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2] 제28장. 오행원/ 13.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작성일
2021-05-06 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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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2] 제28장. 오행원(五行院) 


13.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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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생각에 잠겼던 우창이 춘매에게 물었다.

“가령, 젊은 부부가 와서 묻기를 자녀가 언제 생기겠느냐고 한다면 이것은 결정이 된 것일까? 아니면 결정이 될 일이라고 해야 할까?”

“어? 그건 아직 결정된 것이 아니잖아요? 그렇다면 결정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결정이 되어야 할 일이 틀림없어요. 이것은 복술(卜術)을 사용할 일이라는 뜻인가요?”

“맞아.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당연히 답을 해야겠지. 그리고 여기에 답을 하는 것에서도 저마다 관점이 같지 않을 것이네.”

“아니? 그야 언제 아들을 낳겠다고 답을 해 주면 되는 일이잖아요?”

“그 전에 물어봐야 할 것은 없을까?”

“다 물어보고 안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묻기 전에 알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요?”

“어허~! 오늘 춘매는 다른 날의 춘매와 사뭇 다른걸. 그렇게 신기한 것이 좋으면 예언가(豫言家)의 길로 가면 된다고 일껏 말했거늘. 하하하~!”

“아, 좀 그렇죠? 저도 왜 이러나 모르겠어요. 그래도 답은 해 주실 거죠?”

“물론이지. 아들이든 딸이든 낳는다고 말하기 전에 두 사람의 신체적인 문제는 없는지를 먼저 물어야 하지 않을까?”

“예? 그건 오주괘에 나오지 않나요? 전에도 그 비슷한 사례를 봤던 것같은데?”

“점괘에 나오고 말고는 나도 알지. 다만 그 이전에 최선을 다해서 이성적(理性的)으로 궁리를 하고 답을 찾았는지를 논하는 것이라네. 이치적(理致的)으로 논하면 학자이고, 영험한 능력으로 답을 찾으면 도사라고 할 수가 있지.”

“그렇다면, 스승님의 말씀으로는 부부간에 문제가 없는지 아기를 낳기 어려운 외부적인 요인은 없는지를 먼저 살펴보고 문답을 나눈 다음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했을 때 비로소 점괘를 본다는 뜻인가요?”

“맞아.”

“그건 좀 아닌 것 같잖아요? 고인의 가르침에도 그러한 것이 있었나요? 그렇지 않다면 스승님의 궤변(詭辯)이라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아무래도 오늘의 춘매가 말하는 것을 봐서는 막가자는 거지? 하하하~!”

“그게 아니라,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예? 그건 저도 알아요. 사람이 할 바를 다 한 다음에 천명을 기다린다는 뜻이잖아요? 그게 왜요?”

“가령 남편은 아이가 싫어서 부부합방을 하지 않는데 아내만 애가 타서 점괘를 물어본다면 어떻게 답을 해야 할까? 점괘에 자식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부부의 금슬(琴瑟)은 문제가 없는지를 먼저 물어야 할까?”

“아항~! 이제야 스승님의 말씀이 무슨 뜻인지를 알겠어요. 호호호~!”

“그래? 이제 이해가 된 건가? 제대로 이해한 것은 맞아?”

“당연하죠~! 점괘를 붙잡고 맞추고 말고에 관심을 두지 말고, 과연 그 질문이 점괘로 답을 할 것인지 생각해 보면 답을 구할 수가 있는 것인지를 미리 살펴보라는 뜻이잖아요? 그런데 도사는 잠시 후면 알 수가 있는 일도 미리 맞추려고 애를 쓰다가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된다는 뜻이고요. 제대로 이해한 것이 맞죠?”

“그렇게 말을 하니까 이제 다시 춘매로 돌아온 것처럼 보이기도 하네. 하하하~!”

“점괘에 대해서 좀 혼란스러웠는데 스승님의 자상하신 말씀으로 정리가 다 되었어요. 이제 이 문제로 스승님을 괴롭혀 드릴 일은 없겠어요. 호호호~!”

춘매가 비로소 잘 이해를 하자 다른 사람들도 모두 공감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자원이 말했다.

“싸부는 학자라서 논리(論理)를 우선하고, 도사는 적중(的中)을 우선하는 것이 달라서 저마다의 적성이라고 할 수가 있는 거네요. 오늘 동생과 싸부의 대화를 들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어요. 덕분에 또 재미있는 것을 깨달았어요.”

자원의 말을 듣고서 우창이 자원에게 말했다.

“점술가(占術家)의 오류(誤謬)가 바로 점괘를 과신(過信)한다는 것이야. 점괘는 하나의 조짐으로 놀라운 것은 틀림없어. 그것은 나도 오주괘를 통해서 충분히 느끼고 있으니까 점괘를 믿게 되는 마음도 이해가 되고, 무엇보다도 자신이 운용하는 점괘를 믿지 못한다면 어떻게 확실하지 않은 미래사(未來事)에 대해서 단언(斷言)할 수가 있겠어? 그러니까 당연히 신뢰(信賴)하는 것은 바람직한 거야. 다만 신뢰와 과신의 차이에서 큰 문제가 끼어있다는 것을 간과(看過)할 수가 있다는 거지.”

“예? 싸부의 말씀이 무슨 뜻인지는 알겠지만 좀 더 확실하게 설명해 주세요. 간과한다는 것에 대해서 이해가 될 것도 같은데 뭔가 미진해요.”

“아, 그럴까? 그 차이에는 과정(過程)을 중시(重視)하느냐, 아니면 결과(結果)를 중시하느냐에 있는 거야.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내가 추구하는 학문의 방향이라고 해야겠군. 이것은 인과법(因果法)에 바탕을 두고 있는 이치이기도 하다네. 콩을 심었으면 콩이 자라나게 되는 것이 자연의 이치라고 믿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지.”

“싸부는 항상 그러셨어요. 예나 지금이나 학문을 추구하는 방향은 지금 여기에서 출발하잖아요.”

자원이 우창의 성향을 잘 알고 있다는 듯이 말했다. 우창이 말을 이었다.

“가령 어떤 사람이 과거(科擧)를 보려고 준비한다고 하세. 그 사람이 찾아와서 묻는 거야. ‘선생의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제가 이번에 시험을 보면 등과(登科)를 할 수가 있겠습니까?’라고 말이지.”

“아하~! 어려운 질문을 받았네요. 그렇다면 어떤 답을 줘야 할까요?”

우창이 자원을 보면서 물었다.

“자원은 어떻게 답을 할 것인지부터 내가 물어볼 것이라는 점도 알고 있겠지?”

“아차~! 맞아요. 싸부는 반드시 되물으시는데 미끼를 덥석 물었네요. 할 수 없죠. 자원의 소견이라도 말씀을 드려야겠네요.”

그러자 춘매가 호기심어린 눈빛으로 말했다.

“와~! 언니의 해석이 어떤지도 궁금해요. 어서 말씀해 줘봐요.”

“알았어, 오늘 드디어 자원의 본전이 드러나겠구나. 호호호~!”

이렇게 말하면서 한바탕 웃고는 약간은 긴장한 듯이 말했다.

“첫째로 그 사람의 사주를 봐야겠어요. 사주에서 관원(官員)의 인연이 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에요. 관살(官殺)이 잘 짜여졌으면 관리(官吏)가 되는 것이 인연이지만 재성(財星)으로 구성이 되었거나 식상(食傷)이 만연하다면 관리가 된다고 하더라도 큰 재앙을 당하게 될 수 있으니까요.”

자원이 이렇게 말하고 우창을 바라보자 우창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짧게 한마디 했다.

“다음엔?”

“둘째로 점괘를 봐야죠. 사주에서 관원의 인연이 된다고 하더라도 점괘에 급제(及第)할 조짐이 보이지 않으면 이번 기회는 아니라고 해야 하니까요. 이 두 가지면 충분한 답이 될 것으로 생각되는데 싸부께선 어떻게 말씀하실지 궁금해요.”

자원의 말을 듣고 춘매가 말했다.

“와우~! 역시 언니의 판단은 간명(簡明)해서 좋아요. 그러한 기준이라면 저도 설명할 수가 있을 것도 같아요. 그 정도면 스승님도 잘했다고 하시지 싶은걸요. 스승님의 말씀은 또 다르시려나요?”

춘매가 우창을 보면서 답을 재촉했다. 우창이 춘매의 말을 다 듣고 나서 말했다.

“보통은 잘 답했다고 하겠네. 다만 내게 물었다면 조금 다른 답이 나올 수가 있겠지. 나는 제일 먼저 사주와 오주괘를 적어놓고는 묻겠어. ‘왜 관원이 되려 하시오?’라고 말이지.”

그러자 춘매가 재빨리 말을 받아서 말했다.

“아니, 관원이 되려는 것은 빤하잖아요? 부귀공명(富貴功名)을 얻고자 함이지 달리 무엇이 있겠어요?”

“그렇겠지? 그럼에도 나는 물어봐야 하겠네. 왜 관원이 되려고 하는지를 붇고자 하는 것은 스스로 부귀공명을 이루고자 하는 마음에서 청운(靑雲)의 뜻을 품고 학업(學業)을 연마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겠지만 모두가 그렇다고 단정(斷定)을 할 수가 있을까?”

“아니, 스승님도 참 답답하시네요. 그것 말로 또 뭐가 있겠어요?”

“그래도 혹 모르잖아?”

“쳇,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시려나 본데 이미 돌다리는 돌다리에요. 두드려보지 않아도 된단 말이죠. 과거를 보는 자는 공명(功名)을 이루고자 함이고, 상업(商業)하는 자는 축재(蓄財)를 이루고자 함이니 더 말을 하면 입만 아프죠. 스승님은 무엇을 염려하신 거죠? 그걸 여쭤야 하는데 말이죠. 호호호~!”

“내 생각은 말이네. 만에 하나라도 자신은 그 공부가 맘에 들지 않을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하고 있다네. 만약에 원하지 않는 과거라고 한다면 급제를 해도 고통이고, 하지 않아도 고통일 테니 그것부터 물어야 하지 않을까?”

“예? 그....건.... 생각지 못했어요. 귀를 기울일께요.”

우창의 말을 듣고서야 춘매는 아무래도 자신의 생각이 짧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슬며시 들자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우창이 미소를 머금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앞에서 내가 진인사대천명이라고 하지 않았어? 여기에서 진인사(盡人事)란 무슨 뜻일까? 학문(學問)이든 영감(靈感)이든 모든 것을 총동원(總動員)해서 그 사람이 하고자 하는 일이 과연 스스로 원하는 일이며 그 일을 하는 것에서 행복을 찾을 수가 있겠느냐는 것부터 찾아내야 비로소 사람이 할 일을 다 하는 것이라고 하겠지. 그러기 위해서 무슨 일이든 스스로 원해서 하는 일인지를 알아야 그다음의 이야기가 진행될 수가 있다는 말이네. 정승판서(政丞判書)도 제가 하기 싫으면 못한다고 하지 않던가?”

“맞아요. 싫은 일은 정말로 못해요. 스승님의 깊은 생각을 감히 헤아렸다고 까불었어요. 호호호~!”

“춘매는 항상 자기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명쾌하게 표현해서 좋지. 춘매와 이야기를 하다가 보면 나도 덩달아서 단순해지거든. 괜히 복잡하게 생각할 일이 없어서 말이야. 하하하~!”

“알았어요. 어서 말씀해 주세요.”

“가령 자신은 관리가 되는 것이 죽기보다도 싫은데 7대 독자(獨子) 외동아들에다가 부친이 판서(判書) 벼슬을 하고 있으면서 소중한 외아들에게 반드시 공부해야 한다고 하면 그 명을 거역하지 못해서 공부는 하더라도 결국은 그것으로 성공을 기약하기는 어려울 일이며, 겉으로는 비록 2대 판서가 된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행복은 또한 이룰 수가 없을 것이 아닌가?”

“스승님의 관점은 확실히 일반인의 생각과는 다르세요. 보통은 판서가 된다면 그보다 영광스러운 일이 없을 것으로 생각할 텐데 비록 상서가 되더라도 행복하지 않을 수가 있다는 생각을 하시다니 말이에요.”

“그야 어디 정승판서뿐이겠는가? 왕은 또 어떻고? 왕의 장자로 태어나서 재수 없이 왕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겠어?”

“정말 스승님의 말씀을 듣다가 보면 어디로 튈지 모르겠어요. 무슨 논리가 그래요?”

춘매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이 말하자, 우창이 답을 했다.

“어느 책[장자(莊子)]을 보니까 돼지가 천하의 진미를 먹으면서 비단옷으로 단장을 해 주자 너무나 행복했다더군. 그러다가 제삿날이 되자 죽여서 배를 갈라서 제물로 사용하려고 하는 것을 알고서야 이미 후회해도 소용이 없었다는 거야. 이러한 이야기는 누군가에게는 선망(羨望)의 대상도 또 누군가에겐 혐오(嫌惡)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을 따름이야.”

“도대체 그런 생각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가요? 참 신기해요.”

춘매가 그렇게 감탄하면서 말하자 우창이 답을 했다.

“유심론(唯心論)이라고나 할까? 쉽게 말하면 ‘한 마음’이겠군.”

“그렇다면 세상의 이치는 모두 마음에서 비롯한다는 뜻인가요?”

“맞아, 마음이 편하면 천하가 태평하고, 마음이 괴로우면 부귀공명도 모두 족쇄(足鎖)일 뿐이라는 것을 아직도 이해하지 못했어?”

“아, 이해가 되었어요. 그래서 과거에 급제할 것인지를 물으러 온 사람에게 우선 왜 과거를 보려고 하는지를 물어야 한다는 말이지요? 그렇다면 그의 답이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서 또 질문이 달라지겠네요?”

“물론이지. 과거에 급제해서 만민(萬民)을 편안하고 안락하게 다스리고 싶다고 하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만, 자신은 원치 않아도 부모님의 간절한 소망을 이뤄드리기 위해서 해야만 한다고 하면 이야기는 또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네.”

“아니, 그것은 좀 주제넘은 것이 아닐까요? 과거에 급제할 것인지를 물었는데 왜 과거를 보려고 하느냐는 말을 한다는 것이 말이에요.”

“그것이야말로 학문의 존재감(存在感)이지. 우창이 세상에 존재해야 할 이유이기도 하고 말이네. 묻는 대로 답만 한다면 그것이 무슨 철학자라고 할 수가 있겠어? 대화를 통해서 그에게 더욱 행복한 내일을 준비할 수가 있도록 해 줘야 하지 않겠느냔 말이지.”

그러자 가만히 듣고 있던 염재가 한마디 했다.

“스승님의 혜안(慧眼)에 감탄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만약에 제자가 스승님께 과거의 급제를 물었을 적에 과연 왜 과거시험을 보려고 하느냐고 한다면 어쩔 수가 없어서 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자괴감(自愧感)에 빠졌을 것입니다. 그렇게 한 번 물어준다면 그것만으로도 듣는 사람에게는 평생을 잊지 못할 소중한 전환점(轉換點)을 만나게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스승님의 말씀에 진실로 감탄했습니다. 상담가(相談家)와 예언가(豫言家)의 차이는 이런 것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자 우창이 염재의 말에 추가로 한 마디 얹었다.

“맞아, 학자는 상담을 통해서 보다 행복한 길로 안내를 하고, 예언가는 예언을 통해서 자신의 존재감을 더욱 높여가지. 그러나 학자의 길을 선택했다면 당연히 왜 그 길을 가고자 하는지를 물어야만 한다네. 염재는 학문(學問)의 제일의(第一義)가 무엇이었는지 기억하시나?”

“예, 학문의 첫째 의미는 배우고서 모르는 것을 묻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학문의 제이의(第二義)는 무엇이겠는가?”

“그것도 말씀해 주셨습니다. 배움을 실행하기 위해서 알면서도 묻는 것입니다. 지금 스승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바로 학문의 두 번째의 의미에 대해서 말씀하시고자 함을 헤아렸습니다. 잘 이해한 것인지요?”

“틀림없네.”

“예, 스승님의 가르침을 뼈에 새기겠습니다. 나중에 제자도 학문에 성취가 있어서 누군가 물어보러 온다면 반드시 먼저 물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명심(銘心)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공수하고 허리를 숙였다. 비록 앉은 자세였지만 이미 마음속으로는 절을 하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염재의 진심어린 모습을 보면서 일행은 모두 감동했다. 우창의 말이 이어졌다.

“일단, 자신의 사명(使命)이라고 답을 한다면 비로소 다음 단계로 사주에서 적성(適性)이 관리로 어울리는지를 봐야지. 막상 사주에서 그렇나 조짐이 보인다면 더 말을 할 나위도 없겠지만, 사주에서 그러한 청기(淸氣)가 보이지 않는다면 다시 물어야 하네.”

춘매가 즉시로 물었다.

“청기는 또 뭐에요?”

“관료는 남을 위해서 헌신(獻身)하고 봉사(奉仕)해야 하는데 청기(淸氣)가 없으면 그 일을 수행하기가 어렵기 때문이지. 만반탁기(滿盤濁氣)라면 관직(官職)을 수행하면서 뇌물을 받다가 도리어 형벌을 받게 되기 마련이거든.”

춘매가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관리를 하고 싶은데 사주가 탁하다면 어떻게 해요?”

“그렇게 되면 하지 말라고 말해 줘야지. 자신도 크게 죄를 짓고 멸문지화(滅門之禍)를 당할 수도 있고, 백성도 가렴주구(苛斂誅求)로 혹독(酷毒)한 정치를 베풀게 될 것이니 이러한 것을 미연(未然)에 방지한다면 또한 한 사람의 역할이 되지 않겠느냔 말이지.”

“말씀은 알겠는데, 그런다고 해서 스승님의 말을 듣고서 뜻을 바꿀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걸요. 이런 때는 어떻게 해요?”

“뭘 걱정해? 지금 해줘야 할 말이기 때문에 그냥 말을 해 줄 따름이지. 나중에 무슨 일이 생긴 다음에라도 내 말이 떠오른다면 그것만으로도 한마디의 가치는 충분한 까닭이라네. 하하하~!”

“알겠어요. 그럼 이제 과거에 급제할 것인지를 봐줘야죠?”

“아직도 멀었어. 급제할 만큼 공부를 했는지를 물어야지.”

“예? 그야 당연히 최선을 다했을 것이잖아요? 설령(設令) 공부하지 않아서 낙방하게 된다면 당연히 점괘에서도 불가한 것으로 나올 텐데 괜한 걱정을 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것이야말로 우창과 춘매의 차이겠지? 당연히 점괘에 나올 것을 알면서 점괘를 볼 필요가 있을까? 학문을 위해서 최선(最善)을 다했는지는 반드시 물어야 한다네. 그리고 자신도 그것은 알아.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고 하면 과거를 볼 생각을 하지 말고 공부를 더 하라고 하는 답이 기다리고 있지. 이렇게 끝없이 질문은 이어지는 것이라네. 하하하~!”

“과연 스승님의 가르침은 하해(河海)와 같아요. 언뜻 들으면 무리한 질문이라고 생각이 되지만 막상 듣고 보면 그보다 중요한 것이 없겠다는 생각이 드니까 말이에요. 참 놀라워요. 그래서 염재도 감탄을 한 것이었네요.”

“이제야 춘매가 이해를 제대로 했구나. 다행이네. 하하하~!”

“그럼 진인사는 언제나 끝이 나요?”

“이제 다 왔어. 그다음에 과연 스스로 할 수가 있는 것은 모두 다 했다고 판단이 될 적에 비로소 점괘를 살펴보게 되는 거야. 점괘의 조짐은 하늘에서 온 것이라고 해도 좋을 거야.”

그러면서 종이에 오주괘를 썼다.

302 과거괘

“자, 여기 점괘가 두 개가 있다고 하세. 갑(甲)인과 을(乙)인이 있다고 한다면, 과거에 유리한 사람은 누구일까? 춘매가 답을 해 보려나?”

“제가 보기에는 갑인은 관운(官運)이 없어요. 그런데 을인은 병신합(丙辛合)으로 관운이 닿아 았으니 당연히 을인이 유리하다고 할 수가 있겠어요.”

“맞아. 그렇게 보면 되는 것이라네.”

“실제로 을인이 과거에 급제했나요?”

“그야 모르지, 그냥 가상(假想)의 점괘인데 뭘. 하하하~!”

“에잉~! 그럼 싱겁잖아요. 호호호~!”

“싱겁기는, 이러한 것을 통해서 내공을 쌓아가는 거야. 이제 대천명(待天命)을 하는 두 사람 중에서 누구에게 천명이 내릴 것인지를 알았잖아? 그러면 된 거지 뭘. 하하하~!”

“알았어요. 중요한 것은 과연 어떻게 마음을 먹게 되었으며, 노력은 어떻게 했는지를 확인한 다음에 점신(占神)의 의향을 물어도 늦지 않는다는 뜻이죠? 방문자가 묻는다고 해서 질문이 떨어지자마자 늦게 답을 하면 돌팔이라고 망신이라도 당할까 봐서 허둥지둥 답을 찾다가 실수하게 되면 그것이야말로 돌이킬 수가 없는 학자의 수모(受侮)라고 생각하신다는 거죠?”

“옳지~! 내 마음이 바로 그 맘이라네. 하하하~!”

그러자 안산이 깊은 깨달음이 있었다는 듯이 말했다.

“과연 어리석은 안산도 스승님의 가르침으로 무럭무럭 자라고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은 평생을 가슴에 새겨 놓고서 방문자를 맞이할 때마다 떠올려야 할 금언(金言)입니다. 반드시 잊지 않고 헛된 조언을 하지 않도록 정진(精進)하겠습니다. 복술(卜術)을 공부하면서 이렇게 깊은 가르침을 받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안산의 말에 모두는 우창에게 공수했다. 우창도 답례하고서 마무리 삼아서 한마디 했다.

“진인사대천명의 뜻을 잘 헤아리는 것이 복술가의 요지(要旨)라고 봐야지요. 그리고 지천명진인사(知天命盡人事)는 명술(命術)의 요지이기도 합니다. 명술은 하늘의 뜻을 미리 알고 노력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고, 점술은 사람이 할 일을 다 한 다음에 천명을 기다리는 것이지요.”

그러자 안산이 다시 깜짝 놀라면서 말했다.

“아니, 진인사대천명이라는 말은 있습니다만, 지천명진인사라는 말은 금시초문(今始初聞)입니다.”

그러자 우창이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공자님은 점술에 빠져계셔서 진인사대천명을 말씀하신 것이고, 나는 숙명(宿命)에 빠져있어서 기본적인 바탕부터 선천적(先天的)으로 어떤 업연(業緣)을 받고 태어났는지를 살핀 다음에 어떻게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 최선이 될 것인지를 생각하는 까닭입니다. 결국은 사주를 중시하면 지천명에 방점(傍點)을 찍고, 점괘를 중시하면 진인사(盡人事)에 방점을 찍는 것이니 이것은 서로 다른 길이라고 해도 될 것입니다.”

“과연, 훌륭하신 관법이십니다.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그러자 춘매가 다시 말했다.

“정말 무엇을 공부하든지 결국은 자연의 이치로 돌아가네요. 호호호~!”

복술(卜術)의 난해한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인지 모두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자 자원이 말했다.

“동생이랑 나가서 먹을 것을 좀 준비해 올게요. 좀 쉬고 계세요. 너무 몰아치면 머리가 아플지도 몰라요.”

그러자 모두 동의했다. 춘매가 자원과 함께 서둘러서 문을 나섰다. 자원이 걸으면서 춘매에게 말했다.

“와우~! 오늘 보니까 동생도 여간내기가 아니야. 호호호~!”

“뭘요. 궁금한 것은 그냥 넘어가지 못할 뿐이지 천방지축이에요. 그래도 그렇게 봐 주시니 고마워요. 언니. 호호~!”

두 사람의 쾌활한 대화가 골목으로 사라지고 얼마지 않아서 또 먹을 것을 양손에 가득 들고 돌아왔다. 그렇게 해서 모두 행복한 한 끼의 음식을 즐기면서 자연의 신에 감사했다. 오행원(五行院)은 오늘도 화기만당(和氣滿堂)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