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9] 제30장. 정신(精神)/ 11.무한(無限)한 탐색
작성일
2021-09-25 0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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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9] 제30장. 정신(精神)
11. 무한(無限)한 탐색(探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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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운의 질문에 우창이 미소를 짓고 말했다.
“수증기(水蒸氣)를 기체(氣體)라고 한 선생이 하충 스승님이시라네.”
“처음 듣는 존함이네요. 그 스승님은 어디 계시는 분이신가요?”
“이미 고인이 되셨지. 생전에 남긴 서책에서 그렇게 말씀하셨다네. 놀라운 통찰력이잖은가?”
“정말 그렇게 생각하신 고인이 계셨군요. 물방울이 증발해서 수증기가 된다는 말씀이 의아했는데 그렇게 관찰하신 분도 계셨다는 것이 놀라워요.”
“자, 중요한 것은 원론적(原論的)인 것도 좋지만, 그것을 어떻게 응용해서 이해하고 활용할 것인지가 중요하다네. 그러니까 지식을 최대한으로 많이 담아놓고 상황에 따라서 그것을 활용할 궁리를 하는 것이 현명하겠지?”
“당연하죠~! 임수(壬水)와 수증기는 참으로 충격적(衝擊的)이었어요. 그렇다면 수증기의 속성(屬性)을 이해하면 임수의 마음도 파악할 수가 있는 것일까요? 어떻게 활용해야 잘 썼다고 소문이 날까요?”
언저리를 맴돌던 대화는 그제야 본론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임(壬)의 마음을 살펴봐야 할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만들어가고 있는 채운의 재치(才致)가 돋보였다.
“과연 채운이 이야기의 흐름을 잘 끌고 가고 있군. 그것도 수(水)라네. 물은 흐름을 제외하면 말이 안 되니까 말이지. 하하하~!”
“정말요? 스승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면 그런 줄로 알겠어요. 호호호~!”
“자, 또 생각해 볼까? 어떤 마음일까?”
우창이 채운에게 물었다. 그야말로 밑도 끝도 없이 툭~ 던진 말이었다. 이러한 방식은 어떤 생각이든 이끌어 내려고 폭이 넓게 그물을 치는 의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폭이 넓은 그물을 던져 놓으면 무엇인가 걸리는 것을 봐 가면서 방향을 잡으면 또 하나의 흐름이 되는 까닭이다. 채운의 다음 말을 기다리는 모두의 마음을 이해라도 한 듯이 바로 이어서 말이 나왔다.
“수증기를 습기(濕氣)라고 해도 되겠죠?”
“물론이지.”
“습기는 다소(多少)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어디에나 있을 것으로 생각이 되어요. 이것을 비유로 적용한다면 연구하는 것에도 벽이 없다고 보면 어떨까요?”
“옳지~!”
“맞아요? 와우~! 스승님께서 맞는다고 말씀해 주시니까 용기가 솟아나요. 호호호~!”
“그런 마음은 또 어떻게 작동할까?”
우창이 다시 생각할 겨를도 주지 않으려는 듯이 바로 답을 독촉했다. 그러자 채운도 망설이지 않고 답했다.
“스승님, 물은 아래로 흘러가지만, 습기는 사방팔방으로 파고들잖아요. 그것은 흡사 공기와 같다고 할 수가 있겠네요. 공기에는 반드시 습기가 있을 테니까요.”
“그래서?”
“무엇이든 탐색(探索)하고 모색(摸索)하고 궁리(窮理)하는 것으로 보면 되겠어요.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그것을 느꼈어요. 혹 스승님의 사주에는 임수(壬水)가 있으세요?”
갑자기 돌발적인 물음에 우창이 바로 답했다.
“있지.”
“맞네요. 다시 말하면 누구나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라는 거에요. 임(壬)의 영향을 받는 사람에게는 공기와 같은 끊임없는 탐색이 이어지고 있지만, 그러한 영향을 받지 않는 사람에게는 사물의 본질에 대해서 탐색한다는 것도 전혀 모르고 있을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꼭 그렇지는 않아. 사주와 무관하게 누구나 살아가는 과정에서는 나름대로 궁리를 하는 것이니까 말이야.”
“그것은 다르지 않을까요? 형이하학적(形而下學的)인 물질에 대해서 궁리하는 것은 그럴 수도 있겠지요. 이를테면 밭에서 김을 매는데 호미보다 더 좋은 도구를 어떻게 만들면 될 것인지를 궁리하는 것이라던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가능하겠지만, 스승님처럼 형이상학적(形而上學的)으로 추론(推論)하고 궁리하는 것은 아무라도 가능한 것은 아니에요. 그러니까 스승님이 그렇게 잘하신다고 해도 또 어떤 사람은 잘되지 않죠.”
“그럴까? 틀린 말은 아니지만 실은 맞는 말도 아니라네. 왜냐면 내가 궁리해서 이야기하면 여기에 동조하는 것은 궁리가 아니라도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지. 가령 임(壬)은 수증기라고 했을 적에 그 이야기를 들은 채운은 습기로 치환(置換)해서 이해하듯이 말이야.”
“아하~! 그렇군요. 그러니까 깊고 얕은 차이는 있을지라도 궁리는 누구나 가능하다고 수정해야 하겠어요. 호호호~!”
“옳지, 잘 이해하셨구나. 그러면 되지.”
채운의 의문은 이렇게 하나씩 풀려가고 있었다. 하나가 해결되면 또 하나가 생기는 것이 학문의 길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다시 궁금한 것이 생겼어요. 습기가 떠돌아다니면서 경험한 것이 나중에 물이 되었을 적에는 생각하고 궁리한 것이 다시 지식으로 쌓이는 것도 가능한 것일까요?”
“당연하지. 음양의 이치는 선후(先後)가 다시 뒤바뀌기도 하는 것이니까 말이야. 그리고 정해진 것은 없어. 궁리하다가 말이 되면 그것이 진리인 거야. 너무 고정된 기준을 갖고서 대입하고 궁리하게 되면 도처(到處)에서 장애물을 만날 따름이야. 그래서 사유(思惟)는 유연(柔軟)하게 하되 판단(判斷)은 민첩(敏捷)하게 하라는 것이 아니겠어?”
“아, 그렇군요. 사유는 유연하게 하고, 판단은 민첩하게 하라는 말씀이군요. 그렇다면 저의 사유는 경직(硬直)되어 있었고, 판단만 민첩하니까 유연한 사유를 기르면 어느 정도 기본적인 바탕은 된다고 하겠네요.”
“맞아, 그렇게 자신이 뭘 모르고 있는지를 찾아내면 비로소 공부는 자리를 잡는 것이라네. 하하하~!”
두 사람의 대화를 조용히 음미하면서 듣고 있던 수경이 손을 들었다. 할 말이 있다는 신호였다. 그러자 우창이 채운과의 말을 멈추고 수경에게 눈길을 돌렸다.
“오, 수경, 궁금한 것이 생겼나 보군. 말해 보시게.”
그러자 수경이 종이에 글자를 썼다.
“스승님, 이 임(壬)을 보면서 허공에 무엇인가 가득한 것으로 보였는데 이것이 제대로 본 것인지 궁금해져서 여쭙고 싶습니다.”
“아, 가운데의 십(十)을 말하는 것인가?”
“그렇습니다. 열 십(十)이잖아요. 열 개라는 의미는 가득하게 찼다는 것을 의미하니까 혹 공기 중에 가득한 것이라는 뜻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호~! 수경도 소질이 있군. 하하하~!”
우창이 칭찬을 하자 수경이 반신반의(半信半疑)하면서 다시 물었다.
“그러니까 일리가 있다는 말씀이신지요?”
“당연하지. 텅 빈 허공에 가득 채워져 있는것이 임(壬)이니까 말이야. 그런데 글자가 그렇게 생긴 이치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까?”
“아, 설명해 주세요. 임(壬)은 왜 그렇게 생겼을까요? 수경은 십(十)자밖에 안 보이는데 그 외에도 다른 뜻이 있다는 말씀이시죠?”
“그야 누가 알겠는가? 다만 자유롭게 생각을 해 볼 따름이지. 하하하~!”
이렇게 말을 한 우창이 붓을 들어서 임(壬)옆에 글자를 써 넣었다.
우창이 적어넣은 글자를 살펴보던 수경이 물었다.
“아니, 스승님의 설명을 봐서는 가운데의 십(十)이 공기뿐만이 아니라 일체만물(一切萬物)이라는 말씀이신가요? 이것도 놀라운 비약(飛躍)이네요.”
“고정된 지식은 변화를 만나서 더욱 새로운 것이 되지 않겠나? 하하하~!”
“그렇긴 합니다만, 이렇게 보신 연유를 듣고 싶어요. 풀이해 주세요.”
호기심이 가득한 수경의 표정을 보면서 우창이 설명했다.
“아래의 한 일(一)은 지상(地上)의 경계로 봤지. 사람의 눈에서 가장 낮은 곳이기도 하니까 말이네.”
“예, 수경도 이해가 됩니다.”
“위의 삐침 별(丿)은 하늘을 의미한다고 생각했지. 하늘이 끝은 없지만 표시를 한다면 이렇게 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말이지.”
“그럴 수가 있겠어요. 그러니까 위로는 하늘이고 아래로는 땅이잖아요?”
“옳지, 그 사이에 있는 것이 어찌 공기 뿐이겠어? 그래서 십전(十全)이라고 하듯이 모든 것이 다 포함된다면 비로소 십(十)이라고 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되겠다고 생각했지.”
“정말, 탁월한 견해시네요. 임(壬)에서 우주(宇宙)를 살피신 것이잖아요? 그러니까 그 안에 모든 것이 있고, 그 모든 것은 공기(空氣)를 필요로 하고, 그러니까 결국은 공기로 가득하게 채워져 있다는 뜻인 거죠?”
“오호~! 수경의 관점이 내가 미쳐 생각하지 못한 곳까지 미치는 걸. 멋지네. 하하하~!”
우창이 매우 만족해서 칭찬했다. 그러자 수경이 미소를 짓고는 말했다.
“과찬이세요. 그것보다도 사람이 살아있다고 하는 것도 알고 보면 폐(肺)에 공기가 들어가 있어서 가능하고 다른 모든 것도 어쩌면 그렇게 되어 있을 것으로 생각해 봤을 따름이에요. 이렇게 생각할 수가 있도록 도화선(導火線)이 되어준 스승님의 가르침이죠. 호호호~!”
“맞아, 수증기든 습기든 기체든 생명체든 모두 같은 곳을 가리키고 있다고 이해를 하면 되겠네. 하하하~!”
“아하, 정말 재미있어요. 발상(發想)의 전환(轉換)이란 말이 이런 경우를 두고 쓰라고 있는 말이라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어요. 그러니까 사람의 생각도 공기처럼 거침없이 무엇이거나 파고 들어갈 수가 있다는 말이잖아요?”
“물론이네. 지상(地上)에서 공기가 없는 곳은 없으니까 말이지.”
“놀라워요. 수경은 정말 새로운 세상을 깨닫게 되었어요. 더욱 열심히 정진해야 하겠다는 의욕이 무럭무럭 자라나는 것만 같아요.”
“고마운 말씀이네. 부디 그 마음 그대로 3년만 정진하시게 아마도 뭔가 큰 깨달음을 얻어서 소요자재(逍遙自在)를 할 수가 있을 것이니까. 하하하~!”
“예, 그러겠습니다. 과연 공부는 이렇게 하는 것이었어요. 어젯밤에도 맘이 설레어서 잠도 자는 둥 마는 둥 했어요. 오늘 저녁에는 푹 잠들 수가 있지 싶습니다. 감사드려요. 호호호~!”
이렇게 대화를 나누는데 오광이 손을 들었다. 우창이 바라보니까 궁금한 것을 새로 들어온 후배들에게 양보하느라고 많이 참았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래서 뭐가 궁금한지 말해 보라고 했다.
“오, 오광도 궁금한 것이 있었나 보군. 말해 보게.”
“예, 스승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경신금(庚辛金)과의 관계를 생각해 봤습니다. 주체가 경(庚)은 안을 향하고 신(辛)은 밖을 향한다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같은 의미에서 임(壬)은 안을 향하고, 계(癸)는 밖을 향한다는 말씀으로 정리해도 되겠습니까?”
“당연하지. 그래서 임은 속으로 우물을 파고, 계는 밖으로 호수를 만든다네. 그래서 발을 넓히는 계수(癸水)와 궁리를 깊게 하는 임수(壬水)가 수(水)의 음양이지. 이해가 되셨나?”
“그렇습니다. 그런데 안으로 궁리한다는 것은 학문한다면 이론(理論)에 충실(充實)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맞아. 이론적으로 빈틈이 없이 잘 맞아떨어질 때까지 궁리하고 맞춰보는 시간을 아까워하지 않지.”
“아하~! 그게 궁금했습니다. 수(水)는 그렇게 다양한 방법으로 이치를 궁리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물이 움직이는 것을 본떠서 법(法)이라고 하는 것입니까?”
“오호~! 그것까지도 생각했구나. 잘 생각했어. 법(法)의 글자가 그렇게 생긴 연유이기도 하지. 법칙(法則)을 만드는 것은 임수(壬水)의 능력이니까 말이야.”
“또 문득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오행에서는 물을 자연의 질서를 존중하는 존재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역경(易經)』에서 물을 나타내는 감괘(坎卦)는 왜 죽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표현을 한 것일까요?”
“그렇지? 왜 그랬을까?”
우창은 직접 대답하는 것보다는 오광의 대답을 끌어내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으로 생각해서 되물었다. 그러자 오광이 잠시 생각하다가 물었다.
“옛사람들이 물을 두려워했다면 그것은 수(水)의 또 다른 상징이 되는 지식이 잘못될 수도 있을 것으로 봐서 그랬을 수는 없을까요?”
“오광이 너무 앞서 나갔군. 역경의 이치는 물질적인 관점으로 접근하는 것이 좋을 것이네. 역경이 만들어지게 된 당시의 관점으로 볼 필요도 있으니까 말이네. 하하하~!”
“예? 역경이 만들어질 때라고 하는 것은 은대(殷代) 말기와 주대(周代) 초기를 의미하는 것입니까? 공자님의 손에서 완성되었다고 본다면 춘추시대(春秋時代)에서 그 답을 찾아야 하겠습니까?”
“그렇지.”
“당시로 본다면 물은 매우 위험한 물질로 인식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겠습니다. 특히 전쟁이 끊이지를 않았는데, 전쟁에서 물은 분명히 생명을 위협하는 존재였을 것으로 짐작이 됩니다.”
“아마도 그랬겠지? 그러니까 물에 해당하는 감괘(坎卦)를 구덩이 감(坎)을 써서 험난하다는 의미로 사용했을 것이네. 이것은 세월이 흘러서 오늘날의 풍경에서도 두려운 존재인 것은 마찬가지라고 할 수가 있겠네.”
“맞습니다. 속담에도 ‘불이 탄 자리에는 흔적이라도 남아있으나 물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고 했으니까 말입니다. 그렇다면 물은 두려움의 존재로 여겨질 가능성이 많겠습니다. 그것이 팔괘(八卦)에 그대로 적용되었을 것으로 생각해도 될까요?”
“아마도 옛날에는 물이 두려웠을 것이네. 그래서 우임금이 물을 잘 다스려서 성군이 되지 않았겠나. 더구나 음(陰)은 나쁜 것이고, 양(陽)은 좋은 것이라는 선입관(先入觀)이라도 작용했다면 더욱 그러한 생각을 했을 것이네.
이야기를 듣고 있던 채운이 손을 들고는 말했다.
“더 궁금한 것이 있어요. 말씀하신 대로 지식(知識)이 수(水)의 음(陰)이라고 하는 이치가 참으로 오묘하게 느껴져요. 그리고 그 지식에서 안개처럼 피어오르는 것이 지혜(智慧)와 같은 것이라면 이것은 수(水)의 양(陽)이라는 말씀이니 과연 임(壬)의 의미를 이렇게 관찰할 수도 있다는 것이 신기하네요. 그렇다면 임보다 중요한 것이 계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싶은데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저울에 놓고 달아보면 계는 6할이고 임은 4할쯤 되려나? 하하하~!”
“그렇지 싶어요. 그렇다면 계(癸)에 대해서는 어떻게 이해를 하면 될까요?”
끝없이 질문을 찾아내고 그것을 묻는 채운을 보면서 답했다.
“계에 대해서 더 생각을 넓혀 본다면, 동서남북(東西南北)과 사유상하(四維上下)의 시방(十方)을 누비면서 육감(六感)을 통해서 받아들인 모든 것과 어우러져서 완성되는 것이라네. 태어날 적에 자신의 불성(佛性)을 갖고 난 것에다가 다시 삶에서 겪은 오온(五蘊)과 칠정(七情)의 변화에서 쌓인 경험(經驗)이야말로 지식(知識)의 창고를 채우는 보석이라고 하겠지? 그것을 '알갱이'라고도 하고 쌓여서 업(業)이 된다고도 하겠지.”
“아하~! 경험이란 반드시 위대하고 거룩한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삶의 여정에서 겪은 고통스러움이나 억울함조차도 모두 계수(癸水)의 창고에 들어가서 방을 하나씩 차지하는 것일까요?”
“역시 채운의 빠른 판단력은 매력(魅力)이 만점(滿點)이로군. 과연 학문의 길을 가기에 잘 어울리는 심성을 가졌으니 또한 전생부터의 수행자라고 해야 할 모양이네. 하하하~!”
“감사해요~! 호호호~!”
“그렇게 쭉~ 정진하면 되겠네.”
“그런데 수증기에 대해서는 참으로 놀라운 말씀이네요. 공기처럼 구석구석을 파고 들어가는 성분으로 인해서 결국은 계수(癸水)는 무불통지(無不通知)가 된다는 말씀이잖아요?”
이야기를 듣고 있던 자원도 채운의 말에 감탄했다. 하물며 그 나머지 제자들이랴. 민첩하고도 조리가 정연한 논리를 전개하면서 물어보는 말로 인해서 모두의 머릿속도 시원하게 정리가 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존경하는 마음으로 채운의 말에 귀를 기울이자, 한 바퀴 둘러 본 우창이 답했다.
“참으로 잘 물었네. 무불통지란 보이지 않는 세상을 안다는 것만 뜻하지는 않지. 지금 눈앞에서 전개되고 있는 정황들에 대해서 올바르게 사유하고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무불통지라고 생각하는 까닭이라네. 오늘의 일진이 무엇인가?”
우창이 갑자기 오늘의 일진을 묻자 채운이 잠시 생각을 하더니 말했다.
“오늘은 무인(戊寅)입니다. 갑자기 일진(日辰)을 물으셔서 얼떨떨했습니다만 필시 깊은 뜻이 있으실 것으로 생각됩니다. 무슨 뜻인지 고견을 듣고자 합니다.”
“지금은 무슨 시인가?”
“사시(巳時)인 것으로 보입니다.”
“무슨 사시?”
“무인일의 사시라면 정사(丁巳)시가 될 것으로 생각되네요.”
“여기에 연월(年月)을 붙여서 볼까?”
우창이 거듭해서 묻자, 채운이 생각하면서 말했다.
“올해의 태세(太歲:연주)는 신미(辛未)이고, 월건(月建:월주)은 미월(未月)이니 을미(乙未)월이에요. 이렇게 하면 지금의 사주가 되네요. 호호호~!”
우창은 채운이 말을 한 그대로 간지를 적었다. 여러 사람이 봐야 하므로 큰 붓으로 큰 종이에 써서 모두가 보게 하자 사주를 살펴보느라고 눈길이 한곳으로 모였다.
모두 간지를 보고 나서는 무슨 말을 해 줄 것인지를 기대하는 표정을 보자 채운에게 물었다.
“자, 어디 살펴볼까? 무토(戊土)가 보이나?”
이미 어디에서 명학 공부를 어떻게 했더라도 이렇게 알아들을 말귀가 열린 것이 다행이었다는 생각을 하면서 물었다.
“예, 스승님의 말씀대로 무인(戊寅)이 보여요. 온통 화기(火氣)가 넘치는 것이 흡사 오늘 날씨를 보는 것과 같아요. 호호호~!”
“연지(年支)와 월지(月支)의 미토(未土)는 일간인 무토를 돕고 있나?”
“당연히 토(土)이니까 돕는 것이 아닐까요?”
“그렇게 당연한 듯이 보이는 것도 실은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다네. 신미(辛未)는 신금(辛金)의 뿌리가 되니 일간을 돕고자 하는 마음이 없네. 흡사 아기를 품에 안고 있는 여인은 온통 그 마음이 아기에게 집중되는 것과 같은 까닭이라고 하겠지.”
“와~! 참으로 절묘(絶妙)해요. 그렇다면 을미(乙未)는 미토(未土)가 을목(乙木)을 모시고 있으니 이것은 매우 사나운 상전(上典)을 모신 것과 같아서 또한 거동이 마음대로 일간을 도울 수가 없는 것일까요?”
“옳지~! 바로 알아듣는군. 하하하~!”
채운의 말을 듣자니 우창의 마음도 상쾌해졌다. 그래서 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것을 보면서 자원도 미소를 지었다. 자원은 우창의 마음을 잘 헤아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언제나 누구라도 공부를 열심히 하는 사람을 만나면 마냥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르는 천성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까닭이다.
“스승님,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말이 있는데 오늘 새삼스럽게 그것을 깨달았어요. 그렇다면 일간의 무토(戊土)는 어떤 마음일까요?”
“아마도 이리 채이고 저리 치이면서 오늘까지 살아오지 않았을까? 도움을 받을 수가 있을 것으로 기대했던 부모나 형제가 실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머리에 붙은 불을 끄느라고 정신이 없는 모습을 하고 있을 테니까 말이네.”
“오호~! 참으로 절묘합니다. 흡사 지금 하신 말씀은 제자의 삶을 훑어보셨다는 듯이 마음을 날카롭게 파고드는 비수처럼 아프게 찌릅니다. 여태 살아온 저의 모습이 이와 같았기 때문이에요.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폐부(肺腑)를 사정없이 파고들어요. 무슨 까닭일까요?”
“조짐(兆朕)~!”
우창이 간단하게 말했다. 그러자 채운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이 다시 물었다.
“예? 조짐이라고요? 그게 무슨 뜻인지 자세히 말씀해 주세요. 지금 시간에 나온 사주가 어떻게 제 삶의 과거를 꿰뚫고 있는지 상황은 공감이 되면서도 납득(納得)이 되지는 않아요. 이게 무슨 까닭일까요?”
채운이 사주의 모습에 감탄하자 모든 대중의 눈길이 일제히 우창에게 꽂혔다. 우창이 제자들을 둘러 본 다음에 천천히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