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질견광⑦ 용마소와 맷돌

작성일
2023-05-15 06:44
조회
504

지질견광⑦ 용마소(龍馬沼)와 맷돌바위


(2023년 5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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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웃지 못할 일도 생기기 마련이다. 내가 알고 있던 것이 사실과 다를 수도 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을 적에 머리를 긁은 들 이미 늦은 것임을 알게 되었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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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 용마소(龍馬沼)라면 여하튼 물 웅덩이가 있을 것으로 여겼는데 막상 용마소라고 되어있는 곳을 가봤을 적에 딱히 눈에 띄는 소가 보이지 않아서 황당했더라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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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마소라면 주인공은 암벽이 아니라 물이다. 물이 고인 바닥일 수도 있겠구나. 여하튼 소는 폭포의 아래에 주로 생기기 마련이다. 주변의 분위기로 봐서 여기가 용마소인 것은 틀림없겠거니.....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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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싸 한 작품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한 몫을 한다. 그래서 소를 찾아서 천변으로 내려갔다. 어디가 용마소라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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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영장을 마련해 놓은 둔치는 알겠는데 용마소라고 할만 한 것이 보이지 않아서 약간 당황스러웠다. 그러니까 전설만 남고 실물은 사라졌느냐는 의문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런 줄 알고 지나가면 그것이 맞는 겨~!"

하긴, 그렇기도 하다. 비빔밥의 맛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거 맛이 왜 이래?'라고 하겠지만, 처음으로 맛을 본 사람은 '아, 원래 비빔밥은 맛이 이런 것이구나....'하고 다음에는 먹을 생각을 하지 않을 따름인 것과 비슷하다고 하겠다.

용마소에 와서 용마소를 봤다고 생각하고 돌아섰는데 나중에 보니 다른 사람이 본 용마소는 내가 본 것과 같지 않더라는 것을 알게 되었더라는 말이 이렇게 장황하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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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바위 아래가 용마소일까? 의문은 있었지만 주변의 분위기로 봐서 이쯤이 용마소이겠거니 했다. 그랬으면 안 되었는데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 거북바위에서 이미 즐거운 놀이를 했기 때문에 암벽에 대한 감흥은 다소 사그라들었다고 해도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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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하튼 결론은 위쪽으로 조금만 더 올라갔어야 한다는 짐작만 하게 되었다. 그때 지도라도 봤으면 제대로 찾았으련만, 그래서 화표주랑 같이 붙여서 정리할까 싶은 생각도 했지만 그래도 용마소는 용마소의 이야기가 있고, 명색이 화암팔경의 하나인데 그럴 수는 없지 않겠느냐는 생각도 들고, 또 전설을 봐하니 언급할 이야기도 있고 해서 한 꼭지 마련하게 되었더라는 말씀을 드린다. ㅎㅎ

 



[용마소의 전설]

조선 중기에 이 마을에 살고 있던 김안댁이라는 여인이 아들을 낳았다. 그런데 아기가 며칠이 되지 않았는데 방의 윗목에 있는 선반으로 올라가서 놀고 있는 등 이렇게 행동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생각한 부모는 이 아이가 나중에 장수가 되면 혹시 역적으로 몰려서 전 가족이 죽음을 면치 못하게 되지 않을까 싶은 두려움에 떨다가 바위로 아이를 눌러서 죽였는데 나중에 맷돌바위 뒷산에서 용마가 나타나 주인을 찾아서 울부짖다가 용마소에 빠져 죽었다. 

 


아, 맷돌바위가 등장하는구나. 이것은 거북바위에서 내려와서 안내판을 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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맷돌바위
磨石岩


세상만물(世上萬物)이 음양(陰陽)으로 형성(形成)되어 있듯이 창조(創造) 이후에 수백만년(數百萬年) 동안 서로 마주보며 하루도 변함없이 철석같은 굳은 절개(節槪)를 지니고 사랑을 속삭이며 애정(愛情)을 주고받는 듯한 이 바위는 거북 바위에서 마주 건너다 보이며 이곳의 바위가 맷돌 형상(形狀)과 같다하여 맷돌 바위라 불리우며 일명(一名) 암거북바위라고도 한다.
바위 뒤쪽에 용마(龍馬)가 나올 때 지동(地動)이 일어나 이 맷돌 바위가 한바퀴 돌았다고 전해지며 지금도 샘이 나와 식수로 쓰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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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서는 잘 보이지 않아서 이렇게 개천 건너에 안내문을 세워 놨던 모양이다. 용마소와 얽어서 또 이야기 한 자락을 만들어 놨나 싶다. 여하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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맷돌바위 바로 아래에는 민박이 있구나. 신혼부부가 여기에 머무르면 귀한 옥동자를 얻게 될지도 모르겠다. 양석인 거북바위와 음석은 맷돌바위가 있는 중간이니까 말이지.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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맷돌바위 가는 길로 올라가면 된다. 그러면 이내 바위가 있는 위로 올라갈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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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문이 좀 허술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용마소와 연관이 있다는 이야기는 대충 써놨다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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맷돌바위에 올라와보니까 건너면의 거북바위가 마주 보이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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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 봐도 거북의 형상이라고 하기는 어렵겠다. 그런데 하천 변에 거북바위 전망대에서 바라보니까 조금 달라 보이기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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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놓고 보니까 대략 거북이라고 우겨도 고개를 가로 젓기는 어렵게 생긴 형상이 보이는구나. 여하튼 거북은 찾은 걸로.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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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왔으니 맷돌을 만져봐야지. 또 누가 아느냔 말이지. 좋은 기운을 받아서 더욱 즐거운 여행이 되려는지.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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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봐도 맷돌이라고 우기기에는 조끔 거시기하구나. 그래도 이게 맷돌이란다. 핑그르~ 한바퀴 돌았다잖여. 과연? 그야 모르지. 그카니까 이카지 난들 아나.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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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이게 뭐냐?  이것은 바위를 뜯어낸 흔적인데? 흠..... 돋보기를 들이대고 조사하니까 다 나온다. 분명히 지질학자가 망치를 들었다는 흔적이로구나. 딱 보니 알겠네. 시료(試料)가 필요해서 뜯어냈을 것으로 봐도 되겠다. 그 자료는 어느 박물관에서 비를 맞지 않고 잘 보관되어 있으려니 싶다. 맷돌바위 이야기까지 얹어 놓으니까 용마소의 아쉬움이 조금은 위안이 된다. ㅎㅎ

이런 이야기를 「아기장수 설화」라는 장르로 다룬다는 것을 이렇게 용마소의 관련 자료를 찾다가 알게 되었다는 것도 소득이다. 알고 봤더니 전국에 용마소도 많고 이러한 류의 이야기도 많다는 것을 알았는데 나름대로 약간의 각색이 되어서 전해지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니까 물웅덩이를 보고서 이러한 상상력을 동원해서 이야기꾼이 만든 말이 처음에는 재미로 전해지다가 나중에는 긴가민가 하다가 더 세월이 흐르면 기정사실처럼 생명력을 부여 받게 되어서 그 마을의 전설로 살아남게 되는 모양이다.

그야말로 흔하디 흔한 전설이지만. 옛날에 통신망이 미비했을 적에는 떠돌이 김삿갓 같은 사람이 이 마을에 들어와서 하룻밤 쉬어가면서 주인과 주담(酒談)을 나누면서 만들어 낸 이야기일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생각이 든다. ㅎㅎ 

 


김삿갓 : 그런데 저 앞의 냇가에 있는 용마소에 대해서는 아시오?
주인장 : 아니, 손님이 그 소는 어찌 아시고 이름이 용마소라니 처음 듣소.
김삿갓 : 그러셨습니까? 모르셨군요. 여기에는 아주 슬픈 전설이 있습니다.
주인장 : 슬픈 전설이라니 무슨 이야기입니까?
김삿갓 : 아기장수와 용마에 얽힌 이야기지요. 
주인장 : (반신반의하며) 그런데 그걸 어찌 알고 계시는 게요?
김삿갓 : 예전에 작은 벼슬을 하면서 문서를 정리하다가 봤다오.
주인장 : 아, 그러셨구료. (자기는 무식해서 몰랐다는 것을 숨길 의도)
김삿갓 : 그런 이야기를 들어보신 적이 있을 텐데 기억이 나시오?
주인장 : 아.... 이제야 기억이 났소이다. 맞아요. 허허허~! 

 


물론 김삿갓이라고 해서 반드시 깁병연(金炳淵)일 필요는 없다. 세상에 얼굴을 내놓기 싫어하는 많은 삿갓들이 모두 김삿갓이었으니까 말이다. 이러한 김삿갓들의 이야기를 또 수집해서 묶어 놓은 것이 「김삿갓방랑기」이기도 하다. 다만 떠돌다가 전라도 화순 땅에서 죽음을 맞이한 그 김삿갓은 김병연인 것으로 봐도 되지 싶다. 그런데 그 시절에 화순 땅에서 죽은 부친의 시신을 영월 땅의 지금 김삿갓 묘까지 옮겼다는 것도 기적에 가깝지 않은가 싶기도 하다. 어쩌면 고향이었다는 이유로 또 누군가 지어낸 전설에 의해서 지명까지 김삿갓면이 되었을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나름의 합리적 의심도 들기는 한다. 언제 김 선생 집에 방문했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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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2010년 1월 28일 해도 서산으로 넘어간 시간이었구나. 김삿갓면으로 바뀐지 몇 달 되지 않아서 방문했으니 김 선생의 기분이 좋으셨으려나 그것을 못 물어봤구나. 얼어 죽지 않으려고 어지간히 싸매고 돌아다녔군. ㅎㅎ

이렇게 만들어진 용마소의 전설은 아들에게서 손자에게로 전해지면서 그 마을의 이야기로 자리를 잡게 되었을 것이라는 낭월의 추측일 따름이다. ㅋㅋ

용마소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서 문득 어려서 들었던 안면도의 삼봉에 얽힌 전설이 떠올라서 기억을 더듬어 본다. 해마다 창기국민학교에서는 봄소풍을 가는 곳은 삼봉이었다. 그리고 그곳에 가면 선생님은 아이들을 모아놓고 삼봉의 용굴에 대한 전설을 말씀하셨으니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반복해서 들었던 이야기가 된 셈이다. ㅎㅎ

[안면도 판목의 전설]

지금은 태안군이지만 예전에는 서산군 안면면이었다. 조선시대 때 세곡(稅穀)을 실은 배가 보령에서 한양으로 올라가는데 안면의 바깥 해상은 풍랑이 심해서 천수만을 통해서 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은 지형적으로 봐서 누구라도 해봄직한 생각이었다. 다만 문제는 중간에 암석으로 이어진 곳이 있어서 배가 통과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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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야 연육교가 되어 있지만 예전에는 육로로 연결이 되어 있었고 그래서 지명도 안면도가 아니라 안면곶(安眠串)이었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해결책을 강구한 끝에 연결되어 있는 곳을 파내면 되겠다는 탁상공론을 했다는 이야기다. 

 

굴포운하를 만들기로 한 것은 판목과 또 다른 이야기다. 천수만과 가로림만을 연결하는 약 7km의 구간을 500년간 공사를 했으나 마침내 완성을 이루지 못했는데 그 대안으로 나온 것이 백사수도(白沙水道)였다는 설도 있다. 여하튼. 

 

안면과 남편의 가장 좁은 구간을 파내게 되었는데 그곳을 파내고 나자 암벽에서 붉은 액체(피라고 믿기를 바라면서)가 뿜어져 나왔더란다.

그 순간에 삼봉의 용굴에서 때를 기다리고 있던 용이 밖으로 뛰쳐 나와서 하늘을 향해 울부짖고는 서해바다에 떨어져 죽었다고 한다. 그 후로 이 절단된 지역의 이름은 '판목'으로 불리게 되었는데 이것은 어렸을 때도 그대로 판목으로 불렸다. 이쯤 되면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설화인지 구분이 애매해지기도 한다. 그런데 조선시댜라면 혹 대동여지도에는 어떻게 되어있는지 궁금하실 벗님도 있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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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안면도는 섬이었다. 물론 백사장의 위치가 잘못되었고, 간월암이 너무 실제보다 크게 그려졌다는 것은 알겠지만 여하튼 분명히 단절된 섬이로구나. 그렇다면? 전설은 거짓?

아니다. 전설의 끈끈함을 모르고 하는 생각이다. 실로 판목의 전설은 그보다 더 이전에 그러니까 육지로 연결이 되어있을 적에 이야기이고 대동여지도는 그 후에 그려진 것이라고 하면 된다. 그래봐야 조선 후기의 철종 때 제작이 된 것이니 이것도 일리가 없다고는 못할 것으로 알고서 몰아치면 말빨이 쎈 놈이 이기기 마련이다. ㅎㅎ

낭월이 되도 않는 헛소리를 꾸며냈다고 생각하실 벗님을 위해서 또 이런 자료를 찾아다 붙여넣는 용의주도함이라니.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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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태안군의 안면읍과 고남면으로 이루어진 섬이다. 이 섬은 본디 육지와 연결되어 있었다. 그런데 동쪽은 천수만에서 안면곶으로 깊숙이 들어가고 서쪽은 황해에서 선바위 쪽으로 깊숙이 들어가 태안반도와 안면도를 잇는 잘록한 목[] 부위를 인공적으로 절단하는 공사를 통해서 섬이 되었다. 17세기 중엽에 착공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대규모 공사가 시작되기 전의 지명은 '안면곶'이었으며, 공사가 이루어진 후에는 '안면도'로 바뀌었다. 조선 후기에 제작된 모든 지도에는 섬으로 묘사되어 있으며 지명이 기록되어 있다. 안면곶에서 지명이 유래하였다. 『조선지도』에는 '굴포()', 『신증동국여지승람』과 『청구도』에는 '안면곶'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곶 지역을 굴착하여 바닷물을 통하게 하는 공사를 안면도판목[]이라고 한다. 굴착 지점에는 지금도 판목이라는 관련 지명이 남아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안면도 [安眠島, Anmyeondo] (한국지명유래집 충청편 지명, 2010. 2., 김기혁, 김기빈, 김순배, 권선정, 전종한, 강창숙, 심승희, 이영희, 이재덕, 조영국, 손승호, 이인희, 정부매, 정암, 최원회)

 

 




어? 진짜로 이런 자료가 있었네? 낭월도 가끔은 깜짝 깜짝 놀란다. 전설과 실화 사이의 외줄은 끈끈하기도 하다.  17세기 중엽에 있었다잖여. 참말로 이런 자료가 나올 줄은 몰랐다. 그래서 거짓말이 참말이 되어버리는 마술이 발생하기도 한다.

물론 반대가 되는 이야기도 있다. 그 넓은 공간에 물살도 거센데 어떻게 운하공사를 했겠느냐는 불가설도 있지만 안면곶이라는 명칭을 놓고서 생각해 보면 그랬을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도 해보지 못할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18세기 중엽에 나온 지도를 어딘가에서 발견하고 가져왔다. 안면반도가 길~게 이어진 것이 보인다. 이러한 것으로 인해서 자료는 중요한 것이지.  그러니까 이런 그림이 있었다는 것은 대동여지도가 나오기 전에는 이렇게 생겼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셈이니 왈가왈부가 필요없다고 하겠다.

 

 

이 지도에는 원산도만 떨어지고 안면도는 육지로 이어졌다는 것도 확인이 되는구나. 그림솜씨가 훨씬 나은 것으로 봐야 하겠군. 김정호도 이 지도를 보고서 참고해서 그림을 그렸던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안면도가 원래 반도였느냐 섬이었느냐는 주장이 반반이면 원래 육지였다는 쪽에 거는 것이 훨씬 속편하다. 오죽하면 '저승이 있느냐 없느냐가 반반이라면 있는 쪽에 걸어라'는 파스칼의 말도 있지 않느냔 말이지. ㅋㅋ

여기에 삼봉의 용굴이 가세하면 실화에서 전설이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아마도 안면도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지맥을 끊어버리는 공사였으니 그 아픈 마음을 용이 울부짖음으로 대신했다고 보면 어떨까 싶기도 하다.

용굴이야 소풍을 갔을 때마다 들어가 봤다. 깊이는 불과 10여 m나 되려나? 용이 살았을 만한 공간은 아니겠다는 생각을 그때도 했었다. 의심증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던 모양이구나. ㅎㅎ

정선 땅의 그림마을 앞에서 용마소를 보다가 삼봉으로 널뛰기를 하는 것도 가능한 것이 글놀이다. 여하튼 그냥 진실이 아닌 용마소의 사진을 몇 장 올려놓고 말기가 민망해서 끌어다 놓은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다음에 다시 가면 필히 제대로 된 용마소 사진을 찍어서 교체하고 이야기도 다듬을 요량으로 마무리 한다.

 

(여행은 계속 됩니다)

 

 

◆대략 한 달 만에 다시 찾은 용마소(龍馬沼) 

(2023년 5월 31일)

 

먼저 용마소에 들렸지만 실은 용마소를 보지 못했던 것에 대해서 해결을 봐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리 오래지 않아서 그 시간이 찾아왔다. 전에는 일행들이 있어서 분주했다면 이번에는 차분하게 둘러보려고 나섰던 것인데 용마소의 실물을 추가해 놓아야 할 것 같아서 덧붙인다.

 


어? 다시 찾은 용마소의 앞에는 성황당이 있었구나. 성황님을 뵙지 않았으니 제대로 찾지 못했던 것이 분명하군. 문득 요가난다의 글이 생각난다. 형상을 보고서 진심으로 예배를 하지 않았던 과보로 길을 잃고 헤매게 되었더라는 이야기인데 그것과는 조금 다르지만 여하튼.....

 


성황님께 인사를 하려면 문을 열어야지. 다행히 언제라도 참배를 할 사람은 하라고 문을 잠가놓지 않아서 간단히나마 예를 올렸다. 그리고 금줄이 걸려있는 것을 보니 여기는 성스러운 곳이니 부정(不淨)한 사람은 접근하지 말라는 의미임을 알겠다. 그러니까 왼 새끼를 걸어 놨지. 어? 왼새끼가 맞나? 쓸데 없는 일에 신경을 쓸 일은 아니지만 새끼의 방향이 이상해서 다시 들여다 본다.

 


새끼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오른쪽으로 꼬는 일반적인 새끼줄이고, 다른 하나는 특별한 경우에 사용하려는 목적으로 꼬는 왼새끼다. 꼬는 방법은 간단하다. 오른손을 위로 놓고 비비면 새끼줄이고 반대로 왼손을 위로 놓고 꼬면 왼새끼가 되는 것이다. 그래도 결과물을 비교해 보지 않으면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겠다. 그래서 또 일삼아서 왼쪽과 오른쪽을 꽈 봤다. ㅎㅎ

 


쓸 것이 아니라서 까이꺼 대애충~ 꽈 봤다. 하나는 왼새끼, 하나는 오른새끼다. 낭월은 '오른'이라는 말에 대해서 거부감이 있다. '바른'도 마찬가지다. 어느 것이라도 다 맞는데 하나가 '오른'이 되어버리면 나머지 하나는 '그른'이 되는 것만 같아서 이런 것에 쓸데없이 예민한 모양이다. 아마도 '오른'은 '옳은'에서 나왔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인해서려니 싶기도 하다. 위의 것은 왼새끼이고 아래 것은 그냥 새끼줄이다. 새끼 좀 꽈 봤다는 어른들은 보면 바로 알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쉽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것을 알아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는 '알쓸신잡'이지만 어딘가에 가서 트집을 잡을 꺼리 하나는 확보하거나 최소한 상식 하나는 추가하는 셈이니까 알아둬서 해로울 것은 없지 싶다. 

 

어? 근데..... 성황당에 걸린 새끼줄은? 아무리 봐도 왼새끼가 아니잖아? 꼬인 방향이 오른손을 위로 해서 꼬았다는 것을 알아볼 수가 있으니 말이지. 어허~! 그냥 시늉만 낸 것과 제대로 한 것의 차이는 모르면 넘어가지만 알면 그냥 넘어갈 수가 없는 일이다. 그러니까 이러한 것으로 인해서 화암마을 사람들 중에는 이것을 바로 알고 있는 사람이 없는 모양이라는 혐의를 두게 되는 것이고 그로 인해서 그 품격까지도 낮아질 수가 있다는 것이다. ㅋㅋㅋ

 

촌장이 그냥 새끼줄을 하나 꽈 오라고 하니까 평소에 하던 대로 생각없이 꽈다가 주니까 또 촌장도 별 생각없이 새끼가 맞으니까 여기에 백지를 끼워서 걸어 놓았겠거니.... 뭐 별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하려면 제대로 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는 나그네의 생각일 뿐이다.....

 


성황 님은 인간들이 자질구레한 것을 몰라서 실수를 하더라도 넓은 마음으로 이해하실 게다. 반절 세 번 하고는 다시 문을 닫았다. 나그네가 남의 동네에 와서 당신(堂神)을 뵙는 이유는 간단하다. 여정이 순탄하기를 바라는 마음이고 이 자리를 지켜줘서 고맙다는 마음이다. 절에 가면 대웅전에 들려서 인사 드리고, 마을에 가면 마을 수호신을 뵙고 인사 드리는 것이 사소한 것이기는 하지만 또한 중요한 것일 수도 있다. 만약에 당신이 존재한다면 말이지. ㅎㅎ

 


물놀이 주의판만 가득하고 정작 용마소에 대한 안내는 부실하구나. 그러니까 엉뚱한 곳을 보면서 용마소겠거니 할 수도 있겠다. 아마도 물놀이 사고가 발생했을 수도 있겠거니 싶다.

 


용마소 전경(全景)이구나. 역시 생각했던 대로 이야기는 이야기일 뿐이고 현장은 또 현장일 따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폭포가 없는 소(沼)이니 당연하겠지만 기록을 위해서 올바른 안내가 필요한 까닭에 이렇게 덧붙일 따름이라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랜다.

 


암벽은 소금강이나 몰운대와 같은 장산규암이겠구나. 석회암은 아니라는 것을 대략 짐작하면 되지 싶다. 

 


그래도 한쪽에는 물이 제법 고였구나. 그래서 용마소라는 이름을 유지하고 있는 모양이다. 잘못 된 정보로 인해서 이 글을 읽고서 그 곳이 용마소인 줄 알고 가면 그것도 미안한 일인지라 이것을 바로잡을 따름이다. ㅎㅎ

 


이만하면 제대로 기록을 했으니 만족해도 되지 싶다. 사당이 이 자리에 있는 것도 그 영혼, 그러니까 능력이 뛰어나서 부모에게 죽임을 당했다는 아기의 혼령을 위로하고자 하는 마음이었을 수도 있었겠다. 이렇게 잠시 머물러서 그 풍경을 살펴보고는 다시 길을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