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8] 제25장. 합리적 의문(疑問)/ 3.홍련의 방문

작성일
2020-11-15 0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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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68] 제25장. 합리적 의문(疑問) 


3. 홍련의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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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재의 기대감이 가득한 눈빛을 보면서 우창은 자신이 해 줄 말에 대해서 너무 기대하는 것이 부담스러웠지만 하나라도 제대로 알아보려고 하는 열정이 보여서 흐뭇했다.

“옛날에 갑골문을 발견했는데 그중에는 은허(殷墟)에서 거북의 껍질에 새겨진 문자가 출토되었다네. 그 기록에는 乙酉卜貞何年何月何日何時爲四甲子始答盤古誕日是也(을유복정하년하월하일하시위사갑자시답반고탄일시야)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고 하네.”

춘매가 우창이 써놓은 글을 보다가 마음이 급해서 물었다.

“그게 무슨 뜻인지 염재가 어서 해석해 줘봐. 답답하네.”

춘매의 성화에 염재가 글귀를 보면서 풀이했다.

「을유(乙酉)일에 정(貞)이 점하여 묻습니다. 어느해, 어느달, 어느날, 어느시를 4갑자의 시작점입니까? 답하기를 반고(盤古)가 태어난 날이니라.」 

염재가 해석을 하고서 우창을 바라봤다. 이렇게 해석을 하면 되느냐는 말이었다. 우창이 빙그레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그렇게 보면 되겠지? 잘 해석했네.”

“스승님, 그렇다면 최초의 사갑자(四甲子)는 하늘에 점해서 얻은 것이었습니까? 그런 문서가 출토되었다는 것이 신기합니다. 그런데 반고는 전설(傳說)에서만 존재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의 생일이 언제인지를 알 수가 있다는 말입니까?”

“뭐 신기할 것이 없네. 땅속에서는 무엇이나 출토가 가능하니까. 하하하~!”

“예? 그건 무슨 말씀이신지.....?”

“실은 내가 방금 땅에서 꺼낸 것이거든.”

우창의 말을 듣고는 눈치가 빠른 춘매가 웃음을 터트렸다.

“뭐야? 호호호호~! 오빠의 능청에 깜빡 속았잖아. 호호호~!”

춘매의 말을 듣고서도 염재는 무슨 뜻인가 싶어서 눈말 멀뚱거렸다. 그러자 춘매가 다시 웃고는 설명해 줬다.

“염재가 오빠에게 속은 거야. 아이고 배아파라. 호호호호~!”

그제야 우창이 지어낸 말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아쉬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 그러신 것입니까? 그런 자료라도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봅니다.”

우창이 빙그레 웃고는 말했다.

“조금 전에 말한, 신사(辛巳)의 점복(占卜)에 대한 구절을 응용해서 만든 것이었네. 실로 그런 자료는 앞으로도 만나기 어려울 것이네. 그래서 그런 자료를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문득 하나 만들어 본 것이었네. 어쩌면 실제로 그러한 기록이 있었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춘매가 다시 웃으면서 말했다.

“그럴 수는 뭐가 그럴 수야. 호호호호~!”

“누이는 너무 그러지 말게, 이렇게도 안타까워서 해 본 생각이잖은가. 하하하~!”

춘매와 우창이 나누는 이야기를 듣고 있던 염재가 물었다.

“스승님께서는 어떻게 올해가 신미년(辛未年)이 되었다고 생각하셨습니까? 제자가 궁금한 것은 왜 신미년에는 신미년의 조짐이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인지가 궁금해서입니다.”

“나도 그것이 참 신기하단 말이네. 그래서 생각해 봤지. 물론 이것도 또한 내가 상상을 해 본 것이니 다 믿지는 말게나.”

“알겠습니다. 어서 그 말씀을 듣고자 합니다.”

“옛날에 명안종사(明眼宗師)가 계셨을 것이네. 천기(天機)와 지기(地機)를 모두 통달한 그가 어느 날은 문득 하늘의 기운을 살폈더니 천지(天地)의 도수(度數)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이 보였지. 그래서 그 순간을 기록하고는 세상에 선포했지. ‘올해부터 갑자년(甲子年)으로 하고, 이달부터 갑자월(甲子月)로 하고, 이날부터 갑자일(甲子日)로 하고, 이 시각을 갑자시(甲子時)로 하며 이것은 영원무궁(永遠無窮)토록 이어질 것이며 하루도 단절이 되거나 건너뛰지 않도록 기록하여 전할지어다.’라고 말이네.”

“스승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까 정말 그럴듯합니다. 달리 더 정확한 자료가 나오기 전에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말씀이지요?”

“아마도 그럴 것이네. 그로부터 4천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단 하루도 바뀌지 않고 정확하게 기록을 했을 것이네. 그리고 오늘 현재까지도 이 조직(組織)은 그대로 전해지고 앞으로도 그렇게 될 것이니 이보다 더 명료한 자료가 나오기 전에는 이렇게 알고 살아가는 것이 가장 편하다고 생각하네.”

“무슨 말씀이신지 이해는 됩니다만 그래도 의지하기에는 의심의 구름이 말끔히 가시지는 않습니다. 어떻게 이해를 하면 좋을런지요?”

염재는 그래도 뭔가 실낱같은 희망을 갖고서 물어보는 줄이야 알겠지만 우창도 그에 대한 답을 얻지 못했으니 무슨 말을 해 줄 수가 있으랴 싶어서 잠시 생각하다가 예전에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라서 말했다.

“옛날에 천축(天竺)에서 전해지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들은 우주를 누가 떠받히고 있는지에 대해서 경전에 써놓았더라네.”

“예? 우주를 떠받치고 있는 것에 대해서 말입니까? 과연 제자도 그것이 궁금합니다. 우주는 누가 떠받치고 있다고 했습니까?”

“거대한 네 마리의 코끼리라네.”

“예? 코끼리가.....?”

“그래서 어느 제자가 스승님께 물었더라네. ‘스승님 다시 여쭙습니다. 네 마리의 거대한 코끼리는 무엇이 떠받치고 있는지요?’라고 말이네.”

우창의 말에 염재도 호기심이 동해서 다시 물었다.

“정말 신기합니다. 옛날에도 궁금증이 많은 제자가 있었다는 것도 신기하고요. 그 스승의 답이 궁금합니다.”

염재의 말에 우창이 미소를 짓고는 답했다.

“아, 그 스승의 말이, ‘그 네 마리의 거대한 코끼리는 다시 네 마리의 거대한 코끼리가 떠받치고 있지.’라고 했다더군.”

“예?”

우창의 말에 헛바람이 난 염재가 실망스러운 투로 말했다.

“그러니까 그것은 알 수가 없다는 것을 그 제자에게 알려주려고 한 것이 아니었을까요?”

“나도 그렇게 생각되네. 그러니 태초(太初)의 일이야 우리가 어찌 알 수가 있느냔 말이지. 그런 이야기는 또 있다네. 하하하~!”

“내용이 좀 허망하기는 해도 이야기는 의미심장합니다. 그것도 듣고 싶습니다.”

그러자 우창이 전해 들은 이야기를 염재에게 해 줬다.

고승에게 불도를 배우던 제자가 어느 날 스승에게 물었다.
제자 : 스승님 우주는 언제 생겨났습니까?
스승 : 네가 올해 몇 살이냐?
제자 : 예, 올해 스물 여섯입니다.
스승 : 그러냐? 우주는 26년 전에 만들어 졌느니라.
제자 : 예???

우창의 말에 잠시 멍하던 염재가 그 뜻을 이해하였는지 말했다.

“이해가 됩니다. 스승님의 말씀대로 생각하겠습니다. 이 땅에서 천지(天地)의 기운은 그렇게 시작되어서 유전(流轉)된 것으로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달리 규명할 방법도 없으니 그냥 믿으면 되는 것으로 정리하겠습니다.”

“잘 생각했네. 그게 최선일 것이네. 찾을 수가 없는 것이 어디 그뿐이겠는가? 세상에는 알 수가 없는 것도 참 많으니까 말이지. 그래도 별 탈이 없이 다들 잘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하하하~!”

“가령 어떤 것을 또 찾을 수가 없다고 생각하시는 것입니까? 예를 하나 더 들어주시면 이해에 큰 도움이 되지 싶습니다.”

“염재의 이름이 무엇이라고 했었나?”

“제자의 이름은 도대림(陶大臨)입니다.”

“그렇다면 염재의 부친은 도씨(陶氏)겠군.”

“맞습니다.”

“그 부친의 부친도 도씨겠나?”

“예. 그랬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최초의 도씨는 누구였나?”

“최초의 도씨 시조(始祖)는 상고(上古), 오제(五帝)시대의 오제 중에서 요제(堯帝)의 성이 이기(伊祁)였고, 호는 방훈(放勛)으로 옛 당국(唐國)의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오늘의 산동(山東) 정도(定陶)일대에서 왕실의 도자기(陶瓷器)를 제조하는 것을 주업(主業)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최초의 도씨는 도당씨(陶唐氏)였는데 요제의 일곱째 아들인 홍기(洪祺)가 바로 도씨의 시조였답니다. 그후로 진왕조(秦王朝)에 평원시대의 도씨들이 가장 번성했고, 상대와 주대의 도씨는 오늘날의 하남(河南)일대에서 주요한 활동을 했고, 한 대(漢代) 이후에는 저명(著名)한 개봉후(開封侯) 도사(陶舍)가 있었는데, 당시에 유방(劉邦)의 천하통일에 큰 공을 세웠더랍니다. 그러니까 시조는 요제의 아들인 홍기가 됩니다.”

“자세히도 알고 있구나. 그렇다면 요제가 그 위의 할아버지가 되지 않는가?”

“그렇습니다.”

“요제의 아버지의 아버지는 또 누구인지 알겠는가?”

“그것은.....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네. 조상이 누군지 그 정도로 잘 알고 있으나, 실로 그 조상의 조상이 누구인지를 알기는 쉽지 않다네. 더구나 인류의 최초는 유인원(類人猿)이었다는 말도 있고 보면 과연 언제부터 조상이 살아있었는지 누가 확실하게 말을 할 수가 있겠느냔 말이지.”

“과연 옳으신 말씀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최초의 갑자에 대해서도 알아낼 방법이 없다는 것은 매우 타당하고, 오히려 그것을 모르는 것이 더 옳겠다는 역설(逆說)도 가능하겠습니다. 스승님의 사유에 대한 영역이 매우 타당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최초의 갑자에 대해서는 전혀 의문을 갖지 않아도 되겠는가?”

“당연합니다. 괜한 일로 시간을 허비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것을 깨달았으니 오히려 오늘의 가르침으로 많은 시간을 벌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역시 밝은 스승님을 만나야 한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춘매도 우창의 말에 공감하면서 말했다.

“나야 뭐 원래 그런 것에는 관심도 없었는데 오늘 염재의 덕분으로 매우 중요한 것을 하나 알았어. 누군가 그것을 물어본다면 이제 할 말이 생겼잖아. 을유일에 쟁정(爭貞)이 점괘를 뽑아서 4갑자의 시초를 알게 되었다고? 호호호호~!”

춘매가 우창의 말투로 말하자 두 사람도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우창이 마무리 삼아서 정리했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시원(始原)을 밝힐 수가 있는 것은 밝히는 것이 옳다고 보네. 그리고 밝힐 수가 없는 것은 밝히지 않는 것이 또한 옳다고 보기도 하네. 무엇이든 억지로 밝히려고 하다가 보면 자칫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우(愚)를 범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네. 누가 알겠는가? 오늘 밝힐 수가 없는 것이 나중에 밝혀질 수도 있으니까 모르는 것은 모른 채로 넘어가는 것이 가장 정답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것이라네. 어떤가?”

“완전히 공감합니다. 실은 스승님께서 그렇게 정리를 한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 얼마나 많은 시간을 골몰(汨沒)하여 궁리하셨을지 미뤄서 짐작이 됩니다. 그렇게 한 후에 비로소 깨달은 결과로 포기(抛棄)를 할 것은 빨리 포기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것을 또 배웠습니다. 앞으로 쓸데없는 것에는 괜한 궁리를 하느라고 시간을 허비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거듭 감사드립니다.”

염재가 이렇게 말하면서 공수를 했다. 우창도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시간이 흐르는 것을 느낀 춘매는 점심을 준비한다면서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밖에 나가자 아까 지나치면서 언뜻 봤던 그 여인이 다시 와서 점술관을 기웃거리는 것이 보였다 춘매는 필시 무슨 사연이 있을 것으로 짐작했다. 만약에 상담을 하러 왔다면 쉽게 들어오면 되는데 무슨 연고가 있어서 기웃거리기만 하고 쉽사리 들어오지 못하는지 궁금해서 물었다.

“낭자께서는 무슨 일이 있으셔서 찾아오셨나요? 혹 물어볼 것이 있으면 들어가셔도 돼요. 혹 제가 도와드릴 일이 있나요?”

춘매가 점술관에서 나오면서 관심을 보이자 낭자는 비로소 자신감이 생겼는지 다가와서 말했다.

“저, 며칠 전에 잠시 여기 선생님을 뵈었었는데 한 번 찾아오라는 말씀을 듣고서 오기는 했는데 선뜻 들어가기가 망설여 져서요. 이런 곳에는 한 번도 들어가 본 적이 없거든요.”

“아하, 이야기를 들은 것 같아요. 앵화루에서 만났던 낭자인가보다. 맞아요?”

춘매가 먼저 아는 척을 하자 낭자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러자 춘매도 정황을 대략 짐작하고는 안으로 안내를 했다.

“자, 이쪽으로 들어가요. 마침 조용하니까 뭐든 궁금한 것은 물어보세요.”

그리고는 안으로 들어가기를 기다렸다가. 우창에게 말했다.

“오빠, 여기 앵화루에서 만났던 낭자가 방문하셨어요. 이야기 나누세요. 그리고 염재는 이리 와서 점심을 마련하는 것을 좀 도와주겠어?”

춘매의 말에 염재도 홍련을 떠올리고는 잠시 기억이 났다. 조용히 이야기를 나눌 수가 있도록 자리를 비켜주자는 춘매의 뜻을 알고는 일어나서 홍련에게 목례(目禮)하고 춘매를 따라 나갔다. 잠시 후, 두 사람만 남게 되자 우창이 말을 꺼냈다.

“이렇게 다시 만나니까 반갑네요. 자, 차를 한 잔 드시고요. 아마도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셨나 봅니다. 어디 그 이야기를 들어 봅시다.”

“먼저는 일터에서 뵈어서 예의를 갖추지 못했어요. 양해를 부탁드려요. 오늘 방문한 것은 아무래도 곡부를 떠나기 전에 소중한 말씀을 좀 듣고 싶어서 방문했어요. 지렁이에 대한 말씀을 듣고서 깜짝 놀랐거든요. 밤에만 활동하는 제 모습과 낮에는 밖으로 나서지 못하는 지렁이의 신세가 어찌나 공감이 되었던지 말이에요.”

“아하~! 그렇게 해석이 되기도 하는 군요. 하하하~!”

“그 말씀을 듣고서 벼락을 맞은 것처럼 온몸이 짜르르~했잖아요. 어떻게 그런 말씀을 하실 수가 있나 싶기도 했고, 저의 신세가 결국은 지렁이에 불과하겠다는 생각도 했거든요. 그래서 며칠을 생각하다가 오늘은 한 번 뵙고 귀한 말씀을 들어봐야 하겠다는 마음에 방문했는데 막상 문을 두드리려니까 용기가 나지 않아서 망설였어요.”

“아니, 그건 또 왜 그런 생각을 하셨답니까?”

“그렇잖아요? 술을 마시면서 별로 깊은 생각도 하지 않고 농담으로 던진 말을 믿고서 찾아갔다가 안면을 바꾸는 경우를 한두 번 당한 것이 아니었거든요. 그래서 혹시라도 그렇게 뵈었다가 좋은 인상만 사라지고 또 다른 상처만 받게 될까 싶어서 망설였었는데 마침 그 여자분께서 용기를 주셔서 들어와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창은 그 말을 듣고서 마음이 아팠다. 주점에서 술을 따르고 웃음을 판다고 해서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고 노류장화(路柳墻花)처럼 여기기도 하고, 하녀나 종으로 생각하는 주객들로 인해서 받은 상처가 깊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랬구나. 이해가 됩니다. 직업이 그렇다 보니까 어쩔 수가 없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그런 대접을 받으면 마음에 상처가 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겠네요.”

“그런데, 진도사께서는 말씀을 편하게 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날은 통성명할 상황이 아니어서 그냥 들었던 호칭으로 불렀던 거에요. 이제는 진도사님으로 부르면 되겠죠? 이제 나이도 스물한 살인데 너무 존대해서 말씀하시니 오히려 적응이 어렵네요.”

“아, 그런가? 그야 말투가 몸에 배어서 그렇다네. 그때는 나도 실례를 했지 싶어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네. 술집에서는 말도 그렇게 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던 것이 있어서 괜히 거들먹거렸으나 그러한 것도 내 마음에는 편하지 않았다네. 하하~!”

“다 알죠. 우리는 이미 그 바닥에서 적응했기 때문에 찾아온 손님의 동작이나 말투나 모든 것에서 평가한답니다. 처음으로 오셔서 어색해하는 모습을 보고 내심으로 특이하다고 생각했었죠. 그래서 이러한 곳은 출입한 적이 없는 손님이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던 것이고요. 오늘 이렇게 와서 뵈니까 과연 제자리에 앉아 계셔서 편안해 보여요. 다시는 앵화루에 가지 마세요. 호호호~!”

“그래 잘 알았네. 그런데 오늘은 무슨 말을 듣고 싶어서 오셨나?”

“아 참, 소녀가 다시 찾아뵙고자 한 것은 먼저 말씀해주신 것이 가슴에 남아서 고맙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서 와 보고 싶었던 것이 첫째 이유에요.”

“고맙게 들어주셨으니 그건 내가 고맙다고 해야 할 일이군. 그리고 그다음에는 또 뭐가 궁금해서?”

“실은 아버지의 빚을 갚느라고 그곳에서 일했어요. 열심히 살아서 이제 겨우 빚은 다 갚아가거든요. 그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생각하고 있던 차에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서 뭔가 해결을 할 방법이 나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저의 앞날에 대한 조언을 듣고 싶었죠.”

우창은 홍련의 말을 들으면서 문득 자원이 떠올랐다. 객잔에서 서러운 대우를 참으면서도 빚을 갚기 위해서 이를 악물고 노력했던 그 모습을 생각하면서 홍련의 처지가 그와 같다는 생각에 애잔한 마음이 들어서 가슴이 뭉클했다.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춘매가 불렀다.

“점심 준비가 다 되었어요. 낭자도 같이 먹으러 가요.”

홍련도 처음에는 사양했지만 내심으로는 이러한 분위기를 놓치기가 싫었다. 순순히 따라가서 식탁에 둘러앉아서 춘매가 마련한 점심을 나눠 먹었다. 그리고는 시원한 식혜를 마시면서 홍련이 춘매에게 말했다.

“정말 따뜻한 분위기가 참 좋아요. 제가 일하는 곳은 항상 서로를 경계하면서 돈이 많아 보이는 손님이 왔다 싶으면 서로 차지해서 조금이라도 금전적인 이익을 얻으려고 하는 마음에 살벌하거든요. 물론 이해는 해요. 누구든 그런 곳에서 일할 적에는 두 가지의 목적이 있죠. 하나는 돈을 벌어서 자신도 주루를 차리는 거죠. 그리고 그것은 힘들어서 자신이 없으면 돈이라도 많은 부자의 첩이 되어서 일신(一身)의 안정을 얻고자 하는 것이죠. 어느 것이라도 맘에 들지 않는 저와 같은 부류는 치열한 삶에서 버티지 못하고 튕겨 나가게 되거든요. 그런데 오늘 이렇게 살고 계신 모습을 뵈니까 저도 일을 그만두고 이러한 분위기에 합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부러워요.”

춘매가 낭자의 말에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서 말했다.

“그래 빚을 갚으려면 얼마나 더 있어야 하는 건가요?”

“아마도 한 달 정도면 끝나지 싶어요. 그러면 그냥 살아도 되고, 떠나도 되는데 더이상 그곳에서 살고 싶지는 않아서요. 어떻게 하는 것일 좋을지 오늘 진 선생님께 고견을 듣고서 방향을 잡으려고 해요.”

그 말에 춘매가 말했다.

“아, 그랬구나. 그러시면 큰 고생은 다 하셨네. 정말 열심히 살았네요. 그럼 이제 건너가서 이야기를 나눠봐요. 우린 여기에서 할 일이 있어요.”

그렇게 말하고는 우창에게 데리고 가라는 눈짓을 했다. 우창도 그 뜻을 알고는 함께 돌아와서 탁자를 마주하고 앉았다. 그리고는 홍련에게 무엇을 도와주면 좋을지를 물었다.

“진도사님께 여쭙고 싶은 것은 과연 제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안내받았으면 하는 것이에요. 과거의 일을 단절하고 새로운 방향으로 길을 찾으려니까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가늠하기조차 어려워요. 할 줄을 아는 것이라고는 술을 따르면서 웃음을 파는 것인데 그 일은 이제 청산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분명해요. 그렇다면 그다음에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를 생각해 봐야 하겠는데 아는 것이 있어야죠. 그러니 도사님께서 안내를 해 주셨으면 그대로 따르고자 해요. 부탁드립니다.”

이렇게 말을 하고는 진심이 가득 어린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 간절함이 느껴진 우창도 책임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이러한 이야기는 혼자서 해결점을 찾기보다는 함께 궁리를 해 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홍련에게 물었다.

“알겠네. 그런데 미래에 대해서 답을 찾아보는 일에는 내가 혼자서 생각하는 것보다는 제자들과 같이 머리를 맞대고 의논해 보는 것이 더 좋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괜찮겠는가?”

그 말에 홍련은 감동했다.

“정말로 저를 위해서 배려해 주시는군요. 이보다 더 감사할 일이 없죠. 어서 여러 사람의 의견을 모아서 제가 갈 길을 찾았으면 좋겠어요. 꼭 부탁드려요.”

홍련이 흔쾌히 승낙함은 물론이고 청하기까지 하니까 우창도 두 사람을 불렀다. 두 사람도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궁금하던 차에 얼른 건너왔다. 그렇게 해서 네 사람이 무릎을 맞대고 우창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두 사람을 부른 것은, 다른 의미가 아니라 인생의 미래는 항상 불확실한 것이네. 내가 비록 자평법을 공부해서 약간의 예측을 한다고 하더라도 과거의 인연을 이어서 미래를 유추하는 것에 불과한 것인데, 지금 홍련 낭자는 과거를 끊고서 다시 출발하겠다고 하네. 그래서 두 사람의 도움을 받는다면 더욱 바람직한 방향으로 안내를 할 수가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에 함께하자고 했네. 이것은 인연법으로는 새 출발이 되는 것이고, 인과법으로는 인(因)에 해당하는 것이며, 삶의 법으로는 매우 불확실한 상황이라고 봐야 하겠네. 이러한 시점에서 기탄(忌憚)없는 의견들을 나눠보세.”

우창의 말에 춘매가 먼저 말을 꺼냈다.

“오빠, 우선 팔자부터 보고 큰 방향을 잡으면 어떨까? 이왕지사(已往之事) 그 동안의 삶을 정리하고 나서 아무것도 없는 상황이라면 그래도 살펴볼 수가 있는 것이라고는 사주팔자잖아? 그러니까 팔자에서 출발하는 것이 옳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아,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당연한 것을 말이지. 하하하~!”

“아무래도 오빠가 홍련 낭자의 미색에 홀려서 정신이 혼미해진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고. 호호호~!”

춘매가 분위기를 돋구려고 던진 말에 세 사람은 웃었다. 우창이 홍련에게 물었다.

“홍련 낭자의 생일이 어떻게 되나?”

“몰라요.”

“모르다니?”

“사는 것이 어려워도 자식의 생일은 챙겨주는 법인데 저는 그런 복도 얻지 못했어요. 그래서 생일도 몰라요. 생일을 모르면 팔자를 볼 수가 없죠?”

“그렇지. 아무래도....”

그러자 염재가 안타까운 마음으로 물었다.

“스승님, 간지학(干支學)의 이치가 아무리 명석한 통찰력으로 삶의 길을 도와준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태어난 날을 모르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입니까? 이런 경우에는 어떤 해결책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염재의 말에 우창이 답했다.

“물론이네. 생일을 몰라도 미래를 예측할 방법이야 무수히 많다네. 가령 생일을 모르면 면상(面相)을 보거나, 혹은 수상(手相)을 보기도 하지. 즉 마음을 찾을 방법인 사주의 명식을 알 수가 없으니 몸을 살피는 것이라고나 할까? 몸을 살펴서 마음을 역(逆)으로 추적(追跡)하는 방법이긴 하나, 애석하게도 내가 그 방면에는 깊은 공부를 하지 못했으니 조언을 할 방법이 없다네.”

우창이 자신의 상학(相學)에 대한 상식이 짧음을 탓하자 홍련이 오히려 미안해졌다.

“죄송해요. 도사님께 아무런 정보도 드릴 것이 없네요.”

홍련이 미안해하는 것을 보면서 춘매가 말했다.

“오빠, 이런 상황에서는 지금 시간을 홍련 낭자의 사주로 만들면 안 되나? 이나 저나 사주도 조짐이라고 하지 않았어? 반드시 태어난 날이어야 할 필요가 없다고 했었잖아?”

춘매의 말에 우창도 잊고 있었던 오주괘가 떠올랐다.

“아, 맞아. 오늘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군. 오주괘를 춘매의 사주로 삼아서 방향을 잡으면 되는 것이었는데 말이지.”

그러자 춘매가 재미있다고 웃었다.

“호호호~! 오빠가 아무래도 오늘 좀 이상해. 그래서 우리를 불렀구나. 아무래도 혼자서는 답을 찾기 어려워서 말이지. 호호호호~!”

춘매가 놀리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얼른 회중시계를 보고서 오주를 찾아 적는 것이 더 급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나온 간지를 종이에 적었다.

268 홍련의 오주

우창이 오주괘를 적어놓자. 누구보다도 흥미를 보이는 사람은 염재였다. 과연 이러한 방법으로 사주를 풀이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지에 대한 의문과 함께 이것이 한 사람의 운명을 어떻게 해석할 수가 있을 것이며, 전생의 업연으로 사주를 받고 태어났다는데 이것은 지금 찾아온 시간에 불과한 것이니 서로 연관이 될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한꺼번에 솟아올라 심사(心思)가 매우 복잡했으나 우창이 장난으로 시도하는 것만은 아닐 것이라는 믿음으로 우창이 어떻게 풀이하는지에 집중했다. 염재의 이러한 표정을 보면서 우창이 홍련에게 물었다.

“홍련 낭자가 오늘 저녁에는 바쁘지 않은가? 저녁이 다가오고 있어서 말이네. 바쁘지 않으면 이 문제로 학문적인 토론을 좀 했으면 하는데 행여 바쁘다면 간단히 풀이만 할 것이네.”

“아, 그 점은 염려하지 않으셔도 되겠어요. 마침 오늘은 제가 휴가를 받았거든요. 여성에게 주어지는 신의 선물이죠. 호호~!”

홍련의 말에 춘매가 얼른 받아서 거들었다.

“호호~! 홍련 낭자가 마법에 걸린 날이었구나. 다행이다. 그럼 오늘은 이렇게 대화를 나누고 잠은 나랑 자면 되겠네. 어때?”

“물론 저야 감사하죠. 그럼 오늘은 언니께 신세를 지겠어요. 호호~!”

우창이 시간에 대한 구애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확인한 다음에야 염재에게 눈길을 줬다.

“염재가 궁금한 것이 있는 모양이니 우선 그 이야기부터 들어볼까?”

“예, 스승님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오전에도 이야기를 나눴습니다만, 제자는 아직도 갑자(甲子)의 시원(始原)에 대해서 의혹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지금 스승님의 말씀을 듣고 또 이렇게 급조(急造)한 사주를 접하게 되니까 더욱 혼란스럽습니다. 이렇게 되면 자연의 이치가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그야말로 주사위를 던지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냐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에 대해서 스승님의 명쾌한 설명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무래도 그렇지 싶었네. 하하하~!”

염재의 말에 춘매도 뭔가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올 것이라는 기대감이 생겼고 홍련은 홍련대로 자신으로 인해서 재미있는 대화에 참여하게 된 것이 기대되면서도 즐거웠다. 자신의 신세에 대해서는 어느 사이에 깡그리 잊어버리고 대화에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