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5] 제38장. 소주오행원/ 7.몽중지옥(夢中地獄)

작성일
2023-08-15 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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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5] 38. 소주오행원(蘇州五行院)

 

7. 몽중지옥(夢中地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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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새벽에 잠을 깼다. 개운하고도 상쾌한 기운이 가득한 오행원을 한 바퀴 돌면서 가볍게 산책하는데 강변에 한 사람이 앉아서 하염없이 흐르는 물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보여서 천천히 다가갔다. 혹 아는 사람인가 싶어서였다. 그러자 그림자가 일어나서는 합장하면서 말했다.

스승님 기침하셨어요? 당문약이에요.”

, 난 또 뉘시라고. 일찍 일어났구나. 강물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기에 그리도 골똘하게 있었지?”

실은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어요. 이런저런 생각들이 번갈아서 일어나면서 잠이 오질 않아서 뒤척이다가 먼동이 터오는 것을 보면서 그냥 일어나서 물소리를 따라서 나왔어요. 그랬더니 정신이 좀 드네요. 호호~!”

우창은 당문약이 마음속에 번민이 있어서 잠을 못 이룬 것으로 짐작하고는 이야기라도 들어주려고 말했다.

그랬군. 그렇다면 차방(茶房)으로 가서 따뜻한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어떨까? 지금 초급의 강의가 진행되고 있을 시간인가?”

맞아요. 오늘은 스승님과 차를 마실 수가 있는 복을 누리게 해 주세요. 호호~!”

우창이 당문약과 같이 차방으로 향했다. 마침 춘매가 아침을 준비하려고 일어나서는 불을 때다가 우창을 보고는 인사했다.

스승님, 일찍 일어나셨네요. , 당문약이구나. 찻물을 끓여 갖고 갈 테니까 들어가.”

잠시 후에 춘매가 끓는 물을 가져와서는 오룡차를 타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찻잔을 우창과 당문약의 앞에 놓고는 일어나면서 말했다.

말씀 나누세요.”

두 사람이 이야기할 것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얼른 자리를 비켰다. 그것이 아니라도 아침을 준비하려면 바쁘기도 했으므로 얼른 나갔다. 우창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찻잔을 들어서 향을 맡고 내려놓은 다음에 물었다.

혹 무슨 번민이 있나? 잠을 이루지 못한다는 것은 다른 이유가 없지 싶은데 말이지.”

스승님은 잠을 잘 주무세요?”

그렇지. 난 머리만 바닥에 닿으면 바로 정신을 잃어버리거든. 하하하~!”

정말 부러워요. 저는 잠을 이룰 수가 없어요. 원래부터 그랬는데 근래에는 그 증세가 더욱 심하네요.”

혹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하고 싶으면 해도 좋고.”

우창이 강요할 마음은 없어서 지나는 말로 던졌다. 그러자 당문약이 말했다.

실은 며칠 전에 떠나간 사람이 있잖아요? 천계라고...”

, 그랬지. 안타깝지만 인연이 거기까지인 것으로 봐야지. 참 두 사람이 같은 마을에 살고 있었나? 원춘의 말에 동행하게 되었다고 했었지?”

맞아요. 실은 떠나면서 제게 와서 그랬어요. ‘나는 갈 텐데 어떻게 할 것이냐?’고요. 그래서 좀 더 공부하고 싶다고 했죠. 그는 알았다고 하고 떠났지만 그래도 같이 와서 혼자 가는 것을 보니까 마음이 좀 안 되었어요. 그래도 마을에서는 가까이 지냈던 오빠거든요. 아쉽게도 물욕(物慾)이 좀 많아서 좋은 공부를 받아들이지 못했으나 사람은 괜찮아서 내심으로 좋아하기도 했었고요. 호호~!”

당문약이 씁쓸하게 웃었다. 그 표정으로 봐서 예사로운 사이가 아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가 있었다.

혹 혼인할 사이였나?”

그러려고도 했었어요. 천계가 사업을 일으킨 다음에 가마를 갖고 데리러 온다는 말도 했거든요. 아마도 마음은 진심이었을 거에요.”

그렇다면 동행해서 귀가하는 것도 좋았지 않았나? 마음이 복잡한 것보다는 그것이 더 나을 수도 있었을 텐데.”

우창이 이렇게 말해주는 것은 혹 미련이 있으면 얼른 돌아가서 같이 마음을 나누며 살아가는 것도 좋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러자 당문약이 고개를 흔들면서 말했다.

실은 이번에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면서 천계의 본질을 접한 것 같았어요. 평범하게 돈 벌어서 잘 살겠다는 것은 이해가 되었는데 스승님을 뵙고 해탈의 의미를 알게 되자 제가 변한 것이죠. 그래서 떠나면서 문약이 변한 것 같다고 했는데 그게 마음에 걸려요. 호호~!”

이해되네. 그럴 만도 하지. 그것을 인연법이라고 한다네.”

무슨 뜻인지 말씀해 주세요. 궁금해요.”

두 사람의 마음이 같은 접시에 물을 담아서 마주 잡고 있으면 인연이 이어지는 거야. 다만 그것은 수평선(水平線)이어야 한다는 것이지. 그러다가 어느 한쪽이 성장(成長)하거나 반대로 위축(萎縮)이 된다면 수평선이 기울어버리겠지?”

그렇겠죠.”

그러면 인연이 끊어지는 거야. 흡사 접시의 물이 쏟아져 버리는 것과도 같은 의미지. 아마도 지금이 그런 때가 아닐까 싶은걸. 어때?”

말씀을 듣고 보니 그렇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더구나 문약의 수준이 높아져서 기울어진 것이니까 다시 맞추려면 천계도 같이 성장하는 수밖에 없겠군. 연민(憐愍)도 좋기는 하지만 언제까지 그것을 마음에 잡아 둘 텐가? 과거심(過去心)은 불가득(不可得)인데 말이네. 하하하~!”

, 맞아요. 그 말씀이 참으로 감동적이었어요. 그것을 알면서도 제가 배신자였나 싶기도 해서 마음이 편치 않았거든요. 이제 털어야 하겠어요. 차가 참 향기로워요. 호호~!”

이미 번뇌의 절반은 사라진 것으로 보이네, 가서 한숨 더 자.”

차를 마신 당문약이 훨씬 밝은 표정으로 인사하고는 돌아갔다. 우창이 혼자서 차를 마시면서 곰곰 생각해 봤다. 다음에 해 줄 이야기는 숙면(熟眠)의 이야기를 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가끔은 방문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주로 한산사의 불자들이었다. 그들이 찾아와서 고민을 이야기하면 지객화상 혜공은 오행원으로 보내는 것이었다. 예전에는 대략 얼버무리고 기도하면 된다는 식으로 넘어갔는데 이제는 우창을 믿고서 무슨 이야기든 하게 되면 바로 오행원으로 가보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우창에게 보내면 괜히 엉뚱한 곳에 가서 허망한 말을 듣고서 심신(心身)이 황폐(荒廢)해지는 부작용은 막을 수가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침을 먹고는 접객실(接客室)로 나갔다. 그러자 진명이 청소를 말끔하게 해 놓고서 우창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다가 반갑게 말했다.

스승님, 날씨가 많이 풀렸어요. 강물의 얼음이 녹고 있는 것을 보니까 봄의 향이 풍기는 것도 같잖아요? 호호호~!”

그래? 아마도 봄은 진명의 마음속으로부터 다가오고 있나 보다. 하하~!”

그럴까요? 아마도 그럴 수도 있겠어요. 우수(雨水)도 얼마 남지 않았잖아요. 어제 말씀해 주신 식욕에 대한 가르침을 듣고서 먹는다는 것에 대해서 새삼스럽게 생각하게 되었어요.”

?”

별다른 생각 없이 때가 되었으니 먹는다고 생각하고 당연한 듯이 그렇게 먹고 살았나 싶어서죠. 그런데 곰곰 생각해 보니까 음식이라는 것이 마음의 스승만큼이나 몸의 소중한 생명이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았으니 기특하죠?”

그렇구나. 하하~!”

, 스승님은 음식을 드실 적에 그 음식의 맛에는 관심이 없으신가요?”

그럴 리가 있나. 나도 미각(味覺)이 있는데 당연히 맛이 좋고 덜 좋은 것에 대해서는 구분하지. 다만 상했는지 정상인지에 비중이 클 따름이야.”

, 그렇군요. 그러시다면 맛이 나빠도 상하지 않았으면 괜찮은 건가요?”

당연하지. 먹을 수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할 뿐이고 맛이 좋으냐 안 좋으냐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으니까 말이네. 하하~!”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손님이 왔다는 말이 들렸다. 진명이 문을 열고 보니까 50대의 중년 남자가 문전에서 기웃거리고 있었다. 진명이 들어오라고 안내하자 얼른 따라서 들어와서 우창의 앞에 앉았다. 진명이 늘 하던 대로 남자에게 물었다.

어떻게 오셨는지요?”

한산사 혜공 화상이 가보라고 해서 왔습니다.”

, 그러셨군요. 잘 오셨어요. 뭘 도와드릴까요?”

진명은 항상 머뭇거리는 것이 없어서 맘에 들었다. 무엇이든 단도직입이었기 때문이었다. 남자는 오히려 숨을 쉴 틈도 안 주고 묻자 당황했다.

그게..... ....”

차를 드릴까요? 제가 너무 급하게 말씀드렸죠? 호호호~!”

, ....”

그것을 보면서 그 남자는 두뇌의 회전이 느리다는 것을 느낀 우창이 물었다.

한산사와 같은 좋은 절에 인연이 되셨습니다. 복이 많으시네요. 하하~!”

, 그렇게 생각합니다. 반겨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차를 마시는 모습에서 근심이 많아 보였다. 근심은 풀어야만 자유를 얻기 마련임을 잘 알고 있는 우창은 마음의 준비가 되도록 잠시 기다렸다. 차를 반 잔이나 마시고 나서야 비로소 말했다.

소생은 잠만 자면 꿈을 꿉니다.”

우창은 참 기이하다고 생각했다. 새벽에는 당문약이 잠을 자지 못한다고 이야기했는데 아침에는 또 잠을 자기는 하는데 꿈이 많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무슨 연관이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꿈을 꾸시기에 그러십니까?”

잠만 들면 꿈에 도망을 다닙니다. 끝도 없이 도망을 다니다가 보면 날이 밝아집니다. 벌써 3년째 이러는가 봅니다. 그렇게 꿈을 꾸고 나서는 하루를 몽롱하게 비몽사몽으로 지나다가는 다시 또 밤이 되면 그렇게 도망을 다니고 있습니다. 꿈을 지배할 방법은 없는 것인지를 알고 싶습니다. 너무 지쳤습니다. 일상을 꾸려갈 수도 없을 정도이니까 말입니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우창이 그가 말을 마치자 조용히 물었다.

그렇다면 여쭙겠습니다. 3년 전에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특별히 기억나는 일도 없습니다. 평온하게 지냈으니 말입니다. 그야말로 우연히 그렇게 꿈의 지옥으로 빠져든 것 같습니다. 악몽을 벗어나려고 온갖 의원을 다 만나봤고, 좋다는 약이며 침이며 뜸까지도 안 해 본 것이 없습니다만 도저히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부처님께 기도하면 된다는 말을 듣고서 소주에서 가장 영험하기로 소문이 자자한 한산사까지 찾아와서 스님이 시키는 대로 기도했습니다만 영험을 보지 못해서 답답하던 차에 오늘 새벽에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절에 왔더니 혜공 화상이 가보라고 해서 일말(一抹)의 희망을 품고 찾아뵈었습니다. 어떤 방법이든 다 하겠습니다. 꿈의 지옥에서 벗어나게만 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말하는 모습에서 측은한 마음이 생길 정도였다. 몸의 고통만이 고통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꿈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이렇게도 멀쩡한 사람을 힘들게 하는 것인지 모를 일이었다. 우창은 진명을 바라봤다. 혹 뭔가 보이는 것이 있는지를 물어보는 것이었다. 그러자 진명이 고개를 저었다. 진명의 영안으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서 이 문제는 영혼(靈魂)과는 무관하다는 것을 알았다. 만약 영적인 문제거나 전생과 연관이 된 것이라면 진명이 모를 까닭이 없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생각해 봤으나 묘안(妙案)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때 진명이 말했다.

스승님, 핵범전(核凡錢)은 어떨까요?”

그 말에 우창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것이 있었다는 것을 잊고 있었는데 진명이 말하자 바로 머릿속에 불이 환하게 켜지는 듯했다.

아무래도 그 방법이 좋겠지?”

우창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듯이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진명이 속으로 웃었다. 그 남자는 희망의 빛이 보이는 것 같았던지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있다는 말씀입니까? 부디 그렇게만 해 주신다면 보답(報答)을 꼭 하겠습니다.”

우선 꿈의 지옥부터 벗어나고 생각해 보십니다. 성함은 어찌 되십니까?”

, 이름은 주응빈(周應賓)입니다. 비용은 얼마든 괜찮습니다.”

희망이 보인다고 생각하자 더욱 바짝 매달리는 모습이 애처롭기조차 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이번에 제대로 핵범전을 시험해 볼 수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봉에서는 진명의 영안(靈眼)이 큰 부조를 했기 때문에 핵범전의 효과인지가 반신반의(半信半疑)했기 때문이었다.

진명, 써보게. 핵범전(核凡錢)하고, 이름은 주응빈(周應賓)이고, 주신(主身)에 전화핵(錢化核)으로 마무리하지.”

우창의 말이 떨어지기를 기다려서 붓을 먹에 찍어서 시키는 대로 썼다.

, 스승님 그대로 썼습니다. 좌우에는 어떻게 할까요?”

우측에는 핵범전하고 퇴악몽(退惡夢) 전화핵으로 쓰지.”

그렇게 썼습니다. 좌측에는 또 무엇을 쓸까요?”

왼쪽에는 전무몽(全無夢)이라고 써.”

끝에는 전화핵을 넣어야겠죠?”

그렇지. 다 썼나?”

말씀하신 대로 썼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진명이 쓴 종이를 우창이 들여다보고는 그 남자에게 주면서 말했다.

주 선생은 지금부터 시키는 대로 하면 됩니다. 우선 귀가하셔서 이와 똑같이 일곱 장을 쓰셔서 잠자기 전에 문밖에서 소각(燒却)하시면 됩니다. 이레를 그렇게 하시고 잠자리에 들도록 하시지요.”

? 그 외에는 할 일이 또 무엇입니까?”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대로만 하시면 됩니다. 그렇게 하시면 알 바가 있으실 것입니다.”

정말 간단하네요......”

우창이 봐도 믿음이 가지 않는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러나 그의 믿음을 유발(誘發)시키기 위해서 해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히려 기대하지 않는 것이 더 좋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가 다시 말했다.

역시 청공 화상께서 도사님을 뵙도록 해 주신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할 수가 있는 것은 다 해봤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말씀하신 방법은 듣느니 처음입니다. 효과가 있으면 반드시 찾아뵙고 사례를 하겠습니다.”

사례는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부디 원하시는 일이 잘 이뤄지시기만을 바랄 따름입니다.”

이렇게 말하자 그 남자는 진명이 써준 종이를 접어서 가지고 갔다. 그렇게 하고서 또 이내 그 일은 잊어버렸다. 그리고 사흘이 지났다.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진명과 함께 접객실에서 차를 마시면서 한담을 나누고 있는데 손님이 찾아왔다고 해서 내다보니 사흘 전에 찾아와서 핵범전을 해 준 주응빈이었다. 우창이 내심 뜨끔했으나 내색은 하지 않았다. 아직 이레가 되지 않았는데 서둘러서 온 것은 아무래도 항의하러 온 것이겠거니 싶은 생각이 들어서였다.

아직, 이레가 되지 않았는데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그러자 주응빈이 합장하고서 말했다. 얼굴에는 생기가 감돌았다.

도사님께 감사한 말씀을 드리고 싶은데 이레를 기다릴 수가 없어서 서둘러서 왔습니다. 처음에는 기대하지 않았는데 막상 잠을 잘 자고 보니까 이렇게 신기할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거듭 고맙다고 하는 것을 보고서야 가슴을 쓸어내렸다. 오주괘는 이미 적지 않은 시간을 두고서 다양한 방법으로 확인했기 때문에 믿어도 되지만 핵범전은 제대로 시도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래도 믿음이 생기기 전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셨습니다. 고마우신 말씀을 해 주러 일부로 오셨으니 들어가서 차라도 한 잔 드시도록 하지요.”

, 따로 드릴 말씀도 있고 하니까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진명이 차를 따라주자 한 모금 마시고는 말했다.

참으로 놀랍습니다. 도사님께서 써 주신 부적을 태우고 잠을 잤는데 첫날부터 정신없이 잠들어서는 눈을 떠보니 꿈도 없이 새벽을 맞이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얼마만 인지 모를 일이지요. 그래서 기대심리로 인해서 그랬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다음 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참으로 이러한 경험은 생전 처음이라서 무슨 도술(道術)을 글자 안에 집어넣으셨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조차 했습니다. 이것을 어떤 이유로 효험이 있었는지 설명해 주실 수는 있을까요?”

이렇게 물으면서 진지한 표정을 짓자 우창도 뭔가 말은 해야 해야 하겠기에 과거의 어느 대사에게서 물려받았다고 말해줬다. 그러자 고개를 끄덕인 주응빈이 말했다.

봐하니 오행원에 기거하는 대중들이 꽤 많으십니다. 다행히 사업은 순조로워서 약간의 여유가 있습니다. 너무나 감사한 마음에 성의를 표하고 싶으니 받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말하고는 상자를 하나 내밀었다. 진명이 열어보자 은자가 가지런히 들어있었는데 대략 봐서 50개는 되어 보였다. 그것을 본 우창이 말했다.

이렇게까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미 효과를 보셨다면 그것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인데 너무 과한 사례를 하셨습니다. 마음만 받겠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우창은 약간의 노력으로 큰 재물을 얻는 것은 바라지도 않았고 그럴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함께 머무는 식구들도 굶지 않을 복이 된다면 어떻게든 해결이 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는데 이렇게 과다한 사례는 오히려 부담되어서 받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주응빈은 이미 마음으로 결정을 했다는 듯이 말했다.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앞으로도 자주 도움을 청할 일이 있을 것입니다. 그 많은 의원과 약들을 생각하면 이것은 오히려 너무 적은 사례입니다. 그러니 조금도 부담을 갖지 마시고 기쁜 마음으로 받으시기만 바랍니다. 한산사의 부처님께도 절반을 공양했습니다. 좋은 인연을 맺어 주신 까닭이지요. 다행히 형편이 조금은 여유가 있어서 즐거울 따름입니다. 더구나 깊은 잠을 얻고서 다시 만난 세상은 완전히 다른 풍경을 만난 듯합니다. 아내도 너무나 기뻐해서 언제 시간이 되면 인사하러 오겠다고 했습니다.”

진명이 봐도 진심인 것으로 보여서 말했다.

스승님 아무래도 받으셔야 하지 싶습니다. 대신에 공부하는 제자들에게 음식을 공급하는데 소중한 재물을 보탠다면 주 선생도 공덕이 될 것이니 받아주세요.”

진명이 이렇게 말하자 비로소 받고는 말했다.

잘 알겠습니다. 그토록 진심으로 원하시니 고맙게 받아서 잘 쓰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도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라도 찾아 주시기 바랍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순전히 제가 궁금해서 갖게 된 생각입니다. 혹 답변해 주셔도 좋고 안 하셔도 그만입니다.”

무엇이든 말씀하시면 답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우창이 흔쾌히 답하자 자기의 생각을 말했다.

결과적으로는 대단한 위력을 발휘했으므로 믿어도 되겠습니다만, 단지 옥편(玉篇)에 들어있는 글자를 썼고, 그것을 불로 태웠을 뿐인데 어떻게 해서 이러한 결과를 가져오게 된 것일까요? 이점이 참으로 신기한데 그러한 현상에 대해서 들을 수가 있을까요?”

주응빈의 진지한 표정을 보면서 우창도 가볍게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진리에 대한 열망이 있는 사람에게는 최대한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만 말을 해 줘야 한다는 압박도 없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물어주실 줄은 생각지 못했습니다. 참으로 멋지십니다. 하하하~!”

혹 실례를 범한 것이라면 양해를 해 주시기 바랍니다. 타고 난 천성인지 궁금한 것은 못 참아서 그렇습니다. 아마도 불면증(不眠症)으로 시달린 것이 어쩌면 그러한 연유도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해 봤었습니다.”

매우 바람직한 생각이십니다. 비록 만족스러운 답을 드릴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이러한 것을 물어주는 것만으로도 보람을 느끼겠습니다. 하하~!”

우창이 유쾌하게 웃자, 주응빈도 마음이 훨씬 가벼워졌다.

그렇다면 정말 다행입니다.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이것에는 무슨 조화(造化)가 깃들어 있는지요?”

만약에 ()’자를 받으면 기분이 어떻겠습니까?”

그야 기분이 좋겠습니다. 그렇지만 기분이 좋다고 해서 실제로 어떤 작용이 있을 것으로 생각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럴 수도 있습니다. 기분이 좋고 나쁜 것은 작은 작용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강력한 염원(念願)이 깃들어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가령 그 사람이 복()자를 써놓고 100일을 기도한 다음에 그것을 주었을 적에 받는다면 말이지요.”

아마도 그런 것을 받게 된다면 기분을 넘어서서 감동까지도 받게 되지 싶습니다.”

주응빈의 말을 듣고 우창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핵범전(核凡錢)과 그 안에 포함된 글자들은 도승(道僧)에게서 전수받은 비법입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글자의 조합은 이를테면 기문진법(奇門陣法)과 같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의 상황이라면 그러한 번뇌들을 핵범전 안에 가둬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장애(障礙)의 요소가 사라지게 될 것이고, 자연히 문제를 해결하게 되는 것이지요. 물론 이러한 신비력(神秘力)이 있다는 것을 믿는다면 말입니다.”

정말 그렇겠습니다. 예전에도 그러한 작용이 있을 것으로 생각은 했습니다만 실제로 겪어보고 나니까 너무나 신기해서 혼자 감탄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것을 논리적으로 이해하고 싶었는데 염력의 작용이라고 하시니까 이해가 되었습니다. 더구나 글자로 진을 만들면 문자진(文字陣)이 되겠습니다. 문자진이나 막대기 진이나 다를 바가 없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런데 왜 불로 태우는 것입니까? 오히려 종이에 써서 침실에 붙여놓으면 더 효과가 있지 않겠습니까?”

우창은 주응빈의 생각도 일리가 있다고 여겼다. 그래서 다시 태우는 이유를 생각해 봤다. 물론 정법사(正法寺)의 해주(解呪) 화상에게 물어보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그것은 의미가 없으니 오히려 생각이나 해 보는 것으로 답을 찾아보는 수밖에 없어서 곰곰 생각하고는 말했다.

글자를 종이에 쓰는 것은 가두는 것입니다. 그리고 허공에 쓰는 것은 실체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미뤄서 생각해 본다면 종이에 쓴 다음에 태우게 되면 갇혔다가 자유롭게 풀려나 일하는 것이 아닐까요? 도사들이 붓으로 허공에 글을 쓰는 것은 그야말로 최고의 술법(術法)이라고 한다면 종이나 나무에 써서 태우는 것은 그 아래의 술법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창의 말이 다소 어려웠는지 듣고서도 곰곰 생각하더니 비로소 이해되었는지 말했다.

잘 알겠습니다. 그런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습니다. 글자를 가둔다거나 풀어놓는다는 생각을 말입니다. 역시 여쭙기를 잘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무엇을 가르치는 것인지요?”

, 여기에서는 오행법을 가르칩니다.”

그게 무엇인지요? 금목수화토(金木水火土)를 말입니까?”

맞습니다. 하하하~!”

그렇군요. 나중에 배워보고 싶습니다. 고맙습니다.”

가끔 놀러 오셔도 됩니다. 하하~!”

그러고 싶습니다. 또 뵙겠습니다. 그럼~!”

 

 

우창은 멀리 전송하지 않았다. 그것이 오히려 편안하게 오갈 수가 있을 것으로 생각되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