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0] 제37장. 유람(遊覽)/ 7.동경몽화(東京夢華)

작성일
2023-05-30 0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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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0] 37. 유람(遊覽)

 

7. 동경몽화(東京夢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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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님은 무엇을 드시고 싶으세요?”

유하가 식당의 차림표를 보면서 우창에게 물었다. 그러나 우창은 무엇을 먹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크게 고려하지 않는지라 차림표는 진명에게 넘겼다. 알아서 시키라는 뜻이었다. 진명이 기름진 것과 맑은 것을 적당히 섞어서 선택하자 유하가 점원에게 주문하고는 자리에 앉자 염재가 말했다. 

스승님, 오늘 개봉을 둘러보니 과연 대송(大宋)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했었는지를 알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세월의 영향일까요? 아니면 나라에도 국운(國運)이란 것이 있어서일까요? 이렇게 찬란한 문화를 자랑하던 나라도 세월 앞에서는 또 추풍낙엽(秋風落葉)처럼 스러지고 마는 것을 보니 참으로 격세지감(隔世之感)이 들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염재가 거대한 탑을 보면서 느꼈던 감상(鑑賞)을 말하자 우창이 웃으며 답했다.

그야 어디 송()뿐이겠나? ()은 안 그랬으며 주()는 또 어땠는가? 그렇게 명멸(明滅)하는 것이 또한 자연의 이치가 아니겠나? 성주괴공(成住壞空)의 이치는 여전히 살아있다고 보면 되지 싶네. 인신(人身)은 또 어떤가? 태어나서 영화를 누리든 고통을 당하든 저마다의 업연에 따라서 생멸하지 않느냔 말이지. 그래서 과거를 보면서 미래를 짐작하고는 오늘을 살아가는 것이겠거니 하는 것이 아닐까 싶군.”

 

과연 그런가 싶습니다. 그런데 세상의 운세는 왜 서생동멸(西生東滅)하고 북기남침(北起南沈)하는 것일까요? 여기에서도 일정한 이치가 들어있는 것은 아닙니까?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것도 오묘하게 느껴지니 말입니다.”

염재가 이렇게 말하자 진명이 염재에게 물었다. 

아니, 그건 또 무슨 말이야? 무엇이 서(西)에서 생겨나서 동()에서 멸하고, 또 북()에서 일어나서 남()에서 가라앉는다는 말이지? 좀 쉽게 말해 줘봐.”

, 과거의 역사를 보면 그러한 현상을 읽을 수 있어서 말입니다. 가령 주()는 서주(西周)와 동주(東周)로 나눠지는데 처음에는 서주에서 시작되었던 주나라가 쇠퇴(衰退)하면서 동주(東周)가 되었고, 그로부터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가 열리게 되었다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 본 것이고요. 또 오늘 둘러본 송의 역사도 그렇습니다. 북송(北宋)에서 일어났는데 결국은 남송(南宋)에서 또 소멸하게 되었으니 이러한 것이 자연의 이치와 무슨 연관이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해 봤던 것이지요.” 

그건 생각해 보지 않아서 좀 생소하네. 사실이 그와 같다면 과연 그 안에 알 수가 없는 이치가 작용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기는 하네. 그렇다면 반대로 동에서 시작되어서 서로 이어진 것은 없는 거야?”

그야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런 경우도 있지 않을까 싶기는 합니다. 다만 대표적인 주()와 송()을 봤을 적에 재미있는 현상이라는 생각을 해본 것이지요. 하하~!”

정말 그렇구나. 그렇다면 이것은 또 무슨 까닭인지 스승님께 여쭤봐도 될까요? 쓸데없는 것에 마음을 쏟지 말고 그 시간에 자신이나 찾아보라고 하실 수도 있겠지만 궁금하긴 하네요. 호호~!”

이렇게 말하면서 우창을 보자 아무래도 무슨 말이든 하기는 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 우창이 말했다.

아무래도 금목수화토(金木水火土)의 이치가 아닐까 싶기도 하군.”

우창이 뜬금없이 오행을 거론하는 말에 모두 귀를 쫑긋 세웠다. 오행의 이야기는 놓치면 안 된다는 무언의 약속이라도 되어있는 것처럼 생각되어서이다. 제자들의 표정을 본 우창이 웃으며 말했다.

아니, 밥을 먹으면서까지 공부를 열심히도 하는군. 하하하~!”

현지도 한마디 했다.

그야 스승님의 가르침이 때와 장소를 불문(不問)하는 까닭이지요. 그래서 제자들도 항상 깨어있지 않으면 안 되거든요.”

, 별 이야기는 아니고 그냥 문득 든 생각이네. 금목(金木)을 방위(方位)로 놓고 보면 어떻게 되는지는 알지?”

그야 당연히 서동(西東)이잖아요. 그 정도는 잘 알고 있습니다요. 호호~!”

다행이군. 그렇다면 수화(水火)는 또 어떻게 되는지도 알겠네?”

()는 북()이요 화()는 남()이니까 또한 북남(北南)이 되네요. ? 그러니까 주()는 금목(金木)의 이치가 적용된 것이고, ()은 수화(水火)의 이치가 적용된 것이었나요? 이것도 뭔가 있어 보이는걸요.”

진명이 새로운 것을 발견했다는 듯이 큰 소리로 말하다가 다른 사람들이 쳐다보는 것을 느끼고서는 소리를 낮췄다.

스승님, 말씀해 주세요. 오행의 배열이 자연의 이치와 함께 국가의 흥망성쇠(興亡盛衰)도 포함하고 있었단 말인가요?”

, 그런가? 난 지금 붓을 들고 획()을 긋는다는 생각으로 떠올려 본 것이었지만 그렇게 생각해도 되겠구나. 하하~!”

우창이 붓으로 획을 긋는다고 말을 하자 염재가 다시 생각에 잠겼다가는 우창에게 물었다.

스승님, ()은 서에서 기필(起筆)하여 동에서 각필(閣筆)하는 것과 일치합니다. 그래서 오행의 순서에서도 이렇게 되었던 것일까요?”

그야 나도 모를 일이지만 결과를 놓고 본다면 그럴싸하지 않느냔 말이지.”

아니, 스승님의 말씀을 듣고 생각해 보니까 일리가 있습니다. ()도 마찬가지로 북에서 기필해서 남에서 각필을 합니다. 짧은 지식으로 역사를 훑어보면서 해본 망상인데 스승님께서는 그것을 또 오행의 이치에 담아서 보여주십니다.”

그런가? 세상에는 공부가 아닌 것도 없으니까 말이지. 하하하~!”

우창이 웃으면서 염재를 지그시 바라봤다. 열심히 궁리하는 모습에서 언뜻언뜻 자기의 옛날 모습을 보는 것만 같아서였다. 그러는 사이에 식탁에는 주문한 요리들이 차려졌다. 염재가 백주(白酒)를 한 근 주문해서는 작은 잔에 한가득 채워서 한 잔씩 나눠주고는 건배했다.

오늘 이 순간을 스승님과 누님들이 한자리에서 함께 즐기심에 대해서 축하의 건배를 하겠습니다.”

이렇게 외치자 모두 잔을 들어서 건배~!’를 외치고는 잔을 비웠다. 모두 흥겹게 만찬을 즐기니 세상에 부러울 것이 하나 없었다. 오직 지금의 순간에 집중해서 맛있게 먹으면서 담소하는 것만으로 모든 것이 다 갖춰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배불리 저녁을 먹고 나자 공연의 시간이 다가온다면서 일행을 데리고는 청명상하원 안에 있는 경룡호(景龍湖)로 갔다. 이미 오색의 등불이 화려하게 불을 밝히고 있는 가운데 유하가 마련한 특별석(特別席)으로 안내하자 시야가 탁 트여서 모든 공연의 장면들이 손에 쥘 듯이 가까이서 볼 수가 있었다. 자리를 잡아놓은 유하가 말했다.

아직 경극 공연은 시작되지 않았어요. 배우들이 저마다 분장을 마치고 시간이 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시간이거든요. 징소리가 울리면 불이 꺼지면서 시작이 될 거예요. 유하도 오랜 세월을 그 들 속에서 함께 울고 웃기를 반복했는데 오늘은 이렇게 관람석에서 스승님과 같이 앉아서 보게 되니까 감회가 또 다르네요. 호호~!”

우창은 만감이 교차하는 듯이 추억을 떠올리는 유하를 보면서 공연이 시작되기만을 기다렸다. 이러한 대규모의 무대에서 구경을 여태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 것인지 궁금하기도 했다. 동평호에서는 작은 무대에서 봤던 공연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과연 얼마지 않아서 징 소리가 울리면서 밝혀놨던 불들이 꺼지고 경룡호의 앞에는 암흑으로 변했다.

무대 한 편에서 동자가 연꽃으로 된 등을 물에 띄우는 장면으로 시작되더니 잠시 후에는 거대한 연꽃이 둥둥 떠오는 장면으로 이어졌다. 그러니까 동자가 띄워 보낸 연꽃이 돌아왔다는 뜻인가 싶었다. 그러더니 연꽃의 잎이 하나씩 벌어지면서 무희(舞姬)들이 그 위에서 가무(歌舞)를 하는 장면이 환상처럼 펼쳐졌다. 경극의 대화는 잘 들리지 않았으나 눈으로 보이는 것만으로도 대략 이해가 되었다. 유하가 이해를 돕기 위해서 조용히 속삭였는데 주변의 일행에게는 또렷하게 잘 들렸다.

이 공연의 이름이 대송(大宋). 동경몽화(東京夢華)에요. 그러니까 북송의 화려했던 시절을 꿈꾸듯이 떠올린다는 의미인 거죠. 당시에는 개봉을 동경(東經)이라고도 불렀나 봐요. 송의 풍경에 대해서는 사료(史料)를 참작해서 재미있도록 꾸민 거예요.”

그렇게 보이네.”

우창도 간단하게 답을 했다. 행여 주변의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라도 줄까 싶어서였다. 간간이 유하의 설명이 더해졌다.

여기에 동원되는 배우들은 50명도 넘어요. 저마다 자기의 삶은 감춘 채로 남의 삶을 대신 살아가고 있는 셈이죠. 공연할 적에는 자신의 역할에 푹 빠져서 혼연일체(渾然一體)가 되고는 해요.”

그럴 만도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정신을 집중해서 하지 않으면 사고도 발생할 수가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공연의 무대는 선화전(宣和殿)과 선덕전(宣德殿)을 중심으로 하고, 천추원(千秋園)과 호수(湖水)는 물론이고, 주변의 길도 무대가 되어서 말을 달리면서 공연하기에 항상 각자가 알아서 몸을 조심해야 하거든요. 아니면 크게 다쳐서 다시는 무대에 오를 수가 없기도 하니까요.”

도중에는 개봉의 보물인 포청천도 등장해서 재판하는 장면도 연출되었다. 이 부분이야말로 동경몽화의 절정(絶頂)이었다. 거의 한 시진 가까이 공연했나 싶었다. 장엄하기조차 한 느낌으로 잠시 북송의 풍경에 빠져들었던 시간이었다. 객석에 불이 켜지면서 배우들이 모두 무대에 나와서 작별 인사를 하는 장면까지 보고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차에 오르자 염재가 채찍을 들면서 유하에게 말했다.

누님이 무대 어딘가에서 공연을 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저렇게 화려한 무대에서 박수받으면서 살다가 보면 세월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르지 싶습니다.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지나면서 청명차관을 보니까 아직도 손님이 있는지 불이 켜져 있었다. 그러자 현지가 말했다.

아직 잠을 자기는 이른 시간인데 맛있는 다과(茶菓)라도 먹으면서 담소하다가 쉬러 가면 어떨까요?”

그러자 진명도 말했다.

정말 좋은 생각이에요. 진명도 이대로 들어가서 잠을 자기는 아깝다고 생각했거든요. 들어가서 차를 마시고 가요. 호호호~!”

일행이 안으로 들어가자 손님의 시중을 들던 황연수가 반기면서 자리를 마련했다.

어머, 이 시간에 찾아주셨네요. 표정들을 봐하니 오늘도 즐거우셨나 봐요. 이쪽으로 앉으세요. 맛있는 다식(茶食)이 들어왔는데 맛 좀 보세요. 호호호~!”

차가 나오기 전에 입맛을 다실 거리를 챙겨다 놓자 유하가 말했다.

언니, 지금 동경몽화를 보고 오는 길이에요. 다들 재미있게 관람하셨다고 해서 안내를 맡은 보람이 있었어요. 호호~!”

그랬어? 무대는 날이 갈수록 커지고 더욱 장엄해지는 것 같더라. 나도 여기 살아도 가본 지는 오래되었어. 보면 또 옛날 생각도 나고 해서 자주 안 가게 되는 것 같아.”

손님이나 모시고 가면 몰라도 무슨 재미로 가겠어요. 호호호~!”

그때였다. 옆의 차탁에서 술취한 음성이 들렸다.

참 팔자~ 좋은 양반이시구만~!”

처음에는 그냥 지나가는 말이려니 했는데 다시 이어지는 말투가 좀 거슬렸다.

, 일실(一室)에 이첩(二妾)인가? 아니면 마누라는 집에 있고 삼첩일 수도 있겠구나. 예쁜 첩들을 거느리고 다니려면 전생에 얼마나 좋은 일을 많이 하면 그런 복을 얻고 태어나는지 궁금하군. 아니면 군주의 뒷구멍이라도 핥아주고 두둑하게 한밑천 잡았던가~!”

음성으로 봐서 술을 좀 마신 것으로 보이는데, 부럽다는 말과 비아냥거리는 말이 섞여 있는 것으로 들리자 진명이 고개를 들어서 말하는 사람을 바라봤다.

나이는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자였는데 옷매무새로 봐서는 빈한한 사람은 아닌 것을 알 수 있었다. 더구나 이 시간에 이렇게 차관에서 한가롭게 시비를 걸 사람이라면 삶에 쫓기는 사람이 아닌 것도 당연하지 싶었다. 진명의 성질에 뭐라고 쏘아주고 싶어서 일어나려는데 어느 사이에 황연수가 다가와서 어깨를 살짝 눌렀다. 가만히 있으라는 뜻이었다. 그래서 돌아가는 것을 가만히 지켜볼 요량으로 참았다. 그 남자는 진명과 눈이 마주치자 더욱 큰 소리로 떠들어 댔다.

요즘 첩들은 성질도 못되어서 아무 곳에서나 성깔을 부리면서 참을 줄도 모르더군. 세상이 어떻게 되려는 것인지~!”

그 사이에 황연수가 그 남자에게 다가가서 귀에다 대고 조용히 몇 마디 하는 것이 보였다. 그러자 남자는 갑자기 입을 다물고는 조용히 일어나서 얼른 값을 치르고는 황급히 나가는 것이 보였다. 그러자 도대체 뭐라고 말을 했기에 저렇게 기세가 등등하던 사람이 얼른 도망치듯이 나가는지 그것이 또 궁금한 진명에게 황연수가 옆에 와서 다른 차탁에는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용히 말했다.

제가 말해 줬어요. ‘저분은 도사님인데 신장님이 옹호(擁護)하고 다니기 때문에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어제도 신벌(神罰)을 받아서 구안와사(口眼喎斜)를 당한 사람이 업혀서 돌아갔어요.’라고 했죠. 그랬더니 무서운 것이 있었는지 얼른 나가네요. 호호호~!”

주인의 말에 진명이 의아해서 물었다.

아니, 아무리 그렇더라도 그 말 한마디에 줄행랑을 친단 말이에요?”

제가 나름대로 이 자리에서 쌓은 내공이 있거든요. 제가 빈말을 허투루 하지 않는다는 것을 다들 알기 때문에 두말없이 뒤도 안 돌아보고 가버린 거예요. 원래는 악한 사람이 아닌데, 아내가 이웃의 사내와 눈이 맞아서 달아 난지도 삼 년째가 되었어요. 그러니까 도사님 일행이 이해하세요. 호호~!”

그러자 유하가 아쉽다는 듯이 말했다.

에잉~ 언니 땜에 재미있는 구경거리를 놓쳤잖아요. 그 사람과 한바탕 이야기하다가 보면 우리는 또 망외소득(望外所得)을 얻었을 텐데 그냥 보내버렸으니 어쩐담. 언니, 다음엔 물어보고 하세요. 호호~!”

유하의 말에 황연수가 깜짝 놀라서 말했다.

어머, 그런 거였어? 난 좋은 것이 좋다고만 생각했지. 그중에서도 공부할 거리를 찾고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 못 했잖아. 미안해~! 다음엔 절대로 그냥 보내지 않을 테니까 한 번만 봐줘. 호호~!”

이렇게 한바탕 웃고 나서는 다시 조용해지자 우창이 염재에게 말했다.

염재가 내일의 일을 맡아보게. 내가 알려주는 대로 글자를 쓰면 되네.”

이렇게 말하면서 새벽에 정법사에서 받은 문자부를 염재에게 바로 전했다. 현지와 진명도 유하와 같이 들으면서 무슨 말인지를 다 이해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언제라도 필요하면 사용할 수가 있도록 했다. 다만 이번 일은 염재에게 맡김으로써 자신감을 불어 넣어줌과 동시에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누구라도 정성만 있으면 효과가 있다는 것을 시험해 보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염재는 자신이 없었던지 조심스럽게 말했다.

스승님께서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은 어렵지 않겠습니다만, 혹시라도 일을 그르치게 될까 봐 걱정이 앞섭니다. 그래도 되겠습니까?”

뭐가 문제인가? 만에 하나라도 금맥이 나오지 않는다고 한들 우리가 손해를 볼 것은 아무것도 없잖은가? 더구나 잘 된다면 자신감은 물론이고 확신까지도 얻게 될 테니 이렇게 소중한 기회를 허투루 낭비할 수는 없지 않겠나?”

과연 우창의 말을 듣고서 생각해 보니 그 말이 맞았다. 그래서 모두 잘 이해를 하고는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고는 숙소로 귀가했다. 나오는데 황연수가 유하에게 말했다.

내일 조반(朝飯)은 차관에서 마련할 테니까 진시초(辰時初)에 오시도록 하면 좋겠어.”

, 언니. 그럴게요. 내일 봐요.”

 

다음날.

새벽이 되자 우창이 일어나서 객청(客廳)에서 정좌했다. 새벽의 싸~한 공기가 정신을 맑아지게 했다. 냉수를 한 잔 마시고는 조용히 마당을 거닐면서 담장 너머로 보이는 양가호의 수면을 바라봤다. 물안개가 뽀얗게 피어오르면서 바람을 받아서 좌우로 흔들리는 모습이 흡사 선녀가 춤을 추는 듯이 아름다웠다. 잠시 그 장면에 취해 있는데 염재가 벼루를 들고나와서 말했다.

스승님 여기에서 준비하면 되겠습니까?”

그래 여기가 좋겠구나. 어제 알려준 대로 100장을 쓰도록 하게. 우선 한 장을 써보지. 내가 봐서 되겠으면 그대로 하면 되니까.”

예 알겠습니다. 스승님.”

이렇게 말을 하고서는 단정히 앉아서 붓을 들고는 우창이 알려준 그대로 글자를 써내려 갔다. 잠시 후에 다 쓴 염재가 우창에게 보였다.

 

우창은 염재가 쓴 핵범전을 찬찬히 살펴보고서 말했다.

핵범전 오응빈 주신 전화핵, 핵범전 주종건 주신 전화핵이라, 옳지, 잘 되었군. 그대로 쓰면 되겠네. 아주 잘 되었어. 하하하~!”

우창이 흡족해하자 염재도 시키는 대로 백 장을 쓰기 시작했다. 혹시라도 자신의 정성이 부족해서 효과가 없으려나 싶은 마음에 더욱 정신을 집중해서 쓰고 또 썼다. 그것을 보고 있는데 진명도 푹 잤는지 해맑은 얼굴로 나왔다.

스승님, 기침하셨어요? 염재는 혼자서 수고하는구나. 호호호~!”

누나가 걱정해 주시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됩니다. 스승님과 산책이라도 다녀오시지요. 하하~!”

염재의 말에 우창도 그게 좋겠다고 생각하고서 앞장서서 호반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 물안개가 이렇게 예쁜 것이었어요? 처음 보지 싶어요. 황홀하네요. 새벽에는 이런 풍경도 있었다는 것을 잊고 있었어요. 호호~!”

진명은 기분이 좋은 듯이 재잘거리면서 깔깔거렸다. 우창도 싫지 않아서 가만히 들으면서 호반을 거닐었다. 그러다가 의자가 나오자 잠시 앉았다.

진명에게 부탁을 할 것이 있는데.”

우창이 새삼스럽게 부탁한다니 괜히 가슴이 쿵~했다. 무슨 실수라도 했나 싶어서였다.

~! 진명에게 부탁하실 일이 다 있으시단 말이죠? 뭐든 말씀하시면 그대로 들어드릴 거에요. 뭔데요?”

, 다름이 아니라, 오늘의 일에 대해서라네.”

, 오늘 금광의 일 말씀이시죠? 염재가 준비하고 있잖아요?”

그래, 염재가 해야 할 일은 염재가 하면 되고, 진명이 해야 할 일이 있어. 물론 잘 되면 좋지만 잘되지 않아도 진명의 탓은 아니야. 다만 우리가 우성암에서 수련한 것을 써봐야 할 때가 아닌가 싶었던 것이라네.”

우창이 우성암을 이야기하자 진명의 눈이 빛났다. 뭔가 재미있는 일을 꾸미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우와~! 뭔데요? 무슨 계획이에요? 재미있는 것은 틀림없겠죠? 기대돼요. 호호호~!”

잘 들어 봐, 조금 있으면 차관으로 두 사람이 은자 100냥을 갖고 온다면, 아마 갖고 올 거네. 그렇게 되면 우리는 다 같이 그 광산으로 갈 거야. 그 자리에서 핵범전(核凡錢)을 시행할 것이니까 말이지.”

아하~! 그래서요?”

진명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가 궁금해서 얼른 다그쳐 물었다. 그러자 우창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관지술(觀地術)을 발휘해보고 싶었거든.”

? 관지술이라니요? 그런 말은 우성암에서도 못 들어 봤는데요?”

그야 당연하지, 왜냐면 지금 내가 지어낸 이름이니까.”

? 그러셨구나. 호호호~!”

관지술은 투시(透視)라고 할 수도 있는데 너무 상투적인 말이라서 내가 새로운 이름으로 붙여 본 것이네. 그러니까 지하의 보이지 않는 것을 찾아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진명은 우창의 말을 들으면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대략 짐작은 되었다. 그러나 왜 이런 말을 하는지는 얼른 이해되지 않아서 우창을 멀뚱멀뚱 바라봤다. 그러자 우창이 다시 말을 이었다.

진명의 숙명통(宿命通)을 응용하는 거니까 새로운 것도 아니라고 봐야지.”

예에? 숙명통을 응용한다니요? 그건 또 무슨 말씀이세요?”

간단해, 사람의 숙명을 보듯이 땅의 숙명을 보면 되는 거야. 그러니까 지하(地下)에 금맥(金脈)이 어떻게 형성되어 있는지만 보면 되니까 말이지.”

그제야 진명은 우창의 계획을 명료하게 깨달았다. 결국은 자신에게 금맥을 찾으라는 이야기였던 셈이다. 그 말을 듣고서야 진명은 기가 막혔다.

아니, 스승님~! 핵범전을 사용한다기에 무슨 신묘한 술법을 펼치려나 했는데 겨우 눈가림으로 사용하고 결국은 진명이 금을 찾아야 하는 건가요?”

아니지, 그 사람들이 이야기했을 적에는 핵범전만 사용할 생각이었으니까 난 그것만으로도 가능할 것으로 생각이 되네. 그런데 문득 진명의 숙명통을 여기에 활용한다면 더욱 빠르게 결과를 볼 수가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했던 것이네. 어떤가? 재미있지 않겠어?”

진명은 우창의 말을 듣고서 기가 막혔으나 다시 곰곰 생각해 보니까 여태까지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어도 지맥(地脈)에서 수맥(水脈)과 화맥(火脈)을 찾았던 것을 활용한다면 금맥(金脈)도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호기심이 부쩍 일어났다.

그것도 해볼 만하겠는걸요? 역시 스승님은 천재세요. 천재~! 호호호~!”

진명이 재미있어하면서 웃자 우창도 마주보며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