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1] 제38장. 소주오행원/ 13.만발(滿發)한 앵화(櫻花)

작성일
2023-09-15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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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1] 38. 소주오행원(蘇州五行院)

 

13. 만발(滿發)한 앵화(櫻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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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이 묘월(卯月)로 접어들자 강남의 봄기운은 산과 들로 번져나갔고 강변(江邊)에도 온통 불을 밝힌 듯이 벚꽃이 만개했다. 오행원의 제자들도 저마다 뜻이 통하는 도반과 같이 무리를 지어서 소주의 봄날 풍경을 즐기러 나갔다가 저녁에 해가 넘어가서야 돌아오곤 했다. 모두 자연의 순환에 동참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새벽의 산책길에도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서 봄이라는 것을 저절로 알 수가 있었다. 우창이 항상 좋아하는 시간이다. 어둠이 사라지면서 푸른 빛이 어슴푸레하게 밝아오는 새벽 시간이다. ()에서 양()으로 바뀌는 순간에 음양이 서로 만나는 것을 느끼며 풀잎의 이슬을 피해서 흐르는 물소리와 함께 천천히 걷는 것이 가장 좋아서이다. 또 하루가 주어진 것에 대해 감사함이 걸음걸음에 배어난다. 그렇게 한 시진을 산책하고 서재(書齋)로 돌아오니 진명이 어느 사이에 찻물을 끓이고 있다가 우창이 돌아오자 용정차(龍井茶)를 우려서 따랐다. 청향(淸香)이 서재를 가득 채웠다.

스승님, 이 차는 자사(刺史)께서 선물로 갖고 온 차에요.”

그래? 향이 무척 좋은걸. 무슨 차지?”

사봉용정(獅峰龍井)의 우전차(雨前茶)네요.”

우전이면 곡우(穀雨) 전에 돋은 새잎으로 만든 녹차가 아닌가?”

맞아요. 용정도 좋은데 하물며 우전이라니 말이에요. 정말 귀한 차인데 자사나리 덕에 맛을 보게 되네요. 더구나 이렇게 맑은 새벽에 스승님과 마시는 차이니 그 운치는 이를 데가 없어요. 호호~!”

맞아! 새벽의 공기를 마시고 돌아와서 따끈한 차를 마실 수가 있는 이 순간이 더 말할 나위가 없이 행복하지 않으냔 말이지. 인간의 복락(福樂)이 이만하면 더 바랄 게 없지. 싸늘한 공기를 쐬고 들어와서 따끈한 차를 마시게 해주니 고맙네. 진명의 덕분에 하루를 충만한 마음으로 열게 되었으니 말이네. 하하하~!”

그야 스승님께서 바라는 것이 담박하시니까요. 진명도 이렇게 스승님과 마시는 차가 세상에서 가장 맛있어요. 그래서 또 감사드려요. 호호호~!”

우창은 말없이 차를 음미했다. 조용히 우창을 바라보던 진명이 말했다.

이제야 스승님께서도 가정을 이룰 때가 되셨나 봐요.”

진명의 뜬금없는 말에 우창이 잘못 들었나 싶어서 고개를 들어서 바라봤다. 그러자 진명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오늘 스승님의 후광에 연분홍(軟粉紅)의 빛이 보였어요. 아마도 연분(緣分)이 찾아올 조짐일 거예요. 미리 축하드려요.”

아니, 갑자기 무슨 말이지?”

스승님의 명운(命運)에는 올해 배필(配匹)을 만날 조짐이 나타나지 않나요? 여태까지 밝은 후광은 봤지만 이러한 빛은 처음이거든요. 정말 어떤 사모(師母)를 만나게 될지 벌써 설레는걸요. 호호호~!”

진명의 진지한 표정을 보면서 우창도 문득 자신의 팔자를 떠올려 봤다. 진명이 벌써 종이와 붓을 준비해서 먹을 찍은 붓을 넘겨줬다. 우창이 자신의 명식을 불러줬다.

적어봐, 계사(癸巳) 정사(丁巳) 무진(戊辰) 경신(庚申)이네.”

우창이 불러주는 대로 간지를 적었다.

 

 

 

 

그러고 보니 여태 스승님의 명식도 모르고 있었네요. 오늘 처음 봐요. 일주(日柱)가 무진(戊辰)이셨구나. 그럼 진명과는 겁재(劫財)네요. 기축(己丑)이거든요. 호호~!”

, 그랬구나. 어디 풀이해 봐. 하하~!”

진명이 우창의 사주를 살펴보다가 말했다.

아니, 스승님께서는 학문을 추구한다고는 하시지만 그래도 암암리에 영감(靈感)이 작용하고 있잖아요? 그것도 상당히 큰 비중인데요?”

영감은 무슨, 망상(妄想)이지. 하하하~!”

청기(淸氣)가 있다고 해야 하잖아요?”

그런가? 말년에는 그래도 제자들과 더불어 지낼 수가 있을 정도의 복이라도 타고났으면 다행이겠지.”

올해는 마흔이시잖아요? 일지(日支)의 주운(柱運)으로 바뀌고 있는 순간이네요. 임신년(壬申年)이니 편재(偏財)가 왕성하게 들어오고 있어요. 이것은 배필을 만날 조짐이라고 해야 하잖아요?”

편재라서 배필이 된다고 할 수는 없지.”

그렇다고 해서 배필이 안 된다고 할 수도 없는 것도 맞죠?”

진명의 확인에 우창도 아니라고 하지는 못했다.

그렇기도 하지.”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소리에 서재 앞을 지나가던 자원이 들어왔다.

무슨 이야기를 그리도 열심히 나누시나 싶어서 들어왔어요. 공부하려면 같이 해야죠. 호호호~!”

자원이구나 어서 와. 잘 왔어. 스승님 사주를 보고 있는데 올해 연분을 만날 조짐이 되는지 좀 살펴볼래?”

진명은 동갑인 자원을 보고서 이렇게 말하자 자원도 한동안 잊고 있었던 우창의 사주를 보면서 자리에 앉자 진명이 찻잔을 가져와서 한 잔 따라 줬다.

어머~! 무슨 차야?”

용정의 우전이래 자사 나리가 갖고 온 거야.”

역시, 명불허전(名不虛傳)이구나.”

차도 좋지만, 올해 스승님의 운을 좀 보자고. 호호~!”

우창의 사주를 지그시 바라보던 자원이 진명을 보며 말했다.

올해는 아무래도 희주(喜酒)를 한 잔 마셔야 하지 않겠어? 싸부께서 드디어 성혼(成婚)하게 되는구나. 미리 축하해요~!”

자원이 이렇게 웃으며 말하자 우창은 좀 멋쩍었다.

자원까지 왜 이러시나? 봄날에 맘 설레게 말이지. 하하하~!”

이렇게 말을 하면서도 싫지는 않았다. 예쁘고 총명한 제자들과 차담(茶談)을 나누는 것이려니 생각했을 따름이었기 때문이다. 아침을 먹고 나자 마차가 문 앞에 와서 멈췄다. 염재가 나가보고는 손님이 왔다며 객실로 안내하는데 자사와 백발이었다. 그리고 처음보는 낭자도 동행했다. 진명이 자리를 권하고는 언제나처럼 차를 대접했다. 그러자 백발이 말했다.

오호~! 스승님께서 왜 여태까지 배필을 구하지 않았는지 짐작이 됩니다. 이렇게 총명한 여인들과 함께 지내셨습니까? 과연 홍복(洪福)이십니다. 하하~!”

백발의 너스레를 들으면서 방문한 나그네가 접대하느라고 헛말을 하는 것인 줄은 알면서도 진명은 듣기에 좋았다. 백발의 말을 듣고서 말했다.

거사님께서 스승님이라고 하시니 동문사형이신가 보네요. 그런데 말씀하시는 것으로 봐서 분명히 심성이 고우시고 복을 받으실 것이 틀림없으시겠어요. 호호호~!”

이렇게 말하면서 동행한 여인을 바라보다가 내심 놀랐다. 우창에게서 보인 후광이 여인에게서도 보였기 때문이었다. 새벽에 나눈 대화였지만 이렇게 빨리 사람이 나타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은 미처 못했는데 참으로 기이한 인연이라고 생각하면서 여인에게도 차를 권하며 말했다.

잘 오셨어요. 편안한 시간이 되시고요. 호호~!”

그러자 여인도 다소곳하게 잔을 받으며 말했다.

고마워요.”

진명이 여인의 자태를 훑어보니 빼어난 미모는 아니어도 우아한 후덕(厚德)함이 보여서 많은 식구를 거느리기에는 넉넉해 보여서 마음이 놓였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자사가 차를 마시다가 말했다.

우창 선생, 이 아이는 조카딸이오. 팔자를 좀 봐주시오.”

, 그러십니까? 부족하나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자사가 진명에게 생일과 이름을 알려주자 여인은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이름은 황은주(崔銀珠)였고 신축(辛丑)생이었다. 진명이 사주를 적어서 우창의 앞에 놓고는 조용히 바라봤다.

 

 

 

 

백발도 사주를 보다가 우창에게 말했다.

스승님, 백발이 잘은 모르겠지만 청기(淸氣)가 보이지 않습니까?”

백발이 이렇게 묻자 우창이 백발을 보면서 말했다.

그렇습니다. 팔자에서 청기도 있을뿐더러 총명함도 타고 나셨습니다.”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최은주가 말했다.

선생님께서 잘 좀 살펴봐 주세요. 청기를 타고 난 팔자가 어떻게 아직껏 배필도 만나지 못하고 이 화창한 봄날에 서책(書冊)이나 뒤지고 있겠나요?”

그 말을 들으면서 우창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이 뭔가 예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것이기에 진명을 바라봤다. 그러자 진명이 눈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뜻인지 안다는 듯이.

우창이 사주를 바라보고 있자, 자사가 말했다.

실은 어제 이 아이가 백부(伯父)를 보고 싶었다면서 다니러 왔기에 우창 선생에 대해서 말을 했더니 꼭 좀 뵙고 싶다고 하질 않겠소? 그래서 문득 백발도 오행원이 궁금하지 싶어서 나들이하지 않겠느냐고 했더니 당연히 가보겠다고 하기에 오늘 동행하게 된 것이오. 나이가 이미 혼기를 놓쳐서 재취댁(再娶宅)으로라도 보내려고 백방으로 알아봤으나 도무지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아서 책이나 보면서 지내라고 했소이다. 허허허~!”

우창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다시 사주를 살폈다. 연간(年干)에서부터 시간(時干)까지 일기상통(一氣相通)을 하는 모습이 무척 청아(淸雅)해 보였다. 을미(乙未)이니 고근(庫根)에 통근(通根)도 하여 임진(壬辰)과 정해(丁亥)를 봐서는 강약도 균형을 이루고 있어서 중화(中和)에 가까운 사주라고 판단하고는 말했다.

팔자는 나무랄 데가 없으니 자사께서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겠습니다. 마음에 드는 부군(夫君)을 만나서 일생을 해로(偕老)하게 될 것이니 말입니다.”

이렇게 말을 하면서도 가슴이 두근거리는 현상은 사라지지 않았다. 처음 느껴보는 현상이어서 참으로 이상하다고 생각했으나 그 이유는 알 수가 없었다. 이때 최은주가 우창에게 물었다.

오행원에서는 무엇을 가르치나요?”

그러자 진명이 대신 말했다.

오행원은 팔자 공부를 하는 것이 주목적이에요. 그리고 그것을 빙자해서 세상의 이치에 대해서 궁리하기도 하고요. 방문자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죠. 혹 오행 공부에 관심이 있으면 같이 공부하셔도 좋아요. 호호~!”

진명의 말에 최은주가 호기심을 보이며 말했다.

그래요? 참 재미있겠네요. 원래 새로운 학문을 배우는 것을 좋아하기는 해요. 그래도 여태까지 팔자를 공부할 생각은 못 했어요. 이제라도 공부하면 그 깊은 이치를 깨닫게 될까요? 너무 늦지 않았나요? 그리고 이러한 공부는 태어나면서 타고 나야 한다고도 들었는데 관계없나요?”

관계가 있죠. 최 언니의 사주는 큰 스승님이 될 사주에요. 지금 스승님께서 말씀은 하지 않으셨으나 제자가 보기에는 만시지탄(晩時之歎)이에요. 호호호~!”

진명이 친밀감을 나타내며 언니라고 호칭하자 최은주도 싫지 않았다.

어머~! 그래요?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관심이 솟구쳐요.”

언니는 한마음이 일어나면 아무도 말릴 수가 없잖아요? 그렇게 중심이 강한 과단성(果斷性)이 가장 큰 매력인걸요.”

그건 맞아요. 그런데 무엇을 보고 말씀하신 건가요?”

아직 이해는 안 되시겠지만, 편재(偏財)라는 것이 일지(日支)에 있어요. 이것은 흡사 천리마(千里馬)에 앉아있는 전사(戰士)와 같죠. 그래서 한 마음이 내키면 천리만리도 순식간에 내달리지만, 마음이 내키지 않으면 누가 뭐라고 해도 은산철벽(銀山鐵壁)처럼 굳건해서 움직이지 않아요. 호호~!”

정말 그래요. 오행의 이치가 그런 건가요? 은주가 알기에 운명의 길흉을 논하는 것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듣고 보니까 이것은 내면의 성정(性情)을 논하는 학문이잖아요?”

그렇죠.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는데 팔자가 8할은 영향을 미치고 있어요. 그리고 스승님께서는 그것을 연구하는 것으로 세월을 보내고 계신답니다. 그렇게 해서 얻은 경지는 저희 제자들이 고스란히 배우죠. 그래서 날마다 기쁨과 함께 시작하고 보람과 함께 마무리하는 셈이에요. 호호호~!”

진명이 이렇게 말하자 최은주도 관심이 생겼는지 자사에게 물었다.

숙부님, 말씀을 듣고 보니까 저도 공부하고 싶어요.”

자사가 그 말을 듣고서 말했다.

그야 네가 하겠다면 무슨 수로 말리겠느냐. 그렇게 하거라. 허허허~!”

자사가 흔쾌히 허락하자 최은주가 진명에게 물었다.

들어오면서 보니까 제자들이 합숙(合宿)하면서 공부하는 것 같았어요. 그런데 합숙하지 않아도 될까요? 밖에서 기거하면서 공부하는 방법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진명이 이번에는 우창을 바라봤다. 아직은 그런 제자가 없었기 때문이었고, 초급과정은 새벽에 하는데 그 시간에 공부하러 온다는 것이 불편하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그러자 우창이 말했다.

자원을 좀 오라고 하지.”

우창의 말에 진명이 얼른 가서 자원을 데리고 왔다. 자원이 접객실로 들어와서는 말했다.

, 손님이 계셨네요. 부르심을 받고 왔어요. 무슨 말씀이 계신지요?”

여기 이분은 자사 어른의 조카인데 명학에 관심이 있으시다기에 자원이 잘 지도해 드리면 어떨까 싶어서 불렀네. 괜찮겠어?”

자원이 갑자기 그 말을 듣고서 얼떨떨했으나 사람을 가르치는 것을 좋아하는 자원이어서 거절할 이유도 마음도 없었다.

그야 스승님께서 특별히 가르침을 주라고 하시면 부족하나마 진력(盡力)으로 가르쳐볼게요.”

자원이 이렇게 말하면서 최은주를 바라봤다. 첫인상에서 여인의 포용적(包容的)인 면모가 느껴져서 가르치면 잘 알아듣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럴 줄 알았네. 그렇다면 대중의 시간과는 별개로 자원의 서재에서 매일 시간을 정해놓고 개별적으로 지도해 주면 좋겠어.”

우창이 이렇게 말하고는 최은주에게 말했다.

자원과 같이 공부할 곳을 보고 오셔도 됩니다. 하하~!”

우창의 말에 자원과 최은주가 나갔다. 그러자 백발이 한마디 했다.

스승님의 얼굴에 희색(喜色)이 떠오르고 있으니 이것은 무슨 조짐입니까? 아무래도 좋은 소식인듯 싶습니다. 하하하하~!”

그야 봄날이 아닙니까. 만물이 소생하는 것에 어찌 무심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나저나 스승님 소리는 이제 그만하면 안 되겠습니까?”

안 되겠습니다. 절대로 그럴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불편하시면 제자가 스승님이라고 하는 것은 친구라는 의미로 해석하셔도 될 것입니다. 이곳에서는 상학(相學)은 가르치지 않습니까? 그런 일을 하신다면 제자도 일조(一助)할 수가 있지 싶습니다만 어떻습니까?”

백발이 이렇게 말하자 옆에서 듣고 있는 진명이 반기면서 말했다.

어머나, 상학이라고 하셨어요? 사람을 보면 바로 알아보는 것으로 면상보다 용이(容易)한 것도 없잖아요? 그렇게 하신다면 진명이 첫 제자가 될래요. 스승님께서도 동의하실 거죠?”

우창을 보면서 말하자 우창도 이에 대해서 답했다.

그렇지 않아도 오행원의 공부가 혹시나 한 방향으로 편중이 되는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심상(心相)만 연구하게 되니, 한편으로는 신상(身相)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어서 이러한 것을 필요로 할 제자들에게는 반쪽짜리의 학문이 되지나 않을까 염려했었기 때문이지요. 그 한쪽 날개를 맡아주시겠다고 하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꼭 부탁합니다.”

그러셨다니 다행입니다. 전심전력(全心全力)으로 지도하겠습니다. 그리고 어차피 상학도 뿌리는 오행에 닿아있으니 오행원의 이름에도 벗어나지 않습니다.”

백발의 말을 듣고서 진명이 기뻐하면서 말했다.

와우! 잘 되었어요. 3일에 한 번씩 오셔서 이야기를 해주실 수가 있겠어요? 그 정도라면 배우고 익히는 데는 무리가 없을 것으로 생각이 되는데요.”

그렇게 하리다. 하하하~!”

이렇게 담소하는데 점심을 먹으라는 전갈이 왔다.

소찬(素饌)이나마 같이 드시지요.”

우창이 방문자들과 같이 찬청(餐廳)으로 가자 이미 손님이 왔다는 것을 알고는 따로 상을 봐둔 춘매였다. 최은주도 자원과 나란히 앉아서 점심을 먹고는 돌아갔다.

우창이 접객실로 가서 책상 위의 최은주 사주를 보고 있는데 진명이 자원과 춘매를 데리고 왔다.

스승님, 느낌이 참 야릇하시죠? 호호호~!”

진명이 우창을 놀리면서 하는 말이었다.

? 그게 무슨 말인가?”

여인네들은 그러한 마음을 싱숭생숭하다고 하는데 남정네는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호호호~!”

우창은 진명이 뭔가를 봤을 것이라는 짐작이 들어서 진지하게 물었다.

그러지 말고 알아듣게 말을 해 줘봐.”

마치 가슴에 화살을 맞은 것 같으시잖아요?”

, 뭔가 이상하기는 하군. 떨림이랄까? 그런 것도 느껴졌네. 그래서 나이를 먹어서 심장에 노화(老化)가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 싶었지. 하하~!”

, 그럴 리가 있나요. 스승님께 봄이 찾아온 것이랍니다. 인연이란 이렇게 이어진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어요. 너무나 신기하죠? 호호호~!”

무슨 뜻인지를 전혀 모르고 있는 춘매가 눈만 멀뚱멀뚱하면서 두 사람을 번갈아 보고 말했다.

진명 언니는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지? 나도 좀 알아듣게 말해줘 봐. 스승님께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혹 혼처(婚處)라도 생겼다는 듯한 말투잖아?”

춘매의 말에 진명이 설명했다.

오늘 낮에 같이 밥을 먹은 낭자 말이야. 스승님의 배필이셔. 그래서 지금 스승님을 놀리고 있는 거잖아. 호호호~!”

아니, 그게 무슨 말이야?”

춘매가 이렇게 말하자 우창이 쑥스러운 듯이 말했다.

괜한 소리지 뭐긴 뭐겠어? 살다가 보면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다더니만 심장이 떨리는 경험을 한 것이 처음이기는 하지만 설마하니 연분을 만나서 그렇다고야 하겠나? 몸은 몸이고 마음은 마음일 테니 말이지. 하하~!”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진명이 우창의 말을 흉내 내면서 말했다.

하하하~ 그렇 한데 기분은 좋군. 이게 무슨 조화인지 나도 모르겠지만 말이야. 몸이 먼저 알아본다는 말의 뜻이 이것일까? 하하하~!”

진명이 이렇게 말하자 자원과 춘매도 같이 웃었다. 그러자 잠시 후에 춘매가 말했다.

스승님은 가슴이 떨리셨네요. 춘매는 가슴에 구멍이 뻥~ 뚫린 것 같은 이것은 뭐죠? 흡사 사랑하던 오라버니에게 여인이 생긴 마음이 이런 것일까요? 이런 경험도 처음인걸요. 호호호~!”

춘매는 항상 솔직했다. 느끼는 대로 말하니 자원이 한마디 거들었다.

그건 자원도 마찬가지야. 그러니 춘매의 마음을 헤아리고도 남겠어. 그렇게 함께했으면서도 이런 감정은 없었는데 말이야. 참으로 신기하네. 한 사람이 왔다 가면서 소용돌이를 일으켰잖아. 그런데 그 여인이 밉지 않은 것은 또 왜일까? 내 서재에서 한참을 이야기 나눴는데 묘한 매력이 있던걸. 호호호~!”

우창이 문득 두 여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특히 춘매는 온 정성을 다해서 자신을 챙겨줬는데 혹 그 마음에 상처나 받지 않을까 싶은 염려도 되었다. 이러한 마음을 헤아리기라도 한 듯이 자원이 말했다.

자원도 예전에 그러한 감정을 느껴봐서 알아요. 그야말로 질풍노도(疾風怒濤)와 같아서 걷잡을 수가 없죠. 이것이 인연인가 봐요. 그러니까 스승님께서는 궁합이나 봐줘요. 두 분의 인연이 명학으로는 어떻게 해석이 되는지가 궁금하거든요. 호호호~!”

자원이 이렇게 말하자 우창도 마음에 평온(平穩)을 되찾았다. 그리고는 사주를 보면서 말했다.

우창의 팔자에 있는 처궁(妻宮)에는 배우자의 일간(日干)이 토()나 목()이나 수()가 될 암시인데 최은주의 사주에서 일주인 을미(乙未)를 본다면 목이 되겠으니 인연이 있다고 하겠고, 최 낭자는 배우자 궁에 미()가 있으니 토()나 화()나 목()이 되는데 내가 무진(戊辰)이니 서로 인연이 된다고는 하겠지만 궁합을 권할 정도는 아니라고 해야 하지 않겠어?”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진명이 웃으며 말했다.

무토(戊土)가 을목(乙木)을 만났으니 꼼짝하지 못하고 엄처시하(嚴妻侍下)에서 살아가시겠어요. 인연이란 참 오묘하네요. 호호호~!”

진명의 말을 듣고서 춘매가 말했다.

어머나, 그렇게 안타까운 일이 스승님의 운명이란 말이에요? 어쩜 좋아요. 그것을 옆에서 지켜봐야 하는 춘매는 가슴이 미어지겠어요. 호호호~!”

 

 

제자들의 놀림 반 부러움 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창도 참 신기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