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6] 제40장. 방랑객(放浪客)/ 5.백발(百發)의 안목(眼目)

작성일
2023-11-30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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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6] 40. 방랑객(放浪客)

 

5. 백발(百發)의 안목(眼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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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고 나서 백발이 우창에게 물었다.

스승님, 귀한 어르신을 뵙고 인사를 드리고 싶은데 괜찮을지요?”

그야 당연히 괜찮고말고 지요. 가십시다. 용모가 어떤 모습인지 궁금하시단 말이 아닙니까? 하하하~!”

이크~ 제자의 속내를 들키고 말았습니다. 하하하~!”

백발과 함께 우창이 태사당으로 가자 오광이 안에다 전갈하고는 두 사람을 맞이했다. 우창이 백발과 함께 안으로 들어가자 허공은 모로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다가 우창을 보고는 일어나 앉았다.

스승님께 문안 여쭙습니다.”

그래, 같이 온 사람이 있었구나. 뉘신고?”

이렇게 말하자 우창이 소개하기도 전에 백발이 말했다.

옛날부터 인연이 된 제자입니다. 태사님께서 왕림(枉臨)하셨다는 말씀을 듣고 어서 뵙고 인사를 올리고 싶어서 뵙자고 했습니다. 쉬시는데 폐를 끼쳐드렸습니다. 용서 바랍니다.”

허공은 백발을 지그시 바라보더니 말했다.

오호~! 눈빛이 예리하구나. 면상(面相)을 연구하셨나?”

미흡합니다만 관심은 많이 두고 있습니다.”

역시 우창의 제자 복은 강호에서 제일인가 싶군. 뛰어난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속속 모여드니 말일세. 사람은 복()보다 덕()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니로군. 허허허허~!”

허공이 유쾌하게 웃자 백발은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어설프게 헛된 수작(酬酌)을 하다가는 바로 드러나고 말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역시 우창이 제대로 스승을 모셔왔다는 것을 확인한 백발이 절을 하면서 말했다.

태사님께 깊은 오행의 가르침을 받게 될 것을 생각하니 벌써 마음이 설렙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깊은 이치를 깨닫도록 하겠습니다.”

우창은 허공이 편히 쉬도록 배려해서 인사를 하고는 물러 나와서 서재로 돌아왔다. 그러자 백발이 기뻐하면서 말했다.

스승님, 어떻게 저런 기인(奇人)을 만나셨습니까? 하늘이 돕지 않고야 이뤄지기 어려운 일인데 말입니다.”

그렇습니까? 그냥 우연히 만나 뵙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인연이 닿았던 모양입니다. 하하하~!”

백발도 미뤄뒀던 오행 공부를 위해서 분발해야 하겠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스승님께 공부를 청해야 하겠다고 생각했는데 핑계가 생겼습니다. 자주 와서 가르침을 청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이만 물러갑니다. 하하하~!”

그럼 날짜를 맞춰서 오시도록 하고 편히 귀가하십시오.”

이렇게 인사를 한 백발은 돌아가고 나자 우창은 마음이 바빠졌다. 우선 제자들에게 적천수를 베끼도록 하면서 자신도 옛날에 공부했던 자료들을 점검하면서 행여라도 잘 모르고 있었던 부분에 대해서 그냥 대충으로 정리하고 넘어간 것이 있는지를 다시 살피면서 새롭게 공부할 마음에 흥분이 되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해 보다가 허공이 혹 경도(京圖) 스승님의 후신(後身)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조차 들기도 했다. 이런 생각까지 들자 자기의 머리를 두드리면서 말했다.

정신을 차려야지. 어떻게 그런 일이 생길 수가 있겠느냔 말이지. 하하~!”

혼자서 중얼거리는 것을 듣고는 서옥이 서재로 나와서 같이 차를 마시면서 담소했다.

백발 숙부는 항상 열정이 넘쳐서 보기 좋아요. 스승님의 가르침에 마음이 흥분되었나 봐요. 호호호~!”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도락(道樂) 스승님과 헤어진 후로 모처럼 뵙게 되는 스승님의 가르침이라서 더 그런 것으로 생각되는군.”

도락 스승님이 어땠는데요?”

서옥이 묻자. 우창은 지난 시절에 유람하다가 임치(臨淄)에서 기연(奇緣)을 만나서 간지술(干支術)에 대해서 획기적으로 알게 되었던 조짐(兆朕)을 설명해 주자 서옥도 감탄하면서 말했다.

과연,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스승복보다 더 중한 것이 없나 봐요. 그렇게 지나가다가 뵙기도 하고, 이렇게 찾아오셔서 가르침을 받기도 하니 말이에요. 서옥도 열심히 공부해서 밥이나 축내는 인생은 되지 않도록 하겠어요.”

아무렴. 서옥이 공부를 하는 모습에 반했는데 당연히 그렇게 될 것이네. 내가 힘이 자라는 데까지는 최선을 다해서 도와줄 테니까 열심히 정진해봐.”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는데 밖에서 누군가 찾는 소리가 들렸다. 우창이 밖을 내다보자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모습의 여인이 서 있었는데 어디에서 봤는지는 생각이 나지 않아서 기억을 더듬으면서 말했다.

잘 오셨습니다. 어떤 일로 찾아오셨는지요?”

, 도사님이시구나. 저는 서산도에서 뵈었던 차관의 주인이에요.”

여인이 서산도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서야 문득 기억이 떠올랐다. 그래서 반갑게 맞으며 말했다.

, 얼른 기억하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이리 들어오시지요. 하하하~!”

도관이 참 엄숙하네요. 생각보다 규모도 크고요. 뵙고 싶어서 왔어요.”

서옥이 찻물을 끓이는 동안에 진명과 자원이 들어오다가 손님이 있는 것을 보고는 얼른 들어와서 반갑게 인사를 했다. 눈썰미가 좋은 진명이 먼저 알아보고 말했다.

, 누구신가 했더니 서산도 차관의 주인이시잖아요? 그날은 참으로 맛있는 차를 잘 마셨어요. 언젠가 찾아오실 줄 알았어요. 오늘 뵈니까 아무래도 차관을 접으신 것은 아닐까요? 호호호~!”

진명이 이렇게 말하면서 웃자 차관의 여주인도 깜짝 놀라면서 말했다.

아하! 그렇지 않아도 그 문제를 의논하고 싶어서 오늘 찾아뵈었는데 과연 낭자가 단박에 알아보시네요. 놀라워요. 어떻게 공부하면 그렇게 잘 알아볼 수가 있을까요? 참으로 알고 산다는 것이 부러워요.”

진명이 미소를 짓고는 말을 이었다.

아니, 서산도를 떠나실 거예요? 못 뵌 사이에 아마도 큰 변화가 있으셨나 봐요?”

여인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며 말했다.

어머~ 맞아요! 그날 일행이 다녀가신 후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곰곰 생각했어요. 이렇게 섬 아닌 섬에서 인생을 허비하면서 세월만 보내고 있을 것이 아니라 뭔가 보람이 있는 일을 찾아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하다가 문득 오행원으로 찾아와도 된다는 말이 생생하게 떠오르지 않겠어요? 한산사는 원래 잘 알고 있어서 이렇게 헛일이 되어도 좋다는 생각으로 나들이했는데 다시 뵙게 되니 무척 반가워요. 어떻게 인연(因緣)이 되어서 함께 살 수는 없을까요?”

여인이 이렇게 말하자 진명은 우창을 보면서 말했다.

스승님, 진명이 제안하고 싶어요. 우리 오행원에 차방(茶房)을 하나 마련하면 어떨까요? 팽주(烹主)를 맡기면 너무 잘하실 것으로 생각되는데 저 앞에 있는 창고삼아 쓰고 있는 건물을 차방으로 꾸며서 학인들이 공부하다가도 언제나 편안하게 담소하면서 마실 수가 있는 공간으로 만들면 좋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말이에요.”

진명이 이렇게 여인의 심중을 헤아려 주자 여인도 기대감이 가득한 눈빛으로 우창을 바라봤다. 우창이 그러라고만 하면 바로 실행하려는 모습이었다. 그것을 본 우창이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오셔서 대중들을 위한 차방을 관리해 주신다면 더 바랄 것이 없지요. 다만 이에 대한 보수(報酬)를 어떻게 해 드려야 할 것인지가 걱정입니다.”

여인은 우창이 허락하자 뛸 듯이 기뻐하면서 말했다.

보수는 밥만 먹여주시면 되고요. 차는 다양한 것으로 구비(具備)해서 공부하다가 쉬고 싶을 적에는 언제든지 마실 수가 있도록 마련하겠어요. 다만 모두 공부하는 시간에는 말석(末席)이라도 하나 얻어서 함께 공부할 수가 있도록만 배려해 주시면 좋겠어요. 실로 이 나이를 먹도록 무엇을 했나 싶은 허무감(虛無感)을 못 견디겠거든요. 호호~!”

여인이 이렇게 말하자 진명이 결정했다.

잘 알았어요. 그러시면 오행원에 머무는 것은 해결이 되었는데 서산도의 차관은 어떻게 하시겠어요?”

진명의 물음에 여인은 약간 들뜬 음성으로 대답했다.

차관은 이미 대신 맡아서 운영해 보려는 사람이 있어서 말을 해 뒀어요.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게 해 놨죠. 그렇다면 가서 정리하고 내일 들어올게요. 진시초(辰時初)에 마차가 부두(埠頭)에 와 줬으면 좋겠어요. 그동안 마련해 뒀던 여러 종류의 차들이 좀 있거든요. 그것은 평소에 아끼던 보물과 같아서 어떻게 할까 생각했는데 마침 잘 되었어요. 모두 챙겨와서 함께 나누고 싶어요.”

그야 염려 마세요. 그렇게 할게요. 귀한 차를 손수 챙겨오신다면 거보다 더 반가울 수가 없으니까요. 호호~!”

여인은 이렇게 약속하고 다시 돌아갔다. 그러자 진명이 우창에게 말했다.

스승님, 오행원의 규모가 점차로 갖춰지고 있네요. 먹을 밥과 마실 차가 있으면 더 바랄 것이 없잖아요? 앞으로는 서재에서 차를 끓이느라고 숯불을 피우지 않아도 되겠으니 이보다 좋은 일이 없네요. 언제든지 차를 마시고 싶으면 차방으로 가서 설설 끓는 물에 온갖 종류의 차를 우려서 마시기만 하면 될 테니 말이에요. 너무 좋지 않아요? 호호호~!”

그러자 우창도 말했다.

좋고 말고 저절로 찾아와서 이렇게 자리를 만들어 주겠다고 하니 오행원의 토지신(土地神)이 영험(靈驗)하신 것으로 봐야 하지 않겠어? 하하하~!”

그러면 스승님, 내친김에 차방의 이름도 지어요. 뭐라고 하면 좋을까요?”

조금 전에 말하기에 차의 종류가 많다니까 온갖 차가 다 있다는 의미로 백차방(百茶房)이라고 하면 어떨까?”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진명이 손뼉을 치면서 말했다.

아니, 스승님은 말만 꺼내면 그렇게 이름이 마구마구 떠오르세요? 힘도 안 들이고 이름을 지어버리시니 말이에요. , 허공 태사님의 이름도 절묘했잖아요. 호호호~!”

그런가? 이름이야 뭐 뜻만 전달되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니까 망설이고 궁리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하하~!”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스승님의 호를 지을 생각을 하셨느냔 말이죠. 진명은 절대로 그런 생각은 하지 못할 거에요. 그것이 대단하시다는 거에요. 아무나 할 수가 있는 것이 아니거든요. 호호~!”

그야, 스승님께서 말을 하지 않으셨으니까 그랬던 거지.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스승님도 그렇게 부르고 싶지 않았다고 봐야 하니까 말이지. 그래서 말씀을 드렸던 것인데 또 동의하시니 그 또한 인연이겠거니 했지. 하하~!”

그럼 차방은 백차방으로 편액을 하나 만들어서 달아야겠어요. 내부(內部)도 손질해서 편안하게 차를 마시면서 담소를 할 수가 있는 공간으로 꾸며야 하겠네요. 이것은 안산 선생에게 시키면 좋겠어요. 가서 부탁하고 올게요.”

이렇게 말한 진명이 나갔다가 돌아오면서 춘매를 데리고 왔다. 이미 이야기해 줬던 모양이었다.

스승님, 팽주가 저절로 찾아왔다면서요? 이제 언제라도 쉽게 차를 마실 수가 있겠네요. 너무 과분(過分)한 것은 아닌가요? 호호호~!”

아마도 오행원의 신장(神將)님의 배려가 아닌가 싶구나. 대신 열심히 공부하도록 춘매가 살펴드리면 좋겠네. 하하~!”

차관에서 뵈었을 적에도 조용하고 사려가 깊어 보여서 인상적이었는데 함께 지낸다고 하니까 더 좋아요. 그럼 차방을 꾸미는데 도울 것이 있는지 가봐야죠. 호호호~!”

춘매가 차방을 꾸미는데 거든다고 나가자 진명이 말했다.

스승님, 오늘 술시에는 한 말씀 하시는 날이에요. 잊으신 것은 아니죠?”

그래, 무슨 이야기를 나누면 좋을지 생각하고 있었다네. 혹 진명의 의견이 있으면 말을 해 줘도 좋겠군.”

진명은 스승님의 말씀이면 뭐든 좋아요. 특별히 생각하신 것이 없으면 그냥 흐름에 맡겨도 좋잖아요? 누군가는 또 그 흐름을 타고 물어올 텐데요 뭐.”

그렇기도 하겠군. 그럼 아무런 생각이 없이 임하는 것으로 하고 이제 좀 쉴 테니 진명도 가서 쉬도록 하지.”

우창은 잠시 쉬고 싶었다. 이것저것 신경을 쓰느라고 그랬는지 좀 피로감이 생겨서였다. 침실로 가자 서옥도 어디론가 나가고 없었다. 그래서 잠시 쉰다는 것이 아예 깊은 잠이 들어서 저녁 식사를 알리는 목탁소리가 듣고 나서 비로소 잠에서 깨어났다. 옆에서 앉아서 책을 보고 있던 서옥이 조용히 말했다.

스승님, 많이 고단하셨던가 봐요. 코를 골면서 주무시네요. 개운하시죠?”

그랬구나. 정신없이 한숨 잤네. 앞채를 차방으로 꾸민다는 말은 들었지?”

, 들었어요. 언제든 가서 차 마시면서 책을 읽으면 좋겠어요. 서재도 훨씬 조용하겠어요. 호호호~!”

우창은 서옥의 잔잔한 웃음소리를 들으면서 마음이 평온해짐을 느꼈다. 소리는 참으로 각양각색(各樣各色)이다. 귀를 통해서 들어온 소리가 마음에 닿게 되면 그 느낌은 또 천차만별(千差萬別)이 될 수밖에 없으니 소리에 민감한 것도 당연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명의 쾌활(快活)한 음성은 화창한 봄날에 꾀꼬리가 지저귀는 듯해서 마음을 밝고 상쾌하게 만들어 준다면, 자원의 카랑카랑한 음성은 잠자던 영혼조차도 깨어나게 만드는 마력이 있는 반면에 춘매의 착착 감겨드는 듯한 음성은 그 여운(餘韻)이 또 일품이라고 할 수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렇게 서옥이 나긋나긋하게 말하는 음성은 흡사 잔잔한 바닷가에서 밀려오고 밀려가는 파도의 소리를 듣는 것같이 아무런 근심도 없이 평온한 풍경을 보는 느낌이었다. 그러자 오늘은 소리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승님, 저녁을 먹을 시간은 아직 이르니 오룡차를 한 잔 만들까요?”

서옥은 항상 스승님의 호칭을 앞에다 넣고 말했다. 그것은 자신이 남편이라서 만만하게 대하지는 않을까 싶은 자경심(自警心)에서 나온 말이었다. 우창도 그것을 짐작하고는 가만히 뒀다. 호칭이든 이름이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기 때문임을 잘 알고 있어서였다. 호칭보다는 그 안에 깃든 마음이 큰 의미가 있는 까닭에 크게 예의에 벗어나지만 않는다면 뭐라고 해도 좋다는 생각이었다.

좋지, 약간 짜게 우려봐.”

알았어요. 아침에는 싱겁게 하고 저녁엔 짜게 하는 것도 자연의 이치일까요?”

당연하지, 음식도 처음에는 싱겁게 먹고 나중에는 간이 높아지는 것처럼 차도 마찬가지야. 지금은 하루의 기운이 거의 고갈이 되어갈 무렵이니까 싱겁게 먹으면 차의 맛이 느껴지지 않으니까 말이지. 하하~!”

스승님의 말씀을 듣고 보면, 일상이 도()라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그리고 그 도는 자연의 운율(韻律)과 맞는다는 생각도 들어요.”

맞아~! 눈은 감아도 되지만 귀는 닫을 수가 없잖아. 입은 닫을 수가 있지만 코는 닫을 수가 없는 것 같은 이치라고 봐야지. 문은 닫을 수가 있으나 마음은 닫히면 안 되는 것도 여닫는 이치가 아닐까?”

어머, 정말요~! 얼굴에도 열린 것이 있고 닫힌 것이 있었어요. 눈과 입은 여닫는데 코와 귀는 항상 열려있는 것은 무슨 이치일까요?”

우창은 서옥의 말을 듣고서 차를 마시면서 음양의 이치를 설명해줬다.

열린 것은 양이고 닫힌 것은 음이라고 하는 것은 알고 있지?”

막연히 그럴 것이라고는 생각했으나 그렇게 관하는 것이 맞는 거죠?”

맞아, 코는 항상 기운이 들락거리기 때문에 양이고 입은 필요할 적에만 들락거리니까 음이 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지?”

그렇긴 한데 왜 하필이면 코와 입일까요? 코와 귀로 연결을 지을 수도 있잖아요? 이런 것도 여쭤볼 수 있을까요?”

당연하지. 만약에 이목구비(耳目口鼻)에서 막으면 안 되는 것이 있다면 어느 기관일까?”

그야 코가 막히면 안 되잖아요? 그러면 가장 중요한 것은 코가 되겠어요.”

옳지! 그다음에 중요한 곳은 어디지?”

코로는 숨을 쉬고 입으로는 음식을 섭취해야 하니 입이 되겠어요. 그러니까 가장 중요한 기관인 코와 입이 서로 짝이 되나요?”

맞아, 이해가 빠르구나. 하하~!”

또 잠시 생각하던 서옥이 문득 깨달았다는 듯이 물었다.

그러고 보니까 코와 입은 하나씩 있다는 것이 어쩌면 의미가 있어 보여요. 중요한 것은 하나가 있는 것인가요?”

오호! 그런 생각까지 할 수가 있구나. 재미있는걸. 그러니까 귀와 눈을 음으로 본다면 코와 입은 양으로 볼 수도 있다고 하겠네. 기수(奇數)는 양이고 우수(偶數)는 음이니 말이야. 하하~!”

오호라! 그러고 보니까 코는 음양을 다 갖췄어요. 코는 하나인데 비공(鼻孔)은 둘이잖아요? 이러한 기관은 코를 제외하고는 없으니까요. 코는 영혼이 출입하는 곳이라고 하더니 과연 그것도 맞는 것 같아요. 호호~!”

맞아, 그런 것도 보이는구나. 하하~!”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다가 술시가 되어오자 강의를 준비하면서 말했다.

사소한 것이라도 살펴보면 또 많은 것이 보이기도 하지.”

정말 오묘하네요. 출입하는 문을 여닫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그 마음은 한 번 닫게 되면 다시 열리기에는 너무 힘이 들어요. 그러니까 애초에 닫지 않아야 하는 것도 있다는 것이고, 얼굴의 코나 귀와 같이 마음도 닫히면 안 되는 것이라는 말씀이잖아요? 호호~!”

그렇지, 서산도의 여인도 마음이 닫혀있다가 우리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자신도 모르게 마음의 문이 열리게 되었고, 그 영향으로 이렇게 오행원으로 들어오게 되었으니 마음에 문이 없는 사람이 도인이라고 하지 않겠어? 그래서 대도무문(大道無門)이라고 하는 말도 있으니까.”

? 큰 도에는 문이 없다니요? 그렇게 멋진 말은 누가 만든 것일까요? 그보다도 마음은 대도(大道)로 통하는 것이잖아요? 그러니까 무문(無門)이겠죠? 눈과 입에는 문이 있고 집과 방에도 문이 있지만 마음과 도에는 문이 없어야 하겠네요. 아니, 원래 문이 없는 것이었단 말이죠?”

우창은 서옥의 음성이 파도가 노래하는 것 같았다. 이러한 소리를 평생 들을 수가 있다는 것이 다행스럽다고 생각하면서 말했다.

그 말은 무문선사(無門禪師)가 남긴 말이라더군. 그래서 자기의 법호(法號)도 무문(無門)이었지. 선사가 수행처를 만들어 놓고 무문관(無門關)이라고 했다지 않은가. 문이 없는 관문(關門)이라니 참 의미심장하지?”

아니, 그것은 언뜻 듣기에는 글 장난 같잖아요? 문이 없는 관이 무슨 뜻이에요?”

아니지. 가령 함곡관(函谷關)은 알지?”

그야 알죠. 낙양(洛陽)으로 들어가려면 거쳐야 하는 곳이잖아요.”

맞아, 그곳에는 문이 있어. 그래서 관문(關門)이라고 하지.”

두말하면 잔소리죠. 당연히 문이 있어야만 하는 것이잖아요?”

그런데 무문선사는 그 문을 떼어버린 거지. 하하하~!”

, 그런 뜻이었구나. 그래서 무문관이라는 말이 생겼다는 것은 오늘 처음 알았어요. 마음의 문이라니 그리고 그 문을 떼어버린 관문이라는 것까지 생각하고 보니 스승님은 어떤 사람이든 받아들이는 모습과 겹치잖아요? 스승님의 마음에도 문이 없죠?”

그야 내가 나를 볼 수가 없으니 문이 있는지조차도 모르겠는걸. 그렇지만 문이 있다면 무문이 되도록 노력은 하고 싶군. 하하하~!”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문은 없어요. 이미 있더라도 항상 열려있다고 생각하면 되겠어요. 여기 차 드세요.”

우창은 서옥이 따라주는 오룡차를 한 모금 마셨다. 짙은 향이 방안을 감돌았다. 마음의 문을 생각하면서 두 사람은 말없이 차의 향에 젖어 들었다.

좋군.....”

같은 차라도 누구와 마시느냐에 따라서 느낌이 다른 것은 왜일까요? 이것은 단순히 마음의 장난이라고 해도 될까요?”

그럴 수도 있고, 궁합(宮合)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

궁합이라면, 혼인할 남녀가 보는 궁합을 말하는 것이잖아요?”

그것도 궁합이고, 이렇게 서옥과 우창의 사이에 차를 놓으면 삼합(三合)이 되는 거야. 더없이 편안하고 향기로운 기운이 감도는 것이 바로 이 삼합의 결과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하겠군.”

그럼 다른 합도 있겠어요. 가령 허공 태사님과 서옥과 오룡차는 왠지 엄숙하고 어렵고 그런 느낌의 합이 될 것으로 생각이 되어요. 그럼 편안함은 사라지고 긴장감이 감돌지 않을까요?”

서옥은 말귀를 잘 알아들었다. 하나를 말하면 즉시로 응용하고 활용해서 그것을 정리하는 능력을 타고났다고 봐도 되지 싶었다.

옳지, 그래서 정인(情人)이 마주하면 향기로운 차가 생각나고, 원수(怨讐)가 마주하면 날카로운 칼이 생각나는 것이겠지? 둘 사이에 무엇인가 있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거지. 그러니까 원수는 만나지 않는 것이 상책(上策)이기도 하고 말이야. 하하~!”

잘 알겠어요. 과연 합의 조화(調和)도 있으나 합의 횡포(橫暴)도 있다는 것을 이제 새삼스럽게 깨달았어요. 그러니까 조화로운 합은 취하고 험악한 합은 재빨리 피하는 것이 최선이란 말씀이잖아요? 호호호~!”

눈에는 서옥의 모습이 담기고, 귀에는 서옥의 음성, 코에는 차의 향, 혀에는 달콤한 대화, 그리고 마음에는 푸근한 행복이 가득하니 극락이 있다면 이런 것이 아닐까?”

정말이네요. 스승님의 말씀이야말로 천상의 선녀가 노래를 불러주는 것처럼 달콤하고 시원해요. 이렇게 즐거워도 되는 거죠? 호호호~!”

아무렴, 되고말고. 하하하~!”

차를 마시던 서옥이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물었다.

, 백발 숙부님은 왜 호가 백발이에요? 머리가 하얗다면 또 모르겠는데 말이에요.”

, 거기에는 재미있는 고사(故事)가 있지. 하하하~!”

우창이 이렇게 웃고는 옛날에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줬다. 우창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듣던 서옥이 웃으며 말했다.

안 봐도 상상이 돼요. 과연 백발 숙부다워요. 그러니까 스승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아직도 어딘가에서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을 뻔했잖아요? 에구~ 끔찍해라~ 호호호~!”

그야 모르지. 그로부터 항상 스승님이라고 해서 나도 좀 부담스럽다니까. 그래도 스스로 그렇게 우러나서 하는 말이라서 그냥 두는 거라네. 하하~!”

정말이에요. 백발 숙부의 그 화통함이 맘에 들어서 백부님도 좋아하시잖아요. 자사(刺史)의 일이 참으로 힘드신가 봐요. 가끔은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일임에도 상부(上部)에서 지시(指示)받으면 어쩔 수 없이 그대로 따라야 하는 것을 가끔은 힘들어하시는 것을 봐요. 그때마다 백발 숙부를 만나서 주연(酒宴)을 벌여서 털어버리곤 하면서 잘 견디시는 것 같았거든요. 알고 보면 남들은 부귀공명(富貴功名)을 얻겠다고 목숨조차도 초개(草芥)처럼 여긴다고 하는데 왜 그렇게 소중한 자기의 삶을 그런 것에 바치는지 이해가 되지 않기도 해요.”

그렇겠지. 그래서 관리(官吏)로 산다는 것은 큰 짐을 지고 산을 오르는 것과 같다고 할 수가 있는 것이라네. 자신에게 버거운 짐을 떠안는다면 그 부담감은 오롯이 자기의 무릎에 남지 않겠어? 그래서 존중받아야 마땅한데도 적지 않은 탐관(貪官)들이 설쳐대다가 보니 그 틈바구니에서 모함이라도 당하지 않으려면 잠조차도 깊이 들 수가 없을 테니 참 딱한 일이지.”

맞아요. 그래서 벼슬아치의 아낙이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잖아요. 천만다행(千萬多幸)으로 학자의 아내가 되었으니 서옥은 큰 소원 하나를 이루게 되었죠. 호호호~!”

 

 

이렇게 말하면서 우창을 바라보는 눈빛에는 행복감에 젖은 여인이 담겨 있었다. 그것을 본 우창도 마음이 흐뭇해져서 서옥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그렇게 잠시 두 사람 사이에는 고요한 적막히 흐르는데 저녁 공양을 알리는 목탁소리가 적막을 깨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