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1] 제28장. 오행원/ 12.육임신과(六壬神課)
작성일
2021-04-30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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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1] 제28장. 오행원(五行院)
12. 육임신과(六壬神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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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매가 호기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자원의 설명을 기다렸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방문자의 시간을 사용하는 것이 싸부가 운용하는 오주괘와 닮은 점이 많다는 거야.”
“와우~! 그렇다면 더욱 관심이 생기는데요? 어서 설명을 해 주세요. 내용이 무엇인지만 알면 되니까요.”
자원이 잠시 생각하더니 종이에 글자를 썼다. 모두의 이목이 자원의 붓끝을 따라서 같이 움직였다.
춘매가 기대하고 보다가는 아는 글자가 나오자 반가워서 말했다.
“어? 간지(干支)로 되어 있네요? 그렇다면 명술(命術)이기도 한 건가요?”
“어때? 동생이 보기에도 낯설진 않아 보이지? 호호호~!”
“그런데 어떻게 해석하는 것인지는 몰라도 읽을 수라도 있어서 다행이네요. 생소하지 않은 이웃집 같아서요. 호호호~!”
“이것은 옛날에 어느 도관(道觀)에서 수행할 적에 가까이에서 모셨던 도사(道士)께서 방문한 손님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적어놓은 것이 마침 생각나서 보여주는 거야. 당시 세 사람이 찾아왔었는데 한 사람이 대표이고 다른 사람은 동업하는 사람이었다고 했어.”
“아, 그렇다면 사업에 대한 것을 알아보려고 찾아왔었던가 봐요?”
“맞아, 여행하는 사람들을 안내하는 여행안내소를 하기로하고 많은 직원을 고용해서 사업을 시작했는데 수입이 늘어나서 부자가 될 것인지를 물어보러 왔던 거야.”
“궁금할 만도 하겠어요. 그래서 도사님은 뭐라고 하셨어요? 이것만 봐서는 어떻게 풀이가 될지 전혀 가늠되지 않아요. 모두 지지(地支)만 있고, 천간(天干)은 정(丁) 하나뿐이네요.”
“도사님의 말씀은 이랬어. ‘이번 일의 투자는 돈이 많이 들어갔군. 이미 돈은 다 들어갔는데 막상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기본금이 자꾸만 줄어들고 있는데 삼월(三月)ㆍ유월(六月)ㆍ구월(九月)에는 재앙이 겹쳐들고 있으니 건강에 대해서조차도 주의해야 하겠는걸.’이라고 말이야.”
자원의 말을 듣고 있던 춘매가 놀라면서 말했다.
“아니, 그렇게 용한 점괘에요? 점괘치고는 정말 나쁜 조짐이네요.”
“손님들이 가고 난 다음에 나도 신기해서 도사에게 물었어. ‘어떤 원리로 그러한 해석을 하신거에요?’라고 말이야. 그랬더니 도사의 답변은 간단했어. ‘말해줘도 모르니 무예나 열심히 익히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말이야.”
“그렇게 말씀하셨다는 것은 설명해주기 싫다는 것이잖아요?”
“내가 자꾸만 귀찮게 묻자, 설명은 했는데 실은 설명을 들었어도 안 들은 것이나 마찬가지였어. 하나도 못 알아 들었거든. 호호~!”
“뭐라고 하셨는지 기억은 나세요?”
“응, 축술미(丑戌未)의 삼형(三刑)이 들고 음귀(陰鬼)가 어떻고, 묘(墓)가 보이니 신체에 큰 변고(變故)도 있을 조짐이며, 일정생칠토(一丁生七土)하니 어찌 원금(元金)이 소모되지 않겠느냐는 말도 했었지. 이것은 후에 이해가 되어서 기억했던가 보네.”
“와~! 정말 신기하기는 하네요.”
“맞아, 그래서 나도 그 말에 혹해서 공부하겠다고 떼를 썼더니 해보라고는 했는데 부적을 태워 먹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와서 그만 열의가 식어졌지 뭐야. 아마도 애초에 인연이 아니었던가 봐.”
“괘를 보니까 오주괘보다 한 글자가 더 많아요. 오주괘는 열 글자인데, 이것은 열한 글자네요. 다만 간지의 조합이 아니라 좀 복잡한 것 같기는 해요.”
“위의 해술술(亥戌戌)은 삼전(三傳)이라고 하고, 아래의 여덟 글자는 사과(四課)라고 한다는 것까지만 겨우 이해했지 뭐야. 어때? 동생은 육임에 대해서 공부할 마음이 생겼어? 호호~!”
지원에 이렇게 말하면서 웃자 춘매도 손사래를 치면서 말했다.
“원, 그럴 리가요. 육임과는 인연이 없을 것으로 생각되네요. 그렇다면 매화역수(梅花易數)는 어떤 건가요? 가끔 주워들은 풍월로는 신묘(神妙)하게 잘 맞는다고 하던데 과연 그런가 궁금하기는 해요.”
“그래? 궁금한 것은 이야기를 해 줘야지. 매화역수란 말이야.”
춘매가 알아듣기 쉽도록[218편 참고] 자원이 자상한 설명을 해 줬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춘매가 손뼉을 치면서 말했다.
“신기해요~! 그런 것이 매화역수였구나. 소강절 선생의 뛰어난 예지(豫知)가 가득한 능력과 자연의 현상을 놓치지 않고 살피는 통찰(統察)이 정말 멋지네요. 역시 공부를 많이 해야만 주어지는 선물이겠지요?”
“어? 동생의 어휘(語彙)가 날로 세련(洗鍊)되어가고 있잖아? 놀라워~!”
“그런가요? 함께 공부하다가 보면 이슬비에 옷이 젖는 줄을 모르듯이 자연스럽게 동화(同化)되어 가나 봐요. 모두가 훌륭하신 인연으로 인한 덕분이라고 할 밖에 달리 드릴 말씀이 없어요. 호호호~!”
“오행의 공부가 깊어지게 되면 점점 자연의 변화를 읽고 살피는 능력도 깊어지는 것이 틀림없다고 봐. 그러니까 너무 멀리 있는 위대한 것을 찾지 말고 항상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를 주시(注視)하는 것만으로도 학문의 혜안(慧眼)은 깊어지고 넓어지는 거야.”
자원이 육임을 설명하는 이야기에 우창도 흥미롭게 듣다가 대략 말이 끝난 것으로 보이자 한마디 거들었다. 일동은 모두 우창에게로 이목을 집중했다. 우창이 한번 쓱 둘러보고는 말했다.
“과연, 자원의 설명이 있어서 나도 안목을 넓혔네. 사실, 육임은 나도 생소해서 어떻게 생겼는지를 궁금하게 여겼는데, 오늘에서야 그 대강을 보고 들었네. 그러니까 위에 써놓은 해술술(亥戌戌)은 삼전(三傳)이 되고, 아래에 써놓은 간지는 사과(四課)가 되어서 삼전사과(三專四課)라고 한다는 말이지?”
“맞아요. 싸부가 말씀하신 그대로에요.”
“그런데, 「육임신과(六壬神課)」라는 말은 신험(神驗)하다는 뜻에서 붙은 이름이겠지? 사과라고 하지 않고 신과(神課)라고 하는 것을 보면 말이지. 그리고 부적이 등장하는 것으로 봐서 신비로운 점괘라는 의미도 포함되어있는 것으로 보이는걸.”
“아마도 그렇지 싶어요. 자원도 겨우 그 정도만 알고 있으니까 더는 묻지 말아 주세요. 호호호~!”
그러자 춘매가 다시 궁금한 것이 생겼는지 자원에게 물었다.
“그런데 이름이 왜 육임(六壬)일까요? 육갑(六甲)도 있고, 육계(六癸)도 있는데 왜 하필이면 여섯 개의 임(壬)이라고 했는지는 궁금해요.”
“그건 나도 못 여쭤봤는걸. 아마도 임(壬)은 천간으로 아홉 번째의 숫자이니 최대로 크다는 의미가 아닐까? 마지막의 계(癸)는 열 번째라서 모든 것을 공허하게 돌아간다는 생각을 했다면 임으로 가장 위대한 점술이라는 의미로 붙였을 수도 있겠지?”
“왜요? 원래 십(十)이야말로 참된 도(道)의 완성(完成)이잖아요?”
춘매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이 다시 물었다. 그러자 자원이 미소를 짓고는 조곤조곤 설명했다.
“그것이 학문간의 견해가 다르다는 거야. 육임에서 아홉 번째의 숫자를 최대로 큰 숫자라고 본 것은 구궁도(九宮圖)에서 발생한 관점일 것으로 봐. 구궁에는 십(十)이 없으니까 말이야. 다시 말하면 육임(六壬)은 구(九)와 같은 말이라는 이야기인 셈이야. 호호~!”
“아하~! 그럴싸해요. 호호~!”
춘매가 이해를 했다는 듯이 말하면서 웃자 우창이 말했다.
“자원의 설명을 들으면서 새삼스럽게 도락(道樂) 스승님의 통찰력의 뛰어남에 대해서 감동을 하게 되었다네. 오주괘를 운용해서도 일상에서 일어나는 궁금한 점에 대해서는 답변이 충분히 될뿐더러 추가로 필요한 것을 느끼지도 못했는데, 하물며 기도하면서 점괘를 얻어서 복잡한 공식을 거쳐서 이와 같은 결과를 얻어서 신출귀몰(神出鬼沒)하는 세상을 들여다볼 수가 있을지는 몰라도 내가 그것에 대해서는 조금도 관심이 없으니 또한 모르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면서 도락 스승님이 아니었다면 지금 점사(占辭)에 대해서 어떻게 하고 있었을 것인지를 생각하게 되었다네. 아마도 역경의 이치를 기웃거리면서 매화역수라도 활용하려고 안달하고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군.”
우창의 소회(所懷)를 들으면서 모두 숙연해졌다. 지나가는 인연처럼 만나서 소중한 가르침을 들었던 것이 이렇게도 대단한 것이었다는 것을 그로부터 세월이 한참 흘러간 다음에서야 비로소 알게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오늘은 이렇게 우창에게 오행의 이치를 배우고 있으나 이것이 앞으로 또 어떤 큰 인연을 가져오게 될지 알 수가 없다는 생각에 오늘의 소중함에 감사하는 마음이었기 때문이다. 우창의 말을 들으면서 생각에 잠겼던 염재가 궁금한 것이 생겼는지 우창에게 물었다.
“스승님의 가르침을 청합니다.”
“응? 뭔가?”
“지금 복술(卜術)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는 중이기에 궁금증이 생겨서 여쭙고 싶습니다. 명술(命術)과 복술(卜術)의 차이가 무엇이라고 이해하면 되겠는지요?”
“오~! 참 좋은 질문이군. 모두가 궁금할 질문이기도 하고 말이네. 그렇다면 어디 내 생각을 말하겠네.”
이렇게 말하면서 차를 한 모금 마신 우창이 천천히 말을 꺼냈다.
“그것은 말이네.”
네 사람의 눈동자는 우창의 입에 고정이 되었고,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하나라도 소중히 담으려는 열정이 한 덩어리로 뭉친 듯했다. 그것을 둘러보면서 우창은 가슴 속에서 뭉클하는 것이 느껴졌다. 이렇게도 학문에 대한 열망이 순수한 사람들과 함께 호흡하면서 토론하고 진리를 주고받는다는 기쁨이야말로 삶의 환희(歡喜)였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앞에 있기에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까지 생각하자 복받쳐 오르는 감정을 자제하면서 애써 천천히 말을 시작했다.
“염재가 궁금하다고 질문한 것은 내가 오랫동안 궁금한 것이기도 했지. 그리고 이제 그에 대해서 약간 이나마 말을 해 줄 수가 있어서 다행이기도 하네. 우선 ‘정해진 것’과 ‘정해질 것’에 대한 차이를 이해하면 되겠네. 명술(命術)이든 명학(命學)이든 그건 중요한 것이 아니지. 배우면 명학이고 운용하면 명술이니까 말이네. 태어나면서 주어진 사주팔자(四柱八字)는 ‘정해진 것’에 속하고, 누군가 자신의 미래를 물었을 적에 사주 이외의 방법으로 답을 찾는다면 그것은 ‘정해질 것’에 대한 영역으로 복술(卜術)에 해당한다고 보면 될 것이네.”
우창의 이렇게 설명하자 염재가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스승님, 태어나면서 일평생의 상황을 암시하고 있는 팔자가 있는데 다시 조짐(兆朕)을 알아야 할 이유가 있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변화(變化)로 인해서라네.”
“예? 무슨.... 말씀이신지.....?”
“한 해는 몇 날이 되는가?”
“예? 한 해는 대략 360일이 아닙니까?”
“그렇다네. 일월(日月)의 운행이 이렇게도 명명백백(明明白白)함에도 불구하고 왜 ‘대략’이라는 말을 써야만 하는 것인가?”
“실로 한 달이 30일이면 또 다음 달은 29일입니다. 그로 인해서 대략 따져서 한 해가 되면 360일에서 6일이 빠지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354일이 되는 셈이지요. 그로 인해서 천체의 운행과 맞아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24절기를 사용해서 태양의 운행을 나타내고, 매월은 달의 운행에 따라서 30일과 29일로 일정을 맞춰가게 됩니다. 그로 인해서 3년이나 4년에 한 번씩 윤달을 넣어서 일월(日月)의 운행에서 일어나는 오차를 조정하게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염재의 말을 듣고 있던 춘매가 염재에게 물었다.
“왜 한 달이 29일이면 다음 달은 30일이 되는 거야? 여기에도 법칙이 있는 거야?”
“예, 사저님. 제가 알기로는 한 달은 29일과 6시진(時辰:12시간)이기 때문에 하루의 절반이 되는 셈입니다. 그래서 편의를 위해서 한 달은 29일로 했으면 그 남는 부분은 다음 달에 붙여서 30일이 되는 형식으로 약속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와같이 된 것입니다.”
“아항~! 그랬구나. 몰랐어. 고마워~! 호호~!”
춘매가 궁금한 것을 해결하고 나자 우창이 다시 말을 이었다.
“맞아, 염재는 이미 자연의 운행에 대한 이치를 배워서 잘 알고 있으니 자연은 항상 변수(變數)가 있다는 것도 이해하겠지?”
“예, 그렇습니다. 비록 춘하추동(春夏秋冬)은 절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서 여름이 눈이 오거나 겨울에 꽃이 피지는 않습니다.”
“아, 그건 아니지. 완전히 그러한 일이 없다고 할 수는 없네. 여기에도 천지운행(天地運行)의 변수에 의해서 한여름에 우박(雨雹)이 쏟아지기도 하여 농작물은 물론이고, 집과 같은 것에도 큰 피해를 준다네. 그리고 겨울에도 꽃이 피어서 사람들은 기이한 현상이라느니 길조(吉兆)라느니 하면서 신기하게 여기기도 하니까 말이네.”
“아, 역시 제자의 생각이 짧았습니다. 스승님의 가르침이 아니었다면 좁은 고정관념(固定觀念)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감사드립니다.”
염재가 공수하여 감사한 마음을 표하자 우창이 미소를 짓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비유하자면, 춘하추동은 팔자의 명식(命式)과 같은 것이라고 할 수가 있겠지? 기본적으로 일월의 운행이 바뀌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 운행을 믿게 되고, 동지(冬至)에서 하지(夏至)까지의 순환에 대해서도 의심을 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것이라네.”
“이해가 됩니다. 그렇다면 ‘정해질 것’이란 매일의 천기(天氣)가 변화하는 것이나, 수시(隨時)로 변화하는 주변의 상황에 따라서 변화가 생기는 것은 춘하추동에서 알 수가 없듯이 사주의 상황만으로는 해석이 되지 않을 때 비로소 조짐을 살펴서 난관(難關)을 타개(打開)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씀이시지요? 그래서 복술(卜術)이 필요하게 된다는 의미입니까?”
“맞아, 그래서 복술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고 보면, 이제 그러한 조짐, 그러니까 아직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멀지 않은 시기에 반드시 일어나게 될 그 일의 결과를 어떻게 알아낼 것인가에 대해서 지식인들이 머리를 모았겠지? 그렇게 하다가 보니까 저마다 비전(秘傳)을 심수(心受)하게 되고, 다시 전수(傳授)하면서 오랜 세월을 흐르게 된 것이고, 그 과정에서 계속 갈고 닦아서 하나의 복술이 되었다고 보면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네.”
우창의 설명을 듣고서야 염재는 그 차이점에 대해서 이해가 잘 되었다. 그래서 공수로 감사를 표하자 이번에는 춘매가 이어서 물었다.
“스승님. 복술이 그렇게 다양하다면 하나의 조짐에 대해서 저마다 자신의 비기(秘技)를 펼쳤을 적에 결과에 대한 징험(徵驗)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가령, 개가 새끼를 낳기 전에 몇 마리의 암수 강아지를 낳게 될 것인지를 점한다면 육임과, 육효와, 단시점과, 오주괘의 조짐이 모두 적중하는 것이 복술이잖아요? 이렇게 해서 대결을 해 봤으면 재미있겠어요. 호호~!”
“그렇겠지. 그러한 것을 맞추려고 일생을 허비하는 복술가도 한둘이 아니겠지?”
“아니, 스승님은 왜 그것이 허비라고 생각하시는 거죠? 재미있고 신기한 일이잖아요? 스승님이 혹 능력이 안 된다고 해서 그러한 재능을 갖고서 손바닥의 여의주처럼 자유자재로 부리는 사람을 비하(卑下)하신다면 그것은 어울리지 않아요. 호호호~!”
춘매의 말에 우창이 웃으면서 답했다.
“과연 듣고 보니 일리가 있는 말이기는 하네. 하하하~!”
“그렇다면 그 이유를 말씀해 주셔야지요. 어린 제자는 스승님의 기운을 먹고 자란답니다. 자칫하면 편협(偏狹)한 생각으로 제자를 가르치게 되어서 제자도 옹졸(擁拙)한 사람이 되면 어떡하느냔 말이에요. 호호호~!”
“듣고 보니 책임이 막중하군. 이거 잘 말하지 않으면 제자들이 모두 도망가버리고 말겠잖아? 하하하~!”
“그렇지 않은 줄을 아니까 드리는 말씀이죠. 어서 이유를 말씀해 주세요.”
“옛날에 신선도(神仙道)를 수련하던 도사가 있었다네.”
“와우~! 도사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흥미로워요.”
“하루는 도사가 제자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는데 잘 차려입어서 누가 봐도 매우 부유해 보이는 남자가 찾아왔다네. 그 사람이 문밖에서 인사를 하고 있는데 예전부터 그 사람을 잘 알고 있던 제자가 물었다네. ‘스승님 저 사람은 어떤 일로 저렇게 부자가 된 것일까요?’라고 말이네.”
“우와~! 스승님을 시험했다는 거잖아요? 그 제자도 참 당돌하네요.”
“뭐, 춘매나 그 제자나 오십보백보(五十步百步)인걸. 하하하~!”
“아~니죠~! 그럴리가요. 호호호~!”
“그 스승이 한번 쓱 훑어보고는 말했다네. ‘남의 집 변소(便所)에 밥줄이 있는 사람이로다.’라고 말이네.”
“어? 그건 무슨 말이에요? 남의 집 변소에 밥줄이 있다니요?”
“변소에 대소변이 가득 차게 되면 어떡게 하지?”
“아, 변소를 퍼주고 그 삯을 받아서 먹고 산다는 뜻인 거에요? 와~ 신기하기도 해라. 그걸 어떻게 안단 말이에요?”
“음.... 춘매가 학자의 인연인가 했더니 오늘 봐서는 도사 줄로 보이는걸. 아무래도 스승을 잘못 택한 것은 아닌가 모르겠군.”
“예? 에구~! 무슨 말씀을요. 학자든 도사든 그냥 호기심 덩어리일 뿐이에요. 절대로 그럴 리가 없어요. 행여라도 그런 말씀은 하지 마세요. 호호호~!”
“스승의 말을 듣고는 함께 이야기를 나누던 사람들은 일제히 그 방문한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지. 그러자 그가 질문했던 제자를 발견하고는 반갑게 인사를 하는 거야. 그러자 제자가 물었어. ‘그대의 직업이 무엇이오?’라고 말이지. 그러자 그 남자는 자신을 상대로 놓고 담론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고는 말했다네. ‘측간청소부(廁間淸掃夫)라오~!’라고 말이네.”
“그 말을 듣고 다들 기절초풍을 했겠어요. 그렇게 용한 도사님 좀 만나봤으면 좋겠어요. 아무리 봐도 제 스승님은 그렇게 용하신 것 같지는 않아서 말이에요. 호호호~!”
“그건 잘 봤네. 하하하~!”
“어? 스승님 혹 삐지신 건 아니죠? 제가 농담을 했던 거에요. 그런데 변소를 청소하고도 부자가 될 수 있나요?”
“그야 규모에 달렸겠지? 처음에는 자신이 푸러 다녔겠지만 나중에는 사람을 시켜서 하면 되니까 말이야.”
그런데 그 순간에 밖에서 한 사내의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변소 푸려~! 측간 푸려~!”
이 외침을 듣고서 일행은 서로 마주 보면서 한바탕 웃었다. 조용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안산조차도 재미있는 풍경에 웃음이 터져 나왔을 정도였다. 다시 분위기가 가라앉자 춘매가 물었다.
“그런데, 왜 스승님은 그렇게 신기한 이야기에도 별로 감흥이 없으신 건가요? 오행을 설명하실 적에 신나서 말씀하시는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에서 다른 사람을 대하고 있는 것 같은 생각조차 들어요.”
“그래? 사람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있고, 싫어하는 것도 있기 마련이니까 그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까?”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춘매도 딱히 할 말이 없었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의문이 풀리지 않아서 다시 물어야 했다.
“스승님, 그러니까요. 스승님께서 왜 그러한 것을 알고자 노력하는 것을 헛된 일이라고 하시느냔 말에 대해서 왜 답을 안 하세요? 혹 적당한 핑계가 없으신 건가요? 그렇다면 없는 대로 모른다고 해 주시면 그런 줄로 알 테니까 말씀이나 해 주셔야죠. 호호호~!”
춘매의 성화에 우창도 웃으면서 답했다.
“그렇게 답을 듣고 싶단 말인가? 사실은 답이 없는데 자꾸만 간청하니까 답을 하지 않을 수도 없고 그래서 난처하군. 답을 않자니 춘매가 서운하겠고, 하자니 그들을 비웃는 꼴이 될까 염려가 되어서 말이야. 어쩌지? 하하하~!”
“그게 무슨 대수에요? 그것을 ‘학자의 견해’라고 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부디 스승님의 속마음을 꺼내서 보여주시기만 바랄 따름이에요.”
“그러니까 내 견해를 꼭 들어야 하겠단 말이잖아?”
“당연하죠. 그래야 춘매도 도사의 줄에 서야 할지 학자 줄에 서야 할지를 가름할 것이니까요. 호호호~!”
“실은, 새끼를 낳을 때까지 기다려 보면 될 일을 괜히 미리 자신은 그런 것도 안다는 듯이 이야기를 해서 자랑을 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은 생각인 거지 뭐.”
“예? 그게 무슨 말씀이죠? 그런 식으로 말한다면, 세상에 복술이 왜 필요하겠으며, 사주팔자는 봐서 뭘 하겠어요? 어차피 살다가 보면 팔자대로 살 것이고, 조짐도 그렇지, 눈이 오면 ‘눈이 오나 보다’하고, 비가 오면 ‘비가 오나 보다’하면 되는 거잖아요?”
“오호~! 이번엔 이유가 있는 항변인걸. 이제 답변을 할 마음이 동하는구나. 하하하~!”
“그럼 앞에서는 답을 할 가치도 없었다는 말씀이세요?”
“아마도? 하하하~!”
“그렇다면 지금 여쭌 것에 대해서라도 답을 주세요.”
“당연히 답을 해야지. 제대로 물어줬으니 고마울밖에.”
“그런 건가요? 저는 뭘 제대로 물었는지도 모르겠는데요?”
“그건 그렇고, 자, 내가 춘매에게 물어보자. 개가 새끼를 몇 마리 낳을 것이며, 그중에 암수는 각각 몇 마리일지는 정해 졌을까? 아니면 앞으로 정해질 것일까?”
“예? 그야 당연히 이미 정해졌죠. 이제 새끼는 나올 시간만 기다리고 있을 따름인걸요. 그게 무슨 의미가 있죠?”
“다시 또 물어볼까? 변소를 퍼서 먹고 살 든 식당을 해서 먹고 살든 그것은 정해진 것일까? 아니면 정해질 것일까?”
“그것도 정해진 것인데요? 가만.... 그러니까... 정해진 것은 팔자에서 담당한다고 하셨잖아요? 그러니까 팔자에 변소를 퍼서 먹고살 것이라는 것이 나온다는 뜻인가요?”
“아니, 그런 것은 없어. 우연히 인연에 따라서 그 일을 하게 되었을 뿐이지.”
“그건 또 무슨 말씀이세요?”
“만약에 같은 사주를 타고 난 다른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도 같은 일을 하게 될지를 생각해 보면 알 일이지.”
“아, 그러니까 변소를 퍼서 먹고 살든, 밥을 팔아서 먹고살든 그것은 사주와는 무관하더라도 이미 정해진 일이니 알기 위해서 애를 쓸 필요가 없다는 뜻인가요?”
“옳지~! 이제 뭔가 말이 통하려는가 보군. 이미 정해진 일을 알아낸다는 것이 과연 신기할지는 몰라도, 그것을 알기 위해서 소중한 인생을 허비해야 할 만큼 중요한 일인지도 생각해 봐”
“맞아요. 신기한 것은 틀림없지만 그런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어요. 그렇다면 무엇을 미리 알아야 할까요? 그 의문은 여전히 풀리지 않았어요. 이에 대한 속 시원한 답변을 해 주세요.”
춘매의 궁금증도 집요했다.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반드시 해결을 봐야만 넘어가는 면이 있었다. 우창이 다시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 것인지를 정리하기 위해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