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이치적(理致的)인 연구

작성일
2007-09-10 21:56
조회
5831

현재까지도 가장 크게 문제가 되고 있는 이론이 바로 이 자수의 양면성에 대해서이다. 상당히 명망이 있으신 학자 분들끼리도 이 이야기에 대해서는 서로 입장이 다른 경우가 많은 것을 보면서 뭔가 정리를 하지 않으면 곤란하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낭월이로써도 정면으로 공격을 할 수는 없고, 측면으로 개인적인 의견을 피력할 따름이라고 본다. 그 이유는 원칙적으로는 야자시를 인정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야자시를 무시하고서는 설명이 애매한 경우도 왕왕 당하기 때문인데, 현실적으로 과연 야자시를 인정하는 것이 자평명리학의 이치에 얼마나 위배되는 것인가에 대해서 반론을 전개하기로 한다.




★ 夜子時와 朝子時 설에 대해서




명리학을 연구하면서 맨 처음으로 부딧치는 것이 바로 이 子時에 대한 문제이다. 그야말로 이론과 실제의 사이에서 고민을 한바탕 해봐야 하는 문제가 다가온다. 이 子水에 대해서 설명을 하면서 두 얼굴의 자시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낭월이는 이 두 가지로 보는 설에 대해서 찬성을 하는 입장이기도 하다. 경험상으로 볼 적에도 왕왕 야자시를 인정해야 설명이 되는 경우를 보기도 한다. 우선 이치적으로 볼 적에는 그냥 12시로 봐야 한다는 설에 찬성을 하게 된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와 약간 다르다는 점이다. 이유는 명리학은 실용적인 학문이기 때문에 단지 이론적이기만 해서는 아무 쓸모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실제로 자평명리학에서는 기본적인 이치와는 벗어나지만 그대로 채용을 하고 있는 것이 몇 가지 눈에 띈다. 그래서 야자시설에 대해서도 이에 준해서 실용위주로 봐도 잘못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 의견 1) 동지시(冬至時)가 되면 한 살 더 먹는다는 속설




동짓달은 월로 따져서 대설(大雪)부터 동지(冬至)를 거쳐서 소한(小寒)이 들기 전까지를 말한다. 소한이 들면 비로소 동짓달에서 섣달로 넘어가게 되어있다. 그러면 동짓달은 대설로부터 소한까지의 30일 간이다. 그러면 고래로 전해 내려온 이야기 중에서 여기에 대한 설명을 인용해 보겠다.

‘동짓달이 되면 한 살 더 먹는다’는 말이 있던가?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란다. 아마도 그런 말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동짓날 팥죽을 먹으면 한 살 더 먹는다’는 말은 들어 보셨을 것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요점은 동짓달(음력 11월)이 아니라, 동짓날(동지의 시가 들어있는 날)이라는 것이다. 만약에 하루의 시작을 저녁 11시 즉 자시가 되자마자 날짜를 바꿔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여기에 대한 이유에 대해서 뭔가 합당한 설명이 있어야 하겠다.

그러나 동짓달이 시작되면 한 살 더 먹는다는 말은 전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만약 여기에서 속설은 하나의 속설일 뿐이라고 생각하신다면 이미 설명을 포기한 것으로 간주하겠다. 속설에서도 뭔가 캐어 낼 것이 있다면 배워야 하는 것이 학자의 자세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확히 동지시(冬至時)는 동짓달이 시작된 후 절반에 해당한다. 이것은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자정(子正)은 정확히 子時의 절반에 있다는 것과 완전히 일치를 한다. 그리고 이것은 앞에서 말씀드린 쥐의 발가락 이론과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되기도 한다. 이 정도로 말씀을 드리면 낭월이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싶어 하는지 감이 잡히실 것이다. 그러니까 야자시에 대해서 인정을 한다고 해서 무시하는 선배님이 계신다면 이러한 질문을 해보시라는 것이다. 과연 뭐라고 답변을 하실 것인지 궁금하다. 일단 동지시에 대한 속담은 사소하게 느끼실 런지 모르지만, 그 속에 들어있는 의미는 결코 사소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 감으로 잡히셨을 것으로 짐작된다.




★ 의견 2) 한 해의 시작은 어째서 입춘(立春)인가?




이번에는 입춘을 들고 나와서 한번 생각을 해보려고 한다. 입춘은 지지로 따지면 寅月에 해당한다. 그리고 우리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입춘시(立春時)를 한 해의 시작으로 보고 있다. 물론 세간에서는 전혀 이러한 이치를 모른다. 단지 자평명리학을 연구하는 학자만이 이렇게 사용하고 이것은 정법(定法)으로 되어있다. 그러나 이것도 한번 분석을 해본다면 반론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이 된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이유는 어째서 자월 즉 음력 11월을 시작으로 보지 않고서 한참 뒤가 되는 인월을 한 해의 시작으로 삼았느냐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도 야자시를 무시하는 입장에 서 계신 분은 설명을 해야 할 것이다. 이 이론은 앞의 동지시에 한 살을 더 먹는다는 속설에 대해서 부정하시는 분께 드리는 질문이기도 하다. 왜냐면 입춘시를 시작으로 삼는 것은 속설이 아니라 당연한 자평명리학의 정설(定說)이기 때문이다.

그럼 낭월이는 왜 그렇게 삼게 되었느냐고 반문을 하실 런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생각한 바를 설명 드려야 하겠다. 과연 이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피차 알 수가 없다. 그리고 이러한 이야기(사실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것)는 앞으로도 상당부분 등장을 할 것이다. 적어도 이 ‘사주강의(四柱講義)’에서는 평소에 의문을 갖고 있었던 모든 이야기들에 대해서 의견을 내어놓을 참이기 때문이다. 그 첫 번째의 ‘사실인지 아닌지 모르지만 그렇게 생각되는 이야기’가 바로 이 야자시에 대한 것이다.

말이 길어진 것 같다. 다시 입춘을 시작으로 봐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도록 하자. 우선 낭월이가 생각하기에는 옛날의 학자 님들께서 처음에는 동지를 시작으로 보고서 연구의 출발을 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이 이론적으로 타당하기 때문이다. 왜냐면 동지시가 지나면 한 살을 더 먹는다는 이야기가 있었고, 그것은 당시의 한 관습이었고, 또한 子는 모든 것이 처음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적용을 시켜가면서 뭔가 핀트가 벗어나고 있는 것을 발견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는 명리학을 연구하시는 분들은 상당히 과학적64)인 사고력을 갖고 계셨을 것으로 생각된다. 왜냐면 명리학은 일반적인 이론학이 아니기 때문이다. 바로 현장(現場)에서 그대로 정확하게 적중(的中)해야 하는 막중한 부담감을 갖고 있는 특수한 예언학(豫言學)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바로 이치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부합이 되어야 하는 점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명제 앞에서는 단순히 이론적이기 때문에 그렇게 써야 한다는 이야기는 그야말로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일 뿐이다. 실제로 그렇게 적중을 하지 않으면 아무런 쓸모가 없는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프로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동지라고 하는 것으로 한 해의 시작을 삼고서 따져봤을 경우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주의력이 깊은 학자라면 발견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 역시 사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가 없지만 그렇게 추측(推測)이 된다. 추측이란 아시겠지만 ‘미뤄서 짐작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미뤄서 짐작을 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겠다는 것을 합리적으로 부가설명을 해야 하는 책임이 있기도 하다. 이것이 추측이다. 단지 상상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낭월이는 이렇게 추측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씀드리는 것이다.




그렇게 연구를 하다가 새로운 것을 발견하게 되었을 것이다. 즉 입춘(立春)을 기점으로 해서 한 해의 시작으로 보면 어떻겠느냐는 획기적인 방향전환을 해봤을 것이다. 어느 오락 프로그램에서 인기를 끌었던 ‘고정관념을 깨자’는 것이다. 그렇게 대입을 해서 따져본 결과 매우 놀라운 적중률이 나타났을 것이다. 물론 처음에는 이론적인 학자들의 반발을 엄청나게 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반론에 반론을 거듭하다가 결국은 정설(定說)로 인정이 되었을 것으로 상상이 된다. 결국 ‘이치에는 어긋나지만 실제로 그렇게 적중되므로 이것은 정설이다.’ 라고 했을 거라는 생각이다. 그리고 이것이 틀렸다고 생각되는 벗님은 그에 대한 이론을 전개해 보시기 바란다.

그러면 과연 입춘을 한해의 시작으로 보는 것은 실제에만 적용이 되고, 이치에 어긋나는 것일까? 여기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해봤다. 물론 이에 대한 이야기는 해당하는 곳(寅木부분)에서 설명을 할 것이다. 여기에서는 다만 야자시를 인정하는 것에 대한 이론만 세워보면 충분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몇 가지 의견을 추가할 수는 있겠으나, 이 정도로도 이미 벗님께서는 이해가 충분히 되었을 것으로 생각해서 이만하고 줄이겠거니와, 어쨌던 이렇게 해서 야자시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니까 한번 생각을 잘 해보시기 권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