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7] 제39장. 춘풍(春風)/ 5.태호유람(太湖遊覽)

작성일
2023-10-15 0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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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7] 39. 춘풍(春風)

 

5. 태호유람(太湖遊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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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들이 바뀐 환경을 즐기면서 한참동안 주변의 풍경을 감상하느라고 말이 없는 가운데 사공의 외침이 들려왔다.

손님을 모시고 있는 이 배의 오른쪽으로 보이는 곳은 동산도(東山島)입니다. 그리고 저 앞에 있는 큰 섬은 서산도(西山島)입니다. 육지에 있는 산이라면 평범할 수도 있겠으나 수상(水上)에 있어서 그 운치가 더욱 빛난다고 하겠습니다. 그곳으로 모시겠습니다.”

사공이 가리키는 곳을 보니 과연 호수의 한 가운데에 커다란 산처럼 보이는 섬이 있었다. 사공의 말을 들으면서 말없이 바라보면서 저마다의 감회(感懷)에 젖어있는 모습이었다. 그러자 사공이 다시 말을 이었다.

서산도에는 동산(洞山)과 정산(庭山)이 있습니다. 이 둘을 묶어서 동정산(洞庭山)이라고도 했는데 후에 동정호(洞庭湖)와 같은 글자를 쓰지만 실은 다른 것입니다.”

사공은 열심히 노()를 저으면서 주변의 풍광과 그 가운데 얽힌 이야기들을 들려줬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우창이 물었다.

서산도에는 무엇이 유명합니까?”

, 서산도에는 동정귤(洞庭橘)이 가장 유명합니다. 이름만 봐서는 동정호에서 나오는 귤이라고 오해하기도 합니다만, 실은 태호의 동정산에서 재배된 귤에서 나온 이름이지요. 이 동정귤이 점점 번식해서 강남(江南)의 귤()을 대표하게 된 것이기도 합니다. 선생님은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강남의 귤을 강북에 심으면 탱자(撐子)가 된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 그 속담의 강남이 바로 태호의 동정산이었습니까? 그런 줄은 또 몰랐습니다. 하하하~!”

우창은 항상 새로운 것을 듣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니 다른 제자들도 마찬가지로 닮아가고 있었다. 사공의 말을 듣고서 최은주가 물었다.

스승님 그게 무슨 말이죠? 같은 귤인데도 남북에 따라서 다르단 말인가요? 그러고 보니까 서안(西安)에서는 귤은 보지 못했고 대신 탱자나무는 울타리로 많이 심어서 알아요. 그것이 서로 이름이 다르기에 다른 나무인 줄 알았는데 같은 나무인 줄은 몰랐어요. 듣고 보니까 참 신기하네요. 호호~!”

최은주의 물음에 우창은 또 흥이 났다. 모르는 것을 배우는 재미가 절반이라고 한다면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해서 깨닫게 하는 재미는 그것의 두 배는 되기 때문이었는데 하물며 지금은 가슴을 뛰게 한 여인이 묻고 있으니 다시 그것의 두 배는 되는 기쁨이 샘솟았다. 그런데 사공도 최은주의 질문을 듣고서 관심을 보였다. 자신도 하나를 배우면 또 승객(乘客)을 태우고 유람시키면서 이야기를 해줄꺼리가 되는 까닭이었다. 우창이 모두의 이목이 집중한 것을 보고서 말했다.

지금 사공이 말한 이야기는 고사성어(故事成語)로는 남귤북지(南橘北枳)’라고 하는 것이라네. 이 말은 안자춘추(晏子春秋)에 나오는 내용인데 여기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으니 들어보게나. 하하하~!”

우창이 이렇게 말하며 둘러보자 춘매가 반기면서 말했다.

스승님, 벌써 그 이야기를 기다리느라고 학의 목이 되었어요. 어서 말씀해 주세요. 기대되네요. 호호호~!”

우창이 들려준 남귤북지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았다.

 

◆ ◆ ◆ ◆ ◆ ◆ ◆ ◆ ◆ ◆

 

춘추시대(春秋時代)에 제()나라에는 안영(晏嬰)이라는 재상이 있었는데 하루는 남쪽에 있는 초나라의 영왕(靈王)이 항상 경쟁국으로 지기를 싫어하던 차에 안영의 명성을 듣고서는 그를 불러다 놓고는 기를 꺾어서 욕을 보이려고 말했다.

제나라에는 사람이 그리도 없소?”

아닙니다. 제나라에도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아니, 사람이 많다고 하면서 사신을 보냈는데 경과 같이 작은 사람밖에 없었나 보군.”

이렇게 말하는 뜻은 안영이 키가 상당히 작다는 것을 비웃으며 한 말이었다. 그러자 안영이 침착한 어조로 영왕에게 말했다.

제나라에는 사신을 선발할 적에 상대국의 상황에 맞게 고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큰 나라에는 큰 사람을 보내고, 작은 나라에는 작은 사람을 보내는 것입니다. 저는 작은 사람 중에서도 가장 작은 사람 축에 끼었기 때문에 이번에 사신으로 오게 된 것이지요.”

안영의 말을 듣고 영왕은 안색이 변했다. 모욕을 주려고 한 말에 스스로 대꾸도 하지 못할 정도의 능멸을 당한 꼴이 되어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때 포졸이 죄인을 끌고 지나가는 장면이 보였다. 그것을 본 영왕이 포졸에게 물었다.

그 죄인은 어느 나라 사람인고?”

, 제나라 사람인데 남의 물건을 훔치다가 잡힌 죄인입니다.”

포졸의 말을 들은 영왕이 다시 안영을 보면서 물었다.

제나라 사람은 원래 도둑질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오?”

앞에서 당한 모욕을 되갚아주려는 듯이 비웃는 표정과 말두로 안영에게 물었다. 그 말을 들은 안영은 여전히 평온한 미소를 짓고서 대답했다.

대왕이시여, 원래 귤이 남쪽 땅의 회남(淮南)에서 자랄 적에는 귤()이라고 했습니다. 이 나무가 북쪽의 회북(淮北)에서 자라게 되면 지목(枳木)이 됩니다. 왜냐하면 그 나무에 달리는 열매는 귤을 닮았지만 작고 못생겨서 탱자라고 부르기 때문에 나무도 탱자나무가 된 것입니다. 두 나무의 잎은 서로 비슷한데도 그 열매의 맛은 다르니 어떻게 된 일인가 하면 같은 나무인데도 심어진 곳의 물과 흙이 다른 까닭입니다. 저 사람도 제나라에서는 도둑질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았을 텐데 초나라와 와서 도둑이 되었으니 초나라의 물과 토양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제나라를 깔보면서 호시탐탐 노라던 영왕이 안영의 기지에 놀라서 크게 사과하고 그 후로는 제나라를 넘보지 않았다.

 

◆ ◆ ◆ ◆ ◆ ◆ ◆ ◆ ◆ ◆

 

우창의 말을 듣고서 진명이 재미있다고 손뼉을 치면서 말했다.

오만불손한 영왕이 납작코가 되었네요. 호호호~!”

진명의 말에 춘매가 웃다가 물었다.

맞아. 호호호~! 그런데 언니, 왜 납작코가 되었다고 하는 거지? 기가 꺾였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은 알겠는데 왜 하필이면 그게 코냔 말이야.”

춘매가 이렇게 묻자, 진명을 대신해서 자원이 말했다.

그야 그 사람의 존재감은 코에 있기 때문이 아니겠어?”

언니, 그건 또 무슨 말이야? 코가 뭐라고.”

아니, 동생은 코가 자기의 대표(代表)라는 것을 몰라?”

몸이나 얼굴이 대표인지는 알겠는데 코가 대표라는 것은 모르겠는데?”

그렇다면 이야기를 들어봐. 사람이 살아있다는 것은 숨을 쉰다는 것이고, 숨을 쉬는 것은 코잖아? 그러니까 코가 다른 기관보다도 자신을 대표하지 않고 누가 대신 하겠어? 더구나 코를 의미하는 비()를 봐도 스스로를 의미하는 자()가 있잖아? 호호호~!”

자원의 말을 듣고서야 춘매도 그 의미를 이해할 수가 있었다.

, 정말이네! 언니의 말을 듣고 보니까 코가 납작해진 것이 무슨 뜻인지를 정확하게 알겠어. 호호호~!”

이렇게 나누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노를 젓고 있던 사공이 우창에게 말을 건넸다.

정말 재미있는 이야기를 잘 들었습니다. 귤의 원산지라고는 알고 있었으나 그것에 또 고사(故事)가 있을 줄은 몰랐지 뭡니까. 이래서 유식한 학자님을 모시면 저절로 소득이 생긴다니까요. 하하~!”

사공의 말에 우창이 미소로 화답했다. 그러자 사공이 문득 생각이 났다는 듯이 말했다.

선생의 해박한 말씀을 듣고 보니 언젠가 일삼아서 외워뒀던 시가 한 수 떠오르는데 들려드려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지요. 경청하겠습니다.”

이렇게 우창이 환영하자 사공은 목을 가다듬느라고 흠흠~’하고는 시를 읊었다.

 

湖山處處好淹留 (호산처처호엄류)

最愛東灣北塢頭 (최애동만북오두)

掩映橘林千點火 (엄영귤림천점화)

泓澄潭水一盆油 (홍징담수일분유)

龍頭畫舸銜明月 (용두화가함명월)

鵲腳紅旗蘸碧流 (작각홍기잠벽류)

為報茶山崔太守 (위보차산최태수)

與君各是一家游 (여군각시일가유)

 

사공은 겉보기에는 배를 부리면서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으로 보였는데 그의 감흥(感興)은 시인(詩人)이나 다를 바가 없다고 느껴졌다. 우창이 감탄하면서 말했다.

멋집니다. 태호의 풍경이 시를 듣기만 해도 또렷하게 되살아나지 싶습니다. 그 멋진 시를 지은 이는 누구입니까?”

우창이 시를 알아듣자 사공도 흥이 나서 말했다.

이 시는 당대(唐代)의 백낙천(白樂天)이라고도 부르는 향산거사(香山居士) 백거이(白居易)가 지어서 최() 호주(湖州)에게 보낸 시라고 전합니다. 당시에 백거이는 소주자사(蘇州刺史)였는데 호주자사(湖州刺史)였던 친구인 최현량(崔玄亮)에게 적어서 보냈다고 하는군요. 호주는 상주(常州)와 더불어 봄이면 차산(茶山)에서 차를 따고 겨루는 투차대회(鬪茶大會)로 유명한 곳이라고 합니다. 시의 제목은 夜泛陽塢入明月灣即事(야범양오입명월만즉사)라고 합니다. 뜻으로는 태호(太湖)의 서산(西山)에 있는 양오에서 배를 타고 명월만으로 들어가면서 본 풍경을 시로 적은 것이라고 합니다.”

사공의 제목에 대한 설명을 들은 춘매가 우창에게 풀이해 달라고 말했다.

스승님, 두 분만 이야기를 나누면 춘매는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바보처럼 웃고만 있어야 하잖아요? 춘매가 바보 노릇만 하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면 스승님의 풀이가 필요하단 말이에요. 호호호~!”

춘매가 시의 내용이 궁금해서 묻자 우창이 춘매를 위해서 풀이하여 시를 읊었다.

 

물과 산 처처에 머물기에 좋은 곳들

그중에도 동만과 북오가 가장 좋으니

저 멀리 귤의 숲은 일천 개의 불을 켠 듯

맑고 깊은 호수는 큰 항아리 기름 같구나

용그림의 큰 배는 밝은 달과 배회하고

까치의 발 같은 붉은 깃발은 푸른 물에 아른아른

차산의 최태수에게 태호 소식 알리나니

그대와 더불어 온 가족이 유람하고 놀고 싶다네

 

우창이 이렇게 시를 풀이해서 읊어주자 비로소 그 뜻에 대해서 이해가 된 춘매가 손뼉을 치면서 말했다. 항상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춘매의 매력이었다.

~! 호호호~! 멋지네요. 그러한 시를 지었다는 백거이도 대단하지만 이러한 멋진 시 한 수를 읊는 사공 선생의 수준도 감탄해요. 호호호~!””

우창이 흐뭇해서 미소를 짓자 이번에는 진명이 말했다.

스승님, 역시 백거이(白居易)가 당대(唐代)의 최고 시인이라더니 명불허전(名不虛傳)이네요. 직접 태호의 풍경을 보면서 들어보니까 실제로 생생하게 느끼는 듯해요. 귤밭에 일천 개의 등불을 켠 듯하다는 멋진 풍경을 보고 싶은데 언제가 될까요?”

진명의 말에 사공이 답했다.

아마도 한 달만 더 있으면 귤을 수확하게 될 것이니 그 때를 기다려서 다시 나들이하시면 수천 개의 등을 켠 듯한 멋진 서산도의 풍경을 접하실 수가 있습니다. 하하~!”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배는 서산도의 부두에 다다랐다. 그러자 진명이 물었다.

백거이가 시에서 말한 명월만(明月灣)이 여기로군요.”

그러자 사공이 말했다.

맞습니다. 여기에 배를 대고 기다릴 테니 서산도의 풍광을 둘러보고 오시기 바랍니다. 특히 호수로 떨어지는 일몰(日沒)의 경관(景觀)이 참 좋습니다. 물론 아침에 떠오르는 일출의 풍경도 좋으나 서산도에서 바라보는 낙조와 일몰의 풍경은 어디에서도 보기 어려운 장관(壯觀)입니다. 해가 지고 나면 호수의 야경이 또 볼만합니다.”

사공의 친절한 설명을 듣고는 모두 섬에 내려서 주변의 풍경과 함께 산에 가득한 귤밭에서 자라고 있는 귤을 보는 것도 진풍경이었다. 천천히 걸으면서 산책하다가 앞을 바라보니 파도가 치고 있는 물가에 차관(茶館)이 보이자 우창이 일행에게 말했다.

여기 멋진 차관(茶館)이 있군. 조용히 앉아서 향기로운 차도 마시면서 풍경을 즐기는 것도 좋겠지?”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제자들도 경치를 볼 수가 있는 자리를 잡고는 우창이 앉기를 기다렸다가 둘러앉자 주인으로 보이는 중년의 여인이 다가와서 말했다.

태호에 나들이하셨군요. 누추한 곳을 찾아주셔서 고마워요. 서산도에서는 청귤차(靑橘茶)가 유명해요. 향이 가장 좋을 때의 어린 귤의 속을 파내고 그 안에 찻잎을 넣어서 가공한 것인데 향긋한 것이 일품이거든요.”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그걸로 부탁합니다.”

잠시 후, 주인이 개완(蓋椀)에 귤을 하나씩 넣고 뜨거운 물을 부어서 나눠주고 끓는 물을 따로 가져다 놓고 말했다.

천천히 마시다가 보면 처음에는 귤의 향과 차의 맛이 어우러지다가 점점 차의 맛이 깊어지는 과정을 즐기실 수가 있어요. 그럼 이야기를 나누세요.”

주인의 음성이 온화해서 나그네를 편안하게 해 주는 것이 좋았다. 서두를 것도 없고, 손님이 오면 오는 대로 안 오면 또 안 오는 대로 유유자적(悠悠自適)하는 것으로 보여서 기품도 느껴졌다. 돈을 벌고자 하는 상인이 대부분이겠지만, 그래도 스스로 삶을 즐기는 상인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풍경이 참 좋습니다.”

우창이 괜히 말을 걸어보고 싶어서 돌아서는 주인에게 한마디 던졌다. 그러자 주인이 우창을 보면서 물었다.

나리께서는 어디서 오셨어요? 소주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고.....”

, 산동(山東)에 살다가 얼마 전에 소주로 이사를 했습니다. 오늘은 날도 좋고 해서 꽃놀이 삼아 태호 구경을 나왔는데 생각보다 풍경이 좋습니다. 시원하게 터진 호수의 드넓은 풍경의 수평선도 흡사 바다를 보는 듯하고 말이지요. 하하하~!”

주인이 우창의 말을 듣고는 일행을 둘러보면서 말했다.

손님들의 분위기로 봐서 벼슬하신 분들은 아닌 것으로 보이는데 무엇을 하시는지 여쭤봐도 실례가 되지 않을까요?”

이렇게 묻자 진명이 미소를 짓고서 말했다.

자연을 공부하는 스승님과 제자들이랍니다.”

? 자연을 공부하다니 그건 무슨 뜻일까요?”

주인은 심심하던 차에 손님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 재미있겠다고 생각했는지 아예 옆의 탁자에 있는 의자를 끌어다 놓고 앉으면서 물었다. 그러자 진명이 다시 말했다.

흔히 사주팔자를 연구한다고도 하죠. 호호호~!”

, 그러셨구나. 운명학을 연구하시는 분이었군요. 어쩐지 분위기가 자유로우면서도 절도가 있어 보였어요. 보통은 술이 거나하게 취해서 희희낙락(喜喜樂樂)하는 손님들이라서 이색적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렇다면 이분이 스승님?”

주인이 우창을 가리키면서 묻자 진명이 자랑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맞아요. 우리의 스승님이시지요.”

진명이 이렇게 말하자, 여인이 잠시 생각하는 듯하다가 입을 다물었다. 그것을 놓칠 진명이 아니었다.

주인께서는 혹 의논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말씀하셔도 괜찮아요. 이렇게 풍광이 아름다운 곳에 살아도 궁금한 것이 있을까 싶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알 수는 없으니까요. 호호호~!”

정말 소인의 심중(心中)을 헤아려 주셔서 고마워요. 모처럼 공부하시다가 나들이를 나오셨는데 귀찮게 여기실까 봐서 말씀을 드리려다가 참았거든요.”

우창은 여인의 음성을 듣고 있는 것이 참 편해서 이야기를 나눠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자 말했다.

괜찮습니다. 유람이 공부이고 공부도 놀이니까 말입니다. 보고 듣는 것도 제자들에게는 공부 아닌 것이 없으니까 말씀하셔도 됩니다. 파도 소리를 들으면서 향기로운 차에 취하다 보니 저절로 흥이 돋습니다. 하하하~!”

우창이 이렇게 말하면서 웃자 주인이 비로소 마음을 가다듬고는 말했다.

어디에서나 사람 사는 것이 다 그렇겠지요. 남편이 병으로 먼저 세상을 떠난지도 20여 년이 되었어요. 다시 새봄이 되어서 세상에는 온통 꽃으로 뒤덮였는데도 제 마음에는 흥이 나질 않으니 이것도 병일까요? 모처럼 나들이를 오셨는데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이 좀 죄송하지만 괜찮다고 하셔서 말을 꺼내 봐요.”

여인의 말을 듣고서 진명이 말했다.

, 고독(孤獨)하시군요. 고독도 병이죠. 세상의 만물은 음양(陰陽)이 있으니 서로 짝을 이뤄야 환희(歡喜)의 노래가 나오는데, 짝이 없이 홀로 있다면 외로울 수밖에 없지요. 다른 목적이 있다면 또 모르겠으나 짝을 이루고자 하는데도 짝이 없다면 그것보다 안타까운 일이 또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언제쯤이나 의지할 낭군(郎君)을 만나게 될 것인지가 궁금하시다는 말씀이지요?”

맞아요. 외로운 아낙의 심중을 헤아려 주시니 고맙습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여인이 생일을 말했다. 그러자 우창이 천세력을 갖고 오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하니 난감했다. 사주를 뽑아서 설명해야 할 텐데 그럴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자원을 바라보자 자원이 미소를 지으면서 품에서 육갑패(六甲牌)를 꺼냈다.

스승님, 혹시 몰라서 챙겨왔는데 오늘 이 아주머니를 만나려고 그랬나 봐요. 호호호~!”

그것을 본 우창이 안도하면서 말했다.

역시, 자원의 용의주도(用意周到)함은 항상 감탄하게 만드는구나. 참으로 다행이로군. 뭔가 참고가 될 말을 해 드릴 수가 없을까 봐서 내심 걱정했는데 말이지. 하하하~!”

자원이 미소를 짓고는 여인의 앞에 육갑패를 펼쳐놓고는 말했다.

아주머니의 고독을 풀어줄 인연이 나타날 것인지를 스승님께서 살펴봐 주실 거에요. 다섯 장의 패를 뽑아서 앞에 놓아 보세요.”

여인은 이런 사주는 처음 본다는 듯이 의아하면서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으로 다섯 장의 패를 뽑아서 앞에 놓았다. 그러자 자원이 순서대로 여인이 간지(干支)를 바르게 볼 수가 있도록 펼쳐놓고는 우창을 바라봤다. 이제 우창의 차례라는 뜻이었다. 우창도 여인이 뽑아놓은 패를 살펴봤다.

 

 

 

 

우창이 일주(日柱)가 기해(己亥)인 패를 가리기면서 고개를 끄덕이고는 여인을 향해서 풀이를 시작했다.

과연, 외로움이 뼛속에 사무쳤습니다. 너무 오랜 세월을 힘들게 살아오셨습니다.”

역시 그것이 팔자였던가 보네요.”

우창의 설명을 듣고서 여인은 자조적(自嘲的)으로 탄식하면서 말했다. 여인이 하는 말에 미소를 지으면서 월간(月干)의 경()을 가리키면서 말을 이었다.

그동안은 그래도 힘든 중이지만 자식을 키우느라고 외롭다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삐 살아오셨는데 이제 저마다 제 갈 길을 찾아가게 되고 보니까 스스로는 무엇을 위해서 살아왔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셨나 봅니다.”

여인은 가슴이 먹먹해지는지 말을 잊고 조용히 우창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것을 본 우창은 이렇게 말하면서 월지(月支)의 오화(午火)를 가리켰다.

이것은 스스로 생업(生業)으로 차관을 운영한다는 의미입니다. ()는 불이 되고 경()은 물통이 되니 찻물이 끓으면 차를 팔아서 먹고 살아갈 밥이 되는 이치라고 하겠습니다.”

우창이 이렇게 설명하자 여인이 말했다.

제가 다행히 심심할 적에 이웃의 선비에게서 육갑(六甲)은 배웠어요. 지금 말씀하시는 것을 들으면서 통변(通辯)이 참으로 신기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런데 기해(己亥)는 흙이 물 위에 있는 형국이니 얼마나 고단한 나날이었는지를 알 수가 있겠어요. 이것은 무슨 사주법인가요? 아직 식견(識見)이 부족하기는 합니다만 처음 봐요.”

여인은 호기심이 많았던지 자신의 운명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잊어버렸다는 듯이 이치를 물었다.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을 가장 좋아하는 우창이었던지라 기뻐하면서 말했다.

과연, 이야기를 나눌 만한 분이십니다. 이것은 사주가 아니고 오주(五柱)입니다. 그리고 육갑패(六甲牌)라고 하는 것인데 이 순간의 조짐을 살펴보는 점술(占術)이기도 합니다. 혹은 맞기도 하고 또 혹은 맞지 않기도 하지만 그래도 생각을 할 만한 꺼리는 되어서 가끔 활용하고 있습니다. 하하하~!”

그러니까 말하자면 주역을 이용해서 육효(六爻)를 풀이하는 것 같은 이치란 말씀이네요. 겨우 두 마디의 말씀만 들었을 뿐인데 혹은 맞기도 하는 것이 아니라 틀림없이 맞는다고 해야 하겠네요. 제 삶이 그렇게 물 위의 흙처럼 항상 땅을 그리워하면서도 이 섬에 갇혀서 살고 있으니까 이보다 더 정확한 점괘가 어디에 또 있겠나 싶어서 감탄하게 되네요.”

그러시다면 다행입니다.”

 

 

우창은 이렇게 말하면서 다시 점괘를 살펴봤다. 무엇인가 희망을 줄만 한 조짐이 있는지를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다른 제자들도 신기한 기해(己亥)를 보면서 오늘은 또 무슨 공부를 하게 될 것인지 기대하면서 우창의 말만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