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5] 제37장. 유람(遊覽)/ 12.확장(擴張)의 조짐(兆朕)

작성일
2023-06-25 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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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5] 37. 유람(遊覽)

 

12. 확장(擴張)의 조짐(兆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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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유가 겪어온 일들을 소상하게 설명하는 말을 듣고 있던 자원이 이번에는 우창에게 물었다.

싸부, 현재 상황이 참 오묘(奧妙)하네요. 사업은 자리를 잡았다는 것으로 이해하겠는데, 술중정화(戌中丁火)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자원이 묻자. 우창은 순간적으로 노산(嶗山)에서 자원과 같이 공부하던 분위기가 떠올라서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자원을 바라보며 미소를 짓고는 육갑패의 무오(戊午)를 짚으면서 설명했다. 

 

 

 

그야 주목(州牧)의 협조를 받아서 관청(官廳)에서 취급하는 화물(貨物)을 운송하게 되었으니 사업은 날이 갈수록 탄탄하게 번창한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나.”

아니, 오중정화(午中丁火)가 술중정화(戌中丁火)로 들어와서 내 편이 되었다는 의미인가요?”

물론이네. 하하~!”

우창이 이렇게 풀이하자 두 사람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노경유가 간단히 설명했다.

정말 대단합니다. 주목과 만나서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어떤 믿음을 갖게 되셨던지 관청에서 전적으로 우리 배를 이용하게 되었지요. 그리고 모함했던 선박업체들은 모두 도산(倒産)되었습니다.”

이렇게 감탄하면서 경위를 설명해 줬다. 그러자 자원이 다시 물었다.

싸부, 그런데 육로(陸路)의 운송도 가능하다고 보신 것은 계미(癸未)를 살폈기 때문이지 않나요? 계미와 육로는 무슨 뜻인지 자원도 요령부득(要領不得)이에요. 보통은 땅을 의미하는 미()가 위로 가고, 물을 의미하는 해자(亥子)가 아래에 있어야 하잖아요? 그러니까 기해(己亥)가 되었다면 물과 땅에서 사업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가 있겠다는 말이죠. 그런데 그 반대로 되어있으니 이것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자원의 물음에 대해서 우창이 현지를 바라봤다. 풀이를 해보겠느냐는 의미였다. 그러자 현지가 자신이 생각해 본 것을 조심스럽게 말했다.

스승님, 현지의 소견으로는 운하(運河)에서 하는 사업이기 때문에 계미(癸未)가 나왔을 것으로 이해했어요. 만약에 기해(己亥)가 나왔다면 해상(海上)에서 하는 사업이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지요. 어쩌면 연지(年支)의 해수(亥水)를 봐서 처음에는 바다에서 어업(漁業)과 같은 형태의 일을 해보려고 계획했을 가능성도 있었을 거예요. 그런데 생활의 근거지가 소주이고, 바다까지는 멀어서 그 계획은 변경이 되었겠지요. 앞으로는 운하로 선박운송을 위주(爲主)로 하되 아래로는 또 육로(陸路)인 미토(未土)가 등장하게 되는 것으로 봐서 육상으로 운송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판단하셨던 것이 아닐까 싶었으나 이렇게 풀이하는 것이 타당한지는 모르겠어요. 스승님의 가르침이 필요하겠어요.”

현지의 풀이에 감탄한 것은 자원이었다. 현지에게 다시 물었다.

언니의 생생한 설명에 감동했어요. 계미(癸未)는 지상(地上)으로 흐르는 물도 되면서 미()는 다시 도로(道路)도 된다는 의미인가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서 말이야, 혹 계미가 아니라 임술(壬戌)이었다면 태호(太湖)에서 유람선(遊覽船)을 띄우는 사업이라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해 봤는데 말이 되려나?”

현지가 이렇게 계미를 넘어서 임술까지도 말하자 자원의 입이 다물어질 줄을 몰랐다.

어머~! 소름이 돋았어요. 싸부께서 유람하시면서 도대체 어떤 가르침을 언니에게 주셨기에 그러한 통변(通辯)이 가능하시죠? 정말 놀라움을 넘어서 샘이 나요. 호호호~!”

자원의 호들갑에 현지가 웃으며 말했다.

자원이 그렇게 말한다면 고마울 따름이야. 다만 스승님께서 항상 오행원의 제자들을 생각하시는 것을 보면서 오행원에서 수행하는 인연을 지으신 제자들은 참으로 복을 많이 타고난 사람들이구나. 싶었는데 오늘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보니 과연 틀림이 없었다는 것을 알겠어. 호호~!”

현지의 말을 듣고서 춘매와 자원은 마음속으로부터 차오르는 감동의 물결을 느꼈다. 현지의 말을 들으면서 조금도 꾸밈이 없는 진심에서 우러난 것임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자원은 내심을 들키지 않으려고 얼른 다시 물었다.

언니의 설명은 놀라워요. 물심(物心)의 이치를 통달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관찰력이라고 해야 하지 싶네요. 그런데 마지막으로 분주(分柱)의 자리에 있는 갑인(甲寅)은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요?”

아니, 미중정화(未中丁火)조차도 설명하지 않았는데 그냥 넘어갈까?”

현지가 이렇게 말하자 자원이 깜짝 놀라며 다시 물었다.

정말요? 아직도 풀이해야 할 조짐이 남았다니요. 참으로 놀라워요. 어서 설명해 주세요~! 호호~!”

미중을목(未中乙木)은 미중정화(未中丁火)에게 바쳐야 하는 세금(稅金)이야. 다시 말하면 이 사업은 관청을 끼고서 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항상 일정한 금액(金額)을 상납(上納)하는 것으로 상권(商圈)을 보호받게 될 조짐이란 말이지. 그래서 조언함에 있어서 반드시 생략할 수가 없는 소중한 이야기가 될 것으로 생각되었어.”

이렇게 말을 하면서 노경유를 바라봤다. 이렇게 설명한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뜻이었다. 그러자 노경유는 이미 산전수전을 다 겪은 수준임을 보여주는 듯이 말했다.

여부가 있습니까. 과연 명철(明哲)하십니다. 우리야 사업을 하려니까 정해진 대로 따라야만 하는데, 산천의 경계를 벗 삼아서 도만 닦으시는 도사들께서 세상의 잡다한 이치까지도 모두 꿰뚫고 계신다는 것이 감탄스럽습니다. 잘 알아들었습니다. 하하하~!”

노경유가 호쾌하게 웃자 동행인 이 씨도 미소를 지었다. 그 정도는 알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표정이었다. 그러자 현지가 다시 자원에게 말했다.

이렇게 중요한 대목을 확실하게 짚어야 한다고 스승님께서 말씀하셨던 것이 생각났던 거야. 이렇게 되면 미토(未土)에 대해서도 중요한 것을 짚었다고 봐도 되겠네. 다만 약간 걸리는 것은 술미(戌未)가 있는데 이것은 큰 문제는 아니지만 언급(言及)을 하는 것이 좋을지 모르겠어.”

현지가 말을 하면서 말끝을 흐리자 노경유가 다시 얼른 말을 받았다.

무슨 말씀이신지 모두 해 주셔야 합니다. 그것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가리지 말고 들려주시면 저희가 판단하고 해결책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마도 걱정되시는 부분인 듯싶은데 무엇인지요?”

이렇게 말을 하자 비로소 현지가 우창에게 물었다.

스승님께 여쭤야 하겠어요. 사업을 확장함에 뭔가 걸리는 것이 있지 싶은데 그게 뭘까요? 현지는 아무리 생각해도 구체적으로 무슨 의미인지 파악하기가 쉽지 않아요.”

현지가 우창에게 도움을 청하자 조용히 미소를 짓고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우창이 비로소 그 부분에 대해서 말했다.

과연 현지가 잘 설명하셨네. 겉으로 봐서 술미형(戌未刑)은 크게 두려워할 바가 못 된다는 것이야 알지 않는가? 그런데 술미형에서 내부적으로 미중을목(未中乙木)이 술중신금(戌中辛金)에게 손상(損傷)을 받게 된다는 것만 살피면 될 일이지 싶군.”

우창이 살짝 귀띔해 주자 현지가 바로 알아듣고서 두 사람을 향해서 풀이했다. 안산과 유광은 이렇게 이야기가 오가는 것을 들으면서 내심으로 감탄만 연발하고 있었다.

아하~! 그 뜻이었네요. 이제 명료(明瞭)해졌어요. 지금부터 두 분은 제가 드리는 말씀을 잘 들어야 하겠어요. 여태까지도 주목에게 올리는 금전의 일부분을 회계를 담당하는 아랫사람이 자기 주머니에 채워 넣고 있어요. 다만 아직은 일정액이 예정되어 있어서 그대로 유지가 되지만 앞으로 육로의 운송까지 확장하게 되면 그 담당자의 욕심이 발동해서 더 많은 금액을 기대할 것으로 보이는데 이때 조금이라도 싫어하는 기색을 보인다면 사업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갈 조짐이 보여요. 이것이 바로 기둥 아래를 갉아 먹는 쥐라고 하죠. 사소함을 살피지 못해서 집이 기울어질 수도 있다는 뜻이지 않겠어요? 상대를 이길 수가 없다면 양보하는 것이 상책인데 혹 예전에 하던 대로만 하지 말고 별도로 그 담당자에게도 흐뭇한 선물을 하면 예방이 될 것으로 보여요.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셨지요?”

역시 현지는 사려(思慮)가 깊었다. 우창은 큰 맥락(脈絡)만 짚어줬을 뿐, 이렇게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그야말로 하나를 알려주면 열까지도 파악하고 해결책을 찾아내는 능력은 우창도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다. 우창도 이럴 정도이니 자원은 더 말을 할 필요도 없었다.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언니, 정말 감동이에요. 점괘 하나에서 인생의 희노애락(喜怒哀樂)과 탐욕(貪慾)의 절정(絶頂)까지도 훑어내시는 실력은 단순히 육갑만 알아서 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앞으로 많이 배울게요. 자원도 나름대로 육갑에 대해서는 상당히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언니의 풀이를 듣고 보니 그야말로 수박의 겉을 핥으면서 그 맛을 논했다는 부끄러움이 앞서네요.”

그렇게 겸손하지 않아도 돼. 호호~!”

현지가 이렇게 쑥스러운 분위기를 벗어나려고 한마디 던지고는 다시 마지막 패를 짚으면서 자원에게 말했다.

이제 갑인(甲寅)을 살펴볼까? 자원의 의견도 궁금한데 어떻게 생각하면 되겠어?”

현지의 현란한 통변에 넋을 놓고 있던 자원이 자신에게 의견을 묻자 얼른 정신을 차리고는 갑인을 보면서 느낀 대로 설명했다.

자원이 보기에 갑인(甲寅)은 편재(偏財)가 겹쳐있는 것이므로 큰 재물을 쌓아놓고 있는 것으로 보여요. 그러니까 두 분의 사업은 일로번창(一路繁昌)하게 될 것으로 봐도 되지 싶어요. 그렇지만, 언니의 관찰력에는 또 무엇이 보일까 그것도 궁금해요. 이것이 자원의 한계이니 살펴주세요. 호호호~!”

재물에 대한 언급이 나오자 두 사람도 눈을 크게 뜨고 현지의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현지가 눈을 두어 번 깜빡일 정도의 뜸을 들였다가 말을 이었다.

오호~! 제대로 잘 살폈구나. 내가 봐도 그렇게 해석하는 것이 맞겠어. 다만,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했으니 만사는 불여튼튼인지라 그 점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는 것이 좋겠지?”

그러실 줄 알았어요. 인중병화(寅中丙火)가 계속 맘에 걸렸거든요. 이것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걸까요? 아무리 생각해 봐도 답이 보이지 않아서 그냥 어벌쩡하고 넘어갔는데 언니가 그것을 콕 짚어서 말씀해 주실 거죠?”

자원의 말을 듣고서 노경유도 거듭 물었다.

말씀해 주십시오. 조금도 기탄(忌憚)없이 말씀해 주셔야 합니다. 귀를 기울이겠습니다.”

실은, 여리박빙(如履薄氷)의 마음으로 사업을 하셔야 합니다. 폭우(暴雨)로 강물이 범람할 때는 육로(陸路)가 빛을 발하고, 또 폭염으로 육로로 운송하는 것이 힘들 적에는 수로(水路)가 우세할 것이니 이것은 마치 우산 장수와 짚신 장수의 입장과 같은 것이에요. 어떻게 변하더라도 재물은 들어오게 되는 것이지요. 비가 내리면 우산이 팔리고, 햇살이 쏟아지면 짚신이 팔리니까요.”

현지가 이렇게 설명하자 이번에는 이야기에 빠져있던 춘매가 감탄하면서 말했다.

어머나~! 그렇게 멋진 표현법은 어떻게 해야 배우는 것일까요? 말씀을 잘하는 것이 항상 부러워요. 사람의 마음을 주무르는 설득력이네요. 호호~!”

현지가 춘매를 따스한 눈길로 바라보면서 미소를 짓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마지막으로 조심해야 할 것은 화적(火賊)이에요. 내부에 적이 없다고는 못하겠지만 누군가 대가를 지불하겠다는 조건으로 미끼를 던지면 그것을 덥석 물어버릴 소인이 반드시 있기 마련이거든요. 그래서 특별히 주의해야 할 것은 아랫사람을 잘 보살펴야 해요. 아주 사소한 불씨가 집을 다 태워버리기도 하거든요. 불씨가 옮겨붙기 전에는 발로 밟아서 꺼버릴 수가 있지만 일단 발화(發火)가 되어버린 다음에는 온 동네 사람들이 달려들어도 불을 끌 수가 없으니까요.”

맞습니다. 용의주도한 가르침에 감탄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늘 마음에 걸리는 하인이 있습니다. 앞으로 특별히 잘 살피겠습니다.”

오늘의 점괘를 봐서 길흉이 반반이에요. 물론 길한 쪽으로의 의미가 더 커서 다행이네요. 소홀하지 않고 잘 관리하신다면 뜻한 바대로 큰 재물을 얻어서 빈병걸인(貧病乞人)을 구제(救濟)하는 보람을 얻으실 수가 있겠으니 그다음의 일이야 말을 해서 뭘 하겠어요. 축하합니다.”

현지가 이야기를 마치자, 노경유는 현지의 말을 듣고는 잠시 그대로 앉아서 머릿속에 새겨넣고서 품에서 다시 은자 다섯 개를 꺼내놓고는 일어서면서 말했다.

오늘은 조상님이 도와서 귀한 어르신들을 뵙게 해 주셨지 싶습니다. 평생토록 잊지 않아야 할 금언(金言)을 모두 다 얻었지 싶습니다. 작은 성의지만 여정(旅程)에 보탬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저희는 이만 물러갑니다. 정말 오늘의 말씀에 대해서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이렇게 말을 하고는 총총히 사라졌다. 비로소 우창과 일행은 서로 얼굴을 보면서 저마다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그들이 완전히 떠나고 나자 진명이 흥겨워서 말했다.

와우~! 육갑패 만세에요. 그리고 현지 언니도 만세고요. 자원 언니의 통찰력도 감탄했어요. 진명은 언제나 그렇게 명쾌한 풀이를 할 수 있을까요. 정말 더욱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호호호~!”

진명의 말에 춘매도 감동해서 말했다.

그 말은 춘매가 하고 싶은 말이에요. 어쩌면 점괘나 풀이나 그렇게도 죽이 척척 맞는 것일까요?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 귀에 들린다는 거예요. 지금으로는 그것을 위안으로 삼게 되네요. 그렇지만 이렇게 멋진 도반들과 함께하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않아요. 머지않아서 춘매도 그러한 통찰력을 갖추게 될 것으로 믿으니까요. 호호호~!”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를 듣고 있던 우창이 말했다.

, 그만하면 멋진 해후(邂逅)가 된 셈인 것 같군. 아울러서 육갑패의 효용(效用)에 대해서도 충분히 이해되었지 싶으니, 이것보다 더 효과적인 설명도 없지 싶네. 어떤가?”

그러자 춘매가 얼른 말했다.

스승님의 설명을 들어도 좋겠지만 이렇게 실제의 상황을 만나서 목격하게 되니까 그야말로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 딱 어울리는 상황이에요. 이제 더욱 열심히 공부하는 것만 남았고, 그만큼 희망도 커지게 되었으니 그동안 스승님의 가르침을 받지 못했던 것도 상쇄(相殺)하고 남겠어요. 호호~!”

우창이 춘매의 말을 듣고서 말했다.

춘매의 열정적인 마음이 있는데 무엇이 걱정이겠어. 그보다도 내가 없는 동안에 식구들 챙기느라고 노고가 많았겠네. 소주에 머무르는 동안에 유람을 실컷 하고서 돌아가서는 다시 또 함께 공부하자꾸나.”

스승님의 말씀만으로도 너무나 만족한걸요. 함께 하는 도반들이 모두 일치단결(一致團結)해서 너무 오붓한 시간이거든요. 특히 수경(水鏡)과 군엄(君嚴)의 통솔로 인해서 그야말로 일사불란(一絲不亂)하게 정진하고 있었기에 매 순간이 즐겁기만 했죠.”

그렇게 지냈다니 고맙군. 참으로 다행이야. 하하하~!”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자 옆에서 미소를 띠고 있던 유하가 감동하며 말했다.

정말이지 유하는 참으로 운이 좋은 것이 틀림없어요. 실은 개봉에서 머물렀던 청명차관(淸明茶館)의 언니도 제게 은밀히 말했어요. 부사의 인연이 아니라면 차관을 닫아걸고는 동행하고 싶다고요. 그럴 수가 없어서 안타까우면서 자유롭게 동행하는 유하가 부럽다고 하시잖아요. 그래서 아무나 그런 복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하고 웃었죠.”

유하의 말을 듣자 자원이 말했다.

정말 유하 언니를 만나게 되어서 더욱 즐거워요. 함께 열심히 공부해요. 자원도 힘이 자라는 데까지 도움을 드리도록 할게요. 오늘 모인 인연이 모두 형제자매보다도 더 끈끈하게 느껴지는 것은 아마도 마음이 서로 통하기 때문이겠지 싶어요.”

고마워. 자원의 모습을 상상만 했는데 그보다도 훨씬 아름답구나. 호호~!”

그래요? 다행이에요. 기대하지 않아 주셔서요. 호호호~!”

, 그런 뜻이 아니라~ 호호~!”

이때 창밖을 내다보던 염재가 말했다.

소주에 왔는데 이렇게 안부만으로 하루를 보낼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어서 유하 누나께서 안내해 주시면 한산사의 풍경을 감상하고 싶습니다.”

, 맞아. 내가 정신이 없었네. 그럼 한산사(寒山寺)부터 참배하러 갈까?”

그래요. 이미 다녀오신 안산 선생과 오광은 쉬셔도 좋고요. 심심하실 것같으면 같이 가셔도 좋겠습니다.”

그러자 안산과 오광도 같이 나가기로 하고는 준비했다. 일행은 여장(旅裝)을 방으로 옮겨놓고서는 모두 한산사의 구경에 나섰다. 길만 건너면 되었기 때문에 마차는 그대로 두고 염재도 편히 앞장을 섰다.

사문(寺門)을 들어가자 벽()에는 싯귀가 새겨져 있는 것이 보였다. 문자를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우창이 걸음을 멈추고 읽어 봤다.

그림입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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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그림의 이름: 455 한산사.png<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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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641pixel, 세로 285pixel

 

풍교야박(楓橋夜泊)() 장계(張繼)

 

월락오제상만천(月落烏啼霜滿天)

강풍어화대수면(江楓漁火對愁眠)

고소성외한산사(姑蘇城外寒山寺)

야반종성도객선(夜半鐘聲到客船)

 

단풍교에서 밤을 보내며당의 장계 지음

 

달도 기운 하늘에는 서리가 가득한데

청승맞은 까마귀는 무슨 일로 까욱대나

강변의 단풍나무는 고깃배의 불을 보며

끄덕끄덕 졸고 있는데 나그네는 시름에 잠기네

고소의 성 밖 한산사에서

한밤중에 울리는 종소리가 배에까지 들린다.

 

우창이 이렇게 나름대로 감정을 담아서 읊조리자 진명이 듣고 나서 말했다.

참 쓸쓸한 정경이네요. 서리가 내리는 처량한 밤에 달도 기울었는데 왜 까마귀가 울까요? 기러기의 소리가 제격인데 말이에요. 시도 참 이상하네요. 호호호~!”

그래? 그렇다면 어디 진명이 고쳐 볼 텐가?”

우창이 이렇게 부채질하자. 진명이 잠시 생각하고는 까마귀 오()를 기러기 안()으로 바꿔서 읊었다.

 

월락안제상만천(月落雁啼霜滿天)

서산에 달은 지고

밤하늘 찬서리 내리는데

기러기떼 끼룩끼룩

 

이렇게 읊자 모두 손뼉을 쳤다. 우창이 듣고서 말했다.

역시 진명의 영감이 이런 곳에서도 발휘하는구나. 훨씬 좋은걸. 장계(張繼) 선생이 까마귀의 소리를 들었는지 기러기의 소리를 들었는지 모르지만 스산한 밤에 나그네의 풍정(風情)을 살리느라고 까마귀 소리라고 했지 싶기는 하지만, 낭만(浪漫)은 진명이 훨씬 낫구나. 하하하~!”

우창이 이렇게 말하면서 즐겁게 웃자. 그것도 보기가 좋다는 듯이 유하가 말했다.

정말 사제지간(師弟之間)에 장단(長短)이 참 잘도 맞으시네요. 호호호~! 예전에 소주에서 공연하면서도 한산사는 둘러봤지만 이렇게 쓸쓸한 시인 줄도 몰랐죠. 오늘 제대로 품격있는 유람을 즐기는 기분이 들어서 덩달아 흐뭇하네요. 너무 좋아요. 호호호~!”

유하가 즐겁다니 나도 좋군. 그런데 한산사에 대한 유래는 잘 알고 있겠지? 어디 안내를 좀 부탁하네.”

유하가 일행을 둘러보자 모두 자기만 바라보고 있는 것이 즐거웠다. 흡사 무대에서 공연할 적에 청중들이 자신을 보는 것과는 닮은 듯하면서도 또 다른 묘한 기분이 들었다. 서로 교감을 한다는 것의 의미가 새삼스러웠기 때문이다.

한산사(寒山寺)는 양()나라 때 창건되었다고 해요. 원래 명칭은 묘리보명탑원(妙利普名塔院)이었다는데, ()의 태종(太宗) 때 선승(禪僧)이자 시승(詩僧)으로 이름이 높았던 한산(寒山) 화상이 주지를 맡았다고 하여 한산사로 불리게 되었다고 전해요.”

유하의 말에 우창이 화답했다.

유서(由緖)가 참 깊은 사찰이었구나. 예전에 어느 화상에게서 한산습득(寒山拾得)이라는 말을 들었던 것이 문득 떠오르는데 마침 빈관에서 본 액자에 그렇게 쓰여 있어서 무슨 연관이 있겠다 싶었는데 그에 대해도 들어본 바가 있을까? 있다면 이야기해 줬으면 좋겠네.”

스승님의 열망(熱望)이야 누가 말리겠어요. 다만 유하의 상식이란 것이 종이보다도 얇아서 원하시는 바를 모두 채워드릴 수가 없음이 안타까울 따름이에요. 다만 다행인 것은 이 절의 지객(知客) 화상을 알고 있으니 찾아뵙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청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그야 더욱 반가운 말이로군. 그렇게 하지.”

우창도 흔쾌히 동의하자 유하는 지객실(知客室)로 찾아가서 사미승(沙彌僧)에게 합장하고는 물었다.

말씀 좀 여쭙겠어요. 혜공(慧空) 화상을 뵙고자 합니다.”

사미승도 합장하고는 말했다.

대사께서는 주지화상과 차담 중이십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기 바랍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객실(客室)로 안내하겠습니다.”

친절하게 대답하고 객실로 안내하는 사미승을 따라서 객실로 들어가서 편히 앉았다. 절간의 방이라서인지 향 내음이 풍겨서 분위기가 청아(淸雅)했다. 잠시 기다리자 중년의 뚱뚱한 화상이 문을 열고 들어오다가 유하를 발견하고는 반가워하면서 말했다.

아니, 이게 뉘신가? 우미인께서 갑자기 방문하시다니 반갑구려~!”

대사님 그간 평안하셨는지요? 법체가 풍만하신 것을 보니 여전히 잘 지내신 것 같아요. 호호호~!”

나야 산중생활이니 항상 그렇다고 하겠거니와 어쩐 일로 이렇게 오랜만에 나들이하셨소? 봐하니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는데, 이건 또 무슨 일이오? 그 표정은 흡사 우수(憂愁)가 변해서 환희(歡喜)가 되었으니 혹 관음보살이라도 친견하셨던 것이오?”

그건 아니지만, 기연(奇緣)을 만나서 남의 삶을 버리고 제 삶을 살기로 했어요. 그러니까 우희는 세상을 떠났네요. 호호호~!”

어쩐지~ 그럼 새롭게 태어난 이는 뉘시오?”

역시 대사님은 참 빠르시네요. 유하(遊霞)라고 불러주세요.”

유하는 무슨 뜻이지?”

노을 진 석양의 풍경을 바라보면서 한가롭게 노니는 여인이랍니다. 호호호~!”

오호~! 아주 좋구려~! 아무래도 노자(老子)를 만나셨던가 보군.”

맞아요. 입도(入道)했어요. 여기 스승님이세요.”

그제야 우창을 소개했고 다른 사람의 소개는 생략했다. 우창도 화상에게 합장하고 인사했다.

성불하십시오. 우창입니다. 오늘 인연이 있어서 한산사 나들이를 하게 되었습니다.”

~! 잘 오셨소이다. 혜공이오~!”

 

 

그 사이에 사미승이 차를 나눠줬다. 모두 향기로운 찻잔을 받아서 음미했다. 스쳐 지나가는 바람 소리에 대나무가 불경을 외는 듯이 사그락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