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8] 제37장. 유람(遊覽)/ 15.한산습득(寒山拾得)

작성일
2023-07-10 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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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8] 37. 유람(遊覽)

 

15. 한산습득(寒山拾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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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공의 활발한 행동이 조금도 꺼리낌이 없이 시원시원함을 보면서 모두 즐거운 마음으로 따라나섰는데, 불과 일각(一刻)도 채 걸리지 않아서 커다란 건물이 나왔다. 따로 출입문도 있는 저택(邸宅)이었다. 한산사의 경내를 벗어나서 강을 내려다보는 숲속에 마련된 공간이었다. 그야말로 수행자(修行者)의 터전임을 바로 알아볼 수가 있었다. 그 사이에 기감(氣感)이 뛰어난 진명이 한번 쓱 훑어보고는 바로 소감을 말했다.

이러한 곳에서 공부한다면 병이 있는 자는 병이 나을 것이고, 마음이 공허한 자는 충만감으로 가득하게 될 것이며, 학자라면 일문천오(一聞千悟)를 하게 될 것이니 정말 멋진 명당이에요. 스승님 어서 다른 인연이 끼어들지 못하게 스님께 감사를 드리시지 않고 뭐 하세요. 호호호~!”

진명의 말에 혜공도 흐뭇한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맘에 드신다니 다행이오. 원래 집은 사람이 살지 않으면 곧 못쓰게 되는지라 그렇지 않아도 주지 화상과 걱정을 많이 했는데, 또 하나의 두통거리를 해결해 주시니 참으로 한산사의 귀인들이올시다. 허허허~!”

우창이 사의(謝意)를 표했다.

이렇게도 흔쾌히 사용을 허락해 주시니 참으로 불보살의 보호하심이 있으신가 싶습니다. 이 건물은 언제까지 사용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야 300년은 가능할 것이외다. 다만 사찰의 소유인지라 매매를 할 수는 없으니 언제까지 머물러도 될 것이오. 혹 더 좋은 도량을 만나기까지는 마음대로 사용하시면 되겠소이다. 그럼 둘러보고 또 객실로 오시오. 노납은 이만 가보리다. 허허허~!”

휘적휘적 돌아가는 혜공을 보내고는 모두 안으로 들어가서 차근차근 둘러봤다.

방은 대략 봐서 30여 칸은 되어 보였다. 100명의 대중은 거뜬히 살아갈 수가 있는 넓은 공간이었다. 더구나 중앙에는 매우 큰 방도 있어서 강당(講堂)으로 사용하면 딱 좋은 구조였다. 한바퀴 둘러보고 난 춘매가 뛸 듯이 기뻐하면서 말했다.

아니, 이렇게 멋진 곳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단 말이에요? 어쩜 한산사의 토지신께서 우리를 위해서 이렇게나 배려해 주셨으니 오행원은 나날이 번창할 수밖에 없겠어요. 당장 이사를 해요. 소주 유람이야 살면서 천천히 해도 되니까요. 마음이 급해졌어요.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또 무슨 마귀가 요사(妖邪)를 부릴지 모르니까요. 어서 계약서(契約書)를 쓰도록 해요. 호호호~!”

춘매가 이렇게 서두르는 것도 참 오랜만에 본 우창도 무척이나 흐뭇했다. 그래서 더 살펴볼 것도 없이 다시 혜공을 찾아가서 사용하겠노라고 하고 약소하더라도 문서를 하나 남겨 달라고 부탁하는 것은 유하의 몫이었다.

대사님, 혹 나중에 욕심 많은 스님이 관리하게 되면 무슨 말로 더 머무를 수가 없는 이유를 내세울지도 모르니까 확인(確認)을 하나 남겨 주셔야 하겠어요. 그렇게 해주실 거죠?”

, 여부가 있겠나. 그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니 바로 해 드림세. 허허허~!”

이렇게 말을 하고는 무기한으로 원하는 기간까지 사용하도록 주지의 이름으로 허락한다는 문구를 써서 유하에게 줬다. 그제야 춘매의 마음이 놓이는지 합장하고는 말했다.

대사님의 넓은 아량에 감사드립니다~!”

오히려 노납이 감사해야 할 일이오. 허허허~!”

우창이 자리에서 일어나려다가 문득 건물의 출입문에 붙어있던 편액(扁額)이 생각나서 물었다.

그런데 대사님께 여쭙고자 합니다.”

? 무엇이오?”

건물의 문에 있는 편액에 대해서 궁금하여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뭐라고 되어 있었기에?”

, 위에는 한산습득(寒山拾得)이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혜공이 그 말을 듣고서야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듯이 말했다.

, 그것 말이오? 당대(唐代)의 고승이었던 한산(寒山)과 습득(拾得)의 두 화상의 법호를 쓴 것이라오. 한산사(寒山寺)도 한산(寒山) 대사가 머물렀던 것을 기념하여 붙은 이름이고, 그 자리에서는 습득(拾得) 대사가 머물렀던 토굴이라서 이름이라도 그렇게 써서 기념하고자 했던 것이오.”

, 그렇습니까? 알고 보니 참으로 유서가 깊은 곳이었네요. 어쩐지 주련(柱聯)의 글귀도 예사롭지 않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우창이 주련의 글귀에 대해서도 물었다. 그러자 혜공이 내용을 외웠다는 듯이 줄줄이 낭송(朗誦)하고는 설명했다.

 

無去無來本湛然(무거무래본담연)

不居內外及中間(불거내외급중간)

一顆水精絕瑕翳(일과수정절하예)

光明透出滿人間(광명투출만인간)

갈 것도 올 것도 없이 본래 즐기니

안도 밖도 아니고 그 중간도 머물지 않고

한 알의 수정구슬처럼 티 하나 없는 것이

밝은 빛을 온 천지에 비추네

 

이 시는 습득 대사의 시라오. 수정(水精)은 세인들이 수정(水晶)이라고 하는 것이오. 많은 시가 있지만 하도 유명하여 이 시를 주련으로 삼은 것이니 오가면서 가끔 들여다보며 음미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외다. 허허허~!”

우창은 의미를 가슴에 새기면서 감사의 합장을 하고는 다시 한산습득으로 돌아가서 이번에는 찬찬히 둘러보았다. 비록 빈집이라고는 하지만 그리 오래지 않은 것도 있었지만, 또 가끔 청소했던 흔적이 있어서인지 어제까지 사람이 살았던 것처럼 깨끗했다. 차실(茶室)에는 화로(火爐)도 있어서 언제라도 물만 있으면 차를 마실 수가 있도록 모든 도구가 갖춰져 있었다. 더구나 차실 앞에는 대나무가 비스듬히 놓여있고, 그 끝에는 맑은 물이 졸졸졸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것을 본 진명이 말했다.

집은 더없이 깨끗하네요. 내일 바로 이사해도 되겠어요. 마침 흐르는 물도 있으니까 차를 끓여서 마시면서 이야기 나눠도 좋겠어요.”

그러자 유하가 여기저기 뒤져 보다가 먹다가 남은 녹차(綠茶)를 발견하고는 바로 차를 끓였다. 그렇게 해서 김이 모락모락 펴지자 내부의 공기도 바로 훈훈해졌다. 찻잔은 없어도 사발(沙鉢)이 십여 개가 있어서 아홉 사람이 둘러앉아서 차를 마시는 데는 불편하지 않았다.

춘매가 차를 따라주자 저마다 들고서 차를 마시는데 진명이 갑자기 감탄하면서 말했다.

아니, 습득 대사의 시를 우리가 새벽에 점괘에서 보게 될 줄을 생각지도 못했어요. 어쩌면 이것도 인연일까요?”

진명의 말에 모두 진명을 바라봤다. 무슨 말인지 어서 해 보라는 뜻이었다. 진명이 식구들을 둘러보면서 육갑패를 다시 펼쳐 놓고 우창에게 말했다.

 

 


 

스승님, 첫 구절이 뭐라고 하셨죠?”

그러자 우창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진명이 묻는 대로 말했다.

, 그 시의 첫 구절은 無去無來本湛然(무거무래본담연)’이라고 하셨네. 그런데 무엇을 생각했기에 이렇게 호들갑이지?”

우창이 궁금해서 이렇게 묻자 진명이 웃으며 말했다.

그게 바로 정사(丁巳)가 아니고 무엇이겠어요? 원래 빛과 열은 오는 것도 없고 또 가는 것이 없이 그대로 소소영영(昭昭靈靈)한 것이잖아요?”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는걸.”

우창이 다시 묻자. 진명이 설명했다.

빛이 오면 온다고 하나요? 가면 간다고 하나요? 본래 그렇게 적적(寂寂)하고 밝은 것이 아니겠어요? 다음 구절은요?”

우창은 말이 되는 것도 같고 안 되는 것도 같았지만 이야기나 다 들어보자는 마음으로 다시 다음 구절을 읊었다.

다음은 不居內外及中間(불거내외급중간)’라고 하셨지. 이것은 또 어떻게 적용을 시키려고?”

간단하죠. 기묘(己卯)와 갑진(甲辰)이잖아요. ()는 집이니까요? 이 말은 기묘(己卯)에는 머물 인연이 다 했다는 말이죠. 그러니까 불거(不居)는 곡부에서는 살지 않는다는 말이고, 내외(內外)와 중간(中間)은 이 한산습득을 말해요. 그 의미는 전부가 다 내가 사용하는 집이란 말이죠. 호호호~!”

아무래도 억지처럼 들리면서도 절대로 말이 안 된다고 하기도 애매한 진명의 풀이라서 고개만 끄덕였다. 그러자 진명이 다시 물었다.

다음은 뭐죠?”

이번에는 세 번째의 구절로 一顆水精絕瑕翳(일과수정절하예)’라고 했지. 이것은 또 무엇과 연결을 시켜 볼 텐가?”

당연히 계유(癸酉)와 연결을 시켜야죠. ()는 수정구슬이고, ()는 맑은 물이잖아요. 어쩌면 티도 없는 수정이라는데 과연 유금(酉金)에는 순수하게 금()만 들어있으니 이것도 기이하다면 기이한 인연이라고 할 뿐이겠어요. 어때요? 이래도 억지라고 하겠어요?”

진명이 이렇게 말하자 이번에는 현지도 진명의 풀이를 인정했다.

듣고 보니 정말이네. 동생의 말이 전혀 황당하다고만 할 수는 없겠어. 오히려 그 응용력이 놀라워. 호호호~!”

그러자 이번에는 염재가 진명에게 물었다.

()의 이치가 참으로 변화무쌍(變化無雙)합니다. 동평호반에서는 을유(乙酉)를 놓고서 새장이라고 하셨고, 어제는 신유(辛酉)를 놓고서 무간지옥이라고 하시더니 오늘은 또 계유(癸酉)를 수정구슬이라고 하시니 과연 간지의 변화에 통달하려면 염재는 앞으로도 죽자고 궁리하고 머리를 쥐어짜야 하겠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통변술을 잘 배워야 하겠습니다. 더구나 그 모든 것이 상황에 따라서 정확하게 부합이 되니 더 할 말이 없습니다. 감탄만 할 따름입니다.”

염재의 말을 듣자 모두 감동했다. 다 같은 유()인데 주변의 상황에 따라서 변화(變化)가 자재(自在)한 것을 들으면서 과연 이와 같은 이치를 알아야만 비로소 간지를 안다고 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더욱 분발해야 하겠다는 다짐을 했다. 진명이 다시 말을 이었다.

염재가 정말 알뜰하게 챙겨가면서 공부하는구나. 그렇게만 하면 머지않아서 변화의 신통력(神通力)을 깨닫게 될 것이 틀림없겠어.”

진명의 말에 염재도 합장하면서 말했다.

정말 누나의 말씀에 큰 힘이 생깁니다. 더욱 열심히 하겠습니다. 어서 점괘의 풀이를 마저 들려주십시오. 참으로 오묘합니다.”

그래? 다행이구나. 호호~! 그럼 다시 스승님께서 마지막 구절을 읊어주세요. 어떻게 대입이 될지 생각해 봐야죠.”

그러지. 마지막 구절은 光明透出滿人間(광명투출만인간)’이라고 하셨는데 광명(光明)이 나오는 것으로 봐서 내가 생각해도 병진(丙辰)과 제대로 맞아떨어진다는 것을 알겠군. 참으로 연결을 짓고 보니까 우연이라고 하기는 어렵겠는걸. 역시 이렇게 보는 것이 맞겠지?”

우창도 마지막 구절과 분주(分柱)의 병진(丙辰)을 연결해서 풀이할 수는 있었다. 그러자 진명이 웃으며 말했다.

이제 스승님도 진명의 풀이에 공감하시네요. 그것 보세요. 그냥 뽑은 육갑패가 아무런 생각도 없이 나온 것만은 아니잖아요. 이미 우리에게는 이 한산습득께서 머무르시던 공간의 주인이 될 조짐을 보여줬던 것이니까요. 정말 신기해요. 호호호~!”

진명의 설명을 듣고 있던 유하가 말했다.

그러니까 유하도 새로운 도장을 마련하는데 일조(一助)한 것은 맞죠? 한산사의 지객 화상과 알게 된 인연의 고리가 이렇게 이어질 줄은 상상도 못 했는데 정말 인연법이란 참으로 경이(驚異)로워요.”

유하의 말에 춘매가 손을 잡으면서 말했다.

언니가 아니었더라면 집을 알아보러 어디론가 돌아다니고 있을 것이잖아? 정말 고마운 일이야. 일조가 아니라 십조를 하신 거니까. 앞으로 춘매가 할 수 있는 것은 뭐든지 열심히 챙겨 드릴게. 호호호~!”

춘매의 말에 유하도 감동했다. 늦은 나이에 이 대중에 합류해서 혹 어울리지 못하고 귀찮은 존재로 남게 될까 봐서 내심 불안했었는데 이렇게 진행되고 보니까 자신도 뭔가 보탬이 되었다는 생각에서 마음이 뿌듯했다.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차를 마시고는 집을 찬찬히 둘러보면서 모두 너무나 흡족했다. 넓기도 하거니와 50여 명의 대중이 머무르기에는 딱 맞춤과도 같았기 때문이다. 이제 여기에서 매일 강의(講義)를 들으면서 오행의 이치를 궁리하는 나날들을 상상하니까 너무 행복했다. 표정을 보면서 우창이 다음 계획을 말했다.

, 어떻게 할까? 곡부의 일에 대해서 의견이 있으면 모아봐야겠지?”

우창의 말에 먼저 염재가 의견을 냈다.

스승님 염재의 생각으로는 혼자서 곡부로 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가서 대중들에게는 소주의 한산사를 알려주겠습니다. 저마다 형편대로 오행원으로 찾아가라고 해도 잘 찾아올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삼삼오오(三三五五)로 짝을 지어서 유람 삼아서 걷더라도 20여 일이면 대부분 도착하지 싶습니다. 또 더 늦어진다고 하더라도 한 달이면 모두 모일 수가 있겠습니다. 저마다 공부하던 책만 챙기면 되므로 짐은 단출하게 꾸리도록 하겠습니다. 의상만 좀 챙기면 되겠고, 나머지는 여기에서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주면 모두 홀가분한 마음으로 출발을 할 수가 있을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물론 사정이 있어서 떠날 수가 없는 제자가 있다면 다음 인연을 기약하는 것으로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우창은 이미 계획을 세워 놨다는 듯이 술술 말하는 염재가 든든했다. 나이에 걸맞지 않게 세상의 일을 처리하는 능력이 재빠르게 움직이고 있어서 걱정할 일이 없었다.

염재가 맡고 있는 곡부현의 일에 대해서는 어떻게 할 생각인가?”

. 그 점에 대해서도 이미 생각을 정리했습니다. 소주로 발령을 내려준다면 그대로 수용할 것이지만 안 된다고 할 때는 사직하고서 여기에 와서 다시 과거시험을 치르도록 하겠습니다. 스승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오호~! 잘 생각했네. 그대로 진행하면 좋겠군. 그렇게 추진하지.”

잘 알겠습니다. 일들을 처리하고 오려면 아마도 한 달은 필요하지 싶습니다. 그러니까 소주의 오행원은 임신년(壬申年)의 입춘(立春)날에 개원(開院)하는 것으로 준비하면 좋겠습니다. 그동안 유람도 하시면서 자유롭게 쉬셨다가 입춘부터 제자들을 지도해 주신다면 저마다 일들을 해결하고 모이는데 여유가 많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렇게 생각해 봤는데 혹 해주실 말씀이 있으면 부탁드립니다.”

염재는 이미 이다음의 일들에 대해서 안배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렇게 염재의 말에 대해서 다들 아무런 말이 없자 안산이 나서서 말했다.

염재가 혼자서 다녀온다고 하니 아무래도 먼 길에 적적하지 싶습니다. 안산이 여기에서 무엇인가를 할 일도 있기는 하겠습니다만, 오행원에서도 뭔가 챙겨야 할 것이 있지 싶으니 동행하고자 합니다. 허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안산이 이렇게 말하면서 우창을 보자 우창도 그렇게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하던 차에 반갑게 말했다.

허락하다니요. 당연히 감사한 일입니다. 장도(長途)에 힘드실 텐데 그렇게 해주신다면 우창도 마음이 놓이겠습니다. 그럼 부탁드립니다.”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염재가 바로 일어나서 말했다.

고맙습니다. 그럼 안산 선생과 같이 곡부로 가서 처리할 일들을 잘 정리하고 대략 1개월 후에 뵙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하루가 급하니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다녀오겠습니다.”

이렇게 인사를 하고는 안산과 함께 곡부로 떠났다.

춘매와 자원이 문밖까지 배웅하고 잘 다녀오라고 하고는 돌아왔다. 이번에는 오광과 진명이 같이 한산빈관으로 가서 일행의 짐을 오행원으로 날랐다. 우창도 같이 가서 일행의 물건은 모두 챙겨서 옮겼다. 이렇게 하는데 한 시진이면 충분했다. 그럭저럭 시간이 흘러서 신시(申時)였다. 이제 저녁밥을 지어야 할 시간이 되어오고 있었다. 그러자 춘매가 오광과 함께 저자로 가서 간단히 먹을 재료를 준비해 와서는 빠르게 준비했다. 나머지 식구들도 무와 파를 다듬고 생선의 비늘을 긁으면서 일을 도왔다. 그러면서도 모두 즐거워서 마음이 들떠있었다.

정말 원족(遠足)을 나온 것처럼 즐거워요.”

자원이 흐뭇한 마음으로 배추를 다듬으면서 말했다. 그러자 유하도 춘매에게 물었다.

동생, 혹 필요한 양념이나 도구가 있으면 말해, 절의 주방에 가서 얻어 올 테니까 말이야.”

고마운 말씀인데 그럴 필요가 없겠어, 언니. 이미 웬만한 것은 다 갖춰져 있어서 특별히 추가해야 할 것도 없지 싶으니까, 솥에 불 좀 지펴주시면 생선도 굽고 뭇국을 끓이면 좋겠어. 가을이라서 무도 맛있어 보이네. 호호호~!”

춘매가 신이 나서 음식을 준비했다. 오랜만에 우창을 위해서 상을 차린다는 것이 꿈만 같아서이기도 했다. 오광과 우창은 바닥을 닦았다. 크게 더러워지진 않아서 대략만 닦아도 말끔하게 되었다. 그 사이에 진명은 방을 둘러보면서 우창이 머물 방과 저마다 적당한 방을 정하고는 강당에서 떨어진 조용한 곳에는 우창이 머물도록 하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비워뒀던 흔적을 지우느라고 분주했다.

허허허~! 사람이 사는 것 같아서 좋구료~!”

혜공이 쌀을 한 자루 사미승이 둘러메게 하고서 방문했다. 모두 일손을 멈추고 인사했다. 우창이 먼저 말했다.

어서 오십시오. 대사께서 안배해 주신 덕택으로 이렇게 머물 곳을 얻어서 모두 신바람이 났습니다. 거듭 감사드립니다.”

아아, 인사를 듣자고 온 것이 아니니 절대로 그런 말은 하지 않도록 하시오. 그보다도 우선 백미를 조금 가져왔으니 알아서 드시면서 혹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언제라도 내게 말해 주시오. 최대한 보살펴 드리도록 하겠소이다.”

대사의 깊은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혜공을 보자 진명이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대사님, 습득 대사는 어떤 분이신지 궁금했어요. 이름이 특이해서 말이에요. 호호호~!”

진명의 물음에 혜공이 말했다.

, 그것이 궁금하셨소? 잠깐 이리 앉으시오. 내가 아는 대로 설명해 드릴테니. 허허허~!”

혜공의 말에 모두 옆으로 다가앉았고, 저녁거리를 준비하던 춘매와 유하만 함께 하지 못했다. 혜공의 말이 이어졌다.

습득(拾得)주웠다는 말이잖소? 그래서 이상하게 생각하기도 한다오. 때는 당나라의 정관(貞觀) 시대에 있었던 이야기라오. 그야말로 길에 버려진 아기를 천태산(天台山)의 국청사(國淸寺)에 살던 풍간(豊干) 화상이 데려다 키웠는데 성장을 하자 절의 공양간(供養間)에서 잡다한 일을 하면서 음식 찌꺼기나 얻어먹으면서 성장을 한 것이었소.”

혜공의 말을 듣고서야 진명은 궁금한 것이 풀렸다는 듯이 말했다.

아하~! 그래서 스님의 이름이 습득이었군요. 어쩐지 이상하다 했더니 그런 사연이 있는 줄은 몰랐어요.”

후에 습득이 성장하자 절을 위해서 일하던 소작농들이 키우던 소를 타고 다니면서 목동의 노릇을 했는데 마침 스님이 설법하자 소떼들과 함께 습득도 소를 타고 와서는 문지방에 기대어서 법문을 듣는데, 한 화상이 호통을 쳤다오.”

소나 잘 키울 일이지 법문은 아무나 듣는단 말이냐~!’라고 말이오. 그러자 습득이 소를 어루만지면서 말을 했다고 하오.

당신들은 내가 몰고 다니는 소가 전생에 그대들처럼 화상이었다는 사실을 모르는가? 공짜로 밥을 먹으면서 빈둥거리고 살다가 죽어서 이렇게 소가 된 것이라는 말이다.’

사람들이 무슨 미친 소리를 하는가 싶어서 하는 짓만 보고 있자니, 습득이 100여 년 전에 국청사에서 살았던 주지의 이름을 부르자. 소의 무리에서 한 마리가 음매~!’하면서 다가와서는 슬픈 눈동자로 대중들을 바라봤다오. 그러한 것을 보면서 사람들은 그 후로 습득은 보살이라고 하여 소들이 절을 누비고 다녀도 아무도 막지 않았다고 하오.”

혜공의 말을 듣고 있던 진명이 눈을 반짝이면서 말했다.

우와~! 법력이 대단하신 분이셨네요. 그러니까 국청사에서 머물다가 소주로 왔단 말씀인가요?”

그렇소. 경치 좋은 소주에 한산사를 창건하고는 서로 시()를 지어서 읊으면서 유유자적(悠悠自適)한 삶을 누리셨다고 하오. 이제 알겠소이까?”

진명과 다른 식구들도 모두 혜공을 향해서 이야기를 잘 들었다는 듯이 합장했다. 진명이 말했다.

왜 이름이 한산습득인지 이제 잘 알았어요. 시의 내용도 예사롭지 않았는데 그럴만한 연유(緣由)가 있었네요. 더욱 지혜롭도록 열심히 정진하겠어요. 고맙습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다 하고는 혜공은 돌아갔다. 그리고 춘매가 준비한 저녁 밥상이 마련되자 모두 소박하게 정성으로 차려진 저녁밥을 먹으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밥을 먹고서 차는 현지가 담당했다. 노련한 솜씨로 차를 우려서 개운하게 마시면서 정담(情談)을 나눴다. 화로(火爐)에서는 찻물이 끓으면서 김을 뿜어내고 있었고, 차를 마시는 소리가 어우러져서 멋진 운율이 되는 듯했다.

춘매가 저녁을 마련하느라고 수고가 많았구나.”

우창의 말에 춘매가 웃으며 말했다.

오랜만에 스승님과 함께 밥을 먹으니 순간적으로 곡부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지 뭐예요. 호호호~!”

이제 곡부는 추억 속에만 남게 되었구나. 하하하~!”

진명이 차를 마시다가 은자 꾸러미를 내어놓으면서 말했다.

염재가 떠나면서 사용하고 남은 은자를 제게 맡겨놓았어요. 제 생각에 금전을 관리하는 사람은 자원이 맡았으면 좋겠는데. 오행원에서는 어떻게 하셨는지 모르겠네요. 아니면 안살림을 도맡아야 할 춘매가 맡아도 좋지 싶네.”

진명이 이렇게 말하자, 자원이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 그 문제는 알뜰한 살림꾼인 춘매가 알아서 할 테니까 아무도 신경을 쓸 필요가 없어요.”

이렇게 말하면서 은자를 춘매에게 밀어주고는 말했다.

소주에서는 살림의 규모가 더 커져서 신경을 써야 할 것이 많을 거야. 어려운 것은 내가 도와줄 테니까 언제라도 말하면 되겠고, 더구나 이번에 새로 만난 현지 언니와 진명 친구로 인해서 얼마나 든든한지 모르겠어요. 더구나 유하 언니까지 옆에 있으니까 참으로 잘 짜인 바둑판을 옆에서 보는 듯해요. 앞으로 함께 살다가 보면 맑은 날도 있을 것이고, 궂은날도 있을 거예요. 그때마다 모두 힘을 합해서 지혜를 모아 주시기 바랄게요. 호호~!”

어쩌면 이제야 서로를 익히면서 제대로 통성명(通姓名)을 하는 셈이었다. 깊어가는 가을밤의 한순간을 저마다 자신이 살아온 날에 대해 허심탄회(虛心坦懷)하게 대화했다. 서로 다르게 살아온 과거를 공유(共有)한다는 것은 거리감을 줄이는데 큰 효과가 있었다. 때로는 탄식하고, 또 때로는 감탄하면서 모두의 과거와 하나가 되었다. 멀리에서 기러기가 끼룩거리면서 남쪽 하늘로 날아가는 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