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예술과 기술 - 박칼린

작성일
2011-03-08 06:22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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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낭월입니다.

 

어느 케이블방송에서 신인을 발굴하는 지도자로 김태원이 나섰습니다. 흔히 말하는 멘토의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지요. 네 사람의 학생을 데리고 온 김태원이 조언가로 박칼린을 초청했던 모양입니다. 하나하나 장점과 단점을 이야기 하는 도중에 나온 말입니다.

 

자세한 전후의 말은 잊어버렸습니다만, 예술과 기술에 대한 그녀의 설명이 맘에 들어서 생각을 해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기술은 예술을 위해서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예술이 되지 않으면 기술은 있으나마나하다는 이야기로 들렸습니다. 기술이 앞서면 안 된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음악을 하고 노래를 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 예술이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기술은 흉내를 낼 수도 있지만 예술은 자신만의 속에서 우러나오는 감성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 말을 들으면서 또 생각해 봤습니다. 학술과 기술에 대해서 말이지요. 원리는 학술이고 통변은 기술입니다. 많은 학인들이 낭월에게 하소연하는 말 중에는 일정한 말이 있습니다.

 

"용신은 찾겠는데 통변이 되지 않아요."

 

그렇지요.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통변이 무엇일까를 생각해 봤습니다. 그랬더니 박칼린의 말대로 그것은 기술이더군요. 이미 답이 나온 것을 상대방에게 알아듣도록 설명을 해 주는 것은 기술의 분야가 되겠다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그렇다면 예술은 무엇일까요?

 

학문에서의 예술은 '이론적인 바탕에 충분한 학습이 쌓여서 이뤄지는 것'이라고 생각을 해 봤습니다. 그러면서 겹치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용신은 찾겠는데 풀이를 못하겠다는 말은 충분히 기본을 닦지 않은 상태에서 날아보려고 퍼덕이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예전에 남자의 자격에서 합창단을 하면서 배다혜에게 자꾸만 몸을 흔든다고 호통을 치던 박칼린의 모습이 겹쳤습니다.

 

내공이 부족한 가수가 기교만 부린다고 판단을 했던 것이 아니었나 싶었습니다. 내공이 쌓이게 되면 기술을 생각하지 않아도 저절로 우러나오는 것을 약간만 다듬으면 되는 것이라고 봐도 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여기에서 아마추어와 프로의 차이를 생각해 봤습니다. 아마추어는 어차피 내공이 부족합니다. 그 멋진 기술에 홀려서 좋아하는 것이 대부분일 테니까 말이지요. 아무리 흉내를 내더라도 누가 탓하지 않습니다. 다 용서가 되지요. 그런데 프로는 다릅니다.

 

문득 어느 스님의 걱정이 떠올랐습니다.

 

"내가 나중에 도를 통해서 법문을 하게 되면 말주변이 없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서 경을 좀 읽으려고 합니다."

 

어떻습니까? 설명을 못해서 걱정하는 명리학자나 법문을 못할까봐 걱정하는 스님의 마음은 같은 것이겠지요? 자연의 이치를 깨닫고 나면 그냥 보이는 것이 다 진리일텐데 말입니다. 예전에 그 말을 듣고 웃었던 적이 있습니다만 실은 웃을 수만도 없는 참 딱한 현실이라고 하겠습니다.

 

프로는 예술로 내공을 쌓아야 합니다. 기술만으로 버티는 것은 어림도 없습니다. 선생에게 기술을 물어도 선생은 예술로 답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술은 하루 아침에 이뤄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술을 학문으로 바꿔놓고 보니까 완전히 같은 말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이 차이를 너무도 명백하게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명학을 공부한다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봤습니다. 수백권의 책을 보면서 학문을 닦은 다음에 약간의 기술이 가미된다면 설명을 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보는 것이지요. 그럼에도 많은 학인들은 예술의 긴 시간을 투자할 환경이나 형편이나 혹은 마음이 되지 못해서 다급하게 기술만 얻으려고 허둥대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을 해 본 것입니다.

 

벗님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동호인으로 그냥 즐기는 것이라면 아무래도 그만입니다만 참으로 간지의 이치에 정통(精通)하여 제대로 뜯어보고 싶은 생각이 있으셨다면 자신의 상황을 점검해보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결론은 내공이 부족하다는 것으로 나올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드셨다면 방법은 간단하겠습니다. 다시 처음부터 터 다지기를 하는 것이지요. 그것이 결국은 멀리 뛸 수가 있는 준비가 될 테니까 말입니다.

 

결국은 음양과 오행에 다 있습니다.

 

                 2011년 3월 8일 계룡감로에서 낭월 두손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