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4] 제39장. 춘풍(春風)/ 2.부처인연숙세래(夫妻因緣宿世來)

작성일
2023-09-30 0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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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4] 39. 춘풍(春風)

 

2. 부처인연숙세래(夫妻因緣宿世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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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이 지난 새벽에 잠이 깬 우창이 문득 적천수(滴天髓)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부처인연숙세래(夫妻因緣宿世來)라고 하는 대목이었다.

부부의 인연은 전생에 맺어진 것

과연 그런 것인지를 그동안은 실감하지 못했다. 그냥 그러겠거니 했을 따름이었다. 그런데 최은주를 만난 다음에 문득 생각해 보니 과연 일리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소름이 쫙~ 끼쳤다. 그것이 이것을 두고 말하는 것이겠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때 자원이 진명과 같이 차를 갖고 들어왔다.

스승님의 서재에 불이 켜져 있어서 기침(起寢)하신 줄 알았어요. 오늘 새벽에는 목에 좋다는 길경(桔梗)을 다렸어요. 어제저녁에 강의하시는데 목이 조금 불편하신 듯했거든요. 따끈하게 드세요.”

진명이 탁자에 차를 내려놓으면서 말했다.

고맙네. 하하~!”

자원이 우창을 보면서 미소를 짓고는 물었다.

실은 싸부께서 최은주를 알고 난 후로 어떤 생각을 하시는지 궁금해서 진명과 같이 들렸어요. 쑥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항상 매사(每事)를 공부와 연관을 지어서 생각하고 말씀하시는 스승님이니 뭘 물어도 답을 해주시리라고 여겨서 말이에요. 호호호~!”

, 그랬구나. 그야 당연하지. 무엇이든 물어봐. 그런데 왜 다른 날과 다르게 긴장이 되지?”

우창의 말에 진명이 웃으며 말했다.

스승님께서 긴장하신다는 말이에요? 참 기이한 일이네요. 호호호~!”

진명에게 미소를 지은 자원이 물었다.

싸부, 최은주의 인연이 아무리 생각해도 신기해서 궁금했어요. 그렇게 갑작스럽게 마음을 정하신 까닭은 용모(容貌)에 반하셨던 건가요?”

그건 아니지, 용모로 논한다면 유하(遊霞)에 미치지 못하니 말이지.”

그래서 참으로 기이하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심성(心性)이 맘에 드셨나요?”

그야 시간이 흘러야 알게 될 것이지만 심성이 곱기로 든다면 춘매만 하겠나 싶군.”

우창이 느낀 그대로를 솔직하게 말하자 자원이 다시 물었다.

그래서 자원도 신기하다고 생각되는 거예요. 용모가 특별히 빼어난 것도 아니고, 심성을 살펴볼 정도로 시간을 보낸 것도 아닌데 어떻게 된 일일까 싶어서 말이에요. 혹 그녀의 배경이 맘에 끌리신 것은 아니겠죠?”

배경이라니?”

아니, 그렇잖아요. 그녀의 백부(伯父)가 소주자사에요. 이것도 대단히 매력적인 조건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느냔 말이죠.”

자원이 참으로 궁금했구나. 그런 말까지도 하는 것을 보니 말이지. 여태까지 함께하면서 나를 몰라서 그렇게 묻는 것은 아닐 테니 말이네. 하하하~!”

그러니깐요. 아무리 생각해 봐도 특별하다고 할만한 것이 없는데도 한눈에 반해 버릴 수가 있느냔 말이에요. 자원이나 진명은 그것이 궁금해서 둘이 이야기를 나누다가 직접 여쭤보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잖아요. 호호호~!”

묻는 마음은 이해하지 못할 바가 없으나 나도 답을 하기가 무척 어렵군.”

아니, 그렇다고 해서 궁합이 썩 좋다고 하기도 어렵잖아요?”

궁합이야 무토(戊土)가 을목(乙木)을 만났으니 잘 봐야 중급(中級)이지 않은가? 그러니 궁합을 논한다면 다른 사람이 물어도 권하지 못한다고 해야 할 인연이라고밖에 또 할 말이 있겠나. 하하하~!”

우창의 말에 다시 곰곰 생각하던 자원이 또 물었다.

당연히 부모의 재물이 많은 것을 생각하셨을 리도 없잖아요?”

그랬나? 떠돌아다니면서 항상 궁핍해서 더 견디지 못하고? 하하하~!”

알아요. 이유를 찾다가 보니 그랬을 리는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누군가에게는 그것도 이유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해 본 거죠. , 그렇다면 혹 욕정(欲情)이 일어났던 것일까요? 말을 해 놓고도 부끄럽긴 한데 이것도 이유가 될 수는 있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에요. 싸부의 나이도 불혹(不惑)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해봐야죠. 호호~!”

자원의 질문에 우창도 얼른 답을 할 수가 없었다. 심층(深層)에서는 어쩌면 그러한 본능(本能)이 꿈틀대고 있었을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러자 자원이 다시 말했다.

그것도 아니라고 봐요. 야밤에 홍촉(紅燭)아래서 옷을 벗은 여인을 만난 것도 아니겠고, 처음 만난 여인을 바라보면서 정욕(情慾)을 느껴서 가슴이 뛰었다면 언어도단(言語道斷)이잖아요? 그러니 그 질문은 취소할게요. 호호호~!”

자원의 말에 우창이 웃으며 말했다.

그것참 그래 준다니 매우 다행이로군. 난 또 자원의 말을 듣고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면서 기억을 더듬고 있었는데 말이지. 하하~!”

우창의 말을 들으며 자원이 또 다른 이유를 찾느라고 조용해졌다. 그러자 진명이 웃으며 말했다.

자원도 참 답답하네~ 월하노인이 발목을 묶었다잖아. 호호호~!”

이렇게 말하는 진명을 보면서 자원이 말했다.

아니, 그건 운명이고 난 학문(學問)을 궁리하는 것이라니까. 호호호~!”

세상의 모든 것이 학문으로 풀리진 않는 것인가 봐. 이런 경우처럼 갑자기 태풍이 불어오듯이 자신에게 변화의 소용돌이가 일어나기도 하니까 말이야. 생각해 보면 진명도 처음에 스승님을 만났을 적에 감정이 복받치는 것을 경험했는데 그것을 설명하라고 한다면 한마디도 할 수가 없었을 거야. 그래서 말로는 설명할 수가 없고, 생각으로도 사유할 수가 없는 인연법(因緣法)이 존재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던 거야. 자원은 스승님을 처음 만났을 적에 어땠어?”

진명이 이렇게 묻자, 자원도 노산에서 처음 우창을 만났을 때를 떠올려 봤다. 시간은 많이 흘렀으나 그 기억은 또렷하게 떠올랐다.

스승님을 처음 만났을 적에 느낌은.... 오랜만에 만난 오라버니인 듯했어. 그래서 뭐든 치대고 귀찮게 해도 다 받아주고 무슨 말을 해도 다 들어줄 것 같은 감정이었어. 그러고 보니 가슴이 떨렸던 기억은 없었네. 그래서 부부인연은 아니었던 건가?”

맞아, 오래도록 함께한다고 해서 부부인연이 되는 것은 아니야. 말로는 설명할 수가 없는 어떤 보이지 않는 끈이 있는 것이 분명해. 호호호~!”

자원이 추론(推論)하는 것을 포기하자, 우창이 말했다.

그래서 새벽에 잠이 깨서 문득 경도(京圖) 선생의 말이 떠올랐던 거야.”

, 맞아요. 적천수(滴天髓)에도 부처인연(夫妻因緣)에 대한 것이 나오잖아요?”

자원도 경도 선생의 이름이 나오자 문득 생각이 났다는 듯이 물었다. 진명은 무슨 뜻인지 몰라서 우창을 바라봤다. 그제야 우창이 생각했던 구절을 말했다.

그래, 부처인연숙세래(夫妻因緣宿世來)라고 했지. 책을 읽으면서도 으레 하는 말이겠거니 했는데 이렇게 되고 보니까 이 속에는 내가 깨닫지 못했던 또 다른 뜻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었던 것이라네.”

우창의 말을 듣고는 진명도 한마디 했다.

그런 말이 있다면 그것은 팔자(八字)로 설명할 수가 없는 인연의 고리라는 뜻이네요. 팔자는 현세(現世)니까요. 현세의 팔자로 전세(前世)의 일을 추론(推論)할 수는 있으나 확증(確證)할 수는 없지 않겠어요? 정말 의미심장(意味深長)하네요. 놀라워요.”

진명이 이해가 된다는 듯이 말하자 우창이 이어서 설명했다.

어찌 부처(夫妻)의 인연뿐이겠나? 부모(父母)와 형제자매(兄弟姉妹)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다만 자녀(子女)의 인연은 어떨지 모르겠군. 그렇게 놓고 본다면 경도 선생이 특별히 부부(夫婦)의 인연에 대해서만 언급한 것은 무슨 까닭일까?”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자원이 생각나는 대로 말했다.

싸부의 말씀을 듣고서 생각해 보니까 혈연(血緣)과 인연(因緣)의 차이가 아니었을까 싶어요. 서로 남남으로 자라나서 만나는 것조차 숙세에 인연이 있어서 만나는 것이니 하물며 부모와 형제는 혈연이기에 숙세(宿世)의 인연이 당연하다는 뜻이라고 보면 어떨까 싶어요.”

오호~! 그건 일리가 있군. 그것도 그렇지만 불타(佛陀)의 가르침을 생각해 보면 모든 인연이 전생으로부터 오는 것이라고 하는 것으로 봐서 부부의 인연은 당연하다는 의미로 생각한 것일 수도 있겠네. 경도 스승님도 그 점에 대해서 생각한 것일 테니까 말이지.”

맞아요. 그렇게 보는 것이 옳겠어요. 그렇다면 싸부는 전생의 인연으로 최은주를 만나게 되셨다는 것이네요. 두 사람의 전생 인연은 또 어떠했을지가 궁금해요. 이건 누구에게 물어봐야 할까요?”

자원은 진명이 숙명통을 했다는 것에 대해서 자세히 들어보지 않아서 알지 못하는 듯했다. 그래서 우창이 진명에게 물었다.

진명의 영안(靈眼)으로 살펴봤지? 어떤 인연인지 살펴본 것이 있으면 말을 해 줘도 좋겠는데. 자원의 궁금한 것도 해소할 겸 말이지. 하하하~!”

우창이 이렇게 말하면서 진명을 보자 자원도 처음 듣는 말에 깜짝 놀라서 진명에게 말했다.

아니, 진명에게 그런 능력이 있다는 말은 금시초문이네. 어떻게 그런 놀라운 신통력을 얻게 된 거지?”

그게 무슨 자랑이라고 자원에게 말을 하겠어. 그리고 그러한 것을 공공연하게 떠벌이면 얼마나 귀찮겠어? 그래서 말하지 않은 것이니까 앞으로도 모르는 것으로 해 줘. 호호호~!”

, 그렇기도 하겠네. 알았어. 그건 비밀로 할 테니까 싸부와 최은주의 인연에 대해서나 우리에게 이야기 해줘. 난 지금 그게 가장 궁금하니까 말이야. 호호~!”

진명은 자원과 함께 이렇게 웃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최은주와 스승님의 인연은 구명지은(救命之恩)이에요.”

진명의 말에 자원이 다시 물었다.

구명지은이라면 누군가 목숨을 구해 준 인연이란 말이잖아? 정말 엄청나게 큰 빚을 졌구나. 그게 싸부야, 아니면 최 낭자야?”

, 문득 살펴봤을 적에 펼쳐진 풍경은 전쟁 중인 상황이 보여요. 할아버지가 혼자 사는 집에 심하게 중상(中傷)을 입은 장수(將帥)가 뛰어 들어오는 장면이에요. 부엌으로 뛰어 들어온 장수가 지쳐서 쓰러지자 할아버지가 이불과 같은 것으로 뒤집어씌워 줬어요. 잠시 후에 또 다른 복장을 한 장수와 군졸들이 뛰어 들어와서 숨겨준 장수를 찾고 있어요. 그러자 노인이 뒷문을 가리켜요. 달려왔던 한 무리의 사람들은 노인이 가리키는 곳으로 부리나케 뛰어가요. 얼른 잡아야 한다는 듯이 말이에요. 그렇게 한참이 지나자 밖이 조용해졌고 그제야 노인은 장수의 몸을 살펴보고는 온몸에 상처가 심해서 가만히 둬도 죽게 생겼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래도 알고 있는 의술을 동원하여 산에 가서 약초를 구해서 상처에 발라주고 탕약을 끓여서 정성으로 간호하자 차차로 살아나네요.”

~ 다행이다. 그런데 진명은 그러한 장면이 실제로 현실에서 눈으로 보듯이 다 보인단 말이야? 정말 기가 막힌 능력을 얻었구나. 부럽네.”

자원이 이렇게 부러워하면서 진명의 말에 빠져들었다. 진명도 자원을 보면 빙긋 미소를 짓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우창은 이야기의 결말이 궁금해서 침을 삼키며 듣고 있었다. 진명이 다시 말을 이었다.

죽을 줄로만 알았던 남자는 3개월이 경과하면서 차차로 회복하더니 기적적으로 되살아났어요. 그런데 나이가 많았던 노인은 이 장수를 간호하느라고 너무나 힘을 소모한 나머지 몸져누웠다가 영영 일어나지 못했네요. 그러는 사이에 장수는 다시 살아났으나 노인이 돌아가시자 은혜를 갚을 길이 없음을 알고는 서언(誓言)해요.”

이렇게 말하자 자원도 숙연해져서는 조용히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장수가 술을 따라놓고는 하늘에 맹서(盟誓)합니다. 저로 인해서 어르신이 목숨을 다하셨으니 이것을 갚기 위해서 다음 생에는 노인의 아내로 태어나서라도 반드시 그 빚을 갚도록 하겠습니다. 이 간절한 소원이 이뤄지기를 염원(念願)합니다.’라고 말을 하고는 노인을 양지바른 땅에 장사를 지내고는 벼슬길도 승승장구해서 호화롭게 살았으나 항상 마음속에 있는 생명의 은인은 잊지 않고 있었네요.”

이렇게 말하는 동안에는 진명이 흡사 다른 사람처럼 보이더니 말을 마치자 늘 보던 진명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러자 자원이 물었다.

아니, 그러니까 그 장수가 금생(今生)에 최 낭자로 태어났던 거야? 그래서 싸부에게 진 빚을 갚기 위해서 나타났던 거야? 진명의 이야기를 듣고서 앞뒤를 맞춰 보니까 말이 되는 것도 같은걸. 참 신기하다. 아무리 봐도 진명이 지어낸 것으로 들리지는 않아.”

자원이 다시 감탄하자 진명이 말했다.

진명이 무슨 능력으로 그런 이야기를 지어내겠어. 그냥 간절한 것에 대해서 생각하면 이렇게 선명하게 보이고, 그렇지 않은 것은 흐릿하게 보이거나 아예 안 보이기도 해서 나도 보이는 것만 보는 거야. 호호호~!”

말없이 이야기를 듣고 있던 우창이 진명에게 물었다.

수고했어. 전생의 노인이 그래도 급한 환자를 치료할 만큼의 의술은 알고 있었던 모양이구나. 참으로 다행이었군.”

느낌으로 봐서는 학문(學問)을 연마하던 학자로 보였어요. 깨끗한 노인인데 나이는 대략 80세 정도 되셨겠고 복장으로만 지역을 가늠하기에는 진명의 역량이 부족해요. 그리고 장수의 복장도 과거의 역사를 밝게 안다면 혹 알아볼 수도 있겠지만 갑옷을 입었으니 장수려니 할 따름인 것이 아쉬워요.”

그러자 우창이 다시 물었다.

예전에 곡부에서 살고 있을 적에 원명(圓明)이라는 화상에게서 듣기로는 전생에 은덕(恩德)을 받은 자는 그것을 기억하고 있어도 공덕(功德)을 베푼 사람은 그것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했는데 이번에 최 낭자를 만났을 적에 내가 느낀 것은 무슨 까닭일까? 그 화상의 말에 의하면 그녀는 나를 알아볼 방법이 있다고 하더라도 나는 그것을 잊어버렸을 테니 말이지. 여기에 대해서 설명을 해줄 수가 있겠어?”

우창이 이렇게 묻자 진명도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그것은 아마도 최 낭자가 워낙 강한 염원(念願)을 하고 있었더라면 스승님에 그 진동이 전해졌을 수도 있죠. 갚으려는 자의 염원으로 느낄 수도 있거든요. 예를 들면 매우 큰 종을 울리면 그 옆에 있는 쇠붙이는 저절로 진동하는 것과 같은 이치가 아닐까요?”

진명이 비유를 들어서 설명하자 우창과 자원이 바로 알아들을 수가 있었다. 그 말을 듣고 있던 자원이 말했다.

진명의 말이 이치에 타당하네. 그러니까 싸부는 아무런 생각도 없었는데 최 낭자가 싸부를 보는 순간에 운명적인 염원의 대상자(對象者)를 찾았다는 신호가 반응하게 된 것이고, 최 낭자가 그것을 느끼자 우창도 전이(轉移)가 되었던 것이네. 인연이란 참으로 오묘하고도 두렵기조차 한 것이었어. 싸부의 인연이 선연(善緣)이기에 망정이지 살명지원(殺命之怨)의 악연이었으면 어떻게 할 뻔했느냔 말이지.”

자원의 말을 듣고서 우창이 웃으며 말했다.

선인선과(善人善果)하고 악인악과(惡因惡果)하는 이치인데 뭘. 그리고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잖아. 하하하~!”

우창이 이렇게 말하고 웃자 두 여인도 함께 웃었다. 진명과 자원이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유하(遊霞)가 지나가다가 웃음소리를 듣고는 문을 두드렸다.

모두 여기에서 깨가 쏟아지네요. 유하도 같이 끼워줘요. 호호~!”

진명이 얼른 문을 열어주고는 말했다.

유하 언니, 어서 와. 호호호~!”

무슨 이야기가 그렇게도 재미있을까? 스승님 평안하셨어요?”

오랜만에 유하를 보는 듯했다.

, 유하를 한동안 못 본 것 같은데 어디 다녀왔나?”

우창이 유하를 보고 반기면서 말하자 유하가 진명이 주는 차를 들고는 자리에 앉으면서 말했다.

, 실은 예전에 인연이 있었던 사람이 한산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어서 찾아가서 며칠 놀고 왔어요. 이런저런 이야기와 공부하는 이야기까지 하다가 보니까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있었네요. 그도 공부에 관심이 생겼다면서 궁금해하기에 스승님의 이야기도 했어요. 호호호~!”

그 말을 듣고서 진명이 말했다.

어쩐지 언니 표정이 밝아 보이더라니 그랬구나. 그 사람은 필시 남자가 틀림없겠구나. 그렇지?”

정말 진명은 용하다니까, 호호~! 맞아, 예전에 같이 연극을 하던 친구였는데 사고로 몸을 다친 후로는 연극을 할 수가 없게 되어서 극단이 소주에 오면 극장 앞에서 가면이나 도구들을 팔아서 먹고 살아가느라고 형편은 별로 좋지 못해. 그래도 마음이 통해서 서로 의지하는 인연이었는데 소주에 머물고 있다니까 무척이나 반가워하지 뭐야. 호호호~!”

유하의 말을 듣고 있던 자원이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진명에게 물었다.

, 싸부와 인연이 어떤지 육갑패(六甲牌)를 뽑아보면 어떨까?”

자원의 말에 유하가 얼떨떨해서 무슨 뜻인지 물었다

인연이라니? 싸부와 누구 인연을 말하는 거야? 설마 자원이나 진명?”

유하의 말에 진명이 웃으며 말했다.

요즘 스승님께 봄바람이 불었어. 한 여인을 사모하게 되셨거든. 그래서 우리가 어떻게라도 그 인연을 끊게 하려고 이렇게 작당(作黨)하고 있잖아. 호호호~!”

이렇게 말하면서 유하가 알아들을 정도로 설명했다. 그러자 눈치가 빠른 유하가 얼른 말했다.

오호~ 그래서 훼방하기 위해서 육갑패를 뽑아서 가로막아 보잔 말이구나. 재미있겠다. 나도 하나 뽑을 수는 없을까?”

자원이 옆에 있던 육갑패를 탁자에 펼치면서 말했다.

그러면 스승님의 패()는 자원이 뽑고 낭자의 패는 언니가 뽑아봐. 어떤 패가 나오느냐에 따라서 우리가 일을 방해하던지 성사가 되도록 할 것인지를 판단해 보는 것이 좋겠어. 호호호~!”

펼쳐놓은 육갑패에서 자원도 한 장을 뽑고 유하도 한 장을 뽑아서는 나란히 펼쳤다. 그래 놓고는 네 사람의 눈은 일제히 탁자로 모였다.

 

 

 

 

자원이 뽑은 패는 임신(壬申)이었고, 유하의 패는 경자(庚子)였다. 두 장의 패를 번갈아 보던 세 여인은 약속이나 한 듯이 웃었다.

호호호호~!”

한바탕 웃고 난 후에 진명이 말했다.

아무리 훼방을 하려고 해도 어쩔 수가 없네. 자원이 풀이나 해 봐.”

자원도 패를 보고 있다가 진명의 말을 듣고서 풀이했다.

임수(壬水)인 스승님은 일지(日支)에서 신중경금(申中庚金)이 생()하고 있으니 최 낭자의 염원이 이뤄졌고, 최 낭자는 경금(庚金)이니 금생수(金生水)의 간절한 마음으로 일구월심(日久月深)으로 한 몸을 바쳐서 은혜를 갚으려고 하는데 그 마음은 자중계수(子中癸水)로 향하니 누구라도 말릴 수가 없겠네. 육갑신(六甲神)이 이렇게 징험(徵驗)을 보여주시니 우리가 뭘 어쩌겠어. 최선을 다해서 혼사가 잘 이뤄지도록 협조하는 수밖에 없겠어. 호호호~!”

그러자 자원이 말했다.

조카가 태어나면 우리가 모두 대모(代母)가 되어서 잘 자라도록 보살펴 주도록 하자꾸나. 호호호~!”

자원의 말에 진명이 다시 말했다.

스승님, 이로 미뤄서 생각해 보면, 궁합의 도리는 전생의 인연을 넘지 못하는 것이 맞는 것으로 봐야 하겠어요. 다시 말하면 부부의 궁합은 볼 필요가 없다는 것이기도 하고 말이에요.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요?”

당연하지, 만약에 첫눈에 반하게 된다면 궁합은 의미가 없는 거추장스러운 일이 될 뿐이야. 그것이야말로 전생의 인연이 만난 것이라고 봐야지. 물론 선연(善緣)이든 악연(惡緣)이든 불문(不問)하고 하는 말이네.”

그건 맞아요. 노름꾼인 줄을 알면서도 첫눈에 반해서 평생 치다꺼리를 하면서 고생하는 여인을 본 적이 있어요. 그런 경우라고 보면 되겠어요.”

우창이 그 말을 듣고서 웃으며 말했다.

그것은 악연이라고 할 수가 있겠군. 인연이 얽혀있으면 주변에서 누가 뭐라고 해도 귀에 들어오지 않으니까 괜히 가까운 사이에 감정만 나빠질 뿐이니 말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라고 봐야겠지. 반대로 아무리 멋지고 건실한 남자를 소개해 주더라도 본인이 맘에 들지 않으면 또한 어쩔 수가 없는 것도 모두 전생의 인연이 아니라고 봐야 하겠지.”

우창의 말을 듣던 진명이 다시 말했다.

듣고 보니까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네요. 그러니까 스스로 선택하게 되는 배우자라면 주변에서 뭐라고 말을 할 필요도 없고 조언을 해봐야 소용이 없다는 말씀이잖아요?”

맞아. 결국은 길흉(吉凶)과 무관하게 스스로 선택하는 거야. 상대가 결정했다면 주변에서도 말을 할 필요가 없는 이야기가 아니겠나. 하하하~!”

그러니까 말이에요. 그렇다면 궁합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진명이 다시 우창에게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