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0] 제30장. 정신(精神)/ 12.시간의 조짐(兆朕)

작성일
2021-09-30 0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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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0] 제30장. 정신(精神) 


12. 시간의 조짐(兆朕) 


※제목이 중복되어서 수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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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마음이 이러할진대 하물며 당사자라고 생각되었던 채운의 마음이야 오죽했으랴~! 심장이 얼어붙는 듯이 쫄깃한 격동(激動)으로 떨리기조차 했다. 그 마음을 읽기라도 했다는 듯이 우창이 다시 간지를 보면서 말을 이었다.

329 지금사주

“어떤가? 이상하면서도 재미있지? 그냥 즐기면 되는 거야. 너무 긴장하지 말고. 하하하~!”

“스승님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시지만, 정말 긴장이 되어서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를 지경이에요. 도대체 지금 무슨 조화의 속으로 빠져들어서 다른 생각은 할 수도 없어요. 이것이 도대체 무슨 뜻이에요?”

우창이 다시 차분하게 물었다.

“지금 우창이 이렇게 채운과 대화하는 것은 우연(偶然)일까?”

“우연이라고 할 수가 없죠. 제자가 어제 이곳으로 왔던 것도 필연이고, 지금 이 시간에 다른 사형제들과 함께 모여 앉아서 스승님과 문답을 나누는 것도 우연이라고 할 수가 없으니까요. 그래서 필연(必然)이라고 해야 할까 봐요.”

“맞아, 항상 우연처럼 다가오는 필연인 거야. 하하하~!”

“그런가 싶어요. 그런데 왜 그런 필연이 여기에서 사주로 드러나는 것일까요? 명학을 공부했지만 이렇게 신기한 꼴은 처음 겪어서 얼떨떨하면서도 신묘한 느낌이 호기심을 자극해요.”

“자, 다시 무인(戊寅)을 볼까? 어떤 상황이지?”

“절처봉생(絶處逢生)이에요.”

“오호~! 공부를 잘했어. 항상 삶은 절처(絶處)에서 비로소 봉생(逢生)이 되는 것이니까 말이야.”

“맞아요. 언제나 끝까지 시련을 겪고 나면 어렴풋하게나마 길이 보이곤 했어요. 이것이 절처봉생이라고 하면 잘 어울리겠네요.”

“아마도 자신의 길을 찾아보려고 무진장 애를 썼지만 어떻게 해야 올바른 길로 갈 수가 있는 것인지를 못 찾아서 마음으로 방황을 많이 했다는 이야기가 되는데 실제로도 그런가?”

우창이 이렇게 묻자, 옆에서 감동적인 표정으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수경이 대신 답했다.

“스승님, 말씀하신 대로에요. 채운은 항상 공부하면서도 스승님께서 가르치는 것에 대해서 안타까워했죠. 이것이 본래의 목적은 아닌데 왜 이런 것을 배우면서 시간을 허비해야 하느냐고 남에게는 말하지 못하고 늘 제게 푸념을 했거든요. 제가 언니처럼 감싸주면서 조금만 더 공부를 해 보자고 다독거리곤 했죠.”

그러자 채운의 얼굴에는 두 볼을 타고 눈물이 주루룩~ 흘러내렸다. 수경의 말로 인해서 자신의 심금(心琴)을 울렸던 모양이다. 다른 사람들도 손에 땀을 쥐고서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잠시 후 채운이 말했다.

“스승님, 이것이 절처봉생이네요. 인중병화(寅中丙火)는 과연 존재하는 것인지 항상 의문이었어요. 오늘에서야 비로소 그것은 진실로 그 자리에 존재하면서 밝은 스승으로 때가 되면 드러난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스승님이 바로 인중병화니까요.”

이렇게 말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우창을 향해서 합장했다. 우창도 마주 합장했다. 채운이 잠시 마음을 진정시킨 다음에 말했다.

“스승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들으면서 미월(未月)의 정화가 바로 수경 언니라는 것을 느꼈어요. 항상 옆에서 격려해주고 같이 마음으로 동정해주는 언니와 오빠들이 있었거든요. 비록 직접적으로 큰 힘은 되지 못하더라도 마음으로라도 위로해 주는 것이 큰 의지가 되었던 것도 사실이에요. 다만 항상 마음에 미흡했던 것은 그것이 아니라 확연(確然)한 깨달음을 얻지 못했다는 아쉬움이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오늘 임계수(壬癸水)의 설명을 들으면서 이제 뭔가 제대로 길을 찾은 것이라는 희망을 보았어요.”

“진실로 아름다운 일이지. 시주(時柱)는 어떻게 보이는가?”

“아, 정사(丁巳)시네요. 비로소 온 천지의 모두가 제 스승이 된다는 뜻일까요? 참으로 놀라운 그림이네요. 어쩜 이럴 수가 있을까요? 그런데 인사형(寅巳刑)은 어떻게 봐야 할까요?”

“무슨 상관이라고. 하하하~!”

“예?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말씀이신가요? 옛날에는 그것이 매우 중요해서 생명을 좌지우지(左之右之)한다고조차 배웠는데....”

“그냥 웃으면 되네. 하하하~!”

“그렇지만 이치를 알아야 궁금한 마음을 내려놓고 웃을 수가 있겠는걸요.”

“아, 그런가? 그럼 내가 이렇게 물어볼까? 관청(官廳)에는 등급(等級)이 있던가?”

“물론이에요. 현(縣)에는 현령(縣令)이 있고, 다시 부(府)에는 부사(府使)가 있고, 그 위에는 또 어사(御史)도 있고, 최고 위에는 임금이 계시잖아요.”

“옳지, 마찬가지야. 명학에서도 맨 아래에는 육친(六親)과 십성(十星)이 있고, 그 위에는 간지(干支)가 있고, 다시 그 위에는 오행(五行)이 있지. 그리고 모든 문제는 최종적(最終的)으로 오행법(五行法)으로 다스리게 된다는 것도 알아두면 좋을 거야.”

“예? 오행법이라고요? 오행은 기본적인 것이 아니었나요? 최고법이라고 하시니까 언뜻 이해가 되지 않아요. 아니 이해라기보다는 믿을 수가 없다는 말씀이 더 맞겠어요. 설명을 해 주세요.”

“마을이나 현에서는 항상 문제가 생기게 되지. 그러면 결국은 판결을 받기 위해서 임금을 알현(謁見)해야 한다네. 그리고 임금이 내리는 법이야말로 국법(國法)이 되니까 누구도 거역할 수가 없고, 또 그만큼 공명정대(公明正大)하단 말이지. 오행도 그와 같아서 공명정대한 이치라야 하는데, 형법(刑法)이 상법일까? 국법이 상법일까?”

“그야 국법이 최고(最高)의 상법이죠. 형법조차도 국법에서 정한 대로 시행하는 것이니까요.”

“옳지, 채운이 참 명석(明晳)하구나. 오행법에서 목생화(木生火)라고 했으면 그 나머지의 소소한 문제는 모두 묻히고 마는 거라네. 하하하~!”

“아하, 그런 뜻이었네요. 그렇다면 형충파해(刑沖破害)는 모두 지엽적(枝葉的)인 부분에 불과하다는 의미잖아요? 그런 것을 배우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소모했는데요.”

“원래 정법(正法)을 알기 위해서는 그러한 것도 알아야지. 다만 그것이 전부인 줄로 알고 거기에 매달려 있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 되는 것이라네. 이제 삼형(三刑)은 오행법으로 판단해 봤을 적에 해당이 없으므로 저 멀리 던져버리면 된다네. 하하하~!”

“정말이에요? 그렇다면 공부는 또 얼마나 수월할까요?”

채운이 그렇게 말하자, 우창이 손바닥을 한 번 보여주고 다시 손등을 보여주고는 채운을 보고 웃었다. 채운도 그 모습을 보고서 미소를 지었다.

“오행의 이치는 손바닥을 뒤집는 것과 같다는 말씀이잖아요. 그동안 공부를 한 것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요?”

“그동안의 공부가 있었기에 지금 하는 말의 의미를 가슴 깊이 받아들여서 깨달을 수가 있는 것인 줄도 알아야 하지 않을까? 하하하~!”

“아, 맞아요. 스승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까 오늘 입문했다면 이러한 말씀을 알아들을 방법이 없었겠어요. 그래도 헛된 공부를 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 대해서 위안이 되네요. 호호호~!”

“물론이지. 헛된 경험은 없는 것이 뭐라고 했던가?”

“계수(癸水)라고 하셨어요. 이렇게 공부하는 것이었네요. 비로소 공부의 길을 찾은 듯해요. 호호호~!”

“그렇다면 이제는 새로운 공부를 향해서 진일보(進一步)하는 것으로 생각하면 된다네.”

우창은 이렇게 말하고서 주사를 찍어서 시주(時柱)의 왼쪽에 간지를 썼다.

330 오주괘

우창이 쓴 신해(辛亥)를 본 채운이 의아한 눈으로 우창을 바라봤다. 처음으로 보는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스승님, 이것은 무슨 뜻인지요?”

“조짐(兆朕)이라네. 하하하~!”

“어디에서 날아온 조짐인지 궁금합니다.”

“분주(分柱), 그러니까 시주(時柱)에서 날아온 것이라고 해야 할까?”

“시주에서 나온 것이라는 말씀이죠? 오호~!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지 알려주세요. 궁금해요.”

“상관(傷官)이 보이나?”

“예, 신금(辛金)이 드러났습니다. 이것은 상관이네요.”

“상관이 또 상관을 봤는가?”

“맞습니다. 신금(辛金)에게 해수(亥水)는 상관(傷官)이기도 합니다.”

“결국은 말문이 터져서 공부를 잊게 될 날이 다가온다고 하겠군.”

“예? 그것은 무슨 뜻인지요? 공부를 잊다니요? 사해충(巳亥沖)으로 공부는 중단된다는 뜻인가요?”

“어? 아니, 하하하~!”

“그 뜻이 아닙니까? 딱 봐도 그런 조짐인데요. 그렇다면 스승님을 만나서도 공부를 마무리 짓지 못한다는 뜻이잖아요?”

채운은 갑자기 그 마음에 먹구름이 낀 듯이 우울해졌다. 기대를 이렇게도 무심하게 져버리는 간지가 있다는 것이 원망스럽기조차 했다. 그 마음을 이해한 우창이 웃으면서 말했다.

“배가 고파서 오로지 밥을 먹을 생각만 간절했던 사람이 밥을 배불리 먹은 다음에도 밥을 생각하게 될까?”

“아닙니다. 이미 원하는 것을 구했으면 그것은 잊고 다른 것을 구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 봐, 공부를 다 이룬 다음에도 공부를 신주(神主)처럼 떠받들고 다닐 텐가? 아니면 헌신짝처럼 던져버리고 자유롭게 천하를 유람(遊覽)할 텐가? 그래서 불가(佛家)에서는 사교입선(捨敎入禪)이라고 한다지. 하하하~!”

“예? 아하~! 그 뜻이었어요? 깜짝 놀랐잖아요. 후유~!”

이렇게 말을 하면서 가슴을 쓸어내리는 채운을 보면서 우창이 말했다.

“공부를 잊는 것은 더 배울 것이 없다는 의미라네. 그리고 통변(通辯)의 말문이 활짝 열려서 누가 무엇을 묻더라도 거침없이 답을 찾아서 장광설(長廣舌)을 펼치게 될 테니까 이보다 더 아름다운 일이 또 있을까?”

“그렇게만 된다면 더 바랄 것이 무엇이겠어요. 꿈에도 바라는 바입니다.”

“분주(分柱)의 조짐이 그러한 것을 보여주고 있으니 열심히 정진하면 이뤄질 것으로 보겠네. 하하하~!”

“정말요? 믿어지지는 않습니다만, 그렇게 믿고 싶어요. 아마도 우리 사형제들 모두의 마음이지 싶어요. 이제야 비로소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를 깨달았어요. 정말 만족스러워요. 그리고 감사하고요. 호호호~!”

“알게 된 것들을 저장만 하면 굳어있는 계수(癸水)의 지식(知識)에 불과하지만 열기(熱氣)를 줘서 수증기가 되면 비로소 구석구석을 누비고 다니면서 맺히고 엉킨 실타래를 시원하게 풀어낼 것이네.”

“아, 열정(熱情)이 필요한 것이었네요. 그러고 보니까 임수(壬水)는 정화(丁火)를 만나서 합을 한 것인가요?”

“당연하지~!”

“와우~! 음란지합(淫亂之合)이 아니었어요?”

“음란지합은 왜?”

“그렇게 외웠거든요. 아무런 의미가 없었네요. 계수가 정화를 만나면 정임합이 되어서 자유롭게 허공중을 떠다니는 것이었어요. 호호호~!”

“옳지. 그렇게 관하는 것이야말로 올바른 오행관(五行觀)이라고 하겠군.”

“과연, 오행원이 왜 오행원인지 비로소 깨달았어요. 오행만으로 세상을 누비고 다닐 만하다는 이치가 그 안에 있었네요. 호호호~!”

“아무렴. 만약에 오행으로 되지 않는다면 다른 무엇으로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면 말이지. 하하하~!”

“비로소 오상(五常)에서의 지(智)가 왜 수(水)와 연결이 되는지를 깨달았어요. 흐르는 물처럼 간단(間斷)없이 흘러가는 것은 지혜라는 것을 이렇게 해서 깨닫게 되네요. 멈추는 것은 지혜가 아니고 무엇일까요?”

“빙설(氷雪)~!”

“빙설이라니요? 얼음과 눈이라는 뜻이잖아요? 왜 그렇죠?”

“그것은 얼어붙어서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기 때문이라네.”

“그것도 녹으면 물이 되는데요?”

“녹이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열기가 필요하죠.”

“그것도 정임합이라네. 하하하~!”

“아하, 그러니까 물은 다시 자유롭게 비상(飛上)을 하려면 반드시 정화(丁火)의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것이었군요. 재미있어요.”

“계(癸)가 정(丁)을 만나면 어떻게 되지?”

“그야 불을 꺼버리게 되겠네요. 그러면 수극화(水剋火)가 되나요?”

“물론이라네. 그러다가 정화의 열기로 계수를 증발시키면?”

“그러면 정임합이 되니까 화생수(火生水)가 되는 것으로 봐도 될까요?”

“틀림없지. 하하하~!”

“참으로 무궁무진(無窮無盡)하네요. 이것이 오행이었네요. 처음에는 단순히 생극(生剋)의 이치를 생각했었는데 오늘 스승님의 가르침으로 인해서 비로소 깨달았어요. 생(生)중에 극(剋)이 있고, 극중에 생이 있었네요. 참으로 놀라워요.”

채운이 감동하는 것을 본 우창도 기분이 좋았다. 가르쳐 주는 것을 듣고서 또 다른 세상을 깨닫는다는 것은 참으로 기쁜 일이기 때문이다.

“계(癸)가 다른 아홉 개의 천간(天干)을 필요로 하겠지만 특히 필수불가결(必須不可缺)한 것이 무엇인지 이제 알겠나?”

“알겠어요. 계가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이야말로 정(丁)이에요. 정이 없으면 정체(停滯)되어서 쌓이기만 할거에요. 그런데 정이 뭉친 것을 풀어서 산산이 흩어놓으면 비로소 다시 활성화(活性化)가 되어서 새로운 세상으로 전개되어가는 것이니까요. 이러한 이치를 모르고서 정계충(丁癸沖)이라고 해서 서로 만나면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 난다고만 배웠어요. 그러니 더 깊은 이치가 그 안에 있다는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어요. 배우는 열정도 중요하지만 가르치는 자의 수준은 참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았어요. 호호호~!”

“열정(熱情)은 온전히 정(丁)의 몫이겠지?”

“맞아요. 사람도 열기가 떨어지면 오한이 들고 만병이 침범하게 되고 자연도 열기가 떨어지면 모든 활동을 중지하고 기나긴 동면(冬眠)으로 들어가게 된다는 것을 생각했어요.”

“그렇다면 열정(熱情)과 격정(激情)의 차이를 알 수 있을까?”

“열정은 꾸준히 타오르는 불과 같다면 격정은 순식간에 타올라서 사라져버리는 번갯불과 같은 것이 아닐까요?”

“오호~! 잘 이해하고 있네. 그렇다면 하나는 생화(生火)이고 또 하나는 극화(剋火)이겠지?”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어요. 열정은 만물을 생화(生火)하는 작용을 하는 것이라면 격정은 만물을 멸화(滅火)하는 역할을 하게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맞아. 격정적인 것은 만물을 불태워버리지, 남녀의 애정(愛情)도 격정적으로 불타오르게 되면 모두 불타버리고 후회만 남게 될 수도 있지만, 열정적인 마음으로 사랑하게 되면 100년을 살면서도 항상 서로를 향한 따뜻한 마음으로 날마다 온기를 나눌 수가 있게 되는 것이라네.”

“아, 그렇군요. 그렇다면 가령, 계(癸)는 하나인데 정(丁)이 넷이나 된다면 이러한 경우에는 격정이라고 할 수가 있을까요?”

“오호~! 균형(均衡)과 불균형(不均衡)을 떠올렸단 말인가? 멋진 생각이네.”

우창은 채운의 기발(奇拔)한 생각에 칭찬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을 한 것일지라도 그 내용이 참신하고 창의적일 때는 아낌없이 칭찬해야 계속해서 그 방향으로 길을 찾아갈 수가 있기 때문이었다.

“자월(子月)에 만나는 정(丁)의 넷은 견딜 만하겠지. 그러나 오월(午月)에 만나는 넷은 또 어떨까?”

“와~! 무슨 말씀이신지 알 것 같아요. 호호호~!”

“어디 지금 느낀 그대로 말을 해 보게나.”

“스승님의 말씀으로는 단순히 글자의 개수로만 말하면 안 된다는 뜻이잖아요? 같은 네 개의 정(丁)이라도 자월의 혹한(酷寒)에서는 이미 천기(天氣)는 냉기(冷氣)로 가득하게 되었기 때문에 넷이 아니라 다섯이라고 해도 균형을 무너트리기 어렵겠지만 폭염(暴炎)의 오미(午未)월이라면 하나의 정(丁)만 있더라도 이미 균형이 무너질 것을 두려워해야 한다는 말씀이잖아요?”

“과연 멋진 궁리로군. 이것이야말로 조화(調和)의 묘리(妙理)라네. 하하하~!”

“맞아요. 의원이 약을 조제 할 적에도, 감초를 세 쪽을 넣을지 한쪽을 넣을지를 환자의 상황에 따라서 판단해야 하는데, 지혜가 계(癸)에 머무르고 있는 의원이 책에 쓰인 처방(處方)만 보고서 약을 짓는다면 조화의 묘리를 깨닫지 못하고서 이미 정해진 것으로 조제하는 것과 같아요. 환자는 살아있는데 약방문은 죽어있으니 죽은 것으로 산 것을 대한다는 것이 얼마나 우스운 일인지를 생각하지 못하면 그러한 일이 발생할 수가 있는 것이라고 하겠어요. 호호호~!”

이렇게 말하면서 해맑게 웃는 채운을 보면서 이들이 오행원으로 찾아온 것이 헛된 일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안도감이 생겼다. 실로 한꺼번에 많은 사람이 찾아와서 공부하다가 또 썰물처럼 떠나간다면 그것도 안타까운 일이라는 생각도 했었기 때문이다. 기대하는 마음으로 왔다가 상처만 받고서 다시 떠나간다면 그것이야말로 남의 스승 된 자의 부끄러움이기 때문이었다. 우창의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모든 사람이 이야기에 젖어 들어서 이치와 하나가 되어가는 모습이었다. 우창이 다시 마무리 삼아서 말했다.

“오행은 생극(生剋)의 이치로 생멸(生滅)하는 것이라네.”

“참으로 심오(深奧)해요. 그동안 알고 있었던 생(生)은 목생화(木生火), 화생토(火生土), 토생금(土生金), 금생수(金生水), 수생목(水生木)의 변화뿐이었잖아요. 여기에다가 극(剋)은 목극토(木剋土), 토극수(土剋水), 수극화(水剋火), 화극금(火剋金), 금극목(金剋木)을 외우는 것만으로 오행의 생극은 모두 공부했다고 생각했다는 것이 지금 생각해보니 얼마나 우스운 것이었는지를 확연히 깨닫고 보니 이렇게 기쁘고 즐거울 수가 없네요. 호호호~!”

“그래서 공부를 잘할 수가 있느냐고 누가 물었더라도 그에 대한 해답은 하나가 아니겠지?”

“물론이죠. 하나가 아닐 뿐만 아니라 사람마다 맞는 답이 서로 다를 테니까 그야말로 이 사람에게는 이렇게 말하고, 또 저 사람에게는 저렇게 말하는 것이 맞을 것인데, 이치를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이라고 할 수밖에 없겠네요. 그 의미가 비웃는 뜻으로만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까 자연의 이치를 깨달은 사람이야말로 걸림이 없이 같은 이치를 귀에도 걸고 코에도 걸 수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호호호~!”

“이렇게 계(癸)를 통해서 정(丁)도 깨닫고 임(壬)도 깨닫게 되니 또한 얼마나 큰 수확인가 말이야. 하하하~!”

“어디 그것뿐인가요? 화생수(火生水)도 배우고, 세상에는 고정된 이치도 있으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도 깨달았으니 이보다 더 큰 공부는 세상에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자신이 한 말을 수시로 바꾸면 일구이언(一口二言)이라고 하지만, 실로 이치를 깨달은 사람은 일구이언이 아니라 일구삼언, 일구십언도 아무런 거리낌이 없이 자유롭게 구사한다는 것도 알아야겠지?”

“과연~! 이치의 오묘함이란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어요. 호호호~!”

우창이 이야기를 나누느라고 시간이 흘러가는 것도 모를 지경이었는데 문득 춘매가 주방에서 나와서는 우창에게 밥을 떠먹는 시늉을 하는 것을 보고서야 비로소 점심을 먹어야 할 시간이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자 마무리 삼아서 한마디 물었다.

“자, 여기에 맛은 없지만 깨끗한 음식이 있고, 또 한쪽에는 깨끗한지는 몰라도 맛은 좋은 음식이 있다고 하면 여러분은 어느 것을 선택하겠습니까?”

이렇게 말을 던지고서 표정들을 살펴봤다. 그러자 저마다 옆에 있는 도반들과 의논하느라고 웅성거렸다. 그러자 한 제자가 손을 번쩍 들었다. 우창이 말을 해 보라고 하자 그가 말했다.

“스승님의 질문을 듣고 보니까 미처 생각지 못한 이치가 그 안에 있습니다. 맛있는 음식이 혀끝을 위한 것이라고 한다면 깨끗한 음식은 몸을 위한 음식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다면 혀는 맛있는 것을 추구하지만 몸은 깨끗한 것을 원한다는 뜻으로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창은 뜻밖에 명쾌한 정리를 하는 제자의 말을 듣자 재미있었다.

“그대의 아호는 어찌 되시는지?”

“예, 제자의 이름은 호병문(胡炳文)이고 호는 운봉(雲峯)입니다. 스승님의 가르침을 감동하면서 듣고 있는데 음식에 대한 말씀을 들으면서 과거에 객잔(客棧)을 운영해 본 경험이 떠올랐습니다. 정신수련을 하는 손님은 깨끗한 음식을 찾지만, 세속적인 오욕(五慾)을 좇는 사람은 항상 맛이 좋은 것이나 심지어 정력(精力)에 좋은 음식을 찾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명쾌하게 설명할 수가 없었는데, 오늘 스승님의 말씀을 듣고서 의미를 생각하다가 보니까 그것이 확연하게 구분되었습니다. 맞게 생각한 것인지요?”

“오호~! 운봉의 설명이 절묘(絶妙)하네. 과연 학자의 기질을 타고나셨으니 반드시 큰 깨달음을 누리실 것은 틀림이 없겠네. 하하하~!”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춘매가 그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문 앞에서 한마디 했다.

“자, 여러 도반님들이시어. 공부하느라고 마음은 열정으로 충만되었으나 반대로 시달린 몸은 지쳐서 허할 것이에요. 이제 잠시 마음은 내려놓고 몸을 위해서 맛은 없지만 깨끗하기는 한 음식으로 배를 채워주시기 바랍니다. 호호호~!”

그러자 수경이 손을 들고 물었다.

“그런데 스승님. 깨끗한 음식이란 무엇을 말합니까?”

수경의 질문에 우창이 미소를 짓고서 답했다. 누군가 그렇게 물어주기를 내심 바라고 있었는데 마침 가려운 곳을 수경이 긁어준 것이다.

“오~! 잘 물었네. 깨끗한 음식은 정성으로 만들어 준 것을 기쁜 마음으로 받는 것이라네. 마치 불가의 화상들이 탁발을 나가서 시주하는 자의 정성으로 마련된 공양물을 받는 것과 같다고 하겠지.”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맛있는 음식은 또 어떤 것입니까?”

“맛있는 음식이란, 노력은 적게 하고 몸에만 이로운 것을 말한다네. 몸이 알아보지. 그래서 혀끝에서 좋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필시 맛있는 음식일 것이지만, 몸에서 좋다고 한다면 그야말로 부담이 없이 즐겨도 되는 음식이라고 할 수가 있다네. 물론 몸이 편안하다면 마음에서도 잘 받아들이겠지? 음식에는 모쪼록 사념(思念)이 없어야 한단 말이지.”

“예? 사념이라니요? 음식에도 사념이 있나요?”

수경이 이해가 되지 않았는지 다시 물었다. 그러자 우창이 받아서 말했다.

“당연하지 않은가? 가령 관리에게 사업을 하는 사람이 밥을 대접한다고 하면서 매우 비싼 음식점에서 희귀하고 비싼 요리를 대접한다면 그것을 먹으면서 맛이 있다고 생각하면 몸을 위한 것이고, 맛이 없다고 생각하면 마음을 위한 것임을 알면 된다네. 하하하~!”

그제야 수경은 이해가 되었다.

“와우~! 그런 심오한 가르침이셨군요. 이제 잘 깨달았어요. 음식은 모쪼록 깨끗해야 하네요. 그런 의미에서 춘매 사저가 만들어 준 점심은 이 마음에선 분명히 꿀맛이겠어요. 아, 깨끗한 꿀맛이요. 호호호~!”

점심을 먹기 위해서 공부를 멈추고 분주하게 상을 차리고 저마다 삼삼오오 둘러앉아서 맛있는 점심을 즐겼다. 그렇게 밥을 먹고는 모여서 의논하고는 내일부터는 밥을 지을 적에 당번으로 두 사람씩 돌아가면서 춘매의 일손을 도와주기로 했다. 사실 춘매 혼자서 밥을 차리는 일은 매우 벅찬 것이기도 했다. 다들 알아서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을 보면서 우창도 흐뭇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