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1] 제37장. 유람(遊覽)/ 8.금맥탐사(金脈探査)

작성일
2023-06-05 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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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1] 37. 유람(遊覽) 

 

8. 금맥탐사(金脈探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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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명은 무엇보다도 우창이 자신을 이렇게까지 믿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마음 한편이 뿌듯했다. 이러한 생각은 명료하게 믿는 관계가 아니라면 시도하기에 망설여질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처음으로 시도하는 것이지만 뭔가 될 것만 같은 기대감이 생겼고, 금맥(金脈)을 반드시 찾아야만 한다는 사명감과도 같은 힘이 가슴 속에서 출렁였다.

그런데, 스승님은 진명을 그렇게까지 믿으세요?”

? 그게 무슨 말이야? 진명은 나를 그만큼 믿지 않나?”

진명이야 스승님을 믿죠, 그보다 더하면 더 했지 덜하지 않을걸요~!”

그래, 진명이 날 믿는다면 나도 진명을 믿는 것이 당연하잖아? 새삼스럽게 왜 그런 말을 하지?”

너무 감사해서죠. 왜 그런 거 있잖아요. 괜히 저만 특별한 대접을 받는 듯한 느낌 말이에요. 그런 기분이 들어서 잠시 울컥했어요. 호호호~!”

착각하지 말아. 내겐 제자들 모두가 특별하니까. 하하~!”

! 진명이 착각했었군요. 알았어요. 이젠 정신 똑바로 차릴게요. 착각하다가 상처라도 받으면 저만 아프니까요.”

그만, 쓸데 없는 말은 시끄럽고. 내 계획이라면 오늘 핵범전을 하고 나면 내일을 지나서 모레쯤은 금맥이 나왔으면 좋겠어. 어쩌면 황연수의 일도 그 안에 변화가 생길 것으로 보이고 하니까 말이지.”

우창이 갑자기 청명차관의 황연수를 말하자 의외라는 듯이 우창을 바라봤다. 의아해하는 진명을 보면서 말했다.

, 그 점괘 있잖아. 정실부인이.....”

당연히 기억나죠. 그런데 진명이 의아한 것은 그게 왜요? 정실부인에게 갑작스러운 일이라도 일어나요?”

어쩌면.....”

? 왜 그렇죠?”

일단 두고 봐야지. 내 생각이 맞을지 나도 궁금하니까. 하하하~!”

정말 궁금한 것만 한가득 이네요. 알았어요. 그만 차관으로 가요. 아침을 얻어먹어야 뭔가 다음 일이 진행되죠.”

우창과 진명이 숙소로 돌아오자, 이미 다들 일어나서 준비하고 있었다. 염재도 100장의 핵범전(核凡錢)을 다 쓰고는 붓을 씻고 있었다. 들어오는 우창을 보고 유하가 말했다.

스승님, 편히 쉬셨어요? 오늘은 재미있는 일이 일어나겠죠? 벌써 기대가 되어서 우리끼리 앞으로 벌어질 일을 이야기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금광에도 가보고 싶은데 같이 가도 되나요?”

그래 다들 잘 주무셨구나. 당연히 금광에 가봐야지. 재미있는 일이 있을 테니까 아마 기대를 해봐도 좋지 싶군. 하하하~!”

염재가 공을 들여서 쓴 핵범전의 종이를 우창에게 넘기자 우창이 깨끗한 백지(白紙)에 잘 싸서는 챙기고 일행은 모두 마차로 차관으로 향했다. 이른 시간에 떠오르는 태양이 대지를 밝게 물들이고 있었다. 차관에 도착하자 황연수가 이미 나와서 기다리고 있다가 반겨 맞았다.

어서들 오세요. 준비해 놓고 기다렸어요. 잠자리는 편안하셨어요?”

모두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는 들어가서 정갈하게 차려진 아침을 먹었다. 그리고는 우창이 황연수에게 부탁해서 등촉(燈燭)을 준비해 줄 수가 있는지 물었다. 가능하면 향로(香爐)까지 챙겨보라고 하자 황연수가 평소 길일(吉日)에 기도하느라고 준비해 둔 것들을 모두 챙겨서 가져왔다. 염재가 그것들을 상자에 잘 담고는 마차에 실었다.

혹 빠진 것은 없는지 또 챙겨보시고요.”

꼼꼼한 현지가 말하자. 우창이 다시 생각해보고는 그만하면 다 되었다고 생각하고 말했다.

, 종이에 불을 붙이려면 부싯돌이 필요한데 그것도 챙겨야겠군.”

이렇게 말하자 황연수가 말했다.

, 그것은 등촉을 담으면서 당연히 챙겼어요. 그런데 저도 어떻게 될지 궁금한데 도사님을 따라가 보면 안 될까요?”

어느 사이에 차관의 주인과도 한 식구가 된 것만 같았다. 그래서 소풍 삼아서 바람 쐬러 나가자고 했다.

 

잠시 후에 오응빈과 주종건이 말을 타고 도착해서는 주인에게 은자가 든 상자를 맡겼다. 그리고 뚜껑을 열어서 일백 냥이라는 것을 확인하고는 다시 닫아서 주자 황연수가 받아서 안으로 옮기도록 하고는 다시 나왔다. 두 사람도 기대되는 표정이 역력했다. 오응빈이 말했다.

도사님만 믿겠습니다. 이번 일에 우리는 파산(破産)이 될 수도 있습니다. 꼭 좀 잘 이뤄지도록 해 주시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그야 물론이지요. 최선을 다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린 준비가 되었으니 광산으로 가보도록 합시다. 거리는 얼마나 되는지요?”

여기에서 한 시진(時辰)만 가면 됩니다. 우리가 앞장서겠습니다. 따라오시면 됩니다.”

두 사람이 말을 타고 앞장을 서자 우창의 일행도 모두 뒤를 따랐다. 산길은 가팔랐고 겨우 마차 한 대가 지나갈 정도의 길만 닦여 있어서 염재가 조심스럽게 말을 몰아서 앞으로 나갔다. 그렇게 해서 도착한 곳은 물이 흐르는 계곡을 끼고 있는 산허리였다.

다 왔습니다. 여기가 광산의 입구입니다.”

말에서 내리면서 오응빈이 말했다. 그러자 막사(幕舍)로 보이는 곳에서 광부들 십여 명이 밖으로 나와서는 일행을 맞았다. 표정으로 봐서 금이 나오지 않으면 모두 실직(失職)해야 할 상황이라는 듯이 기대가 가득한 눈빛으로 우창과 일행들을 보고 있는 모습을 접하고 보니 여기에서 금이 나오지 않으면 좌절할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할 수가 있었다.

이 산의 이름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우창이 산의 이름부터 물었다. 오응빈이 말했다.

이 산은 계족산(鷄足山)이라고 합니다.”

산의 이름을 듣고서 우창이 하마터면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하필이면 닭발의 산이라니 참 오묘한 느낌이 들었다. 제자들을 바라보자 모두 그들만이 알고 있는 미소를 지었다. 차관의 벽에 걸렸던 그림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그래서 산의 중턱에서 금을 찾고 있었다는 것을 알만했다. 그러나 닭이 알을 낳으려면 조금 더 아래로 내려가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퍼뜩 들었으나 그것은 진명에게 맡겨보기로 하고 일단 입구에다 기도(祈禱)의 제단(祭壇)을 만들었다. 그리고 오응빈에게 말했다.

, 이곳은 우리가 법술(法術)을 실행해야 하므로 모두 저 아래의 개울가에 있는 바위에서 기다려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모두 돈이라도 놓고 절하라고 할까 싶어서 준비하고 있다가 오히려 비켜달라니까 다행이다 싶은 표정으로 얼른 내려갔다. 우창과 제자들만 남게 되자. 우선 염재에게 써온 핵범전을 한 장씩 읽으면서 불에 태우라고 했다. 그러니까 백번을 읽으면서 태우는 일만 반복하면 되는 것이었다. 염재는 우창이 시키는 그대로 따라서 했다. 그렇게 해 놓고서 이번에는 진명에게 말했다.

, 여기에서 관지술(觀地術)을 펼쳐보는 거야. 핵범전을 태우는 동안에 지광 형님에게서 받은 지맥법(地脈法)을 활용해서 잘 살펴보도록 하지.”

진명도 우창이 시키는 대로 마음을 집중하고 지하(地下)에 대한 관법(觀法)을 실시(實施)했다. 이렇게 저마다 맡은 일에 열심인 것을 보며 현지도 염재가 핵범전을 태우는 동안 옆에서 합장하고는 산왕대신(山王大神)을 염했다. 계족산의 산신령이 영험한 힘을 보여달라는 염원을 담아서 불이 붙어서 타오르는 소지(燒紙)와 함께 현지의 염원도 허공으로 보내는 것이었다. 유하는 이러한 것을 하나하나 자세히 기억했다. 잠시 후에 앉아있던 진명이 우창에게 조용히 말했다.

스승님, 아마도 이것이 금맥에서 보내온 것으로 느껴져요. 왼쪽으로 그러니까 저쪽에 있는 바위의 오른쪽으로 금빛이 보였어요. 핵범전을 태우자 더욱 또렷하게 보이네요. 참 신기해요. 거리는 대략 50보 정도 되겠네요.”

진명의 말에 우창도 반가워하면서 다시 말했다.

잘했어. 그렇다면 깊이는 어떻게 되는지 잘 가늠해봐. 아래인지 옆인지를 알면 더 좋지.”

우창이 이렇게 주문하자, 진명이 다시 조용히 관법을 전개하고는 다시 말했다.

비스듬하게 파면 되겠어요. 아래쪽이에요. 방향은 여기에서 봐서 동북이네요. 대략 10(:30m)정도는 들어가야 하겠어요. 그러면 상당히 강한 금맥이 느껴져요. 폭은..... 1(:3m)이면 되지 싶어요. 스승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황금 300관은 충분히 나오지 싶어요.”

이렇게 말을 마치고는 진명이 일어섰다. 그리고는 산을 향해서 절을 3배 올렸다. 자연이 보여준 것에 대해서 공덕을 찬탄하는 기도였다. 우창도 함께 절을 하면서 감사하는 사이에 염재도 핵범전을 다 태우고는 재가 날아가는 곳을 향해서 합장하고 원하는 일이 뜻과 같이 잘 이뤄지기를 바란다는 염원을 실어 보냈다.

우창이 제자들과 함께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던 개울가의 바위로 내려가자 다들 기대에 가득한 눈빛으로 우창의 말을 기다렸다. 제자들이 모두 자리를 잡고 앉자 차분하게 설명했다.

, 지금부터 드리는 말을 잘 들으셔야 합니다. 조금 전에 계족산의 산신령과 통신(通神)했습니다. 산신께서 말하기를 고사도 제대로 드리지 않고서 채굴했다고 하시는데 어떻게 된 것입니까?”

, 그렇습니다. 마음이 급해서 정성이 부족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일단 오늘은 우리가 기도를 드렸으니까 공사를 진행하면 됩니다. 내일 아침에 공사하기 전에 먼저 돼지 한 마리와 술 한 동이를 올리고 모두 절을 한 다음에 일을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제가 가리키는 곳을 잘 보셔야 합니다.”

이렇게 말하고는 손가락으로 진명이 말한 곳을 알려주고 정확하게 이해한 것을 확인하고서 말했다.

동북향(東北向)으로 비스듬하게 지하로 굴을 파야 합니다. 다른 방향으로 가면 다시 헛된 고생을 하게 될 테니까요.”

그러면서 손으로 각도를 알려주자. 그들도 땅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이어서 바로 알아들었다. 우창도 말을 끝맺었다.

대략 10장 정도에서 변화가 생길 것입니다. 그다음에는 다들 알아서 하실 일이 있을 테니까 긴말은 하지 않아도 되지 싶습니다. 그러면 아마도 3일 내로 반가운 소식을 접하게 될 것으로 봅니다. 어서 올라가서 일을 시작하시지요. 우리는 청명차관으로 돌아가서 낭보(朗報)를 기다리도록 하겠습니다.”

이렇게 말하고는 모두 마차로 돌아가자 오응빈과 주종건은 수고 많았다는 말을 열 번도 더 하면서 두 사람을 배웅하고는 산으로 올라갔다. 돌아오면서 흔들리는 마차에서도 모두 기대감과 설렘이 교차했다.

차관에 도착한 일행은 주변의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는 황연수를 제외하고 모두 다시 개봉의 유람을 이어갔다. 느긋하게 둘러보느라고 하루에 둘러볼 곳도 두어 군데에 불과했으나 그 하나하나에서도 유구한 세월의 흔적을 느끼기에는 충분했다. 진명이 유하에게 물었다.

언니, 오늘은 어디를 보여주실 거예요?”

그래, 어디가 좋을까? 어쩌면 아침부터 산속을 누비고 다녔으니 공원에서 느긋하게 풍경을 감상하며 쉬는 것이 좋겠지?”

맞아요. 많이 돌아다니지 않아도 좋겠어요.”

그렇다면 용정원(龍亭園)으로 안내하는 것이 좋겠구나. 예쁜 국화를 감상하면서 가을의 오후를 즐겨봐. 호호호~!”

유하를 따라서 잠시 이동하자 이내 국화 향이 가득한 화원이 나타났다. 어디에서도 국화는 지천이었지만 청명상하원의 화려한 국화와는 또 다른 자연미(自然美)에 바탕을 두고 조성한 화원(花園)이 오히려 풋풋한 느낌이 들어서 더욱 정감이 갔다. 염재도 마차를 세운 다음에 일행을 내려놓았다. 길가에는 갖가지의 주전부리를 팔고 있는 좌판(坐板)들이 줄을 지어 벌려있어서 그것도 볼만한 풍경이었다. 사람들도 저마다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서 자신의 흥취대로 풍경을 즐기는 모습이 흥겨웠다. 한쪽에서 물소의 뿔을 닮은 물 밤을 발견한 우창이 어려서 연못에서 캐 먹던 생각이 나서 한 봉지 샀다. 정식으로는 마름 열매라고 하지만 우창의 마을에서는 물 밤이라고 불렀는데 그 의미는 물에서 나는 밤이라는 뜻이다. 이름에 걸맞게 맛이 영락없는 밤을 먹는 것과 같았다.

스승님도 물 마름에 대한 추억이 있으셨네요? 제 고향에서는 물 마람이라고 했어요. 저도 어려서 많이 먹었는데 오랜만에 봐요. 그러고 보니 이 가을이 제철이네요. 산에서 나는 과실만이 아니라 물에서 자라는 물 밤도 가을이 제철이라는 것이 참 신기하네요. 호호호~!”

현지가 말하면서 다 같이 먹을 요량으로 세 봉지를 더 사서는 의자의 중간에 내려놨다. 다만 염재는 처음 보는 것이었다.

물 밤이라니 맛이 밤을 닮았는가 싶습니다. 생긴 것으로 봐서는 전혀 밤과 무관한데 말입니다.”

염재의 말을 듣자 유하가 웃으면서 말했다.

연못에서 헤엄치고 돌다가 바닥을 밟고 다니면 이 가시가 발바닥을 콕콕 찌르잖아. 그러면 잠수(潛水)해서 파내면서 놀았었어. 아련한 옛날이 되어버리긴 했으나 기억은 왜 이리도 생생한지 모르겠네. 호호~!”

그렇습니까? 염재는 그런 것은 모르고 자랐습니다. 역시 어린 시절의 추억은 소중한 것인가 봅니다. 떠올릴 생각이 많은 것도 참 좋지 싶습니다. 염재는 훈장님과 학동들이 어울려서 팽이를 치고 놀던 것만 생각날 따름이니 말입니다. 하하~!”

그렇겠구나. 나는 어린 시절에 그렇게 뛰놀다가 배가 고파지면 물 밤을 캐어 갖고 와서는 돌로 내리쳐서 딱딱한 껍질을 으깬 다음에 안에 있는 하얀 살을 오도독오도독 씹으면 세상에 부러울 것이 하나도 없었지. 세월이 흐르면 힘들었던 시절의 풍경도 아름답게 변하는가 보네. 배가 고파서 힘들었던 현실이었는데도 기억은 좋은 것만 떠오르는 것을 보면 말이야.”

이렇게 말을 하던 유하가 우창에게 물었다.

스승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옆에서 미소를 지으며 물 밤을 먹고 있는 우창에게 갑자기 묻자 유하의 얼굴을 보면서 우창이 말했다.

그야 사람마다 다르지. 유하의 기억이 그와 같으면 매우 긍정적(肯定的)인 사유(思惟)를 하는 것으로 보면 되는 거야. 부정적(否定的)인 사고력(思考力)을 갖는 사람에게는 아프고 힘들고 쓰린 순간들로 가득 채워져 있어서 오늘을 살아도 얼굴이 펴지지 않을 테니 말이지. 하하~!”

그러니까 이러한 것도 모두 팔자의 영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봐야 할까요? 공부가 부족해서 답답한 것이 너무 많지만 그래도 즐거워요. 언젠가는 이러한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동참하게 될 것을 믿거든요. 호호호~!”

모두 팔자 탓이라고 할 수는 없어. 환경에서 주어진 것도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영향력을 발휘하니까 말이지. 그래도 팔자를 제외하고 생각할 수가 없다면 팔자의 영향이 결코 가볍다고 할 수는 없겠군. 공부는 천천히 쉬지 않고 하면 되는 거지. 하하~!”

이렇게 담소도 나누다가 또 걸으면서 국화도 감상하는 시간의 여유로움은 무엇과도 바꿀 수가 없는 순간들이었다. 특히 용정(龍亭)이 이름은 정자였지만 실은 거대한 또 하나의 대궐이었다. 왕의 명으로 지어진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름은 실물과 어울릴 적에 자연스러운 것인데 이러한 건물이라면 차라리 용루(龍樓)라고 해야지 않았을까 싶었다.

한나절을 즐겁게 공원의 풍광을 보면서 노닐었다. 그리고는 저녁을 먹고 차관에는 아침에 신세를 졌으니 다시 또 가지는 않고 저마다 자기의 숙소에서 푹 쉬었다. 내일 아침에도 밥을 먹으러 오라는 다짐을 황연수에게서 받아뒀기 때문에 그냥 쉬고 아침에 가기로 했다.

 

푹 자고 난 우창은 새벽 인시(寅時)에 잠이 깨었다. 예의 그 목탁 소리가 다시 들렸다. 우창은 조용히 정법사로 향했다. 노승이 기도하고 있었다. ‘나무아미타불의 소리가 대웅전과 절도량에 울려 퍼졌다. 우창이 산문(山門)의 입구에서 조용히 합장하고 마음속으로 빌었다.

대사님께서 전해주신 법으로 번뇌에 빠진 두 중생을 구제하고자 하였습니다. 부디 그들의 원하는 바가 이뤄지기를 기원합니다.’

이렇게 세 번을 염하면서 허리를 굽혔다. 그리고는 조용히 걸음을 돌려서 호반을 거닐었다. 동녘 하늘에 여명(黎明)이 시작되고 있었다. 언제나 이 시간은 황홀했다. 하루 중에서 음양이 바뀌는 시간이고, 음양이 만나는 시간이기에 더욱 그랬다. 조용히 호반의 의자에 앉아서 아무런 생각도 없이 기러기들이 끼룩거리면서 줄을 지어서 남쪽으로 날아가는 것이 보였다. 가을이 깊어가는 풍경의 한 조각에 젖어 들었다.

그렇게 새벽의 풍경에 취해있을 적에 인기척이 들려서 뒤를 돌아다 봤다. 어슴푸레해서 잘 보이진 않았지만 젊은 남자인 것은 분명했다. 저만치서 쭈뼛거리는 것이 뭔가 말이라도 하고 싶은 듯한 표정이어서 모르는 체를 하기가 좀 그래서 일어나서 돌아보며 말했다.

혹시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십니까?”

우창이 먼저 말을 걸자 그 사람이 얼른 다가와서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이른 새벽에 조용히 생각에 잠겨있으신 모습이 멋져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저도 모르게 지켜보게 되었습니다. 실례를 한 것 같습니다. 미안합니다.”

말투로 봐서 공손한 것이 무례한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아서 우창도 싫지 않았다. 어쩌면 고민이 있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기 때문이었다. 문득 지광(地廣)과 함께 태항산(太行山)으로 가고 있을 거산(居山)이 떠올랐다.

아닙니다. 괜찮으시다면 이리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셔도 좋습니다. 이 시간의 풍경에는 누구나 반하기 마련이잖습니까? 하하하~!”

말을 걸어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실은 가슴이 답답해서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그럼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이렇게 말을 한 남자는 우창의 옆에 앉아서 우창의 시선이 머물렀던 동쪽 하늘을 바라봤다. 그 모습을 옆에서 바라보자니 왠지 모를 애잔함이 배어 나와서 괜히 가슴이 짠했다. 무슨 말이라도 걸어줘야 할 것으로 생각이 되어서 물었다.

그런데..... 무슨 인연으로 이 시간에 여기 있으신 건지요?”

“...........”

무슨 말을 하려다가 마는 것으로 봐서 심사(心思)가 복잡하다는 것을 짐작할 수가 있었다. 잠시 기다렸다가 다시 물었다.

혹시 괜찮으시다면 편하게 말을 해 보셔도 괜찮소이다. 나는 한가한 사람이라오. 이름은 우창이라고 불러 주시오.”

, 우창 선생님이셨군요. 실은 아까 정법사에서 언뜻 뵙고는 조용히 뒤를 따라오게 되었습니다. 무슨 염원인지 모르겠으나 간절한 모습으로 합장배례를 하시는 모습에서 마음을 터놓고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셨군요. 누가 따라오는 줄도 몰랐습니다. 하하~!”

죄송합니다. 그리고 말씀을 하대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소생은 공문경(孔文卿)이라고 부릅니다. 올해 스물넷입니다.”

, 그렇구나. 나는 올해 서른아홉이니 그렇게 해도 되겠군. 알았네. 하하~!”

고맙습니다. 문경은 지금 정법사에서 머무르고 있습니다. 정법사의 해주 대사께서 법력이 탁월하시다고 하여 불문에 출가하기로 마음을 먹었지요. 그런데도 마음이 편안하지를 않고 뭔가 모르게 불안하여 깊은 잠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혹 여기에 대해서 조언해 주실 수가 있으실지요?”

우창이 문경을 바라보니 젊은 나이에도 수심(愁心)이 있어 보이는 모습이 언뜻 스쳐 지나갔다. 문제는 출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짐작할 수가 있었다. 이러한 이야기를 여기에서 오가다 나눌 상황이 아닌 것으로 느껴지자 아무래도 집으로 가서 이야기를 나눠야 할 것으로 생각이 되었다. 또 알지 못하는 일이 있다면 진명의 도움을 받아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 그런가? 그렇다면 여기에서 이러고 있을 것이 아니라 차라도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도록 내가 머무르는 집으로 같이 가겠나?”

그래 주신다면 정말 고맙겠습니다. 기꺼이 그렇게 하겠습니다.”

순순히 우창을 따르는 문경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 사이에 날은 제법 환해져서 주변의 모든 것이 또렷하게 보였다. 숙소로 들어가자 진명이 밖으로 나오다가 우창을 보고는 반갑게 말했다.

스승님, 벌써 산책을 다녀오시는 거예요? 그렇지 않아도 스승님의 신발이 보이지 않아서 어디 나가셨나 했는데 빨리 들어오시네요. 호반으로 나가볼 생각이었거든요. 호호호~!”

, 진명도 잘 쉬었지? 산책을 하던 중에 귀한 인연을 만나서 동행했네. 기왕 일어났으면 같이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좀 나눠볼까?”

알았어요. 대청(大廳)으로 들어가세요. 찻물을 떠 가지고 갈게요.”

이렇게 말하고 우창의 뒤를 따르고 있는 문경에게도 인사를 했다.

어서 오세요. 잘 오셨어요.”

실례했습니다. 반겨 주셔서 고맙습니다.”

젊은 나이지만 예의가 깍듯해서 진명도 호감이 생겼다. 우창이 대청에 불을 밝히고서 자리를 권하고는 분위기도 익히게 할 겸으로 말했다.

우리도 여행 중이라네. 지금은 잠시 개봉에 머무르고 있으나 또 어디론가 떠나게 되겠군. 문경은 고향이 이 부근인가?”

그러셨습니까? 부럽습니다. 제 고향은 개봉부입니다. 여기에서 나고 자랐으니 바깥의 사정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 바가 없습니다.”

그렇군. 복이 많아서 대도회(大都會)에서 견문(見聞)을 쌓았으니 또한 젊은 시절의 풍경이 좋았겠네. 하하~!”

환경이 나쁘다고는 못하겠습니다만, 마음은 항상 이러한 곳에 어울리지를 못하고 겉돌고 있는 것만 같아서 자신이 생각해도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습니다. 다만 그 원인을 모르고 있어서 해결할 길도 못 찾고 있던 차에 정법사에서 출가하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이렇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마음을 먹은 지는 얼마 되지 않았는가? 아직 삭발(削髮)하지 않은 것으로 봐서 말이네.”

이제 겨우 한 달 남짓 되었습니다. 1년은 마음이나 다스리라고 대사가 말씀하셔서 마당이나 쓸면서 간간이 가르침을 받고 있습니다.”

그럼 제대로 길을 잘 찾은 것이 아니겠나? 그런데도 마음이 편하지 않더란 말인가?”

아무래도 그것이 이상해서 또 고뇌에 빠졌습니다. 이러한 자신을 알 수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참으로 답답합니다.”

우창은 젊은 사람이 이렇게도 중심을 잡지 못하고 정신적으로 방황하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게 느껴졌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진명이 물을 끓여서 오룡차를 가져다주고는 한쪽에 앉았다. 그것을 본 우창이 조용히 말했다.

진명이 문경의 문제를 좀 봐줬으면 좋겠구나. 내가 도움을 줄 상황은 아닌 것으로 생각이 되어서 말이네.”

진명은 내심 할 말이 있었으나 우창이 끼워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서야 문경을 보면서 말했다.

잠을 깊이 못 드시나 봐요?”

진명이 문제의 핵심을 콕 짚어주자 문경의 눈빛이 초롱초롱해졌다.

맞습니다. 여기에도 혜안을 가진 고인이 계셨네요. 제 문제를 부디 해결해 주셨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