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2] 제37장. 유람(遊覽)/ 9.삼세업보(三世業報)

작성일
2023-06-10 0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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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2] 37. 유람(遊覽) 

 

9. 삼세업보(三世業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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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의 어둠에 대한 두려움이 저 깊은 마음의 내면에 웅크리고 있네요. 정말 많이 힘들었겠어요. 밤만 되면 천 길의 나락으로 빠져드는 환상(幻想)이 반복되어서 그런 것인가요?”

맞습니다. 정말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문경은 희망이 보인다는 듯이 진명에게 몸을 기울이면서 말했다. 그 말에 진명이 미소를 지으면서 잠시 눈을 감았다. 우창은 진명이 문경의 전생을 살피고 있다는 것을 알고서 잠자코 기다렸다. 무슨 말을 듣게 될지 궁금하기도 했다. 잠시 후에 눈을 뜬 진명이 공문경을 바라보고 말했다.

이것에 사실인지는 모르겠으나 문득 스치는 모습에서 관청의 참수집행관(斬首執行官)이 보이네. 쯧쯧~! 주어진 일이라서 거부하지 못했으나 마음에는 많은 상처를 입었구나. 그것참 기이하네.....”

진명이 이렇게 말하면서 우창을 바라봤다. 우창이 무슨 말을 하고 싶으냐는 듯이 진명을 보며 말했다.

뭐가 말인가?”

스승님, 관청에서 시키는 대로 법에 따라 주어진 대로 집행하는 역할인데 그게 왜 문제가 되는 거죠?”

그야 생업(生業)에도 업장이 쌓이는 이치가 아닐까? 그것을 정업(定業)이라고 한다더군.”

그건 또 무슨 말씀이세요?”

처음 듣는 이야기라는 듯이 진명이 다시 우창에게 물었다. 우창도 이해를 돕기 위해서 비유로 설명했다.

가령 어부(漁夫)가 고기를 잡아서 가족을 먹여 살리는 것으로 인해서 가족을 부양한 공덕도 있겠으나 또 한 편에서는 고기들이 죽어가면서 내뿜는 원한(怨恨)도 같이 받아야만 하는 것이니까.”

아니, 그것도 음양의 이치인가요?”

당연하지. 예전에 들었는데 누군가는 지인에게 술잔을 권했다가 손이 없는 몸으로 태어나는 과보를 받았다고도 하던걸. 하하~!”

정말 무섭군요. 정업(定業)에는 선업(善業)도 악업(惡業)도 인연에 따라서 쌓인다는 말씀이잖아요? 와우~!”

그러니까 문경이 전생에 죄인의 목을 자르는 일을 했더란 말인가? 정말 끔찍했겠구나. 엊그제 개봉부에서 봤던 것이 생각나는군.”

, 작두 말인가요? 맞아요. 그 일을 집행하는 관원이었던가 보네요. 비록 죄인이라고 하더라도 죽음 앞에서는 모두 같은 나약한 존재잖아요. 두려움과 공포심과 원망이 가득한 눈길을 받으면서 집행했을 테니 어둠이 무서울 만도 하네요. 비록 생을 달리해서 태어났음에도 그 일이 너무나 마음에 깊이 낙인(烙印)처럼 되어 있었기 때문에 환생의 길에도 따라다니는가 보네요.”

진명의 말을 들으며 우창도 측은한 마음이 들어서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해 주고 싶은 마음에 방법을 물었다.

그렇다면 문경에게는 어떤 방법으로 업장을 소멸할 수가 있을까?”

우창의 말을 듣고는 바라보면서 미소를 짓고는 가만히 생각하더니 문경에게 물었다.

그런데 이해가 되지 않는 점이 있어요. 그렇게 죽음을 맞이한 원혼(寃魂)이 왜 형벌을 내린 포청천을 원망하지 않고 집행관인 문경을 원망하는 이유는 나도 모르겠어요. 그러나 어쩌면 원혼과는 무관하게 스스로 그 마음에 받은 창상(創傷)으로 인해서 잔상(殘像)이 남아서 혼자서만 힘들어할 수도 있어요.”

아니, 창상이라고 하면 전쟁에서 칼이나 창에 찔린 것이 심리적으로 오랫동안 남는 고통을 말하는 것이잖은가?”

맞아요. 그런데 놀랍게도 작두에 목이 잘린 원혼도 창상이 남겠지만 칼을 내리친 자에게도 그러한 현상이 생긴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어요. 정말 인과(因果)란 열매는 빈틈이 없어요. 에고~ 무서워라~!”

이렇게 말하면서 진명이 몸서리를 쳤다. 그러한 장면이 보였던 모양이다. 진명의 말을 듣고서 문경이 애절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마도 그렇지 싶습니다. 문득 느끼는 깊이를 모를 두려움 속에서는 그러한 잔영도 언뜻 보였던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어떻게 해서라도 길고도 긴 불면증(不眠症)의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은 문경의 표정이 벼랑 끝에서 밧줄을 잡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사람의 모습과도 흡사했다.

어떻게 진혼(鎭魂)의 굿이라도 해야 하는 건가?”

우창도 무엇이든 돕고 싶어서 물었다. 진명이 그 말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렇게라도 할 수가 있으면 해야죠. 호호호~!”

그러자 문경의 얼굴에는 희망의 빛이 피어올랐다.

방법만 알려주시면 어떻게 해서라도 보답하겠습니다.”

젊은 청년이 이러한 고통을 당한다는 것을 보며 우창도 마음이 짠했다. 자기의 잘못이 아니라도 에누리가 없는 인과의 세계가 냉정해 보이기도 했다.

스승님, 핵범전은 여기에 적용해도 안 될까요? 오히려 진혼굿보다도 더 효과적이지 싶은데 말이죠.”

아니, 그러니까 문경의 문제에 핵범전을 써보자고?”

, 그래도 될 것으로 생각이 되었어요. 허공에 원한을 품은 영혼들도 있을 텐데 그들에게도 핵범전은 위로가 되지 싶어요. 그러니까 이런 경우에는 어떤 문구(文句)가 좋을지만 스승님께서 알려주시면 되겠어요. 글자는 문경이 쓰면 될 테니까요. 호호호~!”

, 그것도 좋은 생각이구나. 알았네. 그렇다면 내가 한 장만 써서 주고 문경이 그대로 써서 100일간 태우면서 원혼(寃魂)들에게 명복(冥福)을 빌어주면 되겠네. 오호~! 그것도 시도해 볼 만한 좋은 방법이군. 역시 진명의 혜안은 당할 수가 없다니까. 하하하~!”

우창도 고민이 해결된 듯이 기뻐했다. 그리고 문경도 아무런 이해관계도 없는 일을 두 사람이 진심으로 걱정을 해 주는 것이 감동이었다. 인연의 이치란 이렇게 새로운 싹을 틔우고 있었다.

지금 문경의 마음은 급하니까 해결책부터 알려 주세요. 목이 타는지 계속해서 차만 마시고 있는 것을 보니 안쓰러워서 못 보겠어요. 호호~!”

진명도 분위기가 너무 무거워지는 것도 같아서 애써 웃으면서 말했으나 그 가슴 속에 느껴지는 감정은 사형장(死刑場)의 처참(悽慘)한 분위기가 다시 펼쳐진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피비린내가 느껴졌다. 비록 전생사(前生事)라고 할지라도 금생(今生)의 젊은 사람에게 가해지는 형벌치고는 무척이나 가혹하다는 생각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스승님, 문구를 생각해서 한 장 써주세요.”

진명이 재촉하자 우창도 잠시 생각을 가다듬고는 붓을 찾았다. 진명이 이미 먹물을 준비해서 우창의 손에 붓을 들려주자 그것을 받아 들고는 한자씩 써 내려갔다. 좌우에는 절두고혼(截頭孤魂)을 쓰고 주신(主身) 대신에 주령(主靈)으로 쓰면 되지 싶었다.

 


 

우창이 핵범전을 쓴 글자를 살펴보던 진명이 물었다.

스승님, 오른쪽에는 절두고혼(截頭孤魂)이고 왼쪽에는 무주고혼(無住孤魂)이네요. 이것은 머리가 잘린 고혼과 떠도는 혼령까지도 모두 편안한 곳으로 떠나라는 의미가 되나요?”

그렇지. 그 혼령들에게 공문경이 참회하고 명복(冥福)을 빈다는 의미로 이해하면 되겠군.”

그런데 이 울타리는 무슨 뜻인가요?”

진명이 좌우의 핵범전에 선을 쳐놓은 것에 대해서 물었다.

, 그것은 공문경을 괴롭히지 말라는 의미로 꼼짝하지 못하게 해 놓았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네. 그리고 이()는 그렇게 집행하라는 뜻인데 문득 그러한 생각이 들어서 썼으나 다음에 해주 대사를 뵙게 되면 여쭈어봐야겠군.”

우창이 해주 대사라고 하자 문경이 깜짝 놀라서 물었다.

아니, 이 비법을 정법사 대사께서 가르쳐 주신 것입니까?”

그렇다네. 그래서 인연이 있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었네.”

우창의 말을 듣고서 문경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이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왜 대사께서 제게는 그 방법을 쓰지 않으셨을까요?”

아마도 그것은 대사께 질문해야 할 것으로 생각이 되는걸. 어쩌면 내게 알려준 것도 이러한 것까지 모두 간파하셨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군. 여하튼 결과만 좋으면 다 좋은 거니까. 하하하~!”

그렇겠습니다. 아마도 대사께서 깊은 뜻이 있으셨을 것입니다. 그럼 문경은 어떻게 하면 됩니까?”

매일 저녁에 이렇게 써놓고 고혼을 위해서 경을 읽게. 집착(執着)을 잊도록 하는 법문(法門)으로는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密經)이 좋을 것으로 생각되네. 이에 대해서는 들어 본 바가 있는가?”

금강경은 들어봤습니다. 독경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런데 저녁에 하라는 말씀은 또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 그야 안면장애(安眠障碍)가 심하다고 하지 않았나? 그것을 해결하려면 잠자기 전에 하고 자는 것이 더 좋지 않겠느냔 말이네. 이해되나?”

잘 알겠습니다. 그것까지 배려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혹시 모르니까 해주 대사께는 말하지 말고 조용히 시행해 보시게. 대사께서도 무슨 방법을 생각하고 있으실 것으로 생각이 되니까 말이네.”

,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잘 알겠습니다.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저녁에 잠을 자기 전에 가르쳐 주신 대로 시행하고 대사께는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당장 오늘 저녁부터 시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정말 이미 장애물이 모두 제거된 듯이 마음이 가볍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그리고 진명 선생님께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반드시 좋아질 것만 같습니다.”

우창은 젊은 사람이었지만 나중에 갚겠다는 말은 하지 않는 것이 기특했다. 지금의 이 순간에 최대한의 성의를 보이는 것이 좋기 때문이었다. 나중을 이야기하는 것은 자신이 없는 사람이 하는 말이다. 그렇게 인사를 하고는 우창이 써 준 핵범전을 접어서 품에 간직하고는 돌아갔다. 그것을 보면서 두 사람은 마음이 처음과 달리 훈훈해졌다. 그렇게 떠나가는 뒷모습을 본 유하는 무슨 일인지 궁금했으나 묻지는 않았다. 때가 되면 또 설명해 줄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진명이 사라지는 문경을 보다가 말했다.

스승님, 우리가 뭔가 좋은 일을 한 것이 맞겠죠?”

당연하지, 선근(善根)의 씨앗을 한 톨 심었나 보네. 하하하~!”

문경이 돌아가고 나자 다른 제자들도 일어나서 인사를 나누면서 하루를 시작했는데 맑았던 새벽의 풍경과 달리 잔뜩 흐려지기 시작하더니 가을비가 쏟아지자 유하가 말했다.

스승님, 아마도 오늘은 하루 쉬라는 하늘의 뜻인가 봐요. 차관에 가서 밥도 먹고 차도 마시면서 이야기하고 놀아요. 호호~!”

언제나처럼 기쁨에 가득한 웃음으로 오늘의 일정을 말하는 유하를 보면서 우창도 대답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되네. 오늘은 차관에서 쉬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좋겠지. 고맙게도 차관 주인의 마음이 너그러워서 마음 편히 쉴 수가 있으니 얼마나 좋으냔 말이지. 유하의 인연으로 개봉의 놀이가 즐거우니 또한 고마울 따름이네. 하하~!”

우창의 말에 염재도 반겨서 말했다.

그것도 좋겠습니다. 오늘은 말에게도 휴식을 줘야 하겠습니다. 날씨 덕분에 말이 좋아하겠습니다. 하하~!”

잠시 비가 멎는 틈을 타서 모두 차관으로 갔다. 차관에 막 도착하자마자 다시 장대 같은 빗줄기가 쏟아지는 바람에 다른 손님도 없어서 그야말로 우창의 일행만이 넓은 공간에서 마음 편히 아침을 먹고는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끓는 물을 가운데 올려놓고 모두 둘러앉자 유하가 궁금한 것을 물었다.

오늘 새벽에 이야기를 나누셨던 청년은 어떤 사연이었는지 궁금했어요. 하도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시는 것 같아서 끼어들지 못했잖아요. 호호~!”

유하의 말을 듣고서야 진명이 생각이 나서 말했다.

언니도 잠이 깨어 있었구나. 그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자면 길어.”

이렇게 말을 시작한 진명이 문경에 대해서 소상하게 설명해 줬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유하가 문득 궁금한 것이 생겼는지 물었다.

그런데 스승님, 과연 전생의 업보는 밤에 불을 보듯이 그렇게 드러나는 것이라고 믿으시는지요?”

유하가 이렇게 묻자, 우창이 잠시 생각하고는 말했다. 진지하게 물을 적에는 답변도 그에 어울리는 것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만약에 전생의 업보(業報)가 없다고 한다면 무슨 문제가 생기게 될까?”

우창이 유하에게 묻자 얼른 답했다.

업보가 없으면 없는 대로 또 살아가겠죠? 없다고 해서 무슨 일이 생기는 것은 아니지 않겠어요?”

유하가 이렇게 대답하자 이번에는 현지를 바라봤다. 현지는 비가 내리는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가 유하가 답하는 소리를 듣고서 우창의 답이 궁금해서 바라봤는데 눈이 마주쳤다. 그러자 현지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창이 무슨 말을 하라는 뜻인지를 알아차렸다.

현지의 생각에는 업보를 안고 태어나는 순간이 금생(今生)에 부여받게 되는 사주(四柱)의 여덟 글자라고 생각되는데 이것이 맞는 생각인지는 모르겠어요.”

현지가 이렇게 말하자 이번에는 다시 유하를 바라봤다.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무언의 물음이었다. 현지의 말을 듣고 있던 유하가 손뼉을 치면서 말했다.

오호~! 맞네, 언니의 말이 맞아~!! 정말 그렇게 되는 것이네요. 그러니까 업보는 자신이 태어나면서 짊어지고 오는 것이었더란 말이네요. 그렇게 명쾌하게 답을 주시다니 정말 가끔은 언니가 무엇을 생각하시는지 그 속으로 들어가 보고 싶어요. 호호호~!”

유하가 이해한 듯이 말했다. 이렇게 한담을 나누고 있을 때, 밖에서 말발굽 소리가 들리면서 급하게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주인이 나가서 문을 열어주자 안으로 들어온 사람은 관원이었다. 안을 둘러보고는 우창 일행이 있는 것을 발견하자. 주인을 한쪽으로 데리고 가서 조용하게 이야기하고는 또 이내 돌아갔다. 뭔가 긴급하게 전할 일이 있었던 모양이다. 무슨 일인지 궁금해서 다들 조용히 주인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러자 주인이 다시 뜨거운 물을 들고 와서는 조용히 말했다.

참 기이한 일이 생겼어요. 부사의 부인이 갑자기 별세했다고 전해주러 왔다가 갔어요. 부사도 갑자기 당한 일이라 정황이 없다면서 대신 지나는 길에 잠시 들려서 정황만 전해주고 한다고 하네요. 이게 무슨 일이죠?”

황연수의 말에 진명이 자기도 모르게 물었다.

혹 뱀에게 물린 것은 아닌가요?”

진명이 이렇게 묻자, 주인은 소스라쳐 놀라면서 도리어 진명에게 물었다.

아니, 그것을 어떻게?”

진명도 놀라서 이마의 땀을 씻었다. 그냥 지나는 말로 한 것이었는데 그 말이 맞게 된다면 이것은 참으로 공교(工巧)로운 일이기 때문이었다. 진명이 놀라는 것을 본 염재가 진명이 진정하기를 기다려서 물었다.

누나, 그건 무슨 이치에서 나온 말입니까? 무슨 조짐을 보셨기에 부사의 부인이 뱀에게 화를 당했을 거라는 말씀을 하신 거지요? 혹 어떤 장면을 보셨어요? 그것도 전생에 얽힌 인연이란 말입니까? 참으로 궁금합니다.”

진명의 말을 듣고 현지도 생각에 잠겼다. 진명이 혹 엊그제 주인이 뽑은 육갑패를 떠올리지는 않았을까 싶은 것에 생각이 미치자 자기의 생각이 맞는지 진명에게 확인하기 위해서 물었다.

진명이 예측한 것은 사신형(巳申刑)인거야?”

어머, 언니도 알고 계셨어요? 정말 언니도 대단하시네요. 호호호~!”

비로소 진명은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한 사람이 있었다는 것이 재미있는지 웃으면서 말했다. 그렇지만 염재는 도무지 어디에 떨어지는 말인지 가늠이 되지 않아서 의아할 따름이었다. 도저히 참지 못하고 진명에게 물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뱀에게 물려서 액난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것은 요령부득(要領不得)입니다. 알려주셨으면 속이 다 시원하겠습니다.”

염재가 이렇게 말하자 그 말에는 답을 하지 않은 진명이 우창에게 물었다.

스승님, 아무래도 이것은 우연이라고 봐야 하겠는지요? 이것을 정설(定說)로 받아들이기에는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요.”

그래 어쩌다 황소 뒷걸음질인 것으로만 생각한다면 안 될 것은 없지. 하하하~!”

염재는 아무래도 점괘에 무엇인가 있다는 생각으로 다시 떠올려 봤다.

 

 

 

 

도대체 뭘 보고 그런 말을 한 것인지 다시 봐도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현지가 진명에게 말했던 것이 떠올랐다.

사신형(巳申刑)인 거야?’

그제야 사신(巳申)이 일시지(日時支)에 있는 것이 보였다. 그런데 왜 뱀에게 물린다는 것인지는 아무리 생각해도 알 방법이 없었다. 그러다가 문득 띠에 대한 동물의 속성이 떠올랐다. ()는 말이고, ()는 뱀이다. 그제야 비로소 무슨 의미였는지를 깨닫고서 기가 막혔다.

아니, 진명 누나. 그러니까 사화(巳火)가 뱀이고, 화극금(火剋金)으로 시지(時支)의 신금(申金)을 극해서 무덤에 들어가게 되었다는 말씀이십니까?”

에구~ 참 더디게도 깨닫는구나. 서생 양반아. 호호호~!”

진명이 우습다는 듯이 염재를 놀렸다. 그렇지만 염재는 전혀 우습지 않았다. 그것이 논리적으로 말이 되는지부터 생각하느라고 바빴다. 그러자 우창이 염재에게 말했다.

그리 깊이 생각할 필요가 없어. 그냥 어쩌다 그렇게도 해 본다는 것으로만 생각해야지 그것을 다음에 써먹겠다고 외워놔 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이니까 말이지. 그렇게 보였으므로 그것이 조짐으로 나타났을 따름이니까 하하하~!”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유하도 내막이 궁금해서 주인에게 물었다.

언니가 말을 좀 시원하게 해 주셔봐요. 어떻게 된 일인지 궁금하잖아요.”

, 실은 어제 아침에 뒷산에 밤을 주우러 갔었나 봐. 풀숲을 뒤지다가 독사를 발견하지 못하고는 그만.”

그러셨구나. 인명(人命)은 재천(在天)이라더니 그 말이 맞네요. 아직 젊은 부인일 텐데 안타깝게 되었네. 올해 나이는 어떻게 되시나요?”

그러자 유하의 말을 들으면서 황연수가 종이를 한 장 앞에 갖다 놓았다. 사주가 적힌 종이였다. 모든 사람의 눈이 일제히 그 종이에 적힌 사주를 바라보느라고 잠시 침묵이 흘렀다. 진명이 먼저 물었다.

 

 

 

 

그림입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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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그림의 이름: 452 부사부인사주.png<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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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354pixel, 세로 209pixel

이 사주의 주인공은 누구인지요? 혹 액난을 당하신 부사의 부인인가요?”

그러자 주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유하가 사주를 봤으나 아직 이렇게 살필 정도의 수준은 되지 못했다. 앞으로 내밀면서 말했다.

부사의 부인이 갑자기 일을 당한 것은 사주에 나오나요? 우선 사주부터 풀이해 주시고 자세한 이야기는 들어 보기로 해요. 재미있겠네. 호호~!”

가장 먼저 풀이에 끼어든 사람은 진명이었다. 다들 생각에 잠긴 사이에 우선 보이는 대로 풀이를 시작했다.

우선 곤명(坤命)이고 나이는 56세네요. 용신을 찾아야 하겠는데 참으로 어려워요. 일강(日强)인가 하면 또 재성(財星)이 너무 많고, 그렇다고 일약(日弱)인가 하면 또 지지(地支)마다 수()가 들어있으니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봐야 할지 참 어려워요. 괜히 나서서 밑천만 드러나고 말았어요. 호호호~!”

사주의 구조가 어렵다는 것을 알고는 얼른 뒤로 빠졌다. 괜히 나서 봐야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진명이 물러나자 이번에는 염재가 나섰다.

염재가 봐도 쉽지 않은 사주라는 것을 알겠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렇게 강약이 어려운 사주라는 것만으로 알 수가 있는 것은 이미 중화(中和)를 이뤘다고 해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니까 이 사주는 중화를 이룬 것으로 보면 되겠습니다. 그렇다면 전생에 좋은 인연을 짓고 태어난 사람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염재가 말을 마치고 현지를 바라봤다. 우창에게 먼저 묻지 않은 것은, 현지의 의견도 들어 보고서 우창의 말을 들으면 또 뭔가 하나라도 더 배울 수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현지도 처음부터 사주를 보면서 생각에 잠겨 있었기 때문에 염재가 자신을 바라보자 바로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간지(干支)가 참으로 무정(無情)한 조합을 하고 있네. 이렇게 되면 안타깝게도 겉보기에는 화려한 것으로 보이겠지만 속으로는 매우 차갑고 한()이 많은 사람이 아닐까 싶네.”

현지가 이렇게 말하자 염재가 기다렸다는 듯이 물었다.

염재가 보기에도 그것이 좀 어려웠습니다. 병정화(丙丁火)가 지지(地支)에서 생을 받지 못하고 있어서 허약해 보이고 그래서 일간(日干)만 의지하는 것은 어떤 의미가 될 것인지를 생각해 봤습니다. 혹 많은 가솔(家率)을 챙기느라고 너무 힘이 들었던 것으로 보면 될까요?”

그렇게 보는 것도 가능하겠지. 그런데 또 달리 보면 을목(乙木)의 욕심으로 인해서 혼자서 모든 것을 챙기고 관리하느라고 무척이나 힘이 들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드는걸.”

이렇게 말하면서 자신의 말이 타당한지 확인하기 위해서 주인을 바라봤다. 그러자 주인이 놀랍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정말이지 현지 선생님의 안목은 참으로 대단하시네요. 가히 입신(入神)의 경지라고 해야 하겠어요. 부사가 항상 말하기를 자기 부인은 욕심이 너무 많아서 넌덜머리가 난다고 했었는데 그냥 제가 듣기 좋으라는 뜻인 것으로만 알았는데 사실이었나 보네요. 소름이 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