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6] 제38장. 소주오행원/ 8.수마(睡魔)와 수복(睡福)

작성일
2023-08-20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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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6] 38. 소주오행원(蘇州五行院)

 

8. 수마(睡魔)와 수복(睡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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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이 지나 다시 우창이 강단에 서야 하는 시간이 되었다. 제자들은 일찌감치 공부할 준비를 하고서는 강당으로 모여들었고, 우창도 무엇을 묻더라도 답을 해 줄 마음으로 모든 생각을 텅 비우고서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가장 먼저 손을 든 사람은 당문약(唐文若)이었다.

스승님께 여쭤보려고 이 시간을 무척 기다렸어요. 그래서 가장 먼저 말씀을 올리려고 벼르고 있었거든요. 호호호~!”

제자들은 누가 먼저 물어도 상관이 없었다. 무슨 질문이라도 우창의 설명을 통해서 큰 깨달음을 얻을 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 당문약! 무엇이든 궁금한 것이 있으면 말씀하시지요.”

비록 사적으로 만나서는 편하게 말을 하더라도 강의할 때는 모두가 모인 자리임을 감안해서 높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해서 이렇게 말했고, 제자들도 그렇게 하는 의미를 잘 이해하고는 편안하게 받아들였다.

지난 시간에 말씀해 주신 식욕락(食慾樂)의 즐거움과 경계할 점에 대해서 감명받았어요. 그런데 식욕에 즐거울 락()자를 붙여놓으니까 느낌이 사뭇 좋아요. 이것도 살아가는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호호호~!”

당연합니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니 적절하게 즐긴다면 또한 삶의 행복이지 않겠습니까? 즐기는 것으로도 충분한 것을 왜 혐오(嫌惡)스러운 느낌조차 들어있는 욕망(慾望)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하하~!”

그럼 여쭙겠습니다. 요 며칠 문약(文若)은 잠을 잊어버렸어요. 어디로 갔는지 돌아오질 않아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말하는 것이 아직도 불면증(不眠症)을 겪으면서 힘들어하는 것으로 본 우창이 말했다.

피곤(疲困)한 사람에게 가야 할 길은 더욱 멀게 느껴지는 법이고, 허약(虛弱)한 사람에게 등에 진 짐은 더욱 무거워지기 마련이듯이, 잠을 이루지 못하는 밤은 길고도 지루할 따름이지요. 참 고생이 많습니다.”

정말로 너무나 힘들어요. 온종일 공부에 집중이 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요. 일찍이 잠이 이렇게나 중요한 것인 줄은 미처 몰랐어요. 처음에는 잠을 못 자서 고통스러웠으나 점점 생각하다가 보니 과연 잠이란 무엇인지가 궁금해졌어요. 그래서 스승님께 좀 여쭤봐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문약의 진지한 질문에 대중들도 공감이 되었는지 조용히 우창의 설명을 기다렸다.

우리가 말을 할 적에 무심코 잠이 온다고 합니다. 불면증(不眠症)이 생기면 또 잠이 안 온다고 합니다. 이러한 말을 생각해 보면 잠은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밖에 있다는 것으로 이해가 됩니다. 그렇습니까?”

맞아요. 잠이 안 와서 잘 수가 없으니까요.”

왜 이렇게 말을 하겠습니까? 잠은 밖에 있는 것입니까? 손님이 찾아오듯이 잠이 찾아오는 것이란 말입니까?”

당문약은 우창의 질문에 대해서 잠시 어리둥절하다가 다시 물었다.

그것은 생각해 보지 않았어요. 그런데 잠이 온다고는 하지만 실제로 잠이 밖에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요. 뭐가 잘못된 것일까요?”

또 다른 말로는 잠이 든다고도 합니다. 아기가 잠을 자지 않고 보채다가 잠자게 되면 그렇게 말하기도 하지요. 잠이 든다는 것은 잠이 안으로 들어간다는 의미가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잠이 들어갈 곳이 또 있다는 의미입니까? 잠이 밖에서 찾아와서 안으로 들어간다는 일련의 연결이 된 모습일까요?”

우창은 잠의 의미를 생각해 보려고 이렇게 잠에 대한 말을 찾아서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봤다. 무심코 당연한 것처럼 생각했던 잠이지만 객관화(客觀化)시켜서 생각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으로 여겨서이다. 당문약이 잠시 생각하더니 다시 말했다.

스승님, 말씀을 듣고 보니까 잠에 대한 표현이 다양하다는 것을 알겠네요. 잠이 오는 것이기도 하고 드는 것이기도 하다는 생각은 전혀 해보지 못했는데 오늘에야 그 의미를 알게 되지 싶어요. 설명해 주세요. 잠은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아니면 안에 있는 것일까요? 스승님의 말씀을 듣다가 보니 그것도 궁금하네요. 호호호~!”

잠은 수면(睡眠)이라고 합니다. 졸음 수()는 눈[]이 드리워[]지는 것이니 잠이 쏟아져서 눈꺼풀이 덮이는 것을 말합니다. 이때는 천하장사(天下壯士)라도 눈꺼풀을 이길 수가 없어서,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것이 되기도 합니다. 잠잘 면()은 눈[]이 머는[] 것이니 아무것도 볼 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 ()은 백성(百姓)을 나타내는 글자가 아닌가요?”

당문약이 깜짝 놀라서 묻자 우상이 답했다.

보통은 그렇게 통용(通用)합니다. 그러나 글자의 뿌리를 보면 면()은 노예(奴隷)의 한쪽 눈을 찔러서 볼 수가 없도록 한다는 뜻입니다. 특히 왼쪽 눈을 찔렀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완전히 두 눈을 쓸 수가 없으면 맹()이지만 한쪽 눈을 못 쓰게 한 것은 민()이 되는 것이지요. 그 이유는 도망을 가지 못하게 하려고 사용했던 모양입니다.”

어머나~! 참으로 잔인(殘忍)하네요. 어쩌면 그럴 수가 있어요?”

물론 아득한 옛날의 이야기입니다. 후에는 얼굴에 먹물을 넣어서 노예로 표시하기도 했으니 그것만으로도 많이 좋아진 것이었다고 하겠습니다.”

정말 몰랐어요. 그렇다면 면()이란 말은 눈이 멀어서 아무것도 볼 수가 없다는 것이니까 잠이 든 것으로 사용하는 것에는 문제가 없겠어요. 호호~!”

잠은 상황에 따라서 깊은 잠과 얕은 잠으로도 구분합니다. 깊은 잠은 숙면이라고 하고 얕은 잠은 선잠이라고 합니다. 잠을 자도 잔 것 같지 않을 때 선잠이라고도 하고 설잠이라고도 하지만 같은 뜻입니다.”

오호~! 잠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할 것이 많네요. 재미있어요. 호호호~!”

당문약에 재미있다는 듯이 깔깔대며 웃자 우창도 미소를 짓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 그렇다면 이제 잠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잠이 온다고 한다면 오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또 잠이 든다고 하면 잠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마도 말은 달라도 의미는 같을 것으로 봅니다. ‘장애물(障碍物)’이 있다는 것이지요.”

맞아요. 번뇌(煩惱)가 장애물이잖아요? 생각이 많으면 잠이 들지 못하니까요.”

잠들지 못하게 하는 것은 번뇌가 맞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어제의 일이 잠이 들어오지 못하게 가로막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로 인해서 겪는 고통은 이루 말로 할 수가 없다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또 새로운 번뇌가 추가됩니다. 이렇게 되어서 번뇌가 번뇌를 부르니 심신(心身)이 피폐(疲弊)해지는 것입니다. 기억력(記憶力)도 점점 떨어지게 되고 자기가 누구인지도 구분이 되지 않을 수도 있으니 숙면(熟眠)이란 참으로 중요한 것임을 생각하게 됩니다.”

우창의 말에 당문약이 공감된다는 듯이 말했다.

맞아요. 피폐해지는 것이 틀림없어요. 온종일 멍~하게 되어서 공부도 생각도 되지를 않으니까요.”

당문약의 말을 듣고 있던 춘매가 문득 손을 들고는 말했다.

스승님, 그렇다면 번뇌는 편관(偏官)인가요?”

춘매가 이렇게 말하자 초급과정의 제자를 제외하고는 모두 알아듣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공감되었다는 뜻이었다. 우창이 춘매를 보면서 말했다.

춘매가 말한 것이 핵심(核心)입니다. 명학(命學)에서 잠을 못 자게 하는 것을 십성(十星)으로 본다면 편관이 맞습니다. 그렇다면 잠은 무엇일까요?”

춘매가 잠시 생각하고는 말했다.

잠을 자지 못하게 극하는 것이 편관이라면 잠은 비견(比肩)이 되잖아요? 이야~ 이것은 생각지 못했던 대입이네요. 어떻게 이러한 공식이 나오나요?”

잠을 이루지 못하면 주체(主體)가 흔들립니다. 음식을 못 먹는 것은 주체가 더욱 생생해집니다. 그러나 잠을 자지 못하면 자기의 존재도 잃게 되는 것이니 이것은 비견이라고 대입해도 타당하지 않겠습니까?”

정말 놀라워요. 죄인을 잡아다가 자백하도록 하는 것 중에는 잠을 재우지 않는 것도 있다고 하는데 자존감을 무너지게 해서 버티지 못하고 숨기고 싶은 것조차도 모두 토설(吐說)하게 만든다는데 과연 일리가 있어요.”

춘매가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라서 이렇게 말하자 우창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빈속을 채우면 잠이 오게 됩니다. 이것은 굶으면 잠도 오지 않는다는 의미가 되기도 합니다. 먹는 것을 인성(印星)이라고 한다면 잠자는 것은 비겁(比劫)이라고 할 수도 있을 테니 인성이 토()라면 비겁은 금()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잠은 오롯이 자신을 위한 것이며 그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니니 이것도 비견(比肩)과 서로 통용(通用)이 된다고 하겠습니다.”

춘매가 이해되었다는 듯이 말하자 대중들이 여기저기에서 감탄하는 말이 들려왔다. 수면의 현상이 비견이라는 의미와 그것이 다시 오행의 금()과 연결되는 것에 대해서 대부분이 놀랐던 모양이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당문약이 말했다.

십성은 아직 배우지 못했으나 토생금(土生金)은 알아요. 밥을 먹으면 잠이 오는 것이 토생금의 이치라는 것은 오늘 처음 알았지만, 말씀을 들으면서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져요. 그런데 밥을 먹었는데도 잠이 오지 않는 것은 번뇌로 인해서 그렇다는 말씀이네요.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번뇌를 없애고 숙면을 얻을 수가 있을까요? 문약은 그게 가장 중요하거든요. 호호~!”

생각이 많아서 잠을 이루지 못한다면 생각하지 않으면 됩니다. 그러나 마음대로 되지 않아서 고통이 됩니다. 가장 손쉬운 방법은 번뇌의 실체를 주시(注視)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번뇌는 실체가 없음을 깨닫게 되지요. 이로부터 꿀잠이 쏟아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실체를 바라보면 됩니다.”

실체는 사랑하던 사람과 이별하게 되어서죠. 그로부터 오만가지의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서는 어느 사이에 실면(失眠)이 되었어요.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번뇌로부터 탈출(脫出)을 할 수가 있을까요?”

당문약의 이야기는 이미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다른 대중들은 자세히 몰랐다. 그러나 그것을 설명할 필요는 없어서 언급하지 않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사랑하던 사람과 이별하는 것이 인생입니다. 남녀 간에, 부모와 자식 간에 형제자매간에도 일어날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이러한 것은 오히려 해결하기가 쉽습니다. 그가 떠난 실체를 관조(觀照)하면 되니까요.”

쉽다는 말에 당문약의 눈이 커졌다.

스승님께서 쉽다고 하시는 말씀에 희망이 보여요. 어떻게 하면 되죠?”

우선 사랑하던 사람을 생각해 봅니다. 그 사람이 떠났다는 것은 나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는 나에게 가장 중요한 잠조차 버리면서 그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불균형(不均衡)이 아니겠습니까?”

그건 맞아요.”

정을 나눴던 과거(過去)를 생각하면 마음은 아프겠지만 상대방에게는 이미 과거가 버려졌는데 자신은 과거에 매달려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어리석은 처사가 아니겠습니까?”

옳은 말씀이네요. 혼자만 과거의 환영(幻影)에 매달려 있었어요.”

이미 번뇌는 사라졌습니다. 실체가 없는 것을 없애는 데는 한 생각만 바꾸면 되는 것이니까요. 오늘 밤부터는 깊고 깊은 잠으로 빠져들게 될 것입니다. 축하합니다.”

아니, 잠을 자지 않았는데도 머릿속이 개운해졌어요. 참 신기해요. 이제 잠을 잘 잘 수 있을 것 같아요. 호호~!”

실은 그보다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현실에서의 번뇌는 이렇게 해결을 볼 수라도 있습니다만 실체가 없는 것으로 인한 불면증은 어떻게 해볼 방법도 없으니까 말이지요.”

우창의 말에 당문약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

아니, 그런 것도 있나요?”

꿈입니다. 잠을 자도 잔 것 같지 않은 현상이 이어지게 되지요. 이것이야말로 진드기처럼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누구나 잠을 자면서 꿈을 꾸지 않나요? 그것이 이렇게나 심각한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어요. 오히려 꿈을 꾸고 나서는 그것을 풀이하고 길흉을 점치기도 하는 것이잖아요?”

그것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끈질기게 잠을 깊게 이루지 못하는 것이 큰 문제입니다. 그러한 것을 악몽(惡夢)이라고 하지요. 가위가 눌린다고도 합니다. 이러한 것이 반복된다면 이것은 불면증이 아니라 실면증으로 이어지는 것이고, 나중에는 환상(幻想)도 보이는 것입니다.”

우창은 이렇게 말하면서 어제 있었던 주응빈의 이야기를 들려 줬다. 모두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공감했다. 다만 핵범전에 대한 이야기는 생략했다.

이렇게 꿈으로 인해서 깊은 잠을 못 이루는 것은 어떻게 해볼 방법이 없지요. 그래서 번뇌로 인해서 잠을 이루지 못하면 편관(偏官)이라고 하고, 꿈으로 인해서 잠을 자도 잔 것 같지 않은 것은 정관(正官)이라고 하게 됩니다. 천간(天干)으로 논한다면 깊은 잠을 자는 것은 비견(比肩)이라고 한다면 꿈으로 인해서 숙면을 방해하는 것은 겁재(劫財)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것은 오랜 옛날에 얽혔던 인연이 될 수도 있고, 심지어 전생(前生)의 잔상(殘像)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우창의 말을 듣고 있던 당문약이 이해가 된다는 듯이 말했다.

스승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제가 잠을 이루지 못했던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네요. 이것은 제 마음대로 해볼 수가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악몽에 시달리는 것은 어떻게 해볼 수가 없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겠어요. 만약 그렇게 되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아마도 자력(自力)으로는 거의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래서 타력(他力)을 의지해야 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복약(服藥)하는 것이지요. 다만 근본적인 문제해결은 되지 못합니다. 왜냐면 그 원인이 신체에 있는 것이라고 할 수가 없기 때문이지요. 몸에 문제가 있지 않다면 약만으로 해결할 수가 없으니 이러한 것은 영적(靈的)인 관점에서 해결해야 합니다. 가장 좋은 것은 기도(祈禱)와 명상(瞑想)으로 업장(業障)을 녹이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겁재의 경쟁심은 자꾸만 엉겨 붙어서 부추기게 되니까요. 그래서 신()은 흑체(黑體)라고 합니다. 끝없이 괴롭히는 존재가 되기도 하니까요.”

우창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던 염재가 손을 들고 말했다.

스승님의 말씀에 공감이 됩니다. 그래서 기도와 명상을 편인(偏印)이라고 하는 것입니까? 편인(偏印)은 약()이 되고, 불보살(佛菩薩)이 되고 의()가 되어서 심신(心身)을 안정되게 하는 것이니 말입니다. 정말 오묘한 관계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렇습니다. 십성(十星)과 오행(五行)과 천간(天干)이 서로 관계를 맺고 있는 이치를 깨닫는 것이 명학(命學)의 여정(旅程)이지요. 하하하~!”

그렇다면 사주(四柱)에 비겁(比劫)이 없거나 약하면 양질(良質)의 잠을 이루지 못할 수도 있겠습니까?”

염재가 문득 생각이 난 듯이 묻자 우창이 답했다.

그야 단정할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비겁이 없더라도 번뇌가 없으면 잠을 못 잘 이유는 없는 까닭입니다. 다만 잠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에게서는 사주의 영향도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까지는 가능한 것으로 보겠습니다.”

잘 알겠습니다. 하나만으로 결과를 동일시(同一視)하는 것은 안 된다는 말씀으로 이해하겠습니다.”

염재가 이렇게 말하자 당문약이 다시 물었다.

그런데 얼마나 자는 것이 적당할까요? 때로는 공부해야 하는데 잠이 너무 쏟아져서 오히려 잠이 원망스러울 때도 있거든요.”

그건 사람마다 다르다고 하겠습니다. 다만 영아(嬰兒)는 하루 대부분을 잠자는 데에 사용합니다. 먹는 시간 말고는 잠으로 시간을 보내니까요. 그렇게 잠을 자면서 주체가 점점 성장하는 것이지요. 그러다가 성인이 되면 대략 세 시진(時辰:6시간) 전후(前後)가 필요합니다. 육체노동을 하는 사람은 네 시진이 필요하고, 정신노동을 하는 사람은 두 시진으로도 가능하나 대부분은 세 시진이면 된다고 하겠습니다. 이렇게 많은 시간을 잠자는 것에 쓴다는 것은 수면의 의미가 크다는 뜻이 되겠습니다.”

예전에 들었는데 하루 온종일을 잠자지 않고 앉아서 수행을 하는 법도 있다고 들었는데요?”

그것은 아마도 부작용이 심각한 수행법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수면(睡眠)을 수마(睡魔)라고 합니다. 잠을 마귀(魔鬼)로 생각하니 참 재미있습니다. 하하~!”

그런가요? 왜 그런 수행을 하나요?”

탐욕이지요.”

? 수행하는 사람들은 모두 보통 사람과는 다르지 않나요?”

당문약은 우창의 말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이 다시 물었다. 그러자 우창이 미소를 짓고는 설명했다.

도인의 삶은 어떻다고 생각하십니까?”

? 도인이라면..... 이슬을 먹고 안개를 타고 다니는 사람이잖아요?”

당문약이 이렇게 말하자 몇몇 사람들이 웃는 소리가 들렸다. 웃는 사람들은 이미 도인의 뜻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우창이 잠시 웃고는 말했다.

도인은 잠이 오면 잠을 잡니다. 배가 고프면 음식을 먹습니다. 그 마음에 원하는 바가 없기에 몸이 원하는 것을 거부하지도 않습니다.”

그것은 범인(凡人)과 다를 바가 없잖아요?”

맞습니다. 그래서 도인이 범인 속에 섞여서 살아가는 것이지요. 하하하~!”

그건 이해가 되지 않아요. 여하튼 잠을 자지 않고 수행하는 것이 왜 탐욕인지가 궁금해요. 설명해 주세요.”

그들이 원하는 것은 일상적이지 않은 것을 구하고자 하는 까닭입니다. 배가 고프면 밥을 주는 것이 아니라 굶깁니다. 잠이 오면 잠을 자는 것이 아니라 잠을 떨치기 위해서 온갖 방법을 강구(講究)합니다. 몸을 매달기도 하고, 물속에 담그기도 하지요. 그 결과로 대부분은 장애(障碍)를 얻게 됩니다. 결국은 자연을 어긴 죄보를 받게 되는 셈이지요.”

그렇게 말씀하시니 더욱 혼란스러워요. 수행자들은 원래 지혜로운 사람들이 아닌가요?”

그야 지혜로운 사람도 있고, 어리석은 사람도 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자연의 이치를 관()하고 자연의 질서를 따릅니다. 그래서 겨울에는 두꺼운 옷을 입고 여름에는 얇은 옷을 입지요. 어리석은 사람은 남들과 같이 수행하면 같은 사람밖에 되지 못한다는 생각으로 추운 겨울에는 헐벗고 추위와 싸우다가 계절이 바뀌어서 여름이 되면 오히려 두껍게 껴입기도 합니다. 그렇게 하고서는 자기 합리화를 시키지요. 고행(苦行)이라고 말이지요. 하하~!”

, 맞아요~! 고행이라고 했어요. 그런 사람들은 위대하고 우리와는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스승님의 말씀으로 봐서는 그게 아니었나 봐요?”

당문약의 소박한 생각을 들으면서 우창이 미소를 짓고는 물었다.

어린 아기는 부처님과 닮았다고 하는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 들어봤을 뿐만 아니라 영아(嬰兒)를 보면 그것이 느껴져요.”

어린 아기는 오는 잠을 자지 않고 고픈 배를 채우지 않을까요?”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당문약도 느끼는 것이 있었다.

아하~! 도인이 그렇다는 말씀이잖아요? 정말 쉽게 가르쳐 주시네요. 이제 확연히 깨달았어요. 그러니까 고행의 목적은 올바른 정신이 아니거나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하는 것이란 말이네요. 맞죠?”

더 깊은 이치가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우창의 생각이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하하하~!”

조금 전까지는 의아했는데 어린아이에 대한 말씀에서 확연히 깨달았어요. 번뇌와 망상이 없으면 그것이 도인이라는 것을요. 이렇게 쉬운 것이었네요.”

말없이 앉아있는 당문약은 여전히 그 깨달음의 소용돌이에 잠겨있는 듯했다. 잠시 기다렸다가 우창이 말을 이었다.

몸을 적대시(敵對視)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몸과 싸우고 있는 것이지요. 그 결과는 백전백패(百戰百敗)입니다. 자신이 부리고 있는 심부름꾼과 싸우는 꼴이니 말이지요. 예전에 어느 여승(女僧)이 있었는데 수마를 항복 받아서 잠을 자지 않는다고 했는데 그는 항상 무기력한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당연하지요. 푹 자고 나서 생동감이 넘치는 삶을 살아가는 것과 비교하면 바로 알 수가 있을테니 말입니다. 하하하~!”

우창의 설명을 듣고 당문약은 깨닫는 바가 있었다. 그것을 본 우창이 다시 말을 이었다.

그래서 수마(睡魔)가 아니라 수면락(睡眠樂)이 되는 것이고, 식마(食魔)가 아니라 식도락(食道樂)이지요. 다만 안타깝게도 정신적으로 어떤 왜곡(歪曲)이 있어서 세상의 이치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서 악마가 만들어 놓은 덫으로 여기고 그것과 싸우는 것은 흡사 자신의 그림자와 싸우는 투사(鬪士)와 같다고 하겠습니다. 도인이 이러한 모습을 본다면 웃지 않고 배기겠습니까? 하하하~!”

스승님의 말씀이 귀에 쏙쏙 들어와요. 신기하네요. 호호호~!”

당문약의 말에 우창은 대중을 둘러보면서 말했다.

다만 먹는 즐거움에 빠져서 과식(過食)하게 되면 비로소 식욕(食慾)의 늪에 빠지는 것이고, 이것을 사주로 본다면 인성과다(印星過多)의 폐해(弊害)가 발생하는 셈입니다. 또 지나치게 잠에 빠져들어서 하루를 온전히 잠 속에서 살아간다면 이것은 비겁태왕(比劫太旺)의 장애(障碍)를 만난 셈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무엇이든 그 기준은 조화(調和)와 균형(均衡)에 있는 줄만 알면 되는 것입니다. 적당(的當)히 먹고, 적당(的當)히 자면 되는 것이지요. 이것이 수면(睡眠)에 대한 우창의 생각입니다. 혹 다른 의견이 있으시면 말씀하셔도 됩니다.”

이렇게 말을 마치고서 다시 대중을 둘러보자 원춘이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손을 들고는 말했다.

스승님의 말씀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수행을 위해서는 반드시 몸이 필요하므로 몸이 원하는 것을 채워줘야 하는데, 다만 지나치지 않도록 경계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말씀입니다. 꼭 필요한 음식은 꿀맛이고, 꼭 필요한 잠은 꿀잠이 되겠으니 그야말로 과유불급(過猶不及)에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다고 하겠습니다. 지나치게 되면 부족한 것만 못하기 때문에 오히려 조금 적게 먹고 조금 적게 잠을 자는 것이 낫지만 그것이 이미 균형을 이루고 있다면 먹고 싶은 만큼 먹고 자고 싶은 만큼 자면 된다는 의미가 아니겠습니까?”

맞습니다. 원춘이 잘 이해하셨습니다. 모두 이와 같이만 생각한다면 공부는 일취월장(日就月將)할 것이니 하루가 기쁨에 가득할 것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이고 날마다 좋은 날이 아니겠습니까? 이 정도면 수면(睡眠)에 대해서는 잘 이해하신 것으로 봐도 되지 싶습니다.”

우창의 말에 모두 합장을 하고 말했다.

잘 알았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소리를 듣자 우창도 비로소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합장하고는 이야기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