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한달(94) 영실등산

작성일
2021-11-21 10:24
조회
643

제주한달(94) [27일(추가3일)째 : 2021년 11월 11일]


영실등산(靈室登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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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된 대로~!

오늘은 영실코스를 타고 한라산 남벽까지 오르는 것을 목적으로 삼고서 아침을 서둘렀다. 어제는 거문오름에서 하루를 보냈으니 오늘은 한라산의 윗세오름의 길에서 하루를 보낼 요량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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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벌기 위해서 아침은 연대해장국집으로 향했다. 하늘은 그런대로 괜찮아 보였지만 실로 지금의 상황은 현장에서 별로 참고가 되지 못함을 잘 알고 있으니 그냥 그런가보다 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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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설주의보가 내린 것을 봤기 때문에 여장은 단단히 준비하기로 했다. 그래봐야 등산화에 스틱이 전부이고, 아이젠은 영실휴게소에서 구입할 수가 있다는 것까지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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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6시 29분에 확인한 오늘의 예보상황이다. 제주도 산지에 대설주의보가 발효되어 있었고, 바다는 여전히 풍랑주의보가 풀리지 않고 있는 풍경이었다. 그나마 남해안과 동해안 근해에는 풍랑주의보가 풀리고 있어서 내일 대포항에서 요트를 탈 일정에는 문제가 없을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했다.

호연 : 아래에서부터 걸어가야 한다고 하면 어쩝니까?
낭월 : 뭘 어쩌겠어? 그야 시키는대로 따를 밖에 달리 방법이 있나.
호연 : 그래도 윗세오름은 가실 겁니까?
낭월 : 만약은 그때 가서 생각키로 하고, 지금은 출발할 일이 전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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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연이 걱정하는 것은 지난 여름에 영실에서 본 것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길의 한쪽으로 길~게 주차된 차들을 봤고, 한 대가 내려오면 다시 다음 차를 올려보내는 것을 겪었기 때문에 그것이 떠올라서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영실매표소에서 영실휴게소까지는 2.5km이다. 주차장에서 차를 대고 걸어야 한다면 그것만으로도 1시간 가까이 소요가 되기 때문에 걱정을 하는 것도 이해할 만하기는 하다. 그러나 미리 걱정한다고 해봐야 소용없다. 상황은 언제나 변하기 마련인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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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 : 이 차는 사륜입니까?
호연 : 예? (무슨 뜻인지 몰라서 되 묻는데...)
화인 : 예`! 사륜입니다~! (눈치가 빨라야지. ㅋㅋ)
관리 : 그러면 올라가셔도 됩니다. 조심하세요.

그니깐 말이다. 미리 걱정해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니깐. ㅎㅎ 우리는 많은 렌트카들이 주차장에 줄을 지어서 주차된 것을 보면서 유유히 영실로 올라갔다. 오히려 널널하게 여유로운 길을 가면서 호연이 싱글벙글이다.

호연 : 아니, 이게 무슨 일입니까?
낭월 : 그러니까 미리 걱정할 필요가 없지.
호연 : 너무 좋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걸어가고 있는데 말입니다.
낭월 : 길에도 눈이 쌓여있으니까 위험하겠네.
호연 : 이번에는 차의 덕을 보게 될 줄은 몰랐는데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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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륜구동이 아니어서 올라오지 못한 차량들로 인해서 영실휴게소는 그야말로 널널했다. 벌써부터 첫눈의 혜택을 톡톡하게 보고 있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다. 지난 번에 왔을 적에는 5월 29일이었고, 그 내막은 80편에 적어 놨거니와 그 때는 토요일이어서 더욱 복잡했는데 오늘은 평일인데다가 눈까지 부조를 하는 바람에 이렇게 여유로운 주차장을 만나게 된 셈이다. 다음에는 휴게소에서 아이젠을 구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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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아무리 한라산이라도 그렇지, 11월 11일이면 단풍이 한창이어야 한단 말이지. 웬 폭설이 쏟아져서 낭월을 즐겁게 하느냔 말이다. 고맙구로. ㅎㅎ 아이젠이 있는지를 묻는데 혹시라도 없다고 하면 어쩌나 싶었지만 그것도 기우였다. 좀 비싸더라도 튼튼한 것을 사라고 했더니 맘에 드는 것이 있었던 모양이다. 다섯 세트를 구입했다. 개당 35,000원이더란다. 주루룩 미끄러져서 다치기라도 하면 큰일일테니 비용은 논할 게제가 아니라고 봐야지. 그저 구입을 할 수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냥 감사할 따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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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들을 보니까 모두가 아이젠을 착용하고 산에 오르는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자신감이 있었거나 구입할 형편이 안 되었을 수도 있겠지 싶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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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젠을 신으라고 바닥에는 깔판을 두둑하게 깔아놓았다. 신고 나가라고 주인이 친절하게 안내를 해 줬다. 하긴 문앞부터가 눈더미이나 그냥 나가봐야 이내 신어야 할 상황이기도 했다. 그래서 처음으로, 아니 예전에도 한 번쯤 신어 봤던 것도 같은데 기억이 가물가물..... 아이젠을 착용하고 출발을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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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설주의보가 괜히 내린 것이 아니었다. 산 아래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주차장에서부터 눈이 쌓여있었으니 윗세오름의 일정을 잘 잡았다는 것을 새삼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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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인네는 스틱을 준비하지 못했다. 언제 쓸 일이 있겠느냐는 생각으로 다음에 산다고 미뤄뒀었는데 이렇게 당면하고 보니까 미리 준비하지 않은 것을 알았지만 지금은 달리 방법이 없다. 휴게소에서도 스틱을 팔지 싶지만 그것을 물어볼 생각을 못 했구나. 아이젠에만 정신이 가 있어서 그랬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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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연 : 비가 오면 어떻게 합니까?
낭월 : 그럼 눈을 맞으며 올라가겠지.
호연 : 그럼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까?
낭월 : 걱정이야 하려면 하고. ㅎㅎㅎ

지팡이는 휘츠다. 상표 이름이 그렇다. 국내산이라는데 이제야 제대로 빛을 볼 모양이다. 산에서는 두발로 걷느냐 네 발로 걷느냐의 차이는 크다. 평지에서는 걸리적거리기만 하겠지만 산길에서는 전혀 다른 이야기이다. 이제 무릎관절을 관리해야 하지 싶어서 특별히 산에 오를 적에는 지팡이를 챙겨야 하는 것으로 고마운 다리에게 보답할 요량이다. 다리가 불편하면 그 삶의 나날들이 또 얼마나 불편하겠느냔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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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판악은 750m에서 시작하지만 영실은 1,280m에서 시작하니 완전히 거저 먹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5월에는 여기까지만 와서 늦어지는 바람에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는데 오늘은 윗세오름을 찍고, 남벽까지 올라갈 요량이다. 물론 계획은 그렇고 현실은 상황에 따라서 받아들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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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젠을 착용하고 올라가라고 당부를 했구나. 당연하지. 평지에서도 미끄러지면 위험한데 하물며 한라산이잖은가. 남벽까지 2시간 30분이라니까 3시간 반으로 잡고 느긋하게 올라가볼 요량이다.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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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거문오름을 돌면서 준비운동은 잘 한 셈이다. 그러니까 오늘도 잘 다녀와야지. 눈이 내린 한라산의 풍경은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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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덮인 속에서 조릿대가 고개를 내밀고 있다. 조릿대가 한라산의 특징이라고도 하던가 싶다. 한라산의 조릿대로 인해서 다른 식물들이 마음대로 자라지를 못해서 이것을 제거하는 일도 큰 일인 모양이다. 자연에 맡기면 편한 것도 관리하려고 들면 여간 머리아픈 일이 아닐 게다. 자연에 간섭하는 것이니까 각오해야 겠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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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시작이구나. 0.5km를 온 것이란다. 빨간 색의 길은 난이도가 높다는 의미겠군. 그러면 더욱 천천히 걸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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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인 : 사부님, 이름이 왜 영실인지 아세요?
낭월 : 영실(靈室)은 영산회상에서 설법하던 방이라는 설이 있더라.
화인 : 영산회상은 뭔데요?
낭월 : 부처님께서 인도의 영축산에서 법화경을 설법하던 곳이지.
화인 : 영축산이라서 영산인가요?
낭월 : 맞아. 영축산에서도 설법하고, 기사굴산에서도 설법하고 하셨다지.
화인 : 그런데 왜 여기가 영실이냔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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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월 : 그야 영산회상에서 부처님이 설법하실 적에 제자들이 모여들었다잖여.
화인 : 제자들이 모여들었던 것이랑 무슨 상관이 있다고요?
낭월 : 오백나한이 무리를 지어서 있다고 하던가?
화인 : 오백장군이 아니고요?
낭월 : 내게 왜 이래~! 난들 알아. 그런 말이 있어서 영실이란다고요. 하하~!
화인 : 하긴 오백장군은 오백나한과 무관하네요. 영실은 오백나한인 걸로.
낭월 : 그래 영실은 오백나한이고, 영실기암은 오백장군들이 있는 걸로.
화인 : 오늘 안개구름이 심해서 볼 수 있을까요?
낭월 : 걱정 말거라 계룡산 산신님께 부탁을 해 놨싱게. 흐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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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자욱한 앞을 보면서 화인이 하는 말인지라 희망이라도 갖도록 대충 얼버무렸다. 원래 높은 산에서는 보여주는 만큼만 보면 되는 게다. 작년 9월9일에 백록담에서도 물이 가득한 풍경을 봤는데 앞에서 내려간 사람들은 그것을 보지 못했다고 아쉬워하면서 가지 않았느냔 말이지. 그래서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것은 그야말로 산신령님의 보우하심이 필요한 법이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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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젠을 차지 않은 사람들의 걸음은 더욱 조심스러웠다. 그래서 미리 준비하기를 잘 했다는 안도감이 들기도 했다. 안개는 안개이고 몸은 몸이니까 챙길 수가 있는 만큼은 챙겨야지 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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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의 홈은 이미 눈바람으로 모두 메워져서 그냥 비탈길에 가까웠다. 조심해서 발 아래를살피는 걸음이다. 그야말로 조고각하(照顧脚下)로구나. 눈팔이 하다가 쭈루룩~ 미끄러져서 계곡으로 빠지기라도 하면 여러 사람 피곤해 지니까.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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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로를 따라서 빨간 깃발이 꽂혀 있구나. 멀리서라도 길이 잘 보이라고 그랬나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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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턱을 오르니 안개가 피어오른다. 아니 구름인가? 문득 화인이 또 묻는다.

화인 : 싸부님, 이건 안개인가요? 구름인가요?
낭월 : 안에서 보면 안개이고 밖에서 보면 구름이지.
화인 : 예? 무슨 말씀이세요?
낭월 : 지금은 구름 속에 있으니 안개로구나. 
화인 : 그럼 구름은요?
낭월 : 멀리서 보면 구름이 되는 거지 뭘 구분하느라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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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연이 앞서 걷다가 사진을 찍었구나. 조심조심 오르는 진지한 낭월의 모습이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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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에 조사를 한 바로는 이쯤에서 나오는 구절이 있었다.

'영실로 오르는 길이 가파른 구간인데 다행히 기암절벽이 있어서 지루하지 않다.'고 했던 구절이 떠올랐다. 그런데, 지금은 길만 가파르고 기암절벽은 없다. 없는 것이 아니라 안 보이는것이지만, 안 보이는 것은 없는 것과 같지 않느냔 말이지.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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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떠러지끝은 짙은 안개 속에 잠겨들어있으니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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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과연 절경이 있어서 풍경이 좋다고 할만 했겠다. 한라산의 정상까지도 보였다면 더욱 그럴만 했겠구나. 그러나 지금은 아무 것도 없는 하얀 허공이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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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실기암과 오백나한


명승 제84호
서귀포시 하원동 산1-4번지, 도순동 산1-1번지 일원
영실기암(靈室奇巖)은 한라산을 대표하는 곳이며 영주십경 중 하나로 춘화, 녹음, 단풍, 설경 등 사계절 내내 아름다운 모습과 울창한 수림이 어울려 빼어난 경치를 보여주는 명승지임.
한라산 정상의 남서쪽 산허리에 깍아지른 듯한 기암괴석들이 하늘로 솟아 있고, 석가여래가 설법하던 영산(靈山)과 흡사하다 하여 이곳을 영실(靈室)이라 일컫는데, 병풍바위와 오백나한(오백장군)상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음.
※병풍바위 : 기암괴석들이 즐비하게 늘어서서 마치 병풍을 쳐 놓은 모습과 같아서 병풍바위라 불림
※오백나한(장군) : 야릇야릇하게 생긴 기암괴석들이 하늘로 솟아 있는데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장군' 또한 '나한' 같이 보여 오백나한(장군)이라 불림.

화인에게 팔아먹은 이바구가 그대로 쓰여 있군.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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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연 : 사부님, 오늘은 영실기암을 보기는 어렵겠습니다.
낭월 : 그야 아직 모르지. 내려오는 길도 있잖여?
호연 : 날씨가 아무래도 어렵지 싶습니다. 안개가 더 심한데요.
낭월 : 기암은 그 자리에 있고, 안개는 오락가락하니 두고 봐야지.
호연 : 그럼 기암도 볼 수 있겠습니까?
낭월 : 가마이 있어보거라 내가 집을 나오면서 계룡산 산신님께 부탁했으니. ㅎㅎ
호연 : 예? 부탁을 하시다니요? 뭘 말입니까?
낭월 : 뭐긴 뭐겠어. 영실에서 오백나한을 뵙게 해 달라는 거지. ㅎㅎㅎ
호연 : 아이고~ 그런게 있습니까? 말이 안 되는 것 같습니다.
낭월 : 말이야 되지 왜 안 돼? 실현이 되느냐가 문제일 뿐이지.
호연 : 아, 그렇게 되는 것인가요? 그렇다면 사부님만 믿겠습니다.
낭월 : 나를 믿지 말고 한라산 산신령님의 신통력을 믿어야지.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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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만한 계단길은 이미 눈이 녹아서 얼어붙고 있었던 모양이다. 조심하지 않으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리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그 옆은 몇 길이나 되는지 알 수가 없는 낭떠러지이니 말이다. 조심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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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좋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아도 눈길을 올라가면서 설경을 누리고 있으니 이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 일이냔 말이지. 내려오던 아제가 주루룩 미끄러진다. 아찔하다. 아이젠을 차고 있지 않은 등산화였다. 그래서 겨울 산행에는 아이젠이 필수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부디 무사히 하산하셨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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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월은 풍경 찍기를 좋아하고 호연은 사람 찍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알았다. 호연의 사진에는 대부분이 식구들 모습이 담겨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궁합이 잘 맞는다고 하는 모양이다. 서로 다른 시각으로 인해서 다양한 이미지를 얻게 되었으니 또한 수지맞는 일이었으니까. 길의 모양으로 봐서 대략 난코스는 거의 빠져나왔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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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보일듯 말듯 하면서도 오르는 길에서는 은막(銀幕)이 걷히지 않았다. 주인공은 나중에 등장하고 싶은 모양이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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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1.5km를 올라왔구나. 대략 절반은 올라온 모양이다. 안개가 아니라면 지금부터가 툭 터진 서귀포 앞바다며 높은 백록담이며 멋진 풍경들을 감상할 수가 있었을텐데 하얀 안개만 보면서 오르니 어디쯤 가고 있는지도 모를 지경이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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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녀가 엷은 비단옷을 입고 있을 적에 가장 아름답다던가? 앞의 풍경이 흡사 그와 같다고 해야 할 모양이다. 그래서 아름다운 병풍바위를 봤다는 이야기이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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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인은 짐벌을 들고 동영상으로 풍경을 담느라고 여념이 없다. 낭월도 가방에 든 망원렌즈를 꺼낼 일이 없어서 좋다. 뭐가 보이는 것이 있어야 망원렌즈도 필요하단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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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낭월의 시선이다. 가족조차도 배경의 풍경으로 만들어 버린다. 이야기가 중요할 따름이기 때문이다. ㅎㅎ 그나저나 호연은 화인이 행여 미끄러지기라도 할까봐 챙기느라고 여념이 없다. 부부가 함께 간다는 것을 이렇게 윗세오름의 길에서 느끼고 있으려니 싶기도 하다. 아름다운 한 쌍이다. 서로를 얼마나 끔찍하게 챙기는지 모를 지경이니 말이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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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호연의 시선이다. 인물위주라는 것이 그대로 느껴진다. 비탈진 계단이 눈길이기는 해도 크게 미끄럽지 않아서 다행이다. 바람도 제법 강하게 분다. 깃발에 힘이 들어간 것을 보면 알겠구나. 간간히 눈인지 우박인지 모를 알갱이들이 흩날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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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으로 인한 날씨 때문인지,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지 않아서 산행이 편안한 감도 있었다. 아직은 장갑을 끼지 않은 것으로 봐서 손이 시리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그리고 웬만하면 장갑을 끼지 않는다. 카메라 놀이를 하는데 불편하기 때문이다. 물론 장갑도 엄지와 집게를 밖으로 끄낼 수가 있는 것으로 준비는 해 놓고 있다. 아직은 속에서 달아오른 열기로 인해서인지 장갑이 필요하지 않았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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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연이 산쪽으로 바짝 붙어서 오르는 것은 결코 고소공포증으로 인해서가 아니다. 그냥, 혹시라도 미끄러지면 화인을 지켜줄 수가 없기 때문에 조심할 따름이다. 아무렴. ㅋㅋㅋ

사진에 기록된 시간정보 좀 보소. 11월 11일 11시 11분이네. 아무 것도 아니지만 이런 것도 문득 보면서 혼자서 미소를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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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니카지, 보이는 것이라고는 눈과 안개 뿐이니 이야깃꺼리가 없기도 할 터이다. 그래서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면서 산을 오르느라고 수다를 떤다. 수다라고 하면 한 수다 하는 박수다가 아니냔 말이지.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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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월 : 힘드나?
연지 : 아니~ 풍경이 너무 좋아서 힘은 하나도 안 들어.
낭월 : 풍경이 좋아? 보이는 것도 없는데?
연지 : 무슨 소리야, 이렇게 온통 눈꽃 천지인데~!
낭월 : 아하~! 그렇구나. 눈꽃도 꽃이었지.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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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과연 눈꽃이로구나. 아니, 쑥개떡인가? 누군가에겐 쑥개떡이고, 누군가에겐 눈꽃이겠거니.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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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부른 눈에는 눈꽃일게고, 배고픈 눈에는 쑥개떡이겠거니. 카메라를 두고서 폰으로 사진을 찍는 까닭은 저녁에 숙소에서 제자들의 카페에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이다. 폰의 성능이 워낙 출중해서 카메라가 없어도 아쉽지 않을 정도이니 이렇게 간간히 보이는 풍경을 담았다가 카페에 올려주면 또 궁금한 제자들이 덩달아 즐거워하니 무심할 수가 없다. 제자들은 이러한 낭월의 정성을 알랑강 몰라~!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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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기대하지 않았던 풍경에 감지덕지이다. 단풍이나 조금 보면 다행이려니 했는데 어제는 거문오름에서 단풍을 봤고, 오늘은 영실에서 백설만건곤이니 이런 것이야말로 길복이라고 할 밖에 여하튼 여행객은 길복이 있어야 혀. 이런 풍경을 도대체 얼마만에 보는 것인지 생각도 나지 않지만, 때로는 눈이라고 할 것도 없이 겨울이 지나가 버리기도 하는 것을 생각해 보면 분명히 한라산에 와서 큰 선물을 받은 것이 틀림없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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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뒤집어 쓰고 있는 표지석에는 「해발 1,600m」로구나. 안개가 잠시 옅어지면 또 멋진 구상나무의 눈덮인 풍경이 나타나곤 한다. 구상나무인지도 구분이 되지 않지만 그렇겠거니 할 따름이다. 아무렴 워뗘~!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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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지 : 예뻐요~!
낭월 : 정말 멋지구나.
연지 : 이런 눈꽃은 처음 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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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에서나 볼 수가 있는 진풍경이지 싶다. 지나가는 산꾼이 감탄하면서 낭월에게 한마디 덕담을 한다.

"오늘은 정말 택일을 잘 하셨습니다. 작품 많이 건지시겠습니다. 소백산에서 멋진 설경을 봤었는데 오늘의 풍경은 그보다도 훨씬 멋집니다. 제가 본 눈꽃 중에 가장 예쁜 꽃이 한라산에 만발했습니다."

이렇게 덕담을 해 주니 낭월도 그냥 말 수가 없지.

"고맙습니다. 그리고 축하드립니다. 선생님께서도 오늘 이 자리에 함께 하셨네요. 영실에 와서 이렇게 멋진 풍경을 만나게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는데 산복이 많은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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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 봐도 그림이고, 저리 봐도 작품이다. 바람과, 눈과, 겨울이 만들었으니 삼합(三合)인가? 어떻게 바람이 불었으면 이렇게 눈이 얼어붙을 수가 있는지.... 참 신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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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풍경은 과거에도 본 적이 없지만, 아마도 앞으로도 다시 보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보고 또 봤다. 그러나 풍경은 풍경이고 길은 길이다. 가파른 구간을 안개만 보고 올라왔는데 이렇게 멋진 풍경이 기다리고 있었구나. 그래서 살아봐야 안다는 말을 하는 모양이다. 살아보기 전에는 말하지 말라는 말도 나오는 이유겠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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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안전망이 설치되어 있었구나. 그야말로 낭떠러지에 주의하라는 의미인 모양이다. 성인이 빠져나기지 못할 정도로 촘촘하게 만든 것으로 봐서 아마도 여기에서 언젠가 사고가 생겼을 수도 있지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으면 이 정도로 만들어 놓기가 쉽지 않았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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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나타난 안내판이다. 윗세오름대피소까지는 1.6km가 남았구나. 사실 얼마나 남았는지는 쪼매도 궁금하지 않았다. 그냥 이 풍경을 따라서 어디까지라도 걸을 수가 있을 것 같아서다. 길도 초록길이다. 평탄하다는 의미다. 여유롭게 풍경을 감상하면서 걸으면 되는 구간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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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의 바닷가에서나 봄직한 장면을 이 산꼭대기에서 만나다니. 그야말로 천국으로 오르는 길인양 싶다. 분위기는 최고다. 안개가 자욱한 곳으로 향하는 길이니 말이다. 베트남에서 오행산에 올랐을 땐가? 길의 이름이 천국으로 가는 문이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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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길만 있는 것보다는 인물이 하나 있으면 훨씬 낫겠다. 잠시 기다렸다가 부지런히 안개 속으로 사라져가는 사람의 위치가 적당하다고 생각되었을 적에 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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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벌판을 지나치니 다시 수목들의 풍경이 이어진다. 그냥 풍경이 아니라 진풍경이다. 할 말을 잊고 그냥 감탄만 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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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흰비둘기 떼가 하늘로 힘차게 날아오르는 풍경을 만났다. 참으로 아쉬운 것은 하늘이 안개로 가득한 것이었다. 짙푸른 하늘이었더라면 그야말로 금상첨화였을텐데 말이다. 그래서 마음의 눈으로 푸른 하늘을 떠올렸다. 땅 위의 나무를 떠나서 허공으로 훨훨 날아오르는 환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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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보이는 이러한 풍경에 내일도 지속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냥 보일 적에 보면서 즐기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하얀 눈과 안개 가득한 하늘이 구분되지 않아서 라이트룸에 추가된 신기능인 하늘을 선택해서 약간 어둡게 보정을 해 봤다. 아예 푸른 색으로 바꾸려면 포토샵의 신세를 져야 하는데 그것까지는 역부족이고 이미 풍경사진을 벗어나게 되려니 싶어서 여기까지만이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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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길을 멈추고 한 숨 돌리는 것도 여정이다. 주변에 자라고 있는 식물들에 대한 안내판이 보이는 자리에서 풍경에 대한 감상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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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구간은 완전히 숲속과 같은 분위기로구나. 조금 전엔 허허벌판처럼 보였다가 또 갑자기 숲으로 이어지는 것도 지루하지 않은 산행이 되도록 배려한 것으로 생각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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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보기 어려운 장면을 보면서 사진에 담고자 하는 마음은 모두 같은 모양이다. 무릎을 꿇고 가족을 찍어주고 있는 여인의 마음 속을 헤아릴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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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쪽에는 눈이 더 많이 쌓였나 보다. 계단도 거의 덮여서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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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월의 영실에 오르는 이야기만 듣는 벗님은 그게 그 풍경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게다. 아무리 설명을 하려고 해도 글로는 전할 수가 없는 무엇인가도 있기 마련인 모양이다. 그래서 '직접 느껴 보라'고 하는 말을 할 수밖에 없나 싶기도 하다. 이런 풍경을 사진 몇 장으로 모두 이해한다는 것이 애초에 무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도 가능하면 공감이 조금이라도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기는 하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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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란 이런 모양이다. 살고자 하는 길은 힘들고 고단한 눈길이겠지만, 놀자고 하는 길은 황홀하고 아름답고 감탄하는 눈꽃길이니 말이다. 이런 설명을 어떻게 해야 한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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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박같은 눈발이 잠시 쏟아지는 숲길을 걷는다. 비가 내렸다면 조금은 구적거렸겠지만 눈발이라서 괜찮다. 같은 수(水)라도 받아들이기에 따라서 전혀 다른 느낌이다. 아마도 인간의 감성이 갖고 있는 변덕이려니 싶기도 하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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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올라가고 있다. 느낌으로는 올라가기 보다는 앞으로 가는 길이기도 하다. 아직도 1km를 더 가야 윗세오름대피소로구나. 그리고 이 상태라고 한다면 한라산 남벽은 갈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거리도 2.1km라서 만만치 않은데다가 가봐야 암벽이 보일 것 같지도 않아서였다. 보이지 않는 남벽은 다음으로 미뤄둬도 되지 싶어서 생각을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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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넓은 광장이 나타났다. 계단에서 벗어나서 따로 깃발이 있으니 이런 것은 그냥 지나치면 안 된다.

"여기는 정상, 더 오를 곳이 없다~!"

어디선가 들어봤던 구절이 떠올라서 외쳤다. 뭔 상관이랴, 그냥 즐겁게 놀면 되는 것을 말이지.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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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게? 거미? 뭔가 닮은 듯도 싶은 형상을 한 나무가 있어서 눈길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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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판이 고생이다.

아니, 안내판이 멋지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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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릿대 관리방안 연구」안내


아쉽게도 제목만 보이고 내용은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짐작컨대, 조릿대로 인해서 다른 식물들이 살아가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안타까워하는 내용이 아닐까 싶은 생각만 해 본다. 그렇지만 오늘은 멋지게 얼어붙은 눈작품일 뿐이다. 화판에 예술가의 영감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해야 할 모양이다. 별 구경을 다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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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천지가 하얗다. 그야말로 「산백수백천지백(山白水白天地白)」이다. 여기에 댓구가 있었지 싶은데....? 김삿갓이 누구랑 시 짓기를 하면서 봤던 것도 같은데 생각이 가물가물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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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여기는 한라산 선작지왓이로구나. 어디 읽어보고 가야지.

 

한라산 선작지왓 (명승 제91호)


선작지왓은 한라산 고원 초원지대의 '작은 돌이 서 있는 밭' 이라는 의미를 지닌 곳으로 키작은 관목류가 넓게 분포되어 있는 가운데 다양한 식물들이 서식하는 고원습지로서 생태적 가치가 뛰어난 명승지이다.

한자로는 생석자지(生石子地)라고 표시했는데 중국어 음도 아니고, 아마도 조선시대의 문헌에 그렇게 나와서 적어놓은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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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지다~! 뭐든. ㅋㅋ

봐하니 철쭉꽃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모양이구나. 이것은 봄에 나들이를 하라는 미끼려니 싶군. 그렇다면 또 하나 기억해 둬야 하겠구나. 따사로운 봄날에 선작지왓을 나들이 하는 것으로. 연지님을 꼬드기는 미끼로는 이만한 것도 없지 싶군.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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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은 전망대, 오른쪽은 윗세오름이로구나. 지금은 전망대가 필요가 없지. 가봐야 아무 것도 보이지 않을 텐데 뭘. 그리고 이보다 더 전망이 좋은 곳이 또 어디 있겠느냔 말이지. 그냥 길이 전망대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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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속에 푹 파묻힌 노루샘이로구나. 이름표가 없으면 그냥 지나치게 생겼군. 지금은 물을 떠먹을 일은 없으니 그냥 통과한다. 노루를 위해서 눈을 헤치고 물이 나오게 해 줄까 싶은 생각도 잠시 했으나 노루도 목이 마르면 눈을 먹겠거니 싶었다. 핑계~!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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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완전히 평지로구나. 이제 거의 와가지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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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이 보인다. 필시 웃세오름대피소겠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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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드디어 웃세오름에 도착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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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피소에서는 진료실도 마련되어 있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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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앞에는 공사를 하다가 멈췄는지 자재들이 어수선하다. 아마도 대피소를 새로 짓고 있는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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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판 가림막이 바람에 날아갔는지 휑하게 안이 들여다 보였다. 내년 쯤에는 멋진 대피소를 볼 수도 있지 싶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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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 봐야지. 어떻게 생겼는지도 궁금하고, 간단히 요기도 좀 할 겸으로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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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는 꼭 써 달라고.... 아무렴. 그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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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람이 몰아치기라도 한다면 그야말로 대피소 역할을 잘 하지 싶다. 성판악 쪽에서 올라가면 진달래 대피소가 있는데 이쪽에는 윗세오름 대피소가 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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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인 : 배 고파요.
연지 : 그래 뭘 좀 먹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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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쑥떡이 있었다. 속에는 팥고물이 들어있고 촉촉한 것이 점심 대용으로 먹기에는 그저 그만이었다. 밖에서 안으로 들어간 바람에 렌즈에 김이 서려서 실내에서도 안개인가 싶었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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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떡은 어제 만난 박 선생이 오늘 윗세오름에 간다는 말을 듣고서 마련한 선물이었는데 역시 선견지명이 있었다. 이것을 짊어지고 오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이로써 오전의 일정은 마무리 되었다. 이제 잠시 쉬었다가 오후의 일정으로 들어가야지. 그래서 낭월의 이야기도 여기에서 일단 멈춘다. 이 편의 제목도 영실등산이니까. 그리고, 벗님도 눈길에  동행하시느라고 지쳤을 게고. ㅋㅋㅋ