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6] 제39장. 춘풍(春風)/ 4.꽃놀이

작성일
2023-10-10 06:44
조회
1057

[476] 39. 춘풍(春風)

 

4. 꽃놀이

========================

 

우창이 조반(朝飯)을 먹고는 자기도 모르게 담장 밖의 마차 소리가 들리기를 기다렸다. 처음에는 기다리고 있다는 것조차도 생각지 못하다가 문득 그것을 느끼고는 혼자 실소(失笑)를 금할 수가 없었다. 막상 혼인할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인지 감정이 사뭇 다르다는 것을 느꼈는데 이것은 진명에게서 듣게 된 전생의 인연도 한몫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얼마 되지 않아 아침을 먹고 온 진명이 차를 만들면서 말했다.

스승님, 지금 마음은 어떠세요? 설레지 않아요?”

설레기는 뭘. 괜한 상상은 말고 차나 잘 만들어.”

우창이 쑥스러워하면서도 즐거워하는 표정을 보고 진명이 차를 만들면서 말했다.

스승님, 오늘 새벽에 일찍 잠이 깨서 부부(夫婦)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봤어요. 서로 남남으로 태어나서 삶의 절반을 함께 한다는 것은 작은 인연이 아니잖아요? 이런 기회에 스승님께 여쭤보고 싶어요. 물론 스승님께서 아직은 부부에 대해서 경험이 없다고 하더라도 진명은 마땅히 알아볼 곳이 없잖아요. 호호호~!”

그 인연에 대해서야 나보다도 숙명통(宿命通)을 얻은 진명이 더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모두 전생의 선연(善緣)이나 악연(惡緣)에 얽히고설킨 가운데 이번 생에 타고난 팔자의 인연과 함께 얽혀서 지지거나 볶으면서 혹은 서로 등을 긁어주면서 그렇게 살아가는 것인 줄이야 누군들 모르겠나? 하하~!”

그러니까 말이에요. 저마다 살아가는 모습을 옆에서나마 바라보게 되면 그야말로 천태만상(千態萬象)이잖아요. 그러니 스승님께서도 제각각 운명에 따라서 만나게 되는 것이 부부의 인연이다.’라고 하신다면 달리 드릴 말씀은 없어요. 그렇지만 만약에 부부의 의미를 누군가 진명에게 묻는다면 그 의미조차도 제각각이라고 할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아침을 먹으면서 들었지 뭐예요. 호호호~!”

진명이 따라주는 녹차의 청향(淸香)이 서재를 가득 채웠다. 뜨거운 차를 후후 불어서 마시며 우창도 잠시 생각해 보다가 문득 예전에 태산에서 들었던 생각이 났다. 그게 누구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으나 그가 들려준 이야기만 기억에 남아 있었다. 우창은 지나간 사람에 대해서는 기억하지 못하는 고질병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 들었던 이야기는 또 희한하게 기억하는 묘한 면이 있는 것도 신기하다면 신기했다.

진명이 그렇게 물으니 예전에 누군가에게서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나는군. 당시에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과연 그것이 부부라고 할 수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었지.”

우창이 차를 마시면서 이렇게 말하는데 염재가 밖에서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스승님, 염재입니다.”

진명이 문을 열어주고는 들어와서 차탁에 앉은 염재에게도 차를 한 잔 따라주면서 말했다.

염재도 마침 잘 왔어. 스승님께 부부의 연이란 무엇인지를 청해서 들으려던 참이었어. 염재도 같이 들어봐.”

, 그러셨습니까? 알고 보면 두 발이 효자입니다. 발이 부지런하면 또 귀한 가르침을 얻을 수가 있으니 말이지요. 경청하겠습니다.”

염재의 말에 우창이 미소를 짓고는 말했다.

태산에서 수학(修學)할 적에 누군가에게서 들었던 이야기네. 당시에는 많은 스승과 도반들이 대화를 많이 나누다 보니 흡사 지식의 보물창고(寶物倉庫)와 같다고 생각했었지. 문득 떠오르는 이야기인데 부부의 의미에 대해서 누군가 물었지. 그러자 여기에 대해서 누군가 답을 하는 말이었어.”

염재가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세를 고쳐 앉았다. 원래도 반듯한 사람이었지만 이야기가 흘러버리면 안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우창의 말이 이어졌다.

그가 공부한답시고 강호를 유람하다가 무척 오랜만에 고향에 갔더니 마당의 한쪽에는 땔나무가 가득 쌓여있고 모친께서 반겨 맞더라지. 그런데 부친이 보이지 않아서 어디 가셨느냐고 물었다네.”

설마......?”

진명이 혹 세상을 떠난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어서 이렇게 말하자, 우창이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말을 이었다.

모친의 말씀에 부친은 지난해에 세상을 떠났다고 하시는 거야. 그 말을 듣고서 자식으로 태어나서 부친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죄송스러움으로 차마 모친을 마주 바라볼 수가 없어서 시선을 밖으로 향하자 땔나무가 보여서 물었지. ‘어머니 저 땔나무는 어디에서 저렇게나 많이 준비하셨어요?’라고 말이지.”

염재와 진명이 우창의 이야기에 열중했다.

그러자 모친께서 말씀하셨다는 거야. ‘네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두 달 전까지 계속해서 산으로 가서는 땔나무를 해다가는 자꾸 쌓더구나. 그렇게 쓰러지기 전까지 땀을 뻘뻘 흘리면서 나무를 해다가 쌓아놓고는 세상을 떠났지라고 하는 말을 들으면서 아들은 더욱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네.”

우창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이 진명이 물었다.

그건 왜일까요?”

자신이 세상을 떠날 날이 다가오는데 늙은 아내가 추운 겨울에 땔 나무가 없어서 냉방에서 오들오들 떨게 될까 봐서 마지막 죽을힘까지 다 쏟아서 자신이 할 수가 있는 것을 하고서야 세상을 떠났다는 것을 알았던 거지.”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진명과 염재는 숙연(肅然)해졌다.

모친께서 이렇게 말하면서 땔나무를 바라보고 계시는 것을 보면서 아들이 물었지. ‘나무가 저렇게 많은데 왜 손을 대지 않으셨습니까?’라고 물었더니 모친이 말씀하시더라네. ‘네 아버지를 보는 것만 같아서 헐어서 땔 수가 없더구나. 그래서 바라보고만 있단다. 그것이 또 이렇게 마음이 든든하구나.’라고 하시는 소리를 들으면서 부부의 인연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더군.”

우창이 말을 마치자 진명은 이야기에 감동했는지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한동안 말이 없다가 우창을 보면서 말했다.

그랬군요. 스승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진명도 들었던 이야기가 떠오르네요. 어느 할아버지 이야기였어요. 늙고 병든 할머니가 이불이며 옷들을 모두 빨아서 차곡차곡 쌓아놓고는 세상을 떠나셨다고 하면서 흐느끼는 것을 봤어요. 그 할머니도 자신이 떠나고 없으면 할아버지 혼자서 꾀죄죄한 옷을 입고 다니면서 남들에게 무시당하지나 않을까 싶어서 자신이 할 수가 있는 마지막의 일을 하셨던 것이었네요. 그 이야기를 들었을 적에는 자신이 없어도 다 살아갈 텐데 왜 힘들여서 그렇게 했는지를 이해하지 못했는데 오늘 스승님의 말씀을 듣고서야 그 의미를 알 것 같네요.”

진명이 이렇게 말하자 우창도 그 말의 뜻을 이해할 수가 있을 것 같아서 말했다.

그렇군. 부부로 산다는 것에 그런 의미가 있었구나. 젊어서는 이런저런 불평과 불만이 생기기도 하고 상대를 무시하기도 한다지만 이런 부부들처럼 그렇게 마지막까지도 옆을 지켜주는 배우자에 대해서 갖게 되는 그 마음이야말로 참으로 부부라고 하겠군.”

이야기를 듣고 있던 염재도 한마디 했다.

스승님과 진명 누나의 말씀을 듣고 보니까 아직은 경험하지 못한 이야기이지만 감동입니다. 부부의 의미에 대해서 이보다 더 깊은 이야기를 듣기도 어렵지 싶습니다. 염재도 후에 나이가 들어서 이와 같은 인연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서로 미워하면서 상대가 먼저 죽기만을 기다리는 부부들이 배우자에 대해서 불만을 품고서 송사(訟事)까지 벌이는 것을 관청에서 일을 보게 되니 많이 접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관청에는 항상 다툼이 벌어진 다음에나 찾아오는 까닭에 그와 같은 가슴을 울리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습니다.”

염재가 이렇게 말하자 진명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맞아, 관청에서는 미담(美談)보다는 송사(訟事)가 항상 끊이지 않을 테니까 이런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듣기도 쉽지 않겠네. 호호호~!”

그래서 오늘도 삶의 교훈을 배웠습니다. 고맙습니다. 다음 공부를 준비하기 위해서 가보고자 합니다. 누나 차 잘 마셨습니다.”

우창에게 합장하고 염재가 나가자 진명이 식은 찻물을 다시 끓이면서 물었다.

스승님, 혼인식(婚姻式)은 어디에서 하죠? 오행원에서 하나요? 아니면 자사(刺史)의 위엄도 있으니 소주(蘇州)의 관부(官府)에서 하는 것도 재미있겠는데요? 스승님 생각은 어떠세요?”

진명은 궁금한 것도 많았다. 그리고 말하는 투로 봐서 진명의 마음도 달뜨는 것처럼 보였다. 우창도 그런 것까지는 생각해 보지 않았던 터라 오히려 진명의 의견이 궁금해서 물었다.

진명의 생각은 어떻게 하면 좋겠나? 관부는 아무래도 번거롭기만 할 것으로 생각되어서 그냥 오행원에서 제자들과 국수를 나눠 먹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우창의 말에 진명도 공감했다. 다만 이러한 것은 우창의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기에 최은주가 오면 의논해 봐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진명이 차를 만들어서 한 잔씩 나누는데 기다리던 마차의 방울 소리가 울렸다. 그 소리에 자원과 춘매도 우창의 서재로 모였다. 다들 궁금하기는 했던 모양이다. 잠시 후 최은주와 자사(刺史)가 서재로 들어오자 모두 일어나서 맞이했다.

자사 형님을 오랜만에 뵙습니다. 평안하셨지요?”

아무렴 여부가 있나. 아우님도 무척이나 좋아 보이니 나도 보기 좋군. 허허허~!”

모두 인사를 나누고는 자리에 앉았다. 진명이 차를 준비하는 동안에 일상의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다가 차를 따르자 자사가 말을 꺼냈다.

이제 당면(當面)한 문제를 의논해야 하지 않겠나? 그래서 말인데 혼사는 사적(私的)인 행사이므로 오행원에서 하는 것이 아무래도 좋을 듯하네. 여기에 대해서는 은주도 동의했으니 편하게 의논해 보도록 하세.”

자사(刺史)는 사리(事理)가 분명한 인물이었다. 공사(公私)를 구분하는 처사(處事)가 우창도 맘에 들어서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당연합니다. 가능하면 조촐하게 했으면 합니다. 특별히 남들에게 보여 줄 것도 없으니 말입니다. 다만 형님의 상황이 어떤지를 여쭤볼 겨를이 없었기 때문에 섣부르게 결론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먼저 말씀해 주시니 얼마나 편한지 모르겠습니다.”

이건 내 뜻이 아니라 은주의 뜻이라네. 요란스러운 것을 싫어하니 내 맘대로 할 수도 없는 일이지 않은가. 허허허~!”

은주의 뜻이라는 말에 모두 최은주를 바라봤다. 그러자 조용하고도 확신에 찬 음성으로 말했다.

백부님의 고마운 마음만 받으면 되죠, 만약에 관청의 일을 보지 않으신다면 은주도 백부의 뜻에 맡기고 싶어요. 다만 백부님의 지위(地位)로 인해서 마음에도 없는 헛웃음을 웃으면서 사심(私心)이 가득한 선물들이 오가는 것을 원하지 않을 따름이에요. 그로 인해서 나중에 일을 처리하는데 사사로움이 개입하게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폐를 끼칠 따름이니까요.”

최은주가 나직하면서도 단호하게 말하자 모두 공감했다. 가까운 사람이 공직(公職)에 있으면 몸가짐이나 마음가짐에서 항상 주의하게 된다는 것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 잘 알았다. 은주의 마음과 우창의 생각이 같으니 그렇게 알고 나는 또 가봐야 하겠군. 청명절에 잔치를 치르도록 준비해 보기로 하지. 허허허~!”

이렇게 말한 최 자사는 관부로 돌아가고 나자 춘매가 먼저 말했다.

앞으로 사모(師母)가 될 분이니 지금부터 사모로 부르고 싶어요. 저는 오행원의 식구들을 먹여 살리고 있는 춘매에요. 처음 뵙지만 마치 오래전부터 뵈었던 것처럼 친밀(親密)한 감정이 생기는 것은 또 무슨 까닭인지 모르겠어요. 인연의 이치려니 싶어요. 정말 반갑고 고마워요. 호호~!”

춘매가 이렇게 말하자 최은주가 춘매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그간 스승님을 보살피느라고 수고가 많으셨네요.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춘매 님의 모습을 보니 언니를 만난듯해요. 은주도 진작에 스승님을 뵙지 못했던 것이 안타까워요. 호호호~!”

최은주는 오행원 가족들이 따뜻한 마음으로 대하자 조심스러웠던 것이 한결 느긋해져서는 웃으며 담소(談笑)했다. 우창도 그러한 모습이 훈훈해서 좋았다. 궁금한 것이 많은 춘매가 먼저 물었다.

사모님의 개인(個人)에 대해서 좀 여쭤봐도 될까요? 그냥 궁금한 것이 많은 춘매거든요. 괜찮으시면 가족관계는 어떻게 되는지 알고 싶어요. 호호~!”

그럼요. 당연히 말씀드려야죠. 모친과 남동생은 서안(西安)에 있어요. 은주는 넓은 세상을 유람하고 다니는 것을 즐기다 보니까 새로운 세상을 구경하는 것이 좋아서 백부님께 말직(末職)이라도 하나 달라고 해서 이렇게 백부님의 임지(任地)를 따라다니고 있어요. 그런데 이제 인연을 만난 것이 아무래도 정착할 때가 되었나보다 싶었죠. 그러니까 아무것도 신경을 쓰지 않으셔도 되겠어요. 다만 백부의 말씀대로만 하면 되거든요. 집을 떠나면서도 백부의 말씀을 듣는 것이 어머니와 조건이었으니까요. 호호호~!”

최은주의 말을 듣고서 모두 마음이 편해졌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었다. 아직도 밖의 벚나무에서는 꽃잎이 바람에 흩날리면서 허공을 맴돌고 있었다. 그것을 내다보던 춘매가 말했다.

오늘은 날씨도 화창한데 소풍(消風)을 나가면 어떨까요? 함께 뱃놀이가면 좋겠는데 말이에요. 진즉부터 얼음이 녹으면 태호(太湖)를 가보고 싶었거든요. 호호호~!”

꽃바람에 춘매의 마음이 달뜨는 모양을 보면서 우창도 그렇게 하고 싶었다. 말만 들었던 태호에서 봄 풍경을 즐기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춘매가 말을 꺼내자 모두가 환영이었다. 즉시로 염재를 불러서 통보하자 신속하게 준비하고는 마차를 대령하자 모두 마차에 올라서 태호로 향했다. 일행은 우창과 자원, 진명과 춘매의 넷에 최은주와 염재까지 여섯 사람이었다. 염재가 미리 알아 둔 길을 한 시진 남짓 달려서 흡사 바다처럼 수평선이 아득한 태호에 도착할 수가 있었다. 태호를 바라보던 자원이 우창에게 말했다.

싸부, 잠시 놀다 가기에는 풍경이 너무 아까워요. 멋진 꽃들과 풍경을 봐서 오늘은 여기에서 하루 묵으면서 놀다가 가요.”

의견을 묻는 것이 아니라 이미 마음으로 작정을 했다는 듯이 말하는 것을 들으면서 우창도 좋았다. 그렇지만 최은주의 입장이 어떨지 몰라서 바라보자 그녀도 반기면서 말했다.

정말 자주 와보기 어려운 곳이에요. 항상 분주한 백부님을 옆에서 돕는답시고 은근히 바쁘거든요. 염재 선생이 잠시 관아에 들려서 전해주시면 백부님도 걱정하지 않을 거예요.”

그러자 부탁받은 염재가 말했다.

그 점은 조금도 걱정하지 마시고 멋진 풍광을 보면서 유람 후에 내일 사시(巳時)에 모시러 오겠습니다. 가는 길에 관아에 들려서 말씀을 전해드리도록 하지요. 염재도 같이 옆에서 모셔야 하는데 진명 누나가 있으니 알아서 하시리라고 믿고 학당의 일정대로 고급반의 제자들을 지도하는 일정도 있으므로 먼저 갔다가 다시 오겠습니다. 숙소는 가까운 곳으로 알아보겠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염재가 깨끗해 보이는 빈관(賓館)으로 향했다. 이름은 오월루(吳越樓)라고 되어 있는 규모가 매우 크고 웅장한 빈관이었다. 염재가 특별히 잘 부탁을 해 놓고는 인사를 하고 먼저 돌아갔다.

나머지의 다섯 일행은 우선 점심을 먹기로 하고 숙소에서 멀지 않은 찬청(餐廳)으로 향했다. 커다란 식당에는 이미 적지 않은 사람들이 요리를 먹으면서 즐거운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자리를 잡고 앉자 점원이 다가와서 말했다.

무엇을 드시겠습니까요?”

그러자 진명이 물었다.

이곳에서 맛있는 요리는 무엇이 있나요?”

낭자께서는 참으로 현명하십니다. 처음으로 태호에 오신 것이라면 당연히 태호삼백(太湖(三白)’을 추천해 드립니다요.”

삼백이라면....?”

, 삼백이란 태호에서 잡은 하얀색의 큰 백어(白魚)와 태호에서만 맛볼 수 있는 흰 새우인 백하(白蝦)와 작고 하얀 백은(白銀)이 있습니다. 모두 호수에서 자라고 있는 별미들이지요. 이것으로 요리해 올리겠습니다요~!”

점원이 이렇게 말하고는 주방으로 사라지자 또 다른 점원이 향기로운 오룡차(烏龍茶)를 가져와서 따라주고는 가운데에 끓는 화로에 물을 얹어놓고 갔다. 그러자 춘매가 일일이 찻잔에 차를 채워주고는 말했다.

살다가 보니까 이런 날도 있어요. 호호호~!”

흥에 겨워하는 춘매의 모습을 보니 이미 얼굴에 꽃이 피었다. 즐거움이 가득한 모습으로 차를 따르는 것을 보면서 우창도 기뻤다. 그래도 행여 최은주가 어색해하지나 않을까 싶어서 자주 눈길을 주었다. 그러자 자원이 한마디 했다.

싸부, 그렇게 신경을 쓰지 않으셔도 다 잘하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그냥 저희 제자들에게 하시듯이 해도 될 테니 너무 마음 쓰지 말고 춘매나 진명에게 하듯이 하세요. 호호호~!”

이렇게 우창의 마음을 훤하게 들여본 것처럼 자원이 말하면서 재미있다는 듯이 웃자 모두 따라 웃으면서 최은주를 바라봤다. 그러자 최은주도 한마디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정말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스승님과 함께 나들이하게 된 것은 물론이고, 이렇게 자매나 다름이 없는 자원 언니, 진명 언니, 춘매님까지 동행해서 너무나 유쾌해요. 자원 언니의 말씀이 맞아요. 스승님은 은주도 새로 맞이한 제자로 여겨주세요. 함께 하는 것은 또 그것대로 인연이지만 오늘은 언니들과 동생이 서로 어우러져서 스승님과 여행을 나온 것으로 생각하고 싶어요. 그러니까 스승님의 마음도 즐거우시기 바래요. 호호~!”

최은주가 이렇게 말하자 온갖 걱정이 많았던 우창도 마음이 편안해졌다. 제자로 여긴다는 것으로 생각하고 보니까 이미 오래전부터 그래왔었던 것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알았네. 실로 자원의 말마따나 좀 불편했던 것이 사실인데 제자로 여기라는 말에서 모든 근심이 사라졌군. 그렇다면 양껏 먹고 놀면서 이 봄을 만끽(滿喫)하지. 하하하~!”

이내 음식들이 차례로 나왔고 일행은 모두 놀러 나온 기분으로 맛있는 점심을 즐겼다. 후식(後食)을 먹으면서 진명이 우창에게 물었다.

스승님, 오늘의 장면을 오행생극(五行生剋)으로 묻는다면 뭐라고 말해야 할까요?”

소화제 삼아서 묻는 것을 듣자 우창은 춘매를 봤다. 어디 답을 해 보겠느냐는 뜻이었다. 우창의 눈길을 받은 춘매가 말했다.

춘매에게 오늘은 목생화(木生火)에요. 봄바람에 마음속에는 꽃이 만발했거든요. 호호호~!”

그러자 이번에는 진명에게로 우창의 눈길이 향했다. 진명이 꺼낸 말이니 어디 한마디 해 보라는 뜻이었다. 그러자 진명도 말했다.

진명에게 느낀 지금의 심경은 목생목(木生木)이에요. 살랑이는 봄바람이 불어서 우리 다섯 사람의 마음이 바람을 타고 태호까지 왔으니까요. 호호~!”

진명이 이렇게 말하자 이번에는 자원도 한마디 했다.

자원에게는 지금의 심경이 수생화(水生火)라고 하겠어요. 태호의 물을 보니 마음에 수화(水花)가 가득 피었거든요. 은주의 마음은 어떨까?”

자원의 물음에 최은주도 웃으며 화답(和答)했다.

은주의 지금 순간은 사제동락(師弟同樂)이에요. 아직은 오행의 이치를 다 모르니 이렇게 얼버무리는 것을 헤아려 주세요. 호호호~!”

그 말을 듣고서 진명이 웃으며 말했다.

과연 은주의 임기응변(臨機應變)이 우리 사모(師母)의 자격이 있네. 호호호~!”

이번에는 진명이 우창에게 물었다.

스승님께서도 한말씀 하셔야죠.”

우창이 찻잔을 들고서 말했다.

오늘만 같기를~!”

그러자 모두 한 소리로 말했다.

오행원 만세~! 호호호~!”

같은 마음으로 한 곳을 향해서 동행하고 있는 도반들의 마음이라서 서로 통하는 것이야 당연하게 느끼면서도 고맙게 생각했다. 그야말로 사욕(私慾)이 없이 순수한 마음들이 모여서 엮어가는 오행원이기에 이렇게 한마음이 되어서 즐길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야기하는 중에 진명이 잠시 나갔다 오더니 말했다.

스승님, 우리끼리 타고 놀이할 배를 한 척 빌렸어요. 뱃놀이하러 가요.”

진명은 매사에 신속하고 처리도 깔끔했다. 일행이 부두(埠頭)로 나가자 화려하게 치장한 배에서 건장한 중년의 남자가 반겨 맞았다.

안녕하십니까. 어서 오십시오. 귀하신 분들을 손님으로 모시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소생은 조사공(趙沙工)’입니다. 그렇게 불러주시면 됩니다. 언제든 말씀해 주시면 최대한으로 편의를 봐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우리 배는 출항합니다~!”

조사공의 소개를 듣고서 춘매가 자원에게 물었다.

언니, 사공은 뭐지? 무슨 뜻인지 처음 들었어.”

그러자 자원이 웃으며 답했다.

, 사공은 배를 부리는 뱃사공을 말해, 선원(船員)이라고 하면 큰 배를 타고 고기를 잡는 경우를 말하기도 하지만 사공은 이렇게 나룻배를 부리는 사람을 말하기도 하는 거야. 호호호~!”

언니는 그런 것을 어떻게 잘 알아?”

, 세상을 누비다가 보면 쓸모없는 것도 배우지만 또 그것이 언젠가는 요긴하게 쓰이기도 하잖아. 그래서 견문박람(見聞博覽)이라고 하잖아. 알고 나면 아무런 쓸모도 없는 하찮은 것도 정작 모르면 답답하니까 자꾸 하나씩 지식의 쪼가리를 주워 모으다 보면 그 중에는 사공도 들어있는 거지 뭐. 호호호~!”

 

 

이렇게 말을 하는 사이에 배는 기분 좋게 흔들거리면서 앞으로 나갔다. 모두 잠시 수변(水邊)에 흐드러진 벚꽃이 물 위에 반영(反映)으로 어우러진 풍경에 취해서 말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