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4] 제38장. 소주오행원/ 6.오욕락(五慾樂)

작성일
2023-08-10 06:36
조회
1148

[464] 38. 소주오행원(蘇州五行院)

 

6. 오욕락(五慾樂)

========================

 

오행원의 제자들이 연일(連日) 열심히 정진하면서 우창이 강의하는 시간만큼은 모두가 손꼽아 기다리는 시간이 되었다. 그리고 다시 또 정해진 그날이 또 다가왔다. 유시(酉時)가 되자 춘매가 저녁 먹은 것을 치우고 우창의 방으로 와서 말했다.

스승님, 오늘은 또 무슨 이야기를 해주시게 될지 궁금해요. 호호호~!”

, 이제부터 춘매는 우창을 걱정해서 미리 위로해 주러 온 건가? 난 괜찮은데 춘매는 지난 천계와의 일로 마음이 아팠었나? 하하~!”

맞아요. 스승님께서 그렇게나 열심히 알아듣도록 이야기하는데도 결국은 떠나갔어요. 춘매도 마음이 아픈데 스승님은 오죽하시랴 싶어서 안타까웠는데 그것조차도 바로 알아보셨어요? 호호호~!”

그런 것에 마음 쓰지 않아도 되네. 난 벌써 잊었는데 춘매는 마음에 담아뒀단 말인가? 하하하~!”

다행이에요. 어서 준비하세요. 곧 술시에요.”

그래 알았네. 같이 가야지.”

싫어요, 저는 저대로 갈 거예요. 호호호~!”

혹시라도 다른 제자들이 부러워할까 봐서 춘매는 혼자서 나갔다. 그것을 이해하고 말리지 않은 우창이 준비하고 강당으로 갔을 적에는 이미 모두 자리에 앉아서 우창이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창이 강단의 자리에 앉자마자 군엄이 일어나서 말했다.

실은 지난 시간에 재물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오욕락에 대해서 언급하셨는데 시간이 부족해서 더 듣지 못한 것이 무척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저희끼리 의논한 결과로 오늘은 그것에 대해서 말씀을 청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니 스승님께서 이 부분에 대해서 말씀을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군엄의 말을 듣고서 우창이 말했다.

왜 그것이 듣고 싶었던가?”

처음에는 모르는 것을 알게 되는 것으로 지상(至上)의 기쁨으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스승님의 말씀을 듣고서 생각해 보니 공부하더라도 어떤 마음가짐으로 하느냐에 따라서 방향이 달라질 수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령 수명을 알 수가 없다는 것을 알고 나서는 수명에 대한 궁금증의 힘을 생극의 이치에 몰입할 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로 미뤄서 생각해 보건대, 인간의 오욕락(五慾樂)을 스승님의 관점으로 해석한다면 또 어떤 가르침을 얻게 될 것인지 궁금했습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렇게 말을 마친 군엄이 자리에 앉았다. 다른 제자들도 모두 합장을 한 다음에 조용히 앉아서 우창이 말해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창이 대중을 둘러본 다음에 물었다.

오욕(五慾)이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아십니까?”

우창이 이야기의 방향을 잡기 위해서 먼저 이렇게 묻자 처음에 질문했던 군엄이 말했다.

그것은 불가에서 말하는 것으로 식욕(食慾), 수면욕(睡眠慾), 색욕(色慾), 물욕(物慾), 권력욕(權力慾)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중에 물욕은 재물욕(財物慾)이라고도 하고 권력욕은 명예욕(名譽慾)이라고도 하지만 그 근원은 같은 것으로 보면 되겠습니다. 지난 시간에 토론했던 것은 그중에서도 물욕에 해당한다고 보겠습니다. 인간에게는 기본적으로 있는 근본적인 욕망이므로 이것에 대해서 선악을 논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오행가(五行家)의 관점으로 본다면 생극(生剋)의 그 중간에 머물러서 바라본다면 좋다고 하겠습니다.”

이렇게 말하고는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대중은 조용히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래서 이 다섯 가지를 오욕락(五慾樂)이라고 합니다. ()은 무한히 즐겁고 누구나 바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인간의 삶에서 빠트리지 못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다만 무엇이든 그렇듯이 과유불급(過猶不及)인지라 항상 고인이 경계하는 것은 지나쳐서 그곳에 빠지지 말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도가(道家)의 노장(老莊)은 기본적인 것을 즐김으로 도락(道樂)이라고 하여 만족했는가 하면 불가(佛家)의 석자(釋子)는 아예 악업(惡業)의 근원지(根源地)이므로 잘라버리고 한 물건도 소유하지 말라고조차 합니다. 그만큼 오욕의 힘은 막강(莫强)하다고 하겠습니다.”

우창의 말에 군엄이 다시 합장하고 물었다.

잘 알겠습니다. 스승님. 그런데 오욕을 탐하는 것은 인간만 그렇습니까? 아니면 자연의 만물도 또한 그러한 것입니까?”

무릇 생명이 있는 존재라면 모두 같습니다. 식물은 모르겠으나 동물은 모두가 같은 것으로 봐야 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생명이 붙어있는 동물이라고 한다면 이 오욕락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습니다.”

우창의 말에 군엄이 다시 물었다.

가령 개들은 명예욕이 있겠습니까?”

그렇지 않겠습니까? 두 마리 이상이 모이면 지휘자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지휘자가 되려고 물어뜯고 싸우는 것을 양보하지 않는 것을 보면서 그것이 바로 권력욕이고 인간적으로 말해서 명예욕(名譽慾)이라고 할 것입니다.”

! 맞습니다. 이해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식욕(食慾)의 정도(正道)를 말씀해 주십시오.”

식욕의 양극단(兩極端)을 생각해 보겠습니까?”

우창이 이렇게 되묻자, 군엄이 잠시 생각하고는 말했다.

식욕의 최상(最上)은 고량진미(膏粱珍味)로 배를 채우는 것이고, 최하(最下)는 굶주림을 해결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그 중간은 어떤 상황으로 이해를 하면 되겠습니까?”

음식(飮食)은 호흡하는 것과 먹고 마시는 것을 포함합니다. 그래서 진수성찬(珍羞盛饌)이 차려졌더라도 악취가 난다면 먹을 맛이 나겠습니까? 그래서 코로도 먹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물론 코로 먹는 것이 향취(香臭)만은 아닙니다. 맑은 공기와 혼탁한 공기도 영향을 미칩니다. 그리고 이것은 생존에 있어서 두말할 나위도 없다고 하겠습니다.”

우창의 설명을 듣고 있던 군엄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

아니, 스승님. 어떻게 그런 관점으로 음식을 바라보셨습니까? 군엄이 생각한 식욕은 협소한 의미에서 물과 밥이었는데 코도 먹는다는 것은 미처 생각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맑은 공기와 탁한 공기에 따라서도 생존의 질이 달라지는 것임을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것은 오행으로는 어떤 영역으로 보면 되겠습니까?”

오호~! 군엄이 핵심(核心)을 잘 짚고 있습니다. 모든 것은 오행으로 대입하면 정리하기가 좋은데, 다행히 욕망(慾望)도 다섯 가지가 되다 보니 오행에 대입해서 생각해 봐도 되지 않겠습니까? 하하하~!”

맞습니다. 무엇이든 다섯만 보면 오행으로 대입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렇게 공부하는 것이 가장 잘하는 것이라고 하게 됩니다. 물론 다섯이라고 모두가 오행에 부합하지는 않을 수도 있습니다. 다만 오욕(五慾)과 오행(五行)은 서로 연관이 깊을 것으로 봐서 이것에 대해서도 살펴보면서 토론해 봅시다. 음식을 먹는 것은 오행으로 대입하면 토()에 해당합니다.”

고맙습니다. 또 하나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나머지의 욕망에 대해서도 오행으로 대입해서 궁리해 보겠습니다. 그런데 식욕을 토()로 대입하게 되는 까닭이 궁금합니다.”

군엄은 이미 교양(敎養)이 상당했다. 어떻게 질문하는 것이 대답하는 우창도 간결하게 말할 수가 있을 것인지도 생각하면서 묻고 있었기 때문이었고, 이야기를 듣는 제자들의 머릿속이 혼란스럽지 않기 때문에 이야기의 흐름만 따라가면 되었다.

식욕(食慾)을 토()라고 생각한 것은 땅이 삶의 근본이기 때문입니다. 토는 토양(土壤)이고 토양은 모든 생명체가 살아가는 것에서 빠질 수가 없는 근본이므로 토로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그리고 땅은 음양(陰陽)의 균형을 이루고 있기도 하니 토()의 글자에서 음()과 양()이 땅[]위에 펼쳐져 있으니 음식이야말로 생존함에 대해서 가장 소중하고도 중요한 존재라고 보는 까닭입니다. 결국은 땅이 만들어 준 음식으로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기도 하지 않습니까?”

우창의 설명을 듣고서 생각하던 군엄이 말했다.

과연 스승님의 통찰력(統察力)은 놀랍습니다. 애욕(愛慾)도 수면욕(睡眠慾)도 재물(財物)과 명예(名譽)도 모두가 음식을 배불리 먹고 난 다음에 비롯되는 것임을 이제 명료하게 깨달았습니다. 혹 못 알아들으시는 도반도 계시겠지만 이것은 십성(十星)에서 인성(印星)의 영역(領域)으로 봐도 되지 않을까요?”

당연합니다. 인생아(印生我)로 인성(印星)의 기운을 받아서 내 육신(肉身)이 존재하는 까닭입니다. 그리고 아울러서 정신적으로도 배움을 통해서 세상을 살아갈 수가 있으니 마찬가지로 심신(心身)의 관점에서도 타당합니다.”

과연 의미가 심오(深奧)합니다. 식욕(食慾)이 없으면 삶의 의욕도 없는 것이라고 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에는 음양이 있으니 식욕의 음적(陰的)인 면과 양적(陽的)인 면을 생각해 볼 수가 있겠습니다. 이것은 어떻게 사유하면 되겠습니까?”

군엄이 정리 삼아서 말하자 우창도 그렇게 되물었다.

군엄이 생각하는 식욕에 대한 음양을 먼저 들어보겠습니다.”

, 고맙습니다. 스승님께서 말할 기회를 주시니 이해를 한 만큼의 설명드려 보도록 하겠습니다.”

군엄이 이렇게 말하고는 잠시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에 다른 제자들도 차를 한 모금 마시면서 이야기를 들을 준비를 했다. 잠시 후, 군엄이 생각을 정리하고서 말했다.

제자의 소견으로는 식욕(食慾)의 긍정적(肯定的)인 면은 생존(生存)을 유지(維持)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음식을 섭취하지 않으면 생명을 지킬 수가 없는 까닭이니 이것이야말로 삼척동자라도 모두 알고 있는 것이고 동물이나 식물이나 모두 같은 것으로 봐도 되겠습니다. 문득 생각해 보니까 동물도 음식을 먹지만 식물도 음식을 먹는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았습니다. 왜냐면 식물도 공기가 있어야 하고 물과 영양분도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식물도 공기가 있으니 마시고[], 물이 있으니 먹는[] 까닭입니다. 이것은 모든 생명체는 삶을 지탱하기 위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맞는 설명입니다. 그렇다면 음적(陰的)인 면은 어떻습니까?”

항상 지나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런데 견물생심(見物生心)이라고 했듯이 맛있는 음식을 보면 배가 불러도 또 먹고 싶은 마음에 이끌려서 과식(過食)하게 됩니다. 그 순간부터는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은 모두 독()이 됩니다. 공기는 아무리 더 마시려고 해도 한계가 있어서 욕심을 부릴 수가 없으나 음식은 상황에 따라서 욕심을 부리기도 합니다. 특히 위()는 신축성(伸縮成)이 있어서 늘어나는 것도 중요한 작용을 합니다. 자꾸 먹으면 위도 따라서 커지니까 말입니다. 그래서 소비하고 남는 영양소는 몸에 쌓이게 되어서 비만(肥滿)하게 될 것이고 비만은 만병(萬病)의 근원(根源)이 됩니다. 문제는 이러한 것을 모두 알고 있어도 순간적인 충동(衝動)으로 자제(自制)가 되지 못하니 이것은 음식의 부정적(否定的)인 면이라고 하겠습니다.”

우창은 군엄의 설명이 조리정연(條理整然)하여 매우 만족했다. 그리고 쉬운 말을 사용해서 설명하는 바람에 다른 제자들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전혀 없었다. 가만히 앉아서 듣는 것만으로도 실타래에서 실이 풀려나듯이 차근차근 이해되었다. 우창이 다시 물었다.

매우 논리적으로 잘 설명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만 식욕의 좋은 면을 취하고 나쁜 면을 벗어날 수가 있겠습니까?”

여기에 대해서는 지난번에 수명(壽命)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중요한 핵심(核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스스로 타고난 식량(食糧)7할만 먹는 것이라고 하셨잖습니까? 그 말씀을 들은 후로는 항상 밥그릇에서 밥을 두어 숟가락을 덜어내고서 먹었는데 앉아서 글을 읽어도 편안하고 기운이 빠지는 것도 못 느꼈으며 오히려 충만감(充滿感)이 뿌듯하게 차올랐습니다.”

과연 군엄은 배운 것을 몸소 실행하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학습(學習)을 이행하고 있다는 말이니 그렇게만 한다면 수명을 깎아 먹을 일은 없다고 하겠습니다. 잘하셨습니다.”

그런데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음식만 먹어도 건강이 유지되는 것인지를 생각해 봤습니다. 형편이 좋은 사람들은 밥만으로는 안 된다고 하면서 인삼(人蔘)이나 녹용(鹿茸)을 넣어서 보약(補藥)을 먹기도 합니다. 이러한 것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몸이 허약해서 식욕이 없다면 인삼과 녹용은 보약이 맞습니다. 아픈 곳이 있다면 치료부터 하고서 음식을 먹어야지요. 그러나 밥만 먹어도 활동하기에 아무런 불편함이 없다면 인삼과 녹용이 전혀 필요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지나치게 되어 식욕을 주체하지 못하고 억제하는데 많은 고통이 따를 수도 있습니다. 더구나 식욕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성욕(性慾)에도 부작용(副作用)을 일으킬 수가 있다는 것도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군엄이 깜짝 놀라면서 말했다.

아하~! 그것까지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좋은 면만 생각한 나머지 보약으로 인해서 부작용이 생긴다는 것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습니다. 오늘 또 새로운 것을 깨달았습니다. 모든 것은 좋기만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입니다.”

당연합니다. 그래서 양날의 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몸에 좋은 인삼(人蔘)도 지나치면 독이 되고, 몸에 해로운 비상(砒霜)도 질환에 따라서는 약이 되는 이치입니다.”

군엄이 다시 생각하다가는 물었다.

예전에 듣기로 사람이 태어나면서 자신이 평생 먹을 것이 정해져 있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맞는 말이겠습니까?”

그것이야말로 수명을 알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야기가 아니겠습니까? 오래 살면 많이 먹을 것이고, 요절하면 조금 먹을 테니까 말입니다. 즉 그렇게 말하기로 들면 수명이 정해져 있다는 것과 같은 말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수명은 상황에 따라서 항상 변수(變數)가 있으므로 그렇게 말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말입니다.”

그런데도 왜 그런 말이 생겼을까요? 실로 군엄은 이것이 궁금한 것입니다.”

군엄의 말에 우창도 바로 답하는 것을 잠시 멈추고 잠시 생각해 봤다. 아마도 음식을 목숨처럼 여겨서 낭비하지 말라는 의미가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자 비로소 생각을 말했다.

우창이 생각하기에 그런 말이 나온 이유는 아마도 음식을 목숨처럼 여겨서 낭비하지 말라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어느 화상에게 들었는데 불가에서는 공양주(供養主:밥을 하는 담당자)가 쌀을 씻다가 쌀을 한 톨 흘리게 되면 그것이 다 썩어서 흙이 될 때까지 지장보살이 옆에서 슬퍼한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서 괜한 말이라는 생각은 했지만, 왜 그런 말이 나왔는지는 이해를 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시주(施主)의 공덕을 소중하게 여기라는 의미에서 나온 말이라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우창의 풀이를 들은 군엄이 말했다.

그건 참으로 타당하다고 여겨집니다. 과연 목숨을 지켜주는 소중한 음식인데 소홀하게 대하고 아무렇게나 버린다면 안 되겠습니다. 그런데 먹는 것으로 내기를 하기도 합니다. 가령 달걀을 많이 먹기를 한다거나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이 이기는 내기도 하는데 그들이야말로 과보(果報)를 받지 싶습니다.”

당연하지요. 너무 먹어서 숨도 쉴 수가 없이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음식 지옥이 될 것이고, 먹을 것이 없어서 굶는 사람에게도 예의가 아니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모쪼록 먹는 것으로 장난하면 안 된다는 것은 지혜로운 사람은 생각도 하지 않습니다.”

정말 이치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는 말씀이십니다. 명심하겠습니다.”

군엄이 이해가 되었다는 듯이 말하자 우창이 다시 설명을 이었다.

만약에 양껏 먹고 또 먹기를 끝없이 반복한다면 그 사람의 몸은 균형을 잃고 병마가 엄습(掩襲)하게 되겠지요. 저항력(抵抗力)도 없어지고, 면역력(免疫力)도 사라질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병이 들어도 치료하지 못하고 그렇게 죽어갈 것이니 이러한 경우를 당한다면 많이 먹어서 더 먹을 것이 없게 되어서 죽게 된다고 말하는 것도 이치에 타당하지 않겠습니까?”

우창이 설명하는 것을 들으면서 제자들도 더러는 잊지 않으려고 기록하기도 했다. 그래서 천천히 말을 했다.

이렇게 음식(飮食)에 대해서 생각해 봤습니다. 원래는 불가에서 나온 오욕(五慾)이라서 대체로 부정적인 의미로 설명하고 화상들도 그렇게 말하기에 오해도 할 수가 있습니다만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오행을 연구하는 학자는 항상 치우치지 않는 것에서 중화(中和)의 균형을 찾아가기 때문입니다. 알면서도 본능에 이끌려서 제어(制御)되지 않는다면 또한 어쩌는 수가 없습니다.”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군엄이 다시 정리 삼아 물었다.

맞습니다. 그렇다면 양적(量的)인 면에 대해서는 7할을 먹는 것이 좋다고 알면 되겠습니다만, 무엇을 먹어야 할지도 생각해 보면, 불가의 화상들은 채식(菜食)만으로도 건강을 유지하는 것에 반해서 속세의 사람들은 풀만 먹으면 일을 할 수가 없다고 하니 이러한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이해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그것 또한 생각할 나름입니다. 코끼리는 풀만 먹고서도 힘이 센 동물이 되었고, 고양이는 고기를 먹어도 힘이 세다고는 하지 않으니 말이지요. 하하~!”

, 그렇습니다. 초식동물(草食動物)도 있고, 육식동물(肉食動物)도 있으니 저마다의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그대로 살면 되는 것이겠습니까? 그렇다면 인간은 잡식(雜食)이라고 본다면 때론 육류도 먹고 또 때로는 초류(草類)도 먹으면서 살아가면 되는 것입니까?”

아마도 그게 맞는다고 봅니다. 다만 환경에 따라서 초식만을 해야 한다면 또 그에 맞춰서 육류를 대신해서 콩과 깨와 같은 식품으로 대체할 수도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저마다 살아갈 방법은 있기 마련입니다. 오히려 과식하지 않을 방법이기도 하므로 또한 장점도 많다고 봅니다.”

그렇겠습니다. 이렇게 말씀을 듣고 생각하는 과정에서 식욕(食慾)에 대한 정의(定義)를 명료(明瞭)하게 깨달은 것 같습니다. 시간도 많이 흘렀으니 오늘은 이 정도로 하고 다음 기회에 또 이어서 공부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렇게 말을 한 군엄이 대중을 향해서 물었다.

혹 도반 중에서 스승님께 여쭐 말씀이 있으면 하셔도 좋습니다.”

그 사이에 우창은 쉬면서 혹 빠진 것이 없는지 생각해 봤다. 그러다가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어서 말했다.

아 참, 만약에 몸에서 이상(異常)이 생기면 식욕이 없어집니다. 이런 때에도 강박관념(强迫觀念)으로 인해서 음식을 먹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어머니는 무엇이든 먹이려고 하지요. 다만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됩니다. 장기간을 그렇게 한다면 의원의 진료를 받아야 할 것이지만 일시적인 것으로 2~3일간 먹지 않는다고 해도 큰일이 생기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입맛이 없음에도 음식을 먹음으로 해서 신체의 이상이 치료되는 것을 방해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개를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몸에 이상이 느껴지면 개는 음식을 먹지 않습니다. 그렇게 굶으면 몸에서 열이 나면서 나쁜 독소(毒素)들을 태워서 없애고 몸을 정화(淨化)시킵니다. 그런데 음식을 먹게 되면 그것을 소화 시켜야 하므로 이중으로 부담(負擔)이 되어서 회복하는 시간이 오래 걸리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식욕을 항상 점검해야 합니다.”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군엄도 생각났다는 듯이 얼른 말했다.

, 들어봤습니다. 그것은 흡사 유가(瑜伽:요가)를 행하는 수행자들이 몸을 정화하기 위해서 7일이나 21일을 단식(斷食)하면서 물만 먹는 것도 일맥상통(一脈相通)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물론 특별한 목적을 위해서 곡기(穀氣)를 끊는 것은 모를 일이거니와 몸이 원하지 않을 적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고 기다려 주는 것도 알아야 한다는 것이 중요하겠습니다.”

군엄의 말을 듣고서 우창이 다시 말했다.

이런 말도 있습니다. ‘어제 먹은 것이 오늘의 그대니라라는 말이지요. 오늘의 몸은 오늘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어제로부터 이어져 온 것이고 어제 먹은 음식에 의해서 자연적으로 결정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조차도 인과법(因果法)이라는 것이 참 놀랍지 않습니까? 오늘 내가 음식을 먹으면서 이것이 내일의 내가 된다는 것을 안다면 함부로 혀끝의 미각(味覺)을 위해서 맛있는 음식을 찾기만 할 것인지는 자명(自明)하다고 하겠습니다.”

, 군엄도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먹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 이보다 더 명쾌한 말이 없겠습니다.

군엄이 우창의 말에 공감하면서 말하자 우창도 이에 답했다.

아마도 이런 정도라면 더 언급하지 않더라도 모두 이해가 되셨으리라고 봅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이 정도로 마무리하겠습니다. 편히 쉬시고 또 즐거운 면학(勉學)의 시간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그러자 대중들도 모두 일어나서는 합장하고 말했다.

고맙습니다. 스승님~!”

강의를 마치고 우창이 방으로 돌아가자 자원과 춘매가 따라왔다.

싸부, 춘매가 수정과를 만들었어요. 말씀도 많이 하셨는데 목이 마르지 싶다기에 같이 왔죠. 호호호~!”

, 그랬구나. 고맙네. 그렇지 않아도 목이 말랐어. 하하~!”

춘매와 자원이 같이 앉아서 음료를 마시면서 우창이 말했다.

식구들이 많아서 챙기느라고 힘든 것은 없어?”

무슨 어려움이 있겠어요. 모두 얼마나 열심히 봉사하는데요. 오히려 너무 편해서 탈이라면 탈이에요. 호호~!”

춘매의 말을 듣고는 자원도 한마디 했다.

모두 열성이에요. 먼저 떠난 천계를 제외하고는 모두 열심히 공부하려고 노력하는 것을 보면서 흐뭇해요. 역시 싸부는 제자 복이 많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장면이기도 하고요. 호호~!”

나야 자원과 춘매가 있다는 것만 봐도 이미 복이 넘치는 줄이야 알고 있지만 고맙게도 함께 애써주니 또한 감사할 따름이네. 더욱 잘 가르쳐서 모두 실망하지 않고 기쁨으로 가득한 오행 놀이가 되기만 바랄 따름이지. 하하~!”

이렇게 한담을 나누고는 돌아갔다. 우창도 가만히 자리에 누워서 생각해 보니까 이렇게 시끌벅적한 채로 보내는 나날들도 좋았다. 이 자리에 오기까지 많은 사람과의 인연들도 주마등(走馬燈)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중에서도 혜암(慧岩)과 도락(道樂)의 모습이 오늘따라 더욱 그리웠다. 아무리 사소한 것을 물어도 최선을 다해서 답을 해주던 모습이 떠올랐다. 자신도 항상 그러한 모습으로 존재하기를 생각하는 계기도 되었는데 언제 만날 시간이 되면 또 뵙겠거니 하면서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