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질견광⑧ 화표주(華表柱)

작성일
2023-05-15 11:30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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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질견광⑧ 화표주(華表柱)


(2023년 5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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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표주(華表柱)는 처음 들어보는 용어였다. 아무리 기억창고를 뒤져봐도 이런 용어는 등록이 되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이름만 들어봤을 적에 표주박과 관련된 것인가 싶은 생각 정도였다. 그렇기는 하지만 이렇게 짐작만 해 볼 뿐 전혀 가늠도 되지 않는 글자의 조합이어서 자료를 찾아보고 나서야 겨우 이해를 할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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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마소 주차장에서 거리는 겨우 1km이니 금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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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 앞이나 어느 지역에서 기준을 삼기 위해서 만들어 놓은 두 개의 기둥을 그렇게 부른단다. 보통 무덤에 있는 것은 망주석(望柱石)이라고 하는 줄만 알았는데 그것을 멋지게 화표주라고 한다니 생각 밖이었다. 그러니까 두 개의 기둥이 서 있는 형상을 하고 있어서 붙은 이름이라는 말인데 이것이 뭐라고 화암팔경에 들어가 있는지를 생각해보면, 그건 가짓수를 맞추려고 했을 수도 있고 나름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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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작년 봄에 부안의 개암사를 갔을 적에 본 바위가 생각난다. 절 뒤의 능선에 우뚝하게 솟은 바위가 있었는데 그 바위도 명색이 명승지 123호로 지정되었으니까 그와 규모는 작아서 아담하지만 그래도 비슷한 대접을 받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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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어떻게 보면 국가지정명승지인 그 울금바위보다 더 잘 생긴 것도 같구나. 올라가보고 싶은 생각도 있었는데 다음 일정을 재촉하는 일행(이라고 쓰고 호연이라고 읽는다. ㅋㅋ)의 마음도 짐짓 이해가 되어서 아래에서 살펴보기만 했다. 물론 거북바위의 감동이 아직도 사라지지 않아서 쪼맨한 바위를 보러 올라가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더 앞섰을게다. 그리고 혹시나 하고 길을 찾아봤지만 얼른 보이지도 않아서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화암약수로 오는 길에 발견하지 못했던 것도 이해가 되었다. 커브를 돌자마자 표지석이 있었으니 자칫하면 그냥 지나치기 십상이겠다.

앞서 설암(雪巖)편에서 언급했듯이 화표주를 찾다가 겸재의 그림 화표주가 있었다는 소개를 했는데 그 화표주가 이 화표주를 그린 것이라는설이 있어서 비교해 봤던 것인데 아무리 봐도 닮지 않았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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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봐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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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정선의 화표주를 배경으로 했다면 이름은 화표주라고 쓰고 모델은 거의 틀림없이 이 바위가 오히려 더 그림에 근접한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런데 다시 저 겸재의 화표주를 추적하다가 또 하나의 이야기를 찾아냈다. 그러니까 본 것과 들은 것과 읽은 것이 같이 세 가닥 새끼 줄처럼 얽혀가는 지질견광이 되는 셈이구나. ㅎㅎ

[정령위가 학이 되다]

정령위(丁令威)는 중국 고대의 신화적인 인물이다(是中国古代神话中的人物) 명나라 초기의 도사인 홍자성이 편선한 『소요허경』에 나온다(出自明初道士洪自诚编撰的《逍遥墟经》)

《搜神后记》卷一 [1] :“丁令威,本辽东人,学道于灵虚山,后化鹤归辽,集城门华表柱。时有少年举弓欲射之,鹤乃飞,徘徊空中而言曰:

수신후기 권1에 의하면 정령위는 본래 료동사람인데 령허산에서 도를 배웠고 나중에 학으로 변해서 고향으로 돌아와서 성문 옆의 화표주에 살았는데 아이들이 활을 쏘고 돌을 던지자 학이 날아가면서 공중을 배회하며 이르기를

유조유조정령위(有鸟有鸟丁令威)
거가천년금시귀(去家千年今始归)
성곽여고인민비(城郭如故人民非)
하불학선총루루(何不学仙冢累累)

내가 새로 보이지만 나는 정령위인데
천년 전의 옛집을 이제사 찾아왔으나
성곽은 여전한데 사람들은 다르구나
어찌 선도를 배우지 않고 무덤만 가득인가

’遂高上冲天。唐宋词人常用之,承传至今。

라고 읊조리고는 창공으로 날아갔다. 이 고사를 당송(唐宋)의 문인들이 항상 인용했으며 지금에 이르도록 전승했다.

이런 이야기가 있었구나.  특히 다산초당(茶山草堂)에 갔을 적에 초당 옆의 바위에 써놓은 「정석(丁石)」을 보면서 '정약용(丁若鏞) 선생이 자신의 마음이 돌같이 단단하기를 염원했나보다' 했었는데. 그 정석이 정령위였다고 하는 설이 있었던가 보다. 어찌 보면 억지로 꿰어 맞춘 것이 아닌가 싶기는 한데, 그럴만한 근거가 있었을 테니까 마음 속으로 다산 선생도 신선이 되어서 학을 타고 자유롭게 날아다니고 싶었던 것일 수도 있지 싶기는 하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성도 같은 丁이라서 약간 혼란스러울 수는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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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에 방문 했었구나. 이 두 글자 속에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물론 알 지도 못했던 인물의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알았으니 그 시절을 떠올리면서 추억의 사진폴더를 뒤적여 봤다. 이 정석의 두 글자는 바로 「정령위(丁令威)의 돌」이라는 뜻이었다는 것은 새삼스럽게 얻은 상식이구나.

그러니까 이 의미가 맞는다면, 정령위가 학이 되어서 옛 고향을 찾아와서 둥지를 틀고 앉았던 그 화표주가 이 돌이라는 말이고, 그 자리에 그가 앉아있다는 생각을 다산 선생이 했을 수도 있겠다는 정도로 의미를 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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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개의 바위에 짚신의 새끼줄을 걸고 신을 삼았단다. 여하튼 신선은 덩치가 엄청 크다고 생각한 것일까? 아무리 이렇게 비효율적인 짓을 했을까 싶어서 말이다. ㅎㅎ

20230515_160240[인터넷 자료]


 상상력도 웬만해야 그런가 보다 하지. 이렇게 작은 짚신을 만들기 위해서 저 큰 바위에 새끼 줄을 걸고서 신을 삼았다는 것이 좀 심하긴 하다. 그렇거나 말거나 그렇게 전해지는 이야기라는 것이지.

화암팔경에서 안 가기로 한 광대곡을 빼고, 내일 화암팔경과 쥐라기역암을 둘러보기로 하고 나니까 화암6경은 모두 다 둘러본 셈이 되었구나. 여정이 어쩌다 보니 화암팔경을 둘러보는 셈이 되기는 했지만, 결국은 고생대의 절경을 보는 것이니까 크게 벗어난 것은 아닌 걸로 봐도 되지 싶다.

이렇게 해서 오늘의 지질견광의 일정은 모두 마무리가 된 셈이구나. 다음에는 하이원에 가서 곤돌라를 타고 1340m의 백운산 카페에서 커피나 한잔 하고 숙소에 들어가서 푹 쉬면 되겠다. 새벽부터 달렸더니 일과가 오히려 빨리 끝났구나. 이제는 일행들의 시간이다. 내일은 화암동굴을 탐사하기로 하고 오늘은 여기까지다.

 

(여행은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