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6] 제37장. 유람(遊覽)/ 13.한산사(寒山寺)의 차담(茶談)

작성일
2023-06-30 0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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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6] 37. 유람(遊覽)

 

13. 한산사(寒山寺)의 차담(茶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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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을 둘러본 혜공이 차를 권하고는 유하에게 다시 물었다.

새로운 삶의 이름이 유하라고 하셨나? 입도하셨다니 어느 도문(道門)이오?”

경극의 유명한 배우로 명성을 날렸던 배우가 갑자기 수행자의 길을 택했다니 관심이 생길 법도 했다. 유하가 미소를 짓고는 말했다.

대사님은 예나 지금이나 호기심(好奇心)은 변함이 없으시네요. 오행문(五行門)에 첫발을 들여놓았어요. 다만 얼마 되지 않아서 아직도 겨우 문전(門前)에서 황홀(恍惚)해만 할 따름이에요. 호호~!”

오행문(五行門)? 음양문(陰陽門)은 들어봤으나 오행도(五行道)가 있다는 말은 또 처음 듣는 말이구려. 그 문파에서는 어떤 도법(道法)을 가르치는 것이오?”

아니, 대사님도 참으로 오행을 모르셔서 묻는 것은 아니시죠?”

내가 아는 오행은 금목수화토(金木水火土)가 서로 생극(生剋)한다는 정도밖에 모르니 거기에 무슨 도가 있는지는 모르겠소. 풍수지리(風水地理)를 말하는 것이오? 풍수 이야기는 나도 좀 들어봤는데 산형(山形)에 오행이 있다는 것은 들어봤소이다.”

풍수지리(風水地理)는 모르겠고, 인명지리(人命之理)를 공부하는 것이에요. 대사님은 수도자(修道者)시니 삶의 궤적에는 관심이 없으시겠네요. 호호호~!”

유하의 말에 혜공은 관심이 커졌는지 몸을 기울이면서 말했다.

아니, 진즉에 사주팔자를 공부한다고 할 일이지. 허허허~!”

그런가요? 그렇게 말하기에는 오행지리(五行之理)가 너무 심오해서 내키지 않았어요. 사주팔자를 공부한다고 하면 대사님도 사주나부랭이라고 하실 것이잖아요? 부처님도 미래를 묻지 말라고 하셨다고 하면서요. 그렇죠? 호호호~!”

유하가 이렇게 말하는 것으로 봐서 혜공 화상과는 오래전부터 허물없이 지냈던 것으로 보였다. 우창도 옆에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사미승이 다시 뜨거운 차를 채워주자 조용히 합장하고 찻물을 받았다. 혜공의 말이 이어졌다.

, 예전에 내게 미래를 물었을 적에 해 준 말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단 말이오? 허허허~!”

당연하죠. 진심으로 길을 찾고 싶어서 물었는데 다 쓸데없다고만 하셨잖아요. 원래 출가하신 분이라서 친절한 답을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무척 섭섭했거든요. 호호~!”

오호~! 그랬구려. 그래도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고, 부처가 공부하지 말라고 했으니 안 했을 따름이오. 노납(老衲)을 탓해서 무슨 이득이 있겠소이까. 이제 그 노여움은 풀고 널리 헤아려 주시오.”

이제는 아무런 원망도 없어요. 눈앞의 모든 것이 감사할 따름이에요.”

그래서 유하의 표정이 그리도 편해 보였구려. 다른 사람인 줄로 착각할 정도였으니 말이오. 오행도가 영험하다는 것을 인정하겠소이다. 허허허~!”

그럼요. 영험하고 말고요. 흡사 죽이 끓는 솥처럼 부글부글 끓어오르던 번뇌를 삽시간에 잠재워버릴 정도니까요. 그나저나 한산사를 좀 안내해 달라는 부탁을 드리려고 대사님을 뵙자고 했어요. 오랜만에 궁금하기도 했고요.”

유하의 말을 듣고서도 혜공은 말이 없었다. 뭔가 생각에 잠긴 모습을 보면서 우창은 아무래도 간단히 일어나지는 못하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잠시 생각하던 혜공이 우창을 보면서 말했다.

우창 거사(居士), 그 영험한 지혜를 잠시 빌리면 어떻겠소?”

우창은 내심 그럴 줄 알았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예상이 맞았지 싶어서 합장하고 말했다.

대사님께 보여드릴 수가 있는 것이라고 해봐야 잔재주에 불과하니 지혜라는 말씀은 감당키 어렵습니다. 다만 무엇이든 하문(下問)하신다면 성의를 다해서 답을 구해보고자 합니다.”

우창이 흔쾌히 승낙하자 혜공이 합장하고는 얼른 일어나서 나갔다.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서 모두 얼떨떨해하는데 차를 반 잔도 마시기 전에 다른 화상을 대동하고 돌아왔다.

일어나실 것 없소이다. 이분은 한산사 주지 화상이시오.”

혜공은 주지(住持)를 대동(帶同)하고 나타났다. 혜공이 일어날 것이 없다고는 했으나 우창은 그래도 앉아서 주지를 뵙는 것도 무례할 것 같아서 일어나자 모두 같이 일어나서 합장으로 하자. 주지화상이 앉으면서 우창에게 말했다.

시주(施主)께서 귀한 걸음을 하셨으니 귀찮은 일을 하나 부탁드릴까 하오. 부디 이 문제를 해결해 주셨으면 하오. 아니, 그보다도 지금 어디에 머무시오?”

주지가 묻자 유하가 대답했다.

, 저희는 이 앞의 한산빈관에 머무르고 있어요.”

유하가 이렇게 답하자 주지는 혜공에게 말했다.

혜공, 지금 바로 빈관에 연락해서 주지가 비용을 감당한다고 하고 가장 편안한 곳에서 불편함이 없이 머물도록 안배(按排)해 주시게.”

, 대사님의 분부대로 시행하겠습니다. 그보다도 당면한 문제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시지요.”

혜공이 이렇게 말하자 주지는 한숨을 쉬었다. 그러자 혜공이 대신해서 설명했다.

실은 절에서 일을 보던 여인이 죽었는데 범인을 찾지 못하고 있어서 이 문제로 주지화상께서 힘들어하고 계시오.”

혜공의 말을 듣고서야 무슨 일인지 대략 짐작되었다. 그러니까 우창의 오행술(五行術)을 빌어서라도 이 난제(難題)를 해결할 수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혜공의 설명을 듣고서 유하가 얼른 말을 받아서 말했다.

과연 근심이 깊으시겠어요. 살인자를 찾지 못하면 모두가 의심받게 될 테니까 찾기는 해야 하겠는데 그게 풀리지 않으신다는 말씀이네요?”

맞네. 그 문제로 한산사에는 먹구름이 끼었다고 하겠네. 후유~!”

시름이 깊었는지 이렇게 말하며 이마의 땀을 닦는 주지의 안색도 어두워 보였다. 우창도 이야기를 들으면서 설마하니 이런 고민을 안고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지라 내심 당황스러웠다. 살인자를 찾아 달라니.....

유하가 생각해 봐도 참 간단한 문제는 아니네요. 이미 백방으로 해결책을 강구(講究)해 보셨을 것이잖아요? 그랬음에도 범인이 오리무중이라면 어떻게 해야 좋을지는 스승님께 여쭤봐야 하겠어요.”

이렇게 말을 마치고서 우창에게 떠넘겼다. 그러자 모든 제자의 눈에는 걱정 반, 호기심 반으로 빛났다. 이와 같은 문제에서도 우창이 어떤 신기(神技)를 발휘할 것인지 궁금해서였고, 또 과연 이러한 문제까지도 해결이 가능할 것인지에 대한 걱정스러운 마음이었다. 진정성이 넘치는 간절한 부탁을 받은 우창이 신중한 어조로 말했다.

잘 알겠습니다. 그런데 살인사건은 포도청(捕盜廳)에서 해결하는 것이지 않습니까? 사사로이 숨기고 있다가 더욱 큰 문제로 번지게 될 수도 있지 싶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그러자 주지가 잔뜩 찌푸린 표정으로 나지막하게 말을 이었다.

아니 생각해 보오. 절간에서 그것도 여인이 변사(變死)를 당했는데 이것이 포도청에 알려지기라도 한다면 우리의 체면은 고사하고서라도 사람들을 못살게 굴 텐데 그것을 빤히 알면서 관청에 말한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란 말이오. 그래서 사중(寺中)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고 원흉(元兇)을 찾아서 직접적으로 자백(自白)받는다면 그다음에 관청에 알리더라도 우선은 이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겠기에 고민이 깊어지는 것이외다.”

주지의 말을 듣고서야 우창도 일이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님을 깨달을 수가 있었다. 이렇게 된 이상 육갑패로 그 결과를 추정(推定)해 볼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자 품에서 육갑패의 뭉치를 꺼내어서 차탁(茶卓)에 올려놓은 다음에 주지에게 말했다.

주지 대사의 곤란한 입장을 이제야 이해했습니다. 소생에게는 이러한 조짐을 추적해 보는 도구가 있기는 합니다. 물론 제대로 답을 짚어낼 것인지는 아직 경험해 보지 않아서 단정할 수 없습니다. 일반적인 문제라면 어렵지 않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살인자를 찾는 일은 해보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오늘 우연히 한산사에 들려서 이러한 이야기를 듣고 보니 이것도 인연이려니 싶습니다. 우선 점괘를 잘 뽑아야 해결의 실마리를 얻을 수가 있지 않겠습니까?”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그야말로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있으면 붙잡을 판에 이렇게 영험한 점괘가 있다니까 귀가 번쩍 뜨였던 모양이다.

정말 해결책을 찾아 주신다면 어떻게든 은혜를 갚겠소이다. 꼭 좀 부탁드리겠소.”

이렇게 말하면서 합장하고는 고개를 숙였다. 간곡한 마음이 그대로 전해지자 우창의 제자들도 같이 합장을 하고 일이 잘 해결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되었다. 그러한 모습을 본 우창이 말했다.

잘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여기 육갑(六甲) 보살(菩薩)께 염원을 담아서 3배를 올리시겠습니까?”

그야 여부가 있겠소. 당연히 삼배가 아니라 삼천 배라도 올려야지요.”

이렇게 말을 마치고는 주지가 육갑패를 향해서 부처님을 모시기라도 하는 것처럼 3배를 했다. 그러자 옆에 있는 혜공도 따라서 같이 절을 하고는 다시 앉았다. 그제야 우창이 육갑패를 탁자에 부채처럼 펼쳐놓고는 말했다.

, 지금부터가 중요합니다. 무념무상(無念無想)으로 손이 가는 대로 다섯 장을 뽑아서 위에 올려놓으시면 됩니다. 어디부터 뽑아도 상관없습니다. 그럼~!”

이렇게 말을 하고는 우창이 입을 다물었다. 모두 숨을 죽이고 있는 가운데 주지가 참으로 간절한 표정으로 다섯 장의 육갑패를 뽑아서 위쪽으로 가지런히 놓자 우창이 합장하고는 뒤집었다.

 

 

 

 

모든 사람의 이목(耳目)이 탁자에 펼쳐진 다섯 장의 패()로 모였다. 갑인(甲寅), 을사(乙巳), 정축(丁丑), 신묘(辛卯), 신유(辛酉)의 다섯 장이었다. 이제부터는 우창이 해결을 해야 할 대목이었다. 우창은 패를 보면서 생각에 잠겨 들었고, 밖에서 들리는 소리는 대숲에서 대나무 잎이 바람에 흔들리면서 나는 ~’하는 소리뿐이었다. 그렇게 차 한 잔을 마실 시간이 흘렀다. 이윽고 우창이 주지를 보면서 입을 열었다. 모두 숨소리도 없이 우창의 낭랑한 음성에 집중했다. 

세 번째의 정화(丁火)가 범인(犯人)입니다.”

우창이 이렇게 말을 던지자 주지와 혜공의 눈이 동그랗게 되면서 무슨 뜻인지를 설명해 달라는 듯이 우창을 바라봤다. 혜공이 먼저 물었다.

정화(丁火)가 범인이라면 범인이 정년(丁年)에 태어난 사람이라는 뜻입니까? 무슨 의미인지 설명을 부탁합니다.”

그런 뜻이 아닙니다. 위치만 우선 잡아놓는 것입니다. 풀이는 이제부터입니다.”

, 그렇습니까? 깜짝 놀랐습니다. 우리 절에는 정묘(丁卯)생도 있고, 정사(丁巳)생도 있어서 순간적으로 그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지 뭡니까. 큰일 날 뻔했습니다. 허허~!”

자기도 모르게 웃다가 얼른 입을 다물었다. 주지가 심각하게 이야기를 듣고 있는데 예가 아님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원래 혜공은 낙천적으로 보였다. 웬만하면 좋게 생각하고 속 편하게 살아갈 그야말로 화상의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이러한 일이 생기는 바람에 자신도 마음에 짐이 많이 되었다. 그래서 얼른 해결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야기를 듣다가 우창이 정화가 범인입니다라고 하자 그만 자신도 모르게 해결책이 보일 것만 같아서 웃었는데, 아직은 아무것도 된 것이 없다는 것을 바로 깨달았다.

혜공은 또 육갑 보살께서 범인을 콕 짚어서 알려주는 것으로 알았소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실은 이제부터 간지(干支)를 하나하나 살피면서 정황을 유추(類推)해야 합니다.”

우창의 말을 듣고서 주지도 충분히 이해된다는 듯이 말했다.

그렇겠구려. 아무튼 도력(道力)을 발휘하여 명쾌한 해답을 찾아 주시기만 바랄 따름이오.”

부족한 힘이나마 최선을 다해서 답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편의상 범인을 정()이라고 하겠습니다. 정은 망상(妄想)이 많은 사람입니다. 심지어 환상(幻想)을 넘어서 환각(幻覺)까지도 일어날 수가 있는 것으로 판단합니다. 이러한 것은 자신의 주변에 일어나는 현상을 일반 사람이 느끼는 정도를 넘어서 자기만의 특이한 감각으로 현실을 왜곡되게 바라볼 수가 있습니다.”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자원이 거들었다. 우창에게 생각할 틈도 줄 겸 제자들의 궁금증도 풀어가기 위해서였다.

싸부, 그렇게 보신 것은, 연월(年月)의 인겁(印劫)이 태왕(太旺)해서 그렇게 보신 건가요? 점괘의 연월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치 정화(丁火)가 폭발할 것만 같아서 견디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지. 이 정도라고 한다면 스스로 답답하다고 하면서 가슴을 두드리거나 갑자기 돌발적으로 이상스러운 행동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 형상은 스님도 같고 선생도 같은 모습입니다. 일견(一見) 스님과 같으면서도 스님이라고 하기에는 어딘가 통제가 불가능한 형태라고나 할까요? 그렇다고 일반인이라고 하기에는 또 예사롭지 않습니다. 때로는 흡사 부처님처럼 모든 이치를 깨달은 듯이 자신이 천하제일(天下第一)이라는 듯이 안하무인(眼下無人)의 행동을 취하는 사람이 있는지를 먼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물론 아직 단정적인 결론은 아닙니다. 그냥 그런 사람이 있었는지 떠올리기만 하시면 됩니다.”

, 잘 알겠소이다. 어서 계속하시오. 점점 흥미가 동하는구료.”

주지도 이야기에 빠져들 듯이 말을 하고는 다음의 설명을 기다렸다. 우창이 다시 말을 이었다.

누구라도 자신과 마주하려고 말대답이라도 하면 대든다고 생각하거나 무시한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인내심은 극에 달하게 되어서 폭발하는 것이지요. 이러한 문제를 모두 잘 알기 때문에 웬만하면 그 사람을 건드리지 않으려고 하기에 흡사 터지지 않은 폭탄과 같은 존재인 셈입니다.”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혜공이 주지를 보면서 자기도 모르게 말했다.

혹시 혜명(慧明) 사제....?”

주지가 얼른 혜공의 입을 막았다. 조용히 하라는 뜻이었다. 혜공은 자신도 모르게 말을 한 것에 대해서 소스라쳐 놀라면서 얼른 고개를 숙이고 합장했다. 속으로 나무아미타불을 외우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우창은 못 들은 체하면서 다시 말을 이어갔다.

()은 지난여름의 푹푹 찌던 날이었을 것입니다. 너무 더워서 도저히 견디지 못하고는 계곡으로 가서 목간하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자원이 다시 깜짝 놀라면서 말했다.

아니, 싸부~! 이렇게 나온 육갑패에서도 월령(月令)을 보시는 건가요?”

그야 보이면 보는 것이지. 물론 사월(巳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폭염(暴炎)의 계절에 날씨도 무지하게 더웠을 것으로 봐야 하므로 신월(申月)까지도 포함할 것이네.”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혜공은 주지를 바라보면서 놀라는 기색을 보였다. 그리고는 우창에게 말했다.

맞소이다. 그 사건은 지난 7월에 일어난 일이오. 정말 육갑 보살의 신통력(神通力)이 관음보살님 못지않소이다. 참으로 놀랍소~!”

자원이 다시 물었다.

싸부, 정말 궁금해서 참지를 못하겠어요. 다시 여쭤볼게요. 계곡으로 목간하러 간다는 것은 축토(丑土)를 보신 것이겠지요?”

그렇지. 이것까지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으로 봐도 되겠지. 그런데 계곡에서 문제가 생긴 거야. 계곡에는 이미 먼저 와서 목욕하던 사람이 있었던 것이지.”

그러자 진명이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는 말했다.

그 여인이었군요.”

우창이 진명의 말에 미소를 짓고는 말했다.

그야 나도 모르지. 일단 여인이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봐야 하겠네. 어디 왜 이렇게 풀이하는지 설명해 보겠나?”

우창이 설명할 기회를 주자 진명이 신나서 말했다.

축중신금(丑中辛金)이잖아요. ~ 감탄했어요. 정말 놀랍네요. 축중기토(丑中己土)의 언덕으로 가려진 곳인데, 축중계수(丑中癸水)의 물속에 축중신금(丑中辛金)의 여인이 목욕하고 있었다니 어떻게 이런 통변이 가능할까요? 진명은 삼생(三生)을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불가능할 거예요. 정말 감탄했어요.”

진명에게 미소를 지은 우창이 다시 말을 이었다. 모두 이야기에 빠져들어서 아무런 말도 들리지 않았다.

여인은 젊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자태가 요염(妖艶)하여 누구라도 바라보면 욕정(欲情)이 발동(發動)할 수가 있을 정도로 말입니다. 범접(犯接)하고 싶은 충동을 일으키게 된다면 그것은 아름다운 여인일 가능성으로 볼 수가 있기 때문이지요. 이쯤에서 여쭙습니다. 외모(外貌)가 단정(端正)하고 아름다운 편이었습니까?”

 

우창이 묻자마자 다음 말을 재촉이라도 하듯이 혜공이 말했다.

그렇소, 모두 관세음보살의 환생이라고 할 정도였으니까 말이오. 그래서 어떻게 되었소이까?”

혜공이 아무리 급해도 자원은 이렇게 설명하는 근거를 확인해야만 했다. 그래서 다시 그 이유를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싸부, 말씀 중에 죄송합니다만, 그렇게 본 것은 신금(辛金)이기 때문인 거죠? 신금은 흑체(黑體)로 탐심을 내게 만드는 데다가 물에 잠긴 여인의 나신(裸身)이라고 한다면 아라한(阿羅漢)이라고 하더라도 마음이 동할 수밖에 없지 싶어요.”

오호~! 자원이 오행원에서 놀기만 한 것은 아니로군. 하하하~!”

역시~! 이제 확인되었어요. 어서 다음 말씀을 해 주세요.”

자원도 이야기에 빠져들어 가고 있었다. 우창이 다시 주지를 보면서 풀이를 이어갔다.

여인의 요염한 자태에 이미 열이 오를 대로 오른 정()은 흥분(興奮)을 한 채로 자제(自制)할 힘을 잃고는 범해서는 안 될 음계(婬戒)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일반 사람이라도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것인데 하물며 절간에서 생활하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더욱 그러한 행동에 대한 허물이 얼마나 큰지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우창은 여기까지 말하고서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목도 말랐고, 다들 너무나 이야기에 빠져들어서 잠시 여유를 갖게 할 필요가 있지 싶어서이기도 했다. 모두 우창의 손끝만 바라보고 있음을 느끼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격정(激情)이 지나가고 난 다음에서야 정신이 돌아온 정()은 비로소 자신이 무슨 짓을 한 것인지를 깨닫고서는 후환(後患)이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여인에게 말을 했지요. ‘제발 조용히 입을 다물고 지나가 달라고 말이지요. 그러나 여인은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말했겠지요. ‘주지 스님께 말씀을 드려서 응당한 처벌을 받도록 하겠다고 말입니다. 그 순간 정()의 눈에는 옆에 있는 큰 돌이 눈에 들어왔던 것입니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춘매가 물었다.

스승님, 숨넘어가겠어요. 어서 말씀을 해주시면 안 될까요? 그나저나 큰 돌이 보였다는 것은 시간(時干)의 신금(辛金)을 말하는 것이 맞지요?”

춘매도 답답하면서도 궁금해서 이렇게 물었다. 그러니까 이야기는 어느 사이에 일주(日柱)를 지나서 시주(時柱)로 향하고 있었다. 우창이 춘매를 보면서 미소를 짓고는 주지를 향해서 다시 말을 이었다.

일이 이렇게 전개되었을 것으로 추론(推論)해 봤습니다. 혹 우창이 드린 말씀 중에서 궁금한 것이 있으시면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묻자. 두 화상은 손사래를 치면서 말했다.

지금 아무것도 궁금하지 않소이다. 어서 결과를 들려주시오.”

그러자 자원이 다시 말했다.

싸부, 이것만 확인해 주세요. 신금(辛金)은 돌이 되고, 묘목(卯木)은 신체(身體)가 되기 때문에 그렇게 풀이하신 것이 맞지 싶은데 그런가요?”

맞아~!”

우창은 간단히 답을 하고서 마지막의 신유(辛酉) 패를 한 번 위로 들어 올렸다가 다시 세게 힘을 줘서 내리치자 ~’하는 소리가 들렸다. 모두 그 소리에 소스라쳐 놀랐다. 다들 긴장하고 있는 상태에서 그 소리는 우레와 같이 들렸기 때문이었다. 우창이 다시 설명했다.

경위(涇渭)는 이렇게 되었을 가능성이 있겠습니다. 다만 실제로 이렇게 되었다고는 말하기 어렵습니다. 점괘에서 보여주는 조짐을 우창이 정황을 참작해서 풀이했을 따름입니다. 그리고 이 마지막 패()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비록 우창은 하나의 가능성이라고 말했으나 방에 있는 누구도 그것이 허황한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특히 주지와 혜공은 이미 이마에 식은땀이 숭글숭글 배어 나오고 있었다.

이것은 신유(辛酉)이니 무간지옥(無間地獄)을 의미합니다.”

우창이 이렇게 말을 하자마자 자원이 바로 물었다.

무간지옥이라니요?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혹 시신을 돌로 덮어서 암매장한 것이 아닐까 싶었는데 이건 완전히 예상이 빗나갔네요.”

자원이 이렇게 말하자 처음부터 가만히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현지가 우창을 대신해서 자원에게 설명했다.

아마도 무간지옥이라고 하신 것은 신()은 흑체로 죄인을 빨아들이는 것으로 해석하고 또 유()도 마치 죄인을 가두는 형틀이나 항아리와 같아서 일단 한 번 빠지게 되면 절대로 자신의 힘으로는 헤어 나올 수가 없기 때문이라고 여겨지네. 그렇다면 이미 그 본인인 정()은 그 죄의 대가를 치르고 있거나 앞으로 그에 대한 벌을 받게 될 것으로 해석을 할 수가 있겠어.”

현지가 이렇게 풀이하고는 우창을 바라봤다. 잘못된 곳을 살펴달라는 뜻이었다. 그러자 우창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역시, 현지의 통찰력은 타의 추종(追從)을 불허하는구나. 말한 그대로 나도 생각했으니 말이지. 하하하~!”

우창이 현지의 풀이가 통쾌하여 자기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자 두 화상은 움찔했다. 긴장하고 있다가 놀랐던 모양이다.

, 죄송합니다. 이렇게 웃을 일은 아닌데 우리끼리 연구하던 습관이 있어서이니 크게 허물치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괜찮소. 답만 찾아 주신다면 그것은 아무래도 좋습니다. 가르침을 고대하고 있소이다.”

우선 정()은 이미 자신의 허물로 인해서 고통을 받고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두어 달 전과 후의 모습이 완전히 달라진 사람이 있는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딱 한 사람으로 집히는 것이 있다면 그 사람이 정()일 가능성이 짙다고 하겠습니다. 이미 그는 심리적(心理的)으로 무간지옥에 떨어진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아마도 우창의 생각이 맞는다면 식음을 전폐(全廢)하고 드러누워서 두문불출(杜門不出)하고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자 혜공이 짐작이 간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과연 마음에 짚이는 사람이 있소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해결의 방법까지도 부탁드리겠소이다.”

이렇게 말하면서 진심으로 합장했다. 우창도 이 문제를 어떻게든 좋게 해결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으나 정황상으로 봐서 달리 신통한 방법은 없지 싶었다. 무엇보다도 한 사람의 생명을 앗아간 것에 대한 대가는 치러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우창의 좁은 소견으로는 포청(捕廳)에 데리고 가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자수(自首)하게 되면 정상참작이 될 것이니 처벌을 받아야만 정()의 생명도 유지가 될 것입니다. 벌을 받았다고 생각하면 무간지옥에서 벗어날 수가 있겠으나 그렇지 못하면 영원히 헤어 나오지 못하고 그대로 생을 포기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시간이 급하다고 하겠습니다. 어서 서두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러자 주지가 다급하게 말했다.

아니, 그것은 또 무슨 말이오?”

그렇게까지 되지는 않기를 바라야 하겠으나 계절을 보니 이미 입동(立冬)입니다. ()이 해월(亥月)을 만나면 죽음을 생각할 수가 있을 것이고, 용케 해월을 넘긴다고 하더라도 자월(子月)이 또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무간지옥의 끝까지 도달한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니 어서 가셔서 설득하고 포청으로 데려가시기를 권하겠습니다.”

말을 마친 우창이 다시 남은 차를 마셨다. 이야기를 듣던 대중들도 안타까움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시 대밭에서 바람 소리가 ~’하고 스산하게 들려 왔다. 두 화상은 우창에게 고맙다고 말을 하면서 합장하고는 서둘러서 객실을 나갔다. 이미 사방은 어둑어둑해졌다. 오늘의 한산사는 여기까지인 듯싶었는지 유하가 말했다.

스승님, 오늘은 이렇게 사건을 처리하는 날인가 봐요. 한산사는 내일 다시 와서 구경하기로 하고 오늘은 고단하실 테니 그만 빈관으로 돌아가서 저녁이나 먹으면 어떨까 싶어요. 이야기에 빠져있었더니 배가 고파요. 호호호~!”

비로소 쾌활하게 웃는 유하의 말에 따라서 일행이 산문(山門)으로 나오는데 혜공이 숨이 턱에 닿게 뛰어와서 말했다.

우창 거사, 과연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이미 정()은 죄책감으로 인해서 스스로 금생의 목숨을 거뒀습니다. 오늘 밤에 다비(茶毘:불교식 화장)를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십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듯이 시원하다고 주지 스님께서 꼭 전해주시고 내일 날이 밝으면 다시 와 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여기....”

이렇게 말하면서 봉투를 내밀었다. 아마도 사례금이려니 싶었으나 우창은 한사코 받지 않았다. 대신 말했다.

아닙니다. 이것도 작은 공덕이 된다면 부처님께 회향하겠습니다. 내일 와서 맛있는 차를 얻어 마시는 것으로 대신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거둬 주시기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내일 한산사를 찾아올 수가 없음을 헤아려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혜공은 돌아서서 웃으며 떠나가는 우창의 일행을 바라보면서 합장하고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