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9] 제41장. 유유자적/ 1.학문(學問)의 생멸(生滅)

작성일
2023-12-15 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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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9] 41. 유유자적(悠悠自適)

 

1. 학문(學問)의 생멸(生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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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가 되자 연화가 염재에게 필요한 것을 부탁했다.

염재가 차로 쓸 재료를 좀 구입해 왔으면 좋겠는데 나를 좀 도와 줄 수 있겠어?”

염재는 자기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항상 즐거워하는 천성이 있었다. 연화의 말에 기뻐하면서 얼른 대답했다.

당연하지요! 무엇이 필요하신지 말씀하시면 되도록 해 보겠습니다.”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던 연화였으나 염재가 오히려 기뻐하자 편안하게 필요한 것을 주문했다.

, 고마워. 그렇다면 결명자(決明子) 두 가마니와 오미자(五味子) 두 가마니를 사줬으면 좋겠네. 그리고 여유가 되면 구기자(枸杞子)와 당귀(當歸)도 구해 주면 저녁으로 태사님을 모시고 공부하면서 차를 한 잔씩 마시면 좋을 것 같아서 말이야. 가능하겠지?”

물론입니다. 얼른 나가서 준비해 오도록 하겠습니다.”

, 차를 나눠주도록 물 따르는 주둥이가 붙은 물통 세 개와 찻잔도 경덕진(景德鎭)에서 만든 것으로 100개도 같이 구입해야 하겠구나. 난 경덕진의 도자기(陶磁器)가 맑아서 맘에 들거든. 크기는 대략 두 홉 정도 되면 좋겠어. 너무 작으면 차를 따르느라고 또 정신이 흩어질 수도 있을 테니까. 이렇게 준비해 놓으면 오행원의 식구들이 나눠마시는데 부족함이 없을 거야.”

역시 적임자(適任者)를 만나니까 생각하는 규모가 남다르시네요. 아무도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누님이 오시니까 삶의 질이 높아지는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그렇게 준비하겠습니다. 그런데 물건은 사용할 사람이 직접 보고 고르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누님도 같이 구경삼아서 나가보도록 하시지요.”

염재가 이렇게 말하면서 동행하기를 부탁하자 연화도 얼른 채비하고는 따라나섰다. 약재상(藥材商)에서 필요한 것을 찾는데 품질도 여러 가지였다. 연화는 다른 것은 쳐다보지도 않고 최상품만 구입(購入)하고 도기점(陶器店)점에서 예쁘고 소박한 찻잔을 구입해서 돌아왔다.

팽주가 계시니 오행원의 대중들이 더 행복하겠습니다. 그런데 찻잔은 왜 같은 것으로 사용하는지 까닭을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염재가 재료들을 곳간에 들여놓으면서 물었다. 그러자 연화가 미소를 짓고는 염재에게 조용히 말했다.

당연하잖아? 그릇이 같아야 그것을 마시는 사람의 마음도 평등해지는 법이거든. 그런데 어떤 사람은 금잔(金盞)이고 어떤 사람은 동잔(銅盞)으로 차를 마신다고 생각해 봐. 잔에는 마음이 없으나 사람은 마음이 있어서 차별하는 분별심을 낸다면 애써 만든 차의 맛이 달라질 수도 있지 않겠어? 그래서 지위는 달라도 음식은 같은 그릇에 담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지. 다만 권위와 체면을 중시하는 주인을 섬긴다면 당연히 그래야지만 스승님의 품성으로 봐서는 오히려 같은 것을 쓰라고 하시지 싶어서 그렇게 생각했는데 어때? 내 생각에 스승님도 동의하실까?”

염재는 연화의 마음 씀씀이에 대해서 감동했다. 어느 사이에 우창의 심성까지도 통찰하고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지혜는 삶에서 얻는 것이지 반드시 책에서 얻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생각하면서 말했다.

아하~! 그런 것까지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듣고 보니 과연 일리가 있는걸요. 멋집니다. 하하하~!”

다른 것은 나도 잘 몰라. 다만 오행의 입문자가 생각해 보니까 공부를 하는 것은 열정(熱情)으로 하니까 화기(火氣)가 될 것이고, 너무 열기가 넘치면 균형을 이루지 못할 테니까 수극화(水剋火)를 하게 되면 더 좋을 것이란 말이지. 그래서 공부하다가 지칠 때쯤 차를 한 잔씩 마시면 열기를 식혀서 더욱 높은 학문의 세계로 파고 들어갈 수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것은 음양법에 부합이 되는 걸까? 가령 자루에 곡식을 담을 적에도 도중에 잠시 쉬고 자루를 흔들어 주면 더 많이 들어가는 것처럼 말이야.”

연화는 이렇게 생각했으나 그것이 음양의 이치로 봤을 적에도 타당한지는 염재에게 물어서 확인한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서 염재가 감탄하면서 말했다.

정말 기가 막힌 설명입니다. 누님의 말씀을 듣고서 염재도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열심히 공부할 생각만 했지 열기를 식혀가면서 공부하면 더욱 많은 것을 깨달을 수가 있다는 것은 생각하지 못했으니 말입니다. 그것은 수생화(水生火)라고 이해하면 됩니다. 왜냐면 수극화(水剋火)는 불을 끄는 것에 비유하는 것이기 때문에 부정적(否定的)인 의미가 있어서 극리(剋理)가 되지만 누님의 말씀처럼 긍정적(肯定的)으로 작용을 할 적에는 생리(生理)로 보는 까닭입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오행의 생극(生剋)에 대한 이치를 설명해 줬다. 그 말을 들으면서 연화의 큰 눈이 더욱 커졌다.

그러한 이치를 알고 있으면 세상을 보는 눈이 열 배는 넓어지겠잖아? 스승님의 가르침이 참으로 놀랍구나. 처음 들어봤어. 수생화라니 말이야. 정말 감동이야.”

자연의 이치는 오행 안에 다 있다고 말씀하시거든요. 궁리하면 할수록 그 이치를 벗어나는 이치는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말 그렇겠네. 온갖 이치를 다섯 가지로 축약(縮約)해서 담을 수가 있다면 그보다 효과적인 공부가 없겠어. 축약을 하게 되면 나중에 그것을 펼치게 될 적에도 엄청난 폭발력을 갖게 될 테니 말이야.”

정말 누님의 통찰력이 대단하십니다. 항상 호수의 드넓은 태호(太湖)의 수평선(水平線)을 바라보면서 사유하셔서 그런가 봅니다. 물은 세상의 만물을 모두 흡수하는 존재이니 말이지요.”

뭘 그럴까만 내가 생각을 하는 것이 틀리지 않았다니까 참 다행이네. 저녁에 차를 끓여놓을 테니까 세 사람이 와서 수통(水桶)에 나눠놓은 것을 갖다가 잔에 따라드리도록 하면 좋겠어.”

그러면 잔을 돌릴 사람과 차를 따를 사람을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태사님의 차는 누님이 직접 챙기시면 좋겠습니다.”

그래 알았어. 그렇게 하지.”

이렇게 이야기를 마치고는 저녁을 먹고 술시(戌時)가 다가오자 염재가 다섯 명의 제자와 함께 백차방으로 와서는 끓여놓은 오미자차와 잔을 들고 가서 앉아있는 대중들에게 한 잔씩 따랐다. 그러자 평소와 달리 분위기가 훨씬 부드러워졌다. 차를 마시는 소리와 담소하는 소리가 어우러져서 잔칫집의 분위기가 나는 듯했다. 잠시 후에 오광의 부축을 받으며 단양이 모습을 나타냈다. 제자들이 모두 일어나서 공수(拱手)하고 자리에 앉기를 기다려서 동음으로 말했다.

태사님을 뵙습니다~!”

인사를 드리고는 자리에 앉아서 단양이 어떤 이야기를 해줄 것인지를 기대하면서 잠시 기다렸다. 편안하게 자리를 잡은 단양이 대중을 둘러보고는 카랑카랑한 음성으로 말했다.

모두 함께 한 인연에 감사하네. 이 늙은이에게 뭔가 유익한 가르침을 얻고자 하는 마음에서 눈빛을 발하면서 바라보는 모습을 보니 이보다 더 아름다운 풍경이 또 있을까 싶군. 비록 세상을 살아오면서 경험한 것이나 깨달은 것이 만족스럽지는 않더라도 약간의 소득은 있었다고 봐서 내가 깨달은 모든 것을 원하는 대로 전하도록 하겠네. 무엇이든 물으면 답을 줄 테니까 누구든 기탄없이 질문을 하면 되겠네. 누가 먼저 묻겠는가?”

질문을 하라는 말이 떨어지자 가장 먼저 손을 든 사람은 안산(安山)이었다. 평소에 잘 나서지 않는 안산이었는데 궁금한 것이 있었던 모양이다.

태사님! 안산입니다. 그동안 스승님께서는 자평(子平)의 이치에 대해서만 말씀을 해 주셔서 그 밖의 이야기는 잘 모릅니다. 이것은 호기심이기는 합니다만 강호의 역술(易術)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그러한 종류들은 또 어떻게 생겨나서 어떻게 군림하다가 세상의 저편으로 사라지는지가 궁금합니다. 태사님께서 겪거나 섭렵(涉獵)해 보신 경험에 대해서 말씀해주신다면 후학은 고생을 겪지 않고서 많은 것을 얻게 되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귀한 가르침을 청합니다.”

이렇게 말을 마친 안산이 합장하고 자리에 앉자 단양이 알아들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옆에서 차가 식으면 연화가 따뜻한 차로 채워주고 있었다.

그래 잘 알았네. 이름이 안산이라고 했나? 궁금해할 만한 것을 물었네. 세상의 삼라만상(森羅萬象)은 생멸(生滅)의 여정(旅程)을 가게 되어 있지. 생명(生命)이 있는 유정물(有情物)만이 아니라 무정물(無情物)인 바위나 강물도 또한 마찬가지로 그러한 과정을 겪게 되는 것이니 인간의 상념(想念)에서 나온 학문(學問)조차도 그 길을 벗어날 수는 없는 법이라네.”

단양이 이렇게 말을 하고는 다시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나이가 있어서 입안이 마르기도 하거니와 오랜만에 60여 명의 대중이 바라보고 있으니 약간은 긴장도 되었을 것으로 짐작이 되었다. 옆에서는 여전히 연화가 미소를 머금고 찻잔을 채웠다. 그 모습을 본 대중들의 마음도 한결 편안했다. 단양이 다시 말을 이었다.

안산, 내가 물어보마.”

, 태사님 말씀하십시오.”

장강(長江)과 황하(黃河)가 흐르고 있음은 알고 있지?”

그렇습니다. 태사님.”

그런데 알게 모르게 강이 생겼다가 없어진다는 것도 알고 있나?”

그렇습니까? 미쳐 생각해 본 바가 없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듣고 생각해 보면 물이 흐르던 곳이 말라버리는 것은 본 적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강도 흐름이 바뀌거나 원류가 끊어지면서 막혀버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 작은 도랑이 흐르다 막힌다면 큰 하천(河川)도 생겼다가 없어지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강하(江河)도 마찬가지 아니겠나?”

그렇겠습니다. 충분히 이해되었습니다.”

학문도 또한 마찬가지라네. 1천 년의 세월을 흐르면서 생겨나기도 하고 또 사라지기도 하는 것이고 그것은 어쩌면 당연하다고 해야 하겠지? 어떤가?”

당연하겠습니다. 태사님.”

옳지, 안산의 귀가 트였군. 허허허~!”

단양은 안산이 말을 잘 알아듣자 기분이 좋아져서 너털웃음을 웃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유구(悠久)한 세월 속에서 때로는 허접한 것이 학문이라는 탈을 쓰고 나타났다가 단 몇 년도 살아남지 못하고 사라지는가 하면, 또 어떤 학문은 참신하고 오묘한 이치를 담고 있으나 시기적(時期的)으로 너무 빨리 태어나는 바람에 적응하지 못하고 고사(枯死)되는 경우도 있다네. 그러니까 고사리는 여름에 태어나야 하고, 동백은 겨울을 만나야 하는 법인데 여름 동백과 겨울 고사리는 스스로 뛰어난 능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살아남지 못하기도 한다네.”

안산을 비롯한 대중들은 단양의 말에 깊은 깨달음이 있었다. 세상에 생겨났다가 사라지는 학문의 이론(理論)들이 모두 의미가 없어서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소 생각할 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모두 자신도 모르게 합장을 한 번 했다. 그것을 본 단양이 말했다.

비록 그렇지만 말이네, 그렇게 세상보다 앞서 태어난 경우는 백()에 일()이겠고 대부분은 잠시 기특한 생각을 했다가 이내 묻혀버리는 경우라고 봐도 될 것이네. 그러니까 지상(地上)에서 사라진 물줄기를 찾는 것이나, 이미 세상에서 도태(淘汰)되어버린 학문의 흔적을 추적(追跡)하는 것이나 서로 다를 바가 없다고 봐야지.”

그러한 현상은 풍수학에서도 나타나겠습니까? 안산이 줄곧 의심나는 것은 고대로부터 지리(地理)의 명사(名師)들이 터를 잡아서 왕실(王室)의 제왕들을 명당(明堂)의 길지(吉地)에 왕릉(王陵)을 만들지만 어쩐 일인지 1천 년을 유지하는 나라는 희소(稀少)하니 이것은 또 무슨 까닭인지 궁금합니다.”

과연 그대가 제대로 묻는군. 능히 대중의 우두머리라 할 만하네. 풍수에 대해서 논한다고 해도 그냥 단순하게 땅의 이치로만 논할 수는 없지. 생전의 업장(業障)도 영향을 미칠 테니까 말이네. 어떤가? 역대의 제왕이 많지만 모두 명당터에 들어간다고 해도 생전에 쌓은 업연이야 제각각일 것이며 선업(善業)보다는 악업(惡業)더 많을 것이니 이러한 것이 자손들에게 어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할 수가 있겠나?”

이렇게 묻고는 말을 끊고 안산을 바라봤다. 의견이 있으면 말을 해 보라는 뜻이었다. 안산이 잠시 생각하고는 말했다.

지당(至當)하십니다. 안산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런가? 그렇다면 다행이군. 생전의 업장은 그대로 두고서라도 다만 지리(地理)의 이치로 보더라도 변화가 무쌍하다고 봐야지. 가령 고대(古代)에는 장풍득수(藏風得水)면 길지(吉地)라고 했다네. 산의 꼭대기에서 매섭게 몰아치는 바람을 피하면 장풍(藏風)이요, 지형(地形)이 둘러 막혀 있지 않으면 필시 흐름이 있을 것이고, 흐름이 있으면 물길이 될 터인즉 득수(得水)라고 했다네. 그래서 이름도 풍수(風水)라고 한다는 것은 알고 있겠지?”

, 장풍득수(藏風得水)를 줄여서 풍수라고 한다는 정도는 잘 알고 있습니다. 형세(形勢)로 보고 길흉을 살피는 풍수학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다만 도반 중에 혹시라도 잘 몰랐다면 이런 기회에 모두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단양은 다시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말을 이었다.

처음에는 장풍득수만 되었으면 좋은 터라고 생각하다가. 나중에는 넓은 면적에서 핵심(核心)이 되는 자리를 생각하게 되었고, 그래서 기운이 모였을 것으로 짐작되는 곳이 중요하다고 봤지. 그래서 산세(山勢)가 암소를 닮았을 때는 젖이 있을 부위에 묘를 썼고, 황소를 닮았을 적에는 뿔이 있는 부위에 묘를 썼다네. 그러나 현금(現今)에서는 이런 말을 하면 돌팔이 풍수라고 놀림을 당하게 된다네. 왜 그렇겠는가?”

아하~! 그것은 이미 유행(流行)이 지났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요즘의 풍수는 물형(物形)을 기준으로 살펴보는 형기법(形氣法)이 아니라 나경(羅經)을 통해서 이론적(理論的)으로 기의 흐름을 살펴보는 이기법(理氣法)이 득세(得勢)하는 까닭이라고 하겠습니다. 소를 닮았다고 해서 산이 소가 될 수가 없으므로, 젖이 있는 부분이라고 해서 그곳에만 기운이 서려 있다고 하는 것도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니 자연스럽게 도태가 되었을 것으로 이해가 됩니다. 어떻습니까?”

옳지~! 안산이 핵심(核心)을 짚었어. 허허허허~!”

잘 알겠습니다. 지학(地學)은 그렇다고 하거니와 천학(天學)은 어떻습니까? 그러니까 길흉의 조짐을 천문(天文)으로 살펴서 국운(國運)을 예측(豫測)하는 것이 아닙니까? 하늘에는 항상 일월(日月)이 운행(運行)하고 오성(五星)이 질서정연(秩序整然)하게 움직이고 있으므로 오랜 세월을 지켜왔을 것으로 이해가 됩니다.”

그것도 알고 있었나? 그대는 참으로 박문(博聞)이로군. 천문을 살피려면 반드시 야밤이어야 하고, 하늘이 맑아야 하네. 그리고 필수적으로 시야(視野)가 좋아야 하므로 신체적인 조건도 필요하다고 해야겠군. 가령 눈이 나빠서 별이 보이지 않으면 일월성신(日月星辰)의 운행을 판단할 수가 없을 테니 말이네.”

그렇겠습니다. 학문을 연구하는 조건(條件)이 지상(地上)을 살피는 것에 비해서 천상(天上)을 살피는 것에는 많은 제약(制約)이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습니다. 그로 인해서 학문의 발전은 제대로 진척(進陟)되기 어려웠겠습니다. 다른 학문은 빠르게 진화하는데 이러한 조건으로 인해서 발전하지 못한다면 자연스럽게 뒷전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싶습니다.”

그런 이유도 있지. 또 어디에서 별을 보느냐에 따라서도 관점(觀點)이 달라지지 않겠나? 또 실성(實星)만으로 관측해서 미래에 일어날 일을 살피기도 하지만, 허성(虛星)으로도 살핀다네. 가상의 별자리를 만들어 놓고서 그것의 변화에 따라서 말하는데 자미두수(紫微斗數)는 이러한 방향으로 발전한 것으로 볼 수 있겠네. 허성을 쓴다는 것은 밤하늘의 별을 살피지 않아도 된다는 간편함이 있으니 나름대로 해결책을 찾은 것으로 봐도 되겠군.”

그렇습니까? 그것까지는 몰랐습니다. 당연히 밤하늘의 별이 운행하는 것을 살펴서 길흉화복(吉凶禍福)을 보는 것이겠거니 했습니다. 오늘 태사님의 가르침으로 안목이 넓어졌습니다. 감사드립니다.”

그렇다면 다행이로군. 인간의 생신(生辰)을 바탕으로 논하는 명학(命學)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가 있지. 온갖 이론들이 밤하늘의 별만큼이나 생겨났다가 어둠의 저편으로 사라지곤 했으니 말이네. 이렇게 명멸(明滅)하는 명학에서 장강(長江)처럼 꿋꿋하게 흐르고 있는 것이라면 그것이야말로 자평법(子平法)이라고 하겠지. 지금 그대들이 공부하고 있는 오행원의 핵심(核心)이기도 하겠군.”

, 제자가 듣기로는 기가 막힌 적중율(適中率)을 자랑하는 명술(命術)이 있다고 들었는데 지금은 전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 이름은 철판신수(鐵板神數)입니다. 세상에서 사라진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한데 왜 사라졌는지는 알 수가 있겠습니까?”

철판에 관심을 가졌던가 보군. 그것은 이미 부전(不傳)이라 세상에서 사라지고 글만 기록으로 남아있으나 호사가(好事家)들은 또 그러한 것이 궁금해서 가끔 찾아보기도 한다네. 철판신수의 전인(傳人)이 없으니 학인(學人)도 없을밖에. 왜 전인이 없겠는가? 당연히 배우기가 어려우니까 전인이 없는 것이지. 아무리 배우기가 어렵다고 하더라도 신통(神通)하게 영험(靈驗)하다면 그 정도의 노력을 기꺼이 바칠 각오로 달려든 사람인들 없겠는가?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이미 없어도 대체가 가능한 학문이 있다면 누가 거들떠나 보겠느냔 말이네. 허허허~!”

그런 것이었습니까? 진실이 그와 같다면 안산이라고 하더라도 당연히 그랬을 것입니다. 새로운 길이 넓게 닦였는데도 굳이 옛날의 꼬불거리는 길을 고집할 필요는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철판신수는 이미 인적(人跡)이 끊겨서 가끔 토끼나 노루만 다니고 있는 길을 더듬으면서 찾아가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까?”

대중들은 단양의 해박한 지식에 압도(壓倒)되면서 다음 이야기를 기다렸다. 철판신수에 대해서 듣는 것만으로도 어떤 학문을 선택해서 공부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을 세울 수가 있는 식견(識見)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앞쪽에서 이야기를 듣던 사람이 손을 들었다. 단양이 바라보자 일어나서 말했다.

제자는 호병문(胡炳文)이고 아호는 운봉(雲峯)입니다. 귀한 가르침을 접하게 된 인연에 감동합니다. 궁금한 것은 역경(易經)의 이치입니다. 육효(六爻)를 공부하여 점사(占辭)를 보고서 길흉을 판단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운봉은 평소에 육효법(六爻法)에 흥미가 있어서 가끔 들여다보고는 있습니다만, 이것을 공부하는 것에 대한 태사님의 견해(見解)가 있으신지 궁금하여 여쭙고자 합니다.”

평소에 조용히 공부만 하는 것으로 보였던 운봉이었으나 이렇게 기회가 주어지자 궁금했던 것을 질문했다. 단양이 이야기를 듣고서는 다시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말했다.

오호~! 운봉이라고 했나? 뜻이 높구나. 높은 산봉(山峯)에 구름이 걸려있단 말이지? 허허허허~!”

실행은 하지도 못하면서 아호만 주제넘습니다. 하하하~!”

아닐세, 자고로 학문을 하는 사람은 기개(氣槪)가 높아야 하네. 뜻이 작으면 작은 것에서 만족하게 되고 뜻이 높으면 큰 것을 얻을 수가 있기 때문이라네. 우창을 보게. 벗들과 함께 창달(暢達)코자 하니까 이렇게 많은 제자가 모여서 학문을 토론하고 있지 않은가? 운봉은 반드시 큰 뜻을 이루게 될 것이니 모쪼록 부지런히 정진하게. 허허허~!”

태사님의 덕담에 감사드립니다. 더욱 분발하겠습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합장하고는 다시 설명을 기다렸다. 그러자 단양이 대중을 둘러본 다음에 말했다.

자고(自古)역경(易經)은 공자의 가르침에서 핵심(核心)을 이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네. 그만큼 말년에 위편삼절(韋編三絶)을 하셨으니 그 열정은 여느 청년보다 더하면 더 했지, 조금도 덜하지 않았을 것은 자명(自明)한 일이로군. 운봉이 이렇게 질문을 했다는 것은 이미 상당한 수준에 도달했다는 것으로 봐도 될 것이네. 스스로 육효(六爻)를 활용하기도 하겠지? 어떤가?”

, 그렇습니다. 가끔 필요할 때는 운용(運用)을 합니다.”

그렇겠지, 그러면서 오행의 이치와 무슨 차이가 있는지에 대해서 정리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오늘 나를 본 김에 물었더란 말이로군. 허허허~!”

과연 태사님의 통찰력(統察力)이 놀랍습니다.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알고 있네. 그 점기(占幾)의 오묘(奧妙)함이나 결과의 신기(神技)한 것에 대해서는 더 말을 할 나위도 없겠군. 가장 큰 차이를 말한다면 자평은 오행(五行)을 위주(爲主)로 하고, 역경은 음양(陰陽)을 위주로 한다는 것이라고 하면 되겠는데 이것도 다 알고 있지?”

,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운봉이 내게 물었던 의도는 함께 공부하는 도반을 위해서라고 해도 되겠군. 물론 스스로 정리하고자 하는 마음도 없진 않았겠지만 말이지.”

그렇습니다. 정확히 맞는 말씀이십니다.”

이런 비유(譬喩)를 들 수가 있겠군. 자평(子平)이 나무라면 역경은 바람이라네. 자평이 강이라면 역경은 강물이지. 오행이 체()라면 음양은 용()이 될 것이니 말이네. 그래서 자평으로 그 사람의 과거세(過去世)에 지은 업연(業緣)을 살펴보게 되고, 역경으로 그가 미래에 겪게 될 일을 조짐으로 보게 되는데, 여기에서 그대가 궁금한 것이 생겼다는 말이지 않은가?”

단양이 이렇게 말하자 운봉이 혀를 내두려면서 말했다.

정말 조금도 틀림이 없으십니다. 진실로 그와 같습니다. 내심으로 감탄합니다.”

운봉이 감탄하면서 말하자 단양이 미소를 짓고는 다시 차를 마시고는 말을 이었다.

지금은 입하(立夏)가 지났으니 하절(夏節)이 아닌가?”

그렇습니다. 맹하(孟夏)입니다.”

이것이 자평법이라네. 어떤 사람에게나 지금의 운기(運氣)는 하절(夏節)이란 말이지. 더위를 타는 사람에게는 부담스러운 계절이고, 추위를 타는 사람에게는 심신(心身)이 편안한 계절이 될 따름이라네. 무슨 뜻인지 알겠는가?”

그것은 알아듣습니다. 여기에 역경이 끼어들 자리가 있느냐는 것에 대해서 생각하면 서로 모순(矛盾)되는 것인가 싶어서 항상 궁금했습니다. 어찌 생각해 보면 역경이 없어도 추명(推命)에 아무런 불편함이 없다는 생각이 되는데, 또 때로는 역경에서 답을 찾는 것이 명쾌(明快)할 때도 있어서 말입니다.”

, 알지! 허허허~!”

오늘에야 이 문제로부터 운봉의 번뇌가 벗어나는가 봅니다. 고맙습니다.”

, 하삼삭(夏三朔)을 지나면서 누구나 더울 것으로 짐작은 하지 않겠나? 설마 서리가 내리고 폭설이 쏟아질 것을 예상하는 사람이 있겠나?”

아마도 정상적인 상식을 갖고 있다면 그러한 생각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름의 석 달간은 덥다는 것이 상식이니 말입니다.”

그런데 어떤가? 때로는 광풍(狂風)이 몰아치기도 하고, 아닌 여름에 우박(雨雹)이 쏟아져서 농부가 열심히 가꾸고 있던 작물을 순식간에 파괴하는가 하면 또 때로는 폭염(暴炎)에 들판의 곡식(穀食)이 타들어 가기도 하며, 때로는 구름이 가득하게 모여들었다가 모두 흩어지고 맑은 하늘이 쨍쨍하기도 하지 않은가?”

당연합니다. 그것이 여름 날씨입니다.”

바로 이러한 경우에 당해서 오늘은 비가 내릴 것인지? 혹은 바람이 불 것인지? 바람이 불면 태풍(颱風)인지 미풍(微風)인지를 구분하려면 자평의 이치로 이러한 변화를 판단하기에 용이(容易)하겠는가?”

아마도 매우 어려울 것입니다. 자평으로 그렇게 세세한 것을 판단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 생각해 보게. ()는 여름이네, 그러나 용()은 태풍이 몰려오고 있다면 그 태풍의 정도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역경의 육효(六爻)를 의지해서 판단하는 것도 좋지 않겠나?”

당연히 그것이 쉽겠습니다.”

아직도 설명이 더 필요한가?”

단양은 차를 한 모금 마시고 이렇게 묻자 운봉이 말했다.

자상하고도 명료한 설명을 듣고 보니까 역경이 어디에 서야 할 것인지를 깨달았습니다. 자평법을 바탕으로 삼고 역경을 변화를 읽는 연장(鍊匠)으로 삼아서 이해한다면 만무일실(萬無一失)이겠습니다. 역경과 자평의 관계에 대해서 너무나 잘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또 한 가지의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말씀을 듣는 김에 이것까지도 여쭙는 것이 좋을 것으로 생각이 되어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그래? 무엇이든 물어야지. 또 궁금한 것은 뭔고?”

비바람과 폭풍우를 알아내는 데는 반드시 역경이어야 할 필요는 없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어서 여쭙고자 합니다. 그것은 마치 나무 끝이 흔들리는 것을 보고도 알 수가 있고, 공기에서 습기가 느껴지는 것을 보고서도 알 수가 있을 테니 말입니다. 그런가 하면 산 위에서 나뭇잎이 바람에 뒤집히는 것을 보면서도 큰바람이 불 것을 알아낼 수가 있듯이 말입니다.”

 

 

운봉이 이렇게 여쭙자 다른 제자들도 어떤 답을 듣게 될 것인지 궁금한 마음에 기대심으로 귀를 기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