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3] 제39장. 춘풍(春風)/ 1.월하노인(月下老人)

작성일
2023-09-25 0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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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3] 39. 춘풍(春風)

 

1. 월하노인(月下老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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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쾌한 새벽바람이 볼을 간지럽히고 향긋한 꽃내음이 마당에 가득했다. 우창은 언제나처럼 새벽의 산책길을 나섰다. 어둠이 걷히는 여명(黎明)은 세상을 단순하게 해주는 매력이 있어서 비만 내리지 않는다면 한가로운 새벽의 산책을 나선다. 천변(川邊)을 걸으면서 오리와 물병아리가 자맥질하면서 먹이를 찾고 있는 것을 보는 것이 활기가 있어서 좋았다. 그렇게 풍경에 취해서 천천히 걷고 있는데 뒤에서 소리가 들렸다.

싸부님, 같이 가요~!”

소리를 듣고 돌아다 보니 자원이었다. 언제나 옆에서 알뜰히 지켜주고 챙겨주는 자원은 든든한 친구와 같이 느껴졌다. 잠시 기다렸다가 자원이 다가오자 다시 걸음을 옮겼다.

잠도 제대로 못 주무셨죠?”

? 잘 잤는걸.”

그런데 왜 자원은 뒤척거리다가 깼을까요? 호호호~!”

그래? 그런 때도 있지 뭘. 새벽의 공기가 상쾌하니 좋잖아?”

맞아요. 새벽은 언제나 싱그러움이 있어서 좋아요.”

자원도 제자들을 지도하느라고 무척 바쁘지?”

그야 염재가 많이 도와줘서 오히려 재미있어요. 그런데 어제 받은 제자 말이에요.”

? , 최은주 말이구나. 그래.”

이제야 스승님의 가연(佳緣)이 찾아왔다는 것이 참으로 신기하잖아요? 주변에 사람이 많아도 혼인할 생각이 없으셨죠?”

우창은 문득 최은주의 모습을 떠올렸다. 뭐라고 답을 해야 할지 몰라서 잠시 침묵했다. 그러자 자원이 다시 말했다.

한때는 스승님과 혼인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었는데 제각기 인연이 있다는 것이 참으로 신기했어요.”

그게 무슨 말이야. 아직 아무것도 이뤄진 것이 없잖아?”

어제 최현주와 같이 제 방으로 가서 이야기를 나눴잖아요. 이미 8할은 스승님께 마음이 기울었다고 했어요. 그러니까 다된 것이나 마찬가지죠. 스승님도 마음에 요동을 쳤다는 것을 숨기실 생각은 아니죠? 호호호~!”

자원이 경쾌하게 웃었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웃음처럼 들렸다. 노산에서 들었던 소리이기도 했다.

, 좀 이상하긴 했어. 왜 그런 걸까? 자원은 그러한 경험이 있었던 거야? 그것을 바로 알아보는 것이 말이지.”

당연하죠. 아마 모르긴 해도 스승님 때문에 설레본 여인네가 한둘이겠어요. 호호호~!”

그런가? 고마운 일이로군. 하하하~!”

아마 춘매도 그랬을 거예요. 이제 딱해서 어쩌나 싶어요. 호호~!”

우창도 그러한 느낌을 모르진 않았다. 아마도 한동안 마음이 허전하지 싶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다만 엄연히 사제지간(師弟之間)의 인연임을 모르진 않을 테니까 바로 추스를 수가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춘매는 자기중심이 얼마나 강한데 뭘. 괜한 걱정이야. 하하~!”

알아요. 최 낭자도 결심이 서면 오늘 조용히 찾아뵙겠다고 했어요. 스승님도 속마음을 잘 전해서 서로 좋은 인연으로 이어지기를 바랄게요.”

그러자 우창도 자원이 편하지 못해서 잠을 자지 못했다는 의미를 이해할 수가 있었다.

그런데 자원에게 미안한 감정이 생기는 것은 왜일까?”

당연하죠. 우리의 인연도 보통은 넘으니까요. 다만 마음속에서 항상 오빠라고 생각하곤 했죠. 춘매랑은 그렇게 대화하곤 해요. 머뭇거리지 말고 마음이 이끄는 대로 나가세요. 호호호~!”

우창은 자원이 고마웠고 춘매도 고마웠다. 다만 가슴이 뛰는 것을 느껴보지 못했던 것을 이렇게 겪어보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는 것도 신기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서재로 돌아가서 진명이 끓여주는 차를 함께 마셨다.

아침을 먹고서 서재에 앉아서 책을 펼쳐놓고 있는데도 마음이 어수선해서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괜히 서성여지는 자신을 보면서 혼자서 속으로 웃었다. 그것을 본 진명이 웃으며 말했다.

스승님, 지금 모습이 예전 같지 않은 것은 아시죠? 호호호~!”

내가? 뭐가 달라 보여?”

어린아이가 집을 나갔다가 돌아올 엄마를 기다리는 표정이에요. 이러한 것을 혼자 본다는 것이 마냥 아까울 따름이에요. 인연을 만난다는 것이 무엇인지는 처음 겪어보시는 거죠?”

문득 진명에게 전생의 인연이 보이는지 물어보고 싶어졌다.

진명이 보기에도 그랬군. 어때? 최은주와 전생 인연이 보였는지 궁금한걸. 혹시 어제 뭔가 보이는 것은 없었나?”

왜 없었겠어요. 그렇지만 말을 하지 않아도 곧 알게 될 것은 말하지 않는 것이 옳은 것이라고 가르침을 받았어요. 물론 중요한 것은 선연(善緣)이라는 거에요. 그러니까 자원이나 진명이 일심으로 축하드리는 것이기도 하고요. 그러니까 그냥 받아들이세요. 호호호~!”

잠시 후에 마차가 멈추는 소리와 함께 최은주가 내렸고 진명이 문을 열어주자 밝게 인사했다.

어서 오세요. 반가워요.”

고맙습니다. 여기 선물이에요.”

최은주는 작은 상자를 들고 와서 진명에게 줬다. 그 안에는 대추로 만든 과자가 들어있었다. 차를 만들어 놓고 과자를 하나씩 집어 먹으면서 가볍게 이야기를 나눴다.

진명은 자원에게 볼 일이 있어서 나갔다 올게요.”

진명이 가고 나자 우창과 단둘이만 남게 되었다. 뭔가 말을 해야 하겠는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어색한 채로 가만히 있었다. 그러자 최은주가 먼저 말했다.

스승님에 대해서는 백발도사와 백부님을 통해서 이야기 들었어요. 멋진 인품을 갖고서 항상 자연의 이치를 추구(追求)한다는 말씀을 듣고서 평생을 옆에서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되었는데 자원 선생에게 제 의사를 전했더니 환영한다고 했어요. 주변에서 이렇게도 예쁜 여인들이 스승님을 지켜주고 있는 것을 보면서 어떤 분인지 더 기다리지 않아도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이렇게 말을 하고는 찻잔을 들어서 입술을 축였다. 입이 타들어 간다는 것을 짐작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는 다시 우창의 말을 기다릴 것도 없이 말을 이었다.

은주가 이팔청춘(二八靑春)이라면 중간에 매파(媒婆)를 놓아서 마음을 전할 수도 있을 거예요. 그렇지만 이미 나이가 서른하고도 두 해를 더 살았잖아요. 스스로 자신의 길을 선택하고 그에 따른 책임도 질 만큼 나이를 먹었다고 생각해요. 그간 백부님의 성화로 인해서 적지 않은 선을 봤어요. 그러나 모두 인연이 아니었던지 마음에 동요됨이 없었어요. 그래서 이런저런 이유로 답변을 회피했었죠. 그런데 어제 스승님을 뵙는 순간에 말도 하기 전에 느낌이 달랐고, 가슴이 뛰어서 숨이 막힐 지경이었어요.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거든요. 너무나 신기하고 놀라워서 감당되지 않았으나 나이를 이만큼 먹고 보니 대략 무슨 뜻인지는 알 수가 있었어요. 전생에 꽃을 나눈 인연을 이제야 만났다고 생각했던 거예요.”

우창은 이야기를 듣기만 하면서 괜히 마음에 설레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 하다가 꽃을 나눈 인연이라는 말에 고개를 들고서 물었다.

그건 무슨 말입니까? 전생에 꽃을 나눈 인연이라는 말은 처음 들어 봅니다.”

우창이 이렇게 묻자 최은주가 나직이 설명했다.

과거에 수행자가 있었어요. 마침 연등불(燃燈佛)이 세상에 출현하셨다는 말을 듣고서 공양을 올리고 싶은데 수중에는 아무것도 없었던 차에 한 여인이 꽃을 들고서 부처님을 뵈러 가는 것을 만나자 부탁했답니다. ‘여인이시여 그 꽃을 내게도 좀 나눠주오.’라고요. 그러자 여인은 꽃을 줄 테니 자기와 혼인하자고 하더랍니다. 수행자는 물론 꽃을 공양하고는 싶었지만 혼인할 생각은 없어서 난감해하자, 여인이 다시 말했어요. ‘이번 생에는 수행하시고 다음 생에 만나서 부부가 되기로 하면 꽃을 드릴게요.’라고요. 그러자 수행자는 다음 생은 그때 가서 보기로 하고 약속을 하니까 다섯 송이의 꽃을 주고는 나머지 두 송이도 주면서 말했어요. ‘이것은 제 꽃인데 부처님께 같이 올려주세요.’라고 하는 말에 일곱 송이의 꽃을 받아서는 연등불 전에 공양하고 수행하여 성불하게 되기를 빌었다는 고사(故事)에요. 호호~!”

이야기를 마친 최은주가 밝게 웃었다. 나지막했지만 듣는 사람의 마음을 흡입하는 힘이 있는 듯했다. 우창이 비로소 꽃을 나눈 인연의 뜻을 알고서는 청혼(請婚)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그러니까 지금 하시는 말씀의 뜻은 우리가 함께 백년가약(百年佳約)을 맺자는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까?”

맞아요. 스승님도 이제 나이가 마흔이라고 들었어요. 그렇다면 마냥 기다리기만 할 것도 아니고, 혹 은주가 싫으시다면 할 수 없는 일이거니와 그렇지 않다면 함께 부족한 것을 채워주면서 일생을 동행하는 것은 어떻겠어요?”

우창은 다시 가슴이 뛰는 것이 느껴졌다. 얼굴도 화끈거리는 것이 아무래도 붉어졌지 싶었다. 그것만은 최은주가 눈치채지 못했기를 바라면서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어물거렸다. 일이 너무나 급속하게 돌아간다는 생각만 머릿속을 맴돌았다.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잠시 어지러웠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최은주의 말이 이어졌다.

혹 혼인을 약속하신 낭자가 있으신지요?”

이렇게 묻자 우창도 얼른 답했다.

그건 아니오. 그런 사람은 아직 없습니다.”

다행이에요. 그렇다면 은주와 함께 역사를 만들어 봐도 되겠네요. 물론 오행 공부는 열심히 할 거예요. 어제 잠시 자원 선생과 이야기를 나눠봤는데 너무나 매력적인 여인이에요. 그런 언니가 있다는 것만 봐도 인연이 많다는 것을 직감(直感)할 수가 있었거든요. 그리고 조금 전에 차를 준 낭자도요. 어제 오행원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에 여기의 모든 것에 대해서 반해 버렸지 뭐예요. 그래서 밤새 잠을 한숨도 자지 못했어요. 밤사이에 다른 여인과 가약(佳約)을 맺어버리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으로요. 호호호~!”

정말 재미있는 최 낭자십니다. 하하하~!”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최은주가 정색하고 말했다.

재미있으신가요? 은주는 전심전력(全心全力)을 다해서 말하고 있는 건데요? 그래도 재미있으시면 되었어요.”

최은주가 이렇게 말하고는 자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마도 하고 싶은 말은 다 했는데 우창의 반응이 시큰둥해서 조바심이 났던 모양이다. 그 모습을 보며 우창이 말했다.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자사 어른의 품격을 봐서 그 조카인 낭자에 대해서는 더 생각하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우창도 낭자에게 호감(好感)이 있으니까 말이지요. 듣기 좋게 말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창은 이렇게 말하면서 스스로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뭘 어떻게 한다는 말인가 그냥 좋다고 하면 될 일인데 싶어서 멋쩍게 웃었다. 그러자 최은주가 다가와서 우창의 손을 잡았다. 우창은 순간적으로 벼락에 감전이 되기라도 한 듯이 온몸의 신경이 경련을 일으키는 것 같아서 깜짝 놀랐다.

이게 약혼(約婚)이에요. 앞으로 지켜보시다가 호감이 진행하면 혼인하는 것이고요. 맘에 안 드는 면이 있으면 언제라도 말씀해 주세요. 그러면 인연은 거기까지라고 여기겠어요. 세상의 일이 제 맘대로 되는 것은 아닌 줄을 알고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이제 공부하러 갈게요. 그리고 낭자라고 하는 것은 여기까지예요. 앞으로는 그냥 은주라고 불러주셔야 해요. 그래야 은주도 편히 내왕(來往)할 수가 있으니까요. 호호호~!”

이렇게 한마디를 웃음소리와 함께 미소를 남기고는 훌쩍 나갔다. 우창은 마치 무엇인가에 홀린 듯이 멍하게 창밖을 바라볼 뿐이었다. 인연이란 참으로 예측불허(豫測不許)인 채로 다가오는 것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잠시 후에 진명이 돌아와서는 우창의 표정을 보면서 말했다.

스승님, 인연은 참으로 재미있죠? 저렇게나 총명하고 활발한 여인이 소주에서 스승님이 나타나시기를 기다리고 있었으니 말이에요. 축하드려요. 호호~!”

그런가? 나도 뭐가 뭔지 잘 모르겠네. 잘하는 건가?”

당연하죠. 전생에 꽃을 나눈 인연이잖아요. 스승님께서 오행도(五行道)를 펼치는데 큰 내조(內助)를 하실 분이니까요. 그리고 저희도 힘써 도울 테니까요. 그것이 또한 우리 제자들의 몫인걸요. 호호호~!”

아니, 진명도 그 이야기를 알고 있었던 건가?”

무엇을요? 꽃을 나눈 인연 말씀인가요? 당연히 알고 있죠. 여인네가 꽃을 좋아하는 이유는 꽃이 예뻐서만은 아니랍니다. 호호호~!”

우창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생각을 정리하는데도 시간이 필요하겠다는 것만 떠올랐다. 그러자 진명이 다시 말했다.

스승님, 그 백발도사님 있잖아요. 놀러 가지 않으실래요?”

? 백발은 왜?”

참 재미있는 분이잖아요. 스승님은 항상 신중(愼重)하신데 백발도사님은 거침이 없으셔서 시원시원하단 말이에요. 제자들에게 점심을 차려 먹게 하고 춘매랑 같이 가보고 싶어요. 괜찮으시죠?”

나야 뭐 괜찮지.”

우창이 허락하자 진명이 얼른 외출할 준비를 하러 나갔다가 춘매와 같이 들어와서는 말했다.

스승님, 자원에게 말했더니 같이 가자고 해서 최은주의 마차를 이용하기로 했어요. 어서 준비하세요.”

그래? 준비랄 것이 뭐 있나. 그럼 가볼까?”

최은주는 마차를 능숙하게 몰았다. 반 시진이 지나자 이내 백발의 명상관 앞이었다. 최은주는 이미 자주 다녀서 길이 밝았다.

어허~! 스승님과 어여쁜 제자들이 누추한 곳을 빛내주러 오셨군요. 잘 오셨습니다. 모두 환영합니다. 하하하~!”

모두 자리에 앉자 백발이 최은주를 보면서 말했다.

아니, 은주는 벌써 스승님과 이렇게나 가까워졌단 말인가? 어제는 그렇게도 스승님에 대해서 꼬치꼬치 묻더니 오늘은 얼굴에 도화(桃花)가 만발한 얼굴을 하고 나타났으니 이것은 또 무슨 소식인고?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인걸. 하하하~!”

백발의 말에 최은주가 말했다.

당연하죠 숙부님. 삼생(三生)의 연분(緣分)은 만나는 즉시 알아보는 것이잖아요. 오늘 아침에 바로 달려가서 스승님과 약혼했어요. 그러니까 길일을 가려서 혼인만 하면 되겠어요. 호호~!”

참으로 쾌활하면서도 당당했다. 최은주의 말에 춘매는 얼떨떨한 모양이었으나 분위기를 파악하는 것에는 이미 이골이 나 있는 춘매였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짐작했다. 그러자 진명이 춘매에게 말했다.

춘매가 이제야 큰 짐을 내려놓게 되었으니 축하해. 호호호~!”

아니, 세상에 무슨 혼사(婚事)가 이렇게 소리소문없이 급진(急進)이 되기도 하네요. 정말 최 낭자를 사모(師母)로 만나게 되었으니 다행이에요. 축하해요~! 호호~!”

춘매의 말에 백발이 웃으며 말했다.

잘 되었군. 번갯불에 콩을 볶아먹는다더니 이왕 내친김에 청명절(淸明節)에 혼인식(婚姻式)을 하도록 날을 잡도록 하지. 형님께도 그렇게 말씀드리게. 하하하~!”

이렇게 말한 백발이 우창을 보면서 말했다.

스승님, 축하드립니다. 선머슴처럼 동남서북으로 싸돌아다녀서 형님 속깨나 태우더니 그래도 자기 배필은 알아본 모양입니다. 그 짝이 스승님이라기에 백발은 두말없이 축하했습니다. 그리고 덤으로 소주에서는 자사(刺史)의 언덕이 꽤 쓸 만합니다. 앞으로 오행원은 나날이 발전하게 될 것입니다. 이미 과년(過年)한 은주인지라 기다리고 말고 할 필요가 없지 싶은데 어떻습니까?”

그래도 백발은 스승에 대한 예의로 의견을 물었다. 우창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또 말을 이었다.

혹 초청해야 할 인연이 있으면 연락해야 하니까 혼인을 더 멀리 잡아야 하겠습니까? 스승님의 면상(面相)을 봐서는 간절하게 불러야 할 인연은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만 어떻습니까?”

과연 백발의 안목은 틀림이 없었다. 우창도 특별히 떠오르는 사람이 없었는데 그것을 정확하게 짚어내는 것을 보면서 내심으로 감탄했다.

백발의 안목(眼目)이 놀랍습니다. 하하하~!”

우창의 말에 백발이 미소를 짓고는 다시 춘매를 보면서 말했다.

이 낭자는 올가을이나 내년 봄에 가약(佳約)을 맺을 인연이 나타나겠으니 조금만 더 기다리고 있으면 되겠군. 그동안 스승님께서 혼삿길을 가로막고 있어서 인연이 머물렀는데 이제 비로소 그 길이 열리게 되었으니 축하드리오.”

춘매는 갑작스러운 백발의 말에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우창이 말했다.

아니, 그러한 것도 면상에 나온단 말입니까? 참으로 대단합니다. 과연 우창이 춘매의 혼사를 막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습니다. 공부와 뒤치다꺼리를 하느라고 정신없이 바빴으니 말이지요. 하하하~!”

우창의 말에 백발이 웃으며 말했다.

백발의 능력은 얕고 넓습니다. 스승님의 오행법(五行法)은 깊은 바다와 같아서 범접(犯接)할 수가 없지만 이렇게 보이는 대로 툭툭 던지기로는 그저 그만입니다. 그리고 백발은 아무리 깊이 생각해도 그 이치를 살피는 능력이 부족한데 이러한 재주나마 오행원에서 전개할 기회가 있어서 큰 보람입니다. 하하하~!”

백발이 이렇게 말하자 자원이 합장하고는 물었다.

백발도사님, 자원의 혼사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세요. 궁금해요.”

자원이 이렇게 말하자 잠시 자원의 얼굴을 바라보던 백발이 말했다.

무슨 말을 마음에 1푼도 없이 하시나. ‘저는 학문과 혼인했습니다.’하고 이마에 써 붙이고 다니면서 말이네. 한 사람에 매어서 사는 것은 적성이 아닌 줄을 스스로 알고 있으면서 말이지. 안 그런가?”

어머머! 정말 놀랐어요. 그냥 여쭤본 것인데 제 심중을 정확하게 꿰뚫어 보시다니요. 호호호~!”

방금도 말하지 않았나, 얕고 넓게 본다고 말이네. 하하하~!”

그래도 혹시나 하고 여쭤봤는데 그렇게 보셨다니 과연 제 생각과 부합이 되네요. 그것이 틀리지 않았으니 다행이에요. 호호호~!”

이렇게 화기애애(和氣靄靄)한 분위기를 본 최은주가 말했다.

오늘 점심은 은주가 모시겠어요. 숙부님도 같이 가요.”

당연히 그래야지. 알고 보면 내가 월하노인(月下老人)의 역할을 했으니까 말이지. 하하하~!”

백발이 이렇게 말하면서 호탕하게 웃자, 춘매가 자원에게 나직하게 물었다.

언니, 월하노인이 누구예요?”

춘매가 이렇게 묻는 말에 자원이 미소를 짓고는 답했다.

아 춘매는 처음 들어본 말인가 보구나. 옛날에 어느 귀한 집의 자제인 청년이 달밤에 길을 가는데 한 노인이 책을 보고 있더라지. 청년이 호기심이 생겨서 물었다잖아. ‘노인께서는 무슨 책을 보십니까?’하고 말이지. 그러자 노인이 말하기를 세상 사람들의 배필을 적어놓은 책이라네.’라고 하지 않았겠어. 그리고 노인의 허리를 보니까 붉은 실이 담긴 주머니를 차고 있는 거야. 그래서 또 그것은 무엇인지를 물었더니, ‘부부가 될 사람의 발을 묶어주는 것이라네. 이 실로 묶이게 되면 헤어질 수가 없게 되는 것이라네. 자네는 채소 장수인 진씨 할머니의 딸과 혼인할 것이네.’라고 말하면서 다시 책만 읽고 있자 청년이 생각하기에 자신의 신분이 있는데 천한 야채 장수의 딸과는 혼인하게 될 까닭이 없다는 생각에 노인이 실없는 소리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는 웃어넘겼다는 거야.”

자원이 이렇게 말하자 춘매가 놀라면서 말했다.

아니, 그런 노인이 진짜로 계신 거예요? 어디에선가 도관(道觀)에서 봤던 것도 같아요. 머리카락이 없는 노인이잖아요?”

맞아, 노인의 이름이 위고(韋固)였어. 그 청년이 후에 벼슬하여 자사(刺史)의 딸과 혼인하게 되었는데 첫날밤에 부인이 말했다는 거야. ‘저의 부친은 어려서 돌아가셨고 후에 저를 유모가 채소를 팔아서 어린 저를 길러주셨는데 자사님은 수양딸로 삼아서 거둬주셨으니 양부(養父)가 되세요.’라고 말이지. 그때부터 중매하는 사람을 월하노인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나 봐.”

자원이 이야기를 마치자 춘매가 비로소 이해되었다는 듯이 말했다.

아하~! 이름만 들어 봤지 진짜로 그런 고사(故事)가 있는 줄은 몰랐어요. 정말 달밤에 노인을 만나거든 꼭 물어봐야 하겠어요. 춘매의 배필은 누구인지 알고 싶어서 말이에요. 호호호~!”

월하노인이 왜 필요하겠어? 이렇게 시절 인연이 무르익으면 저절로 찾아오는 인연인데 말이야. 호호~!”

 

 

자원이 이렇게 말하자 모두 웃으며 식당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