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8] 제40장. 방랑객(放浪客)/ 7.차담(茶談)

작성일
2023-12-10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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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8] 40. 방랑객(放浪客)

 

7. 차담(茶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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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 염재가 마차를 몰고는 태호의 강변에 있는 부두로 달려가서 여인을 데리고 왔다. 미리 준비해 놓은 차실(茶室)에 붙어있는 방으로 짐을 옮겨놓고는 차실의 커다란 화로(火爐)에 숯을 넣고 불을 붙였다. 팽주(烹主)가 왔다는 말에 서재에서 모였던 사람들이 모두 새롭게 단장하여 수수하게 꾸며놓은 백차방(百茶房)에 모였다. 진명이 우창에게 차실로 가서 차를 마시자는 말을 듣고서야 우창도 서옥과 함께 백차방으로 향했다. 그때 오광이 지나다가 보고서는 우창에게 물었다.

스승님, 태사님을 모시고 오면 어떻겠습니까? 귀한 가르침을 들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오광의 말에 우창도 찬성했다. 오시기 싫다고 하면 강제로 권하지는 말라는 것을 일러서 보냈는데 잠시 후에 허공이 오광과 함께 나타났다. 그러자 상석(上席)에 앉도록 하고는 모두가 문안을 올렸다.

태사님을 뵙습니다~!”

어서 앉게들~ 거추장스럽게 뭔 절차가 그리 복잡하단 말인가. 그냥 차나 한잔 마시면 될 것을 말이네. 허허허~!”

이렇게 인사를 나누고는 모두 여인이 마련한 차를 한 잔씩 받아서 들었다. 차를 돌리고 나서 여인이 말했다.

이렇게 수행하시는 청정(淸淨)한 대중에 동참하게 된 인연에 감사드려요. 이름도 성도 묻지 않으시고 기거(寄居)를 허락해 주신 스승님께 감사드리고요. 저는 안숙현(安淑賢)이예요. 스스로 아호(雅號)를 연화(緣和)라고 지었죠. 인연(因緣)이 있는 모든 사람과 화목(和睦)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지었어요.”

연화의 말을 듣고서 모두 손뼉을 쳐서 환영하자 진명이 물었다.

잘 오셨어요. 인연이 되셨으니 재미있게 살도록 해요. 생년월시는 어떻게 되시는지 알려주세요. 호호호~!”

우창은 문득 우성암(牛聖庵)의 화련(華蓮) 보살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연배도 비슷해 보였다. 비교해 본다면 화련 보살은 신중(愼重)한 면이 있었는데 연화는 경쾌(輕快)함이 느껴졌다는 것이 좀 달랐다. 연화의 말이 이어졌다.

연화는 무인(戊寅)생이에요. 생일은 7월 스무날이고 진시(辰時)라고 들었어요.”

연화가 생일을 말해 주자 진명이 천세력(千歲曆)을 펼치고서 사주를 찾아서 적은 다음에 차탁(茶卓)의 가운데에 놓자 모두의 눈길이 그곳으로 향했다.

 

 

 

 

우창도 연화의 사주를 보니 과연 지나온 나날들의 풍경이 눈에 스치듯이 흘러감을 느꼈다. 그나마 말년에 정인(正印)을 만났으니 앞으로의 삶은 평온할 것으로 봐도 되지 싶어서 마음이 놓였다. 먼저 진명이 입을 열었다.

스승님, 오행원은 편안한 곳이 되겠죠?”

그렇게 보이네.”

연주(年柱)의 무인(戊寅)이나 월주(月柱)의 경신(庚申)을 봐서는 만고풍상(萬古風霜)을 다 겪으면서 고단한 수행(修行)을 한 것으로 봐야 하지 않겠어요?”

진명이 이렇게 말하면서 연화를 바라보자 연화가 옅은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그 모두가 팔자려니 했어요. 누군가는 호랑이에게 물려 갈 팔자니까 육지와 떨어진 곳에서 평생을 살아야 한다는 말도 해줬어요. 꼭 그래서는 아니나 서산도에서 머무르면서도 마음 한편에서는 그러한 위안을 받기는 했어요. 호호~!”

이렇게 말하자 진명이 우창을 바라봤다. 그게 무슨 말이냐는 뜻이었다. 그러자 우창을 대신해서 자원이 설명했다.

, 그건 백호살(白虎殺)이 들었다고 해서 나온 말인데 백호살이야 아무런 의미가 없긴 하지만 서산도에서 머무르시는 바람에 오행원으로 인연이 되셨으니 그것도 하늘의 덕이라고 하겠어요. 호호호~!”

자원의 설명에 연화도 공감이 된다는 듯이 기뻐하며 말했다.

기가 막힌 풀이시네요. 정말이에요. 연화에게 이런 날도 온다는 것은 생각도 하지 못한 일이었지요. 우연처럼 다가와서 이렇게 인연이 되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어요. 정말 열심히 도를 닦아서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연화가 이렇게 말하면서 대중을 둘러보자 가만히 연화의 얼굴을 보고 있던 허공이 말했다.

우창, 연화에게 늙은이를 돌봐주라고 하면 안 되겠나?”

허공의 예상하지 못한 말에 모두가 깜짝 놀랐다. 그래서 허공을 바라보자 다시 말했다.

오광에게 무거운 짐을 지울 일이 아니란 말이네. 연화를 보니 내가 곁에 두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말하는 것이니 허락해 주게나. 허허허~!”

우창이 조금은 난처한 듯한 표정으로 연화를 봤다. 그러자 연화가 기뻐하면서 말했다.

아니, 이렇게 덕이 높으신 어른을 옆에서 시봉(侍奉)할 인연이 된다면 성심(誠心)으로 살펴 드릴 수가 있어요. 그리고 덕분에 공부도 잘하게 된다면 또한 원하는 바에요.”

우창은 연화가 이렇게 말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오광이 혼자서 모두를 챙기기에는 아직 너무 젊어서 노인의 심중을 제대로 헤아리기에 벅찰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었기 때문인데 이렇게 세상의 경험을 많이 쌓은 연화가 도와준다면 우창도 마음이 놓일 것으로 생각되었지만 연화가 행여 무거운 짐을 떠맡긴다고 생각하지나 않을까 싶었는데 전혀 그러한 기색이 없을뿐더러 오히려 기뻐하는 것을 보자 그것도 인연이라고 여겼다.

잘 알겠습니다. 당연히 그렇게 하기를 원하신다니 우창은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그러면 백차실은 유하(遊霞)에게 맡겨 놓고 연화가 수시로 돌봐주시면 별문제는 없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렇게 정리가 되자 허공이 매우 기뻐했다. 실로 오광은 항상 진지하고 부지런하기는 했으나 허공의 말벗이 되기에는 나이의 차이가 너무 많이 났기 때문이었는데 이제 심심할 적에 무슨 말이라도 나눌 수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자 바로 연화에게 말했다.

연화야, 내가 바로 갑진(甲辰)이니라. 네 사주를 보면서 우리의 인연이 이렇게 만나는 것을 보면서 참 신기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더란 말이다. 허허허~!”

이렇게 말하면서 허공은 종이에 붓을 들어서 자신의 사주를 적었다.

 

 

 

 

허공의 명식을 바라보던 진명이 말했다.

태사님도 천하를 지붕으로 삼아서 어지간히 누비고 다니셨네요. 그야말로 동가식서가숙(東家食西家宿)의 운명을 타고나신 것이 맞죠? 호호호~!”

진명이 이렇게 말하면서 재미있다는 듯이 웃자 허공이 말했다.

아니, 늙은이를 그렇게 막 놀려도 되느냐? 걸개지명(乞丐之命)으로 태어나서 세상의 온갖 경험을 다 쌓은 후에 오행을 만나서 따뜻한 밥이라도 얻게 되었으니 이 또한 얼마나 다행이냐고 해야 한단 말이지. 허허허허~!”

우창이 허공의 나이가 일흔둘이라는 것을 따져보고는 허공에게 말했다.

아니, 스승님! 연세가 이렇게나 많으셨습니까? 일흔둘까지는 안 보였는데 다시 봐도 10년은 젊어 보이십니다. 어떻게 집도 절도 없이 떠돌아다니면서도 몸은 관리를 잘하셨는지 놀랍습니다.”

우창이 말을 잘할 줄을 아는구나. 허허허허~!”

그게 아니라 참으로 놀랍습니다. 그리고 연화의 시주(時柱)가 스승님의 일주(日柱)인 것도 참으로 신기합니다. 인연이란 이렇게 어부의 그물망처럼 촘촘하게 얽혀있는 것인가 싶습니다. 모두 한 자리에서 웃음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가 있으니 또한 더 바랄 것이 없다고 하겠습니다.”

우창의 말이 끝나자 이번에는 연화가 기다렸다는 듯이 말이 이어졌다.

연화가 서산도에서 차관(茶館)을 하면서 많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때로는 즐겁기도 했으나 많은 시간은 힘들고 외로웠었지요. 그래서 한 몸이 참으로 거추장스럽다는 생각도 들었고, 가끔은 물가에 빠져서 목숨을 던진 시신이라도 떠오를 때면 나도 그렇게 하는 것이 어쩌면 오히려 세상의 험한 꼴을 안 보고 편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었죠. 그래도 참고 살아온 것은 오늘 이렇게 정겨운 인연을 만날 기회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니 살아있다는 것만으로 감동이에요. 더구나 허공 태사님께서 곁을 주셨으니 더욱 열심히 모시면서 공부에 힘쓰도록 하겠어요.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연화는 이렇게 말하면서 일어나서 합장하고는 고마움을 담아서 허리를 굽혀서 마음을 표시했다. 그것을 보면서 모두 감동하는 마음으로 합장하여 인사를 받았다. 연화가 다시 찻물을 끓이는 것을 보면서 자원이 궁금했다는 듯이 허공에게 말했다.

태사님께서는 적천수(滴天髓)를 어떻게 만나셨는지가 궁금해요. 우창 싸부가 그 이치를 알고자 하여 그렇게도 백방으로 답을 구했으나 어디에서도 만나지 못했는데 이렇게 기적처럼 한산사의 나한전 앞에서 태사님을 뵙고는 그렇게 기뻐할 수가 없었거든요. 그래서 과연 어떻게 비급(秘笈)을 얻게 되셨는지 여쭤보고 싶었어요.”

허공은 자원이 말하는 것을 들으면서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연화가 새로 따라주는 차를 받아서 한 모금 마시고는 우창에게 말했다.

아마도 시절인연이 당도하여 우창의 열정이 나를 불렀던가 보군. 내가 만난 것은 삼명기담적천수(三命奇談滴天髓)였다네. 삼명(三命)이야 천명(天命)과 지명(之命)과 인명(人命)을 말하는 것이니 천명은 천간(天干)이요, 지명은 지지(地支)이고 인명(人命)은 지장간(支藏干)의 이치가 아니겠나? 그런데 기담(奇談)이 있어서 이것이 뭔가하고 좀 들여다봤지. 그랬더니 과연 진주(眞珠)같은 진리(眞理)가 그 안에 알알이 맺혀 있더란 말이지. 그런데 우창이 그 소식을 알고 있을 줄은 나도 생각지 못했다네. 참으로 기연(奇緣)이랄 밖에. 허허허허~!”

허공의 말에 우창이 놀라면서 말했다.

원래의 적천수(滴天髓)라고 한 책의 앞에는 삼명기담(三命奇談)이 더 있었단 말씀이군요. 그렇다면 우창이 읽었던 적천수도 실제로는 내용이 같지 않을 수도 있겠습니다. 과연 어떤 가르침을 받게 될지 벌써 마음이 흥분됩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춘매가 서재에 갔다가 아무도 없자 돌아가는 길에 백차방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가 들리자 문을 열고 들어왔다.

아니, 여기에 다 계셨네요? 무슨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나누시는지 춘매도 동참할래요. 호호호~!”

이렇게 말하면서 모인 사람들을 둘러보다가 연화를 발견하고는 인사했다.

아니, 백차방의 주인이 오신다고 하더니 바로 오셨네요? 일전에 서산도에서는 즐거웠는데 이렇게 함께 하게 되어서 반가워요. 앞으로 많은 가르침을 부탁드려요. 호호~!”

춘매가 반갑게 인사를 하자 연화도 춘매를 보면서 말했다.

환영해 주셔서 고마워요. 다만, 가르침은 연화가 청해야지요. 나이만 먹었을 뿐이지 공부를 못했으니 많이 가르쳐 줘요. 무엇이든 열심히 배울게요.”

이렇게 인사 나누는 것을 바라보던 우창이 허공에게 물었다.

스승님께 허공이라는 이름을 지어 올렸습니다만, 존함(尊銜)은 여쭤봐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왠지 허전한 느낌이 들어서 말입니다. 스승님께서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우창이 간곡한 어조로 말하자 허공이 우창을 보면서 말했다.

그게 뭐 그렇게 중요하겠는가? 나는 이렇게 나의 존재로 여기에 있을 따름이니까 말이지. 그렇다고 하더라도 우창이 허전하다는 말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로군. 이 몸에 붙은 이름은 한당(韓當)이네. 예전에 남들은 나를 일러서 단양(丹陽)이라고도 하더군.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이야기지만 매사에 마무리를 좋아하는 우창에게는 중요할 수도 있겠군. 허허허~!”

과연 스승님의 깊은 통찰력에 감사드립니다. 이제야 뭔가 스승님의 실체를 접한 것처럼 느껴지니 말입니다. 그럼 이제부터는 단양 스승님으로 칭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하하하~!”

우창의 말에 모두 합장하고는 말했다.

제자들이 단양 태사님을 뵙습니다~!”

이렇게 말하자 단양도 미소를 짓고는 말했다.

됐네. 그만하고 연화는 오광이랑 여여실(如如室)로 가자. 어깨가 뻐근하군. 우리끼리 재미있는 이야기도 나누잔 말이지. 허허허~!”

우창은 참으로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오광이 앞에서 챙겨주고 연화가 뒤에서 보살펴드린다면 우창도 마음이 편할 것으로 생각이 되었다. 연화가 단양을 부축하자 못 이기는 척하고 부축받으며 돌아갔다.

세 사람이 여여실로 돌아가자 진명이 웃으며 말했다.

스승님, 인연이란 이런 것인가 봐요. 연화 언니의 후광에서 홍광(紅光)이 보였는데 태사님의 청광(淸光)과 어쩌면 그렇게 잘 어울리는지 말이에요. 그래서 단양 태사님께서 연화를 보는 순간 바로 맘에 드셨나 봐요. 호호호~!”

, 그런 일이 있었구나. 그래서 때마침이라고 하는 모양인가? 꼭 필요한 때에 사람이 나타나는 것을 보면 말이네. 하하하~!”

진명의 말을 듣고 있던 자원이 갑자기 손뼉을 치면서 말했다.

아니, 진명~! 이게 말이 되는 거야?”

뭔데?”

태사님은 청광(淸光)이 보인다고 했는데 갑진(甲辰)이시잖아? 그리고 연화 언니는 홍광(紅光)이 보인다며? 그런데 정축(丁丑)이라는 것과 무관하지 않아 보여서 말이야. 더구나 싸부는 백광(白光)이라고 했는데.... , 싸부는 금()이 아니라 무진(戊辰)이네? 그것이 아니었구나. 괜한 궁리를 했어. 호호호~!”

자원의 말을 조용히 듣고 있던 진명이 재미있다는 듯이 말했다.

, 정말 그렇게도 생각을 할 수가 있었네. 그건 아닌 것으로 봐야 하겠다는 것을 진명도 이제 막 깨달았지 뭐야. 그렇지만 그렇게 따져 볼 수도 있다는 건 생각도 하지 못했거든. 재미있기는 한데 아쉽게도 꼭 그렇지는 않은 것으로 봐야 하겠네. 호호호~!”

진명과 자원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우창이 궁금해서 진명에게 물었다.

, 듣고 보니까 그것도 궁금하군. 후광이라고 하니까 예전부터 궁금했는데 오늘 물어봐야겠네. 진명이 보기에 어떤가? 사람에게서 번져 나온다는 후광(後光)은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인가? 아니면 영혼에서 나타나는 현상인가? 왜냐면 몸에서 비롯하는 것이라면 어떤 수행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몸이 갖는 특성에 의해서 광채가 나타날 텐데 혹 영혼과 연관이 되었다면 몸과는 무관하게 마음을 먹기에 따라서 빛이 달라질 수가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네.”

우창이 묻자 진명은 신이 나서 말했다.

스승님께서 물으시면 항상 긴장된단 말이에요. 언제라도 간단히 대답할 수가 없는 내용을 물으시니까요. 후광이 몸인지 맘인지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도 그렇네요. 생각을 해보지 않았는데 지금 문득 스승님의 말씀을 듣고서 생각해 보니까 상호작용(相互作用)으로 보여요. 그래서 스승님께서 궁금하셨던 것이고요. 어느 한쪽만으로 나타날 수는 없다고 봐야 하겠어요. 물으시는 뜻은 명료한데 진명의 답변이 흐리멍덩하네요. 호호호~!”

아닐세. 충분히 명료한 답변이로군. 내심 그렇지 싶었는데 역시 심신(心身)의 영향에 의해서 나타나는 현상이었구나. 잘 알았네. 앞으로 진명은 새로운 궁합인연을 사용해서 인연법을 살필 수가 있겠구나. 하하~!”

? 새로운 궁합법이라시면?”

스승님과 연화의 청홍(靑紅)인연을 생각해 보니까 말이네. 이렇게 되어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서로에게 호감이 된다면 홍황(紅黃)도 가능할 것이고, 황백(黃白)도 가능하지 않겠느냔 말이네. 어떤가?”

, 무슨 말씀이시라고요. 호호호~!”

진명이 웃자 우창이 물었다.

? 내 생각이 틀렸다는 건가?”

그럼요. 모든 사람에게 후광이 보인다면 또한 그것도 가능하다고 하겠는데 후광이 없는 사람은 어떻게 해요? 그래서 활용성이 없다는 거예요. 상용(常用)되지 않는 것이라면 무슨 도움이 되겠어요. 호호호~!”

, 그런 것이었어? 진명이 보면 모든 사람의 후광이 다 보이는 줄로 알았지 뭔가. 그렇다면 가끔만 쓸 수가 있겠구나. 우리 오행원에 있는 제자들에게서도 모두 후광이 보이는 것은 아니란 말인가? 연화에게서도 보인다고 하기에 난 그런 줄로만 알았지 뭔가.”

그게 진명도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에요. 후광은 학문이나 수행으로 얻은 지혜와 무관하게 보이는 것이어서 말이에요. 그래서 일부러 관하지는 않아요. 그냥 보이면 그런가 보다 할 따름이에요. 아마도 전생의 수행력이 영향을 미치는 것인가 싶기는 하지만 그것을 확인하기는 또 어려우니까요. 재미없는 이야기는 그만 해요. 호호호~!”

진명은 자신만 알고 있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부담스러워서 화제를 돌렸다. 그러자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던 서옥(瑞玉)이 그 말을 받아서 진명을 거들었다.

그나저나 편안하게 차를 얻어 마실 팽주를 만났다고 좋아했는데 눈이 밝으신 태사님께 불려갔으니 우리는 이렇게 멋진 백차방을 지켜 줄 팽주를 찾아야 하나요?”

서옥의 말을 듣자 우창은 문득 수경(水鏡)이 떠올랐다. 차에 대해서 상당한 조예(造詣)가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래서 진명에게 말했다.

이렇게 차방을 만들어 놓고 보니까 수경에게 부탁하면 어떨까? 예전에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봤을 적에 차에 대해서 지식이 많았는데 이런 기회에 일을 하나 맡도록 해도 되지 않을까?”

우창의 말에 모두가 맘이 통했다. 진명이 수경을 데리러 나가려는데 단양과 갔던 연화가 웃으며 돌아왔다. 그래서 나가려던 걸음을 멈추고 다시 자리에 앉자 연화가 말했다.

태사님의 어깨를 좀 풀어드리고 왔어요. 그동안 웅크리고 주무셨던 까닭에 근육이 좀 뭉쳤었어요. 옆에서 챙겨드리지 않아도 건강하셔서 백차방을 지켜도 되겠기에 가끔 돌봐드리기로 했어요. 만져드리는 동안에 재미있는 이야기도 해 주셔서 즐거웠는데 가끔 뵙고 시간을 보내면 좋겠어요.”

연화의 말을 듣고 서옥이 가장 반가워했다.

와우~! 그럼 그렇지. 우리가 모두 기대했던 팽주를 잃었나 싶어서 내심 말은 못하고 섭섭했잖아요. 호호호~!”

서옥의 표정을 보자 연화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사모님께 항상 맛있는 차를 만들어 드릴게요. 언제든 백차방에 오세요. 다행히 연화에게도 한 가지의 재능이 있어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어요. 아 참, 지금 시간이 점심을 먹기 전이니까 식욕을 돋게 하는 생강차(生薑茶)를 만들어 드리도록 할게요.”

이렇게 말을 하고는 채 풀지 못한 보따리에서 말린 생각을 찾아서는 끓는 물에 넣자 잠시 후에 향긋한 생강의 향기가 차방을 가득 채웠다. 연화가 한 잔씩 따라주자 모두 후루룩대면서 마셨다. 서옥이 차를 마시다가 문득 물었다.

그런데, 연화 언니에게는 어떻게 호칭해야 하죠? 연화 선생이라고 하면 딱 좋겠는데 그렇게 해도 될까요? 물론 서옥에게도 호칭을 바꿔주셔야 하겠고요. 사모님이 아니라 동생으로 불러주셨으면 편하겠는데 말이에요.”

그러자 진명이 또 나섰다.

, 연화 언니의 나이가 좀 들었다고 해서 그러는구나. 오행원에서는 한 살이라도 더 많으면 언니이고, 적으면 동생이야. 그러니까 편안하게 언니라고 하고 연화 언니도 서옥에게 부담스럽게 사모님으로 하지 말고 그냥 동생이라고 해요. 그러면 더욱 친밀감이 넘칠 거에요. 호호호~!”

진명이 정리를 해주자 서옥과 연화가 모두 마음이 편했다. 더구나 연화의 마음은 가족처럼 대하는 분위기를 알게 되니 더 편했다.

이렇게 가족으로 응대해 주니 감격해서 울컥했잖아. 가족의 한 사람으로 열심히 동참할 테니까 동생들도 부족한 것이 보이면 아끼지 말고 가르쳐 줘.”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염재가 들어와서 생강의 향을 맡고는 말했다.

역시 백차방이 생기니 좋은 향이 온 도량이 가득합니다. 향에 이끌려서 왔습니다.”

염재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는 연화가 얼른 일어나서 잔을 찾아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생강차를 따라서 앞에 놓으며 말했다.

이른 아침부터 부두까지 마중을 와 줘서 고마웠는데 변변히 인사도 못 드렸네. 앞으로도 많이 가르쳐 줘.”

고맙습니다. 맛있는 차를 마실 수가 있으니 찻값을 선불로 낸 것으로 요량하겠습니다. 하하하~!”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던 진명이 우창에게 말했다.

연화 언니가 있으니까 오행원에 무게감이 있어서 좋아요. 만약에 우울해서 찾아오는 방문자에게는 연화 언니가 차를 대접하면서 이야기를 나누시면 좋겠어요. 그러면 마음이 울적했던 사람도 그러한 근심이 사라지고 기쁜 마음으로 돌아갈 수가 있겠네요. 서산도 나들이에서 생각지도 못한 보물 하나를 얻었어요. 호호~!”

그렇게 생각해 주다니 고마워. 그나저나 내일 새벽부터는 공부하면 되는 거야? 처음 입문하는 초급(初級)은 새벽에 공부하는가 보던데.”

연화가 말하자 진명이 대답했다.

맞아요. 그렇지만 행주좌와(行住坐臥)에 공부 아님이 없고, 어묵동정(語黙動靜)이 모두가 공부와 연결되어 있어요. 가령 생강차를 놓고서 음양으로도 생각해 보고 오행으로도 생각해 보면 되죠. 언니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 ? 생강차에도 음양이 있나? 그건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는 건지 가르쳐 줘봐.”

연화는 묻는 것이나 답하는 것에 조금도 망설임이 없었다. 무슨 의미인지 생각이 나지 않자 바로 되물었다. 그러자 미소를 짓고 있던 진명이 자기의 생각을 말했다.

생강은 음()이 되고 뜨거운 물은 양()이 되어서 서로 만나니 도()가 되는 거죠. 만약에 뜨거운 물이 아니라 찬물을 만난다면 도는 이뤄질 수가 없으니까요.”

아하~!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구나. 그러면 다시 생강차는 음이 되고 이것을 마시는 우리는 양이 된다고 봐도 되는 건가?”

연화가 이렇게 말하자 염재가 놀라서 말했다.

아니, 연화 누님의 응용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입니까? 놀랍습니다.”

그러자 진명이 웃으며 말했다.

 

 

연륜~! 호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