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9] 제38장. 소주오행원/ 1.다시 한 자리에

작성일
2023-07-15 0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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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9] 38. 소주오행원(蘇州五行院)

 

1. 다시 한 자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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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는 점점 추워지고 있었지만 소주(蘇州)의 오행원에는 훈기(薰氣)가 가득했다. 염재가 곡부로 떠난 지 한 달이 지나자 곡부의 오행원에서 공부하던 제자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저마다 자신의 방법으로 소주까지 잘 찾아왔다. 고월(古越)이야 원래 떠돌이 기질이 있어서 유람 삼아서 두 달이나 지나서야 도착했고, 염재는 스스로 마련한 마차에 수경(水鏡), 채운(彩雲), 군엄(君嚴)을 대동하고 거의 막바지에 도착했다. 다시 모인 제자들의 수는 50명이 넘었다. 멀리 이동하면 제자들도 줄어들 것으로 생각했는데 모두 공부의 열정이 식지 않아서인지 대부분이 소주로 찾아온 모양이었다. 매서운 바람이 눈보라와 함께 휘날리는 저녁 무렵에 도착한 고월(古越)을 본 우창이 반겨 맞았다.

오호~! 불원천리(不遠千里)하고 찾아준 벗이구나. 잘 오셨네. 하하하~!”

우창도 여전하시군. 나도 예전에 소주에서 좀 살고 싶었는데 잘 되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길을 나섰지. 곡부에서도 재미있게 잘 지냈는데 소주는 그에 비하면 극락세계라고 해야 하겠네. 하하하~!”

두 사람은 서재에서 밀린 이야기를 나누느라고 시간이 가는 것도 잊고 있었다. 그러다가 자원이 들어와서야 이야기를 멈췄다.

오랜만에 만나셨으니 할 말이 많으시죠? 이렇게 앉고 보니까 노산에서 공부하던 시절이 까마득하게 느껴지면서도 어제의 일처럼 생생하게 생각이 되기도 하네요. 기억은 마법을 부리는가 봐요. 호호호~!”

고월이 자원을 보자 반가워서 말했다.

자원은 소주에서 보니 더욱 아름답구나. 며칠을 자원과 춘매를 보지 못했더니 어쩐지 오행원이 텅 빈 것만 같아서 허전했거든.”

엄머! 정말요? 호호호~!”

아마 모르긴 해도 모든 제자도 다 그랬을걸? 카랑카랑한 자원의 음성이 끊어지고 없으면 적막해 진단 말일세. 하하~!”

고마워요. 항상 아껴주시는 마음에 감동이에요. 그런데 이번에는 절대로 달아나지 못하시게 족쇄(足鎖)를 하나 채워드리고 싶은데 허락하셔야 해요.”

? 내게? 무슨 일을 시키려고?”

오행원의 식구들이 이렇게 모였으니 가르치는 것에도 질서가 필요하겠어요. 그래서 제자들을 상중하(上中下)로 나눠서 지도하려고요. 그런데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초급을 고월싸부가 맡아주셔야 하겠어요.”

그래? 일이 있다니 나도 눈치가 보이지 않겠구나. 하하~!”

자원도 흔쾌히 승낙(承諾)하실 줄 알았어요. 과정은 음양(陰陽), 오행(五行), 천간(天干), 지지(地支)까지에요. 여기에 대해서 고월싸부보다 더 잘 가르칠 사람이 없지 싶어서 부탁드렸어요.”

그래 잘 알았네. 놀더라도 밥값은 하고 놀라는 말인 줄 알겠으니 열심히 놀아주지 뭐. 나도 뭔가 일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거든. 고맙네.”

고월이 자원의 부탁을 기꺼이 받아들인다는 말에 자원은 또 우창에게 물었다.

싸부, 중급(中級)은 염재에게 맡길까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염재라면 고급(高級)을 가르쳐도 되지 않을까? 오히려 중급은 현지(玄智)에게 맡기고 싶은데?”

, 현지 언니가 계셨구나. 알겠어요. 다양한 변화를 살피는 데는 염재보다 현지 언니가 더 잘 어울리겠어요. 그 생각을 미처 못 했네요.”

그러면 고급은 염재에게 맡아보라고 하지. 깊이 파고드는 성격으로 인해서 맡은 일을 열심히 할 것이니까 마음 놓아도 될 거야.”

알았어요. 그렇게 하도록 할게요. 그런데 싸부는 놀고 먹을 작정이세요?”

내가? 그럴 복이나 되면 좋게? 자원이 놔둘 것 같지는 않은데 무슨 생각인지 어서 말해 보시게.”

자원이 우창의 말에 미소를 짓고는 생각을 말했다.

실은 싸부가 고급반을 가르치는 것이 모두가 원하는 것이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런데 곰곰 생각해 보니까 그렇게 되면 싸부의 가르침을 받기 위해서 초급이나 중급의 제자들이 너무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제자들이 모두 모여서 강의를 들을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오호~! 그건 나도 생각지 못했는걸. 그래서?”

싸부는 매일 수고하시지 않아도 되지 싶어요. 그래서 닷새에 한 번씩만 전체의 제자들을 위한 가르침을 주세요. 지금 계획으로는 나흘간 공부하고 하루는 쉬는 것으로 할 예정이거든요.”

오호~! 그건 좋은 생각이군. 그리고 공부 시간은 각기 다른 시간으로 정하는 것이 좋겠네. 왜냐면 명학(命學)에 초급이든 중급이든 고급이든 구분이 없는 것이잖은가? 그러니까 누구라도 자유롭게 어디에서 무슨 강의를 듣더라도 시간의 구애를 받지 않고 원한다면 모두 참석을 할 수가 있도록 하잔 말이네. 어떤가?”

우창의 말에 자원도 무릎을 쳤다.

, 맞아요~! 그 생각을 못 했어요. 초급의 제자들은 중급이나 고급에 대한 열망을 갖게 하려면 자기의 과정만 듣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싸부의 생각이 훨씬 깊어요. 잘 알았어요.”

그러면, 초급은 묘시(卯時)에 하고, 중급은 사시(巳時)에 하면 고급은 미시(未時)에 쉬었다가 신시(申時)에 하는 것으로 잡을게요. 저녁에는 5일에 한 번씩 술시(戌時)에 싸부의 특별 강의로 마련하면 되겠어요.”

잘 생각했네. 그대로 하지. 그럼 염재와 현지를 불러서 의논해 봐야지?”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자원이 얼른 가서 두 사람과 춘매까지 데리고 들어왔다. 바빴던 염재와 조용히 이야기할 틈도 없었던 우창이라 그 문제부터 물었다.

염재의 일은 어떻게 처리했나?”

, 스승님의 말씀을 생각해 봤는데 앞으로 3년간은 오행원에서 학문에만 전념하기로 했습니다. 나라의 일은 그다음에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렇게 정리하고는 사직했습니다. 이제부터 공부를 위해서만 푹 빠져보겠습니다.”

그랬군. 잘했네. 그래서 염재의 공부를 도와주겠다고 고급반의 제자들을 염재가 맡아서 지도해 줬으면 하는데 어떤가?”

? 제자의 부족한 공부로 어떻게 감당이 되겠습니까? 그것이 두려울 따름입니다.”

괜찮네. 가르치다가 곤란한 질문을 받으면 자원이 있으니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잖겠어?”

, 그렇군요. 자원 누님이 도와주신다면 염재는 든든합니다. 기꺼이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배려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렇게 말한 염재가 돌아가자, 이번에는 춘매에게 말했다.

춘매는 계속 식구들의 건강을 챙겨주고 감독하면 좋겠는데 혹 주방을 벗어나서 제자들을 가르쳐 볼 생각이 있나?”

그러자 춘매가 웃으며 말했다.

스승님, 춘매는 이렇게 식구들 먹거리를 챙기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행복하거든요~! 행여 그 일을 빼앗아 가지 말아주시기를 간곡히 애원하겠어요.”

알았네.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에는 눈만 뜨면 하루 세끼 먹는 일이 가장 큰 일인데 춘매가 솥뚜껑을 잡고 있다면 나도 마음이 놓이지. 그럼 많은 식구를 챙기느라고 힘들겠지만 그렇게 부탁하네.”

춘매도 돌아가자, 자원이 다시 현지를 보면서 말했다.

현지 언니께 부탁드릴 것은 중급의 제자들에게 십성(十星)을 가르쳐 주십사 하는 말씀을 드리려고요. 가능하시겠지요?”

자원의 말에 우창을 바라본 현지가 말했다.

스승님께서 공부할 거리를 주신다면 기꺼이 받아야지. 잘 안내해서 스승님의 뜻에 어긋나지 않도록 할게.”

현지가 이렇게 말하자 우창이 한마디 했다.

현지의 통찰력이 십성의 바탕에서 크게 발휘할 것으로 생각해서 결정했는데 순순히 응해 주니 고맙네. 하하~!”

그야, 스승님께서 가르쳐 주신 대로만 하면 될 테니 걱정할 일도 없지요. 더구나 이번 여행 중에서 보여주신 육갑(六甲)의 자유자재(自由自在)한 통변술(通辯術)을 대략 이해했으니 열심히 궁리해 보겠어요.”

이렇게 계획대로 착착 진행되는 것을 본 자원이 말했다.

정말 고마워요. 언니의 역할도 참으로 중요하거든요. 십성(十星)이야말로 명학의 꽃이잖아요. 저도 항상 언니의 강의를 들으면서 생각의 창고를 넓히도록 할 거예요.”

이렇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는 다시 우창에게 물었다.

앞으로 오행원의 명성이 소주에 퍼지면 궁금한 것을 물으러 오는 사람들이 늘어날 거에요. 싸부는 진명과 함께 이 일을 전담해 주셔야 하겠어요. 가끔은 자원도 거들어 드릴게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어쩐지, 내 그럴 줄 알았네. 나는 손님을 접대하란 말이로구나. 그래도 진명을 붙여 준다니 든든한걸. 하하~!”

오늘은 이 정도로도 충분하겠어요. 또 필요한 것이 있으면 의논드릴게요. 편히 쉬세요.”

자원이 물러가고 나서도 두 사람은 한참을 이야기 나눴다. 모든 제자가 저마다 자유롭게 소주를 유람하면서 풍광을 즐기기도 하고 한가롭게 여독(旅毒)을 풀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열흘이 지나서 모두 모인 다음에서야 더 올 사람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저녁을 먹고 난 시간에 외출했던 사람들도 모두 돌아온 다음에 첫 회합(會合)을 가졌다. 먼저 곡부에서 항상 그랬듯이 자원이 진행을 맡아보게 되었다. 시절은 바야흐로 마지막 절기인 대한(大寒)이 들어오는 날이었다.

여러 도반과 다시 만난 기쁨을 누립니다. 이번에 인연이 남쪽으로 뻗는 바람에 모두 이동하시느라고 많이 고생하셨네요. 처음 생각으로는 절반은 인연이 다 하여 함께 하지 못할 것으로 여겼는데 어쩐 일로 이렇게나 더 많은 인연이 되었는지 신기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말하고는 처음으로 보는 얼굴들을 바라보면서 눈짓으로 인사를 하면서 좌중을 둘러봤다. 그러자 원춘(元春)과 운봉(雲峯)이 일어나서 말했다.

소주로 오는 길에 우연히 어느 마을에 들렸는데 그 마을에서 있던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중에 공부하고자 하는 열정이 있기로 오행의 이야기를 조금 나눴을 뿐인데 마음이 동해서 동행하기로 했지 뭡니까?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식구가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말하자 새롭게 인연이 된 사람들을 향해서 우창이 말했다.

먼 길을 마다하지 않으시고 찾아주신 인연에 감사드립니다. 오늘은 소주의 오행원이 문을 여는 날이라고 해야 하겠습니다. 우창의 바람은 단 한 가지뿐입니다. 모두 오행의 마당에서 즐거운 놀이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지요.”

이렇게 말하고서 합장하자 모두 일어나서 인사를 했다. 그리고는 다시 자리에 앉자 자원이 말을 이었다.

이제부터는 공부할 준비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어요. 개강(開講)은 보름 후의 입춘일(立春日)로 하겠습니다. 과정은 각기 수준이 다르기에 함께 강의를 듣기에는 부담이 있겠어요. 그래서 상반(上班), 중반(中班), 하반(下班)으로 나누겠어요. 하반에서는 간지(干支)의 이치에 대해서 궁리하도록 하겠는데, 이에 대한 강의(講義)는 고월 선생이 맡아주시기로 했어요.”

이렇게 말하자 초급과정(初級課程)에 해당하는 제자들이 모두 환영한다는 뜻으로 강당이 떠나갈 듯이 손뼉을 쳤다. 잠시 조용해지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중급반은 통변(通辯)의 꽃이라고 할 수가 있는 십성(十星)을 공부하게 될 거예요. 여기에 대해서는 현지 선생이 담당할 것입니다. 깊은 통찰력으로 차근차근 풀어서 내공의 기초를 다지는데 도움을 주게 될 것으로 봅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현지를 가리키자, 현지가 일어나서 합장하고는 말했다.

이렇게 막중한 소임(所任)을 맡게 되었으니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리고 잘 모르는 것을 물어주신다면 언제라도 스승님께 여쭈어서 전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자 중급과정(中級課程)에 해당하는 제자들도 큰소리로 함성을 지르면서 박수로 환영했다. 현지가 허리를 굽혀서 감사를 표하고는 자리에 앉았다. 자원이 다시 말을 이었다.

마지막으로 상급반은 고급과정(高級課程)으로 용신(用神)이며 오주괘(五柱卦)와 육갑패(六甲牌)를 공부하는 시간으로 삼고 강사(講師)는 염재 선생이 담당하시게 됩니다.”

염재가 일어나서 합장하고는 말했다.

반갑습니다. 비록 편의에 따라서 공부의 깊이를 구분하여 나눠놓기는 했습니다만 언제라도 다른 강의에 참석하셔도 됩니다. 어차피 결론은 사주를 풀이하여 조언(助言)하는 지도자(指導者)가 되는 것이 목적인 까닭입니다. 사정이 생겨서 공부를 중단하였다가 다시 와서 이어가셔도 됩니다. 중요한 것은 열정(熱情)입니다. 열정의 연료(燃料)만 끊이지 않는다면 오행의 이치와 하나가 될 것이 틀림없다고 확신합니다. 여러분의 분발(奮發)을 빌겠습니다.”

염재가 이렇게 말하자 모두 우레같은 박수로 환영했다. 그러자 잠시 기다렸다가 자원이 다시 말했다.

하루 세끼의 식사는 여전히 춘매 선생의 인솔(引率)을 따르기로 하고 서로 돌아가면서 하루씩 당번(當番)을 정하도록 하겠습니다. 대략 봤을 적에 한 달에 하루는 봉사하는 것으로 보면 되겠습니다. 이것은 함께 살아가기 위한 것이므로 반드시 준수(遵守)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대중을 둘러보자 모두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말했다.

~! 그렇게 따르겠습니다~!”

자원이 다시 말을 이었다.

공부는 4일을 하고 하루는 쉬는 것으로 정하겠습니다. 그 하루는 저마다 자신의 공부를 시험하는 날로 삼으셔도 좋겠습니다. 소주의 각 마을로 가서 상담하는 것도 좋겠네요. 물론 원치 않으면 공부를 한 것에 대해서 복습하는 시간으로 삼으셔도 좋습니다. 잘 이해하셨습니까?”

, 잘 이해했습니다~!”

그러자 청중(聽衆)의 한 사람이 손을 들었다. 군엄(君嚴)이었다.

, 군엄 선생이시군요. 말씀하세요.”

강의를 해 주실 선생님들은 모두 훌륭하셔서 의심이 없습니다만, 스승님께서는.....”

군엄은 우창의 가르침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던지 이렇게 물었다. 그러자 자원이 미소를 짓고는 말을 이었다.

아마도 군엄 선생의 마음이 모두의 마음일 거예요. 물론 자원의 마음이기도 하죠.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도록 5일에 한 번씩 전체의 제자를 위한 가르침을 주시기로 하셨어요.”

자원의 말에 모든 제자가 일제히 우레같은 박수로 환영했다. 그러자 군엄이 다시 말했다.

아하! 이미 깊은 안배가 있으셨군요. 고맙습니다.”

그러자 웃음기를 띠고서 말하던 자원이 이번에는 다소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만약을 위해서 이런 말씀도 드려야 하겠습니다. 각자 한 공간에서 지내다가 보면 갈등(葛藤)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한 경우에는 각 반의 반장과 의논해서 해결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반장의 역량(力量)을 벗어난 일이라고 한다면 자원에게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함께 의논해서 도저히 함께 생활할 수가 없다고 판단되면 부득이 인연이 끝난 것으로 봐서 퇴원(退院)토록 하겠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동의해 주시겠습니까?”

, 동의합니다~!”

모두 한 소리로 크게 대답했다. 이렇게 해 둬야 나중에 혹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더라도 해결할 구실이 되기 때문에 다소 불편하더라도 말은 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해서 언급해 놓은 것이다. 자원의 깊은 생각에 대해서 우창도 든든했다. 자원이 우창을 한 번 보고는 미소를 지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그리고 꼭 당부를 드릴 것은 화재(火災)입니다. 불은 순식간에 우리의 거처를 집어삼키게 됩니다. 그러니 언제라도 불을 조심해 주시고, 밤에 공부하더라도 반드시 소등(消燈)을 확인하고 잠자리에 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집도 물론이거니와, 함께 공부하는 도반에게도 치명상(致命傷)을 입힐 수가 있다는 점을 특별히 유념(留念)해 주시기 바랍니다. 잘 아시겠습니까?”

, 잘 알겠습니다~!”

자원이 말을 할 때마다 모두 잘 알아들었다는 듯이 답을 했다. 대략 전할 말은 모두 했다고 생각된 자원이 마지막으로 말했다.

이 정도만 알고 생활한다면 아름다운 공간에서 웃음꽃이 피어날 것으로 확신합니다. 혹시 질문이 있으시면 하셔도 됩니다.”

자원이 이렇게 말하고 대중을 둘러봤다. 그러나 아무도 질문을 할 것이 없는지 모두 조용했다. 그러자 자원이 마무리했다.

, 그러면 모두 잘 이해한 것으로 알겠습니다. 그럼 이제부터 저마다 각 반의 반장에게 의논하시고 숙소는 방이 충분하므로 독방(獨房)으로 사용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미 각자 머무는 방이 자신의 방이 된다고 생각하셔도 되겠네요. 방은 각자 알아서 관리해 주실 것으로 믿고 이만 마치겠습니다.”

자원이 말을 마치자 우레같은 박수가 쏟아졌다. 자원도 합장하고 답례했다. 그러자 문득 생각이 났다는 듯이 마지막으로 한마디 더 했다.

우선 각 반장은 스승님과 세부적인 운영계획을 세우기 위해서 잠시 스승님 방으로 모여주세요.”

자원이 이렇게 말을 마치고는 우창의 방과 붙어있는 차실(茶室)로 갔다. 그러자 염재와 현지도 동행했다. 잠시 기다려서 고월까지 참석하자 춘매가 귤로 만든 음료수를 준비해 두고는 나가려고 하자 자원이 같이 이야기 나누자고 하는 바람에 앉았다. 모두 모인 것을 보고 우창이 말했다.

자원은 쏙 빠졌잖아? 무슨 일을 맡고 싶었던 거지?”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자원도 웃으며 답했다.

원래 자원은 일보다 노는 것을 더 좋아하잖아요. 호호호~!”

그래서?”

그래서 자원은 오행원의 원장(院長)을 할 거예요. 오늘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셨으니까 판단해 주세요. 오행원의 원장을 해도 될까요?”

자원이 이렇게 말하자 고월이 크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하~! 내 그럴 줄 알았어. 가장 힘든 일을 스스로 맡겠다고 하다니 역시 자원이로군. 하하하하~!”

고월싸부가 알아주시면 그것으로 충분해요. 그리고 밖으로 볼 일이 있으면 유하 언니와 처리할 거예요.”

우창도 미소로 자원을 격려했다. 그러자 자원이 춘매를 보면서 말했다.

춘매가 요리하는데 불편하지 않도록 식단(食單)을 만들어 주면 오광과 같이 해결을 할 테니까 아침은 죽으로 간단하게 하고, 점심은 푸짐하게 하고, 저녁은 조촐하게 준비해 주면 좋겠어.”

잘 알았어. 재미있겠네. 방향까지 잡아주니 걱정이 훨씬 줄어들었잖아. 호호호~!”

정말 중요한 일이잖아. 실로 춘매가 하기에 따라서 우리 식구들의 건강이 좌지우지(左之右之)되니까 참으로 중요한 일이거든.”

자원이 춘매에게 말하는데 진심이 느껴졌다.

, 진명과 유하를 좀 불러오면 좋겠는데?”

춘매가 얼른 가서 두 사람을 데려왔다. 그러자 자원이 진명에게 말했다.

진명에게는 더 중요한 일을 부탁하려고 아껴뒀는데 짐작은 했지?”

, 손님들과 씨름하라는 뜻이지?”

어머, 이미 짐작하고 있었던 거야? 그것뿐이 아니라 제자들이 힘들어하거나 고민이 있을 적에는 상담(相談)도 해 줘야 하거든.”

진명의 임무가 막중하네. 호호호~!”

이번에는 유하에게 말했다.

언니는 공부가 부족하니까 열심히 참석해서 내공을 증진 시켜야겠지? 그리고 밖에 볼일이 있으면 내가 도움을 청할 거야. 아마도 언니의 폭넓은 세상 경험은 자원에게 큰 힘이 될 것으로 믿어져서 든든하거든. 언니의 미모와 삶의 여정에서 겪은 달변(達辯)을 겸비한 경극 배우와 동행한다면 감히 누가 앞을 가로막겠어? 호호호~!”

자원의 말에 유하도 기뻐하며 말했다.

동생이 그렇게 말해주니 참으로 고마워. 그리고 한산사에 필요한 도움을 원할 적에도 내가 나서서 해결하면 더 쉬울 거야. 물론 절에서 도움을 원할 적에도 유하를 찾으라고 해야지. 호호~!”

자원이야말로 언니가 있어서 든든해. 어쩌다가 이런 보물이 오행원에 넝쿨째로 굴러들어왔을까? 참 생각만 해도 감동이거든. 호호~!”

이야기가 무르익자 고월이 우창에게 물었다.

언뜻 이야기를 들었는데 말이네. 새로운 비법을 터득했다는 육갑패는 어떻게 사용한다는 것인지 언제 설명해 줄 텐가?”

역시 고월이로군. 내 그럴 줄 알았지.”

그러자 자원과 진명이 또 눈을 반짝이면서 우창을 바라봤다. 무슨 가르침을 얻을 것인지 궁금한 호기심이었다.

고월이야말로 웬만한 학문은 다 섭렵(涉獵)을 했기 때문에 하나만 알려주면 열을 깨닫는 능력을 터득하고 있어서 긴말이 필요치 않았다.

고월한테 무슨 긴말이 필요하겠는가. 오주괘를 시간(時間)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했을 뿐이라네. 하하하~!”

그러니까 말인즉 시간의 구애를 받지 않고 득괘(得卦)한다는 말이지 않은가?”

맞아, 그래서 시간으로 얻은 점괘는 오주괘가 되고, 시간과 무관하게 얻은 점괘는 육갑괘(六甲卦)가 되는 것이라네. 하하하~!”

아하, 그런 것이었군. 그렇다면 같은 시간에 묻더라도 전혀 다른 점괘를 보여 줄 수가 있단 말이잖은가? 참으로 기발(奇拔)한 묘안(妙案)이로군.”

그렇다네.”

알겠네. 그런데 문제는 영험(靈驗)이 있어야 하지 않겠나? 그렇게 임의로 뽑은 점괘가 맞는다면 더 말을 할 나위가 없겠는데 말이지.”

고월은 날카로웠다. 곧바로 문제의 핵심을 짚어서 묻자, 진명이 그간에 있었던 육갑패의 점괘를 체험한 이야기를 설명했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난 고월도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과연! 참으로 걸작이로군. 앞으로 강호에서는 육갑패가 태풍을 일으킬 것이 틀림없음을 보장해도 되겠네. 하하하~!”

그렇게만 된다면 얼마나 좋은 일이겠나. 누구나 만들어서 쉽게 사용할 수가 있으니 말이지. 다만 오행의 이치를 통달(通達)해야 한다는 전제(前提)가 붙기는 하겠지만 그것은 당연할 테니 말할 필요도 없겠지?”

아무렴. 나도 그 이야기를 듣고 보니 더욱 열심히 정진해야 하겠는걸. 그런데, 문제가 있어 보이네. 이것은 어떻게 해결해야 하겠는가?”

고월의 말에 우창도 깜짝 놀라서 물었다.

문제라니? 그런 것이 있었단 말인가? 어서 말해 보게. 뭔가?”

연월일시분(年月日時分)에서는 동주(同柱)가 나올 수가 있지 않은가? 그런데 육갑패는 단지 한 간지만을 보여줄 따름이니 혹 이러한 것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지 않았나?”

, 그 말인가? 물론 생각해 봤지. 그렇지만 별로 개의치 않았던 것은 이유가 있지. 가령 무오(戊午)가 겹쳐서 나올 상황이라면 점신이 알아서 기사(己巳)로 대체를 할 것이고, 병오(丙午)가 나와야만 할 상황이라면 정사(丁巳)가 있으므로 특별히 비중을 두지 않아도 되겠다고 봤네. 그리고 만약에 이런 것이 불안해서 정확하게 득괘를 하고자 한다면 육갑패를 다섯 가지로 놓고서 뽑으면 해결이 될 문제라네. 그렇지만 그 간편함과 번거로움을 생각한 결과 하나만 해도 충분히 원하는 답을 보여줄 것이라고 여겼네. 어떤가?”

우창의 설명을 들으면서 연신 고개를 끄덕이던 고월이 말했다.

역시, 내가 괜한 걱정을 했군. 그렇게 하면 간단히 해결될 문제였군. 이제 더 궁금한 것이 없네. 잘 알았어. 하하하~!”

이렇게 말하던 고월이 진명에게 물었다.

처음부터 궁금한 것이 있는데 이제야 물어보고자 하네. 진명에게는 특별한 분위기가 있는데 그게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묘한 느낌에 대해서 내가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단 말이지. 이것은 어디에서 나온 느낌일지 물어봐도 될까?”

진명은 고월의 말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고월 스승님의 혜안도 대단하시네요. 실은 숙명통(宿命通)을 약간 얻었어요. 그래서 사람의 몸에서 풍기는 기운을 바탕으로 삼아서 전생의 흔적을 약간 느끼는데 스승님께서는 그것조차도 감지(感知)하신 건가 봐요. 호호호~!”

어쩐지, 뭔가 있다고 생각했더니 그것이었구나. 알겠네. 하하~!”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다가 밤이 깊어지자 각자의 숙소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