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木이 金을 만나면 단단해진다

작성일
2007-09-10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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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 아무리 잘났다고 하더라도 금의 견제를 피할 수가 없다. 금은 목에게 있어서 가장 두려운 존재이다. 심리적으로 본다고 하더라도 목의 성분이 자유분망하게 뻗어나가는 성분이라고 할적에, 동서남북으로 나아가는 성질을 금이 톡톡 잘라버린다면 정말 살아갈 의욕이 나지 않을 것이다. 가능하면 금의 성질을 건드리지 않고 잘 피해가는 것이 상책일것이다. 이러한 이유로해서 木은 金보기를 두려워한다는 이야기를 한다. 각자의 오행에 관계된 인연으로 서로 돌아간다.

그렇다면 목와 금이 서로 좋은 관계가 성립되기는 전혀 불가능하다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그 이유는 목이 일반적인 것으로는 금의 간섭을 싫어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목이 워낙이 많아서 자기네들끼리 서로 치고 받게 되는 상황이라면 이때는 금의 통제를 필요로 한다. 어쩌면 금은 이러한 경우에 가장 자신의 기능을 발휘하게 될것이다.

흔히 하는 말로 ‘대들보 깜’이라는 말이 있다. 이때는 나무의 위용이 웅장하다는 뜻이겠는데 이렇게 나무가 웅장하게 자랐을 적에는 물의 도움은 별로 필요치 않고, 도끼로 잘라서 들보로 만드는 것이 가장 유리하다고 판단한다. 이렇게 되는 것은 목이 세력이 이미 성장을 마치고 노년기로 접어 들었을 경우에 해당하는 말이다. 이때는 금의 간섭으로 잘라서 목재로 만드는 것이 앞으로 천년을 더 살게 되는 방법이다. 대들보가 되어서 고래등 같은 기와집을 받들고 있으면 역시 천년동안 보존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때에는 오히려 물을 만나는 것을 대단히 꺼린다. 마른 나무는 물을 만나면 썩어버리기 때문이다. 이렇게 상황에 따라서 좋아하는 것이 바뀌기도 하는 것도 오행의 작용에서 반드시 고려를 해야 한다. 이와 같이 오행은 상호간에 서로를 위해서 유용한 존재가 되기도 하고 쓸모없는 존재가 되기도 한다.

또 문제가 있는 이야기라는 토를 달아야 하겠다. 금이 나무에게 좋은 작용을 하는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면. 도끼로 잘라서 다듬는다는 말은 역시 인위적인 노력이 가해지는 상황으로 설명을 한 것이기 때문에 자연의 본래 모습은 아니다. 물론 모로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했으니까 결과만 통하면 그만이기는 하지만, 누가 이러한 이론에 대해서 반격을 한다면 대답이 궁색해지는 것이 따분할 것이다. 그러한 염려를 해서 자연스럽지 않은 원리설명도 좋지만, 가능하면 자연적인 상황을 생각해 봄으로써 누가 생각을 해봐도 타당하다는 마음이 들도록 하는 것이 앞에서 이끌어 가는 입장이라고 생각해본다.




인생살이에 있어서도 같은 上官이면서도 유익하게 잘 인도하고 도와주는 상관도 있고, 그야말로 못살게 구는 맛에 산다는 듯이 마구 부려먹는 무정한 상관이 있기 마련이다. 이제 앞으로 그러한 구체적인 상황에 대해서 생각을 해볼 시간이 온다. 우선은 이렇게 상생과 상극의 이치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본다.




자연계에서는 나무에게 있어서 금의 작용은 계절로 다가온다. 나무가 성장을 멈추지 않으면 안되는 시기인 것이다. 이러한 가을철의 냉기운은 나무가 성장하는데 대단히 불리한 조건이다. 그래서 푸르기만 한 잎도 누렇게 또는 붉게 색이 변해서는 떨어지고 마는 그야말로 가사(假死)의 상태(狀態)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해서 금은 목을 극한다는 말을 하게 된다.

인도네시아에서 한국의 벌목회사에서 나무를 베는 장면을 본 적이 있었다. ‘한참 인기를 끌고 있는 ’체험 삶의 현장‘ 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서 였는데, 나무 하나의 규모가 참으로 대단했다. 한국에서 그 정도로 나무가 자라게 되려면 적어도 500년에서 1000년이 되어야 가능할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보다도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할런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곳에서는 불과 몇 년만 지나면 다시 그정도로 나무가 자란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한반도에서는 육림사업은 애초에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金剋木이 생각나는 것이다. ‘그렇지, 금의 기운이 없는 곳에서 나무사업을 해야지 금의 극을 받지 않고서 나무들이 하늘 높은 줄도 모르고 마구 자라게 되는 것이지 한국에서처럼 자랄만 하면 금의 극을 받고 있는 동네에서는 될 리가 없어.’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금극목은 나무를 못자라게 하는 작용을 한다는 것이 또한번 확인되는 셈이었다. 이렇게 모든 사물을 보면서 그 생극의 원리를 생각하도록 하는 것이 명리학을 숙성시키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금극목이 좋은 역할을 하는 경우는 어떻게 설명을 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봐야 하겠다. 한국의 나무는 극을 받으면 성장을 중지한다. 그러면서도 완전히 중지하는 것은 아니다. 나이테를 보면 가을에 자란 부분을 보게 된다. 즉 진한 색으로 나타나는 부분이다. 이것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무는 가을에도 자라기는 한다는 것을 알 수가 있는 것이다. 물론 여름에 자란 것과는 상당히 차이가 있다.

이것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가을이 있음으로 해서 나무는 단단하게 된다는 것이다. 나이테가 한 살을 의미한다고 하는데, 그 나이테는 단단하다. 단단한 나무는 오래간다. 즉 열대림이 과연 500년이나 1000년을 살수가 있을는지 모르겠다. 생각컨데 아마도 불가능  할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렇게 자라다가는 속이 다 썩어서 결국 죽어버리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한반도의 나무들은 여건만 좋다면 500년은 거뜬하다. 그 이유는 가을에 금이 나무를 단단하게 해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오래도록 장수를 할 수가 있는 것은 필히 금의 도움을 받아서이다. 이렇게 오래도록 살 수가 있다는 것은 나무의 입장에서는 매우 장점에 속할 수가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야 얼른 자리지 않는다고 성화를 대거나 말거나 말이다. 흔히 농담삼아 하는 말이 ‘굵고 짧게’ 라는 말을 하는데 열대림이 바로 굵고 짧게 사는 것이고, 한국림은 가늘고 길게 사는 꼴이다. 그러나 그 장단은 함부로 말할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모두는 자신의 생각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