리기가 어렵습니다.”
“시간(時間)과 공간(空間)은 둘이 아니라는 뜻이라네. 더구나 시간조차도 과거와 미래가 둘이 아니라는 의미도 그 안에 포함이 된다고 하겠지.”
“무슨 말씀이신지 얼른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쉬운 말씀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그러자 춘매도 한 마디 거들었다.
“오늘 오빠의 설명은 도무지 어디에 떨어지는 돌인지 알 수가 없네. 염재조차도 어렵다고 하니 나야 더 말을 할 나위도 없지. 정말 이해가 되도록 말을 해 줘봐.”
우창은 염재도 염재이지만 춘매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말에 다시 쉽게 풀어서 설명했다.
“그런가? 염재는 꿈을 어떻게 생각하나? 꿈은 현실인가 아닌가?”
“꿈은 현실이 아닙니다. 다만 조짐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렇지만 조짐이 현실일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염재는 자신이 오랫동안 꿈에 시달렸던 것을 떠올리면서 말했다.
“그렇다면, 꿈과 현실이 둘이었다는 말인가?”
“아무래도 그렇게 생각이 됩니다.”
“예전에 해몽을 잘하기로 이름이 높은 사람이 있었다네. 해몽을 잘하면 그런 사람을 뭐라고 부르지?”
“해몽가(解夢家)라고 합니다.”
“얼마나 유명했던지 왕의 귀에까지 들어갔다네. 그런데 왕은 논리를 즐기는 이론적인 사람이었던 모양이야. 그 사람을 허망한 꿈따위로 민심을 현혹(眩惑)한다고 생각했던 것을 보면 말이네.”
“그럴 수 있겠습니다.”
“왕이 그 해몽가를 불러오라고 했고, 앞에 마주하게 되었지. 그러자 왕이 물었네. ‘그대가 해몽가인가?’라고 하자, 해몽가는 대답했지. ‘남들이 그렇게 부릅니다.’라고. 그러자 왕이 다시 말했다네. ‘짐이 오늘 낮잠을 자다가 꿈을 꿨다네. 해몽을 부탁하네. 꿈에 기왓장이 하나 툭 떨어지더니 비둘기가 되어서 날아갔다네. 이게 무슨 꿈인가?’라고 꾸지도 않은 꿈을 지어서 말하자 해몽가는 가만히 생각하더니 바로 말을 했더라네. ‘폐하, 오늘 해가 지기 전에 궁녀가 한 사람 흰 천에 덮혀서 궁을 나가겠사옵니다.’라고. 왕이 펼쳐놓은 미끼를 덥석 물어버렸지.”
그러자 춘매가 말했다.
“아이고, 애먼 사람 하나 죽겠구나. 그 해몽가는 그 죽을 사람이 자신이라는 것을 몰랐던가 보네. 쯧쯧~!”
우창은 춘매를 보면서 빙그레 미소를 짓고는 계속해서 말했다.
“왕이 말했지. ‘그렇다면 알았네. 만약에 해가 질 때까지 기다려서 실로 그와 같은 일이 일어난다면 내가 그대에게 후한 상을 내리겠네. 그런데 만약에 그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대가 짐을 속인 죄를 물어서 두 다리를 잘라도 달리 할 말이 없겠는가?’라고 하자, 해몽가는 ‘예, 그리하소서’라고만 말을 했다네.”
그러자 춘매가 다시 말했다.
“그 봐. 그래도 죽어서 나가지는 않을 모양이네. 에구 왕은 하나같이 그렇게 잔혹한지 몰라.”
춘매가 안타까워하는 말을 들으면서 우창이 다시 말을 이었다.
“해몽가는 별실에 안내되어서 해가 넘어가기를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는데, 신시(申時)가 되자 갑자기 내궁(內宮)에서 궁녀들 간에 싸움이 벌어졌는데 실수로 한 궁녀가 밀치는 바람에 뒤로 넘어지면서 주춧돌에 머리를 부딪쳐서는 숨을 거두고 말았다네. 왕이 그 전갈을 받고서 다시 해몽가를 불렀지.”
그러자 춘매가 손뼉을 쳤다.
“그것 봐~! 꿈이 맞는다니까~! 다행이네. 호호호~!”
“왕이 해몽가에게 말했지. ‘그대의 해몽이 하도 신통하여 상을 내리노라. 그런데 하나 물어보자. 내가 꿨다는 것은 꿈이 아니고 지어낸 것인데 그것조차도 꿈이라고 할 수가 있는가?’라고 말하자, 해몽가가 답하기를, ‘폐하, 한 생각도 또한 하늘의 뜻이 되옵니다. 또한 세상만사(世上萬事)도 바로 그 한 생각으로 모두 이뤄지나이다. 그러니 잠 속의 꿈과 현실에서의 꿈이 어찌 둘이라고 할 수가 있겠사옵니까?’라고 말이네. 그 말을 듣고 왕은 ‘과연 그대는 해몽가라고 할만하다.’라고 했다더군.”
우창의 말을 들으면서 잠자코 있던 염재가 말했다.
“과연,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있는 우화(寓話)입니다. 한 생각이 하늘의 뜻이라는 이야기가 아닙니까? 그런 이야기를 만들어 낸 사람은 필시 도인임이 틀림없겠습니다.”
“그렇다네. 진위(眞僞)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의미가 중요하다고 본다면 과연 꿈과 현실의 차이가 무엇이며, 천연(天然)과 인위(人爲)의 차이도 또한 그와 같다고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해도 되지 않을까?”
“공감합니다. 태어날 적에 얻은 팔자에 의해서 살아온 것이라면, 도중에 새롭게 사주를 얻었다고 해서 그것을 전혀 다른 것이라고 할 수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태어날 때의 사주가 아니라도 그 사람의 조짐을 나타내는 것으로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말씀이시지요?”
“염재는 어제 홍련 낭자의 반응을 보지 않았는가? 그것이 어찌 인위적으로 만들었을 뿐인 사주를 통해서 나올 수가 있는 모습이라고 할 수가 있겠던가?”
“제자도 그것은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마치 왕이 꿈도 아닌 꿈을 이야기했는데 그것이 현실로 드러났을 적에 느꼈을 그 황당함에 견주어서 조금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느낌이었습니다.”
염재가 공감을 하자 우창도 다행이라는 듯이 말했다.
“나도 염재가 공감을 할 줄 알았네. 이렇게 서로를 믿고 논하지 않는다면 이러한 토론은 답을 얻을 수가 없을 것이기에 자칫하면 서로의 마음에 상처만 입히고 아무런 도움도 얻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많은 까닭에 늘 말을 꺼내는 것이 조심스럽거든. 이해를 해주니 참으로 다행이네.”
“아닙니다. 스승님의 진솔(眞率)한 말씀과 이치에 합당한 관법이라면 따르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비록 오늘의 말씀이 미흡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또 다른 날에는 밝혀주실 것이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스승님께서 그러한 결론에 도달하기까지에는 또 무수히 살을 깎는 듯한 고뇌가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자 춘매도 한마디 거들었다.
“오빠가 팥으로 메주를 끓인다고 해도 그렇게 말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할 뿐이지 말이 안 되는 헛소리를 한다고 생각하진 않잖아. 그만큼 서로를 잘 이해하고 의지한다는 말이겠지.”
“누이의 말이 맞아. 학문이 자연의 이치를 벗어나서 학문이기만 한 것이 아닌 것은, 이와 같은 이치를 서로 믿어주고 탁마(琢磨)하는 과정에서 함께 같은 곳을 바라보고 간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어.”
“뭔가 안개 속에서 봤던 것이 점점 또렷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을 보면 이것이 공부하는 공덕인가 싶기도 하고, 그래서 오빠의 가르침이 더욱 소중하게 여겨지기도 한가 보네.”
우창이 다시 염재에게 물었다.
“또 궁금하거나 의문이 있으면 말씀하시게.”
“스승님께서 말씀하시는 뜻은 대략적인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팔자의 글자를 보면서 미래를 예언해도 될지를 모르겠습니다. 말씀으로 봐서는 어제와 내일이 다르지 않고, 작년과 내년이 둘이 아니라고 한다면 무엇을 근거로 삼고서 길흉을 말할 수가 있을 것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의문은 바로 해소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기는 합니다.”
“아니, 어렵게 생각할 것이 없다네. 명리학의 이치대로 예측하고 그대로 설명하면 그뿐인데 뭘. 하하하~!”
우창이 웃으면서 말하자 염재도 다시 물었다.
“그렇기는 하겠습니다만, 스승님께서 하신 말씀대로 한다면 팔자를 보고 예측하는 것이 과연 실제의 삶에 부합될 것임을 믿어도 되는 것일까요? 점점 자신이 없어지는 듯한 생각이 들어서 혼란스럽기도 합니다.”
“오, 그런가? 당연히 혼란스러워야지. 그러한 과정이 반복되면서 점점 진리의 문으로 다가가는 것일테니 말이지. 하하하~!”
“예측(豫測)하는 것이 자신이 없는데 어떻게 예언(豫言)을 할 수가 있을지도 걱정이기는 합니다. 스승님께서 실제하는 사주거나 만들어진 사주거나 관계치 않고 풀이하시는 것은 가히 신기(神技)라고 느껴질 정도입니다. 제자와 같이 우둔한 사람은 도달하기 어려울 듯도 합니다.”
“신기라고? 하하하~!”
“그렇지 않고요. 단지 오행의 이치를 아는 것만으로 그렇게 통찰한다는 것이 가능할지도 의문입니다.”
“예측(豫測)하는 것은 학자의 몫이지만 예언(豫言)을 하는 것은 학자의 몫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된다네. 마음으로 생각하고 헤아려서 판단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미래에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삼가야 할 것이니까 말이네.”
“아니, 예측이나 예언이나 같은 것이 아니었습니까?”
“다르지.”
“스승님의 말씀으로 봐서는 예측은 마음의 영역이고 예언은 말의 영역이기에 서로 다른 것이라고 이해를 해 봅니다. 그러나 생각이 있어서 말하는 것이니 서로 같은 곳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만약에 어느 도사가 ‘그대는 내년에 길을 가다가 도랑에 빠질 운명’이라고 말을 했다면 이것은 예측일까? 예언일까?”
“그야 당연히 예측이기도 하고, 예언이기도 하다고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어느 도사가 ‘그대는 내년에 길을 가다가 도랑에 빠질 수도 있는 운명’이라고 한다면 어떨까?”
“그 말씀은 그렇게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다는 뜻이 아닙니까? 그것은 예측은 되지만 예언이라고 하기는 다소 곤란하지 싶습니다.”
“그런가? 그렇다면 다시 물어볼까? 예측과 예언은 같은 것인가?”
“스승님의 말씀을 듣고서 다시 생각해 보니까 서로 다른 말이었네요. 미래를 예측할 수는 있지만 예언할 수는 없다는 의미로 정리하면 되겠습니까? 이제야 스승님의 말씀을 약간이나마 이해를 한 것같습니다.”
염재가 이렇게 답을 하자 비로소 우창도 미소를 띠면서 말했다.
“옳지~! 잘 이해했군. 이렇게 이해하고 나면 인위적이든 자연적이든 그것이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된다네. 어떤가?”
“정말 오묘합니다. 스승님의 말씀이 이치에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야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인위적인 것조차도 천연이고 자연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자신이 태어난 시간을 잘못 말해도 무관(無關)하고, 심지어는 생일을 전혀 몰라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여기에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렇다네. 생각이 ‘지금 이순간’에 머무르고 있는 사람에게 인위적으로 조작한 것에 대해서 무슨 의미를 부여하겠느냔 말이지. 그 모두가 자연이라는 큰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흘러간다면 또한 자연이라고 할 뿐이라네. 하하하~!”
“예. 자상한 설명 덕분으로 대부분의 의문이 해소되었습니다. 그런데 스승님께서 적으신 간지에 대해서는 아직 여쭤볼 단계가 아닌 것으로 봐서 여쭙기는 저어됩니다만 궁금하기는 합니다. 사주를 적으시면서 뒤에 하나가 더 붙어있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염재의 말에 우창이 어제 적었던 오주를 다시 꺼내놓고 말했다.
“아, 그것은 이제 앞으로 배우면 될 것이네. 그보다도 마지막에 있는 경신(庚申)은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의 문(門)’이라고 해도 되지 싶네. 사주(四柱)에 하나를 더해서 오주(五柱)인데, 점괘(占卦)이기 때문에 오주괘(五柱卦)라고 이름한다네.”
“아, 오주괘입니까? 그렇다면 앞으로 제자는 그것을 배우게 되는 것이지요? 기대됩니다.”
“특히 은밀한 소식은 그 마지막 오주에 있다네. 그리고 어제 그 오주에서 관아로 들어갈 인연이 되지 않을까 싶은 조짐을 살폈는데 그것이 실제로 가능해 졌으니 나도 내심으로는 놀라고 있다네. 하하하~!”
“과연 그렇겠습니다. 제자도 더욱 열심히 공부해서 스승님의 세계를 조금이라도 들여다볼 수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마도 그리 오래지 않아 그렇게 될 것이네. 누이는 점괘를 대략 해석해 봤어?”
우창이 옆에서 열심히 이야기를 듣고 있는 춘매에게 물었다. 그러자 춘매가 갑자기 받은 질문에 깜짝 놀라면서 말했다.
“오빠가 알다시피 난 아직 점괘까지 해석하기에는 버거워. 다만 ‘을사(乙巳)일이라서 잘난 맛에 살고자 한다’는 이야기는 떠올랐지. 차근차근 공부해야지. 이제 염재가 두둑하게 낸 학비 덕분에 한 달은 손님을 받지 않고 공부만 해도 되겠어. 그러니까 잘 가르쳐 줘. 그리고 염재도 매일 저녁에 와서 공부하도록 해. 꾸준하게 하다가 보면 낙엽이 질 때쯤이면 대략 오주괘도 들여다볼 안목이 생길 거야. 호호호~!”
“사저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희망이 생깁니다. 어제 스승님의 풀이하는 말씀을 들으면서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았습니다. 염재는 언제나 그렇게 해석하는 발치라도 따라가 보나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지요.”
“그건 나도 그래. 이제부터 열심히 공부해 보자. 내가 아는 것은 가르쳐 줄테니 염재도 영감이 떠오르면 수시로 알려줘.”
“고맙습니다. 이렇게 편하게 대해 주시니 행복할 따름입니다. 제가 뭔가 떠오르는 것이 있으면 먼저 사저님께 의논하는 것이 더 즐거울 것입니다. 이제 궁금한 것은 앞으로 공부를 하면서 익히면 될 것이고, 의문은 대부분 해소(解消)되었습니다. 스승님께 감사드립니다.”
“아, 그런가? 그렇다면 다행이네. 이제부터 차근차근 기초공사를 해 보도록 하게. 그만 건너가서 춘매와 이야기를 나눠도 되겠네.”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춘매가 말했다.
“아니? 오빠는 내게 염재의 공부를 떠넘기는 거였어? 내가 어떻게 감당하라고 그래? 나는 염재를 가르칠 자신이 없어. 호호호~!”
“원 걱정도, 언제든지 답을 못할 일이 생기면 내게 물어서 또 한 수 배우면 될 텐데 무슨 걱정일까? 하하하~!”
“아, 그렇구나. 그래도 여태까지 누구에게 공부를 가르친다는 것을 해 보지 않아서 생소하잖아. 그래서 두려움이 살짝 생긴단 말이야. 더구나 염재같이 총명한 사람에게라니 더욱 떨릴밖에. 호호호~!”
춘매의 말에 염재도 한 마디 거들었다.
“사저님께서 두려워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냥 아시는 만큼만 말씀해 주시면 제가 생각해 보고 또 모르는 것이 있으면 같이 연구하면 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스승님께서 곁에 계시니 참으로 든든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염재는 원래 그렇게 웃음기가 없어?”
항상 말을 하거나 듣거나 진지한 염재를 보면서 춘매가 문득 묻는 말이었다. 그러자 염재도 계면쩍게 웃으며 말했다.
“그것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마음속에서는 웃고 있지만, 그것을 드러내는 것이 서투른가 봅니다. 아마도 엄한 부친 밑에서 성장한 이유도 있지 않을까 싶기는 합니다만, 그런 것이니 사저님께서도 괘념(掛念)치 마시기 바랍니다. 혹 어떤 사람들은 화가 났느냐고 오해를 할 수도 있다는데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공무(公務)를 수행하다가 보니까 괜한 웃음으로 백성들에게 오해를 불러올 수도 있음을 알고는 더욱 몸가짐에 신경을 쓰게 되었을 뿐입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염재가 미소를 지었다. 그것을 본 춘매가 말했다.
“그래, 미소라도 짓는 얼굴이 훨씬 낫다. 호호호~!”
“아무런 생각도 하지 마시고 그러려니 하시면 됩니다.”
“그런데 호가 왜 염재(念齋)야?”
“아, 호는 예전에 서당의 훈장님께서 지어주신 것입니다. 생각하는 것을 좋아한다면서 염(念)을 지어주셨는데 그게 맘에 들어서 그냥 사용하고 있습니다. 참, 스승님께서 이 글자에 대한 해석을 해주신다면 고맙겠습니다.”
“아, 생각 염(念)자 말인가?”
“예, 그렇습니다. 누군가 무슨 뜻이냐고 물으면 그냥 생각하며[念] 사는 집[齋]이라고 하기가 때로는 멋쩍을 때가 있어서 말입니다.”
“그야 뭐 어려운 일이겠는가? 염(念)은 두 개의 글자로 되어 있군. 어디 해석해 보겠나?”
“제자가 생각하기에는 이제 금(今)과 마음 심(心)의 조합이므로 지금 내가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가 싶기는 합니다만 더 들어갈 방법이 없어서 그 언저리만 배회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해석은 거기까지로군. 그렇다면 더 분석을 해 볼까?”
“스승님께서는 무슨 말씀을 하실지 기대가 됩니다.”
“우선 금(今)을 보면 인(人)이 있군. 이것은 두 사람인 별(丿)과 불(乀)이네. 사람인을 볼 때마다 생각하면 된다네. 그러니까 인(人)은 서로 생각이 다른 두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라네. 생각이 같으면 아무런 변화도 생기지 않으니까 말이네. 별(丿)은 왼쪽으로 흐르는 생각이고, 불(乀)은 오른쪽으로 흐르는 생각이니까 두 사람의 생각이 좌우(左右)로 갈라져서 서로 같을 수가 없지 않겠는가?”
“아하, 그렇게 깊은 뜻이 있었습니까? 새롭습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이 둘이 있으면 당연히 서로 생각이 다르다는 것도 의미한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네. 이미 고인들도 그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지.”
“역시 문자의 풀이는 스승님께 여쭤야 재미가 납니다.”
“그 아래의 일(一)은 점 주(丶)로도 표시하네. 두 사람이 뭔가를 토론한 끝에 하나의 점으로 이야기를 모았다는 것이지. 그러니까 서로 양보할 것은 양보하고, 수용할 것은 수용한 다음에 비로소 점이 되는 것으로 보면 되겠네.”
“그럴싸합니다. 재미있네요. 그렇다면 그 아래의 낫과 같이 생긴 것은 무슨 뜻일까요?”
“그것은 글자로 따로 사용하진 않으니 뭐라고 하긴 어렵지만, 굳이 붙어있는 이름을 말한다면 구결자야(乛)라네. 다만 별도의 뜻이 없으니 생략하고 다시 이제 금(今)을 다르게 쓰면 위의 하나[一]과 아래에 점[丶]으로 표시하기도 한다네. 아마도 확대해서 해석을 해보면, 두 사람[人]이 하나로 의견의 통일을 보고[一] 마무리를 짓는[丶] 것으로 이해를 해도 무방할 것이네.”
그러면서 우창이 설명한 것을 이해하기 쉽게 글자로 썼다.
“말하자면 이렇게 된다는 것이네. 이것이 무슨 글자로 보이는가?”
염재가 가만히 보다가 말했다.
“아무리 봐도 이제금(今)으로 보입니다. 스승님의 말씀이 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서에서도 이렇게 쓴 것이 있으니 내가 마음대로 만들어 낸 것만은 아니라는 것도 알아 두게. 그렇다면 다음에 있는 심(心)에 대해서는 어떻게 이해를 하면 좋을까?”
이렇게 말하면서 다시 글자를 썼다.
이렇게 마음 심(心)을 써 놓고는 두 사람을 바라다 봤다. 그러자 염재가 다시 물었다.
“마음은 알겠는데. 이것을 어떻게 생각해야 합니까?”
“아무래도 좀 그렇지? 중심에 있는 숨을은(乚)자는 마음이 숨어있는 것이라는 뜻이겠지?”
그러자 춘매가 물었다.
“아니, 그것도 글자였어? 숨을 은이라고? 놀랍네. 그냥 낚시바늘처럼 생기긴 했으나 그것도 이름이 있는 줄은 몰랐잖아. 호호호~!”
“낚시바늘처럼 생겼다니까 또 물어볼까? 낚시바늘은 숨겨놓나?”
“그야 미끼를 감싸놔야 물고기가 달려들지 바늘이 보이는데도 달려들 고기가 어디 있겠어? 어? 그러니까 낚시바늘도 숨기는 것이었네? 신기하다. 호호호~!”
춘매의 말에 우창도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세상에 이름이 없는 것은 없다네. 하다못해 마땅한 이름이 없으면 ‘무명(無名)’이라는 이름이라도 붙어야 하는 거니까. 하하하~!”
“정말 오빠랑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면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를 지경이라니까. 호호호~!”
다시 웃음기를 거둔 우창이 염재에게 말했다.
“세 개의 점은 아마도 짐작컨대, 과거, 현재, 미래의 마음을 나타낸 것이 아닌가 싶네. 그러니까 이러한 것을 내면에 품고서 겉으로는 지금의 마음이라고 하면 되는 것이 아닐까 싶군.”
“과연 스승님의 분석을 통해서 또 새로운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제 누군가 염(念)자의 듯을 물으면 해줄 수가 있는 말이 ‘생각하는 것’말고도 많이 생겼습니다. 갑자기 부자가 된 듯한 느낌이 듭니다.”
“그럼 어제 건너가서 기초부터 차근차근 익혀보게. 기초공사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는 알 알지?”
“그렇습니다. 그것은 정확하게 알고 있습니다. 그럼 건너가겠습니다. 편히 쉬십시오.”
그렇게 두 사람이 건너가고 나자 다시 우창은 혼자서 오늘 이야기를 나눈 것들에 대해서 또 정리했다. 항상 기록이 남는 것임을 믿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