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반달(51) 쇠소깍

작성일
2021-06-06 02:22
조회
472

제주반달(51) [14일째 : 3월 21일(일)/ 1화]


쇠소깍(牛沼端)과 군산(軍山)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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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옥상에서 바라본 서귀포항은 불야성이다. 여전히 풍랑경보가 풀리지 않았기에 그대로 모여서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어부들에게는 휴식의 시간일 수도 있겠고, 선주들에겐 발을 동동 굴러야 할 시간일 수도 있겠지 싶다. 빗줄기가 오락가락해서 카메라는 비닐옷을 입혔다. 행여라도 빗물에 망가지면 큰일이니까. 말로는 생활방수는 된다고 하지만 그런 것을 다 믿을 사람이 있느냔 말이지.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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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간단히 해결하고는 오늘도 길을 나섰다. 풍랑은 풍랑이고, 놀이는 놀이니까. 오늘이 일요일이라는 것이 조금 걸리기는 하지만, 그래도 돌아갈 시간이 다가오고 있으니 떠나기 전에 쇠소깍을 가보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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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을 위시한 예술가의 거리는 내일 아침에 마지막으로 둘러볼까 싶기도 하다. 원래 발밑은 마지막에 살펴보는 법이잖여.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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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녀 : 와, 작가님이시다! 사진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낭월 :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자....작가... 아닌데...
처녀 : 자, 얘들아 이쪽으로 서봐. 오늘 운이 좋은 줄 알고.
낭월 : 그야 뭐 어렵겠습니까. 

카메라를 손에 들었다면 다 작가인 줄로 아는 건지, 기왕이면 카메라를 든 사람이 휴대폰을 든 사람보다 사진을 작 찍어주지 않겠느냐는 확률을 믿는 것인지는 알 바가 없지만, 상관끼가 넘치는 처녀의 수다와 함께 셔터봉사를 해 줬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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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소깍은 백록담의 남벽과 서벽에서 시작해서 흘러내라는 효돈천의 끝이다. 중국인을 위해서 써놓은 한자가 낭월에게는 꽤 유용하게 쓰인다. 우소단(牛沼端)이란다. 쇠는 소 우(牛)가 되고, 소는 그대로 소(沼)이며, 깍은 생각하지 못한 단(端)이란 끝도 의미하니까 효돈천의 끝이라는 의미로 쓴 것으로 보이지만 '깍'을 '단'으로 표시한 것은 아마도 마땅한 글자를 찾느라고 고생깨나 했지 싶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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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귤의 원산지라는 안내판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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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돈감귤이 원래 토종의 귤인가 싶기도 하다. 그렇지만 귤은 천혜향이지. 문득 시어터진 홍옥과 돌덩이 같은 국광이 떠오른다. 그러한 사과들도 부사 한 방에 모두 잠재워버렸지. 마찬가지로 원종을 보존하는 것은 그만한 가치는 있지만 그것을 먹어보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는단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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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월 : 호연이 뱃놀이를 하고 가야지?
호연 : 아~닙니다~ 타십시오. 저는 됐습니다.
낭월 : 왜? 배 타는 것은 재미 없어?
호연 : 저는 엄청 큰 배가 아니면 상대하지 않습니다.
낭월 : 그럼 화인은 탈래?
호연 : 저도 안 탈래요. 두 분만 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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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연지님과 둘이만 카약을 타기로 했다. 그런데 이게 카약인지 카누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글을 봐서는 카약이라고 했는데 카약이라고 하면 몸을 감싸는 뚜껑이 떠올라서 또 아닌 것도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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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놀이야 언제나 신난다. 물결따라 움직이기도 하고, 물결을 거스르기도 하면서 놀다가 보면 시간도 물결을 타고 물처럼 흘러간다. 뒤쪽에는 태우를 타고 있는 단체관광객들도 즐겁게 뱃놀이를 하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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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화인이 말했다.

화인 : 싸부님, 노는 언제 배우셨어요?
낭월 : 어려서 배웠지.
화인 : 어디에서요?
낭월 : 안면도.
화인 : 아참, 그러셨겠네. 그런데 어려서 한 것이 기억나요?
낭월 : 자전거의 이치지 뭘.
화인 : 안면도에서도 쌍노를 저으셨어요?
낭월 : 거기에선 외노지.
화인 : 그럼 완전히 다른 거잖아요?
낭월 : 다르지, 그건 서서 젓는 거니까.
화인 : 전혀 다른데 어떻게 응용이 되는지 신기해요.
낭월 : 밥을 할 줄 알면 죽도 끓이는 이치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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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월이 뱃놀이 하는 것을 내려다 보고 있던 화인이 물었던 것이다. 바다에서는 달리 방법이 없다. 살아남아야 할 뿐이다. 물에 빠지면 자신을 건질 만큼의 기술, 그러니까 생존수영은 해 둬야 하는 것인데 다행히 안면도 구석쟁이로 이사를 하신 부모님 덕분에 그것을 저절로 익혔다. 그것도 놀이삼아서 말이지. 수영장에서 돈을 내고 강사를 만나서 배운 것이 아니니까 그냥 수영일 뿐이지 접영이니 배영이니 하는 것은 알 방법도 없었고 그것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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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사진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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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위에서 포즈를 취한 화인을 봤기 때문이다. 그래서 같이 찍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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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잠시 놀고는 더 갈 곳이 없자 배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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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더니 운영자가 보트를 타고 와서 줄을 매달고 출발지로 돌아온다. 어르신이라서 힘든 것을 도와준다고 했다. 안 그래도 되지만 고맙긴 하네. 왜냐하면 바람이 산쪽으로 어찌나 강하게 불어대는지 젊은 사람들도 아무리 노를 저어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쩔쩔매는 것을 보니 이해가 되었더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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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복을 벗어주고는 쇠소깍의 놀이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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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인 : 재미있으셨던가 봐요.
낭월 : 너무 짧아서... ㅋㅋ
화인 :이제 어디로 갈까요?
낭월: 일요일이니 군산오름으로 가볼까?
호연 : 예? 오, 오름을 가신다고요?
낭월 : 걸어갈 엄두가 안 나시는 게구나.
호연 : 웬만하면 힘든 곳은 피하고 싶습니다.
낭월 : 걱정 말게. 다행이 오름까지 차로 간다네.
호연 : 참말입니까?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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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가 꽤 있군. 커피 한 잔 사서 마시면서 쉬엄쉬엄 가면 된다. 이내 군산오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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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이 산에 진을 친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군산오름이란다. 가장 좋은 것은 코앞에 까지 차로 갈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 말에 모두 대환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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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연 : 차로 오름까지 간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낭월 : 그랬지.
호연 : 그런데 또 걸어가야 할 모양입니다.
낭월 : 난들 아나, 남들이 그랬으니 그런가보다 하지. ㅎㅎ
화인 : 왠지 싸부님께 속은것도 같고... 
낭월 : 아니, 이것도 안 걷고 어떻게 오름을 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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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분도 걷지 않아서 정상이구마는. 딱 8분 걸렸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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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야가 탁 트인 것이 그저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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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점이라면 한라산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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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히 땅에 붙어있는 것이 아니다. 몹시도 불어대는 강풍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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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속은 12m이다. 이 바람이 어느 정도인지는 맞아봐야 안다. 날아갈 지경이다. 그러니 발을 함부로 움직일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오늘은 종일 그렇게 강풍이 불어댈 모양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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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쉬라고 만들어 놓은 의자도 바람 앞에서 날아가서 거꾸러졌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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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단단히 고정시켰을텐데 초속 12m의 강풍에는 버티지 못한 모양이다. 혹시 누군가 눈팔이 하고 걷다가 걸려서 자빠지리가도 할까 싶어서 호연이랑 같이 들어서 한쪽으로 옮겨놓았다. 고정시키는 것은 면장이 알아서 하실게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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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지님도 행여나 낭월이 날아갈까봐서 지켜보고 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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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오름을 내려오니까 바람막이가 있어서인지 심한 바람은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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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타지, 아니 발걸음을 타지 않은 유채밭을 보고 화인이 오즈모를 꺼내서 영상을 찍는다. 틈만 나면 자료를 수집하는 셈이다. 이것은 올해 써도 되고 내년에 써도 된다. 시간에는 나이가 있을지 몰라도 자연은 언제나 해가 바뀌면 다시 깨어나니, 그야말로 매일의 부활일 따름이고, 그래서 언제나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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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연 : 사부님, 점심은 삼치정식으로 준비했습니다.
낭월 : 그래 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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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사이에 단골이 되어버린 수눌음이다. 마침 점심시간을 지나서인지 조용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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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니까 그런가보다 하지 막상 무슨 차이인지는 잘 모르겠다. 미각이 무디긴 한 모양이다. 상하지만 않았으면 그걸로 만족하니 뭐.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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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진 바람을 맞고 다녔으니 평소보다 기운이 더 소모되었을 게고, 그러니까 또 든든하게 잘 먹어야 보충이 되겠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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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치정식 2인에 갈치찌개 2인으로 시켰단다. 골고루 맛보자는 이야긴데 그것도 괜찮았지 싶다. 뜨끈한 국물도 추위를 녹이는데 도움이 될테니까. 원래는 4인용이라서 안 되는데 자주 오셔서 해 준다고 했다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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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아 어떻든 간에 든든하게 잘 먹었다. 이렇게 해서 또 한나절을 즐겁게 보냈구나.

(여행은 계속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