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이치적(理致的)인 연구

작성일
2007-09-10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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丑土에서는 냉기를 가득 머금고 있는 동토(凍土)를 연결지어보게 된다. 겨울날 눈 덮인 벌판이 축토와 연결되는 모습이라고 생각을 해본다. 그렇게 얼어붙어서는 돌덩이처럼 단단한 형태도 있고, 서릿발처럼 얼음 조각에 떠밀려서는 공중에 솟아있는 상태의 흙도 축토라고 하겠다.

이미 씨앗을 품속에 간직하고 있는 토이기도 하다. 이런 연결은 추수를 하고 난 후의 밭에 떨어진 녹두나 팥에 대한 생각을 해볼 수도 있겠다. 아니면 논의 경우에는 이삭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물론 인위적인 것이 싫으신 벗님은 그냥 잡초의 씨앗이라고 생각을 하자. 사실 땅은 어디를 파든지 씨앗이 잠자고 있다.

예전에 어느 농부가 잡초가 하도 지긋지긋해서 아마도 작년의 풀에서 씨앗이 떨어져서는 이렇게 많은 잡초를 만들기 때문에 깊고 깊은 땅 속에 있는  흙을 파다가 농작물을 심으면 풀이 나지 않을 것이라는 멋진 생각을 하고서는 실제로 많은 노력을 해서 그렇게 깊은 곳에 있는 생흙을 파다가 씨앗을 뿌렸더니, 천만의 말씀이라고 했다. 그 곳에서도 여전히 잡초는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서 생각해보니 원래가 대지에 묻힌 씨앗은 급할 것이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씨앗은 대지에 누워서 싹을 틔울 기회가 올 때까지 십년이고 백년이고 천년이 넘어도 그냥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가 일단 기회가 주어지면 생기를 머금고 마구 성장을 하는 것이다. 참으로 신비한 대자연의 조화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어쨌던 그렇게 씨앗은 대지의 품속에서 포근하게 겨울잠을 자고 있는 셈이다. 물론 아무도 포근하다고 느끼지는 않을 것이다. 썰렁하게 냉각되어있을 테니까, 그러나 이것도 어쩌면 호강스러운 생각일 것이다.

물구덩이에 박혀있는 종자를 생각한다면 얼마나 다행인가 하는 생각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러니까 어느 종자나 모두 축토를 만나는 것은 아닌 셈이다. 난초의 시앗은 대충 잡아서 20~30만개라고 들었는데, 그러한 종자들이 모두 발아를 하는 것은 아니다. 그 중에는 극히 일부분만이 포근한 그야말로 大地에 뿌리를 내리고서 몇 년이 지난 후에는 아무도 흉내를 낼 수 없는 아름다운 향을 뿌리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역할을 축토가 아니고서는 아무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러한 역할이 축토의 몫이라고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