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4] 제37장. 유람(遊覽)/ 11.한산빈관(寒山賓館)

작성일
2023-06-20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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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54] 제37장. 유람(遊覽)


11. 한산빈관(寒山賓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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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재가 일행을 모두 태우고는 소주부(蘇州府)로 향했다. 소주부에서 빌린 말을 돌려주고 대신에 백마(白馬)를 한 필 더 샀다. 백색의 털의 말이라서 기존의 말과도 형제처럼 잘 어울렸다. 소주부에 도착하자마자 서둘러서 소주부의 통판을 찾아가서 미리 약속해 뒀던 대로 곡부의 오행원에서 왔을 식구들에 대한 소식을 물었다. 그러자 통판은 반갑게 그들이 묵고 있는 위치를 알려주면서 말했다.

“아, 그분들은 여기에서 멀지 않은 한산사(寒山寺)의 앞에 있는 한산빈관(寒山賓館)에 머물고 계십니다. 마차로 2각(刻:30분)이면 도달할 수 있습니다.”

“살펴 주셔서 고맙습니다. 다음에 또 보답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렇게 인사를 하고는 바로 마차를 몰아서 한산사 입구로 향했다. 한산사는 소주에서 가장 큰 명찰(名刹)답게 규모가 웅장했다. 그리고 그에 걸맞게 맞은 편에는 우람한 한산빈관이 자리하고 있었다. 마차는 빈관 앞에 멈췄고 진명이 먼저 내려서 안으로 갔다. 중년의 여인이 앉아있다가 반겨 맞았다.

“말 좀 묻겠어요. 손님 중에 곡부에서 온 일행이 여기에 묵고 있다고 들었는데 맞는지요?”

“아, 그렇지 않아도 혹 누군가 와서 찾으면 알려 달라고 하셨는데 아마도 그분들이 맞지 싶습니다. 잘 찾아오셨어요.”

주인이 점원에게 지시하자 얼른 위층으로 올라갔다가 잠시 후에 두 여인을 대동하고 내려왔다. 진명이 언뜻 보니까 대략 이야기로만 들었던 춘매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어서 물었다.

“혹 춘매 선생님이.....?”

“어머! 제가 춘매에요. 스승님의 일행이시구나. 반가워요~! 호호호~!”

춘매는 벌써 입이 귀에 걸려서 진명의 손을 잡았다. 진명도 마주 손을 잡고는 말했다.

“저는 진명이에요. 뵙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스승님은 밖에 계세요. 이쪽으로요.”

곡부에서 온 손님을 찾는다는 말에 서둘러 나온 사람은 춘매(春梅)와 자원(慈園)이었다. 우창이 밖에 있다는 말을 듣자마자 한달음에 문을 열고 밖으로 달리다시피 나가서는 마차에 앉아있는 우창을 발견하고는 반가움에 얼른 다가가서 말했다.

“스승님~!”

“싸부~!”

우창도 반가움이 앞섰다. 다만 그렇게 말없이 서로 바라만 볼 뿐이었다. 아니, 할 말은 많았으나 막상 말을 하려니까 나오지 않았던 셈이다. 우창도 얼른 마차에서 내려서는 두 사람의 손을 잡고 흔들었다. 이렇게 반가워하는 모습을 현지(玄智)와 유하(遊霞)는 부러운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마차를 한쪽에 대어 놓은 염재가 말에서 내려서 합장하고는 말했다.

“못 뵙는 동안에도 잘 계셨네요. 스승님을 잘 모시고 왔습니다. 하하하~!”

염재는 두 사람을 보자 흡사 오행원으로 돌아오기라도 한 듯이 기쁜 마음이 되어서 인사를 했다. 대충 인사를 하고는 안으로 들어가서 차탁에 둘러앉았다. 자원이 일행과 인사를 하는 사이에 춘매는 우창을 바라보면서 눈가가 촉촉했다. 걱정과 그리움의 마음이 함께 배어있는 눈물이었다. 그것을 본 우창이 춘매의 등을 토닥여 줬다.

“내가 없는 사이에 많은 오행원 식구들 돌보느라고 고생이 많았겠구나. 소주 구경은 잘했어?”

“고생은 뭘요. 모든 식구도 다들 열심히 정진하느라고 잘 지내고 있어요. 생각보다 많이 늦으셨네요? 워낙 먼 길이라서 그렇죠?”

우창은 말없이 미소만 지었다. 모두 인사하는 동안 가만히 있다가 조용해지자 비로소 말을 꺼냈다.

“이렇게 집을 떠나서 식구들을 보니까 감회가 새롭군. 두 사람만 온 건가?”

우창이 묻자, 비로소 춘매가 말했다.

“웬걸요. 모두 다 따라오겠다는 것을 만류하느라고 혼났지 뭐예요. 특히 수경(水鏡)과 채운(彩雲)은 꼭 동행하고 싶어 했는데 누구는 동행하고 누구는 안 된다고 할 수가 없어서 다음에 모두 같이 나들이하자고 했어요. 그래도 안산(安山) 선생과 오광(五廣)은 동행했어요. 아침을 먹고는 한산사로 산책하러 간다고 했으니 곧 돌아올 거에요. 그런데 지광 선생이 안 보이네요?”

“아, 그랬구나. 지광 형님은 태항산으로 수행하러 가셨지.”

“그러셨구나. 참 좋은 소식이 있어요. 고월 선생께서 오행원을 지키고 계세요. 다른 곳으로 다니셨는데 문득 스승님이 생각난다면서 찾아오셨기에 잘 되었구나 하고 우리가 없는 사이에 제자들을 가르쳐 달라고 부탁했어요.”

춘매의 설명을 듣고서 우창도 무척이나 반가웠다.

“오, 그랬군. 잘 되었네. 고월도 같이 오행원에서 지내면 나도 좋지. 하하~!”

이야기를 나누던 자원이 유하를 찬찬히 보더니 우창에게 말했다.

“싸부, 유하 언니는 노산에 계셨던 상인화(尙印和) 언니를 닮았잖아요?”

“자원이 보기에도 그렇지?”

“유하 언니는 어떻게 만나셨어요?”

그러자 유하가 전후(前後)의 정황(情況)을 설명해 줬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춘매가 말했다.

“스승님이 상인화 선생님을 그리워하시더니 이렇게 고우신 분을 만나셨네요. 함께하게 되어서 더욱 반가워요. 앞으로 많은 세상의 이야기도 들려주세요. 호호호~!”

그러자 유하도 자신을 닮았다는 상인화가 궁금해서 물었다.

“상 선생님은 어떤 분이셨을지 궁금해요.”

우창이 그 말을 듣고 미소를 짓자 자원이 대신 설명해 줬다.

“예전에 노산에 계셨던 분인데 우아하고 품위가 있는 멋진 스승님이셨어요. 가끔 그 언니를 보고 싶으면 스승님을 졸라서 찾아가곤 했었어요. 다시 만난 듯이 반가워요. 유하 언니, 우리 함께 잘 공부해요. 호호~!”

자원이 서른둘이고, 유하는 서른넷이어서 자원이 언니라고 불렀다. 그리고 이렇게 호칭이 자연스럽게 정해지자 이미 오래전부터 그래 왔던 것처럼 스스럼없이 친해졌다. 스승을 중심에 놓고 학문을 매개체(媒介體)로 하고 보니까 거리감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어느 사이에 돈독한 유대감이 생겼다.

서로 오랜만에 만나서 밀린 회포를 푸느라고 한바탕 대화의 꽃을 피우고 있는 사이에 산책을 나갔던 안산과 오광이 들어오다가 일행을 발견하고는 우창에게 바닥에 엎어져서 절을 했다. 많이 반가웠던 모양이다. 안산이 말했다.

“스승님께 문안드립니다. 원로(遠路)에 무탈하시리라 생각하면서 아무래도 염려하는 마음이 조금은 있었는데 안색을 뵈니 무척 좋아 보이십니다. 객고(客苦)도 없으셨나 봅니다. 다행입니다.”

안산이 말을 끝내고는 감격하는 표정으로 허리를 굽히자 옆에서 바라보고 있던 오광도 한마디 했다.

“오광도 스승님의 가르침을 열심히 익히면서 잘 지냈습니다. 이렇게 집을 떠나 소주에서 스승님을 뵙고 보니 그 기쁨이 또 다릅니다. 무척이나 뵙고 싶었습니다. 그래도 언제나 친절하신 자원 선생님과 춘매 누나가 챙겨주셔서 즐겁게 지냈습니다.”

“그래, 나도 이렇게 잘 둘러보면서 여기까지 왔지. 낯선 인연들과도 인사하게. 앞으로 같이 공부하게 될 것이니까. 하하하~!”

우창은 기분이 좋아져서 희색(喜色)이 만면(滿面)했다. 우창뿐만이 아니라 모두가 그랬다. 그렇게 안부를 묻는 사이에 점심을 차렸다는 전갈이 와서 모두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그 사이에 진명이 식구들이 먹을 점심을 챙기고 있었던 모양이다. 최대한으로 푸짐하게 준비하라고 일러뒀던 까닭에 진수성찬이 차려졌다. 맛있는 소주의 음식을 먹으면서도 대화는 끊이지 않았다. 후식까지 먹고 나서야 유하가 오늘의 일정을 말하면서 우창에게 물었다.

“모처럼 모두 한 자리에 만났는데 바로 소주 유람을 하시겠어요? 아니면 그간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오늘은 푹 쉬고 내일부터 둘러보시겠어요? 유하의 생각에는 오랜 시간 배를 타느라고 힘도 들었는데 쉬시는 것을 권해 드리고 싶기는 해요. 호호~!”

유하의 말에 우창도 동감이었다.

“내 마음도 그와 같으니 그렇게 하지.”

이렇게 결정하자, 염재는 오광과 함께 마차를 들여 대고 마굿간에 말을 들여다 매어놓고 들어와서는 다시 차담(茶談)을 나눴다. 염재가 춘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어서 좀이 쑤셨는데 기회가 나지 않아서 틈만 보고 있었다. 그것을 얼른 알아차린 춘매가 염재에게 물었다.

“염재는 스승님 모시고 다니느라고 얼마나 힘들었어? 오가면서 재미있는 것을 많이 접해보고 들었을 텐데 말 좀 해 줘봐.”

눈치가 빠른 춘매가 말할 기회를 주자 염재가 비로소 하고 싶은 이야기를 꺼냈다.

“누나에게 해 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아까부터 입이 근질거렸는데 틈이 안 났습니다. 하하하~!”

“그래? 어서 이야기를 해봐. 무슨 일이야?”

춘매가 관심을 보이자, 자원과 안산도 염재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이번 여정에서 기가 막힌 것을 하나 얻었는데 간단히 말하면 예전에는 고정(固定)되어 있던 오주괘(五柱卦)가 이제는 허공으로 날아다니게 되었거든요.”

염재가 이렇게 이야기에 바람을 넣자 모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소주의 유람은 이미 오래전에 잊었다는 듯이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어? 무슨 비법을 터득한 거지? 오주괘가 날아다니다니? 그건 또 무슨 말인지 자초지종(自初至終)을 어서 말해봐. 궁금하게 하지 말고 설명을 들어야 웃든 울든 할 거잖아?”

춘매가 염재의 말을 재촉하면서 우창을 바라봤다. 도대체 염재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이냐는 의미였지만 우창도 미소만 짓고 있었다. 그러자 진명도 웃으며 육갑패를 꺼내어서 탁자에 올려놓았다. 염재가 말을 하려다가 진명의 동작을 보고서는 진명에게 설명을 넘겼다. 진명의 설명으로 듣는 것이 조리가 정연(整然)할 것으로 생각이 되어서였다.

“그 점에 대해서는 진명이 설명해 드려도 좋을까요?”

“오호~! 그래? 누가 되었든 상관없지만 설명하는 데는 역시 진명 언니의 설명이 더 재미있겠다. 염재는 쉬어도 좋겠어. 호호호~!”

춘매의 말에 진명이 좌중(座中)을 둘러보고는 육갑패를 펼치면서 말을 시작했다.

“스승님께서 큰 깨달음을 얻으셨다고 말씀드려야 하겠어요. 전무후무(前無後無)한 발상(發想)의 전환(轉換)이 일어났으니까요. 그것은 바로 비유하자면 목판(木板)을 활판(活版)으로 만든 것이라고 할 수 있겠어요.”

“어? 언니, 목판과 활판이라고요? 그건 무슨 뜻이지?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야지. 춘매는 못 알아듣잖아요.”

춘매의 말을 들은 염재가 거들었다.

“누나가 못 알아들을 수도 있겠네요. 염재가 말씀드려도 되겠습니다. 목판이라고 한 것은 나무판에 글자를 새긴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벽에 걸린 편액(扁額)을 가리켰다. 편액에는 한산습득지향(寒山拾得之鄕)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저 글귀는 고정(固定)되어 있어서 다시 사용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고정불변이라는 의미가 되기도 하겠습니다. 이건 무슨 의미인지 아시겠지요?”

춘매도 그 정도의 말은 알아들었다.

“그야 나도 알아. 그런데 활판이라는 말이 무슨 뜻이야?”

“활판은 글자들이 따로따로 떨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예를 들면 인장(印章)을 생각할 수가 있겠네요. 한(寒), 산(山), 습(拾), 득(得), 지(之), 향(鄕)을 따로 만들었다면 얼마든지 많은 종이에 그 글자를 찍어서 다시 나무판에 새길 수가 있으니까요.”

“아하~! 염재가 그렇게 설명해 주니까 바로 이해가 되네. 그래서 글자가 살아있다는 말이구나. 그럼 활판(活版)이란 활자(活字)라고도 할 수가 있는 거야?”

춘매가 이해를 한 듯이 말하자 염재도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활자를 모아서 판을 만들면 그것이 활판이 되는 겁니다. 종이에 도장을 찍듯이 찍고, 다시 다른 조합으로도 판을 만들 수가 있지요. 가령, 산(山)과 향(鄕)을 붙여서 만들면 산향(山鄕)이 되는 이치라고 하겠습니다. 목판과 활판에 대해서 이해하셨다면 다시 진명 누나의 설명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하하~!”

염재가 설명을 마치자 다시 진명이 말을 이었다.

“염재가 설명을 잘했어요. 그러니까 오주괘(五柱卦)는 목판과 같아서 오주를 조합하는데 변경(變更)을 할 수가 없어요. 무슨 뜻이냐면, 가령 지금의 점괘를 본다고 할경우에 연주(年柱)는 반드시 신미(辛未)라야만 하고, 월주(月柱)는 또 기해(己亥)가 될 수밖에 없잖아요?”

진명의 설명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춘매가 얼른 말했다.

“맞아요, 오늘 일진이 병인(丙寅)인 것도 말이지요, 근데 그것은 당연한 고정불변(固定不變)이잖아요? 언니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이해가 안 돼요.”

춘매는 진명의 설명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이 물었다. 그러자 진명도 춘매를 상대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렇지? 춘매가 생각해도 그것은 당연하잖아?”

“말을 하면 입만 아프잖아요.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거에요?”

“그런데, 연주(年柱)를 갑자(甲子)로 해도 되고, 을축(乙丑)으로 해도 된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엉망진창이 되겠죠. 그런 것이 어디 있어요?”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자원이 비로소 이해되었다는 듯이 말했다.

“아하~! 알겠어. 그러니까 진명의 말인즉 팔괘(八卦)가 적힌 팔면(八面)의 주사위를 던져서 점괘(占卦)를 얻는 것과 비슷하다는 뜻이구나.”

자원이 이렇게 말하자. 조금 전에 통성명(通姓名)하면서 동갑내기인 것을 알게 된 진명도 말을 받았다.

“맞아~! 바로 그 뜻이야. 호호호~!”

진명이 자기도 모르게 큰 소리로 답하자 저쪽 탁자에서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던 남자가 고개를 돌리고 우창 일행을 바라보면서 머뭇거리다가는 일어나서 다가와 말했다.

“초면에 실례하겠습니다. 예의는 아닙니다만, 무심코 나누시는 대화에서 점괘를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혹 점괘를 청해 볼 수가 있겠습니까?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있어서 의논하던 중이었습니다만.”

진명은 열심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난데없이 끼어든 남자가 반갑지 않았다. 말을 끊게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자원이 눈빛을 반짝이면서 말했다.

“물론이에요. 선생께서 고민하시는 것이 있으시다면 같이 의논해 봐도 되겠네요. 이쪽으로 합석(合席)하시지요.”

남자는 동행한 사람과 같이 자리를 옮겨서 앉았는데 행색(行色)을 봐서는 평범했으나 예의는 배운 것으로 보였다.

“말씀 중에 끼어들어서 참으로 죄송합니다만, 제가 처한 일이 곤란해서 어떤 도움이라도 받고 싶은 마음에서 결례(缺禮)했으니 널리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도움의 말씀을 청하면서 작은 성의나마 복채로 사례하겠습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품에서 은자 세 개를 앞에 꺼내놓았다. 봐하니 형편은 여유가 있는 모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의가 보여서 우창도 거절하지 않고 말했다.

“아닙니다. 실례랄 것이 있겠습니까. 무엇이든 말씀하시면 들어보고 도움이 되는 길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창이 흔쾌히 승낙하자. 처음에 말을 건넸던 남자가 자기를 소개했다.

“소생은 노경유(盧景裕)라고 하며, 소주에서 이 친구와 함께 선박업(船舶業)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근래에 해상(海上)의 운송(運送)만 하지 말고 육로(陸路)로도 운송을 확장 시키자는 제 생각에 대해서 친구가 한사코 반대합니다. 사통팔달로 뻗어가는 화물(貨物)의 흐름을 봐서 지금이 해상과 육로를 같이 운영하면 딱 좋을 적기라고 생각했는데 친구는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면서 말리고 있어서 갈등이 발생했습니다. 운하(運河)를 이용하여 화물을 대량으로 옮기고 운하가 없는 곳에는 마차를 이용한다면 훨씬 효과적으로 결과를 얻을 수가 있다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설득하던 중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내심 어디에 밝은 도사가 있다면 찾아가서 이러한 일을 물어보고 싶다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차에 점괘에 대한 말씀을 나누시는 것을 듣게 되었으니 이 또한 인연이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셨군요. 이해됩니다.”

우창이 간단히 대답했다. 비록 대답은 간단히 했지만, 염두를 굴리느라고 머릿속은 복잡했다. 사주로 운을 봐 줄 것인지, 오주괘로 점단(占斷)을 찾아볼 것인지, 아니면 육갑패로 하늘의 뜻을 받아보는 것이 좋을지를 선뜻 결정하지 못했다. 그런데 자원이 우창의 생각을 읽기라도 했다는 듯이 말했다.

“싸부, 지금이 바로 육갑패의 영험함을 접하게 될 기회네요. 어르신께서 점기(占機)를 얻으셨으니 반드시 명쾌한 해답을 얻게 되시지 않겠어요?”

자원의 말을 듣자 우창도 머릿속이 말끔하게 정리가 되었다. 그런데 또 다음이 문제였다. 두 사람의 일이니 두 장의 육갑패를 사용해야 할지, 초중말(初中末)의 의미를 살펴보기 위해서 세 장의 패를 보는 것이 좋을지에 대해서도 생각이 미쳤다. 그러나 자원은 그러한 것에 대해서도 생각할 틈을 주지 않았다.

“싸부께서 틀림없이 변화(變化)한 오주괘를 보여주시겠군요. 어서 보고 싶어요. 호호호~!”

우창은 항상 그렇듯이 자원의 눈치에 대해서 감탄했다. ‘오주괘(五柱卦)’라고 말을 한 것은 다섯 장의 패를 통해서 답을 보여 달라는 말이기 때문이었다. 우선 알고 있는 것이 오주괘인데 당연히 다섯 장을 보여 줄 것이라는 생각으로 말을 한 자원이었지만 우창은 이것도 하나의 조짐으로 여기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탁자 위에 육갑패를 펼쳤다. 그것을 본 오행원의 식구들은 군침을 삼켰고, 두 사람은 손에 땀을 쥐었다.

“자, 두 분의 사업이 일취월장(日就月將)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어디 손이 가는 대로 다섯 장의 패를 뽑아보시겠습니까?”

이렇게 부채처럼 앞에 펼쳐진 패를 보자 두 사람은 일순간(一瞬間) 긴장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처음에 말을 한 노경유가 조용히 바라보고 있는 동업자에게 뽑기를 권했다.

“이형이 뽑으시게. 결과가 어떻게 나오더라도 나는 그 결과에 대해서 이견(異見)을 붙이지 않을 테니까 말이네.”

그러자 이형으로 불린 사람이 잠시 망설이더니 조심스럽게 육갑패에서 다섯 장을 뽑아서 가지런히 놓았다. 그렇게 하고서는 긴장된 표정으로 우창을 바라봤다. 모두의 눈이 그 다섯 장의 패로 모였다.


 


 

우창도 육갑패를 일별(一瞥)하고는 노경유를 보면서 질문의 요지(要旨)를 명확하게 다시 물었다.

“두 분이 원하는 것은 사업(事業)을 확장(擴張)하는 것이 타당할 것인지에 대해서 알고 싶은 것이 맞습니까?”

그러다 두 사람이 거의 동시에 답을 했다.

“맞습니다~!”

“그러시다면 결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노 선생의 말씀대로 사업을 확장하시면 크게 번창하실 것입니다. 미리 축하드립니다.”

우창의 한 마디에 두 사람의 얼굴에는 갑자기 화색(和色)이 감돌았다. 이들에게는 그만큼 막중(莫重)한 일이었던 모양임을 누가 봐도 짐작할 수가 있었다. 이번에는 오행원의 제자들이 궁금해서 우창의 설명을 기다렸다. 특히 자원은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서 잠시 생각을 가다듬어야 했다. 다들 점괘를 들여다보면서 나름대로 풀이를 해보느라고 잠시 침묵이 흘렀다. 가장 먼저 입을 뗀 사람은 역시 자원이었다.

“싸부, 정말 신기막측(神奇莫測)해요. 이렇게나 멋진 궁리를 하셨을까요? 역시 싸부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할 거에요. 감탄했어요. 호호~!”

“그런가? 이 또한 시절인연(時節因緣)이겠거니 싶군.”

우창이 담담한 듯이 답하자 자원이 궁금한 것을 하나씩 풀어가면서 우창에게 확인했다.

“자원이 생각하기에 육갑패라고 하더라도 이치는 하나일테니 이 가운데 있는 경술(庚戌)은 오주괘(五柱卦)의 일주(日柱)와 같은 것으로 보면 되겠죠?”

“당연하지.”

“그렇다면 연월은 신해(辛亥)와 무오(戊午)가 담당하고 시분은 계미(癸未)와 갑인(甲寅)이 담당하겠군요.”

“맞아. 이렇게 배열이 된 다음에는 오주괘라고 생각하면 간단하지.”

“알겠어요. 그렇다면 연주(年柱)의 신해(辛亥)는 물에 철선(鐵船)을 띄운 것으로 보면 될까요?”

“그렇지.”

우창이 이렇게 대답하자 자원은 확인을 위해서 노경유에게 물었다. 대화를 위해서 한 사람을 지정하는 것이 좋은데 두 사람의 모습에서 이(李) 씨보다는 노경유가 활발해 보여서였다. 역시 노경유가 바로 답을 했다.

“정말 놀랍습니다. 남들은 목선(木船)으로 운항(運航)하고 있을 때 우리는 철선을 준비했지요. 처음에 비용은 많이 들어가겠지만 장기적으로 본다면 견고한 철선이 오히려 효과적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육갑(六甲)에 철선이 들어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풀이하는 말씀이 더욱 놀랍습니다.”

자원이 일단 두 사람의 마음에서 점괘의 조짐이 제대로 발동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 그러다 내친김에 좀 더 과감하게 파고 들어갔다.

“다시 여쭙겠어요. 처음에는 사업이 순풍에 돋을 달고서 무척 재미가 있으셨는데 도중에 큰 산을 만나셨나요? 사업에 위기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요?”

“맞습니다. 사업이 한창 물이 올라서 배를 열 척이나 마련하게 되었는데 갑자기 관청으로부터 불법(不法)을 저질렀다는 혐의를 받아서 조사받게 되었으니까요.”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시죠?”

“우리의 사업이 번창하자 주변에서 경쟁자가 관청에 모함했던가 봅니다. 그리고 사업을 하다가 보면 불법과 합법의 경계(境界)에서 일을 진행하게 될 경우가 많거든요. 그래서 관청이 판단하기에 따라서는 무죄도 유죄가 될 수 있고, 반대로 유죄도 무죄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협조를 부탁하는 의미로 주목(州牧)을 만나서 긴히 부탁해서는 겨우 위기를 모면했습니다. 그야말로 주화입마(走火入魔)요 새옹지마(塞翁之馬)였지요. 지금도 당시를 생각하면 모골이 송연할 따름입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짓는 표정에서 어려운 시기에서 참으로 큰 산을 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함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제자들의 마음에도 그러한 정황을 상상하면서 공감할 수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